랜덤 이미지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68화


내가 무슨 상황인 거지.

둔통과 격통이 반복되는 머리가 지금의 환경을 곧바로 이해하진 못하고 흔들린다.

그저 흔들리는 주변 풍경만이 흐릿하게 보인다.

알록달록한 알전구, 바닥의 노란 점자 타일, 출구 번호 표지판, 회색….

계단.

“흐윽.”

그 순간 깨달았다.

고영은 씨는 나를 업은 채 계단을 필사적으로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손가락이 몇 개 없는 손이 그 어깨 위로 흔들리는 내 팔을 잡고 있다.

나는 간신히 메마른 입을 열었다.

“…산, 양 씨.”

“…!”

목소리에 놀란 건지 발을 헛디뎌 거의 넘어질 뻔했던 상대가 간신히 속도를 되잡고 계단을 마저 뛰어 내려간다.

승강장까지.

“…….”

무거울 텐데.

고영은 씨는… 신체도 온전한 상황이 아닌데, 나를 어떻게 업고 있는 거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도망치는 것 같은 급박감은 느껴졌다. 계속 업혀 있을 순 없다. 무거울 텐데, 정신을 차렸으니 내 발로 가자. 나는 몸이 힘을 주고 바닥으로 다리를 뻗….

…….

없다.

허벅지 아래가 없다.

왼 다리는 아예 허벅지 자체가 없고, 오른 다리는 관절부터 잘렸다.

출혈이 터지다가 기이하게도 잡힌 흔적.

‘…카지노!’

순간, 머리가 터지듯이 직전의 기억이 돌아온다.

신체 카지노, VIP 룸, 러시안룰렛, 이성해 대리님, 머리를 뜯어내는 소름 끼치는 감각, 레일에서 강탈한 신체 부위, 안락사 약, 몸부림, 코와 입을 틀어막던 내 손….

카지노의 자산을 엄청나게 파손한 행위들.

‘내 다리를… 비용으로 청구 당한 건가?’

정황상 어느 정도 합리적 추측 같았다. 비록 다리 정도 사라지는 것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파손 행위였다는 점이 이상하다고 해도.

하지만 애초에 말이다.

‘왜 안 죽은 거지?’

나는 머리에 권총을 들고 쐈다. 근데 왜 아직 여기인가. 왜 의식이 있는가.

그리고….

고영은 씨는, 나를 구해내려고 하는 중인 건가?

“여, 기는,”

“쉿.”

지하철 승강장까지 넘어질 듯 뛰어 내려간 고영은 씨는 곧장 스크린도어 반대 방향 벽면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소화전을 개방했다.

“…!”

“얼른…!”

본래 간신히 호스가 욱여넣어질 크기인 소화전은 이상하게도 제법 그 안이 넓었다.

사람 하나만 있다면 누울 수 있을 정도, 둘이라면 좁지만 몸을 숨길 정도.

고영은 씨는 황급히 그 어둠 속으로 나를 조심스럽게 밀어 넣더니 자신도 들어왔다.

쿵.

그리고 소화전 문을 닫았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가볍게 문이 닫히며 어둠이 찾아왔다.

보이는 건 틈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알전구 불빛과 빨간 비상등뿐.

“…….”

“…….”

“괘, 괜찮, 후욱, 카지노 딜러는, 밖으로는 안 쫓아오니까… 중독자들만 피하면.”

그러나 말을 잇지 못하고 영은 씨는 숨을 더 골라야 했다. 그러면서도 내 상태를 보려는 듯이 이쪽으로 몸을 숙였다.

등을 두드려주고자 반사적으로 손을 움찔거린 순간.

“후읍….”

어둠 속에 광원이 하나 더 생겼다.

연두빛.

고영은 씨의 허리춤에서 무언가 아주 연약하게 빛을 낸다. 본인은 각도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으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백일몽의 C등급 재생 물약.’

…….

무언가를 깨달았다.

나는 어둠을 틈타, 고영은 씨의 낡은 패딩 주머니에서 그 재생 물약을 꺼내어 내 주머니에 감췄다.

그사이, 고영은 씨는 겨우 숨을 진정하고 있었다.

“산양 씨.”

“후우, 예?”

“저를 구해주신 겁니까? 카지노에서….”

“…….”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저도 몰라요. 그냥, 딜러들이 VIP룸으로 오는 것 같고, 안을 보니 다, 죽어 있고, 노루 씨만 아직 숨이 붙어 있어서….”

그래서 나를 업고 도망쳤다는 것 같다.

…아마 아이템이나 장비의 도움도 있었었겠지.

반년이나 이 세광특별시에 있으면서, 이 동기도 분명 생존을 위해 준비한 방책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좀 늦어서… 업고 나오는데, 노루 씨 다리가,”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내가 즉사하지 못한 상황은 최악이었다.

‘…만약에 고영은 씨 도움이 없었다면.’

이성해 대리님 대신 내가 카지노에서 신체가 완전히 해체당해 딜러가 됐을 것이다. 무슨 바통 터치하듯이.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리고 다리가 없어서… 덜 무거웠을 테니까.”

“…….”

“차라리 다행입니다.”

“다행 같은,”

고영은 씨는 울컥한 듯, 욕을 쏟아내고 싶다는 얼굴이었으나 말을 삼켰다. 혹시라도 바깥의 주의를 끌게 될까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기력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

머리가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나는 반짝 돌아왔던 두뇌 회전이 점점 둔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는 아직도 내 머리에 통증이 있다는 것을 주목했다.

손을 들어 만지자, 상처가 있는 것은 알 수 있다.

두개골…이 뚫린 건지는, 도저히 확인 못 한다.

확실한 건 총에 맞기는 했다는 점이다.

‘…격발에 문제가 있었나.’

아니면 하필 즉사가 불가능한 방향으로 뇌에 맞아서 살아 있는 건지.

뇌는 통증을 못 느낀다고 하니까, 내가 얼마나 처참한 꼴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손으로 더듬는 모습을 보던 고영은 씨가 어깨를 떨며 뭔가 깨달은 듯 몸을 일으켰다.

“아!”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물약, 과장님한테 받은 거 있잖아요…!”

“…….”

역시.

나한테 쓰려고 할 줄 알았다.

“빨리, 빨리….”

재생 물약.

내가 내 주머니로 몰래 빼돌린 것이다. 주머니를 뒤져서 이자헌 과장님께 받았던 그것을 찾으려는 고영은 씨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죄책감과 착잡함이 몸을 잠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돌려줄 생각은 없다.

쓰면 더 죄책감이 들었을 테니.

“…괜찮습니다. 총을, 비껴서 맞은 것 같아요.”

“뭐, 뭐라는….”

“그러니까… 신체 소실은, 쿨럭, 나중에… 카지노 가서 찾고.”

“…….”

“물약도 나중에 찾을 수 있다면, 찾아서 산양 씨가 마시는 게, 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어두워서 내 몰골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제 머리 총상은… 불발 같기도 하고, 일단… 상태가 괜찮아지고는 있습니다.”

아니다.

난 곧 죽을 거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쓰는 건 총체적으로 낭비다. 반드시 고영은 씨가 써야 했다.

“…열차만 타면 돼요. 열차만 타면 원래 모습을 돌아오니까! 그때 천천히 찾아서, 조치하면….”

“예.”

아마 그때까지 못 버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긍정했다. 고영은 씨는 초조한 모습이었으나 차마 소화전을 완전히 열어서 바깥 불빛으로 나를 보겠다는 판단은 내리지 못했다.

다만 나와 자신을 둘 다 안심시키려는 듯이 되뇌었을 뿐이다.

“걱정 마세요. 소화전은… 그, 중독되면, 이상하게, 다들 안 열어보더라고요….”

“그렇군요….”

나는 어지러움을 참으며 말을 가다듬었다.

영은 씨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그것도, 소문으로 들으신 겁니까?”

그리고… 본래 묻고 싶었기도 했기에.

“산양 씨,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이전처럼, 고영은 씨에게서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말은 불쑥 시작되었다.

“혹시 기억하세요? 저 의대 중퇴했다고 한 거요.”

“…….”

“사실 처음부터 약간 무리한 진학이긴 했어요. 저는 지방에 살았는데, 집이 그렇게 잘 살지는 않았거든요. 학비, 생활비랑, 기숙사 탈락해서 월세 내는 거… 다 부담이었는데.”

고영은 씨의 목소리는 두서없는 듯하면서도 담담히 들린다.

“학자금 대출 받긴 해도 알바랑 병행하면서 하는 것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본과에서는 진짜 거의 불가능하다 싶어서….”

“…….”

“과에서 일도 좀 생겼고.”

…….

“근데 또 하필 그때였어요. 부모님이랑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게.”

아.

“싸우고 연락이 아예 안 닿게 됐거든요.”

고영은 씨가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그때부터는 아예 지원도 끊겼고, 뭔가, 목적성도 희미해져서…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과했던 것 같아요. 좀… 번아웃도 왔고.”

나는 묵묵히 들었다.

“별거 없는 사정이죠? 근데….”

고영은 씨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웃기지만 그것 때문이에요.”

“…어떤 게, 말입니까?”

“이 회사에 입사한 거.”

“…….”

“가족들이랑 다시 연락할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그건 단순히 흥신소 같은 방법으로 사족의 소재지를 파악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다시 잘 지내고 싶은데… 시작부터 막히니까.”

“…….”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거면 이런 것도 빌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그리고 나는 안다.

고영은 씨는 ‘제대로’ 소원권을 쓸 줄 안다는 것을.

장허운 씨의 소원을 대리로 이루어줄 방법을 떠올렸으니, 자신의 소원 역시 마찬가지다.

“소원권을… 저한테 전달주셨을 때. 생각했죠.”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저는 소원이 이루어진 다른 세상으로 가고 싶진 않았어요. 갑자기 눈을 떠보니 제가 의대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의사가 된 채로 가족들과 같이 살고 있는 건 원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그래서.

“이런, 소원을 빌었어요.”

“가족들의 소식을 수집할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을 주세요.”

…!!

“그걸로 가족들과 연락이 닿으면, 상황을 파악하고 화해해 볼 생각이었거든요.”

자신에게 특정 능력을 달라는 소원.

‘너무 과하지도 않아.’

고영은 씨는, 어떻게 그걸 떠올렸나 싶을 만큼 철저히 자신 개인에게만 적용될 소원을 계산해 뽑아낸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이건… 무조건 통했어야 한다.’

하지만.

“소원을 빌고 눈을 뜨니까….”

…….

“여기서 눈을 떴어요.”

이 기이한 지하철역에서.

세광특별시의 지하에서.

“그리고 눈을 뜬 순간 깨달았어요. 어떤… 의문이 든다는 걸.”

“내가 어디서 살았더라?”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애초에 누가 자기를 지방 출신이라고 소개해요. 어떤 지역인지 알고 있죠. 근데 저는, 이상하게도 그런 의문도 가져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가족들하고도….”

침을 삼키는 소리.

“왜 연락이 끊겼는지 모르더라고요.”

섬뜩함.

“그냥, ‘돌이킬 수 없이 사이가 나빠져서 연락이 끊겼다’라는 느낌만 남아 있어요. 그리고 다시는 연락을 할 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체념과 거부감만….”

그 순간 깨달았다.

“대체 이게 뭘까요?”

고영은 씨는 세광특별시 출신이었던 것이다.

‘멸형급 초자연 재난’이 일어나 봉쇄되며, 서울에서 자취하던 이 동기 혼자 붕 뜨며 현실에 남겨졌다.

그리고 소원권은 ‘가족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되기 위한 환경도 조성해 준 것이다.

봉쇄안으로 밀어 넣어줌으로써.

그리고.

“저는 지역에 떠도는 소문을 인지할 수 있는 이상한 능력이 생겼어요.”

그리고 이 동기의 가족들은 전부….

“그런데, 그런데 가족들 소식은 들은 적이 없어요.”

…….

“당연할지도 모르죠. 여긴 괴담 속이잖아요. 그렇죠? 이런 괴담에서 어떻게 가족들 소식을 찾아요. 그, 그렇죠…?”

“…….”

“소원권이 안 통했거나. 호 이사가 사기를 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죠?”

나는 동의할 수 없더라도 그렇다고 대답해주고 싶었다.

그러려고 했다.

“…노루 씨?”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노루 씨!”

나는 소화전 벽에 몸을 늘어트렸다.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신경 계통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끝났나.’

이제 끝이 오고 있다.

그런데….

열차가 진입합니다.

“들리세요?”

고영은 씨가 어깨를 잡는 것 같다.

떨린다.

“열차! 열차 진입하고 있어요. 저거 타면 돼요. 이번에 오는 거는, 이번에 오는 게 제 쉘터예요. 거기까지만 가면 돼요, 제발….”

대답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에티켓을 지키며 안전하게 승차하시기 바랍니다.

빛이 쏟아진다. 소화전이 열린 것 같다.

나는 고영은 씨가 나를 질질 끌고 나가려는 것을 느꼈다.

“저 열차예요. G1572번 열차, 저것만 타면, 저것만….”

소화전 밖으로 나와서, 고영은 씨는 다시 나를 업으려는 것 같았으나….

나는, 최선을 다해 제지했다.

“…노루 씨?”

손에 힘이 없어서 사실 의미 없다. 그냥 간신히, 팔 위에 손을 얹은 정도다.

나는 입 모양으로 말하려 했다.

‘걱정 마세요.’

“무슨….”

‘다시 돌아올 겁니다.’

끝에서는, 입도 움직이지 않는다.

“노루 씨, 노루….”

열차가 들어오는 굉음과 함께.

나는 죽었다.

* * *

눈을 떴다.

“깨어나셨네요. 노루 님!”

호유원의 목소리.

“노루 님이 깨어나지 않는다고 다들 절 죽이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무서웠답니다. 노루 님의 개인 사정을 제가 대체 어떻게 안다고 그러는지….”

나를 내려다보는 역병의 눈동자.

“하지만 저도 궁금하네요.”

입이 호선을 그린다.

“구출할 분을 구출하셨지만, 그 외에도 세광특별시에 ‘미련’이 남진 않았나요?”

…….

“다시 들어갈 이유가, 생기셨나요?”

X발.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