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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85화


이정 책방의 안은 부드럽고 안온했다.

잘 관리되며 오랜 날을 보낸 것들이 주는, 친근하고 기분 좋은 느낌. 안락한 느낌 위로 긴 세월이 쌓인 것 특유의 신비하고 그윽한 인상이 있다.

여덟 평도 안 되는 작은 책방은 따스한 빛으로 환했으며, 새 책과 옛날 책이 불규칙한 듯 정리되어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내가 스파이로 잠입해 재난관리국에서 근무할 때도 방문한 적 없는, 관리국의 협력하는 신비한 장소에 이렇게 들어오게 되다니.

‘후우.’

심장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몸인데 괜히 두근거리지 않나 신경 쓰게 된다.

이곳의 정체를 떠올리며.

-재난관리국에서 ‘활자, 종이’와 관련된 영험한 물건을 구할 때 방문하는 곳.

정확히 말하자면, 일종의 중개소 같은 곳이다.

특별한 서적들이 모이는.

이정 책방에 불이 꺼져 있을 때는 진입을 삼가야 합니다.

초자연 존재가 방문하여 거래 중일 확률이 8할 이상으로 확인됐습니다.

점원으로 일했던 한 요원의 증언으로는, 책방의 입구부터 불이 꺼지기 시작하면 반드시 관계자용 카운터로 몸을 숨겨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나는 내 연기에 닿은 불이 깜박이다가 다시 켜진 채 유지되는 것을 보았다.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팀으로 움직일 때 드물게도 최 요원이 아니라 청동 요원이 먼저 앞으로 나서서 책방의 제일 안으로 걸어간다.

카운터식 책상.

안쪽으로는 보통 가게주인의 생활공간이 있는, 옛날식 구조다.

안쪽과 구분되게 주르륵 떨어지는 문발이 놓여 있고, 안쪽은 컴컴한 그림자로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선 청동 요원이 꾸벅 인사를 올린다.

그러자.

문발의 구슬 줄을 걷어내며, 그 속에서 하얀 샌님의 오른팔이 나왔다.

“…!”

이정 책방의 주인은 방문객과는 오로지 오른손을 통한 필담만으로 소통합니다.

점원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지 않다면, 문발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내려 시도하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

그림자 속에 잠긴 나머지 몸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하얀 팔과 그 위를 덮는 감색 한복의 배래, 그리고 소매 아래 손이 붓으로 글을 적는다.

동이가 왔군요. 잘 지냈나요?

“예. 사장님.”

익숙한 발걸음 소리도 들리고

새로운 손님의 소리도 들립니다.

어떤 서적을 찾고 계신지.

단정한 글씨를 쓴 하얀 손이 우리를 정중히 가리킨다.

씩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최 요원 옆.

검은 연기를 최대한 감추며 서 있는 뿔 달린 130666. 나를.

[흠. 제법 분위기를 낼 줄 아는군요. 물론 이 누추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건 저 정도겠지만 말입니다.]

응. 네가 그렇게 말할 것 같긴 했다….

“제 일행입니다. …포도 요원.”

후우.

나는 사전에 이야기를 나눈 대로 앞으로 나왔다.

이정 책방에서 모호한 요청을 할 시, 책방 주인의 해석에 차이가 생겨 전혀 다른 서적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필요한 서적을 가장 분명히 묘사할 수 있는 요원이 구매를 시도할 것을 권장합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그건 나다.

‘가자.’

나는 카운터의 볼펜을 들어 주인장의 단정한 필체 아래로 최대한 정중하고 빠르게 글을 적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내가 필요한 것.

혹시 도서관이나 서점 등, 지식의 서고를 안식처로 삼는 위대한 존재와 관련된 서적이 있습니까?

바로 찢어진 부적의 용지.

한빛도서관 도서 대출표를 대체할 만한 종이류를 찾고 있었다.

‘한빛도서관이 세광특별시 안에 있어서 재난관리국 관계자에게 직접 언급할 수 없다면, 이렇게 할 수는 있지.’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 이 안에 있군요.

‘…!’

됐다.

‘사자.’

그리고 다급히 추가 문구를 붙였다.

되도록 사람에게 위험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예 위험하지 않을 순 없더라도, 어떤 방비책을 세울 수 있는 것으로 부탁드립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 책방은 ‘요청자’를 기준으로 치명적인 피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을 소개해 주기에, 혹시라도 내게만 안전한 걸 소개해 줄 수도 있겠다는 심정으로 덧붙인 것이다.

그런데….

물론입니다.

사람이 요청하는데, 사람에게 무작정 위험한 서적을 소개할 수는 없지요.

아.

‘나를… 사람이라고 판정하는구나.’

적어도 이정 책방에서는 말이다.

나는 내가 들어올 때도 꺼지지 않았던 책방의 불빛을 떠올렸다.

…….

사람이라면 소리 내어서 책의 내용을 읽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서적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얀 손은 다시 문발 뒤 어둠으로 사라지더니.

몇 초간의 정적 후.

자, 여기 있습니다.

서적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

그건 양장본이었다.

깔끔하고 낡은 모양새인 그 책의 위에는 한자와 병기되어 한글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읽을 수 없는 두 글자와 함께.

<■■십진분류법>

[흐음. 도서관에서 책을 분류하는 방식을 기록해 놓은 도서로군요. 말하자면 책을 위한 책, 사서를 위한 사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맙소사.’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한 서적이 나왔다.

그 서적을 잡는 내 손은 형체 없는 살더미를 욱여넣은 검은 장갑인데도, 거기서부터 소름이 쭉 오르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제가 찾던 서적이 맞습니다. 대금은 어떻게 치르면 될까요?

제안해 주시겠습니까?

…그래.

여기서부터 중요하지.

‘가격.’

나는 카운터 너머 문발에서 나온 주인의 하얀 손을 보았다.

이정 책방은 서적의 가치에 알맞은 물건이나 노동력, 또는 금과 화폐를 다채롭게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 ‘누가 구매하느냐’에 달렸어.’

가령 소액의 화폐를 받는 경우는 완전한 민간인이거나 어린아이에 한정된 경우가 많았다.

‘요원들에게는 재난관리국 관련 물품이나, 아예 서적으로 물물교환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 우리는 비공식적으로 나와서 그렇게 지불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니 말이다.

…이런 건 어떨까.

혹시 멋진 리조트에서 꿈의 휴가를 보내실 생각은 없습니까?

네?

꽃과 일루미네이션, 스파와 VIP 서비스를 일품으로 제공하는 테마파크의 리조트입니다.

어메니티 기프트 세트도 포함된 스위트룸 숙박권으로, 카탈로그 형식으로 제작되었기에 서적으로 취급될 수도 있을 겁니다.

서적이라니.

……책방 주인은 대단히 당황한 것 같았으나, 결국 설득 끝에 스위트룸 7박 숙박권과 서적을 교환했다.

카탈로그를 잡아가는 하얀 손이 어쩐지 허둥지둥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뒤에서 최 요원이 어깨를 떨며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노루 씨가 너무 손해 보는 교환 같군요!]

아니,

‘오염된 걸 이렇게 이득 보는 방향으로 쓸 수 있는 점이 신기하지….’

속된 말로 대박 아닌가.

여러모로 플라워 골든 마스코트로서의 정체성으로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복잡미묘한 감정이 든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렇게 서적이 내 손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십진분류법>

“…잠시만 줘볼래?”

현무 1팀의 베테랑 요원은 내게서 책을 받아가서 이리저리 초자연적 방식으로 확인하고 점검했다.

지금부터 할 일에 적합한지.

그리고 마침내 확언을 내렸다.

“응. 써도 되겠어.”

“…….”

우리의 시선이, 청동 요원에게로 돌아간다.

이정 책방은 도서관이 아니다. 구입한 서적은 자신의 것으로 인정된다.

물론 가게 주인의 눈앞에서 서적을 의미 없이 훼손하거나 버리는 건 약간 불쾌해하며 그다지 반기지 않는 것 같았으나….

‘재활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게 바로 이곳이 재난관리국에서 자주 애용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서적의 경우에는, 아예 구매자를 위해서 이정 책방 자체적으로 ‘재단장’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낱장만을 뜯어서 캘린더로 만들 거나, 아예 책 표지만 뽑아내 그 서적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건.

“…사장님.”

가끔 점원이 맡기도 한다.

“혹시 제가 잠시 카운터에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빌려 쓰고 싶은 도구가 있습니다.”

당연히 괜찮습니다.

오랜만이지요.

편안히 앉아서 일을 보세요. 동이 군.

“…네. 오랜만입니다.”

고요히 나선 청동 요원, 아니, 이전 점원 류재관 씨는 익숙한 듯이 카운터의 칸막이를 올리고 그 안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문발을 걷어 올려,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

상서로운 빛이 반짝인다.

문발 안에서 흰 그림자가 일렁이며, 붓을 들어 올리는 남성의 실루엣이 언뜻 드러난다.

류재관의 형상.

류재관, 이 책방의 점원이었던 자는 능숙하게 수납장에서 문구를 꺼내더니, 서적을 단정히 펼치고 앞부분에서 종이 한 장을 분리해 냈다.

아마도 목차 페이지.

뒷장이 깨끗이 빈 그것을 분류해 낱장으로 꺼내 든다. 이윽고 팔랑이는 낱장을 바닥에 두고 그 위에 문진을 올리고.

자신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붓을 든다.

반짝.

흐려지는 불빛 사이로, 문발 안에서 흰 그림자로 보이는 형태.

붓으로 한 자, 한 자, 선을 긋는 류재관의 모습이 구슬 줄에 찰랑인다. 혼신의 힘을 다해 정성껏 형체를 갖추어가는 의미.

그리고….

툭.

붓을 거두어 다시 수납하는 순간.

문발 너머의 상서로운 빛이 사라진다.

“…….”

아늑한 공간으로 돌아온 낡은 책방 카운터로, 문발을 걷으며 청동 요원이 나왔다.

한 손에 책과 갓 완성된 부적 한 장을 들고.

“…완성됐습니다.”

빳빳한 종이 위에는, 護(도울 호)와 직선이 붉고 푸른색으로 정갈하고 어지럽게 완결되어 있었다.

벽사 부적.

“…!”

“최대한 비슷하게 작성했습니다만, 다소 불안정한 형태입니다.”

약간 창백해진 청동 요원이 관자놀이에서 땀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 조용히 부적을 상사에게 내밀었다.

-이정 책방에서 부적을 만들면, 장소 특성 때문에 제작자에게 돌아오는 대가성 부담이 확실히 덜할 겁니다. 사장님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요.

그리고 무사히 만들어낸 것이다.

“고생했다. 청동아. 아니, 동이야.”

“…….”

“포도야, 청동이가 말이야. 원래 여기서 점원 별명으로 ‘동이’라고 사장님이 부르다가 요원 명칭도 청동으로 고른 거다?”

청동 요원은 한숨을 쉬긴 했지만 부끄러워하거나 꺼림칙해하진 않았다.

대신 약간 머쓱하게 내게 말했을 뿐이다.

“…노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겹친 겁니다.”

옙.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어쨌든, 우리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남기고 책방을 나왔다.

부적을 손에 넣은 채.

딸랑.

“남은 건… 도깨비불이지.”

이 부적이 정말로 위력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빌어오는 절차만이 남았다.

“흐음….”

그때, 고민에 빠진 듯하던 최 요원의 눈이, 나를 보는 순간 반짝 빛났다.

짓궂게.

“포도야. 네 리조트 말이야.”

……?

“우리… 한탕만 더 할까?”

예?

* * *

며칠 후.

#26허-0167 상황 보고서 (초안)

문서 제목 : ‘플라워 골든 마스코트’ 개체의 재출현.

작성자 : 수막새 요원

사건 개요 : 금일 23시 15분경 ■■동 외곽에 위치한 현장요원용 임시 거처에서 일명 ‘플라워 골든 마스코트’의 재출현을 목격.

본사의 초자연 방호 구역에서 간소한 편지만을 남긴 채 사라졌던 해당 초자연 개체는 마주친 현무 3팀 요원들에게 ‘지난번 투숙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제공.

이후 해금 요원에게 자신이 이전번에 만난 도깨비불을 리조트로 초대하고 싶다며 정중히 제안.

안전을 보장하며, 원한다면 그들의 친구를 불러도 좋다고 말함.

현장에 동행 중이던 도깨비불이 기뻐하며 승낙. 당시 현장에 있던 현무 3팀 요원들이 ‘조금만 기다리자’라며 애원 및 유혹 등 제지를 시도했으나 통하지 않음.

이윽고 호출되어 급속히 도착한 도깨비불 다섯 개체가 짐을 싸는 시늉(영향 없음)을 하며 뭉치더니, ‘플라워 골든 마스코트’와 함께 사라짐.

특이 사항 :

-도깨비불 행방의 추정 위험 낮음.

-선물은 바리데기 공방에서 분석 중.

-이 긴급 상황의 결과에 따라, 보류된 ‘플라워 골든 마스코트’의 영물 등록이 재개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중.

“…라고 초안 쓰고 삭제한 걸 휴지통에서 싹 꺼내서 읽어봤지, 포도야!”

후우.

나는 리조트에서 끝내주는 여가를 즐기고 온 도깨비불들을 배웅하며 한숨을 참았다.

‘너희라도 즐겁다니 다행이다….’

해금 요원님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보는데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플라워 골든 리조트가 사람이 아닌 도깨비불들이 하루 이틀 머물기에는 (동선만 잘 짜놓는다면) 정말 괜찮은 휴양지였다는 점. 그리고….

‘완성됐다.’

우리의 손에 들린 부적이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청동 요원이 들고 있는, <■■십진목록법>의 목차를 찢어낸 종이를 보았다.

영험함이 깃들어 완성된 부적.

리조트에서 즐겁게 지내고 돌아온 다섯 도깨비불이 아낌없이 힘을 채워, 파랗고 빳빳하게 서 있었다.

제안 : 130666이 보관

“어허, 안 되지. 이런 건 짬순 보관이다?”

그럴 줄 알았다.

중간에 빼돌릴 거다.

나는 최 요원에게 태연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생각을 점검했다.

어디 보자.

‘다른 백일몽 팀원들은 대부분 지금 회사 관련 보고로 바쁘지.’

아무래도 내가 제안한 꿈결 수집기 관련 성과 때문에 사내에 상당한 파란이 일어났다는 모양이다.

심지어 호유원도 오늘은 자리에 없었다.

이전에 전달해 준 말이 있긴 하지만.

-연구팀의 곽제강 씨가 자꾸 노루 님과 연락하고 싶어서 안달이시던데… 연결해 드릴까요?

음.

그러고 보니 청 이사의 소재를 나한테 알린 이후로 괜히 곤경에 빠진 건 아닌가 신경 쓰이긴 했다.

아무리 미친 연구원이라도 말이다.

‘계속 연락이 닿는 게 이롭기도 하고.’

나는 고민하다가 메일 주소 하나를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그럼 우리끼리 그 도서관에 들어갈까?”

부정

아니.

그렇게 진입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끼리 또 가기엔 한빛도서관은 너무 변수가 많다.’

애초에 세광특별시 자체도 그렇다.

재난관리국 요원의 부적을 복구한다는 결정을 통보했을 때, 호유원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말이다.

‘애초에, 그 고등학교는 확실히 진입하는 방법이 있으니까.’

백일몽과 재난관리국 양측에서 모두 쓰고 있던 방법.

제안 : ‘검은 그늘 밑에서’ 불법 텍스트본 사용

“…!”

본래 사용하는 그것 말이다.

그리하여 바로 다가오는 그믐날.

우리는 베개 아래에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넣고 잠들어 괴담 속으로 진입했다.

그믐날 꿈속의 악몽. 세광공업고등학교로.

그리고 이 학교에 숨겨진 모든 이야기가 밝혀지는 데에는, 그날 밤 하루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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