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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90화


다음에 눈을 떴을 때, 나는 현실에 있었다.

“노루 님.”

이제 내 몸은 교복을 입은 학생은커녕 인체의 형상조차 보안팀 제복에 의한 실루엣에 불과했다.

…그러나 머릿속은 아직 세광공업고등학교에 있는 듯했다.

낮잠을 자는 학생들의 틈에, 햇살이 드는 복도 속에.

말할 수 없이 아릿한 여운에 잠긴 채로.

하지만 그 감상에 오래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뭘 보셨죠?”

내 침대의 바로 옆, 언제 온 건지 모르게 나를 들여다보고 있던 흉흉하도록 번뜩이는 눈이 보인다.

호유원.

잠들지 못하는 130666의 육체로 잠들기 위해, 나는 여우상담실에서 호유원에 의해 ‘정신을 잃는’ 금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세광공업고등학교에 가시지 않았나요? 노루 님?”

[맙소사, 이 작자는 밤새 노루 씨가 가져올 소식만 기다렸나 봅니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재방영 소식을 기다리는 시청자처럼!]

여느 때처럼 정중한 척 흉내 내는 호 이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을 하시려고 그렇게 들어가려고 하셨는지, 정말 궁금하답니다….”

…….

나는 담백한 진실을 제공했다.

학교 학생들을 초자연 재난으로부터 보호

호유원이 멈췄다.

결과 : 성공

‘검은 그늘 속에서’의 종결

공로자 : 재난관리국 요원들

“…….”

“그 요원들에 포도도 포함이고 말이지. 으차.”

옆 침대에서 최 요원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베개 밑에 넣어뒀던 고등학교 때 사진의 뒷면을 쓴웃음을 지으며 쓱 주머니에 넣은 그는 우리를 돌아본다.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가라앉힌 채로.

“호유원 씨. 그쪽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거든.”

“…….”

“혹시 관리국에 유감이 많은 게 세광특별시 때문이야? 관리국에서 사람들 구조 안 하고 닫아버려서.”

옆에서 몸을 일으키던 청동 요원의 얼굴이 굳는다.

“그쪽이 세광특별시에서 뭘 찾고 있다는 건, 사실 봉쇄 전에 거기 살았기 때문에 두고 온 게 있던 거 아닌가….”

“…….”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때.”

…사실은, 나도 비슷한 추리를 했었다.

힌트가 있었기에 좀 더 분명하게.

상담 교사(추정 : 호유원)의 당시 행적 확인

-초자연 재난관리국으로 학생의 구조를 요청

“…!”

상담 교사가 정말 본인이 맞다면.

호유원은 본래부터 재난관리국을 알고 있었으며, 상당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점 말이다.

보통 시민은 재난관리국의 존재도 모른다.

‘심지어 호유원이 괴담 속 무언가라 ‘보통 시민’도 아니지.’

더욱 사전에 우호적 관계를 쌓은 게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재난관리국에 구조를 요청할 정도의 관계라면.

질문 : 호유원의 과거 신분

혹시 이것 아닌가.

추론 :

초자연 재난관리국의 협력 영물

“…!!”

요원들의 눈이 즉각 호유원의 얼굴로 향한다. 그리고….

“…….”

“…….”

“아. 그럴지도 몰라요.”

호유원은 웃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이제는 애초부터 없던 일이 되었답니다. 세광특별시가 봉쇄되면서 그곳에 있는 모든 건 의미 없게 되었으니까요.”

“…….”

“그곳의 어떤 것도, 현실에서는 의미가 없죠.”

아니.

부정

“네?”

‘검은 그늘 속에서’ 괴담의 정체 :

세광특별시로 시민 구조를 위해 진입한 요원들의 학생 구조 요청

“……!”

그러니까, 결국 호유원의 구조 요청은 분명 응답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요원들이 보낸 구조 요청도 응답받았다.

종결의 결과 :

구조 요청의 전달 성공

학생들이 구조되기까지 안전히 보호

이제 학생들은 비록 세광특별시 안에 갇혀 있을지라도, 오염이나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낮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재난관리국의 요원들에 의해서.

그리고 구조만 하면….

“하지만 그 구조는 이루어지지 않겠죠.”

…….

“재난관리국에서 그렇게 결정했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짝.

박수하며 외치는 호유원의 얼굴은 찢어질 듯이 입을 웃고 있었다.

머리가 쭈뼛 설 듯한 위험 신호에, 나는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할 거야.”

“…네?”

“구조할 거라고.”

“…….”

툭 던지듯이 말한 최 요원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우린 이미 알았으니까 별수 없어. 해야지. 안 그래, 청동아?”

“…….”

“애들 거기 그냥 둘 수 없잖아.”

청동 요원은 한숨만 쉬었다.

암묵적 동의였다.

“…….”

호유원은 ‘집단에 소속된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비합리적이다’라는 내 질문에, 본래 감정이란 비합리적인 거라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그 감정 자체가 움직일 만한, 이번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 탐사 결과 :

세광공업고등학교의 참사를 막기 위하여 투신해 사망 및 실종된 요원 다수

“그런가요.”

긍정

“봉쇄 때문에, 그 요원들도 없던 일로 취급받겠네요.”

…….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네?”

“세광특별시의 멸형급 초자연 재난을 막을 다른 방법 말입니다. …하루 만에 수십만 명의 추정 사망자가 나온 괴담을, 대처할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청동 요원!

순간 경악했으나 그다음으로 알아차렸다.

“…그랬다면, ‘인지 불가’ 같은 극단적인 방식을 사용할 리가 없었을 겁니다.”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정말로 진심으로 고민하던 주제라는 것을.

“……관리국은 완벽한 기관이 아닙니다. 당시에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 모두에게 완전무결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호유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

“재난관리국에서 참 합리적이고 옳은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말하고 싶으신가 봐요….”

“……최소한, 그 판단에는 사익이 아니라 더 많은 시민을 살리려는 목적이 있었을 거란 뜻입니다.”

청동 요원의 눈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당신은….”

“네?”

“청동아.”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 하실지 꼭, 듣고 싶네요.”

“…….”

“그래서, ‘이 호유원은?’”

청동 요원의 눈이 나를 보더니, 이를 악문다.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이용하고 싶은 직원은 초자연 재난의 위험에 내몰고 있지 않습니까. 정확한 정보도 주지 않고 유인하면서.”

그리고 시선이 최 요원을 향한다.

“당신의 원한과 아무 상관 없는 요원을 살해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살해 시도가 처음이 아닐 것이라 추측합니다만.”

“…….”

“당신은, 스스로 행동이 원한이라는 명분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습니까?”

“네? 왜 그래야 할까요?”

“…!”

“세상에 정당한 행동 같은 건 없답니다. 그냥 선택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알고, 감당해야 하는 것 같더라고요.”

호유원이 빙긋 웃는다.

“마찬가지로 초자연 재난관리국이 세광특별시를 어떻게 취급했는가. 그 선택에도 대가가 따르는 거죠.”

“…….”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면, 선별된 적은 사람들이 가지는 원한을 감당해야 하는 게 너무 당연한 걸요.”

하지만 호유원의 눈에서, 재난관리국의 요원을 볼 때마다 나타나던 이전 같은 기이한 번들거림은 많이 사라진 채였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을 마쳤다.

“두 분에겐 감사하네요. 저와 약속하셨으니까요. 세광특별시에서 학생들을 구해주기로.”

호유원이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리고 제가 찾는 것도 부디 잘 부탁드려요. 노루 님.”

…후우.

[이런, 막장까지 추락해서 서로 주먹다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제법 흥미로웠지만 여기까지로군요.]

[그럼 이제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아가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흥미로운 이야기?

[당신이 저 공무원에게 맡겼던 작은 물건 말입니다.]

아, 그거.

안 그래도 생각은 했다.

호유원은 자리를 떴고 청동 요원은 소지품을 점검하는 사이, 나는 최 요원에게 접근해 요청했다.

요청 : 물건 확인

“…아.”

복잡한 표정이던 최 요원이 피식 웃더니, 자신의 품에서 물건을 꺼내 든다…….

“이거 말이지?”

꿈결 수집기.

바로 내가 가지고 있던 ‘굿즈 박스’에서 나온 정예팀용 수집기였다.

세광특별시에서는 괜찮았지만, 또 130666 상태로 어떤 판정이 나올지 몰라 확실한 사람에게 맡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는….

“…!!”

홀로그램 같은 이상한 광이 돈다.

황금빛을 넘어선 액체의 밝기는 거의 소원권에 필적할 만큼 대단한 빛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

엔딩에 스코어는 표기되지 않았으나, 그 결과는 확실했다.

“어때.”

추정 : 암흑(A) ~ 심연(S)

최고 등급 필적

“…!!”

내가 입사한 후로 본 것 중에 가장 고농도의 꿈결이었다.

‘미쳤다.’

그리고 이런 게 나온 이유는… 아무래도 세광공업고등학교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세광특별시의 멸형급 재난.

‘세광고에 ‘침입’한 삿된 것이… 세광특별시에 재난의 날을 불러일으킨 원흉의 일부였던 건가.’

최소한 연관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네.”

최 요원이 나를 본다.

“필요한 거지? 자.”

그리고 내게 자신이 가진 꿈결 용액을 기꺼이 넘겨주었다.

척 보기에도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을 텐데도.

130666의 상태 : 고마움

“뭘. 포도야 고맙긴….”

그리고 음산하게 속삭였다.

“너 이제 그걸로 뭐 알아내거나 나오면 무조건 반띵이다. 알지? 운명 공동체야. 어?”

앗.

“하하, 에이. 농담 같지? 진담이야.”

예….

“그리고 이제 중요한 일이 남았네.”

최 요원이 내 등을 두드리던 손을 뗐다.

“…팀장님 뵈러 가야지. 포도야.”

…….

나는 잠시 보안팀 제복 속 내 상태를 내려다보았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 *

푸른희망병원은 여전히 안락하고 고요한 장소였다.

박홍림 팀장님의 손녀딸은 자리에 없었으나, 자주 방문하는 듯 보호자 자리의 생활감은 여전했다.

“예지는 학교 갔나 보네. 자.”

우리는 침대 주변에 가만히 섰다.

…문득, 창문에서 바람이 밀려오며 커튼이 휘날리는 장면을 보고 있을 때.

[포도구나.]

침대에 앉은 따스한 존재가 내 손을 잡아주며 앉힌다.

“…어르신.”

나는 어느새 사람처럼 말할 수 있었다.

도깨비불의 강력한 힘은 잠들 수 없는 나를, 호유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꿈속으로 인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 존재의 다른 호칭도 알고 있었다.

“홍화 팀장님.”

…….

[청동이가 알려줬니? 그리운 별명을 부르는구나.]

역시.

세광공업고등학교를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그 요원.

찢어진 부적을 쥐고 있던 부서진 상반신은, 이 박홍림 팀장, 요원명 홍화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을 해야만 했다.

“팀장님. …세광공업고등학교에서 팀장님이 해주신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기억한단다.]

“……!!”

[하지만 지금 네가 말함으로써 기억하게 된 것이지. 평소에는 기억해 낼 수 없단다. 현실이 아니라 꿈속인데도 말이야.]

[인지에서 지워진다는 건 그런 의미란다. 지독한 의식이지.]

…….

[하지만 포도가 그 말을 하는 걸 보면, 결국 우리의 방법은 성공한 모양이구나. 잠든 아이들을 찾았니?]

“…네.”

[다행이다. 다행이야!]

기쁨에 찬 그 말을 들으며 알았다.

‘모르셔.’

이 박홍림 팀장님은 다 기억하는 게 아니었다.

모른다.

세광특별시에 남은 자신의 상반신이 겪은 일을.

학생들이 그믐날 악몽 속에 나오는 공포 게임 속에서 계속 죽고, 자신과 요원들, 선생님들은 액막이로 오염되어 괴물과 일체되었던 그 모든 것들을.

다행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쩐지 가슴이 아릿하다.

그 모든 일을 경험했던 홍화 요원과 청룡팀 요원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

나는 기억했다.

원래 내가 <어둠탐사기록>에서 읽었던 ‘검은 그늘 속에서’ 괴담이 어떻게 종결되었는지를.

배드엔딩 05번(학교의 종말)을 확인.

이 엔딩은, ‘선생님’이 끔찍한 산제물 졸업식을 전부 진행하는 것을 끝까지 목격했을 때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상 현상 확인 : 강당이 녹아내리며 학생들을 삼키는 기이한 모양. 선생님에게 튀는 글리치(오류). 나타나선 안 되는 ■■ 확인.

그리고.

튕김 현상.

다음 그믐밤부터 해당 초자연 재난에 진입하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

6개월 동안 지속됨. 종결 처리.

…나는 그저 오류가 너무 많이 발생해서, 오류가 학생인 척 하도 엔딩을 보다 보니 결국 공포 게임이 망가진 줄 알았다.

그게 이 괴담의 숨겨진 진실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공포 게임에 잠식된 학교.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만일 <어둠탐사기록>에 적힌 대로 종결되었다면, 그만큼 처절한 비극이 없었을 것이다.

학생과 요원들이 모조리 초자연 현상에 잡아먹혔다는 것이니까.

그 어떤 진실도 드러나지 않은 채로.

눈앞의 요원이 했던 그 모든 노력과 희생도 모두 물거품이 된 채로.

그 모든 게 가슴을 묵직하고 서늘하게 만들었으나, 나는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손이 차가워졌구나. 포도야.]

[아무래도 지금은 학생들을 구조하기 어려운 상태인 모양이야.]

“…….”

[그래. 관리국도 봉쇄 의식을 풀면 벌어질 일을 감당할 수 없겠지. 하지만… 세상에는 많은 사연이 있고, 또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게 세상 이치 아니겠니.]

내 머리를 쓰다듬는 어르신의 손길이 느껴진다.

[참, 고생했어. 포도가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구나. 길을 잘못 들지 않으려고, 옳은 길로 돌아오려고 말이야.]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네가 스스로 고민하고 의심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포도 네가 사인검을 썼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말이야.]

“……!”

[세상에. 이제 도깨비 시련을 받아도 되겠구나.]

예?

[농이고. …자, 깨어나면 도움이 될 만한 친구가 있을 게다.]

[기운을 내렴.]

다음 순간.

나는 정신을 차렸다.

다시 검은 연기를 뿜는 기이한 존재, 130666으로서 병실에 서 있는 나로.

같이 온 최 요원과 청동 요원이, 창가와 침대 근처에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병실에 있는 요원들은 그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희….”

“해금 누님.”

해금 요원이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찬가지의 목적으로 방문한 듯 다급히 움직인 기색이 역력한 차림새였으나, 우리를 들여다보는 눈은 노골적으로 가늘어졌다.

“네가 포도지?”

그….

“됐다. 아주 신체 반응으로 말을 하고 있어.”

세상에.

“누님. 고명이랑 다른 애들은….”

“못 깨어나고 있지. …평화롭게, 잠든 채로.”

“…….”

도저히 모르겠다.

그나마 ‘선생님’에게 죽지 않아 존재가 잊히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불러야 할지.

“덕분에 곧 휴직자들한테 연락 돌리게 생겼군. 입원한 녀석들도 퇴원하자마자 인력 충원으로 와야겠고.”

해금 요원은 익숙한 듯 침착한 표정이었으나, 착잡한 기색이 은연중에 아주 살짝 묻어났다.

그리고 예리한 눈으로 우리를 본다.

“그 게임 같은 크레딧 다 봤다. …걔들, 대체 어디에 잠든 거지?”

“…….”

“너희는 아는 눈치던데.”

그 ‘특별시’에 대해.

“우리가 할 이야기가 많겠어.”

새로운 탐사 인원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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