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96화
세광특별시에 다시 진입할 인원은 매우 쉽게 꾸려졌다.
-저 가고 싶어여!
프로젝트 관련 보고가 끝난 백일몽 사람들은 모두 세광특별시에 다시 진입할 준비가 됐다고 이야기해 줬기 때문이다.
그중에 백사헌이 있다는 게 의외지만.
-포인트 더 준다면서요.
죽을 염려 없는 고등급 포인트 적립이 매력적이긴 하지.
-우리도 그 시시콜콜한 프로젝트 보고들 다 끝났다. 같이 갈 수 있어.
-예.
이자헌 과장님과 은하제 대리님도 단언했다. 다만….
-…민성이는, 좀 더 회복될 때까지 두자.
-……네.
…우리야 민성 주임님이 세광특별시에서 멀쩡한 모습을 보는 것이 물론 기쁠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현실에서 자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상태로 돌아가기 두려울 테니까.
경비반장님도 한빛도서관 구간을 지난 다음에 들어오시는 게 심정적으로 나을 것 같았고.
마지막으로….
‘요원님들은… 한동안은 근무하시느라 어렵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포도야~ 잠깐만. 세광공업고등학교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야.
휴일 반나절이라도 반드시 참여하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전달받았다….
-…아. 바로 들어간다고? 음.
하지만 최 요원에게는 다른 일정이 생긴 듯했다.
짐작하기론 이번에 세광공업고등학교 사태로 요원 몇 분이 완전히 잠든 일 때문인 듯하다….
‘해금 요원님처럼 휴직자분들을 만나러 다녀야 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본인의 의사는 확고했다.
-재관이가 갈 거야. 알았지? 잘 부탁한다, 재관아.
-예?
그리하여, 이 자리에 있는 인원은 다음과 같다.
이자헌 과장.
은하제 대리.
이성해 대리.
백사헌 주임.
청동 요원.
그리고 나.
‘여섯 명인가.’
딱, 맨 처음 세광특별시에 진입했을 때와 동일한 인원 숫자이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열차를 기다리기에 앞서 잠시 한빛도서관에 진입해 세광공업고등학교의 상태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없어.”
한빛도서관이 있던 자리에는 정상적으로 지하철역이 이어지고 있었다.
광원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상태인.
“…….”
“이건 또 뭐냐. 뭐 때문에….”
휴관
-코너 재정비 중-
코너 재정비.
‘설마….’
세광공업고등학교가 비공개 코너가 되면서 재정비에 들어간 건가.
나는 반사적으로 청동 요원을 돌아보았다.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도서관이 운영을 중단하며, 그 자리에 본래 역사가 모습을 드러낸 듯합니다.”
“흐음.”
“그럼 일단 확인해 볼까여?”
모두 동의했다.
그리하여, 일단 손전등으로 앞을 비추어보았다.
“…….”
“진짜 역 시설이네여.”
그곳에는 기이한 구조물이나 물품 같은 건 없었다.
정말로, 불 꺼진 지하철역 시설이다. 타일로 이루어진 벽과 두꺼운 기둥, 회색 바닥, 안전 표지판과 개집표기.
“…뭐, 특별히 위험 신호도 없는데.”
안대를 들어 올린 백사헌이 뚱하게 중얼거렸다.
“이거 꼭… 어둠이 종결된 상태 같은걸.”
대리님의 말대로였다.
손전등을 비춰도 아무런 반응 없이, 역사 내는 매우 조용했다.
“…그럼 천천히 가보겠습니다.”
“예.”
발소리도 없이 천천히, 그 안으로 진입했다.
찰랑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런, 습기가 찬 모양입니다. 이곳의 담당자가 공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아니면… 더는 관리하지 못할 상황이거나 말이다.
우리가 안으로 진입하며 역사 내부의 모습을 확인할수록 깨닫게 된다.
“……!”
폐허다.
‘몇 년은 방치됐어.’
바닥과 모서리마다 여기저기 녹슬고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으며, 벽면의 타일과 거울은 부서지거나 금이 가 있다.
그리고 쓰레기들.
사람들이 이 안에서 한동안 거주했던 것 같은 흔적들이다. 캔, 담요, 비닐, 다 쓴 휴지….
“…피난 온 사람들이 썼던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역사는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초자연적 면모가 사라지고, 재난 이후 방치된 역사의 모습이 드러난 것처럼.
‘…다른 역들도 거길 차지한 괴담들이 종결되면 이런 모습이 되는 건가?’
확신할 순 없었다. 일단 한빛도서관은 종결된 것도 아니고 휴관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저, 이 세광특별시에서 괴담이 아닌 날 것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저기 봐.”
가장 가까운 1번 출구를 확인했다.
셔터가 내려와 있었다.
그리고 그 셔터는….
“…읍.”
말라붙은 피와 오물, 그리고 온갖 잡기와 무거운 것들로 막혀 있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바깥을 막았던 흔적.
‘세광역에서도 봤던 흔적이다.’
선로 반대편 역의 모습 말이다.
“치우면 밖으로 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하지 마십시오.”
“예옙. 조장님.”
그렇게 우리는 곳곳을 둘러보았다.
편의점은 이미 다 털려 있었고, 몇몇 남겨진 신선 제품들은 불쾌한 냄새를 내며 썩어 있었다.
역사 미관용 전시물에는 먼지가 내려앉아 시커멓다.
모든 기기는 이미 빛이 나갔고, 벌레도 쥐도 하나 없이 무겁게 죽은 공간.
“…….”
“저기, 4번 출구예여.”
딱 하나 이질감이 드는 건 이것뿐이었다.
세광공고 졸업식
4번 출구로! →
승강장에 붙어 있던 안내문의 출구.
본래 세광공업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것 같던 4번 출구는….
“아.”
나무판으로 막혀 있었다.
마치 그곳만 격리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이거… 꼭 그 도서관 책장 뒷면 같지 않냐.”
“…네.”
더 놀라운 점은, 그 나무판은 색색의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1학년 7반 화이팅
졸릴 땐 일단 자고 보는 친구들임
원래 클래식 싫어하는데 이건 듣기 좋다 마음도 편해지고
꿀잠 중
일어나면 떡튀순 조지러 가야징
학생들이 남긴 듯한 메모들.
장난스러운 말들은 마치 졸업앨범 문구나 롤링페이퍼 같다.
들여다보던 청동 요원의 눈이 깔끔한 메모지 하나에서 멈췄다.
다행이다 다들 무사해서
“…고명 요원의 필체입니다.”
“…….”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리고 나도 한구석에서 눈이 멈췄다.
일어나서 보자
A4용지를 찢어서 테이프로 붙여놓은 메모. 거기엔 내가 알던 어떤 필체가 있었다.
양호실에서 교복을 빌리며 보았던 필체가.
“…….”
“노루야. 포스트잇, 수거할까?”
“저는, 혹시 모르니 두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
우리는 홀로 색색으로 깨끗한 4번 출구를 뒤로하고 다시 탐색을 해나갔다.
“…쥐새끼 한 마리 없는데.”
“오. 꼭 귀신 나올 것 같네여.”
하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고, 손전등 불빛은 결국 도로 우리가 출발했던 승강장 계단으로 향했다.
“마지막은 저기인가.”
그곳에 있던 표지.
역무실
역무실의 불투명한 강화유리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물론 지금 일행에는 자물쇠가 아니라 문짝도 그대로 뜯어낼 수 있는 도마뱀이 있다.
“끊겠습니다.”
투둑.
이자헌 과장이 자물쇠 끈을 반으로 뜯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역무실의 문이 개방되는 순간….
“…!”
휙, 몸을 뒤로 빼낸 은하제 대리가 속삭였다.
“사람이 있어.”
정확히는.
사람의 시체였다.
어두운 역무실 안.
역무원의 시체가 책상 위에 그대로 굳어 있었다.
몸이 튀어 오를 뻔했다.
[책상 유리가 온통 피범벅이로군요. 아무래도 이 꼴을 만든 자는 청소할 마음이 없었나 봅니다!]
하.
‘미치겠네….’
나는 몸을 타고 오르는 소름을 참으며 역무실에 들어가 시체에 가까이 접근했다.
‘왜 여기만 죽은 사람이 있는 거지?’
역무실은 바깥보다 깨끗하고 온전해서 더욱 시체의 기괴함을 살린다.
…손전등 불빛에 그 모습이 드러난 시체의 엎어진 몸은, 밑부분이 말라붙은 핏자국에 완전히 덮여 있었다. 아무래도 목에서 엄청난 출혈이 있던 듯했다.
죽은 자의 왼손에 들린 건… 거울 조각.
‘…스스로 목을 그은 건가.’
대체 왜?
알아볼 방법은 하나뿐이긴 했다.
‘하.’
나는 이를 악물고 시체에 손을 뻗어 잡았다.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청동 요원과 함께 뒤로 뒤집었다.
피범벅으로 눈도 감지 못한 시체가 천장을 본다.
‘윽.’
“아무래도 목을 그은 게 맞나 본데여. 흠… 근데 이상하네요. 어떻게 자물쇠가 그대로 온전히 남아 있었을까 모르겠구요!”
“…….”
맞는 말이다.
‘여기에 대피해 온 사람들이 굳이 자물쇠 달린 역무실은 무사히 놔뒀다고?’
그리고 이 사람은 굳이 자물쇠까지 달아놓고 스스로 목을 그었다니.
‘이상하다.’
그리고 이 세계관에서 이상한 것은 보통 괴담과 관련되어 있다.
“…….”
나는 시체의 피범벅인 상반신, 특히 거울 조각으로 그은 목을 보았다.
‘…피로 가려진 부분에 무언가 있을지도.’
하, 진짜.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체는 썩기보다는 거의 말라비틀어진 느낌으로 구더기 같은 것은 꼬이지 않았다.
그리고….
“…!”
무언가 있다.
‘선.’
피에 묻지 않은 선 한 줄기가 드러났다.
이건….
‘끈?’
“상처를 확인하려는 겁니까?”
“아뇨. 저기 뭔가 있습니다. …끈 같습니다.”
“잠시.”
청동 요원이 무언가를 읊조리며 혹시 모를 ‘부정함’을 방지하는 듯하더니, 목 상처 근처에 있던 선을 잡아 들었다.
눌어붙은 핏가루가 떨어지며 선을 따라 무언가 떨어진다.
가슴팍에 걸려 있던 것.
신분증
성명 : ■■■
세광교통공사
“…!”
역무원 신분증이었다.
중앙의 이름은 피에 눌어붙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확실하다.
‘쓸모가 있을지도 몰라.’
직원 신분증은 보통 통행증이다.
우리는 계속 역을 다니는데, 역 직원의 신분증이라면 기믹처럼 쓰일 확률이 높다.
“…꺼내겠습니다.”
“예.”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신분증을 시체의 몸에서 빼냈다.
그 과정에서 신분증에 말라붙은 피가 툭, 하고 허공으로 떨어졌다….
신분증
성명 : ■■운
세광교통공사
“…….”
잠깐.
나는 신분증을 들어서 성명 부분을 긁어냈다. 휴지를 덧댄 채로 검붉은 핏가루가 후두둑 떨어지고.
훼손되지 않은 이름 한 글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신분증
성명 : ■허운
세광교통공사
……내 동기의 이름이.
그리고….
유쾌연구소 직원의 이름이.
“…!!”
잠깐만.
[오, 예상치 못한 만남이라!]
“포도 요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나는 시체가 누워 있던 책상을 뒤졌다. 평범한 역사 내 사무실처럼 보였으며, 나오는 사무용품과 문서들도 지하철역에 있을 법한 것들뿐이다.
하지만 딱 하나.
“…….”
“지도?”
책상 유리 아래에 넣어둔 그림이었다. 역사 전체를 보여주는 입체 설계도.
그 설계도에 한 위치에 빨간색으로 도장 같은 표시가 올라가 있었다.
토끼 인형의 머리.
장난감.
‘…유쾌연구소.’
나는 머리를 들어 올렸다.
“이거, 아는 표식 같습니다.”
“탈출 힌트야?”
“…어쩌면요.”
그리고 설계도에서 해당 표시가 있는 곳을 확인했다.
“음… 우리가 깨어났던 곳의 반대편 승강장이네여.”
후우.
“위험할지도 모르니, 일단은 저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앞장서라.”
“…….”
넵.
나는 결국 역무실을 한 번 더 둘러본 후,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나셨다.
손에는 신분증을 든 채로.
그런데….
“잠깐만.”
“예?”
역무실에서 나가기 직전, 나는 백사헌의 어깨를 잡았다.
“뭘 챙겼어?”
“…!”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시체에 몰려들었을 때, 백사헌은 혼자 역무실의 소파 옆으로 갔다. 그리고….
“주머니에 뭐가 들어 있네.”
“……왜요. 그쪽도 신분증 챙겼잖습니까.”
“그래. 그래서 사람들한테 보여줬잖아.”
“…….”
“뭘 챙겼어?”
백사헌은 눈을 굴리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둥그런 파우치.
고양이 모양 지갑이었다.
“…분실물 함에 있던 거라고요.”
아.
고양이 지갑 잃어버린 분은 역무실로
승강장 벽에 붙어 있던 분실물 쪽지.
이 자식은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역무실을 보자마자 찾으려고 든 것이다.
‘아니.’
그럼 공유를 좀 하라고.
‘그거 가져가서 이상현상 생기면 대처해야 할 거 아니냐고.’
물론 남들 주기 싫어서 안 그런 거겠지만.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백사헌을 보았는데, 순간 녀석이 움츠리듯 몸을 뺐다.
‘……?’
이거 아무리 봐도 나한테 처맞을 거라고 생각하는 반응인데.
‘아.’
맞다. 이 자식 내가 물리 퇴마하는 거 봤었지.
흠.
“챙기는 건 자유지. 그런데 카지노 때처럼 되면…….”
“…….”
“정말 힘들고 슬플 것 같아. 이해하지?”
툭툭.
나는 다가가서, 상대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앞으로는 뭘 챙기든 숨기지는 마.”
“…….”
백사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도 요원. 그렇게 말해서 들을 종자가 아닙니다.”
“아니에요. 염소도 이해해 줄 거예요. 저희 동기거든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염소?”
“…그렇죠!”
백사헌이 억지로 웃는다.
고맙습니다. 파충류 외계인들….
‘이렇게 쉽게 대화가 통하다니.’
이제 좋은 말로 대화하면서도 압박할 수 있겠다.
“감사합니다.”
“? 예.”
나는 이자헌 과장에게 한번 인사를 한 후, 역무실을 다시 나왔다.
…넘실거리던 긴장감이, 덕분에 좀 가신 것 같다.
“가보겠습니다.”
음침한 폐 역사를 다시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향했다.
맞은편 승강장으로 향하기 위해.
승강장으로 내려오자, 다시 정상적으로 운영 중인 듯 밝은 전등빛이 차갑게 선로와 통로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선로 맞은편으로 우리가 깨어났던 승강장이 보인다.
“……느낌은 비슷한데.”
“앗. 그런데 이쪽은 열차가 안 오나봐여.”
그 말대로였다.
간간이 열차가 진입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반대편 승강장과 달리, 이쪽은 이상할 정도의 정적만 흘렀다.
‘세광역에서는 아예 계단 위가 무너져 있었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왠지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우리는 계속 걸었다.
지도에 마크가 있던 곳을 찾아서.
그리고 곧 도착했다.
■■■
문패가 지워진 철문.
“…지하철역의 통신실이나 기계실 같습니다만.”
“아, 맞다. 승강장에서 막 이런 문 열려 있구 작업하시는 직원분들이 왔다갔다 하는 거 본 것 같아여.”
그렇다면 이걸로 열리겠지.
나는 습득한 역 직원의 신분증을 철문 옆의 번호키에 들이댔다. 그러자….
삐리릭.
잠금이 해제되었다.
“…….”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잡고, 열었다.
탄내가 코끝을 찔렀다.
“……!!”
“뭐야.”
새카맣게 탄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철문 너머는 거의 바로 벽이었다.
하지만 살짝 들어가서 옆을 보면….
“…복도?”
그렇다.
다 타버린 벽과 바닥에 검은 물이 고여 있었고, 양옆으로 사무실들이 보인다. 그을음이 묻어 보이지 않는 문패와 함께.
“뭐냐 이건.”
하지만 나는 이 구조가 몹시 익숙했다.
‘…유쾌연구소.’
백일몽 지하 별관에 있던 괴담에 투영된 유쾌연구소.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여기였어…!’
세광특별시의 지하철 역사.
유쾌연구소는 본래 여기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