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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98화


열차 안에 사람들이 있다.

고영은 씨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

♪♪♪♪♪♪♪♪♪♪♪♪♪

하지만 감상에 빠질 시간은 없었다!

“이, 일단 타세요!”

“예!”

영은 씨의 다급한 말에 나와 일행들은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었….

“안 돼!”

영은 씨 뒤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내 어깨를 찌르듯 밀쳤다.

대걸레 막대 부분에 덕테이프를 감아둔 것.

“…!”

그리고 온갖 것들이 쇄도하듯 튀어나와 나를 밀치기 시작한다.

“내려, 내려!”

“못 타게 해! 누군 줄 알고 태워!”

“아니…!”

열차 안 사람들이 각종 생활용품에서 만들어낸 막대로 우리 일행을 문밖으로 밀어내듯 찌르고 있다.

그 얼굴에서 보이는 거부감.

외부인에 대한 반감.

두려움.

“타지 마세요!”

“자, 잠시만요. 아는 사람들이에요! 위험한 상황 안 만들….”

“X발 그런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고영은 씨에게 패딩을 입은 중년이 윽박지른다.

“야! 그럼 그냥 니가 내리던가!”

“그래! 내려!”

“아저씨, 진정하세요!”

‘X발!’

아주 고영은 씨까지 쫓아낼 기세다.

‘과열되고 있다…!’

여기서 힘으로 밀어서 억지로 들어가도 영은 씨에게 악영향이 가는 건 똑같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협상할 만한 것.’

세광특별시에 몇 년은 갇혀 있었을 사람들이다.

직접적이고, 이 사람들에게 확실히 와닿을 것.

“식량을 나누겠습니다!”

“…!”

“먹을 만한 게 있어요! 포장된 음식들입니다!”

나는 다급히 주머니에서 꺼내는 척하면서 전투식량 하나를 꺼내 들어 손에 잡고 흔들었다.

“…!”

사람들의 얼굴에 탐욕 같은 허기짐이 스친다.

“여분이 더 있습니다.”

“일단 넘겨!”

“태워주시면 드리겠습니다!”

나는 음식을 뒤로 뺐다.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우왕좌왕하며 얼굴을 보고….

“얼른요. 문 닫힙니다!”

그리고.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던 열차 속 사람들이 슬쩍 물러나는 순간, 우리는 문 안으로 재빨리 발을 디뎠다.

“……후우.”

탔다.

지이이잉…

열차가 출발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유리된 것처럼, 시민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대치하듯 서 있다.

“…….”

“…….”

‘…스무 명 정도인가.’

괴담에서 민간인 다수를 만나는 경험.

이 상황에 그나마 익숙할 요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세광특별시 시민이십니까?”

“뭐 그쪽은 아닌 것처럼 질문을….”

우물거리던 패딩을 입은 중년 남성이 갑자기 그 맥락을 깨닫는다.

“아니라고? 다른 곳에서 들어온 거야? 너희 바깥에서 온 거지!”

“……!”

“어어, 최근에! 뚫린 곳이 있는 거야, 거기로 들어온 거지??”

“그래! 아니면 그렇게 멀쩡한 몰골일 수가 없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든다.

“나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나갈 방법이 있다고?”

“들어왔대! 이 사람들 여기서 나가는 법 아는 것 같….”

마치 가로등 불빛에 몰려드는 하루살이들처럼 광기에 가까운 반응이다.

하지만 청동 요원은 곧이곧대로 ‘없다’라고 말할 사람이다. 안 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저희는 며칠 전에 정신을 차려보니 카지노역 승강장에서 깨어났습니다. …혹시 비슷한 증상으로 여기서 깨어나신 분 계십니까?”

“…….”

“이 특별시에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어휴.”

우리와 대치하던 패딩을 입은 중년이 혀를 차며 눈빛이 변한다.

그리고 고영은 씨와 우리를 번갈아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다.

“쟤랑 똑같네. 별거 없어. 쯧쯔.”

“…….”

“그래도 뭐, 쓸 만한 거 좀 들고 있나 보자.”

광기는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대신 눈빛이 바뀌었다.

탐욕과 욕심.

좋은 물자를 향한 원초적 욕구.

“태워줬으니까 일단 식량 가지고 있는 건 다 보여줘 봐.”

“거절합니다.”

과장님!

“뭐, 뭐?”

“당신들에겐 대중교통을 사유화하여 승객에게 요금을 징수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게….”

패딩 중년은 이자헌 과장의 가슴팍을 대걸레 막대로 툭툭 치려 들었으나, 그대로 팔이 잡혔다.

“억!”

퉁!

막대가 바닥을 구른다. 그리고 중년인은 미친 듯이 팔을 빼내려 발악했으나, 아무리 발악을 해도 이자헌 과장은 태연하게 미동도 없다.

“그만두십시오.”

“어? 어어?”

“으아아악!”

전동차 내부에 소란이 번진다. 몇몇 사람들이 뒤로 뛰어가며 누군가를 불러오려고 한다. 젠장!

“과장님. 괜찮습니다. 상황이 특수하니 식량을 나누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어이쿠, 그래. 우리 과장님이 워낙 힘이 강하셔가지고. 그냥 잡은 건데 분위기가 이렇게 됐네. 놓아주고 이야기 더 나눠보는 게 어떻습니까, 과장님.”

“예.”

이자헌 과장은 팔을 놓았다. 중년인은 뒷걸음질 치며 대걸레 막대를 도로 주워들더니 사람들 틈 사이로 꼈다.

공포에 질린 눈빛.

그리고 다시 피어오르는 적대감.

“…….”

“노루야. 이편이 차라리 낫다. 이래야 호구 안 잡히지.”

은하제 대리님이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무슨 말씀인지는 안다.’

건강한 성인남녀 여섯 명은 이 정도 폐쇄적인 소규모 집단에서 한꺼번에 내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호구 잡혀서 털리느니 협상하는 포지션이 낫다는 건데.’

문제는 여기가 고영은 씨의 거처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영은 씨가 받는 대우 자체가 마음에 걸린다.’

감이 안 좋았다.

“차장님!”

“누굴 들였다고?”

드르륵.

모자 쓴 사람이 앞칸, 그러니까 기관사 칸에서 나왔다.

사람들이 부르러 갔던 ‘누군가’인 듯했다.

중년인과 또래로 보이는 남성이었는데, 입술이 얇아 다소 야비해 보였으며 기관사 모자를 쓰고 있다.

아마도 이 열차 쉘터의 대표인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하지만 인사에도 답변이 없이 우리 여섯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행팹니까? 어? 남이 만들어둔 안전한 장소에 들어왔으면 ‘감사합니다~’하고 넙죽 엎드리질 못할망정 어디서 사람을 때려?”

“때리지 않았습니….”

“됐고. 내려요.”

그러자 물러서 있던 사람 몇몇이 기세를 도로 찾고 말을 거든다.

“그래, 얼른 내리게 해요!”

“괘씸해서 진짜!”

“세상이 이 꼴인데, 우리가 다 가꾼 쉘터를 뺏으려고 온 거라니까?”

공포와 거부감의 목소리 속에서 차창이 손을 휘휘 내졌는다.

“다 내리든가. 아니면 뭐, 싹싹 빌고 용서라도 받든가!”

“차장님, 잠시만….”

“영은아. 넌 애가 왜 그렇게 멍청하냐?”

고영은 씨가 멈췄다.

“너희 고모가 너 의대생이었다고 하니까 받아준 건데, 알고 보니까 진짜 의사도 아니고 휴학했다는 애가 말이야. 뭐 소독 좀 할 줄 아는 걸로 생색낼 곳이야, 여기가?”

고영은 씨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가 다시 창백해졌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외부인이나 끌어들이고 말이야. 뭐….”

더는 안 되겠다.

“잠깐.”

“그만합시다.”

“…!”

나와 동시에 나온 말이 겹치듯이 들렸다.

급하게 첫 번째 칸으로 달려온 듯, 숨을 헐떡이며 반대편 연결 통로에서 온 사람이 낸 목소리였다.

‘세광교통공사’라고 적힌 남색 조끼를 입고 있는, 4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

“아니, 역무원 씨, 그게….”

“이 안에서 멀쩡한 사람 보는 게 얼마 만이에요. 영은이 아는 사람들이라니까, 바깥소식도 듣고 얼마나 좋습니까.”

“…예예. 뭐.”

차장이라는 자가 갑자기 기세가 죽었다.

뒤에 붙어서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도.

“이분들은 제가 상대할 테니, 여러분은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세요.”

“…….”

몰려든 사람들은 머뭇거리다가 흩어졌다.

소란이 일어날까 걱정하며 나서지 못하고 조용히 있던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보였다.

툭.

차장도 내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 조카라고 유세는.”

“…….”

나는 슬쩍 다리를 걸었다.

차장이 ‘억!’ 소리를 지르며 엎어질 뻔하다가 겨우 균형을 잡고 씩씩거리며 나를 돌아보았는데.

‘뭐.’

네가 실수로 내 발 치고 간 거 아니냐는 듯이 빤히 쳐다봐 주자 움찔거리더니 도로 갔다.

‘후우.’

나는 목을 주물렀다.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자, 나와 눈이 마주친 백사헌이 몸을 움찔거리더니 휙 고개를 돌렸다.

‘똑같이 구네….’

거기서 힌트가 있긴 했다.

강약약강.

아무래도 이 열차는 외부인에게 매우 배타적인 동시에 생존본능만 남은 부류의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몇 년이나 갇혀 있었으면 어쩔 수 없을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나는 대표로 나선 은하제 대리와 인사를 나누는 역무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단 열차를 둘러보았다.

[흠, 홈리스가 점령한 캠핑카 같군요. 썩 유쾌한 몰골은 아닙니다.]

적나라한 묘사였는데, 그것보다는 제법 아늑해 보이긴 했다.

열차 안은 담요부터 그릇, 생활 잡기로 누가 봐도 거기서 생활하는 느낌이었다.

좌석마다 잠자리나 생활 기구가 보이고, 문과 붙은 바닥에도 제법 질 좋은 겉옷과 어디선가 가져온 매트리스 반토막이 깔려 있다.

게다가 모든 창문은 다 신문지로 덮여 있었다.

바깥에서 안을,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없도록 격리하듯이.

“…….”

경계 어린 시선들.

“대충 두 칸에 스물다섯 명쯤 되는 것 같아여. 그럼 전체 인원을 추산하면…. 음.”

“내려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인원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주는 것만으로도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이 대화의 다른 부분이 귀에 확 들어온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내, 내리지 말고 기다려 보세요. 일단 어떻게든 안전하게 잘 곳은 필요하잖아요.”

고영은 씨였다.

“그러니까, 제가 고모랑 이야기해 볼 테니까….”

“산양 씨.”

나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태워주셔서.”

“…….”

분명 피투성이로 신체 곳곳이 결손된 채 죽는 장면을 목격했으니 멀쩡히 나타난 나를 보면 괴담 현상이라고 의심할 만한 상황인데.

그리고 본인도 이곳에서 썩 환영받는 입장이 아닐 텐데.

“그래도 약속대로 멀쩡히 돌아왔습니다.”

고영은 씨가 눈물을 참는 것 같았다.

울컥 치미는 감정을 참으려 손을 떠는 고영은 씨를 이성해 대리님이 꽉 안아서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 * *

분위기는 잠시 후에 진정되었다.

우리는 소란이 일어난 칸 대신 ‘역무원’의 안내를 따라 뒷칸으로 이동했다.

“앞칸이 분위기가 좀 그렇죠. 천천히 따라오세요.”

그러면서 어떻게 고영은 씨가 이 쉘터에 있게 되었는지 겨우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소문’을 들었어요. 초개 요원님이란 분이, 지하철 열차 중 한 곳에 안전한 쉘터를 만들었다는 거.”

“…재난관리국 요원이 말입니까?”

“아마 그런 것 같아요.”

대답을 들은 청동 요원의 표정으로 맞춰보겠다.

‘기억에 없는 요원이다.’

그러니 아마도… 청룡팀의 요원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열차 쉘터

봉쇄된 세광특별시에서 몇 안 되는 생존자 집단 중 하나의 형태.

생존자들을 찾아 지하철로 진입한 청룡팀 생존 요원 중 남은 자들이 열차를 개조해 만든 쉘터로, 역에 도착해도 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도록 처리해 안전을 확보했다.

열차에 진입하면 재난의 날 아침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특성 덕에 구성원은 모두 실종 당시와 동일한 외관을 유지 중.

7번 칸에서 세광특별시 지하철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여기가… 청룡팀의 마지막 행적이었나.

“…혹시 그 초개 요원님은 열차에 계십니까?”

“……아뇨. 식량을 구하겠다고 하면서 오후역에 나가신 뒤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대요.”

“…….”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청동 요원은 고요히 말이 없어졌다.

그때 역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착했습니다.”

드르륵.

열차 일곱 번째 칸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그리고 드러난 내부는….

‘…시장?’

-통조림 교환

-금 상시 매입

택배박스를 뜯어 매직으로 글자를 꾹꾹 눌러 적어둔 종이 표지판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각자 바닥에 앉아 있으며, 의자에는 무언가를 진열할 준비를 하는 듯 허름한 깔개가 깔려 있다.

노약자석은 좀 더 격식이 있게 판때기도 덧대어 있다.

-8번 칸 숙박권 구입 창구

[마치 길거리 노점상들 같군요. 조악하지만 흉내는 제법 냈습니다.]

일종의 상거래 구역.

우리를 보는 이 칸의 구성원들은 시선에 놀라움이나 경계심이 보였으나, 앞칸처럼 과하진 않다.

“7번 칸은 열차 외부인들과 거래를 하는 곳이죠. 일종의 중간 지대라고 해야 하나…. 화요일 오전에, 딱 정해진 시간에는 문을 열고 사람을 받거든요.”

아.

7번 칸에서 세광특별시 지하철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이 뜻이었구나.

‘생존물자를 모으는 방식인 건가.’

나는 ‘8번 칸 숙박권’을 보며 내심 인상을 찌푸렸다. 1번 칸의 그 패딩 중년이 우리를 후려쳐서 식량을 날로 먹으려고 했던 건 알겠다.

일부러 과민반응한 건가?

“만약에 이 칸으로 오셨다면 그 정도로 큰 소란이 일어나진 않았을 겁니다. 하필 1번 칸으로 들어오셔서 더 심했을 거고요. 거긴… 음, 차장이 담당하는 구역이라.”

“…거래를 하러 왔다가 여기서 아예 머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있었지만, 외부인은 절대 허가 없이 열차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없습니다. 차장과 제가 둘 다 동의하는 사람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거든요.”

그 말투는 단순히 쫓아낸다는 투가 아니었다.

‘여길 만든 요원이 어떤 조치를 해둔 것 같은데.’

어쨌든, 7번 칸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역무원’은 나를 보고 다시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소개가 늦었네요. 뒷칸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영은이 고모고, 다들 역무원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역 직원이었는데, 이렇게 됐군요.”

잠깐.

이 지하철 역무원이라고?

“혹시… 한밤역에 ‘허운’이라는 직원분과도 안면이 있으셨습니까?”

“허운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역무원은 착실히 대답한다.

“아, 기억납니다. 이허운 씨 말이죠?”

…!

유쾌연구소 신분증에 적혀 있던 이름과 석 자가 모두 정확히 일치한다.

‘역시 그 사람이었어.’

“근데 그분은 역 직원은 아닌데요.”

“예?”

“외부 기술직 직원입니다. 문제 생기면 기계실 와서 일 보시고 하는 그런 분이죠.”

턱을 매만지던 역무원이 이어 말한다.

“…그러고 보니, 이 도시철도가 유독 역마다 기계실에 외부 인력이 많이 왔다 갔다 하긴 했는데…… 뭐, 무슨 스마트팜 같은 걸 했을 거예요.”

스마트팜.

‘지하철에서 식물 등으로 채소를 키우는… 그런 거였던가.’

“물론 진짜 스마트팜이라는 건 아니고, 무슨 지하에서만 가공 가능한 신소재를 연구하는 사업이라던데… 아무튼 본사에서 사람이 계속 나오더라고요.”

특수한 부가 사업이라는 뜻이다.

거기서 확신했다.

‘유쾌연구소가 여기 있던 게 맞다.’

신소재라는 건 꿈결 용액이겠지.

세광시 지하철은 애초부터 유쾌연구소가 연구를 위해 잠입해 있던 시설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건 왜…?”

“한밤역에서 그분의 시체를 발견해서요.”

나는 간단히 한빛도서관의 휴관과 그로 인해 드러난 역무실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요? 역무실에 들어올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아무튼 알겠습니다. 그랬군요.”

역무원에게서 돌아온 것은 너무 많은 사람의 죽음을 봐서 무감각해진 자 특유의 반응이었다.

도리어 휴관 소식에 더 반응을 보였다.

‘후우.’

멸형급 재난에 수십만 명이 죽은 사태를 체험한 사람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이다.

“…세광특별시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겁니까?”

“……영은이도 모르더니, 정말로 다들 모르시는군요.”

역무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바깥에서야말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영은이 말로는 세광특별시가 아예 괴담이 되어서 없는 지역처럼 됐다던데.”

정답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단은 거기까지만 알고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쉘터를 만든 요원이 소속된 정부단체가, 구조를 보류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역을 버리고 봉쇄하는 편을 택했다는 걸 알려주느니.

“그게 맞습니다.”

“후우.”

그리고 나는 말 없이 상대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리고, 여기서 일어난 일은.”

세광특별시 재난의 날에 일어난 일.

…….

“…말하자면, 공포 영화 같았죠.”

“그때 저는 세광역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역 아래로 뛰어 내려오더라고요. 넘어져서 계단 바닥에 그대로 깔려서 죽는 사람도 보였어요. 그런데도 안 멈추더라고요.”

아아악!

각종 재난 영화와 공포 영화, 파운드 푸티지식 영상물에서 봤던 장면들이 재생되듯 이미지로 그려진다.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우르르 내려오는 사람들의 발과 넘어지는 누군가. 피, 패닉, 비명, 혼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상부에서 무슨 테러라고 무전이 오더라고요. 일단 안내방송을 하고, 달려가서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했죠. 그러면서 출구 바깥을 봤는데….”

역무원의 목소리가 떨린다.

“사람들 저 뒤에서 이상한 형체 같은 것들이 쫓아오고 있더라고요. …발소리가 들렸죠.”

쿵.

“거대하게 부푼 살덩이 같은 것들이었어요. 사람 둘셋을 막 뭉쳐놓은 것처럼 생긴.”

쿵.

“현실감이 없어서 더 영화 같더라고요. 그리고 깨달았죠.”

“진짜 사람들이 뭉쳐서 그렇게 되고 있었어요.”

“출구 밖 사람들이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귀를 막고, 멈춰서더니 몸집이 불어나서 막 서로 뭉치더라고요. 점막 덩어리처럼.”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상한 말소리가 들렸어요. 천국으로? 낙원으로… 뭐 그런 뜻이었던 것 같은데….”

…….

“그 후에는… 정신 차리고 얼른 출구에 방화 셔터 내려서 그 살덩이가 못 들어오게 막았죠.”

쾅쾅쾅쾅!

“밖에서 아직 살아 있던 사람들이 셔터를 치던 소리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점점 안 들리게 되던 것도.”

역무원이 창백한 안색으로 말을 멈췄다.

“…여기까지가 제가 아는 내용입니다. 반복해서 설명드리긴 어렵겠고요. 이렇게 떠올리는 걸로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적도 있고.”

“……예.”

오염 문제일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지하철 밖으로 나갈 생각은 안 하시는 편이 신상에 이로울 겁니다. …여기도 정상적인 공간은 아니지만.”

역무원은 눈인사를 하더니 곧 노점상을 차린 쉘터 사람들에게로 갔다.

[흥미로운 묘사로군요. 친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떻게 생각하냐고?

‘…정말 생화학 테러 괴담 같은데.’

생물 재해(Biological Hazard).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던 사람들이 뭉쳐서 살덩어리가 되는 것.

오컬트 같기도 하고, 바이러스 감염 같기도 해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류다.

‘감염류 괴담이 맞았어.’

그래.

세광특별시에 터진 괴담은 마치 좀비 바이러스처럼 사람을 숙주로 삼아 감염되는,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는 류의 초자연적 지옥이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세광공업고등학교의 ‘선생님’이 생각난다. 거기서 번지던 기이한 점막과 맥동하는 살점들도.

‘역시 학교에 침입한 삿된 것이… 세광특별시의 재난이었나.’

…떠올리자 본능적인 긴장감이 든다. 나는 턱 밑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

‘낙원? 천국?’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중얼거렸다고 했는데, 직전에 나는 이미 그 단어가 들어간 관련 문서를 봤다.

이번 초대 연구에

어린이용 낙원 시럽 사용

-> 내 의견!

어린이용 낙원 시럽.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유쾌연구소에서 연구하던 게 재난의 원인이다.

그리고 단어를 통해 추론하자면….

‘유쾌연구소는, 이 세광특별시를 소원권을 통해 천국 같은 장소로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었던 건가?’

그게 괴담스럽게 실패하면서 이 꼴이 된 거고?

하지만….

‘왜 나를 이 세상에 초대한 게 이 미친 결과의 후속 연구가 된 거지?’

묘한 오싹함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이다.

세광특별시.

멸형급 초자연 재난.

‘…나는 여기에 대해서 원래 더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 않았나?’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래. 세광특별시의 괴담이 뭐였는지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위키에서 읽었으니까.

‘그러니까 스파이 업무 때 바로 눈치챘던 건데.’

유쾌연구소와 관련 있을 법한 떡밥이 있다면 지금쯤 떠올려서 연결할 수 있을 만큼,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옳은데….

…….

‘어느 순간 잊어버렸어.’

그건, 그건 아마도….

130666이 되고 나서.

“…….”

설마.

‘이것도… 위키 수정 능력의 부작용인가?’

아니. 지금 아득한 공포 같은 걸 느끼는 건 의미 없다.

괜한 상념에서는 빠르게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단서를 잡았으니까.

‘역마다 있는 유쾌연구소 시설 중, 방문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그리고 세광특별시에서도 어둠탐사기록을 이용할 방법은 이미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나는 스마트폰을 꽉 쥐었다.

역을 확인하면 위키가 갱신되니까, 거기서 힌트를 찾아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

‘그렇다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순환선인 이 기차는 어느새 세광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사이에 한 바퀴 돌았네.”

“오, 여기서는 밖이 보여여.”

7번 칸의 문에는 유리창에 신문지를 덧대지 않았다.

“역무원 양반, 괜찮으면 우리도 여기서 교환할 만한 물자가 있는지 확인해 봐도 괜찮습니까?”

“아, 물론이죠. 화요일 전이라 물건 준비가 좀 안 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요.”

나는 노점상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일행을 두고, 홀로 가까이 문 앞에 붙었다.

역무원이 뒤에서 충고한다.

“어, 문은 화요일에만 여니까, 지금은 자동으로 열리진 않습니다.”

“예.”

…새삼, 우리 앞에서 1-3번 칸 문이 열린 게 고영은 씨가 무리한 결과라는 것이 와닿는다.

‘후우.’

그리고 지금 당장 7번 칸이 열리지 않는 건 괜찮다.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이번 역은 자정, 자정역입니다….

나는 내가 아는 역들의 승강장 플랫폼을 지나치는 열차의 바깥 풍경을 보았다.

카지노가 있던 자정역, 도서관이 있던 한밤역.

그리고….

♪♪♪♪♪♪♪♪♪♪♪♪♪

그 다음역.

이번 역은 황혼, 황혼역입니다….

나는 유리창 밖으로 확인했다.

그 플랫폼은… 하얗게 빛바랜 듯이 보였다.

“…!”

“아, 여긴 아예 내릴 수 없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가능했는데, 지금은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온도예요.”

창문으로 뜨거운 열기가 전해진다.

나는 설명을 들으며, 최선을 다해서 플랫폼 내부 훑었다.

그러자….

세광 지하철 노선도

– 세광역 (임종의 숲길)

– 자정역 (신체 카지노)

– 한밤역 (한빛도서관)

– 황혼역 (양심판매대)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갱신된다.

황혼역 (양심판매대)

역 인근의 플리마켓이 무인용으로 변이한 세광특별시의 지하철역.

더 이상 산 사람이 없는 플리마켓의 모든 물건은 보는 이 없이 가판대에 놓였고, 값을 치르지 않고 그냥 가져갈 시 팔아버린 양심만큼 역은 뜨거워진다.

이제는 불타는 지옥이 되었다.

‘좋아.’

그렇게 나는, 세광특별시를 돌며 모든 역을 전부 위키에 갱신했다.

세광 지하철 노선도

– 세광역 (임종의 숲길)

– 자정역 (신체 카지노)

– 한밤역 (한빛도서관)

– 황혼역 (양심판매대)

– 오후역 (혈액 방송국)

– 한낮역 (낮잠용 쉼터)

– 아침역 (저울 재판소)

샅샅이 핥듯이 모든 텍스트를 다 습득했다.

…굉장히, 충격적인 역도 있었으나.

‘괜찮아.’

중요한 건 일단 패스할 역을 알았다는 거다.

‘일단 황혼역은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

내려봤자 다 같이 타죽고, 아마 종결 기믹은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거나 하는 식일 텐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간 낭비하지 않는다.’

그 역 탐사는 이 정도로 종료하자.

패스.

그리고, 남은 세 역은 사실 위험이 비등비등하니….

‘아이템을 습득할 만한 곳으로.’

좋아.

길이 확실히 잡혔다.

그리고 피부로 느껴진다.

…이대로면 이 기이한 지하철의 미궁 같은 괴담 속에서, 필요한 답을 곧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호유원의 것이든, 내 것이든.

“거래는 끝나셨습니까?”

“어. 대충 됐다. 너도 좀 볼래?”

나는 먼저 노점상을 돌아보던 일행들의 조언을 받으며, 몇 가지 품목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식량으로 다른 사람이 사지 않았던 ‘독특한 품목’ 몇 가지를 구매했다.

“그걸 산다고요?”

“불만이 있나 봐?”

“아뇨.”

구매한 것은 모두 잘 갈무리했다.

그리고….

“문 개방이요? 그 역이라면 잠깐은 열어드릴 수야 있긴 합니다만.”

한 역에 내려달라고 역무원과 이야기를 끝내고, 우리는 거래에 쓰고 남은 식료품 중 절반을 떼어서 고영은 씨에게 넘겼다.

“또 가지고 오겠습니다.”

“…….”

말없이 그것을 내려다보던 고영은 씨의 호흡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무래도, 정황상 여러분은 이 특별시에서 바깥을 왔다 갔다 하는 법을 아는 것 같은데요.”

“…….”

“혹시 여기서 죽어도, 바깥에서는 멀쩡한 건가요?”

“…예. 비슷합니다.”

“…!”

고영은 씨가 머리를 번쩍 든다. 그 눈에 살짝 빛이 돈다.

“그럼 다른 사람들도 여기서 죽으면 나갈 수 있는 건가요?”

“아뇨!”

세상에.

“그건 아닙니다. 저희가 특수한 방법으로 진입해서 가능한 겁니다.”

나는 호유원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

고영은 씨의 눈이 확 죽었다.

그리고….

“편리하네요. 그것참.”

“…….”

“후우. 죄송해요. 좀… 버거워서요.”

얼어붙은 내게 고영은 씨가 한숨을 쉬며 피로한 얼굴을 문지른다.

그 안에 깃든 좌절감, 수치심, 그리고 절망 같은 것이 묻어난다.

“…일단, 무사하셔서 다행이라는 건 진심이에요.”

“…….”

“저도… 저 나름대로 여기서… 나갈 방법을 더 찾아보려고요.”

작은 사회에 외부인으로 들어와서 산다는 건 피 말리는 일이다. 심지어 그게 재난 한복판의 쉘터라면 더더욱.

현명하고 유능했을수록 더 심적 고단함이 클 것이다….

‘…영은 씨.’

그때였다.

“박하 요원.”

청동 요원이 말했다.

“다음에 들어올 때, 요원의 장비를 챙겨오겠습니다.”

“……!”

“좀 더 효과적으로 운신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영은이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무언가 깨달은 듯이 눈에 번뜩이는 이채가 스치는 것 같다가, 곧 침을 삼켰다.

“…예.”

“그리고… 감사합니다.”

청동 요원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열차에 태워주셔서, 아직 이곳에 생존자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

“산양 씨.”

나는 말을 덧붙였다.

“호 이사는 분명 여기서 무언가를 꺼내는 법을 알고 있을 겁니다. 애초에 그러니까 프로젝트를 시작한 거겠죠.”

“…!”

분명 나갈 방법은 있다.

나는 간접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이 지하철이나 세광특별시에 대해서 들은 ‘소문’을 모두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에요.”

우리는 꽤 길게 대화를 나누며, 영은 씨의 ‘소문’에 대해서 수집했다.

그리고.

♪♪♪♪♪♪♪♪♪♪♪♪♪

“도착했다.”

다시 도착한 목적지, 우리는 역무원이 개방해 준 문 너머로 나섰다.

“조심하세요.”

영은 씨는 전보다 안면에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탐사 마치고 7번 칸으로 오시면, 신호 보고 바로 개방할게요. 이미 고모, 그러니까… 역무원님께 허가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렬한 목표가 생기면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법이죠! 축하합니다, 노루 씨. 현지 협력자를 얻었군요.]

‘…그래.’

다만 말이다.

‘이번 역에 대해서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친구?]

나는 일행의 마지막으로 승강장에서 내렸다.

우리가 고른 곳은 바로 이곳이다.

세광교통공사

오후역

혈액 방송국이라는, 심상치 않은 이름이 붙은 이곳은….

“…조명?”

어딘가 요란하고 사이키델릭한 조명이 돌아가며 번뜩이고, 폭죽이 터지며 컨페티가 바닥에 즐비했다.

그리고 레드카펫이 깔린 계단 위에 존재하는… 거대한 폰트 간판.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