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09화


‘고양이님’은 자기 손에 들린 흰 가운의 연구원을 보았다.

멱살이 잡혀 켁켁거리면서도 아직 웃고 있는 얼굴로, 곽제강이 말한다.

“제 짓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

고양이님이 멱살을 잡은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질질 끌려간 곽제강의 앞에서, 승강장의 소화전 하나가 개방된다.

그 안에는 머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

불에 타서 움직임이 멈춘 ‘목이 돌아간 개체’의 머리를 뜯어내, 그 소화전에 넣어둔 것이다.

불에 시커멓게 눌어붙은 그 얼굴은, 연구 2팀 최명진 팀장의 머리였다.

“욱,”

이연화 연구원은 입을 틀어막았다.

“네 짓이지.”

“고양이님, 그건 추측….”

“연구원들은 다 죽었거든.”

사실을 고지하듯 고저 없는 목소리였다.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건 너희 셋뿐인데, 하나는 주택가에서 소화전을 잡은 채로 목이 돌아가 죽어 있었지. 남은 건 둘인데….”

고양이 가면 너머의 눈이 곽제강의 손을 본다.

“네 손이 깨끗하네.”

“……!”

이연화 연구원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을 보았다.

먼지와 재, 그을음으로 더러웠다. 불타오르기 시작한 주택가에서 도망치며 묻은 흔적이었다.

당연했다.

만약에 손이 깨끗하다면 그 사람은….

임의로 닦아낸 것이다.

“가운에 닦았구나.”

고양이님의 시선이 아래를 향한다. 곽제강의 펄럭이는 가운 안을 다른 손으로 들춘다.

그 안은 피와 검은 딱지가 덕지덕지 묻은 손자국으로 지저분했다.

“…….”

“…….”

“정답입니다.”

곽제강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바로 추론하다니, 머리가 비상한데! 사람의 행동 방식도 전부 이해하시는군요! 그럼….”

“연구원.”

나직한 목소리.

“약속을 어겼네.”

고양이 가면이 가까워진다.

곽제강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며….

“잠시만!”

침착한 목소리가 나온다.

“약속 조건이 다릅니다.”

“조건?”

“그렇죠! 제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문장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이연화 연구원을 제외한 둘의 머릿속에서 동시에 그 문장이 떠올렸다.

나는 앞으로 당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양이님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지요. 소화전에 들어가서 숨으라는 뜻을 그대로 이행했잖습니까!”

“…….”

“정말 어겼다면, 아마 벌써 ‘증상’이 나타났을 겁니다…. 굳이 제 멱살을 잡고 계실 필요도 없죠, 하하하!”

곽제강이 끝마디가 사라진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고양이님의 눈앞에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미소지었다.

“저는 새끼손가락 걸고 했던 약속을, 어기지 않았습니…… 컥.”

고양이님의 손아귀에서 곽제강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양이님이 다리를 굽혀 앉아, 바닥에 엎어진 곽제강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빙그레 눈이 휘며 웃는다.

“그러네.”

“…….”

“네 말이 맞아.”

곽제강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서렸다.

하지만 동시에 기대감이 어리는 것 같았다.

이연화는 눈치챘다.

저 미친 자식은 지금부터 ‘고양이님’이라는 개체가 대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현상을 관측할 기회를 눈앞에 두고 번들거리는 곽제강의 눈과 꽉 쥐어 부들거리는 손을.

“그러니 지금부터는 확실히 밝혀야겠다. 내 뜻은….”

…….

“네가 퇴사하는 거야.”

“……예?”

“백일몽 연구팀을 그만둬.”

온화한 목소리가 말한다.

“어둠에 접근하지 말고, 연구하지 말고, 호기심을 해소하려고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

곽제강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고양이님의 가면 뒤로 눈이 가느다랗게 휘었다.

“얼마나 좋아? 안전하게 살라는 건데. 죽지 말고, 계속 그렇게 안전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는걸.”

“…….”

곽제강의 눈 속에서 격류가 몰아치는 것 같더니, 곧 다시 미소가 떠오른다.

“하하, 아니, 그러면 제 쓸모가 없지 않습니까! 제 연구와 정보가 필요하실….”

“필요 없다면?”

“…….”

곽제강의 미소가 힘겹게 변했다.

“손이라도 자르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면 장기를 하나 적출한다든가, 잘 때마다 악몽을 꾸거나 보름달이 뜨면 어둠에 끌려가는….”

“어둠에서 자주 쓰는 대가성 벌을 떠올렸나 보다. 그렇지?”

“…….”

“그런데 어떡하지? 나는 그런 건 필요가 없는데. 네 고통이든 신체 부위든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 말이야.”

곽제강의 눈에서 열기가 식기 시작한다.

미소가 사라진 그 얼굴에서 절망인지 무감각함인지 모를 것이 들어찬다. 무언가 치열한 계산을 하는 듯한….

‘……저거.’

위험한 것 같다.

이연화 연구원은 뒷머리가 삐쭉 설 만큼의 위기감이 머릿속에서 신호를 울리는 것을 들었다.

그리하여 입을 열려던 찰나.

“계속 연구원으로 남아 있고 싶어?”

“……!”

곽제강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물어봤잖아.”

“예!”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고양이님은 말없이 가만히 연구원을 내려다보았다.

곽제강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전보다 신중한 듯 다급하게 말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그걸 고양이님의 뜻으로 고지해 주시면 이런 일이…….”

“좋아.”

“…!”

“이 세광특별시에서 네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고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할까.”

“하하, 하… 감사합니다!”

곽제강의 눈에 다시 생기가 번쩍이며 미소가 번진다. 안도하는 그 순간.

“그럼 앞으로는 그렇게 하고.”

“…….”

“오늘 네가 저지른 일은 대가성 벌을 받는 게 좋겠다. 그렇지?”

“……그렇, 지요?”

“좋아.”

고양이님이 선언했다.

“남은 새끼손가락을 직접 부러트려 볼래?”

잠시 후, 승강장 안에 억눌린 비명이 메아리쳤다.

* * *

[후우! 친구, 대단한 긴장감이었습니다! 제 주제를 모르는 등장 인물에게는 적절한 교훈이 필요한 법이지요.]

교훈이라.

이건 교훈이 아니라 그냥 폭력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고른 것일 뿐.

‘후우.’

매드 사이언티스트에게 폭력적인 서열질… 팔자에도 없던 별짓을 다 해본다.

‘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겁을 먹긴커녕 계속 시험하려 들겠지.’

소화전을 열려다가 목 돌아가 죽은 연구원을 떠올리자 착잡했으나, 동시에 오싹했다.

곽제강이 나를 시험하려 든 것 같아서.

‘일부러 그 사람을 고른 건가.’

그 프로젝트 연구원이 다른 사람을 밀치고 달리는 것을 내가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본 것을 눈치챈 것 아닌가.

과연 어디까지 수용범위인지, 내가 눈치채는지, 봐주는지, ‘선’을 확인하고 싶어서 저지른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단순히 소화전이 얼마나 튼튼한지 확인하고 기록하고 싶었던 것도 있겠지만.

‘그게 더 오싹한 일이지.’

그래서 일부러 더 강하게 나간 것이다.

…사실 화가 나서 그런 것도 있지만.

‘후우.’

나는 내 팔 안에 붙여놓은 타투 스티커를 들여다보았다.

깨진 가스등 위로 불길이 번지는, 섬세한 검은 문신.

-이 도안으로 부탁드립니다.

원활한 방화를 위해 달빛타투샵에서 구매한 타투 스티커였다.

형태와 상징성을 보고 심혈을 기울여 고른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걸 붙이고 유리를 부수면 그 위로 불길이 타오르더라고.

하지만 부작용으로 불을 지르고 싶은 욕구가 강렬히 치밀어 오르고, 폭력적인 분노를 참기 어렵게 되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손속이 과해진 것엔 분명 이 영향이 있으리라.

‘하.’

나는 애써 생각을 돌렸다.

참고로 말하자면, 블루 마스코트가 결제해 준 것이다.

착 한 아 이

내 가

사 줘

…솔직히 진짜 고맙긴 했다.

이거 기본 타투가 아니라 로얄 프리미엄인가 하는 라인이었단 말이다. 리뷰로 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더는 진주나 자개를 가진 게 없어서 최악의 경우엔 리조트 숙박권으로 어떻게든 흥정해 볼 생각이었는데.

작은 비늘 같은 것으로 지불한 블루 마스코트는 내게 이 말을 남겼다.

내 선 물

잊 지 마

내가 자신에게 받아 갔던, 둥그렇고 신비한 검푸른 비늘.

무지갯빛 반사광이 돌던 그 신묘한 물건.

‘…소지하고 있긴 한데.’

위험하거나 필요할 때, 보고 싶을 때 자신을 부르라는 뜻인 것 같았다.

‘세광특별시에서도 통할까?’

당장 시험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더 급한 게 있었다.

터벅, 터벅.

나는 승강장 계단을 오르고 있다.

뒤에서 절뚝이며 따라오는 곽제강을 인지할 때마다 타투스티커로 격화된 분노가 치솟다가 차갑게 식는다.

‘아마 내가 계속 ‘퇴사 및 연구 금지’를 조건으로 걸었다면, 어떻게든 나와 동귀어진하려고 했겠지.’

어차피 죽을 거 재밌는 연구 결과나 보고 죽겠다고 했을 것이다.

몰아붙이되, 활로를 차단하면 순응하는 대신 미친 짓을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뤄야 했다.

‘후우.’

백사헌도 최소한 트롤짓이 ‘흥미롭고 재밌고 보람차서’ 하는 타입은 아니었단 말이다.

어쨌든 정신을 차리고 계단 위에서 내가 저지른 짓을 본다.

“…….”

활활 타올라 검은 재가 되어버린 주택가가 보인다.

잿더미가 되어 전소한 그곳에는 더 이상 목이 돌아간 채 걸어 다니는 시체가 없었다.

더 이상 잠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이곳에는 집이 없으니까.

“…….”

하지만 다짜고짜 불을 질러버린 것에는 대가가 따르긴 했다.

-안 돼! 안 돼! 우리 집이!

-제발요 그러지 마세요! 대체 왜….

-내 집은 이제 없어. 돌아갈 곳은 없어. 엄마, 아빠….

원망과 절규가 귓가에서 메아리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오직 내게만 들리는 환청 같은 소리.

-방화범이야아아아아아!!!!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네 집도 불타서 없어질 거야

…집에 돌아오고 싶어 했던 세광특별시 시민들의 의식이 원한을 가지고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해피메이커를 주사했기 때문이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우울증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을 아는가? 강력한 진통제는 정신적인 고통도 죽여주는 것이다.

‘여기를 떠나면 없어지겠지.’

오래 머물 생각은 없으니까.

아아아아아…

전소한 주택과의 광경은 어느새 하얗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집이 되지 못한 그것들은 이제 이 주거 구역의 상징인 지하철역을 차지할 자격이 없었다.

나는 묵묵히 그것들을 보았다.

어딘가에서, 슬픈 통곡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

다음 순간.

“…흐읍.”

계단 위에는 불 꺼진 대합실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이연화 연구원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저와 곽 연구원은 저 대합실 안으로 갈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원한다면 여기서 기다려도 괜찮습니다.”

“…! 혹시 정확히 어디로 가시는 건지….”

나는 반대편 승강장을 가리켰다.

실험 결과, 스크린도어 비상문이 열리지 않아 대합실을 통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던 반대편.

“저곳에 다른 어둠이 있습니다.”

그 순간 이연화 연구원이 침을 삼키더니 몸을 일으켰다.

“가겠습니다.”

…그렇다면야.

나는 두 연구원을 대동한 채로 어둠 속 대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빛도서관이 휴관한 한밤역처럼, 대합실은 먼지 쌓이고 버려진 폐허 같은 상태였다.

그곳을 지나 반대편 승강장으로 내려가서, 기계실을 찾아서 개방한다.

끼익.

탄내가 물씬 풍겨 나오고, 다 타버린 사무실 복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긴….”

“이곳은 유쾌연구소라는 장소입니다.”

나는 느릿하게 설명했다.

“백일몽의 물약 생산 기계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 예. 담당은 아니지만 협업하면서 본 적이 있긴 한데.”

“사실 그건 이 연구소가 개발한 기술입니다.”

“예??”

“정황상, 백일몽은 유쾌연구소의 기술과 기기를 빼돌려 물약을 생산 중이더군요.”

“그….”

이연화 씨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동시에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동시에 검열된 진실을 듣고 있다는 연구자로서의 흥분이 치솟은 것일 터다.

의심과 탐구욕.

“잠깐만요, 그런데 유쾌연구소라면… 어둠을 생산하는 어둠인데,”

“정확합니다. 따라오십시오.”

나는 불타버린 사무실 복도 안으로 입장했다.

연구원 둘이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눈치껏 입을 닥치고 있던 곽제강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게 들린다.

그리고….

“보십시오.”

“…!!”

나는 몇 번 문을 연 끝에, 하나의 기계를 찾아낸다.

꿈 배양기.

“아직 작동 중이군요.”

이미 기능 대부분을 상실한 듯 부서져 있었으며, 물약을 생산하는 버튼도 없는 버전이다.

하지만 분명 거기 있었다.

‘역시.’

내가 망상홈쇼핑이 있던 전 역에서 확인한 것.

직원들끼리 주고받던 필담이, 서랍 사이에 끼어서 남아 있던 쪽지였다.

-아래층에서 화재가 난 것 같아 다들 소화기 들고 가더라 꿈 배양기가 가장 많은 층인데 이게 대체 무슨

그리고 이 세광특별시 지하철 역의 연구소들이 층층이 쌓인 구조라면, 바로 다음 역인 이 ‘한낮역’이 아래층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어쩌면.

‘배양기가 많다면, 하나 정도는 살아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 배팅은 성공했다.

나는 연구원들을 쳐다보았다.

연구원들은 떨리는 눈으로 꿈 배양기를 훑고 있었다.

“그럼 당신들을 살려둔 대가를 여기서 받겠습니다.”

“…….”

“이 기계를 분석해 주십시오.”

“…!”

“백일몽의 기계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래.

‘어둠 개발이 주업무라고 해도, 꿈결 용액을 기기에 적재하고 다루는 것도 연구원이지.’

나보다 훨씬 이 기기에 익숙할 것이다.

“그…….”

“어떤 차이가 있냐고요? 당장 육안으로 보이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곽제강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다급히 꿈 배양기의 여기저기를 만지고 샅샅이 훑더니 속사포처럼 말한다.

“직원, 아니, 고양이님. 저 안에, 용액 탱크 안에 있는 저 둥그런 거 보이십니까?”

보인다.

알처럼 보이는 동그란 물건.

최 요원에게 들켰던 다른 꿈 배양실의 프로토타입 기기에서도 봤던 것인데….

“백일몽의 물약 생산기에는 저런 게 없습니다.”

…!

“안 그러나 이 대리?”

“…맞습니다.”

이연화 연구원의 침착한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이 대답을 해도 되는지 고민하면서도 결국 사실을 토로하는 자의 말투.

“백일몽 주식회사의 용액 탱크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

“이 기계 이름이 꿈 배양기라고 하셨죠? 원래는 저 알을 배양할 목적으로 기계가 만들어진 건데, 백일몽에서는 해당 기능을 덜어내고 사용했을 수도 있죠.”

그래.

유쾌연구소의 꿈 배양기는, 어떤 존재를 배양하기 위한 기계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나야.’

내가 저 꿈 배양기 중 하나의 알에서 배양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백일몽은 그 기능을 빼고 물약 생산 기능만을 활용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네. 맞습니다.”

이미 내가 알던 사실이다.

나는 다소 무감각하게 대답했다.

“추론상, 꿈 배양기는 어떤 생명체를 배양하기 위한 기기….”

“생명체라니요? 그런 단순한 표현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뭐?

“고양이님. 꿈결 용액이 어떤 자원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현실을 조작하고 주무르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원인데, 저 용량을 그냥 생명체 하나 만드는데 쓸 리가 있습니까?”

이게.

무슨 소리지?

“연구원이라면 그런 비효율적인 설계를 할 리가 없죠. 분명 다른 걸 겁니다…. 뭐, 여기서부터는 제 추측이지만 말입니다.”

…….

나와 눈이 마주친 곽제강이 창백한 얼굴로도 씩 웃는다.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알은 하나의 세계다.’”

아.

“어떤 고전 소설에서 나온 말이죠. 뭐, 거기서 사용한 뜻과는 좀 다른 의미긴 합니다만… 이 경우에도 똑같은 말을 쓸 수는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잠깐만.

“저 배양기의 알은 하나의 세계다.”

……!!

“저 꿈 배양기의 목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라는 추론을 해봤죠. 하하하! 물론 가설입니다. 가설.”

허무맹랑하다.

하지만 얼얼한 머릿속으로 불쑥, 어떤 발상 하나가 떠오른다.

유쾌연구소는 장난감 같은 괴담을 만들어내는 회사이다.

어린이용 장난감들.

그건 결국….

‘괴담을… 최대한 덜 해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도 같잖아.’

그리고 낙원이니 천국이니 하는 키워드가 나오던, 세광특별시 사태까지 생각하자면, 저 말은….

‘가능성이 있어.’

만일 그렇다면.

유쾌연구소가 만들어내려던 세상이라는 건, 이런 거 아닐까?

안전한 세상.

해롭지 않은 세상.

…….

‘괴담이 없는 세상.’

바로 내가 온 세계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