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12화
[축하합니다, 친구! 새로운 목표가 생겼군요.]
나는 꿈 배양기를 도로 문신 안으로 챙겼다.
이 배양기가 집으로 가는 물약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도저히 이 다 타버린 사무실에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심장이 두근거렸다.
‘세광특별시 괴담을 종결시키면, 집에 갈 수 있다.’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다만.
“포도야.”
“…….”
“그걸로 집에 가는 소원을 빌게?”
나는 상대를 돌아보았다.
최 요원도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눈치챘어.’
이미 꿈 배양실의 문서를 읽고, 내가 조립한 버튼도 보았다.
소원권의 원본이 되는 물약을 만들 방법을 내가 알아냈다는 것을 이미 확신했을 것이다.
아까부터 부쩍 말이 없어졌던 그 사람은 이렇게 말을 꺼냈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죠.”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눈앞에 있는데, 굳이 다른 것을 알아보자고 말하는 것은 나를 말리고 싶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이겠지.
그러니 나도 부드럽게 말해야 한다.
열려 있는 것처럼.
[훌륭합니다!]
“일단 호 이사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세광특별시를 더 알아볼 생각입니다.”
“…그래?”
“예. 말씀드렸던 대로 백일몽 물약 기기를 구하려면, 호 이사를 통하는 게 가장 정확하기도 하고요.”
호유원은 내가 다짜고짜 백일몽 물약 기기를 달라고 하면 분명 왜 그런지 알아내려고 할 것이다.
탐사와 별 상관없는 요청이니까.
‘그리고 내 사정을 아는 순간 그것도 이용하려고 들 거야.’
호 이사가 세광특별시 괴담의 종결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호유원이 원하는 것을 내가 세광특별시에서 찾아서 백일몽 물약 기기와 거래하려 한다면?
‘그건 무조건 통하지.’
그리고.
이강헌이 남긴 쪽지대로 백일몽 물약 기기를 여기 설치해서 세광특별시 괴담이 종결된다면.
“…….”
머리가 찌릿하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당장 하고 싶다.
하지만 일단 설치해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일단 꿈 배양기 자체는 설치에도 별문제가 없었으니, 한번 설치해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이강헌의 쪽지 내용을 완전히 믿을 수 없으니, 세광특별시의 탐색은 계속한다.
종결을 위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또, 여기만큼 용액 효율이 좋은 곳이 드무니까.
‘지하철역에서 탈출하는 클리어만 해도 거의 A에 가까운 등급이 추출돼.’
지하철역들을 하나하나 종결시키기만 해도 꽤 수익이 있다는 뜻이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내가 한낮역을 불태우고 종결시킨 걸로도 용액이 꽤 나왔을 텐데.
나는 다급히 문신 안을 뒤졌다.
‘수집기가….’
…있다!
나는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수집기를 보았다.
‘A등급이 맞나?’
그럼 10만에서 20만 사이니까….
기존에 있던 용액에, 세광고 괴담을 종결시키면서 얻었던 용액까지 합치면 정말 40~50만은 될지도 모른다.
‘괜찮잖아.’
꽤 잘 찬다. 그래. 지금까지 한 걸 아홉 번만 더 반복 경험하면 되는….
…….
잠시만.
그냥 여기서 계속 자살하면 되는 거 아닌가?
세광특별시 지하철역 중에 특히 위험한 곳들도 많다. 그런 곳에서 계속 죽어서 바깥으로 나가기만 하면 꿈결 수집기는 찰 것 같은데.
그것도 클리어 아닌가?
그럼 됐잖아. 계속 들어오면 된다.
그럼…….
[효율적이군요, 친구!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른 경우도 잦지 않습니까? 잘 고려해 보십시오….]
아.
…그렇지. 아마 꿈결 농도가 수준 이하로 낮아질 것이다.
‘어둠을 제대로 경험하지 않고 나오기만 해봤자 저등급 용액만 나올 뿐이다.’
백일몽에서 괜히 매일매일 같은 괴담에 같은 사람을 넣지 않고 간격을 둔 채 주기를 관리하는 게 아니다.
‘고마워. 브라운.’
[오, 착한 친구로서 당연한 일이죠!]
나는 A등급 물약이 찰랑거리는 수집기를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니까 일단 모은 꿈결 용액들을 채워놓고….
“그걸 써보게?”
“예?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그럼 그때까지 꿈 배양기는 내가 가지고 있어도 되지?”
“아뇨.”
“…….”
젠장.
너무 즉답했다.
나는 일부러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만들며 상대를 보았다.
“제가 수납공간이 있어서 챙긴 겁니다. 요원님, 대체 무슨 방법으로 가져가실 생각입니까…?”
“에이, 나한테는 근육과 근성이 있지~”
최 요원이 너스레를 떨며 웃었으나 눈은 냉정했다.
“그 꿈 배양기는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는 게 어때.”
“…….”
“뭐, 어쨌든 간에 포도는 여기 지하철을 계속 탐사하겠다는 거고.”
“예.”
“그렇구나. 으차.”
최 요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가보자.”
“…….”
“슬슬 여기 남은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고 말이야.”
그건.
“어디 보자, 재관이가 열차 쉘터라는 곳에 있다고 했지?”
“……예.”
심장께에 죄책감이 다시 차갑게 타오르며 머리가 식었다.
“안내하겠습니다.”
우리는 불에 타버린 유쾌연구소 복도를 나와서 승강장으로 향했다.
* * *
얼마 후.
G1572번 열차가 승강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내가 손을 흔들자 7번 칸 문이 한발 늦게 열렸다.
“노루… 아.”
“반가워, 박하 요원.”
고영은 씨가 최 요원을 보자 눈이 흔들리더니, 반가움인지 머쓱함인지 모를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요원님.”
“청동아.”
죽은 사람들이 7번 칸으로 온다.
멸형급 재난 안에 죽은 채로 갇힌 자신의 후배를 응시하는 현무 1팀의 선배 요원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수가 훤한데, 청동이.”
“예.”
청동 요원이 옅게 웃었다.
열차에 타고 있기에 죽은 자의 안색은 드러나지 않는다.
생전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청동 요원을 쳐다보는 최 요원의 눈에서 방금 내가 느꼈던 것과 유사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죄책감.
하지만 그 기색을 꽉 누르는 것 같더니, 곧 청동 요원과 평이한 말투로 대화를 재개했다.
그리고 상대의 등을 두드리며 평범한 듯 무언가 암시하는 대화를 나눴다.
“근무는 앞으로 어떻게….”
“뭘 그런 걸 걱정하고 있어. 이 에이스선배님이 있는…”
청동 요원의 공백을 대체 어떻게 대처하냐는 이야기인 게 분명하다.
그리고….
“…누구한테 전하고 싶은 말은 없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유언을 대신 들어주는 듯했다.
‘아.’
발끝이 곱아드는 것 같다.
초조함.
‘뭐든 빨리 해야 하는데.’
역시 열차 쉘터로 최 요원을 안내만 하고 나는 아무거나 타고 다음 역으로 갔어야 했…….
“초조해?”
“…!”
두 요원의 대화를 나처럼 쓱 응시하던 은하제 대리님이 나를 돌아보았다.
“노루야.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본다. 진짜 무슨 노루처럼 도망가더니.”
“대리님.”
“뭐 그렇게 급한 일이 있었길래 쪽지만 남기고….”
그러다가 내 얼굴을 보고 멈칫거렸다.
“너 안색이 왜 그러냐.”
“예?”
“너무 창백한데. 누가 보면 내가 아니라 네 쪽이 시체인 줄 알겠다.”
농담처럼 무서운 말을 던졌다.
“괜찮습니다. 그냥, 이런저런 발견을 해서 그렇습니다.”
“…….”
은하제 대리님이 목소리를 낮추며 나를 끌고 되도록 구석에 가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꿈 배양기인지 뭔지, 그것 때문이야?”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우리 회사의 물약 제조 기계가 필요합니다.”
“…너무 뜬금없는데.”
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은하제 대리님은 자기가 죽어서 이곳에 갇혔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그리고 이 쉘터에 적응하기도 힘들 텐데.
내가 괜히 쪽지를 남겨서 상대에게 부담을 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두 요원도 대화를 끝마치고 이쪽으로 왔다.
나는 청동 요원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말했다.
“저, 죄송합니다. 요원님. 제가 나갔을 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여쭤보고 갔어야 했는데, 급해서….”
“괜찮습니다.”
청동 요원이 고개를 저었다.
“필요한 건 이미 최 요원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마십시오.”
“……예.”
나는 이 열차 안에서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게 점점 견디기 어려워졌다.
다행히 오래 가진 않았다.
이번 역은 아침, 아침역입니다….
열차가 한 바퀴 돌아 목적지에 다시 온 것이다.
나는 당장 문 근처로 발을 옮겼다.
“저는 이만 내리겠습니다.”
“벌써?”
“예. 필요하신 게 있다면 말씀 주세요. 찾아오겠습니다.”
“흠….”
나를 가만히 보던 은하제 대리는 아무 말 없이 청동 요원과 고영은 씨에게로 돌아갔다.
고영은 씨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으나,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내리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아침역에 발을 내디뎠다.
현대적이고 깔끔한 승강장은 여전하다. 나는 열심히 계단 방향으로 발을 옮겼….
“같이 가야지, 포도야!”
“…….”
나는 내게 어깨동무하는 최 요원의 팔 무게를 느꼈다.
[흠. 여전히 친근한 척 표현이 과한 작자로군요.]
내리셨구나.
그래, 최 요원이 동행하기로 결심했다면 말리긴 어렵다.
그리고 이번 역은 사실 최 요원의 도움이 있다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이는 게 맞았다.
…그렇다면 말이다.
“저, 요원님.”
“응?”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앞으로도 탐사 중에 수집기에 용액이 차면, 저한테… 파실 순 없겠습니까?”
세광고 괴담을 종결시킬 때도 용액 수집에 도움을 받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싫은데?”
“…….”
“포도야. 이전에 준 것도 반띵하기로 했잖아. 안 그래?”
아.
“…예. 그랬죠.”
[맙소사. 그간내 친구가 베푼 도움이 얼마인데, 이런 건방지고 매몰찬 발언을 하다니!]
아냐.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솟았다.
하지만 황급히 억눌렀다. 뻔뻔하게 굴지는 말자.
‘나중에 잘 말해보자.’
좋은 제안을 하면 괜찮았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아, 그렇지. 그걸 깜박했네. 공무원 양반.”
…….
……!!
“일단 내가 가진 수집기부터 받아 가라, 노루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은하제 대리가 거기 서 있었다.
아니, 청동 요원도 그 뒤에 있다.
승강장에 발을 디디는 그 두 사람의 뒤로, 스크린도어가 닫힌다.
그 너머에서 열차가 이 역을 떠나가고 있었다.
“…….”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청동 요원과 은하제 대리를 보았다.
“왜 내리신 겁니까.”
“포도 요원.”
“다시 타십시오! 얼른!”
“싫습니다.”
“…!!”
나는 열차에서 내린 두 사람의 몸에서 생기가 사라진 것을, 창백하게 질린 죽은 이의 몸을 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담담했다.
심지어 최 요원도.
‘…이미 대화를 한 건가?’
나는 이를 악물고 둘을 보았다.
“이 역이 어떤 곳인지 쉘터에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
“요원과 기자가 탐사하기 좋은 곳입니다.”
“…….”
“포도 요원.”
망할.
‘위키 내용을 공유하지 않아서 모를 줄 알았는데.’
직접 이 역에 방문했던 생존자의 증언에서 거기까지 눈치챌 줄은 몰랐다.
“이 역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아침역 (저울 재판소)
세광특별시의 지방 법원이 위치한 지하철역.
“…법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
청동 요원의 시선이 계단 위를 향한다.
저울 재판소
위에 달린 거대한 목재 현판의 옆으로 은색 저울 마크가 달려 있다.
그 저울 안의 작은 양각 패턴은 누군가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은심장 안에 있던 것과 동일하니까.
재난관리국 장비.
이 지방 법원의 지하는 한 비밀스러운 정부 기관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정황상, 세광시의 재난관리국 지부가 이 역에 있었던 듯합니다.”
그렇다.
여기가 바로 통째로 실종된 세광특별시 관리국 지사의 위치였다.
해당 정부 기관은 재난의 날에 가장 많은 생존자를 지하로 대피시켰다.
이후 뿔뿔이 흩어진 정부 요원들은 세광특별시 곳곳에서 생존자 구출 및 본사에 구조 요청을 병행했으나, 성공 사례는 희박.
그러나 해당 과정에서 누구를 구조해야 하는가에 대한 그들의 처절한 고민은 사망한 이후에도 소재지에 남았다.
그래서 이 괴담으로 변이한 지하철역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가?
그리하여, 이 아침역에서는 그 고민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저울재판소에서는 당신이 구조될 가치가 있는지명징하게 가려낼 것이다.
검증된 방식을 통해서.
끼이익-
계단 위.
현판 아래 문이 열리며, 은빛의 저울 재판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억하십니까? 지평선 산장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죄질이 나쁜 범죄자였던 것을 말입니다.”
“…….”
“그때 사용된 장비가 이 지부에도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악의 저울에 당신의 무게를 달아볼 것이다.
악의 저울.
재난관리국에서 민간인 희생자를 징발하는 데에 사용되었던 그 저울이, 이 역을 장악하고 있다.
“…….”
하지만.
청동 요원이 생각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뒤틀리고 오염됐으니까.
본래 이 장비는 죄악을 추로 삼아 무게를 쟀으나, 재난의 날에 영향을 받아 다른 것을 추로 삼게 되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반대편 저울에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