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21화
나는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보았다.
어두컴컴하고 소독약 냄새 나는, 낡은 병원 침대 아래에 숨은 내 몸.
캠코더를 잡고 있는 내 손.
그 위를 다른 손이 튀어나와 잡고 있다.
“…!!”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어 손을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캠코더를 잡은 손은 침대 밖으로 우악스럽게 캠코더를 빼앗아 끌어내려 한다.
‘안 돼!’
나는 몸을 비틀어 캠코더를 빼내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원래 정해진 것처럼내 몸이 침대 밖으로 끌려간다. 침대 밖에서는 캠코더 소유자가 당할 일이 준비되어있다 첫 번째 촬영자는 병원 침대 위에서 하체가 잘 해부된 채 발견된다 그것을 발견한 자의 끔찍한 비명으로 두 번째 녹화기록이 시작
퍽!
내 캠코더를 잡아당기던 이상한 손 위에 길쭉한 것이 꽂혔다.
“…!”
볼펜.
고개를 들자, 얼굴이 허옇게 질린 백사헌이 손등 위를 볼펜으로 내리찍은 채 비틀고 있었다.
“아.”
캠코더를 쥔 환자의 손에서 피가 튄다.
그 손등이 순간 근육 긴장으로 꿈틀대는 순간.
백사헌이 캠코더를 확 당겼다.
“……!”
나는 침대 다리를 발로 세차게 밀쳤다.
우리 머리 위로 있던 병상 침대가 앞으로 세차게 밀린다. 끼이익! 이동식 바퀴가 삐걱거리며 움직이더니 드르륵거리며 ‘환자’를 밀치고 벽으로 밀어 넣는다.
쿵!
캠코더를 잡아챈 손이 떨어져 나간다.
“가!”
나는 백사헌의 목덜미를 잡고 미친 듯이 뒤로 뛰었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백사헌의 손에 넘어간 캠코더 화면 속으로 책상에 찍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기괴한 환자복의 형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뛰쳐나간 복도는….
“흡.”
어두운 폐쇄 병동의 복도다.
나는 캠코더를 백사헌의 손째 다시 앞으로 다잡아서 화면으로 복도를 보았다.
병원이 아닌 어두운 회사 복도가 보인다.
“엘리베….”
“안 됩니다!”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계단으로 가세요. 이건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되는 재난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매번 탐사마다 시체가 나오는데 검열 삭제되어서 내용도 안 보여주는 공포 묘사였다고!
“~!!”
백사헌이 욕지거리를 삼키는 것 같더니 결국 비상문을 향해 뛰었다.
복도를 질주하는 동안 침대를 밀치고 뛰어오는 자의 소리, 병실의 문이 열리며 어딘가 익숙한 인영들이 등장하는 소리가 몇 번 들렸다.
“캠코더로 보십….”
하지만 그렇게 말할 것도 없었다. 백사헌은 누가 자기한테 말을 걸든 갑자기 튀어나와서 잡으려고 들든 상관하지 않고 질주했다.
미련도 도울 의지도 한 점 없다.
“후욱.”
나는 비상문을 먼저 열고, 백사헌과 몸을 던진 후 당장 문을 닫았다.
쿵!
문을 잠갔다.
퉁, 퉁,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말을 거는 소리가 들리고, 이상하게도 녹이 슨 문에는 피 묻은 손으로 그린 듯한 오망성이 있어 사람을 소름 끼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오싹한 와중에도 확신을 담아서 한숨을 쉬었다.
안도의 한숨을.
“……한동안은 괜찮을 겁니다.”
비상문 계단에서 문제가 생기는 건 ‘요양병원 마지막 날 촬영본’의 후반부였다.
‘그전에는 보안팀이 제압하겠지.’
아니, 어쩌면 돌아오지 못한 ‘진짜 경비반장’도 그 업무에 동원되어서 지금 별관 1층부터 작업 중일지 몰랐다.
아니면 사람이 많을 별관 10층에서부터.
“후욱.”
나는 그제야 백사헌을 놓았다. 질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던 녀석은 자기가 쥔 캠코더를 힐끗거린다.
이미 눈치챈 것이다.
“이거….”
“이제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백사헌의 눈으로 탐욕이 지나간다.
“무슨 기능인데요.”
젠장.
“…화면에 보이는 것으로 이 건물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흐음.”
“저에게는 이 재난을 탐사하려면 필요한 물건입니다.”
나는 요원답게, 진지하게 상대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 재난을 탐사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필요 없는 물건일 겁니다. 시민님은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 드릴 테니, 캠코더는 제게 돌려주십시오. 저는 할 일이 있습니다.”
“…….”
백사헌이 캠코더를 내렸다.
하지만 놓지는 않은 채로,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안전한 곳이 어딘데요.”
“상층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5층보다 위층에는 안전지대가 있다.
[호오!]
탐사기록 #16
10층 높이의 상가 건물에서 Qterw-C-1004의 활성화 현상 발생.
민간인 두 명이 10층에서 ‘놀이시간’이란 적힌 스케치북 한 페이지가 붙은 501호실 문을 발견한 것을 증언.
문 안쪽은 ‘귀신이 왔다 귀신을 떨쳐내야 한다’라는 문구로 빼곡히 도배되어 있으며, 해당 문구 역시 크레용으로 작성됨.
해당 병실에서 출몰하는 환자에 대한 기록은 아래로.
중요한 건 이거다.
‘501호실’ 문을 10층에서 발견했다는 것.
이 단서는 차후 탐사기록이 쌓이면서 이렇게 빌드업된다….
“이 재난은 5층 병원 건물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준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5층 이상의 층수에서는 다시 1층의 현상이 반복됩니다.”
나는 상대를 보았다.
“그러면서 왜곡이 발생하죠.”
“…!”
“그 왜곡 지점은 이 재난에서 인지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정말로 안전지대다.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백사헌이 따라왔다. 좋아.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요?”
“…경험상, 알고 있습니다.”
요원으로서의 경험이 아니라, <어둠탐사기록>의 탐독 경험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는 캠코더를 힐끗 보았다.
“숨는 과정에서, 그 캠코더가 갑자기 켜지거나 빛을 내서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
진심이기도 했고 설득이기도 하다.
‘백사헌은 달라고 명분과 진심으로 호소해봤자 안 통할 부류지.’
그렇다고 힘으로 뺏자니 이 자식 트롤짓도 걱정되고, 무엇보다….
‘솔직히 병원 괴담에서 혼자 다니기 싫기도 해….’
무섭다고….
우리 가능하면 갈 수 있는 데까지는 동행하자. 이 공포게임 실사화 같은 상황에서 혼자 다니자니 트롤이라도 동행인이 없는 것보단 나을 것 같다….
[오, 친구….]
크흐흡….
“보셨잖습니까. 아까도 캠코더 때문에 들켜서 큰일날 뻔했습니다.”
“…….”
“양날의 검입니다.”
백사헌은 말이 없어졌다.
“이 재난이 왜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대한 상층으로 가서 숨어 기다리십시오. 보안팀이 올 겁니다.”
“…….”
정 안 되면 쳐서 뺏더라도 일단은 동행하자.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물비린내가 나는 비상계단은 상당히 오싹했다. 나는 발걸음을 다시 옮기며, 일부로 화제를 돌려 달래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왜 별관에 계셨던 겁니까?”
분명 회사에 대기하고 있을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움찔거리던 백사헌이 툭 던지듯 말한다.
“…당연히 찾을 어둠이 있어서 왔죠. 조에서 관리하는 어둠 말입니다.”
“그럼 1층에서 오신 겁니까?”
“당연하죠. 안 그러면 어떻게 내가 2층에서 그쪽을 구해줬다고 생각합니까?”
현장탐사팀은 별관에서 1층 위로는 진입 허가가 잘 안 나는데 어떻게 2층에 있나 했다.
‘이 병원 괴담화 현상이 1층에서부터 발생한 모양인데.’
백사헌의 설명에 따르면, 정전 후 갑자기 뒤틀린 폐쇄 병원의 모습이 덧씌워지는 순간, 지상층으로의 비상문이 개방되자 뛰어 올라온 모양이다.
‘그럼 지금 1층은 아비규환이겠군….’
후우.
“그렇군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
백사헌이 여전히 캠코더를 잡은 채로 나를 돌아보며 툭 말했다.
“알면서 아이템도 안 내놓네.”
하.
“시민님.”
나는 약간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죽길 바라십니까?”
“……!”
“그 캠코더가 없으면 제 임무 수행은 대단히 어려울 테고, 아마 중간에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백사헌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쪽도 숨어있으면 되잖습니까. 뭘 찾겠다고 이런 상황에 움직이려고 하냐고요…!”
그리고 캠코더를 흔든다.
“이 캠코더로 뭐할 건데요. 어딜 탐사할 생각입니까?”
“…저는 이 회사 별관 지상층에서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나는 심호흡했다.
“꼭 필요합니다. 그 물건이 있어야 구조할 수 있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
백사헌은 고개를 숙여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뭐, 모르는 사람들 살리려고 잠입에 도둑질까지 해요? 웃기네.”
“누구든 살 수 있다면 도둑질이라도 기꺼이 하고 싶은 마음이지 않을까요.”
“…….”
“이 회사에 피해를 주진 않을 겁니다.”
“물건을 훔치는데 어떻게 피해를 안 줍니까?”
그리고 백사헌이 툭 던지듯 말했다.
“그쪽이 훔치려는 거, 물약 만드는 기계 같은데.”
……!
“맞죠? 없어졌다고 별관 폐쇄하고 난리던데. …맞네.”
백사헌이 어쩐지 약간 들뜬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그쪽이 훔친 겁니까?”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살짝 미소 지으며, 발을 멈췄다.
“제가 찾는 건 그 층에 없습니다.”
고개를 들어, 도착한 층수를 확인했다.
[5F]
“이 층에 있습니다.”
백사헌이 입을 달싹거린다.
“…물약 기계들은 10층에 있을 텐데요.”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저는 이쪽에서 찾을 게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곳에 오는 게 계획이었다.
중요한 건 눈에 안 띄고 별관 지상층을 돌아다닐 명분이었지.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나한테 상황이 유리해지긴 했는데.’
건물을 집어삼키는 병원 괴담 터져서 이제 내가 뭘 하든 그다지 눈에 안 띌 거다.
‘이 괴담이 진압되기 전에 행동한다.’
그게 맞았다.
그래, 다 알긴 하는데….
문제는 말이다.
‘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은 마음으로 5층 비상문을 보았다.
너무 녹슬어서 검게 보이는 문.
그리고 흘러내리듯 적힌 검붉은 글씨.
HAPPY
D-DAY
여기가 바로 병원 괴담의 본거지다….
말하자면 메인 이벤트가 벌어지는 장소, 온갖 끔찍한 꼴을 다 볼 수 있는 장소라고 할까.
‘와 미친.’
나는 5층 비상구 문 밑에 부서진 채 쌓인 주사기 더미와, ‘HAPPY D-DAY’라고 질척한 핏물로 적힌 문을 보았다.
주사에서 엉겨 붙은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다. 잘 보니 신경과 핏줄 다발이다….
약간… 아니, 많이 도망가고 싶지만.
나는 애써 쫄보가 아닌 척하며 비상문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가 질척거렸다. 으아악….
“여기서 찾아내 훔치려는 건, 없어져도 정말로 이 회사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 물건입니다.”
그렇게 백사헌에게 말을 마무리한다.
“그러니 캠코더는 제게 주시고, 10층으로 가세요. 숨을 곳을 지정해 드리겠습니다.”
“…….”
“저는 이 재난이 보안팀에게 처리되기 전에 빨리 일을 보고 오겠습니다.”
후우.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초조하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야, 이게 마지막 오퍼다.
“많이 걱정되신다면, 제가 10층까지 안내….”
“아, 진짜!!”
“…?!”
“하, 씨, 후우…….”
백사헌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반대로 하죠.”
“예?”
“내가 그쪽을 5층에 데려다 주겠다고요. 그러면 되겠네.”
백사헌이 개 같이 안 내키는데 해준다는 표정으로 캠코더를 든 채 내 옆에 섰다.
“그쪽을 어떻게 믿고 캠코더를 완전히 넘겨요. 나 혼자 있는데 그쪽이 모르는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잖아!”
애초에 캠코더에 대해서 알려준 것도 난데?
“내가 죽으면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하지만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겠다.
‘유용한 아이템을 덥석 말뿐인 정보랑 교환할 수는 없다 이거지.’
후우.
그래도 의외긴 했다.
‘이걸 동행해?’
게다가 나한테는 인원이 하나 추가된다는 게 정말 병원 괴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라서 말이다.
‘뭐… 여차하면 힘으로 뺏을 수도 있고.’
기이하게도, 이 요원의 설득은 백사헌에게 상식선에서 통하고 있었기도 하니까.
“대신 뭘 건지든 나한테도 권한이 있는 겁니다. 절반 주라고요.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응. 호유원이 줄 거다.
그리고 나는 일부러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시민님. …덕분에 조금 덜 무섭네요.”
“…….”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젠장.
어쨌든 나는 프로젝트 책임자에게 모든 계산서를 떠넘기는 마음으로, 백사헌과 함께 5층 비상구 문을 개방했다.
끼익.
“…….”
“…….”
폐쇄 병동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다만….
윤곽이 보인다.
‘하.’
…몇몇, 꽉 닫힌 병실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와, 어두운 복도에 빛을 비춘다.
벽에 마구잡이로 적힌 낙서들이 드러나도록.
행복해질 날
우리 병은 고칠 수 없음을 받아들여
다들 화이팅~^^
포기하며따르고포기하며따르고포기하며따르고포기하며따르고포기하며따르고포기하며따르고죽자포기하며따르고
여기 사악한 것이 있다
진리 사랑 회복 오직 의사 선생님의 정확한 진단이 의미
기괴한 글씨들.
살짝 드러나며, 그것이 무엇인지 추측할 때마다 등을 타고 소름이 치밀어오르게 한다.
소독약 냄새.
이상하고 매캐한 약품 냄새, 달콤한 냄새, 철 냄새, 지독한 썩은 내 같은 것이 뒤섞여서 코를 찌른다.
‘하….’
나는 캠코더로 그 안의 ‘진짜’ 공간을 분간한 후… 조용히 속삭였다.
“저깁니다. 목적지.”
[1184]
기이하게도 전자 패널에 숫자가 적힌 그곳을 보며 백사헌이 눈살을 찌푸린다.
“저게 무슨 뜻인데요.”
“위험한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곳까지는….
괴담 속 어두운 폐쇄 병동 복도만큼의 거리가 있다.
“…….”
“직진하면서, 제 지시에 따라주십시오.”
우리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어두운 복도 안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쿵쿵쿵쿵쿵!!
“살려주세요!”
“…!”
“묶어놨어, 구조, 구조… 살려…….”
툭.
바로 옆 병실의 문이 열렸다.
보안팀 호출 버튼을 든 자가 503호 병실에서 다급히 뛰쳐나오며 넘어진다. 그 양팔은 테이프로 묶여있다가 억지로 뜯어서 나온 것 같다. 피부가 다 벗겨졌다.
“제발!”
양 손을 간절히 들어서 자신의 아직 묶인 다리를 가리켰다.
한 손에 꽉 잡고 있는 보안팀 호출 버튼.
그리고 반대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또 다른 캠코더.
“잠….”
그 순간.
백사헌이 얼른 다가가서, 그 사람의 손을 잡았다.
…캠코더를.
“아.”
그리고 인영을 발로 차서 503호 병실에 도로 넣더니 세차게 문을 닫는다.
“아아악!”
그리고 병실 문을 잠그더니 얼른 이쪽으로 뛰어왔다.
“뭐해요, 뛰어!”
새로 강탈한 캠코더를 든 채로.
눈이 빛난다.
“하나 더 가져왔으니까 얼른 들어요!”
“…….”
“저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