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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23화


불 꺼진 별관 복도.

아니, 괴담 속 병원에서 내 호출을 받고 ‘배정’되어 나타난 보안팀.

[오… 저 의상 좀 보시지요, 친구!]

복도에 서 있는 그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카맣게 검은 코트와 결박 도구, 그리고 워커와 장갑과 두건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양식은 내 눈에 익다.

[친구가 바로 며칠 전까지 입고 있던 바로 그 양식입니다.]

특수부서 직원이 천천히 다가온다.

괴담 속 존재를 회사로 불러내고 근로계약서라는 기이한 방식으로 속박해, 보안팀에 근무하게 만든 결과가.

-(지지직)축하합니다(지직)축하합니다사랑하는(지지지직)요양병원입원환자들다시태어나는오늘축하합니다

나는 여전히 축하 케이크를 든 병원 괴담 속 환자를 따르고 있다.

비상구로 향하는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휙.

그리고 비상구 문이 활짝 열린다.

아무도 없어야 할 그곳에는 환자들이 웃으며 머리를 내밀고 서 있다.

각 층에 있던 환자들.

흔들리는 내 손의 캠코더 화면이 눈앞을 스칠 때마다 보였다 사라진다. 어두운 진녹색, 검은색, 노란색 오염들이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순간.

보안팀 특수부서 직원이 우리를 앞질러 갔다.

“……!”

보안팀은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 케이크를 들고 있던 환자보다 앞질러서 비상문 안으로 들어간다. 캠코더 화면 속에서는 환자들이 손을 뻗어 그 보안팀의 전신에 다닥다닥 붙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두건으로 얼굴이 완전히 가려진 보안팀은 미동도 없다.

마침내 케이크를 든 환자가 활짝 웃는 얼굴로, 비상문을 넘어가고….

보안팀이 검은 코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그 품에서 나타난 것은 뼈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은 기이한 긴 형체로, 마치 척추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거대한 무언가였다.

‘…도끼?’

보안팀의 팔 위로 흉기가 치켜 올라갔다.

“……!!”

그 순간.

쿵.

비상문이 닫혔다.

그리고.

-(지지직)축하합아아아아악!니다(지직)축하합아아악!니다사랑하는(지지지직)요양병원입원환자들다시아아아아으악태어나는오늘축하합니다

육중한 타격음.

짧고 비정하게 꽂히는 소리.

비상문 안에서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잔인한 파열음이 울렸다.

비상문 아래 틈으로 검은 수렁 같은 그림자가 핏물처럼 튀고, 녹색 빛이 번뜩인다. 나와 백사헌의 걸음은 비상문에 가로막혔으나, 그 철문에 얼굴을 비비며 계속 나아가려는 듯이 발걸음을 옮긴다.

피와 오물이 얼굴에 묻는다. 백사헌이 욕과 신음을 참는 것이 희미하게 들린다.

귓가에 비명과 동요 소리가 너무 크게 울리고 있기에.

-(지지직)축아아아아악!니다(하하하)축하아아악!니다하하하하!사랑아아아아아악!!는(지지지직)요양병하하하하하!으아아악!환자다시아아아아으악태어나는오늘축으아아악!!

환자들이 지옥에서 아우성치는 듯 정신 나간 웃음과 비명이 문 안에서 맴돌고 틈 사이로 거칠게 빠져나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볼 아래에서 울리는 거친 비상문의 진동을 견뎠다.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지지직)축…

무자비한 소음과 빛이 멈춘 순간.

비상문을 밀던 얼굴과 몸도 멈췄다.

“…!”

나는 백사헌의 목덜미를 잡고 뒤로 물러났다.

끼익.

비상문은 고요 속에서 열린다.

그 속에는 전신에 핏물을 뒤집어쓴 듯 오염에 젖은 보안팀 직원이 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비상구 불빛을 받으며.

“…….”

캠코더를 들어 보았다.

계단참으로는 피가 흥건히 낭자했다.

그 아래로 수많은 것들이 한 덩이가 되어 굴러떨어진 듯 섬뜩한 핏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나는 계단 모서리에 박힌 축하 케이크의 흔적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뭉개진 케이크 안에서는, 약물이 든 수많은 주삿바늘이 터진 채 부서져서 빵과 크림을 기이한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하.’

소름이 돋았으나, 안도가 동시에 스친다.

성공했다.

‘됐다.’

나는 내 호출을 받고 온 보안팀을 보며 침을 삼켰다.

5층의 환자들을 모조리 뭉개서 ‘어딘가’로 보낸 그자는 들고 있던 흉기를 다시 코트 안으로 집어넣었다.

워커 아래로 피와 살점이 떨어진다.

나는 그 도끼 형체가 처음부터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토대 위에 덕지덕지 묻은 것임을 깨달았다.

대단히 섬뜩했으나 중요한 건….

“감사합니다.”

응대다.

나는 즉각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백사헌의 고개를 눌렀다. 투덜거리는 대신 잽싸게 같이 머리를 숙이는 상대의 태도에서 생존 본능이 느껴진다.

…동시에 우리 둘 모두에게 목뒤에 식은땀이 맺혀 있는 것을 깨달았다.

‘수틀리면 안 돼.’

보안팀 특수부서는 애초에 사람이 아니다.

괴담이다.

130666이었다면 대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간신히 사람 모습을 되찾았는데 도로 정신과 몸이 무너지게 할 순 없다.

그리고 회사에 들키면 일이 엄청나게 커질 테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급히 정해진 말을 했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사태를 발견하고 보안팀에 호출드린 거지, 구조 요청은 아니었습니다. …혹시라도 비용이 청구될까 봐, 일단 저희끼리 기다리겠습니다.”

정적.

‘망할.’

혹시 말이 안 통한다면 당장 도망가야 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보안팀의 기세를 살피려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그 보안팀이 어딘가 눈에 익은 듯했다.

‘뭐지?’

그 순간.

피에 젖은 코트 안에 들어갔던 손이, 쓱 나온다.

“…!!”

흉기를 꺼내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타난 손 위에는 핑크색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청구되지 않습니다.

단정한 글씨로 적힌 문구를 읽는 순간.

“……!”

벼락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좋은 밤 보내세요.

내가 입사 초에 프론트데스크에서 만났던 보안팀 직원.

말발굽 같은 형체가 드러났다 사라지던, 그 오염된 직원.

‘…특수부서였다고?’

그때는 분명 저 의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특수부서한테 프론트 일을 시킨다고?

‘잠깐. 나도 했었잖아.’

나는 이동장에 들어앉아서 사람들을 상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프론트에서 근무를 했다는 건, 소통도 되고 일상에서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은 자라는 뜻이었다.

‘해? 말아? …살짝만 해보자.’

나는 적당한 선을 골라서 정보성 대화를 시작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그런데 다른 곳은 괜찮은 겁니까? 10층에 다른 신입 연구원들이 다 있었는데, 걱정되어서요.”

응답은 없었다.

나는 약간 방향을 틀었다.

“책임자분들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지사에서 오셨다는 팀장님께서도….”

휙.

갑자기 보안팀이 다시 코트에서 포스트잇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장갑 낀 거대한 손으로 다 가려지게 쥐더니, 내게 아예 내밀었다.

“…….”

‘이거 혹시 무슨 규칙형 괴담에 휘말리는 행위 아닌가…?’

하지만 거절하는 것도 비슷하게 무슨 버튼을 누를지 모른다. 결국 나는 내적 비명을 참으며 양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장갑에서 흐르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 구겨진 포스트잇이 내 손에 떨어졌다.

‘으아아악.’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펴서 내용을 확인했다.

지사에 가면 안 됩니다.

“……!”

조심하세요.

나는 퍼뜩 포스트잇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비상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떨리는 걸음을 참으며, 문으로 더 다가가서 섬뜩한 비상계단의 풍경을 보았다.

…계단 아래에서 멀어지는 기척이 들렸다.

검은 그림자로 흔들리는, 발굽 같은 형상도.

‘아래층….’

별관 지하로… 돌아가는 건가?

“저기요.”

“…!”

“그거 가질 겁니까?”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린 후, 백사헌에게 대꾸하며 포스트잇을 주머니에 넣었다.

“일단 챙기려고 합니다.”

어쨌든 축하 케이크를 든 환자가 비상문 밖으로 나갔으니, 이 괴담이 사라질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물건을 찾으러 도로 가보겠습니다.”

“…그러든가요.”

나는 나를 따라오는 백사헌을 달고, 고요해서 더 섬뜩한 폐병원 5층 복도를 가로질러 목적지로 향했다.

캠코더 속에 보이는 말끔한 제약회사의 문으로.

[1184]

“보안을 중요시하는 회사나 기관에선, 특히 연구동에서는 외부인이 단번에 알아보기 어렵게 숫자로 문패를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구원의 카드키는 통하지 않겠지.

나는 CCTV가 부서져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마치 ‘다급해서 어디든 숨을 곳을 찾아내려던 것처럼’ 문을 파손한 후 들어갔다.

그리고 발을 디디는 순간.

마찬가지로 캠코더를 들여다보던 백사헌의 눈이 커졌다.

“여긴….”

그 안은 창고였다.

하지만 일반 창고가 아니라, 낡고 헤진 물건과 시설 장비들이 먼지가 쌓인 채 아무렇게나 적재된 공간.

[불용품 보관실]

바로, 회사에서 수명이 끝난 물건을 모아두는 공간이다.

그리고 말이다.

“보이십니까?”

나는 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여기에도 있습니다. ‘물약 제조기.’”

“……!”

여기는 백일몽 주식회사였다.

즉, 이 방은 별관에서 백일몽 연구원들이 연구에 사용하는 온갖 기기 중 사용 연수가 끝난 것들을 보관하는 장소다.

가령 부서진 꿈결 수집기, 금 간 어둠 격리용 장비, 잉크가 날아간 라벨기.

그리고….

퇴역한 물약 제조 기기 같은 것.

나는 내 질문에 답변하던 곽제강의 편지 내용을 떠올렸다.

-폐기품이요? 아예 버린 게 아니라면 몇 번 정도는 더 쓸 수 있게 고칠 수 있을 겁니다. 보통은 사용 연수가 끝나서 넘기는 거니까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백일몽 기기’라는 정체성과 기능은 충실히 있지만, 없어져도 회사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느리며 덜 신경 쓸 만한 것.

[영리한 선택입니다, 노루 씨!]

나는 오늘, 그걸 노리고 이곳에 잠입한 것이다.

“…쓰레기잖습니까.”

“하지만 제게는 필요한 쓰레기입니다.”

“아니….”

백사헌은 할 말이 대단히 많다는 표정이 되었다가, 결국 뭔가 참아준다는 기색으로 물었다.

“어떻게 챙길 건데요.”

“챙길 방법이 있습니다. …잠시 고개를 돌려주실 수 있습니까?”

손목에 욱여넣으면 ‘정체 : 김솔음’ 확정 퍼포먼스 같지 않겠는가.

“…….”

놀랍게도 백사헌은 말씨름하려 드는 대신 말없이 고개를 돌렸고, 나는 낡은 물약 제조기를 성공적으로 문신 속으로 챙겨 넣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본 후, 몇 가지 눈에 띄는 것들을 챙기고… 약간의 처리를 했다.

‘됐어.’

얼마 뒤.

나는 괴담이 풀리는 순간까지 6층의 ‘안전 공간’에 숨어 있다가, 자연스럽게 백사헌과 함께 구조되었다.

그리고 별관의 봉쇄가 풀리는 순간, 빠르게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렇게 필요한 준비물이 완비됐다.

* * *

이틀이 지난 후.

백사헌은 그가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회사로 출근 중이었다.

‘별관에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이 망할 회사는 추가 수당과 하루 비번만 주고 포인트 한 점 더 주지 않았다.

덕분에 백사헌은 비번 내내 정보나 수집하고 있었다.

일단….

‘이상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됐잖아.’

-이번 사태 때문에 신입 연구원 중에 몇 명 퇴사한 것 같더라.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상하게도 10층에서 물약 제조기가 사라진 것은 더 커지지 않고 묻혔고, 사망자도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심문도 별로 안 끈질기던데.’

이번 어둠에 휘말린 거의 대다수의 사람이 인터뷰 몇 개 따고 격리가 끝나자마자 귀가 조치되었다.

그를 포함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별관 상층부에서 갑자기 그런 괴담이 터진 것 자체가 이상하긴 했다.

‘보통 지하에서나 격리 실패 뜨는 거 아니냐고.’

물약 제조기가 없어지고 괴담도 터진 건 분명 의도가 보였다.

누가 혼란을 주려던 것이다.

하지만….

생존 본능으로 기민한 백사헌의 머리가 번뜩인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 소행 같은데?’

함정.

반대로 그 물약 제조기를 누군가 훔칠 거라고 예상하고, 일부러 벌인 일이라면?

게다가 마지막 소문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아, 물약 제조기? 그거 금방 다시 찾았다던데? 뭐 전산 오류였대.

-이사가 찾아와서 다 처리했다더라. 청 이사였던가.

이사.

‘이사가 놓은 함정이라고?’

…혹시 요원을 노린 건가?

백사헌은 순간 의심했으나, 곧 코웃음 쳤다.

‘내가 알 바인가?’

게다가 실제로도 10층 물약 제조기는 안 훔쳤지 않은가.

요원의 노림수대로, 폐기된 물건이 몇 개 부서지고 사라진 것은 그냥 ‘시설 파괴’로 잡히고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묻혔다.

하지만 훔친 고물을 대체 어디다 쓰겠다는 건지 몰랐다.

백사헌은 자신과 요원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오늘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민님.

-알긴 아네요.

-그리고 호출기를 제때 눌러주신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도움이 됐으면 갚으라고요.

-그건 저희 둘 모두를 위해 한 행동인데, 제가 갚아야 하는 게 맞습니까?

망할 자식.

-그쪽이 쓰레기만 잔뜩 챙겨서 뭐 얻을 것도 없고!

-음… 그래도 얻은 건 반으로 나눌까요?

하여간 속 터지게 굴기는!

‘쓸모없는 걸 왜 내가 받냐고!’

이번에 괜히 휘말려서 위험해지기만 하지 않았는가. 이득 본 게 없어서 속이 쓰렸….

“저기요.”

“…!”

고개를 돌렸다.

막 회사 로비에 들어가려던 찰나.

백사헌의 등을 살짝 두드린 자는, 눈이 마주치자 약간 몸을 움츠렸다.

‘…캠코더.’

자신이 캠코더를 빼앗고 문에 처넣었던 자다.

그리고….

“아, 맞네요. 그분.”

요원이 구해줬던 구출자.

그건 재생물약을 복용하기라도 한 건지 멀쩡했다.

약간 헷갈리는 듯 좀 겁먹은 얼굴이었으나, 내면에서 자기 합리화를 마친 듯 자신에게 일단 인사한다.

“저, 그,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타 부서 인간은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주셔라’라면서 고개를 한 번 꾸벅이더니 사라졌다.

“…….”

이득…인가?

백사헌은 조용히 주먹 쥔 손을 보다가, 다시 시선을 뗐다.

그 요원이랑 있으면 낯설고 괴상한 일이 생겨서 불편했다.

하지만… 기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괜히 돌아간 건 맞잖아!’

백사헌은 낯선 느낌을 떨쳐내며 애써 평소처럼 생각했다.

그래, 그쪽 때문에 고생했으니까 한마디 해줘야 맞지. 보상도 재촉하고, 또… 그래.

‘아예 호 이사 프로젝트에 끌어들이는 것도 괜찮겠는데.’

거기도 요원이 있지 않은가!

사람 구하고 싶다면 그 이상한 특별시도 대충 맞지 않은가. 프로젝트에서 콩고물도 많이 떨어지니, 그에게 빚진 것을 갚기도 쉬울 거고 말이다.

‘박경환 연구원이랬나?’

오늘 사내에서 마주치면 바로 대화한다. 백사헌이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이었다.

‘어?’

회사 로비 앞에 익숙한 뒤통수가 있었다.

바로 그 박경환 연구원이었다.

“…!”

백사헌은 자기도 모르게 기운찬 목소리로 연구원을 불렀다.

“저기요!”

“…….”

“그쪽 말입니다, 연구원!”

“예, 예?”

뭘 어수룩한 척 모른 척한단 말인가. 백사헌은 피식 웃으며 맞장구나 쳐주자고 너그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자는….

“저, 부르신 겁니까?”

“…….”

그 표정.

야비하고 얼빠진 그 표현 한 번에, 백사헌은 깨달았다.

‘요원’이 아니었다.

“…….”

“절 왜 부른… 어, 어어어어?”

백사헌은 뒤를 돌아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종이배를 열었다.

저기요!

그쪽 잠입 아예 끝난 겁니까?

하지만 답장은 한참이고 오지 않는다.

같은 시각.

그가 연락하려던 ‘요원’은, 홀로 세광특별시에 잠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후우.”

김솔음은 세광특별시 아침역 승강장에서 눈을 떴다.

마음은 초조함과 기대로 타오르고 있었으나, 그는 최대한 억제하며 냉정히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중이었다.

이번에 폐기용 물약 제조기를 빼돌린 건 신중했고 깔끔했다.

‘이대로 이 제조기를 연구원들에게 넘긴다.’

그리고 수리가 끝나는 대로 설치 준비를 하자.

김솔음은 그렇게 행동 우선순위를 정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아침역에서 저울재판소가 사라졌지.’

그러면 이 역 건너편 승강장에 있을 유쾌연구소도 살펴볼 수도 있었다. 거기가 더 설치가 용이한지도 확인해 봐야겠다.

‘또 대합실이 생겼으려나.’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침역 승강장 위, 저울재판소가 있던 자리로는 텅 빈 대합실 공간이 보였다.

‘예상대로….’

하지만 대합실 안쪽에 누군가 서 있었다.

“…!”

김솔음은 반사적으로 몸을 물리고 안전을 확보한 뒤 누군지 확인하려 했다.

어둠 속, 낡은 대합실에 서 있던 그자는 천천히 승강장의 빛이 닿는 곳으로 걸어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

“…….”

1번 배심원.

호유원의 얼굴을 한 요원복을 입은 자가, 그곳에 말없이 김솔음을 보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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