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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24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굳히고 다시 아침역의 계단 위를 보았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호유원.’

정말로 그 백일몽 이사의 얼굴이 달린 세광특별시의 요원이, 낡은 지하철 공간에 서 있었다.

저울재판소에서 봤던 1번 배심원.

-저자는 빈껍데기입니다. 진짜는 저 속에 있습니다.

-자신의 그릇된 욕망, 그릇된 생각, 극단적 감정, 비정상적인 모든 판단을, 자기 안에서 분리하고 격리한 다른 인격들에게 넘겼습니다.

나를 추궁했던 배심원.

그래서….

-선별 후보인의 진술 타당성을 확인했습니다.

저자를 악의 저울에 달아볼 수 있는 온전한 하나의 상태로 인정합니다.

결국 내가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유도해 주었던, 호유원의 얼굴을 한 누군가.

나는 적절하지 않은 호칭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결국 입을 열었다….

“……요원님?”

1번 배심원은 나를 보고 부드럽게 웃더니, 대합실 안쪽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나는 반사적으로 그를 따라 대합실로 올라갔다.

하지만 낡은 대합실은 어둡게 텅 비어 있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따로 없군요!]

나는 침을 삼켰다.

[두 갈래의 길이 노루 씨의 눈앞에 있습니다. ‘쫓아가느냐, 쫓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야지.’

[오!]

나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이 도시의 괴담을 종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게 어떤 괴담인지 알아야 한다.’

지금 이 지하철역 바깥, 세광특별시를 정확히 어떤 괴담이 장악하고 있는가.

규칙이나 대응 방법은 없는가.

‘이 특별시의 재난관리국 요원이라면, 그리고 호유원이라면 알 확률이 높다.’

알아낼 수 있는 통로가 눈앞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결국, 아침역 계단 위 대합실에 발을 디뎠다.

“…….”

전체적으로는 역을 차지한 괴담이 ‘사라진’ 다른 역들의 대합실과 다를 바 없었으나, 좀 더 처참했다.

사람의 흔적이 이곳저곳에 더 많았다는 뜻이다.

‘여기로 도망친 사람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오물도 말라붙어 버릴 만큼 건조한 폐허, 스산하고 버려진 도시의 느낌이 났다….

그리고.

[저길 보십시오, 친구!]

‘세광지방법원’이라고 표기된 2번 출구의 표지판.

호유원의 형상을 한 1번 배심원은 그곳 앞에 서 있었다.

표지판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뒷모습만 보였다.

‘후우.’

“…저울재판소는 사라졌는데, 여기 계시는군요.”

1번 배심원이 나를 돌아보았다.

“다른 배심원분들도 여전히 여기 계신 겁니까?”

그는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고민하듯 미간을 찌푸리다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셔터가 내려간 2번 출구를.

‘…밖?’

“이 지하철역 밖에 계시다는 겁니까?”

1번 배심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더욱 알 수 없는 기분에 빠졌다.

“…이곳에 몇 년 전에 멸형급 재난 상황이 발생했다는 건 압니다. 저 밖에서는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대답은 없었다.

‘다른 방향으로 찔러야 하나?’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당신의 분신과 만났습니다.”

1번 배심원의 미소가 순간 확 흐려졌다.

“그는 이곳에 갇힌 스스로를 굉장히 되찾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이 세광특별시로 절 보낸 겁니다. …혹시 배심원님도 같은 마음입니까?”

나는 한 번 더 찔렀다.

“요원님께서도, 분신처럼 여기서 나가시고 싶진 않습니까?”

…….

1번 배심원이 입을 연다.

안개가 낀 듯 흐릿한 목소리가 들린다….

-저는 요원이 아닙니다.

요원이 아니라고?

나는 무심코 1번 배심원을 다시 훑어보았다. 호유원과 똑같이 생긴 얼굴을 보느라 그다지 시선을 주지 않았던 요원복까지….

그리고 깨달았다.

‘아.’

지금까지 요원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진짜 요원복과 묘하게 디테일이 달랐다.

무엇이 다르냐면….

‘소속이 없어.’

소속을 나타내는 표식이 있을 자리에 있는 건, 아이가 만든 것 같이 삐뚤삐뚤한 작은 부직포 배지였다.

…여우 그림이었다.

그 형식에 맞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게 도깨비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다정한 초자연 존재를.

“당신은 요원이 아니라… 재난관리국의 협력 영물이 맞았군요.”

1번 배심원은 조용히 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곳에 남아 있던 투영일 뿐입니다.

-진짜가 아니지요.

그리고 모래처럼 사지 말단부터 부서지기 시작했다.

“……!”

마치 더는 버틸 여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1번 배심원은 이미 검지가 사라진 자신의 손을 보다가, 씁쓸한 미소를 띠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마다 점점 더 빠르게 몸이 붕괴한다.

-아직 기회가 있으니, 여기서 그냥 돌아가세요. 당신이 굳이 누군가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흥미와 정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래도 상담은 꾸준히 받으시고요.

-이 말씀을 드리려고 잠깐 남아 있었습니다.

“잠시만,”

-반대편 승강장에 가지 마세요.

“……!”

그 말을 끝으로, 눈앞에 있던 호유원의 형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남은 것은 하얀 재, 그리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낡은 ‘요원복 형태의 겉옷’ 한 벌뿐이었다.

“…….”

나는 그것을 주워 들었다.

하얀 잿가루도 혹시 몰라 생수병을 비우고 그 안에 최대한 챙겨 담았다.

‘…반대편 승강장이라.’

거기 있는 유의미한 시설은, 내가 알기론 하나뿐이다.

유쾌연구소.

[흠, 삶의 마지막 충고라. 감성적이지만 꼭 진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습니다…. 당신의 결정을 듣고 싶군요, 노루 씨?]

나는 덤덤히 말했다.

“가보자.”

[역시!]

‘내가 정말 반드시 안 가길 바랐다면 반대편 승강장이라는 힌트도 안 줬을걸.’

이건 일종의… 그러니까, 끔찍하게 고생스러운 걸 앞에 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으로 보는 게 옳았다.

‘그래도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하고.’

다만 브라운은 좀 설렌 모양이다.

[에피소드의 흐름을 아는군요, 친구! 어느 쇼 출신인지 정말 행동으로 증명할 줄 아는 모습입니다….]

…이렇게까지 호응하니 좀 무섭지만 말이다.

‘후우.’

나는 손목 안에 1번 배심원의 ‘요원복’과 잿가루를 넣어둔 후,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반대편 승강장에서, 다른 역들과 마찬가지로 ‘기계실’로 위장한 유쾌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아침역의 유쾌연구소 시설은 거의 타지 않았다.

“…!”

그을음이 있었으나 거의 멀쩡한 사무실 복도가 보인다.

스프링클러가 제때 역할을 한 걸까? 아니면 화재가 일어난 곳과 꽤 멀리 떨어진 층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중요한 건 하나다.

‘단서!’

[오, 최후의 순간까지 생존자가 있었을 듯한 공간입니다!]

나는 다급히 사무실 문을 열고 곳곳을 뒤졌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브라운.”

[내 친구가 이 브라운을 부르는군요.]

“여긴 사무실이 아니야.”

문 너머마다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불에 탄 흔적도 없는데, 책상도 PC도 의자도 없다.

[그건 어떤 뜻일까요?]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방 모퉁이에 동그란 물건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연두빛 털실 덩어리.

괴담 ‘유쾌연구소의 장난감 메이커’의 로고 그림이 그 위 띠지에 금박으로 붙어 반짝거린다.

“이 층은 아마… 유쾌연구소에서 창고로 쓰던 곳 같다는 뜻이야.”

[호오.]

박스들은 옮길 수 있으니까 흔적이 없는 것이다.

화재가 났을 때, 아이템 따위를 사용해서 여기 있던 물건들을 싹 옮겨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이 세간에 풀리면서… 이런저런 괴담이 발생했다….’

…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들어맞았다.

나는 몇 군데를 더 둘러보았다.

모조리 비어 있었다.

[아쉽군요. 보물찾기처럼 즐길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브라운의 이 아쉬움은 좀 이른 것이었다.

나는 비상문 바로 앞방에서 흔적을 발견했으니까.

[흠. 평범한 책상이군요.]

유일한 책상이기도 했다.

‘창고 관리 직원용인가.’

하지만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책장 위에 USB가 놓여 있었다.

유쾌연구소의 로고가 새겨진, 익살맞은 빨간 토끼 모양이다.

‘그렇지.’

나는 당장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 자리에서 바로 확인해 볼 수 있으니까.

‘노트북을 따로 챙겨 왔거든.’

[오!]

지난 몇 번의 경험을 토대로 한 탐사준비물이었다.

연구원들을 줄 생각이었으나 여기서 써도 괜찮으리라.

나는 얼른 인벤토리 문신에서 노트북을 꺼내 실행한 후, USB를 꽂았다.

당연하지만 와이파이는 잡히지 않았으나, USB는 성공적으로 읽히며 이동식 디스크가 뜬다….

비밀번호 : ___________

아.

[이런, 길이 막혔군요. 대체 무슨 수로 이 흔적도 안 남은 연구소에서 비밀번호를 알아낸단 말입니까?]

“…….”

[친구?]

나는 입력창에 ‘비밀번호 힌트’로 뜬 글을 읽었다.

힌트 : 우리의 첫 시작

비밀번호 : ___________

[설마… 창립 연도같이 뻔한 숫자를 비밀번호로 걸어두는 멍청한 짓을 했단 말입니까?]

솔직히 평소라면 나도 반사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가 사레가 들렸을 것 같으나, 지금 내 눈은 다른 곳에 있었다.

비밀번호 입력창의 자릿수 표기.

비밀번호 : ___________

‘…11칸.’

알파벳 혹은 숫자, 기껏해야 특수문자일 텐데, 그럼 날짜로 환산되긴 어렵다.

‘유쾌연구소의 첫 시작….’

혹시 그들의 첫 발명품인가?

어둠탐사기록을 떠올려서 그 연구소의 첫 상품을 생각하려고 해도 떠올리기 어려웠다. 설마 괴담 등록 순서는 아니겠지.

‘유쾌연구소의 상품들을 다 떠올려 봐야 하나?’

대부분 길고 화려한 명칭이다. 11자리 알파벳으로 환산되기엔 어렵….

…….

…!

[오, 내 친구가 무언가 적기 시작했습니다.]

있다.

11칸.

나는 홀린 듯이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려 움직였다.

나를 이곳에 소환하는 데에도 썼던 것.

그들의 발명품 중에, 내가 아직까지도 잘 곁에 두고 있는 하나.

비밀번호 : ckrgksclsrn

착한 친구.

나는 엔터키를 눌렀다.

잠금이 풀리며, 디스크가 열렸다.

‘풀었다.’

충격이 전신에 퍼지는 것도 잠시, 나는 다급히 파일을 확인했다.

[남기는 말.txt]

메모장 파일이었다. 더블 클릭으로 열자, 다급히 적어내린 듯 용건만 적어놓은 문장도 아닌 것들이 보인다.

화재 발생

지하철역으로 대피중

귀중품 -> 소화전

소화전.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복도로 뛰쳐나가, 그곳에 있던 소화전을 열어보았다.

안쪽을 더듬어 뜯자, 안에 숨겨진 공간에 금고가 들어 있었다.

“…!”

[보물을 찾았군요. 축하합니다!]

나는 그것을 통째로 손목의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슬슬 적재량이 부족한지 좀 욱여넣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대박이다.’

유쾌연구소 창고에 있던 귀중품이라니.

나는 땀을 닦아내며, 조금 들뜬 마음으로 메모장의 내용을 마저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확ㅇ;ㄴ요망:정부ㅜ대응책(위급)

그건…….

…….

…….

…….

…….

…….

아.

* * *

“해금 언니, 그럼 저 퇴근합니다~”

“그래, 그래.”

해금 요원은 하품하며 컨테이너에서 나가는 자신의 팀원을 보며 픽 웃었다.

이번에 복직한 팀원이었다. …고명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녀가 섭외했고.

아무리 해도 썩 익숙해지는 일은 아니었다.

‘후우.’

그나마 고명은 돌아올 희망이 있어 마음이 좀 나았다.

해금 요원은 자신의 검을 닦아주며 퇴근 준비를….

“요원님.”

쿵.

컨테이너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 해금을 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이 창백한 사람.

포도 요원, 김솔음이 거기 서 있었다.

“너…!”

해금은 순간 반가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가, 김솔음의 여러 상황을 떠올리고 표정이 굳었다.

갑자기 나타날 이유에 대한 것도.

“…괜찮은 게 맞나?”

“예.”

대답은 시원했으나 안색은 아니었다.

“요원님들께 또 다른 이상이 생긴 건 아닙니다.”

“알았다. 일단 여기 앉고.”

포도 요원은 그녀의 안내 겸 강권에 따라 의자에 주저앉듯이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특별시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

호쾌하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해금은 다소 의아했다.

‘왜 날 찾아온 거지?’

같은 현무 1팀이던 두 녀석과 더 친근하게 지내지 않는가.

솔직히 해금 본인 역시 이 김솔음이란 녀석과 썩 엮일 일이 많아서 나름의 정이 있긴 했지만, 타팀이었기 때문에 후배 입장에서는 분명 거리감을 느낄 텐데.

심지어 스파이 출신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굳이 왔으니,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해금 요원은 기다렸다.

한참 침묵하던 포도 요원이 입을 열었다.

“봉쇄된 특별시 말입니다.”

“그래. 뭐 새롭게 알아낸 소식이 있는 건가?”

“…그 도시를 봉쇄한 방법 말입니다.”

봉쇄한 방법?

“관리국에서, 도시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방식으로 하지 않았습니까.”

“정황상 그렇지.”

인지 말소.

사람들이 더는 그 특별시의 존재에 대해서 인지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봉쇄한 것이다.

“그 봉쇄를 위해 어떤 의식을 사용하는 건지 아십니까?”

“…대강은 알지.”

해금의 눈빛이 음울해졌다가 다시 빛이 돌며 깊어졌다.

“하지만 말해주긴 어려운데. 애초에 나는 그런 의식 계통은 담당자도 아니라서 말이야.”

그건 차라리 최 씨 녀석이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도 분별력이 있다면 미주알고주알 떠들진 않겠지.

“보통 그런 건 대가도 크고 위험한 의식이라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다.”

“압니다.”

포도 요원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그럼… 특별시를 봉쇄하면서 그 대가는 어떻게 마련했을지, 혹시 생각해 보셨습니까?”

해금 요원은 한숨을 참았다.

“적어도 무고한 시민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을 거다. 뭐, 선별 저울처럼 그다지 떳떳하지 않은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만.”

“…….”

“…포도 요원?”

“요원님.”

김솔음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읽었던 USB의 마지막 내용을 떠올리며.

도시전체를 향한 주술적 이상현상

정부?

거대한 인간 공양의식??

이대로면 죽는다무조건 나가야한

“관리국에서… 봉쇄를 위해 세광특별시 시민들을 모조리 인신 공양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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