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37화
청동 요원이… 왜 어린 모습으로 세광고 교복을 입고 있지?
“…….”
미친 사태에 정신이 멍해질 뻔했으나, 나는 당장 머리를 가다듬고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청동 요원은 ‘검은 그늘 속에서’ 괴담에서 봤던 고등학생 당시의 외양보다도 살짝 어린 외관이었다.
그리고 달라진 건 교복만이 아니었다.
표정이나 분위기에서 확실히 어린 티가 났다.
“저….”
그리고 나를 못 알아본다.
‘…세광특별시 괴담에 동화된 건가?’
나처럼, 적절히 이 세광특별시 5월 4일의 시민으로 ‘배치’된 상태 말이다.
…잠깐만.
혹시 여기 떨어진 일행들이 다 이런 상태라면, 그렇다면 대체 무슨 수로 데리고 탈출하지?
어떻게 설득하지?
일행을 찾아냈다는 안도감은 잠시였고, 급박한 선택지는 또 찾아왔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동안, 내 뒤를 따라 뛰어온 고등학생 류재관은 숨을 고르더니 말을 고른다.
“아까 자전거를…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나는 그 앳되기까지 한 얼굴을 보았다.
당혹스러움과 염려가 섞인 표정이었으나, 그 나이에 괴담에서나 볼 법한 일이 현실로 벌어진 걸 목격한 것 치고는 침착했다.
‘…청동 요원님이 처음 괴담에 휘말려서 재난관리국 구출된 게 학생 때라고 했었지.’
설마 그 이전 시점으로 반영된 건가? 아니, 중요한 건 일단 어떻게 동행하느냐다.
나는 명찰이 없는 상대의 교복을 보는 척을 하며 물었다.
“그보다… 학생?”
“예.”
“혹시 목적지가 세광고등학교입니까? 그쪽 교복 같은데.”
“그렇습니다만….”
“잘됐네요. 나도 그쪽으로 가는 길인데.”
그리고 공유자전거 거치대로 접근해서, 자전거 잠금장치를 돌로 부수기 시작했다.
“…!”
“스마트폰으로 공유자전거를 대여하는 건 이제 어려울 겁니다. 괜한 시도하느니 이쪽이 빠를 거고.”
“…….”
“오면서 혹시 부풀어 오르는 사람 봤습니까? 아니면 재난 문자나.”
“…예.”
“이제부터는 알람만 듣고 재난 문자는 절대 확인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길가에서 우르르 걷고 있으면 절대 접근하지 말고.”
그 사이 자전거 하나의 잠금장치가 완전히 부서졌지만, 나는 손을 멈추지 않고 다음 자전거의 잠금장치까지 부쉈다.
그리고 하나를 꺼내어 고등학생에게 내밀었다.
“자전거 탈 줄 압니까?”
고등학생 류재관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굳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나는 자전거를 탄 채 앞장서서 달리고 있었다.
뒤에는 고등학생 류재관이 붙어서 내가 넘긴 공유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 악물고 따라오는 것을 보니, 청동 요원의 자전거라이딩 실력은 싹수부터 좋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능숙하게 곳곳에서 들리는 재난 문자 소리와 비명을 피하며 계속 우회해 세광공업고등학교로 달렸다.
하지만 저런 위험 신호들도 곧 사라질 것이다.
…이 주변에 생존자가 남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문자가 울리지 않게 될 테니.
‘빨리 움직여야 해.’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간다. 나는 앞으로의 루트를 기획하다가… 무언가 목격했다.
편의점.
“잠깐만.”
“예?”
나는 류재관의 움직임이 휘청이지 않는 걸 확인하며, 편의점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리고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것저것 쓸어 담았다.
‘식량 위주로.’
다만 과하게 담지는 않았다. 기동성이 필수니까.
대신 고민하다가 개중 제일 튼튼해 보이는 장우산 두 개와 공구 세트를 구매했다.
그리고 계산하는 내내 이어폰을 꽂은 채 책을 힐끔거리고 있던 카운터의 알바생에게 말했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세요.”
“예?”
“시청 부근에서 생화학 테러가 나서 퍼지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지하철역으로 도망치세요.”
“!!”
그제야 자기 폰을 켜더니 연락을 확인한 편의점 알바생은 당황한 얼굴로 미친 듯이 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나는 나오면서, 그 알바생이 편의점에서 나처럼 물건을 챙기는 것을 얼핏 보았다….
그리고 자전거를 잡은 채 엉거주춤하게 나를 보는 고등학생 류재관을 보며 말했다.
“가방 열어보세요.”
“예?”
나는 류재관의 학교 가방 안에도 생수 작은 병 두 통과 칼로리 바를 넣었다. 그리고 우산을 건네서 자전거 옆에 달아두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챙겨가는 게 좋겠습니다. 우산은 급할 때 밀치는 용도로 쓰고.”
“가, 감사합니다.”
류재관은 가방을 잡았으나, 머뭇거리며 말한다.
“저, 돈은 드리겠습니다.”
“학생한테 이런 비상사태에 돈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자전거 타세요. 빠르게 세광고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예.”
류재관은 할 말과 궁금증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지 땀을 닦으며 다시 자전거를 잡았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아시는 겁니까?”
“……익숙해서요.”
“예?”
나는 말을 돌렸다.
“그보다 등교 시간이 지났는데, 학생은 왜 지금 학교에 가는 겁니까?”
“저는, 은행에 갈 일이 있어서 잠깐 늦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연락은 했습니까?”
“…괜찮습니다.”
그 완곡한 대답에 나는 이곳에서 류재관의 설정값도 현실과 비슷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엔 보육원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더는 이야기하지 말자.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조용히 자전거를 몰았다.
체격이 좋아서 그런지, 이후로도 류재관의 자전거는 무사히 나를 따라왔다.
‘됐어.’
곧 세광공업고등학교 담장이 보였다.
“후우.”
학교 주변은 아직 소란스럽진 않았다.
그러나, 반대편 담장과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는 재난 문자 소리가 들린다….
엇갈리는 비명과 함께.
“…….”
“…….”
나와 류재관은 아주 조심스럽게 학교 정문으로 접근했다.
상대가 나를 살피는 눈빛이 느껴진다.
“저, 왜… 이 학교에 오신 겁니까?”
“찾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지체 없이 대답하며,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교정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구석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전거를 세워 두자, 류재관도 비슷하게 나를 따라서 자전거를 두고 따라온다.
손에는 나를 따라 우산을 든 채였다.
그건 묘하게 기특하게 느껴졌으나, 긴장감은 도리어 고조된다.
‘…경비원이 안 나오는데.’
묘했다.
우리는 발걸음 소리도 조심하면서 학교 현관을 향해 갔다.
곧 고등학생 류재관이 현관문을 잡았다. 그리고 문을 당겼는데… 묘한 저항감에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뭔가가 끼인 듯이.
‘음?’
류재관은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문을 잡고 더 강하게 당겼….
“잠깐.”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뭔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류재관을 만류한 뒤, 현관문을 개방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창문으로 그 학생을 불렀다.
1층 복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그곳에는 부드러운 색의 커튼이 쳐져 있었었으나, 틈새로 내부를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후우.”
나는 먼저 틈새를 들여다본 후, 류재관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틈새로 고개를 돌린 그 학생의 긴장한 얼굴은 곧 새하얗게 굳는다.
“…왜?”
역시.
나는 복도에 누워 잠든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다.
‘검은 그늘 속에서’ 괴담을 클리어한 후에 보았던 평화로운 엔딩 크레딧의 모습이었다.
교실 문과 창문마다 틈새에 부적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며, 나는 기이한 여운을 느꼈다.
‘홍 팀장님이 해놓은 결계가, 이런 식으로 구현되어 있었던 건가….’
반복되는 재난의 날에서도 아이들이 계속 잠들어 있도록 만드는 것.
아마 저 가사 상태는 내가 먹었던 백설산 사과처럼 일종의 사망으로 판정되어, 재난 문자로 번지는 멸형급 재난으로부터 격리된 상태 같았다.
그러니 학교 문을 열면 안 되겠지.
아마 쉽게 열리지도 않았겠지만.
하지만 이 학교 학생인 류재관은 학교 복도에 나란히 쓰러져 있는 학생들을 보며 섬뜩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이게 무슨, 대체….”
나는 조용히 류재관을 돌아보았다.
“혹시 기억나는 건 없습니까?”
“…기억이요?”
“저 모습을 보고 떠오르는 게 없냐는 뜻입니다. 특히,”
나는 손가락으로 부적을 가리켰다.
청동 요원이 직접 그렸던 문양을.
“저 부적 말입니다.”
“…….”
부적의 문양을 훑는 류재관의 눈에 순간 묘한 안광이 깃들었다.
하지만 곧 걱정과 혼란으로 흐려지더니, 청소년의 눈빛이 도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눈에는 묘한 경계심과 긴장이 깃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
하기야 나도 600번 넘게 반복하고서야 빠져나왔는데, 청동 요원이 이런 말로 갑자기 정신을 차리길 기대하는 건 무리한 발상이다.
도리어 이 판에 부적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하는 내가 수상쩍어 보일 뿐이겠지.
‘초조해하면 안 돼.’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는 고등학생 류재관을 돌아보며 웃었다.
“저건 보호 용도의 부적입니다. 이 학교는 누군가 부적을 뜯지 않는 이상, 지금 벌어지는 사태에서 안전할 겁니다.”
대체 당신이 그런 걸 어떻게 아냐는 표정이 고등학생의 얼굴에 스쳤으나, 경계심보다는 탐구심에 가깝게 기색이 변한다.
“그러니 친구들은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저, 선생님께선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만날 사람이 학교에 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 호유원.
하지만 마음속에서 의문이 피어오른다.
학교 문이 잠긴 채로 다 잠들어 있는데, 상담 교사는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그 순간.
나와 류재관의 재난 문자가 동시에 울렸다.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문의 근처.
학교 건물 모서리 그늘에서, 미소 띤 경비원이 한 손에 폰을 든 채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늘에서 벗어나 천천히 우리에게로 걸어온다.
얼어붙은 채로 그것을 보았다.
나는, 그 경비원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척추 뒤로 연결된 상반신이, 꼬리처럼 달린 하반신이 하나씩 더 있었다.
다른 경비원과 뭉쳐진 것이다.
“…!”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교문 너머로 사람들이 보였다.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근 아파트의 사람들로 보이는 세광시 주민들.
큰길을 따라 걷는 그들 중 일부 물결이, 교문 바로 바깥으로 보였다….
‘망할.’
경비원들이 운동장을 걸어온다.
재난 문자가 계속 울리고, 교문에 나갈 길이 없어진다….
나는 스마트폰을 잡아 재난 문자를 확인하려는 내 손을 친 후, 류재관의 스마트폰도 잡아 내렸다.
‘정문으로는 못 나가.’
상담 교사를 기다리는 건… 일단 포기한다.
“학생.”
“…….”
“조심히, 자전거 잡자마자 후문으로 가는 겁니다. 알았죠? 절대 교문에 있는 인파랑 마주치면 안 됩니다.”
류재관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식은땀이 턱을 타고 내려간다.
그러려면….
‘…역시 일단은 내가 저걸 유인해야 하는데.’
진짜 하기 싫지만 별 수 없었다.
나는 우선 인파가 아니라, 경비원을 주목했다.
‘저게 학교 건물 안에 들어오게 하면 안 된다고.’
혹시라도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온 변칙 사태 때문에, 저 경비원이나 인파가 유인된 거면 진짜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는 소름 끼치는 것을 억누른 채, 침을 삼켰다. 그리고 곧장 교문 근처를 향해 뛰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발을 뗀 순간이었다.
[이런, 선객이 있군요. 친구!]
나보다 먼저 교문으로 향하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이 너무 익숙했다.
상담 교사.
내가 기다리던 그 존재는 약간 당황한 듯 했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뛰기 시작했다.
“…!!”
상담 교사는 바깥에 인파가 있는데도 꿋꿋하게 교문을 향했으나, 곧 경비원들을 보고 멈춰 섰다.
그리고 ‘경비원들’도 상담 교사를 포착한 순간.
…교사가 뚜벅뚜벅 경비원들에게로 다가간다.
‘안 돼.’
등골이 오싹해졌다.
‘미쳤나!’
결국 나는 이를 악물고 뛰어서 자전거를 잡았다.
“지금 가세요! 후문입니다!”
“…!”
그리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미친 듯이 교문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휠이 바닥에 부딪힌다.
‘제발!’
믿는다, 내 재난관리국식 자전거 실력!
하지만 그 순간….
상담 교사가 경비원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
그것은 마치 뒤적거리며 무언가 찾는 것처럼 변이한 경비원의 머리 살점 속을 뒤적거렸다. 그 동작에 경비원이 흔들린다.
나는 알고 있었지만 실감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깨닫는다.
상담 교사는 인간이 아니다.
협력 영물.
그러니까, 저것도 괴담이었다.
반사적으로 자전거 바퀴를 멈췄다.
눈앞의 존재는 마치 이게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것처럼 진지하고 학술적으로 경비원의 속을 탐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
상담 교사가 움찔거렸다.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 듯, 손을 빼려고 한다.
하지만 손은 빠지지 않았다.
도리어 상담 교사의 팔이 경비원의 변이한 몸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 재난 문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린다. 상담 교사의 주변이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내 머릿속에 이상한 자극?기왓집?이상하고푸른숲속고열마마가 몰아치는 것 같….
“흡!”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눈을 들었다.
그 사이 상담 교사는 경비원의 머리에서 팔을 거의 빼냈으나, 드러난 팔은….
흐물거리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
그리고 경비원이 상담 교사를 붙잡으려는 듯, 느릿하게 손을 뻗고 있다.
‘젠장…!’
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자전거를 몰아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적 비명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경비원들’ 앞의 상담 교사를 잡아챘다.
“…!”
자전거의 반동으로 상담 교사의 팔이 간신히 경비원에게서 빠져나온다.
이상한 두통과 압력에 내 코에서 코피가 떨어졌다.
상담 교사의 무게 때문에 자전거가 쓰러질 뻔했으나, 나는 거의 힘으로 자전거를 끌다시피 균형을 맞추고 다시 타기 시작했다.
머리가 흔들린다.
[곡예라고 해도 좋을 솜씨입니다, 노루 씨!]
반쯤 자전거에 끌려온 상담 교사는 짐짝처럼 내 뒤에 얹혔다.
하지만 스스로 감염된 팔이 내 등을 스치지 않도록 잡는 것 같았다.
‘…하.’
나는 세 번쯤 엎어질 뻔하면서 간신히 ‘경비원들’을 따돌렸다.
손이 축축해진다.
나보다 자전거 잘 타는 요원들의 움직임이 떠오르자 이렇게 최 요원과 청동 요원이 그리울 수가 없었다.
‘제발.’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뒤에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대화는 나중에!”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후문 방향으로 달려, 거기서 나오는 류재관과 합류해 간신히 다시 방향을 잡고 달렸다.
최대한 재난 문자 알림이 들리지 않는 쪽으로.
양손이 다 막혀 있었기에, 다행히 재난 문자를 무심코 확인하는 일은 없었다.
그동안, 내가 낚아챈 상담 교사는 입을 다문 채로 뒤에 실려 있었다.
“후욱!”
나는 전력 질주로, 학교 뒷산 근처에서야 자전거를 멈췄다.
시청에서 꽤 떨어지고 인적이 드문 이곳은 아직 재난의 감염원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괜찮으신가요?”
“…….”
어깨를 잡은 따스한 손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자전거 뒤에 실려 있던 상담 교사가, 감염되지 않은 손으로 나를 잡고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호유원의 얼굴이나, 낯설 정도로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의 사람.
“요원…이시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치신 곳은… 아, 없는 것 같네요. 다행이에요.”
호 이사의 본모습.
그가 간절히 찾던, 세광특별시에 갇힌 목표가 나를 보고 있었다.
“협력 영물님.”
“그냥 상담 선생이라고 불러주시면 되는데.”
“선생님.”
나는 침을 삼켰다.
이런 말 하기 정말 싫지만….
“팔 주십시오.”
“예?”
“팔 주시고, 이 악무십시오.”
아무리 봐도 절단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가 미소 지으며 만류했다.
“오염은 시민분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에요. 저는 괜찮….”
하지만 자신의 팔을 다시 들여다본 상담 교사의 표정이 흐려진다.
형체가 흐물흐물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작하겠습니다.”
“…….”
교사가 만류를 멈췄다.
나는 공구 세트에서 적당한 것을 꺼내, 처치를 시작했….
“…학생.”
“…….”
“뒤를 돌아보고 계세요.”
하지만 류재관은 창백한 얼굴로 내 옆에 앉았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안 됩니다.”
“뒤로 가세요.”
그러나 이 고등학생은 꿋꿋하게 내 옆에서 공구 세트 속 톱을 건넸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분명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도, 창백한 얼굴 가운데의 두 눈에 고집스러운 의지가 보인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결국 절단을 시작했다.
철퍽.
하지만 상담 교사의 표정은 평온하다.
이상할 정도로 고통도 무엇도 없는 듯했다.
형체가 무너진 팔꿈치 아래는 그냥 떨어져 나갔다.
마치 거기에 없던 것처럼.
삭제되듯이.
“…….”
“감사합니다.”
사람이 아니라서인가.
나는 톱을 잡고 있던 손에 소름이 돋는 것을 감추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사라진 손 부위를 무덤덤하게 보는 상담 교사는 사람이라고 보기엔 기이할 정도로 평온한 안색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그 목소리에 약간의 조급함이 깃든다.
“혹시 좀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이 재난을 종결시키기 위해 갈 곳이 있습니다. 찾아와야 하는 게 있거든요.”
“…….”
“역까지만 자전거를 태워주시면, 요원님이 구조하시는 동안 저는 현무팀 요원분들과 종결을 시도해 볼게요.”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상담 교사와 요원들의 모든 노력은 처참하게 실패한다.
이 안에 갇혀서, 끝없이 재난의 날을 반복하면서.
“…….”
기분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상담 교사는 내 안색을 보더니, 일부러인 듯 농담처럼 말한다.
“제 재킷을 입고 계시니까, 이 정도는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
“지부 휴게실에서 찾으셨나 봐요.”
나는 내 옷을 내려다보았다.
…1번 배심원의 재킷.
그러니까, 호유원의 재난관리국 재킷이 여전히 내 몸에 걸쳐진 채로 있었다.
눈앞의 상담 교사 호유원은 내 재킷에 있는 여우 그림 패치를 보고 있던 것이다.
자신의 것임을 눈치챈 거다.
‘…그렇다면.’
나는 역으로 머쓱하게 웃었다.
“선생님의 옷이 맞을 겁니다. 제가 일을 쉬고 있던 중이라, 급해서 마구잡이로 입고 왔어요. 죄송합니다.”
상담 교사의 초조하던 얼굴에도 약간의 미소가 번진다.
“괜찮습니다. 청룡팀 요원이신가요?”
그때였다.
“…요원이라고 하셨습니까?”
나와 상담 교사 둘 모두 그를 돌아보았다.
류재관.
약간 떨리는 목소리에는, 혼란과 공포를 가라앉히려는 침착함이 있었다.
하지만 희미한 호기심도 있다.
“어떤… 요원이신 겁니까?”
“…….”
그 순간 알아차렸다.
류재관과 동행할 방법을.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보셨죠? 재난 문자, 괴물, 이상한 현상들 말입니다. 괴담 같은 것들이죠.”
“…….”
고등학생 류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이건 초자연 현상이라고 불리는 재난입니다. 저는 이 현상을 전담하는 정부기관… 초자연 재난관리국 소속의 요원이고요.”
“…!”
“이곳에 온 건, 반드시 구출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입니다….”
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빛내는 류재관을 보며 말했다.
“그중 하나가 누군지 아십니까?”
“…상담 선생님이십니까?”
“아닙니다.”
나는 웃으며 고등학생을 보았다.
“당신입니다.”
“…!”
“류재관 학생.”
알려준 적 없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낯선 요원을 보며, 고등학생 류재관의 눈이 흔들렸다.
“빨리 찾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상대를 잡으며 말했다.
“류재관 학생이 이 재난을 안전히 탈출할 때까지, 제가 동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