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41화
침을 삼켰다.
사자탈의 영험하고 무시무시한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
노랗고 삐죽삐죽한 두 눈은 마치 스스로 살아 있는 것처럼 탈 속에서 움직인다.
“그거 아나? 사자탈은 지역마다 다양한 전승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잡귀를 쫓는 거지.”
“…….”
사자탈의 머리채가 내 어깨로 쏟아진다.
금방이라도 탈이 뾰족한 이빨이 우수수 난 주둥아리를 벌릴 것 같다.
“꽝철이에게 홀려서 시민을 해치는 것도 잡귀가 아닐까~?”
나는 그 오싹한 것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보다가….
“…아뇨.”
대답했다.
“저는 요원인 척 사칭해서, 이 대규모 재난 사태에 분탕을 칠 마음이 없습니다.”
“오호라.”
“그리고 제 결백은 요원님도 아실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사자탈의 머리가 기울어지며, 머리채가 내 등 아래로 흘러내렸다.
차갑고 이상한 느낌이 든다.
식은땀 한 방울이 목뒤로 흘러내렸다.
‘제대로 정리해야 해.’
나는 초조한 마음을 최대한 억누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결백하다고 생각하시니 제게 요원용 장비를 빌려주신 거겠죠.”
“…!”
“의심스럽다면 굳이 도망칠 때 도움이 될 장비를 안 줬을 겁니다. 아닙니까?”
나는 간신히 눈만 돌려서 내 일행을 확인했다.
‘요원끼리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별다른 의심 없이 이쪽 대신 주변의 참상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로 요원님이 냄새로 삿된 것을 가려내실 수 있다면, 제게 악의나 죄책감이 없다는 걸 아실 겁니다.”
아마 내가 구출하려는 저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내 태도를 보고… 진실하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제발.’
나는 손이 구부러드는 듯한 긴장을 풀려 노력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백일몽 이사와 계약을 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이 사태에서 제가 지금부터 할 일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
사자탈이 흔들리며 나를 들여다보듯 움직인다.
“어떤 일을 할 거지?”
“말씀드린 대로, 저 두 사람을 구출할 겁니다. 제게는 구조해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갈등하다가 말했다.
“가능하다면, 이 재난을 종결시키고 싶습니다.”
사자탈은 침묵한다.
그리고 탈이 흔들리더니….
“진심이로구나!”
머리채가 휙 걷혔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 사이, 익살맞은 움직임을 되찾은 사자탈이 내 팔을 잡았다.
“그렇다면 구출을 잘 부탁드립니다. 동료 요원님!”
“…예.”
후우.
나는 어느새 다시 붙임성 좋은 요원의 모습으로 돌아온 사자탈을 보며 속으로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감이 몸에 감돈다.
…사자탈은 내 팔을 놓고 있지 않다.
‘…묘하게, 괴담 속 개체를 앞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저 사자탈 때문인가? 저 요원에게서 인간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자탈 요원은 꽤 정겹게 고개를 뒤틀었다.
하지만 내게서 떨어지지 않고, 팔을 절대 놓아주지 않은 채다.
여차하면 잡아가겠다는 듯이.
“그런데 어쩌다가 그 악랄한 꽝철이가 요원님 몸에 똬리를 틀게 하셨답니까?”
“…….”
일단 꽝철 씨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만….
‘백일몽 이사 중 하나인가.’
하지만 내가 여기서….
-개발부 이사 둘이랑 계약했는데 하나는 이 동네 협력 영물이 한 먹고 미쳐 돌아버린 모습입니다. 아, 그리고 그전에 고용 계약도 맺어서 어쩌면 다른 인사쪽 이사와도 계약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어 다리라고 할까요?
…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다. 나는 말을 삼키고 포괄적으로 돌려서 정리했다.
“백일몽과 어떻게 계약하게 됐냐는 말씀이죠?”
“그렇지요!”
그렇다면 간단명료한 답이 있다.
“속았습니다.”
“앗.”
“그리고 벗어날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사자탈 요원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내 사자탈의 하얀 머리채가 둥둥 뜬다.
“음. 그래서 관리국에 폐가 되지 않도록 휴직 중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사실 제 안위를 위해서도 있습니다.”
제가 스파이였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정말 아니라서 억울하다….
“암요, 그렇겠죠!”
다행히 넉살좋게 맞장구를 쳐준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는 남은 역을 보았다.
…8분, 정도 남은 것 같다.
‘이제 곧 세광역에 도착인가.’
이런 타이밍에 요원들에게 붙잡혀서 더 늦어지면 세광역에서 상담 교사를 못 찾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 놓치는 것이다.
‘빨리 분위기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갑자기 서늘해진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그것도 참 이상하네.”
“…예?”
“그렇다면 휴직 중인 동료 요원님은 대체 어떻게 재난을 알고 이 도시의 누군가를 구조하기 위해 들어오셨대요?”
“…!”
“재난이 터진 지 아직 반나절은커녕 몇 시간도 안 지났는데 말이죠. 그런데 용케도 구조할 시민까지 찾아서 여기 계신다 싶습니다!”
“…….”
“바깥에 소식이 전해졌어도, 이것 참, 너무 짧아서 말입니다. 공교로운데!”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지적이었다.
‘타임라인이 안 맞잖아.’
나는 재난 문자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 도시에 있었다.
그리고 세광시 외부에서 다른 도시의 요원들이 진입해 오는 건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내가 ‘구조 요청자가 있어서 진입했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시간상 앞뒤가 안 맞으니까.
…답변을 생각해 낼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젠장!
‘역으로 찔러야 하는데….’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무언가를 눈치챘다.
저 너머, 앞 칸에 보이는 요원들.
…!
“…그렇게 따지자면 요원님도 수상합니다만.”
“어허? 제가요?”
“예.”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요원님께서도 세광시 지부의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저길 보십시오.”
내 시선에 따라 사자탈 직원의 시선이 간다.
앞 칸에서 사고를 수습하고, 시민들에게 ‘초자연 재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요원들의 모습에게로.
“저기 계시는 요원님들과, 제 눈앞의 사자탈을 쓰신 요원님은 서로 재킷 디테일이 좀 다릅니다.”
“…….”
앞 칸 요원들의 재킷 포켓에는 세광시 로고의 패치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자신의 재킷 포켓을 확인한 사자탈 요원이 고개를 든다.
“…동료 요원님. 굉장히 좋은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사자탈은 동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 잠깐 대타로 이 지부에 지원 근무를 온 거라서 말이죠! 그러니 당연히 함께 출동할 수밖에 없죠.”
후우.
“그런데 당신의 옷은… 협력 영물이 빌려줬다고 했던가요?”
정신 차리고 말을 잘 고르자.
교묘하게.
“협력 영물의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가 이 옷을 입은 걸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빌려줬다고는 안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사자탈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괴상하네. 협력 영물 그분도 분명 알았을 건데 말이죠. 당신이 수상쩍다는걸요!”
“…!”
“그런데 그냥 재킷을 줬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혹시 여우를 역으로 홀리기라도 하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거짓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으으음. 알겠습니다.”
사자탈이 거꾸로 돌아가듯 흔들리다 돌아온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요원님의 속셈을 한번 알아내 봅시다!”
“…….”
젠장.
사자탈이 나를 응시한다.
그 기이하게 흔들리는 머리채가 다시 한번 내 어깨 위로 쏟아진다.
“대체 어떻게 오늘 재난이 일어난다는 걸 알고, 구조할 사람을 냉큼 정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겁니까?”
나는 이 사자탈이 거의 괴이하게까지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라.’
…….
그렇다는 건, 다시 말하면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진실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게 어쩌면, 상황을 바꿀 한 수가 될지도 몰랐다.
…세광역 도착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요원님.”
나는 더 목소리를 작게 낮췄다.
“만일 이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면, 어떨 것 같으십니까?”
“음?”
“사실 이 재난의 날이 수십, 수백 번 반복되고 있다면….”
나는 상대를 응시했다.
“그리고 제가 그것을 자각했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자탈 요원이 굳었다.
* * *
나는 대략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세광특별시 재난의 날에 벌어진 일’을 그에게 속사포처럼 전달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5월 4일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이런 소립니까?”
“예.”
“그것… 참.”
사자탈이 심란하게 흔들린다.
-사실 저도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희미하고, 그냥 수백 번 반복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나는 평화로운 세광시의 5월 4일을 600번 넘게 경험했으니 더 구체적으로 지명을 들며 말하기 쉬웠고.
이해는 빨랐다.
그리고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을 이번에도 감지한 사자탈은 노란 눈을 어둡게 떨어트린다.
“시간의 반복이라… 이런 초자연 재난을 몇 번 보긴 했는데 말이죠. 요새 유행하는 그… 루트물이라고 하던가?”
“…루프물이요?”
“아, 맞다. 그거.”
그런 거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며 킬킬대던 사자탈 요원은 곧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치에 안 맞아떨어진단 말이지! 내가 보기엔 이번 난리는 그런 귀신 들린 드라마 비디오 속에 갇히는 식의 재난이 아닙니다!”
“…….”
아무래도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괜찮았다. 꿍꿍이 있다고 의심받는 것보다는 낫지.
그래서 나는 말을 돌렸다.
“원래는 본사 분이셨습니까?”
“맞소. 맞아. 나는 본사의 청룡팀이야.”
어느새 말이 편해진 사자탈 요원이 기이한 말투로 소탈하게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이미 사라진 팀을.
“…….”
“사실 평소에는 구조보다는 다른 업무를 전담으로 맡고 있는데, 간간이 이렇게 지원 근무를 나오는 거고 말이야. 너무 오래 공방에 있으면 물들 수 있다나.”
잠깐, 공방?
나는 사자탈 요원을 다시 보았다.
말투.
후각 능력.
도깨비불을 부르는 태도….
“혹시, 전담하시는 게… 도깨비 공방에 섞여 들어서 도깨비인 척 지내는 업무입니까?”
“…!”
나는 희미해질 정도로 오래전 같은, 내가 백일몽의 신입사원일 때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내 그립톡에 접착제를 발라준, 도깨비 공방의 요원 말이다.
-김서방. 좋은 물건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입사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아니 언급조차 듣지 못했다.
요원이라면 말대로 자기 자리로 복귀하거나, 아니면 소문으로라도 들을 법 한데 말이다.
그건 어쩌면, ‘도깨비인 척하는 모습’이 아닌 본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절반을 이곳의 고등학교에 두고 온 홍 팀장님, 현무 1팀의 어르신처럼.
바로 여기.
멸형급 재난에 갇힌, 메아리 같은 존재를.
“…어떻게 알았지?”
“…기억은 안 나시겠지만, 저희는 만난 적이 있습니다.”
“흐으음.”
사자탈이 탄식한다.
그리고….
“잘 알겠소.”
사자탈이 주던 압박감이, 약간 사라졌다.
“어쩐지 사자탈을 벗을 수 없더라니. 재난에 물들어서 그랬던 건가!”
요원은 심각한 투로 심각한 말을 하며 사자탈을 두드렸으나, 익살맞은 얼굴에 가려지며 마치 과장된 동작처럼 보였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자신이 5월 4일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참았다.
…이 요원은 패닉에 빠지는 대신,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그래서… 그쪽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제대로 확인해 보려고 세광역으로 가고 있던 거구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가고 싶지만, 나에겐 주어진 일이 있어서 말이야.”
사자탈 요원이 뒤를 돌아본다.
열차에서 패닉에 빠져 있는 시민들을.
“설사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는 그쪽의 이야기가 맞더라도, 그리고 재난이 종결되더라도, 하루가 끝났을 때 살아 있는 시민이 없다면 의미가 없지.”
“…….”
“누군가는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구조해야 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번 역은 세광, 세광역입니다….
“…도착했네.”
“예.”
사자탈은 가만히 안내방송을 듣다가, 결국 내게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각자의 위치에서 수고해 봅세!”
그리고 황급히 다음 말을 과장되게 덧붙였다.
“백일몽 꽝철이 밑이 그대의 위치라고 생각하진 말고!”
아니.
나는 무심코 말했다.
“…그, 백일몽 직원이라고 꼭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닙니다.”
“어디 하나 이름을 대 보기라도 해주시지!”
나는 은하제 기자를 돌아보려던 내 눈을 간신히 도로 돌려놨다.
그 대신 무언가 떠올렸다.
이 요원들이 지하철로 들어와서 시민들을 통솔했던 사람들이라면….
열차 쉘터와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이강헌이라는 이름의 백일몽 직원을 아십니까?”
“이강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혹시 만나게 된다면, 너무 무작정 적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는 사이인가?”
“…약간요.”
나는 그가 남긴 쪽지를 떠올리며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숙지해 두지!”
그리고 사자탈은 그제야 머리를 떼고 고개를 들며 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말투도 돌아와 있었다.
“요원님! 세광역 인근에 가시면 분명 여기 지부의 현무팀 요원들을 만나실 겁니다. 그 사람들과 협력해 보시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담화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예.”
나는 정차하기 시작한 열차 속에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자탈의 노란 눈이 나를 묘한 눈으로 본다.
내리실 문은 왼쪽, 왼쪽입니다….
그리고 결국 문이 열리기 전, 요원은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동료 요원님, 괜찮으면 통성명이라도 할까요? 요원명으로 말이죠!”
사자탈이 익살맞게 웃고 있다.
“저는 초개 요원입니다.”
…!!
“요원님?”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는,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사자탈이 기우뚱거린다.
“그럼 앞으로 급하면 제 요원명 대셔도 괜찮습니다. 하하하, 오늘만 자유이용권!”
“…!”
삐삐삐삐삐…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린다.
“감사합니다.”
“어휴, 무슨 말씀을! 서로 힘냅시다.”
“…예.”
나는 내 일행을 챙겨서, 밀려드는 인파를 피해 간신히 안전하게 세광역에서 내렸다.
닫히는 스크린도어와 열차문 너머로, 사자탈 요원이 소란스러운 인파를 제어하려 하며 나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열차가 출발한다.
“…후우.”
“아주 길고 상세한 대화를 나누던데, 상황은 많이 파악하셨나?”
“예. 아주 유익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나는 ‘시간되는 순간 싹 털어간다’라는 표정의 은하제 기자에게 희미하게라도 웃어 보이고 싶었으나. 그러긴 어려웠다.
환경 탓이었다.
“요원님….”
세광역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통곡하는 사람, 넋이 나간 사람, 열차에 타려다가 선로 밑에서 깔려 죽은 사람.
다양한 소란 행위가 이미 한번 휩쓸고 지나간 듯, 처절하게 눌어붙은 절망의 느낌이 난다.
“…….”
나는 알고 있다.
이 모든 사람이 역에 갇힌 채 구조받지 못하고, 결국 모조리 목을 맨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물이 되는 괴담에서 내가 올가미에 목이 졸려 죽어봤다는 사실을.
“…….”
“이쪽으로.”
우리는 조심히 움직였다.
고등학생 류재관은 자꾸 앞에서 길을 트려고 했으나, 나는 최대한 앞서서 그 행위를 방지했다.
은하제 기자도 은하제 대리님과 달리 먼저 치고 나가려고 하는 타입이다 보니 결국 우리는 엎치락뒤치락하며 질주하듯이 피난민의 틈을 뚫고 나아가게 됐다.
“…사람들이 출구를 이미 다 막아뒀습니다.”
나는 셔터가 내려가고 그 앞에 물건이 쌓인 출구들을 다소 오싹한 기분으로 보면서 뛰었다.
바깥에 친구나 지인을 두고 온 사람들이 그 앞에서 통곡하고 있었다.
우리는 대합실을 가로질러, 반대편 승강장으로 향했는데….
“여기는 역무원도 없네.”
“…….”
반대편 승강장도 사람이 많았으나, 이쪽은 시체가 더 많았다.
열차가 오지 않으니, 마치 물건 쌓아두듯이 급한 대로 죽은 사람들을 여기에 둔 듯했다.
그리고….
“찾던 곳이 여기라고?”
기계실.
유쾌연구소의 입구.
“…예.”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곳이며, 아마도 재난의 날 상담 교사가 말했던 ‘가야 하는 곳’.
지금,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숨을 참으며 그곳의 문손잡이를 잡았다가… 먼저 잠금을 해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나는 황급히 문신을 뒤져서 ‘지하철 직원’으로 위장한 연구소 직원의 신분증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목적성을 가지고 걷는 사람의 분명하고 빠른 소리.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요원님!”
“…!”
나는 류재관의 다급한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하얀 연구복을 입은 누군가가 승강장의 시체 사이에서 거침없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없다.
얼굴이 있을 부위가 텅 비어서 공허한 검은공허가보인안보인다
“이야.”
이야?
그런 감탄사가 어, 어울리나? 저건… 저건 얼굴이 없는데?
저게 뭐야?
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려다가 내가 맡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발을 꽉 눌러 내렸다. 참아!
그리고….
“뭐 사람이 저렇게 생겼냐.”
그러니까요!
“진짜 잘생겼네.”
…….
……!!
잠깐만.
나는 떨리는 눈으로 상대의 연구복을 다시 보았다.
…사원증을 걸고 있다.
유쾌 연구원
이자헌
“기계실 출입 권한이 있습니까?”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