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8화
가장 처음 느껴진 것은 축축함이었다.
철퍽.
소금물에 적신 손을 뱀굴에 넣자, 마치 먹물 속에 손을 넣은 듯한 기묘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빨려 들어갔다.
“…!”
손으로부터 시작한 흡입력은 이내 온몸을 집어삼켰다.
‘수, 숨이.’
물에 젖은 종이가 온몸에 들러붙어 옥죄어 오는 느낌이다.
시커먼 시야와 감각 속에서 빙글빙글 시야가 돌아가더니…….
“허억!”
푹.
서늘한 허공에서 숨이 트였다.
나는 눈을 떴다.
별 대신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지방 도시의 밤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국의 가을밤.
‘…살았다.’
현실이었다.
“후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켜 서려 하다가 넘어질 뻔했다.
내 발밑으로 검붉은 먹물이 질질 새어 나오고 있었다.
“…….”
먹물의 흔적을 따라 시선을 올렸다.
낡은 한지 위에 그려진 수묵화 하나가 다 번지고 바랜 채 거기 있었다.
마치 오랜 세월 끝에 그림이 다 날아간 위로 새로 먹물까지 부어 당긴 것처럼, 제대로 된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저게 아까 그 미친 산속으로 통하는 여러 그림 중 하나겠지.’
어쩐지 오싹한 마음에 당장 시선을 떼고 그 대신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일곱. 다 있다.
아마 나 다음으로 저 그림이 뱉어낸 것 같았다.
“으으으….”
“괜찮으십니까?”
“으윽…… 어?! 바, 바깥!!”
이병진 과장이 허공을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하하!! 사, 살았다!! 살았어!!”
그러더니 환희와 눈물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고, 고맙습니다. 살려줘서…….”
“과장님께서 스스로 살리신 겁니다. 의식을 진행한 건 과장님 본인 아니십니까.”
“…하하, 거참, 겸손하시기도 하고…… 부끄럽습니다. 예.”
이병진 과장이 왠지 감동을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겸손이 아니라 아부에 가깝지만 좋게 오해하게 두자.
“어, 어어어!?”
다음으로 정신을 차린 건 중학생들이었는데, 애들을 챙기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가 너희 수학여행 장소라고?”
“네!!”
그러고 보니, 애들이 말했던 ‘숙소 뒷산의 정자’라는 묘사에 딱 맞는 장소이긴 했다.
‘여기로 다 뱉어졌나 보네.’
……회사 지하의 그 기묘한 사무실 틈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은 건, 다행이긴 했다.
나는 서로 안심한 얼굴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당장 아래로 뛰어 내려가려는 애들을 말리지 않고 조심하라는 말을 남겼다.
“발밑 조심하고. 내려가자마자 어른 만난 다음에 부모님께 전화하는 거야, 알았지?”
하지만 애들은 도리어 겁먹은 모양이다.
“저희 같이 안 가요…??”
어… 아무래도 그렇지?
유괴범으로 오해받든 애들 구한 의인으로 대우받든 간에, 경찰서에 가는 순간부터 회사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애들 무사히 돌아가는 거면 됐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저씨들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해. 너희는 여기서 쭉 내려가는 거야. 뒤돌아보지 말고.”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
“…! 네.”
애들은 어쩐지 큰 결심한 듯 씩씩해지더니, 그 말대로 조심해서 자기들끼리 의지해 열심히 산을 내려갔다.
‘됐다.’
어차피 산책로도 잘 정비된 얕은 산이니, 내려가는 건 5분이면 될 것이다.
그렇게 애들이 무사히 내려가는 뒷모습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툭툭.
“저기요….”
일찌감치 비척대며 일어났던 경비반장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얘, 가져가요…….”
“아.”
경비반장이 푸르딩딩한 산삼이 매달린 나무 막대기를 내밀었다.
‘아니 거기 그냥 두고 와도 됐는데.’
어쨌든 얼결에 실신한 산삼을 받아 들자, 경비반장은 뒤로 돌아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어디 가십니까?”
“회사……. 저 아직 근무 시간….”
아.
‘근데 여긴 경주인데요.’
올라가는 길에 어차피 근무 시간 다 끝나는 거 아닌가.
아무튼 나도 따라서 가긴 했다. 서울 가긴 해야 하니까.
아직도 널브러져 있던 대학원생 고선하 씨를 둘러업고 말이다.
‘가는 길에 경찰서 앞에 두고 가자.’
그때였다.
“아아, 두 분은 경비팀이셔서 빨리 돌아가셔야 하는 거군요! 따, 따라가겠습니다! 하하! 찾으시던 실종자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이 가시죠!”
나는 이병진 과장을 돌아보았다.
허겁지겁 따라오는 모습이 혹시라도 뒷배를 잃을까 걱정하는 간신배 같았다.
음, 탈출도 했으니…… 슬슬 진실을 알 때가 됐나.
“그리고 어, 일 정리된 후에 또 두 분 근무처에 들러서 인사드리겠습니다. 헤헤, 경비팀은 어디서 근무하시는지…….”
“아닙니다.”
“…?”
“경비팀으로 오셔도 절 만나실 순 없습니다.”
“예?”
“저는 현장탐사팀이니까요.”
큰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오, 옷이 경비팀,”
“빌려준 건데…….”
“…!?”
경비반장의 말에 이병진 과장의 얼굴에 혼란이 가득해졌으나, 곧 어떻게든 상황을 머릿속에서 짜맞춘 것 같았다.
“아아! 아! 그, 그러시구만. 어? 근데 안면이 영 없는 것이… 행정지원 안 받으십니까? 아! 혹시 특수팀, 뭐 그러신 건가? 그래서 경비 유니폼…….”
“신입입니다.”
“……?”
“D조 신입사원입니다.”
“…???”
* * *
그 후의 일은 꽤 빠르게 처리되었다.
이병진 과장은 경주에서 회사에 복귀할 때까지 ‘거짓말’을 연신 외쳤으나, 결국 회사에 와서 내 인적 서류까지 확인하고는 다시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한 듯 태세를 전환…하지는 않았다.
‘왜지.’
당장 현장탐사팀 신입이라고 깔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점잖게 굴며 계속 내 눈치를 본 것이다.
좀 호탕한 척하려고 애쓰며 말을 놓긴 했지만 말이다.
“어어 솔음 씨, 그거 들었어? 그, 애들하고 대학원생 말이야. 잘 돌아갔다는 모양이야.”
며칠 후 과장은 우리와 함께 탈출한 사람들이 <백일몽 주식회사>에 민간인 생존자로 등록되었다고 전해줬다.
꽤 괜찮은 금액의 정보 제공료도 받았을 거라고 귀띔도 해줬고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재물운이 트였다고 볼 수 있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해. 어? 인생이란 게 말이야.”
그리고 그 아이러니함은 내게도 찾아왔다.
“아무튼 이제 솔음 씨는 나만 딱 믿으면 된단 이 말이지!”
“……음, 예.”
“하하하!”
이병진 과장은 일사천리로 매뉴얼 심사를 처리해 줬다.
…내 것만.
‘일주일 무단결근 하고 나타나서 저래도 되는 걸까?’
어쨌든 내겐 좋은 일이었다.
‘山君님’ 괴담의 통로인 족자봉은 <백일몽 주식회사> 산하 어둠으로 재빠르게 수집되었고, 그 과정에서 내 단독 탈출법이 또 매뉴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게다가 계류 중이던 내 A조 지원 당시 매뉴얼 개정 심사도 쾌속 통과.
그리하여 내 통장에 찍힌 금액은…….
심사지급 ₩100,000,000
“…….”
‘미쳤다.’
손 떨리는 금액이 찍혔다.
심사 통과된 어둠이 두 가지가 되면서 상상도 못 한 금액이 내 은행 어플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정식으로 할당된 업무가 아니라 포인트 지급이 안 되고 차선으로 돈을 받는 느낌이었지만, 금액이 이쯤 되면 눈이 돌아가는 법이었다.
‘매뉴얼 심사 담당자가 이렇게 우호적일 때 어떻게든 새 어둠을 많이 공략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자발적으로 각종 귀신과 괴물들 만나서 혼자 다니는 건 차마 발이 안 떨어지니 일단은….
‘1억을 잘 써봐야지.’
어디다 써야 잘 썼다고 말이 나올까.
하긴 이 중 3할은 이미 쓸 곳이 정해져 있긴 했다.
이 모든 개고생의 시발점 말이다.
“축하해, 브라운.”
-오오오!
혈욕조 – ₩29,999,999
= ₩29,999,999
구매 준비 완료.
다행히 외계인 상점에는 혈욕조가 무사히 남아 있었고, 나는 움직이는 봉제 인형에게 약속한 일을 지킬 수 있었다.
‘이번에도 택배로 오려나.’
허공에서 갑자기 토해내던 우체국 택배 박스를 떠올리자 약간 아연했다.
내가 알기로 혈욕조가… 꽤 큰 가정집에 두는 설치식 욕조만 한 크기의 네발 욕조인데 말이다.
다리가 금박으로 장식돼 있어서 화려하기까지 한데, 그게 이 원룸 크기의 사택 개인 방에 떨어진다고?
‘…화장실에서 주문해야 하나?’
이, 일단은 방에서 침대와 책상을 좀 밀어서 공간을 확보하고, 여기서 주문 버튼을 눌러보기로 했다. 화장실엔 공간이 너무 없으니까.
“…좋아. 이제 주문한다.”
-기대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두근거릴 심장도 없을 봉제 인형과 대화하느라 손전등 조명 하나 켜진 방에서, 나는 마침내 ‘주문’ 버튼을 클릭했다.
치익.
지난 몇 번처럼 공간이 찢어졌다. 긴장이 올라온다.
그런데 생각보다 찢어진 공간이… 작다?
툭.
택배를 뱉었다.
택배도… 작다…?
“…?”
나는 예상 사이즈의 1/4도 안 되는 우체국 택배를 열었다.
제품 박스가 보였다.
[젊음의 욕조 – 풋 마사지 에디션]
“…….”
어쩐지 싸더라.
그러고 보니, 얘네는 홈쇼핑 괴담 출신이라 별별 에디션과 버전이 기록에도 남아 있던 것 같다….
크게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경우는 특정 몇 번 빼면 그다지 없고 그냥 디테일 재미지만 말이다.
‘그래도 족욕 버전 같은 게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나름 스페셜 에디션인지 반짝이는 금박 스티커에 보증서까지 들어 있다.
[10년 무상 A/S]
정말 의미 없다….
‘A/S 같은 걸 신청하겠냐고.’
하지만 어찌 됐든 개봉은 해보았다.
<어둠탐사기록>에 혈욕조 만졌다가 자동으로 피 뽑혔다는 기록 같은 건 없으니까.
일반 전자기기들처럼 각진 상자를 풀면, 고급스러움을 표방하는 브랜드들이 해놓는 것처럼 비싼 포장재로 덮인 물건이 보였다.
그리고 포장재를 벗기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젊음의 욕조.’
일명 혈욕조.
그건 반짝이는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듯 윤기 나는 검고 하얀 체크무늬 욕조였다.
욕조 전체가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황금빛 고양이 발 모양 다리가 사방에서 거뜬히 욕조를 지탱하고 있었다.
제법 멋진 모양새긴 했다.
‘…족욕기라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지.’
그러나 욕조에 딱 맞는 사이즈를 가진 누군가는 대단히 흥분한 모양이다.
-노루 씨! 절 저기 넣어주십시오! 입욕제와 함께….
잠깐, 혈욕조의 입욕제라면….
“…내 피를 달라고?”
-그렇습니다! 매우 이해력이 좋군요, 노루 씨.
이런 미친.
순간 설득과 도망 중에 고민했으나,
-하하! 농담입니다 친구!
“…….”
-관객도, 카메라도 없는데 내가 친구에게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할 리가 없지요!
그럼 관객과 카메라가 있을 때는요?
그러나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원래 아쉬운 쪽은 말을 삼켜야 하는 법.
하지만 한마디는 못 참고 했다.
“그런 농담은 안 했으면 좋겠어. 안 웃기고 무섭거든.”
-이런, 알겠습니다. 유머는 문화성을 크게 타는 요소라 언제나 세심히 다뤄야 한단 말이죠!
이게 세심히 다룬 수준인가…?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이미 입욕제로 쓸 수 있는 더 적합한 게 이 공간에 있지 않습니까?
-오, 과연 우리의 노루 씨가 맞힐 수 있을지 한번 확인해 볼까요!
사택에 그런 게 있다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설마 옆방에 사는 백사헌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어야 한다.
일단 그건 제외하고 생각해 보자면…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긴 했다.
나는 떨떠름한 기색으로 며칠 전부터 사택 책상 한구석을 차지한 것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산삼?”
-훌륭합니다!
그렇다.
‘山君님’ 괴담에서 얼결에 서리해 온 저 타락한 보라색 산삼 같은 것 말이다.
‘진액이라고 해야 하나, 혈액 같은 게 확실히 흐르긴 하는 것 같았지.’
다만 이 산삼은 며칠째 색만 보라색이지 일반 산삼 그대로였다.
깨어나기만 하면 아주 사과즙을 하나 다 갈아서 도로 먹여주고, 감당 안 되면 그대로 회사에 헌납해 버릴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깨어나지 않았다.
‘그날 해 뜰 때 완전 긴장 상태로 깨어 있던 게 바보 같았을 정도였지….’
이에 대해서 브라운이 이렇게 평하기도 했고 말이다.
-앞으로도 깨어나지 않을 것 같군요. 본디 약한 짐승이란 위협을 느끼면 죽은 척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산군의 묏자리’인가 하는 창귀의 공간에서 현실 세계로 끌려온 탓이라고 해석해 보겠다.
-어쨌든, 친구. 많이 걱정되면 앞으로 내가 꾸준히 시선을 두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거다.
아무튼, 그래서 이 산삼을 써달라는 건가.
‘음, 그건 해볼 만할지도.’
귀신이 들리지 않았다면 그냥 즙 많은 인삼 손질이니까.
게다가… 솔직히, 혈욕조가 가동되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기도 했다.
‘신기하긴 하잖아.’
나한테도 호기심은 있었다. 그래서 출근해서 짬 날 때 괴담 위키나 들여다보고 있었던 거겠지만….
내가 이미지로 접해도 멀쩡히 구경할 수 있는 괴담이 얼마 없단 말이다.
피가 아니라 채즙으로 작동될 이 기회를 살려보고 싶긴 했다.
-오오!
나는 주방에서 고무장갑과 가위를 챙겨왔다.
침대 밑 괴물 봉제 인형에게서 낮고 흥분된 목소리가 나왔다.
-이제 절 욕조에 넣어주십시오!
“잠깐만.”
그 전에 할 말이 있다.
“이 욕조는 회춘에 효과가 있는 건데, 너한테 회춘이 필요할까? 음… 충분히 젊어 보이는데.”
인형에게 그런 개념이 통할 수 있느냐부터 지적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러나 봉제 인형은 시원하게 웃었다. 쇼의 녹음된 효과음처럼 깔끔한 소리였다.
-하하하! 회춘의 개념에 대해서 상당히 좁게 보고 있군요, 내 친구! 괜찮습니다. 여기 좋은 이해자이며 입담꾼인 내가 있으니까요!
-‘회춘’이라는 것은… 그렇군요. 한자어 문화권에서는 ‘봄이 돌아오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는다’라는 뜻인 겁니다.
-이상하게도 몸이 무겁고 균형을 잡기 힘든 지금, 제게 꼭 필요한 효능이란 말이죠!
그… 하지만 넌 솜인형이잖아.
게다가 설명서에는 ‘상처 치유, 피로회복, 관절염 치료, 피부 미용 등’에 효과가 좋다고 적혀 있는데.
‘…모르겠다.’
저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착한 친구 괴담에서 봉제 인형에게 잘해주고 힘을 줬다고 해코지당하는 경우는… 딱히 <어둠탐사기록>엔 없었구만.
막 대했을 때 대참사가 났었지.
나는 생각이 더 깊어지기 전에 멈추기로 했다. 쓸데없이 무섭다.
대신 고무장갑을 끼고 한 손엔 가위를, 다른 손엔 산삼을 잡았다.
‘써보자.’
그리고 혈욕조로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