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50화
“아이고, 노루 왔네!”
“그래. 재생 물약 잘 받았고?”
“예.”
나는 사무실로 복귀하며 이미 점심 식사를 끝내고 늘어져 있던 상사들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상사들은 내 손에 들린 반투명한 강화 플라스틱 상자를 보고 정색하며 몸을 일으켰다.
“…!”
“잠깐만, 그거 노루 네 담당 어둠이냐?”
“네. 맞습니다.”
나는 운송용 상자를 들어서 안을 보여줬다.
그 안에는 검은 카드 두 장이 달칵거리고 있었다.
내가 고른 F등급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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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양자택일]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F-2073.
가로 60㎜, 세로 110㎜의 무늬 없는 검은 카드 2장.
그러나 소유자가 자정에 해당 카드들을 뒤집을 시, 앞면의 그림이 드러난다. 그 주제는 타로(Tarot) 메이저 아르카나 중 무작위로 선정됨.
해당 점은 실제로 미래에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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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1인에게 관리를 맡길 만큼 작고 휴대성 있는 저등급 어둠이지만….
사실 내게 주어진 후보군 셋 중에선 가장 위험하고 불확실성이 큰 괴담이기도 했다.
미래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상사들도 알아봤는지 표정이 진지해졌다.
“신입치고는 좀 빡센데.”
“그렇죠! 보통 좀 쉬운 거 주지 않아요? 저도 신입 때는 라디오나 받았는데. 노루도 입사 첫날에 봤었지? 그건 황혼 등급으로 재설정까지 됐었거든.”
아, 그 라디오.
‘주임님이 관리하는 거였나.’
어쩐지 너무 대놓고 사무실에 있더라니.
주임이 약간 걱정스럽게 말했다.
“위에서 노루 잘한다고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가… 아, 조장님!”
사무실로 들어오던 도마뱀 조장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노루한테 직접 어둠 고를 수 있게 해주신다고 말씀하신 거 있잖습니까, 혹시 언제쯤… 아직인가요?”
“20분 전입니다.”
“…?”
“…??”
“20분 전에 골랐습니다.”
상사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노루야.”
“네.”
“너 조장님이 주신 선택지 중에 저거 골랐냐?”
“예.”
나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근 수당을 주더라고요.”
“…….”
“…….”
“이 어둠이 밤에 정기적으로 관리돼야 해서 말입니다.”
상사 둘의 얼굴이 아련해졌다.
“아아….”
“음, 노루답다.”
그리고 평온해졌다.
“…….”
내 이미지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캐릭터 성공적으로 잡고 있다고 좋아해야 하나.’
크흡.
나는 눈물을 참으며 PC를 켰다.
“지금 등록하게?”
“예. 지금 제 사번을 넣고 있습니다.”
인트라넷에서 ‘담당 미정 어둠 목록’에서 해당 어둠 코드를 찾아서, 내 계정을 등록하면….
완료.
Qterw-F-2073 : 김솔음 (주임)
이걸로 내게도 담당 어둠이 생긴 것이다.
“F등급이라도 그거 다 초자연 현상이야. 관리할 때는 조심하고.”
“예.”
나는 해당 어둠의 관리법을 읽었다.
이미 알고 있던 이 괴담의 사용 방법을.
[자정에 카드 뒤집기 / 월 1회]
* * *
그리고 며칠 후 자정.
나는 회사 별관으로 야근을 나왔다.
“고생하십니다.”
데스크에 앉아 있던 전신을 시커먼 옷으로 도배하듯 입은 직원이 고개를 까딱하며, 내게 복도를 열어주었다.
그 길을 따라가 알맞은 문을 열면….
“잘 있네.”
내가 오늘 ‘관리’해야 하는 검은 카드 2장이 보이는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철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카드 보관함을 열고 이 어둠, ‘양자택일’을 꺼내어 미리 이 공간에 구비된 둥근 테이블 위에 뒷면이 보이게 두었다.
-점을 보는 겁니까? 오컬트 검증은 토크쇼의 단골 소재였기도 하죠! 자, 노루 씨. 미래를 확인해 보시지요!
조금 다르다.
“미래를 보는 건 아니야.”
-음?
“선택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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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두 카드를 미리 본 후 하나를 고르면 그 상징에 들어맞는 이벤트가 근시일 내로 일어나게 해주는 신비한 타로 카드.
단, 당사자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벌어질 만한 이벤트여야 한다.(로또 당첨 같은 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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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건 근미래에 일어날 일을 양자택일 형태로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카드였다.
물론 그게 항상 좋은 뜻은 아니다.
나는 손을 뻗어서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 둘을 뒤집었다.
거짓말처럼 화려한 양식의 그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악마. 달.
‘젠장.’
이렇게 말이다.
-이런. 둘 다 전통적으로 썩 좋은 의미의 상징은 아니군요!
뭐, 질문 분야에 따라서 무조건 나쁜 뜻을 가진 상징은 아니지만… 총체적으로 보자면 그렇긴 하다.
즉, 선택지가 둘 다 별로면 사실 괜히 나쁜 이벤트만 하나 추가하는 거란 뜻이다.
그리고 타로 카드의 절반 이상이 애매하거나 나쁜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걸 고려하자면 이럴 확률이 적어도 1/4 이상이나 됐다.
하지만….
-둘 중 뭘 고를지 정했습니까?
“그래.”
좀 다른 방식으로 할 거라서.
나는 카드가 올라간 테이블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테이블 반대편에선 카드들이 거꾸로 보인다.
이 상태에서 카드를 집어 들면….
-호오, 역방향이 됐군요.
나는 거꾸로 든 카드를 보았다.
‘원래는 점 볼 때 이런 짓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던데.’
F등급 괴담답게 위력이 크지 않고 구멍이 많아서 이런 꼼수들이 통하는 것 같더라.
‘혹시 꼼수가 실패해도 그냥 검은 카드로 돌아가 주는 걸로 끝나기도 하고.’
그래서 질러보았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내가 고른 카드는….
-달이군요. 아, 혼란의 상징!
나는 노르스름한 보름달이 거꾸로 매달린 달 카드를 들여다보았다.
-본래 달은 미스터리와 불확실성의 상징이지요. 태양이 사라지고 달이 뜬 곳에는 모호한 형체와 의심이 자라고, 마침내… 광기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역방향이라면, 반대겠지요?
흠.
‘뭔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건가.’
-꽤 괜찮군요. 불확실성의 해소라! 마음을 정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이 미친 괴담 세상에서 뭐라도 확실한 게 나오면 좋겠지.’
-이걸로 끝입니까?
“맞아.”
나는 카드를 도로 정리해 놓았다.
이 점술의 주기는 월에 1회.
즉, 이번 달 중에 일어날 일상이라는 뜻이다.
비록 일어날 일이 일상적인 수준이라고 한계가 분명하게 달려 있긴 하지만, 내 일상이라는 게 괴담 회사에 다니는 거잖냐…….
그렇다면 사실 생존에 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단 말이다.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미래를 하나 고정시켜 놓으면 좋지 뭐.’
관리하는 괴담이 부담이 아니라 이득이 되는 게 어딘가.
나는 너무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
쿵.
“…….”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여긴 별관.
비교적 안전한 어둠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주로 황혼 등급, 간혹 F등급이 포함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것들도 다 괴담이다.
쿵.
간혹.
정말 간혹 관리 실패로 돌발상황이 발행하면… 사람 한둘 우습게 죽는다는 것.
나는 철문 앞에 섰다.
‘……얼마나 멀리서 들리는 소리지?’
여기서 기다릴까, 아니면….
콰아아아앙!!
“…!”
나는 당장 철문을 열고 달렸다.
뭐가 터진 게 맞는 것 같았으니까!
‘안에 갇히는 것보다는 뛰어서 여길 빠져나가는 게 차라리 생존 확률이 높다.’
그리고 현관으로 뛰어가서 입구로 뛰어나가려 했으나….
바닥이 이미 반파되어 있었다.
“…….”
-이런! 상당히 지저분한 꼴입니다.
여러 가지 미친 가능성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직후, 나는 부서진 현관 바닥 가운데에서 박살 난 무언가를 발로 꽉 누르고 있는 인영을 보았다.
“…!”
프론트에 앉아 있던 검은 직원이다.
그리고 어둠을 ‘진압’한 것 같은 저 모습을 봐서는….
‘보안팀 직원이었구나!’
그리고 이미 상황은 종료된 듯했다.
내가 들었던 소리는 보안팀이 진압하는 도중에 발생한 소음 같았다.
‘아무나 별관 데스크에 앉혀놓는 건 아니라 이건가.’
나는 갈등하다가 4m쯤 떨어진 거리에서 물었다.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검은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대로 빨리 나가자.
“그럼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직원이 잠시 나를 보더니, 옆으로 손을 뻗어서 데스크에서 뭔가를 들어 올려 보았다.
포스트잇이다.
좋은 밤 보내세요.
의외로 사회성이 있으시구만.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거렸다. 온통 검은 데스크 직원은 가볍게 고개 까닥거림을 돌려주더니 발을 거둬서 데스크에 돌아가 앉았다.
현관 바닥, 아마도 괴담의 매개체였을유리 조각이 부서진 채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 반사광에 묘하게 직원의 다리 그림자가 뒤틀려서 꺾인 발굽처럼 보였다가…… 다시 사람처럼 돌아온다.
‘후….’
보지 말자.
나는 아무것도 응시하지도 않으며 별관을 나왔다.
“이거 참.”
별 사태가 일상적으로 다 일어나네.
‘역시 좋은 일상 이벤트 하나를 고정 발생시킨 건 괜찮은 선택 같다.’
사는 게 빡세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괜찮아졌다.
음. 그러고 보니 나도 아까 직원처럼 필담으로 소통했던 적도 떠오르는데.
[좋은 하루 되세요^^]
무려 사천만 원에 괴담 음식을 팔았던 중고 마켓의 일대일 현장 거래를 말이다.
목소리도 숨기려고 필담했었지.
그때 테마파크의 파란용 마스코트가 줬던 츄러스를 팔았고 말이다.
‘그 츄러스가 한 봉 더 있긴 해.’
여전히 만일을 위해 팔 생각은 없지만… 흠.
나는 내가 생각보다 먹을 것과 관련된 아이템을 꽤 보유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저것 수량이 좀 괜찮았다.
‘역시 한두 개 정도는 팔아서 돈으로 바꾸는 편이 나을지도.’
혹시 아직도 구하고 있다면 말이다.
생각난 김에 연어 마켓에 접속해서 확인했다.
놀랍게도 글이 또 올라와 있었다.
———————
[괴현상에서 유래한 음식 구매합니다.]
연구용.
강력한 괴현상(재난관리국 파형 이상) 우대.
40.0
———————
-이 새낀 지겹지도 않은가 봄
-ㅋㅋㅋ이쯤되면 낚이는 게 ㅂㅅ이지?
흐음.
‘츄러스를 이미 연구용으로 쓴 거라면….’
나는 쪽지를 보냈다.
[파랑친구 : 안녕하세요 선생님^^ 음식을 또 구했는데, 혹시 관심 있으십니까?]
* * *
그리고 이틀 후 주말.
나는 지난번과 똑같이 광화문역 5번 출구에서 중고 거래 상대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역시 사람은 신뢰가 중요한가.’
지난번에 한번 조건에 맞는 물건을 팔았다고 이번엔 긴말도 안 하고 시간 약속을 잡더라.
심지어 이번엔 상대가 먼저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처럼 어두운 옷차림에 모자부터 마스크까지 챙겨 쓰고 있다.
손에 든 음료수 박스로 알아봤다. 뭐, 나도 비슷한 차림이라 뭐라고 할 순 없겠지만.
[안녕하세요^^]
나는 이번에도 노트를 펼쳐 인사말을 보여주었다. 상대도 예상했는지 당황하진 않았다.
[여기 준비한 물건입니다.]
그리고 내민 상자 속에는 앨리스 피크닉 세트의 쿠키가 두 점 들어 있었다.
왜 이걸 골랐냐고? 간단하다.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았어.’
과자답게 소비기한이 정해져 있던 것이다!
효과를 반감시키거나 뻥튀기하는 아이템이라서, 생각보다 쓸 일이 많지 않아 수량이 꽤 남았다.
그래도 화요퀴즈쇼에서 음료를 쓴 게 워낙 슈퍼세이브였어서 음료는 차마 못 꺼내고 쿠키를 가져온 것이다.
‘쿠키 형태는 더 쓰기 어렵기도 하고 말이지.’
이대로 소비기한 끝날 때까지 그냥 두긴 아깝지 않은가.
그렇다고 소비기한이 지난 아이템을 사용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굳이 보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나는 물건을 내놓았고, 구매자의 감정을 기다렸다.
구매자는 이전처럼 장갑 낀 손으로 한번 상자 위를 훑더니….
고개를 살짝 저었다.
“구하던 건 아닙니다.”
음. 역시.
‘파형 등급까지는 아닌 것 같긴 했어.’
공산품 아이템이라는 건 위험도가 비교적 낮고 수동적인 느낌이라서, 고등급 괴담에서 직접 얻어온 기이한 물건과는 이렇게 결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아쉽지만 별수 없지.’
그래도 협상은 해볼 가치가….
“그러니 개당 절반 가격으로 구매하겠습니다.”
쿨거래 감사합니다.
‘이 사람, 외계인 상점의 존재를 알면 아까워서 날 죽이려고 드는 건 아닐까….’
혹시 몰라서 밑밥을 좀 깔아두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노트에 황급히 글을 써 갈겼다.
[감사합니다. 돈이 꼭 필요했거든요.]
“…….”
[이번에는 위험한 음식은 아닌 것 같았지만,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아서 그 안에 연구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몇 개 더 드릴게요.]
그러면서 추가로 쿠키를 한두 개 더 넣은 작은 봉투를 위에 끼워준 것이다.
‘덤이라고 할까.’
계속 거래를 이어가기 위한 신뢰 작업용이다. 협상용으로 가져왔는데 이렇게 써먹는군.
이 정도면 정말 친절한 중고 거래인 아닐까. 괴담 세계관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렇게 내가 구매자에게 현금이 든 음료수 상자를 받아 들고 그대로 자리를 뜨려고 할 때였다.
구매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음?
“이런 건 어떻게 가지고 계신 겁니까?”
흠.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초자연적인 물건을 거래하는 플랫폼인데 각자 사연이 있기 마련이었다. 알아서 상상하게 두자.
‘외계인 상점은 직접 광고 본 사람 아니면 접속해도 없는 페이지라고 뜨기도 하고.’
그래도 더 캐물으면 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
구매자가 자기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들더니, 내가 들고 있던 노트 위에 뭔가를 적었다.
“혹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거기로 연락하십시오.”
어?
“그럼 이만.”
구매자는 떠났고, 나는 노트를 확인했다.
1717 8282 42
“…!”
‘이거 정부쪽 번호잖아.’
재난관리국으로 직통되는 긴급구호요청 콜이었다.
한마디로 괴담용 119.
‘그쪽 관계자였나?’
어쩐지 등급 표현도 거기 걸 쓰더라니.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돈과 노트를 잘 챙겼다.
백일몽 주식회사는 악질 대기업답게 정부와 사이가 안 좋았다. 그런데 거기 다니는 직원인 내가 굳이 여기 전화까지 해가며 엮일 일은….
‘절대 없지 않을까.’
응. 있었다!
바로 그날 저녁, 사택에 돌아갔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