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6화
‘새로운 굿즈?’
그리고 사용 권한 해금이라면, 내가 산 굿즈 중 하나를 또 쓸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뭘 기준으로?’
허공에서 비현실적으로 떠다니는 메모장을 당장 클릭하고 싶었으나, 아직 강연장 한복판에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사회자가 나를 수석이니 뭐니 호명한 탓에 힐끔힐끔 보는 시선도 있다.
‘일단 자리를 떠서 확인하자.’
행사는 다 끝난 것 같으니 집으로 돌아가… 잠깐.
굉장히 치명적인 사실을 깨달았는데.
“…….”
나, 여기서 집이 있을까…?
나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열어서 기록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내가 취직하고 일한 기록은 싹 사라져 있다.
심지어 가족 연락처도 전멸.
‘와 제발.’
그나마 있는 건 대학 시절 기록들 정도인데, 이건 내가 기억하는 것과 비슷해서 순간 안도했다.
문제는… 내가 대학 때 기숙사에서 살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졸업하고 자취방 구할 때 일정 꼬여서 애먹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장 최근 기록은 복덕방에 방 보러 다닐 약속을 잡은 문자와 원룸 계약이 꼬여서 모텔에서 지낸다는 친구와의 카톡…….
“…….”
나는 무심코 시선을 들어서, 아직 떠 있는 강연장의 스크린을 확인했다.
정확히는 하단의 글씨 하나만 크게.
[임직원 복지 –기타]
사택 지원
복지… 알차게 챙겨야겠지?
* * *
그리고 이 ‘사택 지원’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처리되었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데스크에 문의한 지 한 시간만에 방 번호를 배정받고 키와 주소지까지 전달받아 이동했는데, 심지어 위치도 괜찮았다.
물론 직원의 편의를 봐주려는 좋은 의도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24시간 비번으로 밤낮없이 부려 먹으려면 역시 외거노비라도 근처에 있어야 하는 건가….’
어쨌든 건물은 제법 괜찮아 보이는 오피스텔이었다. 리모델링을 새로 했는지 깨끗하고 보안이 괜찮았다.
‘사택 지원’이 보통 지방 근무 시 따라오는 복지라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좋은 복지였지만….
‘회사가 방금 데스 서바이벌을 시켰는데 잘도 입주하겠어.’
하지만 이 빈정거림은 말 그대로 이루어진다.
오피스텔 앞에서 만난 고영은과 인사했을 때, 내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거 들으셨어요? 일곱 명이 사택 지원받았대요.”
“……?”
과반수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고영은 씨도 여기 입주하러 온 것 같은데.
상대는 내 시선을 눈치챈 건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좀 무섭긴 하지만, 어차피 입사까지 했는데 역세권 오피스텔에서 공짜로 살 수 있는 걸 마다하는 것도 좀….”
“……예.”
그래. 원래 자본주의에선 돈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월 120만 원쯤 굳는데 미친 척하고 입주할 만도 하지.’
물론 그보다 치명적인 이유도 있었다.
“아무래도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분들은 합격하자마자 안내받고 등록하셨었나 봐요.”
“그렇군요.”
이제야 상황을 알겠다. 환호를 내지르고 오케이 해놓은 신입들이 밑장빼기를 못 했다, 이거다.
무슨 수로 이렇게 빨리 나한테 방을 빼줬나 했더니 이제야 짐작이 간다.
‘내가 받은 방이 방금 데스 서바이벌에서 탈락한 신입사원 거였나….’
그렇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내가 쪽팔릴 뿐이다.
어쨌든 나는 고영은과 인사를 마치고 내 방이 있는 12층으로 올라왔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가 있다면, 오피스텔이 투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 사택 룸메이트가 백사헌이라는 거지.
“…….”
“…….”
백사헌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
한쪽 눈에 의료용 안대를 낀 걸 보니 뭘 받긴 했나 보다. 시간상 병원이 아니라 회사에서 모종의 처치를 해준 것 같았고.
굳이 말을 걸지 않고 묵례한 후 내 방을 찾아 들어가려고 하는데….
“야.”
뭐?
“야?”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백사헌은 막상 내가 대꾸하자 움찔했으나, 분노가 더 큰지 거침없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분실물 놔두고 멀쩡한 눈 굳이 뽑아주는 꼴 보면서 아주 재밌었겠어? 응?”
아무래도 내가 뻔히 분실물의 존재를 알면서 자기가 눈 뽑히는 걸 보려고 내버려 뒀다는 식의 생각을 한 것 같다.
‘아니 지가 맘대로 튀어 나가 놓고선 무슨.’
자기는 남의 눈알을 주먹으로 찍어놓고선 자기 눈은 남이 챙겨줘야 했다는 참신한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그러나 동시에 알았다.
내가 ‘그게 아니라 그쪽이 갑자기 나가셔서…’, ‘아니 왜 갑자기 반말을 쓰고 그러세요 선생님…’ 같은 식의 저자세로 나가면 오히려 기세등등해져서 헛소리할 것 같다는 것을.
다년간의 클라이언트 상대로 길러진 진상 판별법에서 백사헌 같은 타입을 부르는 말이 있다.
일명 천지창조형 진상이다.
자기 마음대로 상황을 상상하고 바득바득 우기는 것 말이다.
이런 인간상은 해명이 안 통한다.
차라리….
“어. 재밌던데?”
“…!”
강하게 나가는 게 답이겠지.
나는 거침없이 백사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상대의 어깨를 꽉 눌렀다.
“고맙다. 덕분에 즐겁더라. 이게 도파민이라고 부르는 건가?”
“무…….”
“앞으로도 좋은 소식 들려줘. 아니, 같이 근무했으면 좋겠다.”
“…….”
“회사 생활 재밌겠어.”
됐다.
‘이 정도면 그냥 미친놈으로 보이겠지.’
지금까지의 행동양식과 <어둠탐사기록>의 활약상을 종합해서 평가하자면….
‘백사헌은 내가 쫄보인 걸 들키는 순간 오히려 사지에 몰아넣고도 남을 인성인 것 같지?’
그렇다면 차라리 ‘아, 이 자식이랑은 엮이지 말아야겠구나!’ 같은 인상을 심어두는 게 나을 것이다.
‘블러핑도 할 겸, 겸사겸사.’
나는 말이 없어진 백사헌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방을 향해 갔다.
‘자다가 칼 맞은 정도만 아니면 돼.’
사실 방금 사기도 좀 쳤다.
이 시기엔 동기랑 같이 일할 확률 자체가 극히 낮거든.
어느 직장이 신입사원들끼리 일하라고 묶어서 팀을 만들어 주겠는가? 다 찢어서 편성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충 모 닌자 만화와 비슷하게 밸런스를 맞춰 성적에 따라 골고루 넣는 배정식.
그리고 어찌 됐든 나는 첫 번째, 백사헌은 두 번째로 불렸지 않은가.
‘그쪽도 성적이 좋은 걸로 판정이 났을 테니, 같은 팀에 꽂힐 일은 더더욱 드물다.’
그러니 한동안 같이 일할 일은 없다.
우리 서로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자고.
탁.
홀가분한 마음으로 배정된 내 방으로 들어갔다.
“후.”
깨끗한 방 안에는 새롭게 교체한 듯한 침구, 책상, 심지어 개인 화장실로 통하는 문까지 있었다.
그 문에 안내 책자까지 걸려 있더라.
“신청하면 월 10만 원에 침구 교체랑 정리 서비스도 주마다 나온다고?”
사측이 미쳤어요 수준의 복지를 보니, 슬슬 당근 세례로 신입사원들을 혼미하게 만들려는 속셈이 느껴진다.
마치 지금까지의 데스 서바이벌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말쑥하고 친절한 현실에 꽤 많은 신입사원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회사가 왜 이러는지 아는 입장에서야 속이 너무 들여다보이지만 말이다….
‘그래. 현장탐사팀에서 쓸만한 인원 채우기 힘들지.’
‘일’을 할 수 있다고 판정 난 신입들이니 혹시라도 탈주자가 없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다.
‘뭐, 준다는 데 잘 써야지.’
어차피 다니기로 했으니까.
책상에는 작은 웰컴 기프트 꾸러미까지 보였다. 비싼 간식거리와 회사 로고가 붙은 사무용 비품들이다.
게다가 반쯤 열어놓은 서랍 안에는 웬 다이어리도 있었다.
다이어리 표지에도 회사 로고가 붙은 걸 보아 지급품 같다.
‘근데 작년 날짜로 제작됐네.’
내 전에 사택에서 살던 사람이 두고 간 건가? 나는 다이어리를 넘겼다.
그러자 첫 페이지에 거대한 글자가….
-도망쳐
‘아이고.’
선배님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 감사하지만 난 이미 글렀다.
심지어 그리 무섭지도 않았다.
‘그냥… 직장인 잔혹사 아닌가.’
인류애가 좀 차올랐다. 다이어리는 도로 덮어서 고이 서랍에 넣어두었다.
이제 볼만한 건 다 확인한 것 같으니, 슬슬 할 일을 할까.
[어둠탐사기록 리얼굿즈 박스]
-새로운 굿즈의 사용 권한 해금! (!)
혼자가 됐으니 확인해 볼 수 있다!
‘후우.’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침대에 걸터앉아서 편한 자세로 메모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툭.
그립톡을 뱉었을 때와 똑같이, 메모장이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OPP 투명 필름 포장지.
팬시용품을 포장할 때 흔히 쓰는 그 봉지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바로 스티커 뭉치다.
“이건….”
나는 비닐을 들어 올렸다.
노란색 동그라미에 전형적인 웃는 이모티콘이 그려진 스티커.
일명 뇌물 템.
———————=
어둠탐사기록 / 백일몽 주식회사
/ 아이템
스마일 스티커
영업직의 친구! 🙂
지성이 있는 존재에게 부착 시, 사용자를 향한 약한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다.
아이템 사용 조건 : 백일몽주식회사 정규직 사원 이상 직급자.
(ps. 헌팅 등 부적절한 사적 용도로 사용 시 징계 처리됩니다.)
———————=
“허어.”
이 허접하게 포장되어 마감도 변변치 않은 스티커는, 의외로 몇몇 <어둠탐사기록>에서 아주 아이코닉하게 쓰인 아이템이었다.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상 호감도 조작이니까.
‘다른 소속 사람들을 설득해서 협업할 때였던가.’
그리고 하필 왜 이게 해금된 건지도 알겠다.
아이템 사용 조건 : 백일몽주식회사 정규직 사원 이상 직급자.
“내가 정규직으로 입사에 성공했기 때문인가.”
<어둠탐사기록>에서 기관이나 특정 단체가 만든 아이템들은 대부분 어떤 등급이나 소속만 사용이 가능하도록 제한이 걸려 있었다.
세계관적 개연성으로는 무분별한 빼돌리기를 막기 위해서다.
‘그리고 괴담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난 초보자들이 온갖 괴담에 난입해서 온갖 도구를 막 사용하는 ‘메리 수’식 민폐를 막기 위해서였지.’
아무튼, 그런 조건을 지금 내가 충족했다는 건….
‘내가 승진을 하거나 소속이 바뀌면 이 <굿즈 박스>가 하나씩 굿즈를 뱉어준다, 이건가?’
분명 생존에 도움이 될 것 같긴 했다.
근데 애초에 이 세계에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거 자체도 괴담 같다.
‘으.’
괜히 찝찝해서 빛나는 메모장을 몇 번 올려다보다가 겨우 생각을 돌렸다.
“일단 얻은 게 어디겠어.”
스마일 스티커. 직접 상대에게 붙여야 한다는 건 좀 버겁지만, 정말 급할 때 호감을 살 수 있다는 건 분명 유리한 조건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
‘…이거 분명 몇 번 나오다가 전량 폐기 처리됐거든.’
스티커의 위력과 관련해서 작성자들끼리 죽일 듯 싸우고 혀로 콜로세움을 연 끝에 결국 이 템 자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내 손에 있는 게 이 세계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스티커 세트일 수도 있다니.
나는 새삼스럽게 포장된 스마일 스티커를 내려다보았다.
음.
절대 들키지 말아야지.
그래도 만일을 위해 다섯 장을 따로 정장 앞 포켓에 넣어두었다.
이러면 첫 출근에 잊지 않고 가져갈 수 있겠지.
‘……출근이라.’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려 했으나 일단은 자야 했다.
별 스펙타클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 나니 몸도 머리도 아주 녹초가 다 됐다.
‘회복해야지.’
나는 비치되어 있던 가운을 임시로 갈아입고 문단속 후 잠자리에 들었다.
괴담 속으로 떨어지고 나서 첫 휴식이었다.
솔직히 잘 자진 못했다.
사람이 생으로 터지는 꼴과 기괴하게 변한 지하철역의 모습이 내 상상력을 양분 삼아서 서라운드로 뇌에 재생되더라.
난 내가 무슨 홈시어터 전용 스피커라도 구매한 줄 알았다.
그래도 한 이틀 지나니 악몽에 시달리면서 잠을 잘 수 있는 수준으로 회복이 돼서 다행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통장에 얼마 없는 예금액을 확인하고, 그걸 어떻게든 쪼개서 옷과 생필품을 사며 일상을 채비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도 잊지 않았다.
‘전부 숙지해 놔야지.’
‘메모리얼 그립톡’을 통해 내가 읽었던 모든 <어둠탐사기록> 위키 페이지를 계속 읽으며, 툭 치면 튀어나올 정도로 외웠다.
이게 내 생명줄이니까.
그리고 월요일이 돌아왔다.
바로 <백일몽 주식회사> 첫 출근날이.
* * *
“…….”
월요일 아침.
나는 썩 쾌적해 보이지 않는 얼굴로 <백일몽 주식회사> 본사 건물로 향했다.
오죽했으면 오피스텔에서 내려가다 만난 고영은 씨가 놀랐다.
“어, 솔음 씨, 괜찮으세요? 자, 잠을 잘 못 주무셨나?”
“…조금, 예. 괜찮습니다.”
“아이고….”
신입사원 둘은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본사 건물로 걸으며 짧게 사담을 나눴다.
우리 외에도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한 현장탐사팀의 신입사원 몇을 마주쳤으나 눈인사만 했다.
그리고 사원증을 찍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현장탐사팀은 10층부터 15층까지 사용한다고 하더라고요…. 아, 저는 여기서 내려볼게요. 솔음 씨, 화이팅합시다 우리….”
“예. 화이팅.”
나는 10층에서 내리는 고영은을 배웅하며, 내가 누른 엘리베이터 버튼의 층수를 보았다.
13층.
‘숫자까지 미래를 예고하는 것 같다….’
기분 탓이길 바랄 뿐이다.
나는 그저께 온 발령 문자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신입사원(현장탐사)_배정.pdf]
– 김솔음 / D조
띵.
13층에 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알파벳으로 표기되어 섹션이 나뉜 복도가 보인다.
나는 그중에 ‘D’라고 프린팅된 자동문을 찾아가, 자동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동시에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오!”
“왔네, 왔어.”
제법 넓은 사무실에 앉아 있던 성인 남녀 몇 사람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반겼다.
그중 한 남성이 일어나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15기 D조에 온 걸 환영해.”
뒤에 선 무표정한 얼굴의 단발 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참고로, 신입이 다 뒤져서 D조라는 별명이 있다.”
“…….”
“농담이야.”
지금이라도 퇴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