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74화
브라운이 없다.
“뭐, 뭐예요?”
“이, 이 사람, 움직였어요!!”
인형 뱃속에 은화가 없는 걸 봐서는 ‘착한 친구’ 의식 자체가 무효화된 건가? 아니면 꿈이라서 정말 인형으로만 보이는….
‘그만!’
지금 추리가 우선이 아니다! 정신 차려!
넌 지금 괴담 속에 있다고!
“여길 좀 보시라고요!”
나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교실 한구석에서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까 밀랍 인형처럼 굳어 책상에 홀로 미동도 없이 앉은 ‘학생’을 쿡쿡 찌르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밀랍 인형이….
“저기!”
책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근처에서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로 삿대질하고 있는 사람의 손가락을 따라가면….
[세광공업고등학교]
사라진 학생이 뒷문에 우뚝 서 있다.
문을 잡은 채로.
표정 없이.
교실을 돌아보면서.
“…….”
“저, 저기. 지금 장난치시는 거죠?”
대답은 없었다.
움직임도 없다.
“잠깐만요.”
용감한 사람 하나가 접근해서 코앞에 손을 휘둘렀다.
‘학생’은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그저 아주 생생하게 뒷문 앞에 우두커니 굳어 있다….
“숨을 안 쉬잖아요. 사람 아니라 마네킹인데…”
“아니 마네킹이 어떻게 갑자기 이동해요? 뭐 숨 안 쉬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 익힌 거 아닌가요?”
“그래, 이거 그거다. 예능이나 위튜브 같은 데에서 사람들 반응 관찰하는 거 있잖아.”
아니다.
당연하지만 이곳에는 카메라도, 사람들을 놀래려는 예능 제작진들도 없었다.
[띵- 동- 댕- 동-]
대신.
[세광공업고등학교 학생 여러분! 졸업식이 곧 시작합니다.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졸업식…?”
경쾌하고 단정하게, 학교다운 방송이 나온다.
“가볼까요? 신기하네.”
“저기, 저희 지금 고등학교 때 모습인 거죠? 우와. 이거 무슨 꿈이지?”
아예 꿈이라고 판단해 버린 사람들 몇몇은 긴장감 없이 서로 대화를 나눴다.
확실히 지금까지는 그리 무섭지 않을 것이다.
‘현실감이 안 들겠지.’
자기 고등학생 때의 모습을 돌아갔지 않은가. 회춘은 보통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고 야간의 학교는 괴담의 단골 장소기도 하지만, 사람이 많고 달빛이 살짝 들어오면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어, 이 학생 마네킹? 좀 보세요?”
한 사람이 뒷문 앞에서 미동 없는 학생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학생이 뒤쪽으로 뻗은 손을 가리켰다.
“이거 꼭, 손동작이….”
[학생 여러분, 이제 난방과 안전을 위해 자동 커튼을 닫고 점등하겠습니다.]
“뒷문을 걸어 잠그려던 것 같은데.”
쿵.
창문 커튼이 닫혔다.
“엄마야!”
“아, 깜짝이야!”
자동 커튼이 굉음과 함께 닫히고, 순간 교실이 암흑에 휩싸였다.
아주 잠깐.
깜박.
시간 차로 교실에 전등이 켜졌다.
“아, 다행이다.”
“불 켜려고 했던 건가 봐… 어?”
상아색 교실 바닥 위에 피가 흥건히 흘러내렸다.
“어… 어어어어?”
피를 따라 시선을 올리면,
사람 중 하나가 목이 뒤로 완전히 꺾인 채 뒷문 근처에 쓰러져 있다.
살아 있는 인간은 할 수 없을 기묘한 각도의 목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흘러나와 바닥재 사이로 고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경악 어린 눈이 크게 떠진 채.
“아아아악!”
“끄허어어어억!!”
시작됐다.
———————=
어둠탐사기록 / 괴담
[검은 그늘 속에서]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62, 재난관리국의 등록번호는 2845PSYA.2016.하53.
인터넷에 떠도는 텍본을 읽고 잠이 들면, 야간의 세광공업고등학교에서 깨어나 죽을 때까지 인간이 아닌 무언가에게 쫓기는 괴담.
해당 고등학교를 현실에서 찾으려는 모든 민간 시도는 실패했으며, 현재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로 파악됨.
———————=
그래.
이 악몽 속 괴담의 탈출법은 오로지 ‘죽음’뿐이다.
이 야간의 학교에서 나가려면 사망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클리셰가 되어버린, 인간이 아닌 것이 나오는 괴담.
“저…! 저 사람!!”
비명을 지르던 사람 중 하나가 가늘게 떨리는 손을 들어서 가리킨다.
여전히 뒷문에 굳어 있는 학생을.
하지만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
“손에 피가 묻어 있어요.”
“…….”
사람들의 시선이 딱딱하게 굳어 돌아갔다.
그리고 사실을 확인한다.
학생 인형이 문을 잡고 있는 오른손엔, 마치 가리려는 것처럼 오므린 손가락 안쪽에.
피가 지문을 따라 묻어 있다.
“…….”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시체로 돌아간다.
시체의 꺾인 목 뒤편에 핏자국이 손가락 모양으로 나 있는 것을,
본다.
“악!”
“엄마야! 어어어어어! 허억!”
그리고 다시.
깜박.
불이 깜박인다.
세광공업고등학교의 학생은 누군가가 쳐다보는 동안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선이 없어지는 순간
눈 깜박할 사이에 다시 교실이 환해지면.
비인간적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인형을 삿대질하던 사람이 사라졌다.
“악!!”
그 사람은 바닥에서 가슴 아래가 박살 난 시체로 발견된다.
털썩.
지탱력을 잃은 삿대질이 힘없이 바닥으로 꺾여 떨어졌다.
“아…….”
“…….”
“아아아아아악!!”
패닉과 공포, 광분.
“지, 지금! 지금 공격하자! 어? 야, 거기 가까이 있는 사람이 좀 쳐 봐!”
“X, X발! 그럼 네가 하던가 왜 나한테 지랄이야!”
깜박.
“힉.”
시체가 하나 더 늘었다.
소리치던 사람 중 하나가 책상에 거꾸로 꽂혔다.
하반신만 남은 채.
“…….”
“…….”
공포의 정적 속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뒷문의 ‘학생’은 사람들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얼굴에 묘한 미소가 걸려 있다.
“…!!”
“히이이익!”
“도, 도망가! 도망가!”
“문 열어 당장!”
사람들이 학생이 봉쇄하고 있는 뒷문을 피해 앞문으로 우르르 간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쪽… 아아아아악!”
앞문을 연 사람이 주저앉았다.
열린 앞문 앞에는 웃고 있는 학생이 서 있다.
[세광공업고등학교]
앞머리를 단정히 자른 그 여학생에게도 동일한 명찰이 붙어 있었다.
“가, 옆으로 가면 되잖아!”
“가라고!”
사람들이 웃고 있는 학생을 지나쳐서 뛴다. 그리고 다시.
깜박.
불이 깜박였다.
“…….”
앞문의 학생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아아아악!
…복도에서 처절한 비명들이 울렸다.
그리고 하나씩 비명이 사라진다.
“…….”
“…….”
미칠 것 같은 고요함.
헐떡이는 숨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절규,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부릅뜬 채 문을 응시하는 사람들.
“천천히,”
나는 교실을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천천히 움직입시다. 혹시 뭐가 다시 움직이지 않는지 확인하면서요. 앞문이랑 뒷문 모두.”
“아, 아…….”
겉모습은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는 어른들이, 몸서리치며 비틀비틀 문에서 뒤로 물러났다.
“…….”
이 반에서 눈 뜬 사람 중.
절반은 도망가서 생사 확인 불가, 나머지 절반은 교실에 남았다.
아니, 남았다기보다는 움직이지 못하고 굳었다… 에 가깝다.
나는 조용히 그 틈에서 생각했다.
‘망했다.’
이거 시작을 이렇게 끊으면 안 됐다.
커튼이 닫혀서 완전한 암흑이 되기 전 반드시 먼저 혼자 뛰쳐나가, 비상 손전등부터 잡아챈 후 필요한 물건을 챙겨 숨어야 했다.
‘타이밍을 놓쳤어.’
브라운이 없다는 것에 당황해서 판단이 늦은 것이다.
그 와중에, 드디어 사태를 눈치챈 사람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거 그거네!”
“예?”
“몰라요? 보고 있으면 못 움직이는 괴물!”
“그, 그쪽이 아는 거예요?”
“아씨, 왜 모르지?? 그 안 쳐다보면 막 따라오는 괴물 있잖아요! 우리가 보고 있는 지금은 못 움직이는 거고!”
공포와 흥분으로 목소리가 이상해진 사람이 주절주절 이야기했다.
혹시 다들 이상한 텍본을 봤냐, 아무래도 우리는 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다, 빙의 아니냐….
평소라면 무시했을 사람들도 패닉에 빠져서 귀를 기울인다.
어디서 많이 본 전개였다.
그리고 공포에 압도된 집단의 결론 역시… 단편적이고 과격하다.
“이러면 얼른 저거! 공격해서 없애야지!”
“예?!”
“저희 지금 도망가면 어차피 계속 쫓아온다니까요? 안 보니까 다 죽는다고요! 나간 사람들 봤잖아요! 어서! 불 다시 깜박이기 전에!”
“아!”
사람들이 홀린 듯이 빈 교실을 뒤져서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빗자루, 의자, 마대, 커터칼….
‘안 돼.’
이건 평범한 배드 엔딩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
그때였다.
누군가 내 입을 막았다.
“…!”
하마터면 주먹이 나갈뻔했다.
나는 상황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려, 내 입을 틀어막고 있는 자를 확인했다.
아는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공무원!’
재난관리국 요원이었다!
산장에서 만났던 류재관 요원은 고등학생답게 머리카락이 짧았으나, 생김새 자체는 현재와 큰 차이가 없었다.
‘어디 앉아 있던 거지?’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 공무원도 들어올 수 있었지!’
여긴 백일몽 주식회사가 ‘격리 및 확보’ 중인 괴담이 아니었다.
즉, 이렇게 다른 기관의 관계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똑같은 요원을 또 본다고? 너무 열심히 일하시는 거 아닙니까?
“소리를 지르지 않으신다면 풀어드리겠습니다.”
나는 당장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공무원은 다른 말 없이 나를 풀어주었다.
‘휴.’
“정말로, 이런 일에 잘 휘말리시는 체질이시군요.”
“……예.”
대충 그런 거라고 쳐둡시다.
“그리고, 아까 발언한 사람의 말도 일부는 맞습니다.”
“…….”
“저기 학생 인형을 무조건 보고 계십시오. 시선을 떼어서도 안 되니 눈도 번갈아 깜박이시고, 불이 꺼지면 무조건 고개를 숙이시는 겁니다. 그리고….”
공무원이 이미 알고 있는 정석 매뉴얼을 조용히 속삭여 준다.
“저것들은 소리에 아주 민감합니다.”
그래.
학생들은 비명, 욕설, 고함 등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쫓는 뚜렷한 경향성을 보인다.
“목소리를 높이면 안 됩니다. 절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저걸 공격하게 놔두는 게 맞는 건지….”
“지금은 자신의 안위가 우선입니다. 재난에 휘말린 사람들을 구하는 건 그다음입니다.”
공무원이 익숙하게 선언했다.
“초자연 재난에 휘말린 사람은, 우선 전원 사망할 것이라 가정하고 움직이십시오.”
“…….”
이건… 전형적인 재난관리국식 매뉴얼이다.
‘이 괴담을 잘 파악해서 봉인하거나 파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후에 일어날 수많은 죽음을 방지할 테니까.
트롤리 딜레마에서 5명 대신 1명을 죽이겠다고 망설임 없이 레버를 당길 만한 가치판단이었다.
“도망갈 타이밍도 제가 알려드릴 겁니다. 지금은 말씀드린 것만 숙지하고 계시면 됩니다.”
“…예.”
지금 여기서 공무원과 논쟁하는 건 자살 행위다.
나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학생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제길,’
한 번 더, 일부러 답을 유도하기 위해 질문을 엮었다.
이건 내가 알고 있어야 앞으로 행동이 자연스러우니까.
“저, 근데 이거 꿈 아닌가요? 그럼 그냥, 죽더라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까요….”
악몽의 정석적인 탈출법이긴 했다.
꿈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순간,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는 것.
여기까지만 들으면 차라리 빠르게 자살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겠지만, 전혀 아니다.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게 있어.’
“…그건 맞습니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그렇지.
“조건이요?”
“예. 저기 명찰 보이십니까?”
공무원이 손가락으로 ‘학생 인형’을 가리켰다.
“저 인형의 명찰을 가진 채로 죽어야만 ‘정상적으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지 못할 경우,”
해방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탐사자는 ‘검은 그늘 속에서’에 귀속된다.
“그리 좋지 못한 영향력을 받습니다.”
“…….”
“무사히 죽기 위해선 그 외에도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만, 자세한 건 동행하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도, 동행이요?”
“예.”
잠깐만.
하지만 내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공무원은 ‘미안해할 것 없다’라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애를 안심시키듯이 억지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는 뜻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 외에도 많은 요원이 투입된 상황입니다. 분명 통과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재난관리국 요원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
‘이거… 진짜 서로 탐사가 제대로 겹친 모양인데?’
해당하는 회차가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난 탐사기록을 머릿속에서 마구 뒤져 후보를 뽑아보려 했으나, 그것보다 상황 변화가 먼저였다.
“주, 죽어!”
기어코 사람들이 학생 인형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빠각.
“악!”
“피, 피가…!”
‘세광공업고등학교’ 학생은 평범한 인간처럼 상처를 입었다.
피가 터지고, 피멍이 들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악!”
“어떡해, 아, 씨….”
‘…후.’
공포와 착잡함이 내 등골을 타고 올랐다.
그러나 공무원은 익숙한 듯 동요 없이 나에게 앞문으로 작게 손짓했다.
“우선 이틈을 타서 저희는…… 음?”
그때였다.
열린 앞문 밖으로 보이는 훤한 중앙 계단에 인영들이 나타났다.
“…!”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걸어 올라오는 서너 사람이었다.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다들 기묘한 동물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
‘직원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아는 가면도 보였다.
들소!
‘장허운 씨.’
테마파크 괴담에서 동고동락했던 Y조 신입사원이었다!
‘일반팀으로 다시 발령 난 건가?’
이게 얼마 만인지.
최근에 내 사정이 너무 난리여서 다른 사람 정기 발령까지 체크하진 못했는데, 3개월 무사히 잘 버틴 모양이었다.
‘어쨌든 반갑습니다, 정말.’
근데 그 옆엔… 별로 반갑지 않으며 아까도 본 인간도 있네.
검은 염소 가면.
“…….”
백사헌이잖아.
‘둘이 같은 반에서 눈 떴나.’
다들 ‘되도록 가면을 가져가서 쓰고 행동해라’라는 회사의 안전 권장 사항을 잘 지키는 모습이긴 했다.
‘나도 기왕이면 쓰고 싶은데.’
챙겨온 아이템도 확인하고 사용해서 탈출 확률을 높이고 싶었다.
역시 종합적으로는, 자연스럽게 공무원과 헤어져서 저쪽과 합류하는 편이 낫겠다.
“저, 요원…….”
“백일몽 주식회사…!”
“…….”
헛.
“조심하십시오. 동물 가면에 정장 차림인 사람을 이런 곳에서 만난다면, 절대 아는 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공무원이 이를 악물고 전방으로 경멸의 시선을 쏘았다.
“역겨운 사이비 회사에서 파견된 사람일 테니, 절대 엮이지 마십시오.”
“…….”
“직원들도 대다수가 비정상적인 윤리의식을 가진 싸이코들입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예.”
절대.
절대! 들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