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81화
자. 정리하자.
내 눈앞의 저 괴물… 그러니까, 픽셀이 뭉개져서 끔찍한 꼴을 한 저 사람은, 내 회사 동기인 고영은 씨인 게 분명했다.
산양 가면은 또렷하게 보였으니까.
‘눈앞에서 손전등을 고출력으로 터트린 게 죄송해지는데….’
나는 이를 악물고, 거부감 대신 가면에 집중하려 했다.
문제는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
나는 말을 할 수 없고,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도 없으니….

‘윽.’
내 머릿속까지 오류가 들어차는 느낌이다. 미치겠네.
결국 소통방식을 고민하던 나는 주머니에서 챙겨온 펜을 꺼내어, 최대한 상대를 보지 않고 바닥에 글을 적었다.
산양 씨?
그리고 묵묵히 기다렸다.
다시 ‘고영은 씨’가 나를 응시하고 내가 멈춘 순간.
바닥의 A4용지로 답변이 돌아왔다.
노루 씨?? 지금 자아가 있으신가요?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게 가능하신가요?
‘후우.’
됐다.
나는 고개를 돌린 괴물… 아니, ‘고영은 씨’를 보며 답변을 적었다.
예. 가능합니다.
오염된 건 아니니 걱정 마세요. 원래 오염된 사람도 이렇게 말할 것 같아서 어떻게 들릴까 좀 걱정이 됩니다만….
괴담 속 기믹을 이용한 겁니다.
기믹이요?
예.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역시 여기선… 단도직입적인 정답이 맞나.’
눈앞의 동기는 머리가 좋은 게 분명했으니까. 나는 결국 고민하다가 돌리는 말 없이 바로 적었다.
모든 세계관 떡밥이 가리키는 이 괴담의 해답지를.
여긴 공포 게임이 현실이 된 학교입니다.
<검은 그늘 속에서>.
이 괴담의 위키 항목 등록 이름이자, 이 악몽 속 세광공업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는 게임명이다.
교무실과 특정 교실들에서 세계관 떡밥을 찾아냈던 탐사기록들에 그 힌트가 있다.
■월 ■■일 소지품 압수 목록 : 게임기
해당 게임기를 1학년 교무실에서 입수하여 구동 시, 한밤중 학교의 픽셀 이미지가 짧게 화면에 떴다가 꺼짐
3학년 2반 칠판의 오른쪽 구석 메모 :
저게 선생님이라고?
음악실 바닥에 떨어진 노트 :
구석에 작은 낙서가 있다.
-자다 일어났는데 왜 학교에 있냐 (놀라는 강아지 낙서) 졸업식 준비? 이게 무슨 소리야 지금 5월인데?
기타 등등의 쪽지, 아이템들.
심지어 게임기를 압수당한 학생의 반과 자리를 찾아내 가방을 뒤지면, 빈 게임 케이스와 그 뒤에 적힌 줄거리 소개도 볼 수 있다…….
———–
졸업식 전날.
■■■■고등학교의 졸업식 행사 준비에 지원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물론 행사 준비는 핑계에 가까웠고, 학생들은 야밤의 캠핑 분위기를 즐겁게 즐긴다.
새로운 커플이 생기고, 절친이 싸우고, 누군가의 비밀이 폭로되기도 하는 와중….
갑자기 교내 방송이 나온다.
[졸업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석하지 않은 학생에게 벌점을 주기 위해, 지금 선생님이 강당에서 출발합니다.]
시작된 피의 졸업식.
그들은 한밤중 악몽의 학교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
그렇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 괴담은 해당 호러 게임이 실제 학교를 집어삼켜서, 그 게임 플레이가 되풀이되는 악몽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말이 없다.
‘보이스가 없는 게임이니까.’
그렇기에 4층의 3학년들은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직 게임 본편이 시작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학생들은 탐사자들이 쳐다볼 때는 움직이지 못한다.
‘…게임 속에 본래 없었던 버그니까.’
그렇다.
심지어 탐사자들은 이 게임에 참가자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게임 플레이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지.’
그냥 비공식적 경로로 다운로드 받은 텍스트파일을 통해, 게임의 스토리를 엿보려다가 끌려 들어온 것이다….
‘후우.’
물론 내가 이 모든 걸 줄줄 동기에게 설명했다는 건 아니고, 적당히 단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추려 말하며 논리만 전달했다.
본론은 이거다.
저는 학생 교복을 좀 독특한 방식으로 입수해서, 이 호러 게임의 참가자가 되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단은 성공한 것 같고요.
게임이요? 아 이거 그거 같네요! 화이트데이 전날 학교에 갇히는 공포 게임 같은 거!
그런데 괴담 속 게임 참가자가 되는 건 오히려 위험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그 교복을 오래 입고 계실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잖아요.
약간 흥분한 것처럼 시작한 고영은 씨의 글씨가 끝으로 갈수록 급히 갈겨쓴 것처럼 되어 있다.
합리적인 우려였다.
맞아요. 위험하면 바로 그만두려고요.
나도 예상대로 안 흘러가면 부리나케 도망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진 예상대로 흘러갔으니까….
그래도 가장 분명하게 매뉴얼에 표기할 수 있는 클리어 루트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잠깐의 침묵 후.
음 일단 알겠습니다. 노루 씨는 워낙에 괴담에 강하시니까….
“…….”
정말, 오해입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한 일은 안 하시면 좋겠네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질 않네요….
아, 그럼 이렇게 저랑 같이 있으면 다른 학생들에게 의심받으실지도 모르니까, 저는 이만 가볼게요.
어어어?
정말로 몸조심하셔야 해요!
그 글이 마지막이었다.
내 정지가 풀리는 순간, 이미 복도 저편에서 뒤를 돌아서 가고 있는 느릿한 고영은 씨가 보였다.
자, 잠깐만요 영은 씨…!
‘아직 묻고 싶은 게 남았는데요!’
제발 도와줍쇼!
나는 재빨리 추격해 고영은의 등을 아주 살짝 두드린 후, 허겁지겁 새 문구를 적었다.
잠시만요 산양 씨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서 산양 씨만 답변해 주실 수 있는 전문지식입니다.
네네! 편하게 물어보세요!
다행히 고영은은 뒤를 돌아보고 친절히 답변해 주었다.
휴!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얼른 질문을 적었다.
사람 몸에 각 장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세요.
예??
아, 아차.
* * *
다행히 고영은 씨는 날 손절하시진 않았다….
단지 나에게 회사 생활, 회계 등 현실적 디테일에 관련해 물으며, 내가 제정신인지 몇 번에 걸쳐서 차분하고 엄격하게 검증했다.
그리고 내가 완전히 오염에 찌든 나머지, 해부에 독특한 취미가 붙은 과학실 학생 따위가 된 게 아니란 확신이 든 후에는 다시 친절해졌다.
알겠습니다! 아는 대로 답변 드릴게요ㅎㅎ
감사합니다… 흐흑.
그렇게 나는 남은 시간 동안 고영은 씨와 치열하게 문답하며 보냈다.
덕분에 내 예상보다도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클리어 준비’가 끝났다.
건투를 빌게요.
저도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음.
나는 혹시 몰라서 이 말도 덧붙였다.
혹시 이 꿈에 더 오래 머무실 생각이라면, 되도록 1층에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곧, 진정한 의미에서 ‘검은 그림자 속에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
그렇게,
내가 고영은 씨를 배웅하고 몇 분 후.
[띵- 동- 댕- 동-]
[졸업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방송이 나온다.
…내가 적었던 열세 번째 탐사기록처럼.
탐사기록 #13
세광공업고등학교의 교복 차림으로 교내 체류 2시간 13분 경과.
이전 기록들에 서술되지 않은 새로운 교내 방송이 나옴. 그 내용은 ‘검은 그늘 속에서’ 게임 타이틀 뒷면의 줄거리와 일치.
나는 4층으로 올라갔다.
그 층 복도를 빼곡히 메우고 있던 수많은 3학년 학생들은….
모두 사라졌다.
“…….”
텅 빈 4층 복도에 방송이 울린다.
[참석하지 않은 학생에게 벌점을 주기 위해, 지금 선생님이 강당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적었던 탐사기록이 그대로.
해당 호러 게임 본편 전개에 돌입.
실현된다.
“…….”
나는 침을 삼켰다.
우선 교내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학생으로서 더없이 편안했던 교내에서 어느새 불온하고 불편한 분위기가 감돈다.
아니….
정말로, BGM이 들린다…!
고전적인 8비트 게임 음악이 음산하고 가파른 단조로 내 귀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팝업도.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다.
늦기 전에 다른 학생들을 찾아보자.
‘아냐.’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더 빠른 루트를 알고 있으니까, 마음의 각오를 하고 우선은….
‘숨는다.’
나는 달려서 3학년 교무실로 향했다.
우선 이 안 락커에 숨어 있는 게 정석….
₩uc774₩uac74₩u0020₩uc528₩ubc1c₩u0020₩ub300₩uccb4₩u0020₩ubb50₩uc57c₩u003f₩u003f
“…!!”
또다.
‘괴물!’
나는 귀가 찢어지는 미친 소음을 거부하며, 재빨리 교무실 락커 안에 들어갔다.
문제는 교무실 바로 옆, 4층 교실 중 하나에 괴물이 있었다는 거다.
그 괴물은 문을 열고 주춤주춤 나오다가 나를 딱 쳐다보았다.
락커 너머의, 그림자 진 내 얼굴을.
‘……가면을 쓴 것 같은데.’
멈춘 탓에 얼굴을 움직일 수 없어서, 락커 문에 가려진 시야가 어떤 가면인지는 분간하지 못한다.
‘어쨌든 우리 회사 직원은 맞아.’
다만 명찰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거기서 나오는 빛 덕분에 오류라는 걸 거의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잠깐만.’
빛이라고?
저거 저렇게까지 눈에 띄면.
저벅.
“…….”
저기.
위층에서부터 작고 큰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큰 것이 작은 발소리를 내면서 걷는 소리, 그거였다.
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
아래로 온다, 온다, 오고 있다!!
…‘선생님’이!!
‘망할.’
미치도록 무섭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러나 오류는 내 명찰도 노리고 있었는지, 멈춘 내게 빠르게 접근한다….
‘이게 안 들리나??’
아니, 안 들리는 게 당연하지. 저쪽은 게임 플레이어가 아니니까!
‘애초에 오류는 선생님을 인식하지도, 공격당하지도 못해…!’
게임 시작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다만….
유의사항.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를 추격하는 ‘이형체’, 선생님이 학생들을 알아보는 방식 중 하나는 명찰이다.
하지만 탐사자들은 본질적으로 오류이기에 명찰 한두 개 있다고 플레이어로 잘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지간히 욕심을 부린 탐사자가 아니면 걸리지 않는다는 거다.
……가령.
플레이어의 상징인, 명찰을 엄청나게 모으는 식으로.
저벅.
나는 멈춘 채 숨을 죽였다.
가까이 다가온 오류가 내가 숨은 락커문을 잡았다.
그리고 문을 당겼다.
타투 스티커.
<달빛 타투샵>에서 내게 서비스 개념으로 챙겨줬던 것이다.
-용기, 혹은 겁 없이 나서는 대담함과 관련된 상징이 이 안에 있을까요?
그 질문에 타투이스트는 내게 토마토 나무가 그려진 타투 도안을 추천해 줬었다….
그걸 고스란히 스티커에 담았고 말이다.
내가 지금 목에 붙이고 있는 이 타투.
“…….”
사실, 대충 기대한 효과가 있긴 했다.
공포를 느끼는 중추가 마비된 듯이, 초자연적인 이런저런 것들이 무섭지 않아지는 것.
마치 D조… 그래.
…이전의 은하제 대리와 박민성 주임처럼 말이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싶을 정도로 태연하고 거침없이 이 공포스러운 초자연 현상을 탐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
나는 락커 안에서 눈을 끔벅였다.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은데?’
나를 쫓던 학생들을 떠올렸다.
더럽게 무섭다.
테마파크 괴담에서 만난 미친 토끼 마스코트를 떠올렸다.
소름이 돋는다.
창귀 괴담에서 사람인 척 흐느끼며 문을 두드리던 귀신을 떠올렸다.
‘……무서워!!’
뭘 떠올려도 오싹했다.
‘서, 설마 사기?’
아니면 내가 스티커를 잘못 붙였나? 사실 타투 스티커 같은 건 써본 적 없기도 했으니 모를 노릇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은 확인할 수 없는 상황.
“…….”
젠장.
어쨌든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
‘선생님’이 4층에서 사라진 지금이 기회다.
‘아래로 내려갔을 거야.’
결국 나는 침을 삼키며, 락커 밖으로 나왔다.
…물론 이 앞은 끔찍한 꼴일 것이다.
직전에 죽은 D조 주임의 혈흔과 조각들이 널려 있을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가…….
…….
“…?”
‘토마토?’
잠깐만.
나는 빠른 걸음으로 교무실을 벗어나서 5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내가 그간 5층을 기피한 이유가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다.
아아아악!
5층의 벽은 어느새 옛날 졸업앨범들의 페이지가 덕지덕지 덧대어져 있다.
그리고 사진들 속 학생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깥을 향해 팔을 뻗고 있다.
아아아악!
졸업앨범의 종이 쪼가리 너머로 꿈틀대는 살점 덩어리가 보였다.
5층에 들어선 사람에게 엄청난 정신적 부담과 패닉을 불러일으키는 요인.
사실 학교라기보다는 기괴하게 뒤틀린 이면 세계 같은 모습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전등이 있어야 할 곳에서 붉은빛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토마토다.
하.
하하하하!
‘아니, 이런 미친!’
사람 머리 있어야 할 곳에 전부 토마토가 달려 있다!
아니, 딱히 사람으로 안 보이는 건 아니다.
졸업앨범의 사진 속 인물들? 다 사람으로 보인다. 얼굴이 일그러져서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그런데 그냥 토마토라고 느껴진다.
그것과 공포가 연결될 필요가 없다는, 이성적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감정이 된다.
그래, 딱 그 정도의 느낌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하하하….’
복도를 더 걸을수록 졸업앨범은 더욱 과거로 돌아가고, 졸업생들은 더 끔찍하고 인간이 아닌 형상으로 녹아내려 벽에 굳어 있다.
벽과 천장에는 기묘한 부적과 살점 덩어리들이 두근거리고 있다.
그리고 목소리.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학교뒷뜰에서파낸부적을찢어서죄송합니다저는■■학교학생졸업식준비를하고 있었어요죄송합……아니아니야!졸업식은의식이아니야산제물아니야아니야!!살려주세요살려주
게임 세계관 떡밥이네.
지금 와서 내가 듣는다고 변하는 건 없다.
나는 길거리를 산책하는 것과 다를 것없는,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좀 유쾌한 기분으로 그 복도를 걸었다.
모든 게 토마토라서 좀 웃겼거든.
그리고 복도의 끝, 오른쪽 옆으로 난 거대한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청록색의 단정한 철문.
기괴한 마굴이 된 5층에서 홀로 멀쩡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문은.
강당으로 통하는 문이다.
이 게임의 최종장이 펼쳐지는 장소.
<졸업식 행사 중>
졸업생만 노크 후 들어오세요.
A4에 프린트된 설명문을 읽었다.
나는 1학년 5반 설정이라 졸업생은 아니지 않냐고?
‘이런 건 아이템이 있으면 열리는 기믹인 거지.’
그리고 내겐 이미 있다.
본래라면 게임을 다 플레이하여 마지막 장에서야 얻을 수 있는 물건이.
‘명찰 장식’을(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물론이지.
똑똑.
나는 명찰 장식을 가슴에 달고 강당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내 눈앞의 거대한 문이 스르르 부드럽게 열린다.
“…….”
수백 개의 자리에 앉아 있던 수백 명의 3학년들이 나를 돌아봤다.
이번 해의 졸업생들.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반쯤 녹아서 의자와 일체화되어 있고, 눈 없이 검은 잉크 같은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움 이상의 감정은 올라오지 않았다.
사실 이 상황에서는 안타까움만 느끼는 게 맞으니까.
‘나한테 해를 끼칠 수도 없고.’
비이성적인 공포는 토마토로 대체되었고, 나는 의자 사이로 난 길을 따라서 걸었다.
맞은편에 있는, 졸업식 행사용 현수막이 걸린 거대한 무대를 향해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내 등 뒤를 졸업생들이 고개를 돌려 표정 없이 쳐다본다….
나는 강당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무대 한가운데에 설치된, 스탠딩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띵- 동- 댕- 동]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선언에 맞춰 밝고 웅장한 행사용 배경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졸업식 음악이 나온다….
그 순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강당에서 비명이 휘몰아친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껍질이 벗겨지듯, 멀쩡했던 강당의 모습이 벗겨지며 괴상한 이형의 모습이 드러난다.
5층 복도에서 봤던 끔찍한 풍경들이 나타난 것이다.
마치 마지막 발악을 하듯, 일을 그르치려는 자에게 응징하고 싶다는 듯 내게 그 이미지가 쇄도했다.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다.
다 토마토니까.
그리고 더 큰 위험은 지금부터였다.
‘온다.’
자기 혼자 멋대로 졸업식을 시작해 버린 학생을 무대 아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
저 밑에서부터 미친 듯이 올라오는 발소리.
‘선생님이 온다.’
괜찮다.
‘도착하기 전에 해야 할 건 충분히 다 하지.’
나는 주머니에서 스틱형 자가 주사기를 꺼내 들어, 팔뚝에 꽂아 넣었다.
해피 메이커.
그 초강력 일회용 진통제가 띠로롱, 하는 인위적이고 귀여운 효과음을 내면서 용기 속의 야광색 액체를 내 혈관으로 투입했다.
혈관을 타고 편안하고 개운한, 더없이 가벼운 활력이 전신에 돈다.
거짓말처럼.
‘좋아.’
동시에 노스텔지어 사탕도 한꺼번에 두 알을 입에 집어넣었다.
캔-디는 한 번에 석 알을 넘지 않게!
노스텔지어가 너무 깊어 풍덩 빠져 버릴지 몰라요!
그래. 그 용법도 지키고.
나는 이제 더없이 편안하고 완벽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휴우.’
그러면 이제 시간이 다 됐다.
쿵
강당 문틈 사이로 뭔가가 비집고 나타났다.
‘선생님’이 칠판이 달라붙어 이형화된 손을 넣어, 철을 일그러트리며 문 자체를 찢어낸다.
쩌저저저적
문이 구겨진 채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드러나는 모습.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인간의 형상.
그러나 실루엣뿐이다.
마치 여러 명의 선생님을 구깃구깃 뭉개고 이어붙여서 억지로 인간이라는 몰드에 다시 밀어 넣은 것 같다.
머리에 팔이 있고 어깨에 머리가 있고, 무릎에 어깨가 있는 살점 괴물.
기묘하도록 단정한 발걸음 소리를 내면서 강당 안으로 들어온다….
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
칠판, 교과서, 학생명부, 분필, 안경 따위가 용도에 맞지 않게 엉망진창으로 각 부위에 붙어서 흔들린다.
그 기괴함에 전율이 일 만한 꼴을, 반대편 무대에 서서 보고 있자니….
“…….”
호승심만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저걸 돌파해야 난 집으로 돌아가고, 수집기도 채울 수 있으니까….
‘그래.’
공포가 아니라 집요함이 필요한 이 상황!
목의 타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그것이 내 뱃속과 심장, 머리까지 끓게 한다.
‘아.’
이제 알겠다.
이 타투 스티커의 효능은….
‘고양감이야.’
넘치는 아드레날린.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목표가 생기면 눈을 뒤집고 달려들 게 만드는 이 고양감!
그리고 그걸 받쳐주는, 모든 걸 토마토로 느끼게 해주는 감각까지!
‘할 수 있어.’
나는 거침없이 강당 마이크를 붙잡고 앞을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