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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87화


백일몽 주식회사 본사 건물의 고층.

똑똑똑.

나는 고급스러운 문을 손등으로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그러자 스르르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왔군.”

안에 앉아 있는 이사의 모습이 드러난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푸른 머리카락의 임원.

청달래 이사.

“시간을 쓸데없이 오래 끌지도 않았고, 간계에 속지도 않았구나. 현명한 선택을 할 줄 아는 아이는 언제나 오래 사는 법이지.”

칭찬 한번 살벌하게 하시는구만….

“과찬이십니다.”

어쨌든 나는 선택했다.

‘D조를 정예팀으로 만들어주겠다’라는 청 이사의 제안을 수락하기로.

당연히 이유가 있지만 그건 조금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지금은 눈앞의 위압감 넘치는 임원을 응대해야 한다.

청 이사는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며 웃었다.

“필요한 시일 내로 소속이 재편성될 테니, 괜한 소란 피우지 않고 기다리리라 믿어.”

“예. 승진이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근무하겠습니다.”

나는 한 손을 내미는 청 이사와 아주 예의 바른 태도로 악수했다.

그리고 그런 내 옆에는….

“자네도 당연히 그러겠지. 이자헌 과장.”

“예.”

도마뱀 조장이 동행 중이다.

…참고로 이자헌 과장은 내 선택에 대해 이렇게 반응했다.

-그렇군요.

끝.

‘이걸…… 편하다고 하는 게 맞나….’

‘거절하십시오’로 조언해 줬던 도마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납득이었다.

‘아니 자기도 같은 배 탄 처지에 들을 건 들어둬야지…!’

덕분에 나는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은 도마뱀 조장을 붙잡고 ‘그렇군요’와 ‘예’를 열 번쯤 들으며 내 선택의 근거와 이유를 말했다.

그리고 어떻게 청 이사의 ‘위험성’을 최소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래서, 나머지 한 명의 조원은 정해왔나?”

마침 그 화제가 나왔다.

D조는 현재 정상 근무 중인 인원이 2명이니, 나머지 1명에 대해서는 원하는 대로 데려와 보라는 청 이사의 제안.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어떤 아이디어지?”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두괄식으로 말했다.

“누구나 함께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 * *

[정예팀 D조의 세 번째 조원은 공백으로 남기기]

D조가 기존의 정예팀 구조에 편입되는 게 아니라 새롭게 시험 운영되는 것에 가까워서 꺼내볼 수 있는 의견이었다.

가장 큰 장점은 이거다.

‘청 이사가 무작정 자기 사람을 심는 걸 방지하는 거지.’

내가 원하는 사람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냐고?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으면 회사가 아니지.

‘내가 데려온 인선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은 없냐고 물어봤을걸?’

그래서 점점 자기가 원하는 사람 쪽으로 후보군을 몰고 가는 것이다.

‘일단 내가 자기 라인 타겠다고 넙죽 고개 숙이고 들어온 시점에서 아쉬울 게 없어지잖아.’

그렇게 자기 사람을 꽂아 넣거나, 최소한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을 회유했겠지.

내 생각엔 거기서부터 이자헌 과장이 말한 대로 ‘위험’해지는 것 같다.

‘같이 붙어 다니는 사람이 청 이사의 수족이면 안 돼.’

차라리 탐사마다 사람이 바뀌는 게 낫다.

그리고 여기엔 그럴싸한 명분도 만들 수 있다.

‘어차피 새 시도 하는 판에, 아예 D조에 빈자리 있는 건 정예팀 인턴용으로 쓰시죠?’

이렇게.

당연하지만 정예팀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며 일반팀에서 승진하는 사람은 소수다.

그래서 초반부터 실적이 좋고 라인을 잘 타지 않는 이상, 그냥 포기하고 가성비 챙기는 저연차 직원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하지만 경영진 입장에서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원료를 수급해야 할 직원들이 그렇게 구는 게 능률 떨어진다는 식으로 고깝게 보는 듯했다.

뭐, ‘포인트에만 눈이 멀어서 애사심이 없다.’ 이런 식으로…….

‘아니 포인트 없으면 애초에 여기 왜 입사하겠냐고.’

참 어처구니없는 기대긴 했지만… 음, 아무튼 그런 방식으로 이 회사가 돌아가는 걸 보니 먹히지 않을까 했다.

-소원권 외의 실적 동기가 없는 이 현장탐사팀에서, 저연차 사원들에게 실적을 올리고 싶다는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대충 그런 식으로 열심히 청 이사에게 프레젠테이션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직원들이 그렇게 혹할까 싶긴 했다.

기껏해야 유능한 주임이나 대리 몇 명이 정예팀 체험해 보고 본인의 근무 계획을 새로 고심해 보는 정도 아닐까.

그러나 말은 그럴싸했고, 아예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닐 테니 괜찮다.

‘분위기 조성 정도는 되겠지.’

그리고 최소한 청 이사에게는… 통했다.

-나쁘지 않군.

…왠지 넘어가 줬다는 식의 반응이라 뜨끔하긴 했지만, 그래도 통과가 됐다는 점이 중요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며칠 만에 현장탐사팀에 카더라가 돌았는지 동기 단톡도 오랜만에 활발해졌다.

[혹시 정예팀에 새로운 조 생기는 거 자세히 아시는 분 계시나요ㅎ]

[1~3년 차 직원 중에 누구 뽑는다는데 사실일까요?]

[저는 정예팀 인턴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 말씀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예팀 복지 사항들….]

재밌는 건… 더는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A등급을 한 번 더 클리어했다는 소식이 밝혀졌는데도 축하나 문의 한 번 올라오지 않았다.

‘따돌림…인가.’

만만하게 보지 못하도록 단톡방 질문에 응답을 좀 고심해서 했더니, 어느새 질문 자체가 사라지긴 했지.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단톡방에도 제일 나중에 초대되기도 했어.’

약간 씁쓸하다….

[소식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솔음 씨! 진짜 그 방법 성공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영은 씨.]

그래도 축하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주는 동기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도록 하자.

나는 내친김에 고영은 씨에게 지난 괴담에서 받은 도움을 정산했다.

‘고영은 씨는 받은 만큼 돌려주려고 하는 인격자니까 계속 신뢰를 쌓아두는 편이 좋겠지.’

내가 클리어한 방식을 공유하고, 받았던 ‘보스전 보상품’을 일부 떼어드리겠다고 한 것이다.

‘덕분에 안 죽고 클리어했으니까.’

…몸의 장기 위치 말이다.

어디만은 끝까지 사수해야 즉사를 면하는지 고영은 씨 덕에 알았다.

물론 다시 생각해 보니 진짜 몸이 떨릴 만큼 미친 짓이긴 했기에, 나는 잠시 오싹함을 눌렀다.

‘타투 스티커는… 조심해서 쓰자.’

효과는 확실했는데, 보통 짓은 아니었다…….

[아…… 음. 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영은 씨는 약간 갈등하는 것 같았지만 수락했고, 나는 그 동기와 사택 앞에서 만나서 수호부 구슬들을 몇 개 전달했다.

그리고 대화하는 도중에 ‘정예팀 신설’ 카더라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 혹시 영은 씨 혹시 정예팀 목표로 하실 생각은….”

“아뇨. 전 정말 괜찮습니다.”

“…….”

숨은 쉬고 말씀하세요, 영은 씨….

왠지 내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이미 강력하게 짐작하신 것 같았다.

‘사실 후보로 고려도 했었는데… 안 밀길 잘한 건가.’

어쨌든, 이 상황이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중 이게 최선의 답이었다…….

물론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 * *

“정말 정예팀이 되실 줄이야…….”

“…….”

“왜 그렇게 위험한 선택을 하셨어요.”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D조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이마를 잡았다.

“…호 이사님.”

“네?”

“혹시 제가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대체 왜 여기 계십니까?

왜 조금 있으면 방 뺄 D조 사무실에 천연덕스럽게 무슨 옆 사무실 동기가 놀러 온 것처럼 앉아 있는 건데!

“네? 솔음 님은 한 번도 무례하신 적이 없는데… 스스로 좀 더 자신감을 가지셔도 좋을 것 같아요.”

“…….”

진짜 보통 인물이 아니네….

약간 서운하다는 기색의 호 이사는 무슨 직장 동료에게 식사 한번 하자고 했다가 거절당한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날 조지든 무시하든 둘 중 하나는 할 줄 알았는데.’

왜 그대로지?

솔직히 말하자면 호 이사 쪽이 더 권한이 많고 파격적인 제안을 해준 게 맞았기 때문에, 거절에 앙심을 품기 딱 좋았는데 말이다.

‘상식적인 사람이면 저쪽을 골랐을 테니까.’

당연히 나도 그쪽에 더 기울긴 했다.

이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사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프로젝트의 차수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차수? 아, 몇 번째인지 물어보시는 걸까요?

-예, 맞습니다.

-그런 거라면 딱히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새로운 시도라서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 순간 결심했다.

‘손절하자.’

보통 괴담 회사에 프로젝트가 생긴다?

십중팔구 고등급 미지의 괴담 때문이다.

‘무조건 A 이상이야.’

여기서부터는 괴담이 위험도와 비례한다, 이런 수준이 아니다.

도저히 개인이 대처할 수 없으며, 예측과 대비가 불가능한 절망을 기본으로 하는 공포들이 소재가 된다.

죽음, 실종 같은 것 이상의 고차원적인 공포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직원이라면 누구나 눈 뒤집힐 만한 소원권까지 보상으로 걸었다?

‘S등급… 같지?’

이거 아무래도 이 회사 현장탐사용 최고 등급 나올 것 같다고.

게다가 첫 시도라 사전 정보가 없는 상황?

‘자살 행위다.’

아무리 대우가 좋아도 이건 전제에서부터 글러 먹었다.

차라리 내가 팀장인 게 확정이면 또 모를까… 아니, 사실 팀장이어도 이름만 번지르르하겠군.

‘잘도 이사가 뽑아놓은 드림팀 직원들이 입사 1년 차도 안 된 내 말을 듣겠어.’

게다가 이사가 있는 이상 팀장이란 그냥 중간 관리책일 뿐이다. 마음고생만 하다가 나 혼자 겨우 살아남거나 죽는 그림만 그려진다.

‘…그러고 싶진 않다.’

포인트를 벌써 삼분지 일 가까이 모았다. 소원권 때문에 굳이 그런 모험은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D조에 잔류하는 쪽을 고른 데에는, 조금 더 고려한 것도 있었다.

‘이렇게 해두면, 혹시 박민성 주임님이나 은하제 대리님이 복귀해도 자연스럽게 D조에 합류할 수 있겠지….’

…원래 비어 있어서 유동적으로 쓰던 자리에 사람이 들어오는 게 훨씬 쉬울 테니까.

그래서… 복합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떠들 수는 없으니,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이 편이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을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이쪽을 골랐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 순간, 호 이사의 사람 좋은 표정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목소리.

“착한 사람들은 이해가 어렵단 말이야….”

“…….”

잠깐, 지금……!

탁.

“저, 그래도 혹시 마음이 바뀌면 편하게 연락 주세요, 솔음 님.”

목소리가 사라졌다.

호 이사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고개를 꾸벅여 보이더니, 웃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

직전에 그거, 심상치 않았던 것 같은데…….

-노루 씨, 저자에게서 역병의 향취가 나는군요.

역병?

-스튜디오나 개인 공간에 초대할 때는 방역을 신경 쓰는 게 좋겠습니다!

“…….”

‘전염병…인가.’

나는 호 이사의 정체를 잠시 추리하다가, 결국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급한 것부터 하자. 급한 것부터.’

당장은 정예팀이 되기 전에 뭐가 필요한지 떠올리면서 재정비를….

“솔음 씨.”

으아아악!

“조, 조장님.”

호 이사가 나간 문으로 간발의 차로 들어온 도마뱀은 대뜸 내게 서류를 내밀었다.

“청 이사가 당신에게 ‘한번 확인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라며 전달하라고 하더군요.”

“예. 알겠습니다…….”

‘제발 예고 좀….’

나는 속으로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류를 받아 들어, 첫 장에 적힌 타이틀을 읽었다.

Qterw-C-1603

미등록 탐사 증언 #21

보안인증 완료 [C]

…어?

“제가 읽어도 되는 것… 맞습니까?”

“예.”

으음.

아무래도 C등급 보안인증이 있어야 열람할 수 있는 ‘정식 등록 전’ 탐사 보고서인데, 청 이사가 특별히 내게 풀어준 모양이었다….

‘더 무서워!’

하지만 보지 않겠다고 하기도 더 쫄렸다. 그래서 결국 심호흡 후에, 서류를 받아서 읽었다.

대체 무슨 탐사기록이길래…….

…….

어?

Qterw-C-1603에서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었다는 광고 전단을 확인.

제품명 : 착한 아이 초콜릿바 (시나몬 츄러스맛)

특징 : 나뭇가지 모양의 양 뿔이 달린 가면을 쓴 정장 차림의 아이 얼굴이 캐리커처로 그려진 포장지.

※포장지의 캐릭터가 본사의 현장탐사직 직원용 착장을 연상.

가면 모양이 유사한 직원들 확인 요망.

“…….”

잠깐만.

이거…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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