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88화
당연하지만 어둠 탐사 중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나 섬뜩한 경험을 하기 마련이었다.
귀신에게 쫓기기, 대중교통이 갑자기 들어본 적 없는 이상한 목적지로 가기, 집에서 나가는 순간 길거리 사람들이 다 자기를 쳐다보기 등….
하지만 경험하다 보니 이런 것들은 어느새 익숙해졌다고 말하는 직원도 많다.
‘하다못해 나도 약간은 익숙해진 것 같고.’
비록 오염과 아이템이라고는 해도 팔다리 잘려가면서 고등급 클리어하려고 들어서 성공한 게 바로 직전 괴담이지 않은가.
하지만 어떤 종류의 섬뜩함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령,
뜬금없이 ‘나’를 알아보는 괴담.
“…….”
나는 눈가를 떨며 서류를 넘겼다.
거기에는 아예 보고서를 작성한 탐사직원이 엉성하게 재현해 놓은 포장지의 그림까지 있었다.
-오, 화가가 정보 전달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나머지 그림의 미학성을 포기했나 봅니다.
더럽게 못 그렸지만 누군지는 정확히 알아보겠다는 뜻이다.
‘…브라운.’
-편히 말해보시죠, 친구!
‘저거 나 같지?’
-화풍을 고려해 가면과 머리매무새만 고려하자면, 아무래도 우리 둘 다 같은 추측을 한 듯하군요!
“…….”
심지어 제품명이 ‘착한 아이’에, 맛이 ‘시나몬 츄러스’….
‘테마파크 파란 마스코트잖아.’
그리고 출연 괴담이… ‘Qterw-C-1603’? 대체 왜 ‘저’ 괴담에 나타난 거지?
나는 반사적으로 내 문신을 힐끗거리려다가 참았다.
그리고 나를 멀뚱히 보고 있는 이자헌 과장에게 물었다.
“아직 공식 매뉴얼에 등재된 내용은… 아닌 게 맞습니까?”
“예.”
후.
그건 차라리 다행이다.
‘청 이사가 나한테 이걸 굳이 미리 보여줬다면….’
…호의? 빚?
아마 둘 다일 것 같긴 하다.
이게 탐사기록으로 공인되는 순간, 보안등급에 따라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묘사는 검은 네모로 검열될 것이다.
그 대신,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지 확인해 보자면서 연구팀이 실험적 탐사 시도를 할 확률이 높았다….
나처럼 꾸민 직원을 집어넣거나, 나에게 정보를 주지 않고 탐사를 시키거나.
‘곽제강은 아예 눈치채고 날 테마파크에 다시 집어넣으려고 할지도.’
와 미치겠네.
그 상황까지 가서 라인 탔답시고 청 이사한테 도움 요청했다가는 ‘청 이사와 함께하는 근속 30년 우수 직원’ 같은 상황이 되는 수가 있다.
왜 난 열심히 살았는데 조져질 가능성만 이렇게 널린 걸까….
‘괴담 세계관이 그렇지 뭐.’
어쨌든 지금은 이미 알았다는 것에 감사하자. 청 이사에게 적당한 수준의 심리적 은혜를 빚지게 되겠지만, 그래도 연구팀이 떡밥을 문 다음보다는 낫다.
‘그리고 나한테 이걸 굳이 미리 알려줬다는 건….’
“혹시 저희 팀이 이번 주에 탐사할 어둠이, 해당 어둠입니까?”
“모릅니다.”
“…조장님께서 추측하시기에, 그럴 확률이 5할 이상이라고 여기십니까?”
“예.”
역시.
‘기왕 먼저 알려주는 거라면 본인이 들어가서 확인해야 의미가 있긴 하지.’
‘Qterw-C-1603’이라.
어차피 괴담에 들어가서 쫄보로 정신 고문당해야 한다면, 더 가치 있는 쪽에 들어가는 게 맞긴 했다….
이 기준은 계속 변하지 않았다.
‘확인해 보자.’
그리고 이번에는 아주 든든한 동행인도 있고 말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물리 퇴마 네임드 직원, 바로 이자헌 조장!
……삐에로 괴담 때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마비된 공포 감각으로 지시를 내릴 수도 있겠지만.
‘음, 일대일이면 어떻게 설득하거나 빠져나갈 구석은 있겠지….’
최근에는 대화법도 좀 터득한 것 같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겁 없는 조장과 함께 간다는 건 제법 심정이 든든하고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변수가 하나 더 있었다.
“솔음 씨.”
“예.”
“지원 인력을 받겠습니까?”
아, 그렇지.
현장탐사는 3인 1조 기준이니까, 이번엔 우리 팀이 역으로 한 명을 지원받아서 탐사하게 되겠다.
‘정예팀 사전 운행 정도라고 보면 되려나.’
보통은 랜덤으로 그냥 되는 인원을 뽑아서 넣는 것 같던데…… 흠.
“혹시 어떤 분을 지정해서 받는 것도 가능한 상황입니까?”
“예.”
오! …아니, 잠깐만.
“……청 이사님께 부탁드리는 방식은 제외하겠습니다. 그래도 가능할까요?”
“아니오.”
“…….”
‘눈치채서 다행이다…!’
빚을 제곱으로 질 뻔했네.
나는 침음을 참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전부터 도마뱀 조장에게 궁금했던 것을 말이다.
“저, 조장님. 항상 대답을 간결하게 해주시는 편인데… 그러시는 이유가 있다면 알려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군요.”
도마뱀이 동공 초점을 잠깐 하늘로 향했다가 다시 나를 응시했다.
“상세한 대답은 요청 시에만 해달라는 피드백을 반영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피드백을 들으셨습니까?”
“이 회사에 근무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어둠 탐사 중 들었습니다.”
“…….”
그러셨군요….
구체적인 묘사를 들은 것도 아닌데 어떤 상황인지 그림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같다.
“저, 조장님.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저와 계실 때는 편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
그리고 이자헌 과장은…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김솔음 씨가 지원자의 성향을 지정하고 싶다면 제게 보고하십시오. 구체적인 인명을 지정할 수는 없으나 표본 집단으로 선호하는 특성은 요청할 수 있습니다.”
“…!”
자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잖아!
-노루 씨, 인터뷰어의 재능도 있군요!
고, 고맙다.
순간 효능감에 취할 뻔했으나, 지금 중요한 건 이자헌 과장이 말해준 내용 자체다.
‘딱 누가 오면 좋겠는지 집기는 어렵지만, 대충 이런 부류의 직원이 왔으면 좋겠다는 식으로는 말할 수 있다는 거지?’
흠.
나는 고민 끝에 ‘지원자의 특성’을 하나 정했다.
“사원 중 한 분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긴 숨겨진 의미가 있다.
바로 현재 사원들은 전원 내 동기라는 점.
‘결코 내가 동기 단톡방에서 소외되고 있기 때문은 아니고….’
음, 솔직히 말하자면 이 탐사 자체가 켕기는 구석이 있으니까, 너무 회사 돌아가는 일에 빠삭한 연차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서 골랐다.
‘겸사겸사 안면도 트면 좋고.’
슬슬 회사에서 아는 사람을 좀 늘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예.”
이자헌 과장은 시원스럽게 내 요청을 승낙했고, 나는 약간 기대하게 됐다.
과연 어떤 새로운 얼굴을 보게 될까?
* * *
그리고 며칠 후.
“…….”
“…….”
나는 반가운 눈빛을 보내는 장허운을 D조 사무실 문 앞에서 만나게 된다.
“F조 사원 장허운입니다…!”
아는 얼굴이잖아.
그래도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어쨌든 상사는 아니니까 좀 더 편한 탐사가 되겠지.
나는 웃으며 장허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또 뵙는군요. 오늘 탐사 잘 부탁드립니다.”
“예, 솔음 씨! 꼭 클리어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장허운은 시원하게 내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음, 역시 괜찮은 사람….
“오오, 네넵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
“……??”
고개를 돌리자, 싱글벙글 웃고 있는 직원 하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우리에게 다가오며 꾸벅 인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 좋은 인상의 내 또래 여성.
쓰고 있는 것은 조랑말 가면이다.
“I조의 지원 인력입니다. 이번 어둠은 매뉴얼상 탐사 시 짝수 인원을 권장해 2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강이학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주임님, 사원님!”
“네…!”
황급히 고개를 꾸벅 숙이던 장허운이 깨달았다는 듯이 외쳤다.
“아, 단톡방에서 말씀 자주 해주시는…!”
“예예, 하하, 부끄럽지만 그거 저 맞습니다!”
아.
[강이학 : 포인트 4만 받으신 거 사실인가요?ㅎㅎ]
나도 기억난다.
내가 단톡방에 들어갔을 때 적극적으로 정보를 캐내려 들어서 적당히 견제했던 그 사람이다.
‘동기 단톡방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 같았는데.’
친목보다 이득 위주로 돌아가도록 말이다.
그 동기는 어느새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와, 수석 동기님!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야말로.”
나는 가볍게 악수했다.
…깔끔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가볍잖아.’
좀 더 구밀복검 스타일의 인간상을 생각했는데, 서글서글한 느낌이다. 질문에 다른 뜻을 숨긴 느낌이 아니라고 할까.
‘뭐, 괜찮은 사람이면 감사할 뿐이긴 하다만….’
같이 탐사해야 하는데 백사헌 같은 인성 쓰레기가 나와서 피곤한 것보단 훨씬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고 좋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귀신 나와서 내적 비명을 지르는데, 옆에 소시오패스만 있을 때의 기분을…… 크흡.
“이동하겠습니다.”
“네.”
이자헌 조장이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조용히 조장을 쫓아서 차에 탑승했고, 나는 운전대를 잡고 내비게이션을 조작했다.
“저희 지금 경기도로 이동하는 거죠?”
“예.”
그래, 이번 어둠도 아예 서울권에서 벗어나는 거다.
아까 전 내가 열람한 탐사 보고서만 보면 오해할 수도 있지만, Qterw-C-1603은 단순히 이상한 과자가게 괴담이 아니었다.
좀 더 크고… 음습하다.
“음, 이번 괴담에 진입하려면…… 아, 우선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늦게 모인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장허운에게 친절히 대답하며 운전을 시작했다.
일단 이 어둠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 두 가지 요인을 모두 맞춰야 했다.
Qterw-C-1603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경기도 ■■시 외곽의 주택가로 이동해야 함.
해당 주택가는 2010년 초반 맛집이나 카페가 많아 SNS에서 유행하던 골목상권으로, 현재는 인적이 뜸해짐.
이곳 전봇대에서 매우 드물게 지역 상가 홍보 포스터가 목격됨.
포스터 중앙에는 ‘■■시 사망단길에 놀러오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QR 코드가 인쇄되어 있음.
※해당 포스터의 문구를 지나치게 자세히 응시하지 말 것.
참고로 이 회사에서는 미리 해당 포스터를 확보해서 QR만 보이도록 가려놓았다.
“주임님, QR 코드 제가 대신 스캔해 놓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QR을 스캔할 시 ■■시 지자체에서 인증한 이벤트 어플의 다운로드 페이지로 연결되며, 탐사자가 만 40세 미만일 시 정상적으로 다운로드가 이루어짐.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공영주차장에 주차 후 내려, 한적한 골목길로 걸어 나왔다.
겨울의 짧은 해가 지며 어둑어둑해질 시간대.
아직도 대부분 식당과 카페는 남아 있었지만, 유행이 지나간 상권 특유의 침체한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이제 어플을 실행하십시오.”
나는 화면을 보았다.
■■시의 옛 로고와 캐릭터가 포함된, 약간 촌스러운 디자인의 오프닝을 지나가면….
초저녁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해당 장소에서 어플을 첫 실행 시, 내비게이션 기능을 통한 길 안내가 활성화된다.
정말로 어플 자체에서 안내가 시작된다.
사망단길 가는 길 →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세요!
스마트폰에 증강현실처럼 GPS상 내 위치가 뜬다.
“걸으십시오.”
“…….”
우리는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만 본 채, 다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세요!
처음에는 정상적이다.
골목에서 그나마 큰길을 따라 안내를 시행하며, 점점 더 이 상권의 외곽으로 나를 안내하는 듯하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길이 꼬이기 시작한다.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세요!
한 사람만 겨우 지나다닐 좁은 주택 틈으로 안내하고, 건물의 앞문으로 들어가서 뒷문으로 나오게 만들고.
심지어는 막다른 길로 안내한 뒤, 돌아 나오게 만들기도 한다.
어두컴컴한 골목.
어쩐지 점점, 주변이 낯설고 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목덜미가 서늘해지고, 문법에 안 맞는 중얼거림이 들리며 이상한 그림자 같은 것들이 시야 밖으로 지나가는 것 같다….
‘…참아야 해.’
그러나 고개를 돌리면 안 된다.
어플의 길 안내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 절대로 화면에서 3초 이상 시선을 떼거나 안내 경로에서 벗어나지 말 것.
이를 지키지 못할 시 행방불명 처리됨.
우리는 침묵 속에서 계속 움직였다.
서로 부딪히거나 놀라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세요!
“방금 이상한….”
“쉿.”
그렇게 16분 정도를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새 어스름한 석양빛마저 완전히 사라진다.
“…….”
“…….”
안 그래도 어둑하던 골목길 상권에서 이상할 정도로 모든 빛이 사라지고, 캄캄해진 상태.
오로지 우리의 스마트폰 화면 불빛만이 광원이 되며 주택가를 비추는 그때.
탁.
타타탁.
어두운 길목에서 하나씩, 불이 켜진다.
“…!”
길거리 상가들이 점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간판에서 노랗고 파란빛들이 골목 전경을 비췄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아까 봤던 익숙한 낡은 상권의 풍경이 아니다.
수군수군.
수많은 인영이 북적이는 골목.
언뜻 보면 익숙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왜곡된 이름을 달고 있는 간판들.
골목에 늘어선 각종 가게들은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받고 있다…….
띠리링.
어플이 축하 문구를 띄운다.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사망단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도착, 한 겁니까?”
“예.”
우리는 성공적으로 들어선 것이다.
괴담의 한가운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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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 16로]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C-1603.
인간이 아닌 무언가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상점이 늘어선 골목길.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이 골목에 진입한 탐사자는 절대로 어플을 종료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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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으십시오.”
“…….”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마뱀 과장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한 골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