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10권 양대호리(兩大狐狸)편 :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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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10권 양대호리(兩大狐狸)편 : 11화


제99장. 본산수복(本山收復)

또로록…

여덟 번째 돌멩이가 굴러 내렸다. 양전은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철저히 놀림감이 되었군.”

반시진 넘게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절벽 아래에서 기다렸으나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금시라도 절벽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낼 것 같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가끔 한 번씩 떨어져 내리는 돌멩이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모두 굳어져 있었다. 양전은 힐끗 고개를 돌려 정씨 형제를 쳐다보았다.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소. 태화각으로 돌아갑시다.”

정씨 형제는 팔짱을 낀 채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들 중 얼굴이 유난히 붉은 사람이 맏이인 혈염라 정혼이었고, 시체처럼 푸르뎅뎅한 얼굴을 한 자가 둘째인 청염라 정탁이었다. 그들의 피부색이 특이한 것은 그들이 좀처럼 보기 힘든 괴이한 신공을 연마했기 때문이었다.

혈염라 정혼이 고개를 저었다.

“이왕 온 김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지. 어차피 그곳에 가 보았자 종리황의 잔소리나 듣고 있을 텐데…”

청염라 정탁이 작은 눈을 매섭게 번뜩였다.

“이곳에 죽치고 있을 게 아니라 산문으로 가 봅시다. 모처럼 나왔으니 한 놈이라도 죽이고 가야겠소.”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정탁을 보고 양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곳에 가도 정 이형(程二兄)의 차례까지 돌아오지는 않을 거요. 어쩌면 벌써 상황이 종료되었는지도 모르고. 아무튼 오늘은 이래저래 헛물만 켜게 될 것 같소.”

양전의 옆에 서 있던 체구가 건장한 외팔이 중년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종남파가 아무리 별볼일 없는 놈들의 집합체라고 해도 이런 정도로 끝날 리는 없소. 무언가 다른 꿍꿍이속이 있을 거요.”

그 외팔이 중년인은 칠대빈객 중의 하나인 독수금륜 낙무인이었다. 낙무인은 자신의 수족과 같은 육태세만을 동봉에 남겨 두고 이곳에 불려왔기 때문에 불만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다. 그깟 돌멩이 굴러오는 소리에 놀라 동봉에서 여기까지 사람을 오라고 했단 말인가?

양전도 머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종리황의 예측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무척 타당하고 이치에 맞는 것이었는데 어디에서 일이 잘못되었는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곳에서 돌멩이 떨어지는 소리나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낙 형은 미안하지만 다시 동봉으로 돌아가 주시고, 정씨 형제 두 분께서는 산문으로 가서 일을 마무리지어 주셨으면 하오. 나는 조사전 부근으로 가서 그곳의 상황을 알아보겠소.”

“그게 좋겠군. 그럼 나 먼저 가 보겠소.”

아까부터 마음이 급했던 낙무인이 휑하니 몸을 돌렸다.

하나 낙무인은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낙 형, 무슨 일로…”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던 양전의 표정이 굳어졌다. 낙무인이 왜 다시 돌아왔는지를 알아차린 것이다. 정씨 형제도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들에게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한 사람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양전이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양전은 그의 정체를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저쪽은 태화각이 있는 곳인데…’

양전은 앙상하게 마르고 키가 큰 괴인을 응시하다가 불쑥 물었다.

“어디서 오는 거요?”

괴인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태화각.”

양전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느끼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지 않았소?”

“몇 사람이 있더군.”

“그들은 어떻게 되었소?”

괴인의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 전에도 누군가가 똑 같은 질문을 하더군. 내 대답도 똑같소. 정말 몰라서 묻는 거요?”

양전의 눈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태화각에는 그가 두고 온 여섯 명의 수하들뿐 아니라 종리황과 전괴도 있었다. 설마 그들 모두 이 괴인을 막지 못하고 쓰러졌단 말인가?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철혈수사 종리황과 패왕창 전괴가 함께 있는데 누가 감히 그들을 쓰러뜨릴 수 있단 말인가?

‘암습(暗襲)을 썼거나, 그들이 방심했을 것이다.’

양전은 이런 식으로라도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강호의 도산검림(刀山劍林)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종리황과 전괴가 암습이나 방심으로 쓰러질 리 없다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양전이 지시를 하기도 전에 그의 수하 십여 명이 이미 괴인을 에워싸고 있었다.

“물러서라.”

양전은 손을 흔들어 그들을 물러나게 했다. 쓸데없는 부하들의 희생은 가급적 억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하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주춤주춤 물러나자 양전은 괴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앙상할 정도로 비쩍 마른 얼굴은 왼쪽 뺨에 칼자국까지 있어 험상궂어 보였으나, 의외로 나이는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했다. 두 눈은 비정하리만치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두 팔은 자연스레 늘어뜨려 방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허리춤에는 고색 창연한 장검을 차고 있었는데, 장검의 검집에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 한눈에 보아도 절세의 보검(寶劍)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괴인의 모습을 살핀 양전은 신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종남파의 어느 귀인(貴人)이시오?”

괴인은 짤막하게 말했다.

“이곳의 주인이오.”

모든 사람의 표정이 조금씩 변했다. 십여 명의 수하들은 어리둥절한 빛을 감추지 못했고, 낙무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으며, 정씨 형제는 가뜩이나 날카로운 안광을 더욱 매섭게 번뜩였다.

그리고 양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귀하가 오래 전에 실종되었다던 종남파의 장문인이란 말이오?”

“그렇소.”

양전은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뵙게 되어 반갑소. 나는 검패 양전이라 하오.”

진산월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내가 없는 동안 당신이 본파를 관리해 왔다고 들었소.”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이들이 적대 관계가 아니라 서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착각했을 것이다.

양전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관리라니 당치않소. 원래 주인이 돌아온 이상 다시 비워 주는 것이 도리이겠으나, 상황이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구려.”

그때 정탁의 냉혹한 음성이 들려 왔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요? 어서 해치웁시다.”

양전이 무어라고 입을 열려 하자, 이번에는 정혼이 차갑게 말했다.

“적수(敵手)간에 예의는 공염불일 뿐이지.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쓰러져야 하는데, 일부러 투쟁심을 약화시킬 필요는 없지 않겠나?”

낙무인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자가 종남파의 장문인이라면 오늘로써 이곳에서의 지긋지긋한 잠복 생활도 끝나는 셈이오. 지금 결판을 냅시다.”

“좋소. 그럼 누가 먼저…”

낙무인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정말 계속 이럴 거요? 여기에 우리밖에 없는데 눈치볼 게 뭐 있소? 함께 달려들어 저자를 요절내 버립시다.”

낙무인이 거칠게 소리치며 등뒤로 손을 가져갔다.

창!

날카로운 음향과 함께 그의 손에는 금색 빛이 휘황찬란한 륜(輪)이 쥐어져 있었다. 낙무인이 애지중지하는 금화신륜(金華神輪)이었다.

그 소리에 저절로 반응되듯 정혼과 정탁 형제도 진산월의 양쪽으로 어슬렁거리며 움직여 갔다. 양전은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낙무인과 나란히 선 채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검광이 어른거리자 순식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해버렸다.

양전이 채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양전의 옆에 있던 낙무인이 돌연 출수를 했다.

쒸아앙!

고막을 후벼파는 듯한 괴이한 음향과 함께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금화신륜이 눈부신 금과을 뿌리며 진산월에게로 날아갔다. 진산월은 피하지 않고 금화신륜을 장검으로 후려쳤다.

이 광경을 본 낙무인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떠올랐다. 금화신륜은 곤륜산(崑崙山)의 깊숙한 곳에서만 나는 특이한 오금(烏金)에 만년정모(萬年精母)를 섞어 만들어서 웬만한 병장기는 간단하게 부수어 버릴 정도로 단단했던 것이다.

깡!

불똥이 튀기며 무언가가 튕겨져 올랐다.

낙무인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미소가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은 그 직후였다. 튕겨져 나간 것은 다름 아닌 금화신륜이었던 것이다. 낙무인이 황급히 회수하지 않았다면 금화신륜이 바닥에 떨어져 낙무인은 망신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정혼과 정탁 형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움직이자 그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붉고 푸른 두 개의 그림자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꽝!

갑자기 귀청 떨어지는 듯한 폭음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중인들이 놀라 보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산월이 서 있던 자리에 두 자가 넘는 웅덩이가 파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혈염라 정혼이 펼친 장력의 흔적임을 깨달은 사람은 낙무인과 양전뿐이었다. 진산월의 몸은 허공에 떠 있었다. 푸른 그림자가 일직선으로 허공에 있는 진산월을 향해 쏘아져 갔다. 진산월의 몸이 갑자기 허공에서 일 장쯤 더 위로 쑤욱 올라가며 푸른 그림자를 피했다.

양전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탄성이 흘러 나왔다.

“어기부운(御氣浮雲)!”

삼 장 높이까지 솟구쳐 오른 진산월의 몸이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지며 눈부신 검광을 뿌려댔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진산월의 몸을 공격했던 청염라 정탁은 무언가 차갑고 예리한 기운이 좀처럼 보기 힘든 빠른 속도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깨닫고 양손을 질풍처럼 휘둘렀다. 푸르스름한 강기(?氣)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두 검광과 강기가 하공에서 격돌하는 소리는 의외로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그 결과는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큭!”

정탁의 신형이 한차례 휘청거리며 세 걸음이나 물러섰던 것이다. 정탁의 앞가슴은 어느새 검기에 모두 잘려 나가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 가슴에 종횡으로 그어진 검 자국은 십여 개나 되었다. 비록 깊이가 얕아서 가슴이 갈라지거나 하는 치명상은 입지 않았으나 정탁은 어지간히 놀랐던지 가뜩이나 푸르스름한 얼굴이 더욱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정탁이 익힌 청염신공은 사람을 살상하는 데도 뛰어날 뿐 아니라 호신강기(護身?氣)로도 그 위력이 상당한 무공이었다. 그런데 너무도 허망하게 상처를 입고 보니 오히려 허탈해질 지경이었다. 정탁이 푸르스름한 안광을 번뜩이며 재차 진산월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미 신호가 되어 있었는지 정혼도 어느새 진산월의 앞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낙무인도 금화신륜을 들고 달려들었으며, 양전도 이번에는 아무 소리 없이 그를 따라 진산월을 공격해 들어갔다.

일 대 일로는 누구도 진산월을 이길 수 없다는 무언(無言)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네 명의 절정고수가 동시에 합공(合攻)을 하자 그 위력은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특히 정혼과 정탁의 장력은 그 위력이 엄청나서 그들이 쌍장(雙掌)을 휘두를 때마다 주위가 지진이라도 만난 듯 마구 뒤흔들릴 정도였다.

진산월의 장검이 움직이며 다시 예의 공포스런 검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휘익!

그의 검이 한 줄기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며 정혼의 장력을 뚫고 그의 미간(眉間)을 향해 날아갔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정혼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이 이미 그 검광에 꿰뚫려 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형, 위험해!”

정탁이 다급한 외침을 토해내며 청염장(靑焰掌)을 거푸 세 번이나 날렸다. 정혼 또한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신형을 옆으로 이동시켰다. 하나 그때 그의 미간으로 날아오던 검광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전혀 다른 검광이 그의 목덜미를 향해 쏘아져 오는 것이 아닌가? 이제 보니 처음의 검광은 허영(虛影)이었고, 두 번째 것이 진짜 검광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유운검법 중의 추운축전(追雲逐電)이란 초식으로, 일직선으로 움직이는 검영(劍影) 속에 진검(眞劍)을 숨긴 무서운 살수였다. 강호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누구도 두렵지 않던 정혼도 이때만큼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정혼은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한 손을 희생할 작정으로 왼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때마침 양전의 장검이 날아들어 그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오는 검광을 막지 않았다면 정혼은 목이 꿰뚫리거나 최소한 왼손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 그 대신에 양전은 검광을 막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서고 말았다.

양전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했다. 그도 검을 익히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검광에 이런 위력을 실어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눈앞의 이 종남파 장문인은 아무리 보아도 서른도 넘지 않은 나이에 측량도 할 수 없는 고강한 검술을 익히고 있음이 분명했다.

검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솔직히 양전은 그에게 부러움과 함께 어떤 외경심(畏敬心)을 느꼈다. 도대체 어떤 수련을 했기에 젊은 나이에 저토록 가공할 검술을 터득했단 말인가? 하나 경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물러서는 그 짧은 순간에도 진산월의 검은 정탁을 무섭게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탁은 형을 구할 욕심에 앞뒤를 돌보지 않고 덤벼들었다가 허점을 보여 금시라도 검광에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 쌍염라 정씨 형제는 초가보는 물론이고 강호 전체를 통틀어도 누구도 무시 못할 실력을 지닌 절정의 고수들인데 진산월이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연신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나 그것도 정씨 형제가 뛰어난 무공의 소유자들이었기에 그 정도였지, 정씨 형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정탁을 구해 준 것은 낙무인이었다. 낙무인은 적시에 금화신륜을 날려 정탁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나 그 대신에 이번에는 그가 진산월의 검세(劍勢)에 노출되었다. 낙무인은 금화신륜을 휘둘러 결사적으로 대항했으나, 이내 옆구리가 피범벅이 되어 휘청거렸다.

정혼과 정탁이 거의 동시에 쌍장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들 형제의 장력은 정말 무서워서 정통으로 격중당하게 되면 천하에 다시없는 고수라 해도 견디지 못하고 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들이 단지 두 개의 육장(肉掌)만으로 사패보다 더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과연 진산월도 그들의 장력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는지 슬쩍 몸을 뒤로 뺐다. 하나 그들이 채 안심하기도 전에 진산월은 조금 전보다 훨씬 빨리 앞으로 전진하며 수중의 검을 빠르게 흔들었다.

쉬악!

도저히 검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센 음향과 함께 강력한 네 줄기의 검광이 정혼과 정탁 형제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들은 이미 조금 전에 진산월의 검에 혼쭐이 난 적이 있으므로 이와 같은 무시무시한 검광을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체 이건 무슨 검법이란 말인가?’

그들의 뇌리에는 똑 같은 질문이 떠올랐으나, 그 질문의 해답을 구할 겨를은 없었다. 그들은 황급히 양쪽으로 갈라지며 진산월의 왼쪽과 오른쪽을 공격해 들어갔다. 그런데 피한 줄 알았던 네 줄기의 검광들이 갑자기 각기 두 개씩 갈라져 여덟 개의 검광으로 변하더니 그들의 전신을 휘감아 오는 것이 아닌가?

“으헛!”

두 사람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다급한 헛바람 들이키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들은 공격하려고 내뻗었던 손을 재빨리 거두며 검광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비틀었다. 다음 순간, 여덟 개의 검광이 갑자기 하나로 합쳐지더니 우측에 있는 정탁의 몸을 사정없이 가격해 버렸다. 그것은 너무도 창졸지간에 벌어진 변화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크아악!”

정탁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탁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탁아!”

정혼이 그의 몸을 안아들었을 때는 이미 정탁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다. 그 구멍은 정탁의 몸을 완전히 관통하여 등뒤까지 같은 크기로 뚫려 있었다. 대체 검으로 이와 같은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유운검법에서도 가장 익히기 어렵다는 유운검봉(流雲劍峯)임을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이 초식은 검봉이 발출되는 개수에 따라서 명칭이 달라지는데, 조금 전과 같은 여덟 개의 검광이 하나로 합쳐질 경우에는 유운팔봉(流雲八峯)이라고 불렀다. 이 검봉을 종남파 사상 가장 많이 발출한 사람은 유운검법의 창시자인 곽일산으로, 그는 일검에 열여섯 개의 검봉을 발출해 세인들을 경악시켰다고 한다. 최근의 백 년 동안 종남파에서 여덟 개 이상의 검봉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탁의 죽음은 결코 억울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 정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정탁의 시체를 안고 있던 정혼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무서운 기세로 진산월을 향해 덮쳐 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양전과 낙무인이 진산월의 검법에 필사적으로 대항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놈!”

정혼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고함을 토하며 진산월의 앞가슴을 향해 폭포수 같은 쌍장을 퍼부어댔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살벌하던지 양전과 낙무인조차 그 장력의 여파에 휩쓸려 몸을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진산월은 담담한 표정으로 검을 한차례 휘둘렀다. 허공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그토록 가공스럽던 정혼의 혈염장(血焰掌)이 씻은 듯이 사라지며 눈부신 섬광 한 가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

정혼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진산월을 쏘아보다가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양전과 낙무인이 놀랄 사이도 없이 진산월의 장검은 또 다른 변화를 일으키며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 천변만화하는 검법에 질린 낙무인이 금화신륜을 진산월에게 내던지며 뒤로 물러나 도망치려 했다. 하나 그의 동작은 조금 늦었다. 검광이 갑자기 확산되며 그의 신형을 그대로 휩쓸어 버린 것이다.

“크악!”

낙무인은 허리가 두 동강이 난 채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양전 또한 무사하지는 못했다. 비록 그는 낙무인처럼 허리가 두 동강이 나는 신세는 면했으나, 왼쪽 팔이 팔꿈치 아래로 싹둑 잘려 버렸던 것이다. 수중에 들고 있던 장검마저 어느새 부러져서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양전은 반토막 난 검을 든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진산월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자신의 팔이 잘려 나간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강하다니… 이렇게 강한 검법이 있다니…”

그는 마치 정신나간 사람처럼 의미 모를 소리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진산월은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그가 네 명의 절정고수와 싸운 시간은 채 일각(一刻)도 되지 않았고, 펼친 무공도 유운검버 중 아홉 초식에 불과했다. 그런데 네 명 중 세 사람은 검하고혼(劍下孤魂)이 되어 버렸고, 한 사람은 팔이 잘린 채 싸울 의욕을 상실해 버렸던 것이다. 장내에는 양전의 부하 십여 명이 있었지만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진산월은 사람이 아닌 검신(劍神)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어찌 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진산월은 아직도 팔을 지혈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있는 양전을 힐끗 쳐다보더니 몸을 돌리려 했다. 그때 양전이 불쑥 물었다.

“이게 종남의 검법이란 말이오?”

진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검법의 이름은?”

“유운검법.”

양전의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렸다.

“유운검법… 그래, 정말 거대한 구름이 움직이는 것 같았어…”

양전은 얼굴을 실룩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왜 나를 저들처럼 죽이지 않고 살려 주는 거요?”

진산월은 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태평각과 태화각을 둘러보았소. 약탈당하거나 파손된 곳이 없이 예전처럼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더군.”

“…!”

“지난 육 개월 동안 본파를 잘 관리해 준 대가라고 생각하시오.”

이어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신형을 날려 장내를 떠나갔다. 양전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더니 땅이 꺼질 듯한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후우… 남의 동정으로 목숨을 건지다니… 살아서 이런 꼴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군.”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한동안 못박인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쓸쓸히 몸을 돌렸다.

“보(堡)로 돌아가자. 이곳의 주인은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그의 음성은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만큼이나 우울하고 침통한 것이었다.

진산월이란 이름 세 글자가 강호의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하나 그때만 해도 이 이름이 나중에 신화와 전설로 뒤덮이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는 사람이 없었다.


“헉헉…”

방취아는 왼손에 흐르는 피를 지혈(止血)할 여유도 없이 계속 몸을 움직였다. 잠시만 멈춰도 독사의 이빨 같은 날카로운 채찍이 그녀의 몸을 휘감아 왔기 때문이다. 그 채찍의 끝에는 수십 개의 가느다란 철침(鐵針)이 박혀 있어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과연 신망이라 불리는 곡풍이 사용할 만한 악독한 병기였다. 처음에 혈붕 시일해아 싸울 때만 해도 그녀는 시일해를 눕히고 조사전을 장악할 자신이 있었다. 천둔장법이 예상외의 위력을 발휘하여 시일해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조사전만 장악하면 자신의 임무는 다한 셈이니 그때부터는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장문사형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막 시일해를 눕히려는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채찍이 날아들었다. 그 채찍에 설마 철침이 달려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그녀는 무심코 여느 채찍처럼 생각하고 오른손으로 계속 시일해를 향해 장력을 날리며 왼손으로 채찍을 후려쳤던 것이다. 덕분에 시일해에게 적지 않은 부상을 입힐 수는 있었으나, 그녀의 왼손도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머리끝까지 솟구쳐 오르는 통증을 억누르며 거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철침이 가득 박힌 채찍을 들고 징그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비쩍 마른 해골 같은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그 중년인이 혈붕 시일해와 함께 팔수에 속해 있는 신망 곡풍임을 알아차린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곡풍의 독아편(毒牙鞭)에 당한 왼손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해서 팔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처럼 신법을 장기로 하는 사람이 한쪽 팔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으니 자연히 신법을 펼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그녀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 계속되었다. 시일해는 비록 옆구리의 갈비뼈가 부러져 나가는 부상을 입었으나 아직도 몸을 움직일 수는 있었다. 그는 그동안 그녀에게 당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지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 게다가 곡풍이 수시로 독아편을 날려 그녀를 위협하는 바람에 그녀는 계속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방취아는 왼손의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계속 흘러 나오는데도 미처 지혈할 시간도 없이 이리저리 몸을 날려 시일해와 곡풍의 공격을 피해 다녔다. 천만다행으로 시일해나 곡풍이나 신법에는 그다지 조예가 깊은 인물들이 아니어서 그녀는 그럭저럭 위급한 순간을 넘길 수 있었다. 하나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왼손으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가끔씩 어지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손에 쓰러지고 말리라고 생각하고 비장한 결심을 했다.

‘이대로 허무하게 쓰러지지는 않겠어. 한 놈이라도 저승길의 길동무를 삼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때마침 곡풍의 독아편이 예리한 소리를 내며 그녀의 허리를 휘감아 왔다.

‘오냐, 아까부터 네놈은 꼭 손을 봐주려 했다.’

그녀는 곡풍 때문에 이러한 고초를 겪었는지라 그에 대한 원한(怨恨)이 사무쳐 즉시 주저앉고 자신의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녀는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독아편이 자신의 발 밑을 스쳐 지나가게 했다.

쾌액!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일해의 혈정권이 날아들었으나 그녀의 신형은 어느새 옆으로 일 장쯤 이동하여 그 주먹을 가볍게 피했다.

“정말 신법(身法) 하나는 귀신 같은 계집이군.”

곡풍이 투덜거리며 독아편을 회수했다가 재차 떨치려 할 때였다. 삼 장쯤 떨어진 바닥으로 내려서는 듯 했던 방취아의 몸이 갑자기 회전을 하더니 하나의 팽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바닥에 낮게 깔린 채 곡풍을 향해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이것은 곤지룡(滾地龍)이라는 신법으로, 자신의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 그 회전력을 이용해 상대의 하체를 공격하는 수법이었다. 곡풍은 계속 피하기만 하던 그녀가 갑자기 공세로 전환할 줄은 몰랐는지 허가 찔려 뒤로 주춤 물러났다. 하나 빠르게 돌진해 오는 곤지룡 앞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은 오히려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순식간에 그녀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그제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곡풍은 황급히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며 독아편을 휘둘렀다.

쉬아악!

한 마리의 독사처럼 독아편이 꿈틀거리며 방취아의 목덜미를 향해 허공을 미끄러져 갔다. 하나 그녀의 자세가 워낙 낮은데다 바닥에 거의 닿을 듯한 높이로 움직이고 있기에 독아편은 그녀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팟!

그녀의 어깨가 갈라지며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 순간에 그녀는 곡풍의 발 밑까지 바짝 다가설 수 있었다. 시일해가 곡풍의 위기를 알아차리고 전력을 다해 혈정권으로 그녀의 등을 후려쳐 갔다. 하나 그녀는 그의 공격은 전혀 도외시한 채 곡풍의 발 밑에서 머리 쪽으로 솟구쳐 오르며 천둔장법으로 그의 단전과 가슴팍을 향해 십여 장을 폭포수처럼 갈겨댔다.

파파파팡!

“크억!”

곡풍은 앞가슴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시커먼 핏줄기를 토해내며 이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시일해의 혈정권이 그녀의 등을 강타하려 했다. 그 강력한 주먹에 격중되기만 하면 그녀의 등뼈가 산산이 부서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새하얀 섬광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 섬광이 날아오는 속도는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팟!

섬광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방취아는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눈을 꼬옥 감고 있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등에 시일해의 주먹이 닿는 느낌이 없자 살짝 눈을 떠보았다. 시일해는 그녀를 향해 주먹을 내뻗은 자세 그대로 미동도 않고 우뚝 서 있었다. 하나 그녀는 시일해의 뒤통수를 지나 목덜미 앞으로 하나의 장검이 비어져 나와 있음을 발견했다. 무언가를 느낀 듯 그녀는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비명 같은 외침을 토해내며 한 사람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장문사형!”

진산월은 자신의 품속에 안긴 방취아의 몸을 꼬옥 끌어안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큰일날 뻔했구나.”

방취아는 아무 말도 못하고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두려움과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에 그녀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진산월은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어루만져 주다가 그녀의 몸의 곳곳이 피투성이임을 보고 그녀를 품속에서 떼어냈다.

“상처가 심하구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배꽃 같은 얼굴에 한 줄기 눈물이 맺혔으나, 그녀는 이내 방긋 웃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어요.”

“지혈부터 먼저 해야겠다.”

진산월은 그녀의 왼손에서 아직도 흘러내리는 상처의 피를 지혈한 후 시일해의 목에 꽂혀 있는 용영검을 회수했다. 조금 전에 방취아가 위기에 처한 것을 발견하고 십여 장 거리에서 홍단서천(虹斷西天)의 수법으로 용영검을 날려 시일해를 제거했던 것이다. 홍단서천은 종남파에서도 장문인만이 익힐 수 있는 비전검술(秘傳劍術) 중 하나로, 검을 날려 적을 살해하는 최고 수준의 비검술(飛劍術)이었다. 한동안 진산월의 손에 구출된 것을 기뻐하며 울고 웃던 방취아는 다급하게 물었다.

“소 사형은 어떻게 되었어요? 동 사질은요?”

“지산은 여러 고수들의 합공을 받고 상당한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다행히 중산이 때마침 도와 줘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지금은요?”

“산문 앞을 정리하고 있지.”

그녀는 소지산과 동중산이 모두 무사하다는 말에 뛸 듯이 기뻐하다가 의아한 듯 다시 물었다.

“뭘 정리하는데요?”

“시체들.”

그 말에 그녀는 몸을 움찔거리다가 갑자기 안색이 환해졌다.

“장문사형, 그럼 결국…”

진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본산을 되찾았다.”

그녀의 얼굴에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을 실룩거리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진산월은 그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주었다. 한참을 소리 죽여 흐느끼던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조그만 음성으로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이제는 돌아가신 선사(先師)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너희들이 고생해 준 덕분이다.”

그녀는 도리질을 했다.

“장문사형 때문이에요. 우리들만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는 빨갛게 부은 얼굴을 소매로 문지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가요. 소 사형과 동 사질을 빨리 보고 싶어요.”

환하게 웃으며 달려가는 그녀의 머리 위로 유난히 눈부신 아침 햇살이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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