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16권 봉황무종(鳳凰無踪)편 :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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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16권 봉황무종(鳳凰無踪)편 : 9화


제 164장 혈겁내막 (血劫內幕)

아침 해가 밝았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가슴속에 음모를 품은 사람들은 음모를 품은 사람들대로, 미혹과 의문에 휩싸여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대로 그리고 무언가 결연한 각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또 그들대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하나둘씩 이씨세가의 본청(本廳)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묘시(卯時)경부터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진시(辰時)가 넘어서자 상당수의 사람들이 본청 앞을 메우고 있었다. 그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씨세가 전체를 뒤흔들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사시(巳時)가 되자 본청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안으로 들어오시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본청 안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어갔다. 이씨세가의 본청은 드넓은 이씨세가에서도 가장 커다란 건물로, 이삼백 명을 족히 수용할 수 있었다. 하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본청은 금세 발 디딜 들도 없이 인파로 북적거리게 되었다.

그도그럴 것이 이씨세가의 회갑연에 초대되었던 고수들이 대부분 머물러 있다가 본청으로 몰려들었으니 그 숫자는 어림잡아도 사오백 명에 달했다. 그들 대부분이 강호무림에 명성이 자자한 고수들이거나 한 지역의 패주(覇主)들임을 생각해 본다면 오늘 이곳 에는 서안의 거의 모든 정예들이 모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청의 중앙에 있는 넓은 대청의 한쪽에는 형형색색의 휘장이 쳐져 있는데, 그 휘장 안은 내실(內室)로 향하는 입구가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대청의 중앙에는 반경 오 장 정도 되는 단(壇)이 마련되어 있었고, 단상(壇上)에는 오십여 개의 의자들이 둥그런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중인들은 누가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그 단을 가운데 두고 삥 둘러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로 시장바닥처럼 시끄럽던 장내가 점차로 조용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단 위로 올라가고 있는 한 떼의 무리들 에게로 향했다.

누군가가 나직한 탄성을 터뜨렸다.

“이 저들은 소림사의 고수들이다.”

“그 옆은 화산파의 매화검수들이군.”

“저들은 또 어떻고 ‥‥ 개방의 정예들이 출동을 했군.”

중인들은 새로운 무리들이 단상으로 올라갈 때마다 탄성과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눈이 번적 뜨이던 여러 명의 미녀들이 차례로 등장하자 장내의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야 저들은 천봉궁의 천봉선자들이다!”

“과연‥‥‥ 눈앞이 훤해지는구나.”

천봉궁에서는 천봉선자중의 절반인 네 명이 나왔다. 그들 외에 또 다섯 명의 젊고 늙은 남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천봉궁의 총관인 차복승과 장평, 이동정, 그리고 조일평과 그의 사제인 풍시헌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앙에 있는 붉은 금장의 여인이 중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여인의 몸매는 헐렁한 궁장에 가려 있었으나, 그녀가 보기 드문 완벽한 몸매를 지녔다는 것은 조금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그녀의 머리에는 커다란 망사가 씌워 있어 용모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봉황이 그려진 붉은색 궁장과 그녀의 전신에서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좌중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중인들의 시선이 온통 그 궁장의 여인에게 쓸려 있는 사이, 다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신검무적이다”

그 말에 장내가 다시 한바탕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디?”

“저기 보이지 않나?”

“저 키가 훤칠하고 범상치 않은 용모를 지닌 사람 말인가?”

“그렇다네. 그 옆에 있는 미남자는 옥면신권이 틀림없을 걸세.”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단 위로 올라가고 있는 인영은 다름 아닌 진산월과 낙일방이었다. 낙일방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자 가슴이 떨리고 흥분되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그가 언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주시를 받아 본 적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그들의 시선 속에는 찬탄과 선망의 빛이 담겨 있으니, 지금 낙일방은 자신이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들이 단상으로 올라가자 이미 단 위의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에게로 향했다.

그들 중 몇 사람은 친근한 인사를 보냈고, 몇 사람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으며, 대부분은 별다른 의미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단 아래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에 낙일방은 내심 입맛이 썼다. 단상에는 그야말로 지금 이씨세가에 모인 고수들 중 최고의 실력자들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엄선되어 올라와 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단상에 올라오는 사람은 사전에 미리 연락을 받았으며, 그 숫자 또한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진산월과 낙일방도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이존휘가 보낸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을 찾아온 사람은 공교롭게도 어제 이존휘의 거처까지 그들을 안내했던 위수독이란 호원무사였는데, 그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정중한 태도로 그들에게 한 장의 서신을 전했다.

  • 오늘 사시까지 본가의 본청으로 와 주시오. 단을 마련했으니 그곳에서 일을 마무리 짓도록 합시다.

별다른 미사여구(美辭麗句)도 없이 달랑 본문만 적혀 있는 그 글귀는 일전에 보았던 이존휘의 필체였다.

낙일방은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자신의 얼굴을 주시하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슬쩍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천봉궁의 여인들이 앉아 있는 곳이었는데, 그중 한 여인이 그를 쳐다보고 있다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재빨리 고개를 돌리었다.

낙일방은 그녀의 인상이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가 그녀가 짙은 남색 경장을 입은 것을 보고는 그녀가 남봉 엄쌍쌍임을 알아차렸다.

‘삼년 전에 보았을 때는 어린 소녀 같았는데, 정말 예뻐졌구나.’

낙일방은 어제의 일이 떠올라 쑥스러운 생각에 자신도 급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때마침 내실 방향에 있는 휘장이 움직이며 내실에서 한때의 인영들이 걸어 나오는 바람에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존휘를 필두로 한 이석세가의 인물들과 강염을 비롯한 관인들이었다. 그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단상 위의 의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게 되었다. 낙일방은 새삼 오늘 일을 주관하는 사람의 치밀함에 머리가 끄덕여졌다.

그때 이존휘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발 앞으로 나오더니 많은 군웅들을 향해 포권을 하는 것이었다.

“먼저 자리에 참석해 주신 군웅(群雄)들께 본가를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는 임시로 본가의 가주를 맡게 된 이존휘라 합니다.”

중인들 중 몇 사람이 박수를 했으나 나머지 사람은 그를 향해 마주 포권을 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지금은 상중(喪中)이므로 박수를 치거나 요란을 떠는 일은 가급적 피했던 것이다. 이존휘는 어깨를 쭉 피고 조용하면서도 당당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그제 밤에 선친께서 괴한에게 변(變)을 당하셨습니다. 원래는 오늘까지 삼일장을 하고 내일 장례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몇 가지 중요한 정보가 입수되어 그것을 알리고자여러분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곳에 모이게 된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이존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본청에서 무언가 중요한 일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이씨세가에 모인 군웅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졌었는데, 그 일도 어쩌면 이존휘의 솜씨인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건 이존휘의 의도는 멋지게 맞아 떨어져서 장내의 군웅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존휘는 한차례 숨을 고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선친께서 변을 당한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어 이존휘는 이세적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 경위와 어제 아침에 소림과 화산, 개방을 비롯한 각파의 수뇌급 인물들이 모인 자리에서 벌어졌던 흉수에 대한 토의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곳에 있는 군웅들은 모두 강호무림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수들이기 때문에 이존휘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존휘의 말인즉, 흉수는 이세적과 안면이 있는 사이이며 무엇보다도 강호에서 보기 드문 검법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세적을 잘 아는 자가 아니라면 이세적을 방심케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설사 이세적이 방심했다 할지라도 흉수가 절정의 검법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그를 단 일검에 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존휘는 자신의 말이 군웅들의 뇌리에 완전히 각인(刻印)될 때까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낭랑한 음성으로 말을 계속했다.

“어제는 그 두 가지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을 찾아내지 못해 일단 조사를 보류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추가로 발견되었습니다.”

중인들의 시선이 온통 이존휘의 입에 고정되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여하에 따라 이세적을 죽인 흉수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선친께서 흉수에게 변을 당한 날 밤에 본가의 후원을 침입한 자가 있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그자는 본가의 후원을 거쳐 선친의 연 공실이 있는 가산(假山) 부근까지 잠입했다가 물러났다고 합니다.”

이존휘의 말이 여기까지 이를 때 누군가가 큰소리로 물었다.

“왜 그런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밝히는 건가?”

말을 한 사람은 창룡표국의 국주인 공료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료의 지적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이존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 일은 선친이 변을 당하기 전에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선친이 피살된 것은 침입자가 물러난 후에 벌어진 일이어서 두 가지 일이 서로 관련되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후원의 침입자와 이 가주의 흉수가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당시 침입자는 본가의 후원을 지키는 호원무사 몇 사람을 살해하고 도주했습니다. 선친의 죽음 때문에 그들의 시신까지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어제 저녁에 그들의 시신을 입관(入棺)시키려다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공료는 자신도 모르게 급히 물었다.

“그게 무엇인가?”

이존휘의 안광이 어느 때보다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호원무사들의 시신에 나 있는 검흔이 선친의 몸에 있는 검흔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공료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군웅들이 크게 놀랐다.

“그게 정말인가?”

“제가 몇 번이나 확인을 했습니다. 그러고도 못미더워 화산과의 장로이신 매 대협께 부탁을 했습니다.”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화산과 쪽으로 향했다.

매장원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분명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이 공자의 말대로요. 내가 직접 확인을 했는데, 호원무사의 시신에 있는 검흔과 이 가주의 시신에 있는 검흔은 같은 사람의 솜씨임이 분명하오.”

장내가 크게 술렁거렸다.

매장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검객이며 화산파의 실질적인 인자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천금(千金)의 가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장내에서 매장원보다 검학(劍學)에서 앞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검흔에 대한 그의 의견을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공료가 절로 흥분되는지 조금 전보다 한결 커진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제 밤에 후원을 침입한 침입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이 가주를 죽인 흉수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군 그래?”

장내의 공기가 완연히 들끓고 있는 데 비해 이존휘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는 당시 호원을 지키던 무사들을 조사하여 침입자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침입자가 누구인가?”

공료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물었으나, 의외로 이존휘는 쉽사리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했다.

“침입자의 정체를 알고 난 저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침입자가 선친을 살해한 것은 알겠는데, 그가 무슨 이유에서 그런 짓을 했는지를 도무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왜 그런 엉뚱한 생각을…”

“제가 왜 그런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는지는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침입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보다는 그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를 먼저 파악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강호에서 가장 견식이 풍부하고 소식에 정통한 개방 오의단의 부단주인 인시망, 인 대협을 찾아갔습니다.”

중인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개방의 고수들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개방 고수들 사이에 맞아 있던 인시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확실히 노부는 이 공자의 방문을 받고 그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었소. 이 공자는 흉수의 정체를 알려 주며 그가 이 가주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밝혀 달라고 했소”

오백 명에 달하는 군웅들이 모여 있음에도 장내는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중인들은 모두 정신이 빠진 사람들처럼 인시망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흉수의 정체를 알고 난 노부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소. 흉수의 신분이 일반인과 달라 자칫하면 이 가주가 살해당한 일보다 더욱 큰 혼란이 야기될지도 몰랐기 때문이오. 그래서 믿을 만한 수하들을 풀어 최대한 그자에 대해 조사를 하도록 지시했소. 그때 문득 그 흉수가 이 가주를 살해하기 전에 후원에 먼저 침입한 사실이 떠올랐소”

인시망은 자연스레 침입자와 흉수를 동일시했으나 아무도 그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없었다.

“흉수가 후원에 침입한 것은 나름대로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 거요. 만에 하나 그 일이 발각되면 그의 신분으로 보아 그야말로 창피막심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오. 그래서 이 공자에게 후원에 무엇이 있는지를 물어 보았소. 이 공자의 대답은 그 후원에는 이 가주와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 요양(療養)을 하고 있다고 했소. 그런 데 그 흉수는 후원에 침입하여 요양해 있던 사람을 살해하고 도주한 것이오”

공료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그 후원에 요양해 있다는 이 가주의 친구가 대체 누구요?”

인시망은 두 눈을 번쩍이며 이존휘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지금 말씀드릴 수 없소. 흉수의 정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오. 어쨌든 흉수는 그를 살해하고 곧이어 이 가주를 찾아가 이 가주마저 살해한 것이오”

공료는 답답한 듯 언성이 높아졌다.

“흉수가 하룻밤 사이에 그토록 미친 듯한 살겁(殺劫)을 저지른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그에 대한 대답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아미타불. 그 점에 대해서는 빈승이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인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는 곳으로 일제히 움직였다.

“아! 저분은 소림사의 팔대신승 중의 한 분인 신명승 대원선사이시다.”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고 크게 소리치자 대원은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빈승이 부족한 몸으로 허명(虛名)만을 얻고 있는 대원이오.”

공료는 그가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끌 것이 두려웠는지 그를 재촉했다.

“선사의 불심(佛心)과 무공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소? 그런데 선사가 흉수의 살겁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다는 건 무슨 소리요?”

“아미타불. 빈승은 그제 밤에 회갑연이 끝난 후에 이 가주의 개인적인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가주께서 고민거리가 있다며 빈승의 부족한 지혜를 빌리려 하신 거지요”

“오! 선사의 박학다식함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소. 이 가주의 고민거리가 대체 무엇이오?”

“이 가주의 후원에 요양해 있는 사람은 사실 이 가주의 친구가 아니라 친구의 동생입니다. 그자는 명문정파의 후손인데, 뜻하지 않은 일로 자신의 문파에서 오래 전에 실전(失傳)되었던 비전절학(秘傳絶學)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미칠 듯이 기뻐 그 절학을 연성하였으나,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그만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공료는 남의 일이 아닌 듯 혀를 찼다.

“저런, 그가 익히려던 절학이 대체 무엇이오?”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무튼 그는 주화입마에 빠져 제대로 거동도 할 수 없었던데다 특별히 아는 사람도 없어 이 가주는 그를 후원에 머물게 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데 주력케 했습니다.”

“지극히 이 가주다운 일이구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에 일어났습니다. 그자가 비전 절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자의 문파에서 새롭게 장문인이 된 자가 이 가주를 찾아와 그 절학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 가주는 그가 절학을 익히다가 주화입마에 빠진 것은 알았지만 절학이 어디 있는지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타문파의 절학을 이 가주가 욕심낼 리 없지요. 하지만 그 젊은 장문인은 계속 억지를 부리며 철학을 내놓던지 주화입마에 빠진 사문의 배신자를 돌려 달라며 이 가주를 핍박했습니다.”

“오, 저런‥‥‥‥”

공료는 혀를 찼다. 중인들 중 몇몇 사람은 젊은 장문인이란 말에 눈빛이 묘하게 변하기도 했다. 대원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가주는 인정상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그 젊은 장문인을 돌려보냈습니다. 젊은 장문인은 주위의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아갔으나, 크게 앙심을 품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공료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손뼉을 탁 쳤다.

“이제 전후 사정이 맞아 떨어지는구려. 그 젊은 장문인이란 자는 절학을 찾을 욕심에 야심한 밤에 이씨세가의 후원에 침입했고, 결국 주화입마에 걸린 사문의 배반자를 찾았으나 그가 철학을 돌려 주지 않자 그를 살해한 후에 다시 이 가주를 찾아간 것이구려. 이 가주에게 절학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이오”

“아미타불 빈승의 추측도 그러합니다.”

공료는 주위를 들러보더니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이 가주의 살해범에 대한 윤곽이 대충 드러나는 것 같소. 이 가주의 살해범은 한 문파의 장문인으로, 오래 전에 실전된 사문의 철학을 찾으려고 연속 살인을 저지른 것 같소. 이제 남은 문제는 그 무서운 검법을 익히고 사람을 함부로 살해하는 젊은 장문인이 누구냐 하는 것이오”

공료의 시선이 다시 이존휘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자네가 모든 걸 숨김없이 밝힐 차례일세.”

이존휘는 이미 마음을 작정한 듯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먼저 본가의 후원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드리지요. 공 대협께선 혹시 강일비란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강일비?”

고개를 갸웃하던 공료의 눈이 갑자기 크게 뜨여졌다.

“강일비라면‥‥‥ 이십 년 전에 신비스럽게 사라졌던 종남파의 기재, 운중안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선친께서 후원에서 돌보아 주셨던 사람이 바로 그 강일비 였습니다.”

공료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다면‥‥‥‥“

“강일비는 이십 년 전에 우연히 종남산의 동굴에서 과거 종남오선의 한 사람이 남긴 비급을 발견했습니다. 당연히 종남파로 돌아가 장문인께 고해야 했으나, 그는 비급이 탐이 나서 무리하게 그것을 익히다가 주화입마에 빠지고 만 말았습니다. 나중에 종남파의 새로운 장문인이 이 사실을 알고 선친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존휘는 말을 멈추고 한곳을 바라보았다. 이존휘뿐 아니라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질식할 듯한 침묵 속에 중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은 바로 종남파의 장문인인 진산월이었다.

누구도 무어라고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 모두의 시선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진산월의 전신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진산월이 이세적을 죽인 흉수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있었다.

신검무적!

출도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신화와 전설의 주인공이 된 신검무적이라면 한 일검에 이세적을 살해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중인들의 살인적인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진산월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낙일방만이 시퍼렇게 굳은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아주 철저히 계획된 흉계(凶計)였다.

하나 이것이 흉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진산월과 낙일방뿐이었다. 이 흉계는 너무도 철저하고 빈틈이 없어서 도저히 빠져 나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세적이 피살된 날 밤에 진산월이 후원에 침입하여 무사들을 살해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의 사실 위에 여러 개의 교묘한 거짓이 섞여 도저히 깰 수 없는 철벽의 함정을 만들어 냈다.

어느 누가 그의 진실을 믿어 줄 것인가?

설사 믿어 준다 해도 어떻게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진산월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후원의 뇌옥에서 구출한 지일환과 강일산뿐이었다.

하나 그들은 현재 종남파에 가 있으며, 설사 이곳에 있다 해도 강일산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지일환은 좀도둑으로 악명이 높은 자였다.

그러니 그들의 말을 사람들이 귀담아들을 리가 없었다. 한순간, 낙일방은 암담한 절망감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때 진산월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문사형‥‥‥“

낙일방이 애처로운 음성으로 그를 불렀으나 진산월은 담담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더니 한발 앞으로 나섰다. 이존휘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할말이라도 있소?”

진산월이 무슨 말을 하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존휘는 이렇게 확신했다. 군웅들의 마음은 이미 확고하게 굳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핑계를 대 보았자 점점 더 수렁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진산월은 담담한 시선으로 이존휘를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치면서 불똥이 튀는 듯했다. 이존휘는 진산월이 아직도 냉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내심 놀라움을 느꼈다. 진산월은 전혀 흔들림이 있는 것 같았다.

그토록 빈틈없는 증거와 수많은 사람들의 살기 어린 눈빛을 받으면서도 그는 한 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이존휘는 다시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보시오. 어떠한 변명이라도 모두 들어주겠소”

진산월은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모두의 예상을 깬 것이었다.

“당신은 그 약속을 잊지 마시오”

이존휘는 누구보다도 총명한 사람이었으나 이때는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무슨 약속을 말이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들어주겠다는 약속.”

이존휘는 순간적으로 움찔하다가 이내 낭랑한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 ‥‥‥ 물론이오 적어도 나는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어기는 졸장부는 아니오. 하지만 당신이 몇 날 며칠 동안 계속 떠들어 우리를 지치게 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싶군.”

그 말에 몇몇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산월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짧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길지도 않소. 그리고 들어보면 당신도 무척 흥미가 있을 거요”

“말해 보시오”

이존휘는 그가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여유 있는 모습이 허풍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마음속으로는 미칠 듯이 불안하고 초조하면서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외면(外面)의 평정(平靜)을 일시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리라.

진산월은 그리 크지 않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하려는 얘기는 한 사나이의 꿈과 야망에 대한 것이오. 그 사나이는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소. 그 목표는 너무도 거대하고 심오한 것이어서 다른 사람은 그가 가진 목표를 감히 이해할 수도 없었소. 그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한 어린 소녀를 유혹하는 것이었소”

이존휘의 얼굴에 야릇한 빛이 떠올랐다.

하나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산월이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소녀는 폐쇄된 공간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남자를 접해 보지 못했소. 그래서 그의 달큼한 유혹에 쉽게 넘어가서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치고 말았지. 그 사나이는 소녀에게 문파의 오래된 보물 중 하나인 비수(匕首)를 요구했고, 소녀는 사나이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을 키워 준 문파를 배신하고 사나이에게 문파의 보물인 영롱비를 건네주었소. 처음의 작은 목적을 이룬 사나이는 가차 없이 소녀를 버렸고 뒤늦게 자신이 속은 것을 안 소녀는 아이까지 가진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소”

중인들은 이게 무슨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냐며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하나 일부분의 사람들은 이존휘의 얼굴이 심상치 않게 굳어진 것을 목격하고는 흥미있는 표정이 되었다.

남들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진산월은 조용한 음성으로 말을 계속했다.

“사나이가 두 번째로 한 일은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오래된 사찰을 찾아가는 것이었소. 그는 틈틈이 그 사찰에 가서 주지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소. 마침 그날 주지에게는 오래된 친구 한 사람이 손자를 데리고 방문해 있던 참이었소. 그 사나이는 주지와 주지의 친구, 그의 어린 손자와 함께 주지의 방에서 차를 마시다가 영롱비를 꺼내 세 사람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렸소”

그말에 중인들 틈에서 누군가가 억눌린 듯한 신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조금 전보다 한결 흥미로운 눈으로 진산월의 말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내는 사찰 안의 모든 승려들마저 살해한 후 사찰 밖으로 나와서 몸을 숨긴 채 다른 누군가가 사찰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소. 그러다 마침 사찰로 들어서는 두 명의 남자들을 보고 그들이 시체를 발견하기를 기다려 그들을 범인으로 몰았소. 덕분에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했으나 곧 자신들이 흉수가 아님을 밝힐 수 있었소. 사나이는 이번에는 개방의 고수에게 사찰의 흉수가 사용한 검에 대해 조사해 줄 것을 부탁하고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암수를 써서 그마저 죽이고 말았소.”

이번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 입에서 신음과 탄성이 교차해 나왔다.

개중에는 거건 소방방 이야기다‥‥‥‥라고 옆 사람에게 떠들어 대는 자도 있었다.

진산월의 말을 계속 이어졌다.

“그 뒤로도 사나이는 강호가 최대한 혼란해지도록 많은 술수를 부렸소. 그러다 몇몇 무림인들이 사나이의 행적에 이상함을 발견하고 그에게 의혹을 느끼게 되었소. 결국 사나이는 사찰 승려들의 시신에 남아 있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시신을 빼돌리다가 치명적인 허점을 남기게 되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가 사찰에서 헐겁을 일으킨 흉수임을 확신하고 추적하기 시작했소”

이존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하나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이내 표정을 풀고 처음의 모습을 되찾았다. 오히려 계속 말해 보라는 듯 입가에 미소까지 면 채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다급함을 느낀 그는 다시 계략을 꾸며 자신을 추궁하기 위해 서안으로 몰려드는 각파의 고수들을 수하들로 하여금 암습케 했소. 그때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각파의 고수들을 이간질 시켰는데, 그 바람에 각파에서는 자파(自派)에 배반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배반자를 색출하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만 했소. 때마침 그의 부친의 회갑이 다가오자 그는 다시 한 가지 놀라운 계획을 세웠소. 이번 기회에 자신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자들을 한꺼번에 제거할 음모를 꾸민 거요. 그런데 그때 그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소”

진산월은 이존휘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바로 회갑연을 마친 그의 부친이 밤사이에 살해된 거요”

이존휘의 얼굴이 다시 살짝 굳어졌으나 여전히 입가에는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그는 평소에 자신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문파의 애송이 장문인을 범인으로 몰 생각을 하고 각파에 포섭된 배반자들을 이용해 치밀한 함정을 팠소. 그 함정은 진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혼합된 것으로, 그의 계획대로 애송이 장문인은 그의 함정에 빠져 영락없이 그의 부친을 살해한 흉수로 몰리게 된 것이오. 어떻소? 제법 흥미 있는 이야기 아니오?”

그의 긴 이야기가 마침내 끝났다.

주위는 여전히 조용한 적막에 잠겨 있었다. 하나 장내의 분위기는 조금 전과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불신(不信) 어린 눈으로 진산월을 쳐다보기도 했고, 또 몇몇 사람들은 의혹에 찬 시선을 이존휘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나 대부분의 군웅들은 당혹과 의문이 뒤섞인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진산월의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삼척동자가 아닌 한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나 그가 말하는 내용이 너무도 엄청난 것인지라 누구도 그것을 쉽사리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믿지 않기에는 여러 가지 정황들이 너무도 그럴듯해 보였다.

이존휘는 장내를 한차례 둘러보더니 문득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였소. 당신의 이야기를 꾸며내는 솜씨는 검법만큼이나 놀랍구려.”

진산월은 담담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다가 조용히 물었다.

“내 얘기가 모두 꾸며낸 것이란 말이오?”

“그렇소. 취미사 혈겁을 빗대어 나를 흉수로 몰아간 것은 제법 그럴듯했으나, 그 뒤의 이야기들은 모두 허점투성이요. 특히 아버지를 살해당한 아들이 당신을 지목해 일부러 범인으로 몰았다는 것은 너무도 터무니가 없어서 흥미진진했던 그전 이야기들의 재미를 모두 날려 버릴 지경이었소”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앞부분은 막연한 추측이지만 뒷부분은 확실한 사실인 것 같소”

이존휘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 속에는 진득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내가 당신을 함정으로 몰았다는 증거를 단 한 가지라도 제시해 보시오”

“그 얘기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소”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당신의 아버지를 죽인 흉수라는 당신의 지적은 단 한 가지도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오”

이존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증거가 없다니. 선친의 시신에 난 검흔과 당신이 그날 밤에 후원에 침입하여 호원무사들을 살해한 것 등이 모두 가짜란 말이오?”

“내가 이 가주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 증거는 모두 세 가지요. 하나는 후원의 호원무사들이 당한 검흔과 이 가주의 몸에 나 있는 검흔이 같다는 것, 둘째는 이 가주의 후원에 본파의 고수가 요양하고 있었으며 그가 살해당했다는 것, 그리고 셋째로 내가 그 고수의 존재를 알고 이 가주를 협박했다는 것.”

이존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는군. 그건 모두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증거들이오”

“그런데 말이오. 그 증거들은 모두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오”

“뭐라고?”

“호원무사들의 검흔과 이 가주의 검흔이 같다는 것도, 후원에 론 파의 고수가 요양해 있다는 것도 내가 비전절학의 존재를 알고 이가주를 협박했다는 것도 모두 제삼자(第三者)의 증언(證言)일 뿐이오. 즉, 단순한 말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지.”

이존휘의 눈썹이 꿈틀거렀다.

“당신은 그 제삼자들이 누구인지 아시오? 그들이야말로 당대의 유명한 명숙(名宿)들이며‥‥‥‥ “당신의 충실한 동업자들이겠지.”

진산월의 말은 모든 군웅들의 뇌리를 철퇴로 깅타하는 듯한 충격을 전해 주는 것이었다.

군웅들은 입을 딱 벌린 채 아연실색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게 말한 이상 자네는 그 말에 책임을 겨야 하네.”

그는 다름아닌 매장원이었다.

매장원뿐 아니라 인시망과 대원선사도 싸늘한 눈으로 진산월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명성이 중천(中天)에 띠 있는 해를 능가하는 이름난 고수들이었고, 또한 구대문파에 속해 있는 각파의 수뇌급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이존휘와 한패로 거짓 증언을 했다는 진산월의 말에 화를 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매장원이 나시자 많은 군웅들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진 장문인의 말이 옳다는 것은 내가 책임지겠소”

지붕 위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며 장내로 뛰어내렸다. 매장원은 눈을 찌푸린 채 느닷없이 나타난 불청객을 쏘아보다가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바로 자신이 직접 사로잡아 두기춘에게 감시케 했던 신산 곡수가 아닌가? 곡수는 비록 초취한 몰골이었으나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매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저놈이 어떻게 여길‥‥‥

매장원은 문득 띠오르는 생각이 있어 고개를 돌려 두기춘을 바라보았다. 두기춘은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도 전혀 표정의 번화가 없이 앞만 보고 있었다. 그때 곡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를 탓할 것 없소. 그는 본파의 배반자가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내 말을 믿어 주었을 뿐이니까.”

매장원은 이내 냉정을 되찾고 싸늘한 음성을 내뱉었다.

“곡수, 네가 본파를 배반하고 진산월의 앞잡이가 되더니 이제는 이 많은 군웅들을 호도하려는 거냐?”

곡수는 차갑게 웃으며 품속에 손을 넣어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매장원, 당신은 이게 무엇인지 아시오?”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어린아이의 손바닥만한 소검(小劍)이었다. 은은한 은색을 띤 소검의 겉에는 매호(梅花)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범상한 물건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그 소검을 본 매장원의 얼굴이 시퍼렇게 굳어졌다.

곡수는 그 소검을 번쩍 쳐들더니 벼락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본파의 제자들은 나와서 검령(劍令) 앞에 복명(服命)하라.”

그러자 매장원의 뒤에 있던 화산파의 제자들이 분분히 일어나더니 곡수의 앞으로 달려와서 바닥에 엎드리는 것이었다. “화산파의 제자 두기춘이 매화검령(梅花劍令)에 복명합니다.”

“제자 종요설이 매화검령에 복명합니다.”

“제자 하중광이‥‥‥‥ “

심지어는 매장원의 수제자인 고장명마저 곡수의 앞에 부복해 있었다.

매장원은 전신에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킨 채 무서운 눈으로 곡수를 쏘아보았다.

“사형이 설마 매화검령을 네게 맡겼을 줄이야‥‥‥‥ “

곡수는 당당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장문인께서는 이미 당신이 무언가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시고 나로 하여금 당신을 감시토록 하셨소. 그런데 당신은 이미 그것을 알아차리고 오히려 나를 배반자로 몰아 제거한 다음 장문인께서 나를 돕도록 파견한 제자들까지 잔인무도하게 살해해 버렸소. 매장원, 당신이 그러고도 화산화의 삼대고수라고 할 수 있소?”

“내가 당신을 의심하게 된 경위는 취미사에서 살해당한 사익 장로 때문이었소. 사익 장로는 본파의 태청강기를 대성(大成)하여 웬만한 도검(刀劍)에는 상처를 입지 않는 수준에 계셨소. 오직 단 한 군데, 목젖 부위만이 예전의 부상 때문에 완전하지 않은 상태였지. 그런데 취미사에서 홍수는 사익 장로의 허점을 정확히 노리고 목 젖을 절러 그분을 살해했소”

그의 음성은 넓은 대청 안을 적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흉수가 필시 사익 장로의 약점을 미리 알고 있는 자라고 생각했지. 그러자 문득 사익 장로와 평소에 가장 친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이 떠올랐지. 그때부터 나는 당신을 의심하고 있다가 결국 장문인께 서신(書信)을 보내 그 사실을 알렸고, 장문인께선 매화검령을 보내며 나로 하여금 당신을 철저히 감시토록 하신 것이오”

매장원은 눈자위를 실룩거리더니 돌연 냉소를 날렸다.

“흐흐‥‥‥ 그런 것이 아니겠지. 사형은 예전부터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가장 믿는 사람이라는 둥 실질적인 이인자라는 둥 치켜세우면서도 내가 자신의 지위에 도전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 했었다. 그런데 네놈이 때마침 그런 편지를 보내자 나를 제거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냉큼 매화검령을 보낸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장문영부(掌門令符) 다음으로 권위가 있는 매화검령을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단순한 심증(心證) 하나만을 제시한 너에게 보냈을 리가 없다.”

곡수는 어찌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일인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건 능력 있는 이인자였다. 예로부터 너무 똑똑한 수하는 우두머리를 불안케 하는 법이었다.

하나 그것이 매장원이 화산파를 배반하고 제자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덮을 수는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매장원은 화산파의 배반자이며, 스스로의 손에 제자들의 피를 묻힌 흉인(兇人)이었다.

중인들이 화산파에서 일어난 뜻밖의 변고에 당혹해 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개방의 고수들이 있는 곳에서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개방의 고수들을 이끌고 있는 인시망에게 종호가 다가오더니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느닷없이 인시망의 혈도(穴道)를 제압해 그를 쓰러뜨렸던 것이다.

“억 !”

인시망은 바닥에 쓰러지면서도 자신이 당한 일을 믿을 수 없는지 눈을 부릅뜨고 종호를 노려보았다.

“자네가 왜 이런 일을‥‥‥‥”

종호는 싸늘한 얼굴로 그를 쏘아보더니 이내 한 사람을 불렀다.

“모관, 앞으로 나오게.”

그러자 군웅들 틈에서 한사람이 그들에게로 걸어왔다. 개방의 고수들은 그가 어젯밤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던 철심수사 모관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하나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아닌 인시망이었다. 인시망은 모관을 보자마자 안색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이를 부드득 갈았다.

“종호, 네놈이 나를 배반했구나!”

종호는 냉랭한 코웃음을 날렸다.

“내가 너를 배반한 게 아니라 네가 본방(本幇)을 배반한 것이다.”

개방의 고수들은 거듭된 사건에 놀라 어쩔 줄을 모르고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그때 모관이 앞으로 다가오며 오른손을 불쑥 내밀었다.

그의 팔 쪽에는 푸른색 실로 된 매듭이 감겨 있었다. 그 청색 매듭을 보자 개방의 고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시방 또한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청사결(靑絲結)‥‥‥ 네가 청의단(靑衣團) 소속이란 말이냐?“

“그렇소 나는 오의단 내의 감시를 맡고 있는 청의팔호(淸衣八號)요.”

그 말에 개방 고수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청의단은 개방의 비밀 세력이라는 개방삼단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점철된 집단이었다. 오의단이 개방의 힘을 나타내는 무력(武力) 집단이고 순의단이 순찰과 정보를 목적으로 하는 순찰기관이라면 청의단은 개방 내의 배반자를 색출하고 규율을 잡는 감찰기관이었다.

그들은 개방의 어느 분타, 어느 조직에도 있으며 아무도 그들의 정확한 정체와 인원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개방의 방주조차도 들의 조직 내력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오직 청의 단의 당대 단주만이 청의단의 모든 조직원을 궤뚫고 있을 뿐이었다. 모관은 오의단으로 활등하면서도 사실은 청의단에 속해 있는 이 중 신분이었던 것이다.

모관은 바닥에 쓰러진 채 얼굴이 굳어져 있는 인시망을 차가운 눈길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처음부터 본방에 배반자가 있다면 당신이나 종호 두 사람 중 한 명일 거라고 생각했소. 하나 종호는 이런 일을 벌이기에는 너무 충직한 사람이오. 그래서 당신이 함정을 파고 종호로 하여금 나를 제거하도록 했을 때 내 신분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한 거요.”

인시망은 여러 차례 얼굴색이 변하다가 마침내 포기했는지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모관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개방의 고수들을 들러보며 분명한 음성으로 말했다.

“인시망은 본방의 비밀을 누설하고 순의단의 고수들을 살해한 후에 내가 죽인 것처럼 위장하여 나를 제거하려 했소. 그는 오의단의 두 번째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의(大義)를 어기고 동료들을 살해했으니 그 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소. 이에 방주님을 대신하여 그 죄를 묻고자 하니 여러 동도들은 이해해 주기 바라오.”

이어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팔뚝에 묶고 있던 청색 매듭을 풀어 인시망의 목에 감았다. 그러자 그 청색 매듭은 마치 살아있는 한 마리 뱀처럼 꿈틀거리며 인시망의 목을 칭칭 감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개방 고수들은 이 광경을 보고 두려운 듯 중얼거렸다.

“청사형(靑絲刑)이다.”

청사형은 청의단 고수에게 적발당한 개방의 배반자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이었다. 독특한 청사결의 매듭을 이용해 사람을 질식사 시키는 것으로, 일반 질식사와는 달리 죽는 순간까지 신경이 가닥 가닥 끊어지는 듯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어서 개방 고수들 중에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개중에는 청사형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 두려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끄으으‥‥‥‥”

인시망의 등공이 특튀어나오더니 입가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온몸을 학질 걸린 사람처럼 마구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나‥‥‥ 나를 죽여 주게‥‥‥ 종호‥‥‥ 나를 죽여 줘‥‥‥‥”

종호는 인시방이 청사형을 당할 때부터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다가 이 음성을 듣자 참지 못하고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팟!

그가 사혈(死穴)을 짚자 그토록 고통에 신음하던 인시망의 몸이 한차례 경련을 일으키더니 축 늘어졌다. 인시망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종호를 향해 고마움이 담긴 눈길을 보냈다.

“후우‥‥‥“

종호는 무거운 한숨을 토해내더니 모관을 돌아보았다.

“내가 손을 쓴 것을 말리지 않아서 고맙네.”

모관 또한 조금 전의 분노에 찬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울적한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싸워 온 동료가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은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은 법이지요.”

“그렇지‥‥‥‥”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더니 힘없이 웃었다.

인시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장내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중인들의 시선은 이제 이존휘와 대원선사에게 향해 있었다.

진산월은 자신을 흉수로 지목한 매장원과 인시망, 대원선사가 모두 이존휘와 같은 세력이라고 말했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나, 매장원과 인시망이 오히려 문파의 배반자임이 밝혀진 이상 대원선사에게도 의혹의 눈초리가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원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표정이 무겁게 굳어졌다.

하나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나직한 불호를 읊조렸다.

“아미타불. 매 시주와 인 시주의 일은 정말 예상 밖이었소. 덕분에 모든 화살이 빈승에게 쏠했으니 이 난관을 어찌 헤쳐 나가야 좋을지 모르겠구려.”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제게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대원은 그 음성을 듣자 표정이 일변했다. 그는 차마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지 못했다. 중인들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길을 비켜주었다.

한 사람이 뚫린 길을 지나 천천히 대원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파르스름하게 깎은 머리가 유난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 사람은 대원의 바로 앞까지 오더니 반장을 했다.

“아미타불, 제 방법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대원은 눈자위를 실룩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낭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선사께서는 너무 오래 속세에 머물러 계시느라 속세의 때에 찌드셨습니다. 그러니 본사의 참회동(懺悔洞)으로 돌아가 남은 인생을 묵은 때를 벗기며 살아가시면 많은 분들의 칭송을 받게 되실 겁니다.”

대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싫으시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스스로 불도(佛道)의 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시면 파계(破戒)를 자청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경우에는 본사에서 얻은 모든 걸 돌려주고 가셔야겠지요. 입고 계신 의복과 지니고 계신 무공 따위의 하잘것없는 신외지물(身外之物)들 말입니다.”

“……….”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제자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마침내 대원은 참지 못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정화의 승려답지 않은 준수한 얼굴이 그의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대원은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대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느냐? 제신환의 약효는 삼일 동안 계속될 텐데…”

정화는 조금도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정선 사형은 비록 사람이 좋고 총명하지만 남의 말을 너무 쉽게 믿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건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정선 사형이 선사의 꼬임에 넘어갔다 할지라도 다시 제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

“선사께서는 제 음식에 군자산을 넣을 사람으로 정선 사형을 선택하지 않으셨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선사에게 지시를 받고 난정선 사형은 제게 찾아와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의견을 구했으니 말입니다.”

대원은 석상처럼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화는 그만이 들을 수 있는 나직한 음성으로 소곤거렸다.

“아실지 모르지만 지금 제 오른손은 고심종(叩心鐘)의 공력이 담긴 채 정확히 선사의 가슴을 향하고 있습니다. 순순히 몸을 맡기신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정화의 오른 손은 세 개의 손가락이 모인 형상으로 약간 앞으로 내밀어져 있었다.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원은 한 눈에 그것이 소림의 칠십 이종절기 중에서도 대인 살상력(對人殺傷力)이 가장 강한 고심종 공력임을 알아보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천하의 누구라 해도 고심종을 완벽하게 피할 수 없었다.

대원은 이대로 소림사로 끌려가든지 고심종에 가슴이 궤뚫리든지들 중 한 가지를 택해야만 했다.

하나 대원은 제삼의 길을 택했다.

정화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는 스스로의 심맥(心脈)을 끊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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