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19권 천룡고궤(天龍古櫃)편 :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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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19권 천룡고궤(天龍古櫃)편 : 6화


제 193장 오아봉황

점창파 무공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르고 강맹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종종 매에 비유되기도 한다. 매처럼 빠르고 매의 부리나 발톱처럼 매섭다는 의미였다. 하나 빠르고 강맹한 만큼 검로가 단조로워서 무당이나 화산파의 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삼백 년 전에 누군가가 점창산의 산봉우리에서 떨어지는 석양을 보다가 영감을 얻어 하나의 검법을 창안해 냈다. 그 검법은 그 후로 수십 년간 점창파의 여러 고수들 손에 보완되어 마침내 점창파를 대표하는 절세의 검법으로 완성되었다. 그것이 바로 사일검법이었다.

사일검법이 탄생된 후에야 비로소 점창파는 자신들이 구대문파의 어느 파에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지녔다고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사일검법의 여파는 대단해서 분광십팔수검과 회풍무류검법 등 뛰어난 검법들이 줄지어 파생 되었고, 점창파의 지위는 구대문파에서도 확고한 것이 되었다.

하나 사일검법은 그 놀라운 위력만큼이나 익히기가 어려웠고, 특히 입문 과정이 아주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점창파에서는 제자들이 심성과 재질을 엄격히 판단한 후에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만 사일검법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그 말은 사일검법을 펼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점창파에서도 인정받는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일검법의 명성은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막상 사일검법을 직접 자기의 눈으로 본 강호인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강호인들이 점창파에 신비감을 느끼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십년을 주기로 하는 강호행과 사일검법의 희소성 때문에 사람들은 점창파의 고수들에게 무언지 모를 경외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만큼 점창파 일대제자들의 무공을 직접 볼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모든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장내를 주시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 상대가 요즘 강호에서 최고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종남파의 고수들이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전흠과 관을진의 비무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치열하게 펼쳐졌다. 먼저 선공을 한 사람은 관을진이었다. 관을진의 출검하는 솜씨는 점창파의 일대제자답게 비범하기 그지 없었다. 손이 허리춤으로 움직인다고 느낀 순간, 어느새 새하얀 검광이 전흠의 앞가슴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 유연한 동작과 눈부신 속도는 사람들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게 만들기에 족한 것이었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탄성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전흠의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흠은 검을 뽑지도 않고 왼쪽으로 한 걸음 비켜서는 동작만으로 관을진의 공격을 간단하게 피해냈다. 이어 그는 성큼 몸을 앞으로 움직여 관을진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관을진의 신형이 한차례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질풍 같은 검영이 폭포수처럼 전흠의 상반신을 뒤덮어 갔다. 회풍무류검법중의 천외래운 초식이었다. 검영의 범위가 무척이나 넓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가볍게 피하기는 불가능했다.

전흠은 주저 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차창!

귀청이 찢어질 듯한 격렬한 파공음이 거푸 터져 나오며 관을진이 펼친 천외래운의 초식이 중간에 막혀 거두어졌다. 하나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치열한 격전의 서막에 불과했다.

자신이 뻗어낸 검이 중도에서 막히자 관을진은 두 눈에 번갯불 같은 신광을 뿜어내며 본격적으로 회풍무류검법의 절초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파파팍!

대청 안은 삽시간에 삼엄한 검광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버렸다. 전흠 또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천하삼십육검으로 맞섰다. 종남파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천하삼십육검에 대한 전흠의 조예는 썩 깊다고 할 수 없었으나, 짧은 몇 달 동안 눈부시게 발전하여 천하삼십육검의 초식들을 종남파의 다른 누구보다도 능수능란하게 펼치고 있었다.

낙일방이 두 사람의 격전을 구경하고 있다가 진산월을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전 사형의 솜씨가 많이 부드러워졌는데요. 예전 같으면 벌써 둘 중 한 사람이 피를 보았을 텐데…..”

전흠은 다혈질적인 성격대로 검을 펼치는 데 추호도 사정을 보거나 손속을 늦추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상대방을 살상하기도 잘했지만 자기 자신도 부상을 입는 경우가 곧잘 발생했다.

종남파 고수들이 전흠과 대련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단순한 대련이 나중에는 꼭 누군가의 피를 보는 일로 발전되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십여 초가 넘도록 두 사람 중 누구도 다치거나 물러서는 사람이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두 사람의 실력이 백중세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으나, 낙일방은 전흠이 아직 자기 실력을 다하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동중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점창파 고수들 쪽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그들도 표정에서 별로 다급해하는 빛이 없는 것을 보고는 관을진 또한 숨겨진 실력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은근히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전흠이 관을진에게 패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앞으로 종남파가 강호에서 명성을 쌓는 데 커다란 지장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점창파야 단순히 일대제자가 다른 문파의 일대제자와 비무를 벌여 패했다는 정도에 그치겠지만, 종남파가 패하는 날에는 종남파가 재건되기는 했어도 역시 다른 구대문파에는 아직 안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질 게 분명했다.

그런 인식을 깨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할지 몰랐다.
아니나다를까? 오십여 초가 지나자 장내의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회풍무류검법은 비록 점창파의 검법 중 가장 변화가 많은 검법이기는 했으나 변화 자체만 놓고 볼 때는 여타 문파의 절정검법에 비해 단순한 편이었다. 점창파의 무공이 워낙 빠르고 강맹한 점에 맞춰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회풍무류검법의 변화가 돋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관을진의 검법이 점차로 빨라지더니 변화 중 일부가 생략되고 대신 삼엄한 검기가 전흠의 전신을 무섭게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검기가 어찌나 날카롭고 예리한지 검기의 일부에라도 닿기만 하면 팔다리가 잘려질 것이 분명했다.

이쯤 되며 단순한 비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자칫하면 누군가가 다치거나 심지어는 죽게 되는 살벌한 격전이 되고 만 것이다.

무서운 검기가 자신의 전신을 짓쳐 오는데도 전흠은 오히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이런 식의 싸움이라면 지겹도록 겪어 본 전흠이 아닌가?

그런데 웬일인지 당장이라도 자신의 장기인 성라검법을 펼쳐 맞설 줄 알았던 전흠이 계속 천하삼십육검만으로 관을진의 공세에 대항하고 있었다.

낙일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검법은 회풍무류검법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훨씬 빠르고 날카롭군요. 무슨 검법일까요?”

“아마도 분광십팔수검일 것이다. 두 검법은 모두 사일검법에서 파생된 것이라 많이 닮아 있지. 하지만 변을 위주로 하는 회풍무류검에 비해 강과 쾌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상대하기에는 훨씬 더 까다롭다.”

낙일방은 관을진의 공세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겠군요, 변화가 단순해졌는데도 워낙 빠르고, 가끔은 예상치 못한 경로로 검로가 바뀌어져 들어오기 때문에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그뿐이 아니다. 검법이 바뀌면서 보법 또한 달라진 것 같다. 조금 전보다 훨씬 경쾌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창응보를 펼치는 것 같구나.”

“그래서 전 사형의 공격이 처음처럼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로군요. 성라검법을 펼치지 않으면 전 사형이 고전하겠는데요.”

“성라검법을 펼칠지 말지는 전흠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그보다 너는 저 검법을 상대할 자신이 있느냐?”

낙일방의 준수한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빠르고 날카롭기는 하지만 검로가 단순해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산월은 다시 물었다.

“회풍무류검법은 어떠냐?”

“그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변화가 제법 다양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속도가 느리고 예리한 맛이 부족해서 힘으로 억누르면 오히려 생각보다 더욱 수월하게 격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산월은 계속 질문을 던졌다.

“분광십팔수검의 빠르기에 회풍무류검의 변화가 가미된 공격이라면?”

진산월의 물음에 낙일방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가 지워졌다.

“그건…..”

“만약 분광십팔수검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한 위력에 회풍무류검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면 상대할 자신이 있느냐?”

낙일방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진산월은 그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것이 바로 사일검법이다. 점창파를 넘어서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검법이지.”

낙일방이 입 속으로 나직하게 사일검법이라고 몇 번이나 되뇌는 동안 진산월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네가 그 검법을 상대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언제든 그런 검법을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낙일방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진산월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다시 장내의 격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전흠의 진짜 솜씨를 보도록 하자.”

장내의 싸움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에 접어들고 있었다.

분광십팔수검으로는 점차 우세를 점하기 시작한 관을진은 승부를 가를 요령으로 분광십팔수검의 후반 여섯 초식들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분광십팔검의 후반 육초는 분광십팔수검의 정화를 담은 것으로, 점창파뿐 아니라 강호의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절정의 검초들이었다.

사사삭…..

마치 대나무숲을 바람이 흝고 지나가는 듯한 미약한 소리와 함께 십여 줄기의 검영이 꼬리를 물고 계속 전흠의 목덜미 쪽으로 날아 들었다. 후반 육초 중 분광수영이라는 초식인데, 이름 그대로 눈부시도록 빠르고 영활해서 전흠으로서는 어느쪽으로도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상대의 목덜미를 노리는 것은 단순한 비무에서 보기 힘든 장면으로, 말 그대로 살초 중의 살초를 펼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흠의 두 눈에서 날카로운 안광이 이글거리며 피어올랐다. 다음 순간, 전흠의 검이 갑자기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다소 밋밋하게 움직였던 검이 섬광처럼 흐르며 수십 개의 검광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성라검법 중의 괴성척두였다.

두 사람의 검초가 순차적으로 빨라지자 장내의 분위기가 급격히 살벌해졌다.

느긋한 표정으로 격전을 구경하고 있던 고천동의 얼굴에도 심각한 빛이 떠 올랐다.

관을진이 분광십팔수검의 후반 육초를 사용하면 어렵지 않게 종남파의 이대제자쯤은 물리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상대가 날카로운 반격을 가해 오자 당혹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렇게 계속 절초들을 펼치다 보면 둘 중 한 사람이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 뻔했다.’

누가 다치든 그런 결과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고, 자신이 원하던 일도 아니었다. 고천동은 단지 강호에 다시 출도한 종남파 고수들의 기를 꺾고 싶었을 뿐이었지, 일대제자에게 중상을 입혀 종남파와 척을 지게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 자리에는 종남파의 장문인이며 당금 강호의 최고의 검객이라는 신검무적이 있지 않은가? 자칫하여 신검무적까지 끼어들게 된다면 낭패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관을진은 완전히 승부에 몰두하여 분광십팔수검의 최고 절초들을 연거푸 펼쳐내고 있었고, 전흠 또한 그에 못지않게 살벌한 초식들로 맞서고 있었다. 이제는 누가 끼어들 여지조차 없어 보였다. 고천동은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관을진이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에 하나 이런 치열한 승부에서 패하게 되면 그 여파는 관을진 본인은 물론이고 점창파에도 적지 않게 미치게 될 것이다.’

승부는 이제 그 정점을 향해 치달려 가고 있었다. 관을진은 온 몸에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 전력을 다해 분광십팔수검의 최절초인 분광경홍과 분광비격, 분광참혼의 세 절초를 줄지어 전개했다.

파파파팍!

세찬 검광이 한차례 대청 안을 휩쓸고 지나가자 누군가의 입에서 짤막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아!”

그토록 치열하게 전개되던 장내의 싸움이 어느 사이에 그쳐 있었다. 난장판이 된 대청의 중앙에는 두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그러다 그중 한 사람이 비틀거리더니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는 다름 아닌 관을진이었다.

“사제”

사인기가 재빨리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관을진의 몸에는 별다른 부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지 사인기의 품안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사인기는 관을진의 손을 보고서야 관을진이 기력을 모두 잃고 진력마저 탕진된 상태임을 알아차렸다. 관을진의 손은 덜덜 떨린 채 금시라도 들고 있는 검을 놓쳐 버릴 것 같았던 것이다. 검객이 손에 검을 쥘 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인기는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손을 떨고 있는 관을진을 보면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토록 진력이 고갈될 때까지 계속해서 검을 펼쳤다니….. 왜 이런 미련한 짓을 했을까?’

일단 몸속의 진력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게 되면 좀처럼 회복이 더딜 뿐 아니라 설사 회복이 된다 해도 내공에 상당한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공의 고수라면 생사의 위기에 처하지 않는 한 자신의 진력이 고갈될 정도로 무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관을진은 단순한 비무에서 혼자 힘으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 지쳐 버렸으니 당황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전흠은 별로 지친 기색도 없이 수중의 장검을 검집에 넣고는 당당히 자기 자리로 들어가 버렸다. 비록 관을진이 패배를 자인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누가 더 우세했는지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천동의 안색은 침울하게 굳어 있었다.

관을진은 점창파의 일대제자 중에서도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고천동이 그를 충동질하여 종남파의 고수들에게 비무를 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관을진 정도라면 적어도 비슷한 나이에서는 구대문파의 누구에게라도 쉽게 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름도 제대로 들어 보지 못한 종남파의 제자에게 이런 꼴을 보였으니 고천동의 마음은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종남파의 고수들은 밝은 얼굴로 전흠을 맞았다.

“수고했다.”

진산월이 어깨를 툭 치자 전흠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놈이 명줄이 길더군. 보기보다는 실력이 괜찮은 놈이었소.”

“직접 겪어 보니 어떻더냐?”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빠르고 날카로웠소, 그리고 검기 속에 묘한 기운이 있는 것 같았소.”

“묘한 기운이라니?”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었소. 몸에 닿으면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아 조심하긴 했는데, 그 기운이 조금만 더 강력했다면 몸을 움직이는 데 상당한 지장을 받을 뻔했소.”

“그건 아마도 점창파의 비전신공이라는 현전진기일 것이다. 현천진기를 오 성이상 익히면 검에 섞어 발출할 수가 있지.”

“점창파에 열양공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현천진가라니 처음 들어 보오.”

“열양공은 강호에 널리 알려진 점창파의 무공이긴 하지만 절학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점창파의 진짜 절학은 현천진기와 사일검법, 그리고 응조칠식경공이다.”

응조칠식경공에 대해서는 전흠도 들은 것이 있는지 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응조칠식경공은 점창파가 천하에 자랑하는 최고의 경공으로, 신법과 보법의 묘용을 겸하고 있는 절학 중의 절학이었다. 대대로 점창파의 고수들이 날카롭고 빠른 검법으로 이름을 떨친 이유도 응조칠식경공이 그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점창파의 다른 무공인 비응신법이나 창응보는 모두 이 응조칠식 경공을 익히기 위한 기초무공들에 불과했다.

당대의 점창파에서 가장 유명한 고수인 신응검협 조빙심이 바로 응조칠식경공을 절정에 이르도록 연마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진산월의 시선이 낙일방에게로 향했다.

“준비되었느냐?”

낙일방은 묵령갑을 낀 양손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양팔을 빙빙 돌리며 몸을 움직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중앙에는 이미 사인기가 검을 뽑아든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인기는 낙일방이 양손을 깍지 낀 채로 어깨를 풀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시중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의 사인기와 임풍옥수 같은 낙일방의 모습은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석성이 히죽 웃으며 나직하게 소곤거렸다.

“이거야말로 까마귀와 봉황의 대결이군.”

구양전월이 그 음성을 들었는지 힐끗 그를 돌아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누가 까마귀이고 누가 봉황이오?”

석성은 손수건으로 목덜미에 홍건히 흐르는 땀을 씻었다.

“보면 모르겠냐?”

“사인기가 까마귀이고, 옥면신군이 봉황이란 말이오?”

“눈이 정상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렇다면 가벼운 내기라도 하지 않겠소?”

석성은 살 속에 파묻힌 조그만 눈을 살짝 치켜떴다.

“무슨 내기 말인가?”

“까마귀와 봉황 중 누가 최후에 승리자가 되는가 하는 걸로 말이오.”

석성은 물끄러미 구양전월이 준수한 얼굴을 응시하더니 심드렁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도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이군. 아니면 자기보다 준수한 남자가 잘 나가는 꼴을 못 보는 심보를 가졌든지.”

석성의 독설에 가까운 말에도 구양전월은 여전히 미소를 그치지 않았다.

“확실히 옥면신권이 나보다 미남자라는 건 인정하고 있소.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소문이 사실인 경우는 별로 없는데, 그는 오히려 소문보다 더 잘생긴 것 같더군.”

“오, 자네의 마음이 그토록 해활한 줄은 미처 몰랐군. 그럼 자네는 까마귀에게 걸겠나?”

“둘 중 누구에게도 걸 것인지는 석 대형께서 먼저 선택하도록 하시오.”

석성의 작은 눈에 날카로운 빛이 번뜩였다.

“그건 무슨 뜻인가?”

“연장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 주시오.”

“흠….. 내기를 걸자고 하고는 막상 누구를 선택할지는 나에게 맡기다니 영문을 모르겠군.”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으셔도 되오.”

“내가 언제 내기를 사양하는 걸 봤나? 나는 봉황을 택하겠네.”

구양전월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그러면 나는 까마귀를 선택하겠소.”

“어쩐지 자네 꼬임에 넘어간 느낌이 드는군.”

“그럴 리 있겠소? 석 대형은 다 좋은데 매사에 너무 의심을 많이 하는 게 문제요.”

“예전에 누군가가 그러더군. 이 세상에서 믿지 못할 게 딱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남자이고 하나는 여자라고 했네.”

“너무 비관적인 생각 같지 않소.”

“나도 비슷하긴 하오. 석 대형의 말에 ‘대부분’ 이라는 단어만 넣으면 되니 말이오.”

“대부분의 남자와 대부분의 여자를 믿지 못한다?”

“굳이 말하고 싶다면 그렇소, 하지만 이왕이면 ‘남자와 여자 중 일부는 믿고 있다’ 라고 해주시오.”

석성은 냉소를 날렸다.

“극히 일부겠지.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자네가 아직 세상의 쓴맛을 다 맛보지 못했다는 증거일세.”

“내기는 무엇을 걸겠는가?”

“안휘성 합비에 심심풀이 삼아 투자한 조그만 다관이 하나 있소.”

“알고 있네. 합비에서는 가장 큰 다관이라지? 그걸 걸겠나?”

“그렇소”

“그럼 나도 합비에 있는 주루 하나를 걸겠네.”

“그 음식 맛 좋기로 유명한 취화루 말이오? 그러면 석 대형께서 조금 손해지 않겠소?”

“아직 세상 물정 모르고 나이 어린 후배에 대한 배려라고 해두지.”

“그 배려를 감사히 받아들이겠소.”

두 사람은 서로 오른손을 내밀어 엄지손가락을 마주 댔다. 문서를 쓰거나 수결을 남길 필요도 없이 그것만으로 계약은 성립된 것이다.

구양전월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석성의 귀에 소곤거렸다.

“내기가 이루어졌으니 말이지만, 사실 이번 내기는 불공정한 것이었소.”

석성은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이미 누가 이길지를 알고 있단 말이오.”

“누가 이긴단 말인가?”

“봉황이 아무리 우아하다고 해도 날지 못하는 봉황은 하늘을 나는 까마귀를 당할 수 없는 법이오.”

석성의 시선이 낙일방을 향했다.

“봉황이 날지 못한다고?”

“까마귀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이오. 아무리 옥면신권의 권법이 뛰어나다 해도 그는 사인기의 옷자락을 하나 건드리지 못할 거요.”

“왜 그렇게 확신하나?”

“사인기가 누구인지 아시오?”

“그가 누구인가?”

구양전월은 거의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 음성을 들은 석성의 시선이 낙일방에서 사인기로 옮겨졌다. 석성은 한참 동안이나 사인기의 평범한 얼굴을 주시하고 있더니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미처 몰랐던 사실이군.”

구양전월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석 대형은 입으로는 아무도 믿지 못한다면서 나를 믿고 선뜻 내기에 응해 주었으니 나로서는 석 대형의 배포에 그저 감탄할 뿐이오.”

구양전월의 비아냥 섞인 말에도 석성은 화를 내기는커녕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모두 내 잘못일세.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심결에 자네의 말을 의심해 보지 못했으니 불찰도 이런 불찰이 없지.”

“너무 자책하지 마시오, 실수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

석성은 땀으로 흠뻑 젖은 손수건을 쥐어짜서 물기를 빼낸 다음 다시 이마와 목을 닦았다.

“그런데 자네도 한 가지 실수를 한 걸 알고 있나?”

구양전월의 몸이 한차례 움찔거렸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단 말이오?”

석성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 사람을 미처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게 누구요?”

“신검무적.”

구양전월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신검무적이 어쨌단 말이오?”

“내가 아는 신검무적은 자신의 사제가 패할 걸 알면서도 순순히 비무에 내보낼 사람이 아니라는 말일세.”

구양전월은 반론을 제기했다.

“신검무적이 비범한 사람이라는 건 나도 인정하오, 하지만 싸우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의 사제요. 아마 신검무적은 사인기가 누구인지도 모를 거요.”

석성은 뚱뚱한 얼굴로 가로저었다.

“내 말은 그게 아닐세. 신검무적은 무척이나 신중한 사람이네. 더구나 자기 문파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지.”

“……!”

“상대가 어떤 인물이든 자기 사제가 반드시 이길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그는 이번 비무에 선뜻 응하지 않았을 거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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