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22권 용왕대전(龍王大戰)편 :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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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22권 용왕대전(龍王大戰)편 : 3화


제 221장 절세옥안(絶世玉顔)

아침이 밝아오기 전의 새벽은 언제나 신선하다. 특히 멀리 먼동이 조금씩 터오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임영옥은 여명의 신선함을 음미하려는지 깊은 심호흡을 했다. 차가운 공기가 가슴 깊숙이 밀려왔으나 신선하다는 느낌보다는 서늘하다는 한기가 먼저 느껴졌다. 그녀가 한기를 떨쳐내기 위해 잠시 어깨를 폈을 때 모용연이 다가왔다.

“언니, 괜찮아요?”

임영옥은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찮아. 그보다 연매는 어때?”

모용연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견딜 만해요. 언니도 내가 얼마나 끈질긴 여자인지 알잖아요.”

임영옥의 얼굴에도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 잘 알지. 질기기가 고래 심줄 같고 고집이 세어서 모두들 연매를 두려워하고 있잖아.”

모용연의 고운 아미가 한차례 꿈틀거렸다.

“그 말은 아무리 봐도 칭찬 같지가 않군요.”

“그래도 사실인 건 연매도 짐작하고 있을 걸.”

모용연은 짐짓 화를 내려다 피식 웃고 말았다.

“그거야 그렇지요. 아울러 나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언니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임영옥은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모용연은 그녀의 미소 띤 얼굴을 보며 참으로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절대로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저렇게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눈이 즐거워지는 웃음은 타고나지 않으면 갖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용연은 늘 그녀가 부러웠다.

모용연이 임영옥을 처음 본 것은 임영옥이 구궁보에 온 지 육 개월이 넘어서였다. 그동안 그녀는 오빠인 모용봉이 여자 하나를 데려왔다는 뜬소문 같은 말만 들었지, 실제로는 단 한 번도 그 여자를 본 적이 없어서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유달리 달이 밝은 밤에 그녀는 봄밤의 정취에 취해 구궁보의 후원을 거닐다가 정자에 홀로 앉아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모용연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애잔해 보였던 것이다.

예쁜 미모와는 달리 강단 있는 성격에 자기 주관이 뚜렷한 편인 모용연은 그동안 같은 여자에 대해 묘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 여자들이 하나같이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 연약한 척을 하는 내숭떠는 여우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대부분의 여인들은 그녀의 오빠인 모용봉을 흠모하는 부류들이거나, 구궁보에 무언가를 부탁하기 위해 온 부류들이었다. 모용봉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증스러울 정도로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여자들도 싫었고, 속마음을 숨긴 채 웃는 낯으로 굽실거리는 자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끔 첫눈에 호감을 느낀 여자를 만나도 조금 친하게 지내다 그 여자가 무언가 속셈을 가지고 자기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더 큰 실망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봄밤의 정자에서 본 여인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자들과는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그 고적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은 물론이고 영롱하게 반짝이는 두 눈에 담겨 있는 묘한 슬픔이 말할 수 없이 인상적이었다.

우습게도 모용연은 처음 보는 순간 그녀에게 그대로 매혹당해버린 것이다. 여자가 같은 여자에게 반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모용연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정자로 가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가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오빠가 몰래 숨겨왔던 그 주인공임을 알게 되었다. 나이는 자신보다 서너 살 많은 정도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서는 자신보다 수십 년을 더 산 듯한 연륜이 느껴졌다.

그로부터 불과 이 년 남짓한 세월 동안 두 사람은 평생을 사귄 지기(知己)보다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모용연에게 그녀는 믿을 수 있는 언니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고, 의지할 수 있는 인생의 선배였으며, 가장 닮고 싶은 이상형의 여인이기도 했다.

모용연이 임영옥에 대해 가지는 유일한 불만은 그녀가 자신의 오빠인 모용봉을 대하는 태도였다.

모용봉은 자타가 공인하는 불가일세(不可一世)의 기린아여서 뭇 미녀들의 애정 공세에 시달려왔다.

그때마다 모용봉은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녀들의 구애를 단호하게 거절해왔고, 때문에 강호에서는 모용봉이 동자공(童子功)을 익혀서 여인을 안을 수 없는 몸이라거나 특이한 신공 때문에 인간의 오욕칠정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냉혈인(冷血人)이 되었다는 소문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런 모용봉이 임영옥을 대할 때면 유달리 태도가 정중해지고 눈빛이 부드럽게 변했다.

모용연은 그것을 보고 오빠인 모용봉이 드디어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았다고 생각했고, 두 사람이 잘 맺어져 훌륭한 한 쌍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오빠인 모용봉과는 달리 임영옥은 모용봉에게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지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담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모용연은 처음에는 그녀가 수줍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나서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모용연이 임영옥에게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이미 헤어진 지 삼 년이 넘고 생사조차 불명한 과거의 연인 때문에 누구나가 인정하는 최고의 남자를 거절한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으나, 모용연은 그러한 점이 지극히 임영옥답다고 생각했다.

모용봉 또한 그러한 임영옥을 존중해서 그녀에게 무리한 접근을 하지 않았다. 하나 몇 달 전에 들여온 한 가지 소문으로 인해 모든 상황이 돌변해버렸다.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임영옥의 옛 애인이 다시 나타나 무너진 종남파를 재건했다는 소식이 강호를 뒤흔들었던 것이다.

항상 침착하고 평온을 잃지 않았던 모용봉이 결연한 모습으로 임영옥을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이었다.

모용봉과 임영옥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모용연도 알지 못했으나, 그날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야 그날 모용봉이 임영옥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했으며, 임영옥이 중추절까지 그 대답을 미루었다는 걸 알고 내심으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임영옥의 옛 애인에 대한 소문은 점입가경으로 확대되더니 마침내 그가 서안에서 화산파의 절세고수였던 매장원을 격파하자 그 절정에 이르렀다. 강호인들은 그를 백 년 내 강북에서 배출된 최고의 검객이라고 떠들어댔고, 심지어 모용봉과 비교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서 구궁보 내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 임영옥이 느닷없이 출행(出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임영옥의 개인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모용연은 대경실색하여 그녀를 만류했으나, 그녀의 결심은 확고하기만 했다.

중추절 이전에 반드시 자신의 사형을 만나야 한다는 그녀의 단호한 말에 모용연은 그저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임영옥의 출행에 동행하겠다고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모용봉은 임영옥을 위해서 구궁보에서도 몇 대 없는 여의신거를 내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친구인 해천사우 중의 한 사람인 군유현에게 호위를 부탁했다. 군유현은 기꺼이 이를 수락했고, 구궁보의 고수들과 자신의 수하들로 호위대를 만들어 임영옥의 안전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로부터 보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임영옥은 그토록 기다리던 자신의 무심한 사형을 만났고, 모용연의 걱정과는 달리 두 사람의 재회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임영옥이 진산월과 헤어져 다시 구궁보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모용연은 이제 모든 일이 안정을 되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이었다.

순조로웠던 귀환길은 언제부터인지 정체 모를 자들의 계속된 습격으로 혈로(血路)를 뚫어야 하는 험한 길이 되고 말았다.

강호에서 감히 구궁보의 상징과도 같은 여의신거를 공격하는 무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나, 습격자들의 공세는 격렬했고 집요했다. 불과 반나절도 되지 않아 여의신거를 호위하던 군유현의 수하들이 대부분 몰살당했고, 구궁보에서 나온 열두 명의 창룡무사(蒼龍武士)들도 절반이 넘게 희생되었다.

창룡무사들은 모용봉이 직접 키운 인재들로서 능히 강호무림의 일류 고수로 손색이 없는 실력자들이었는데 암습자들의 공세를 감당해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 것이다.

암습자들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어지자 군유현은 임영옥에게 여의신거를 버리고 갈 것을 제안했다. 여의신거로 인해 오히려 추격을 부리치는 데 많은 제약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임영옥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의신거를 벗어나 은밀한 이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어제 아침의 일이었다.

그리고 꼬박 하루 동안 그들은 습격자들의 추격을 피해 필사의 도주를 감행해야만 했다. 그동안에 다시 일곱 명의 고수들이 비명에 쓰러져 남아있는 일행의 숫자는 겨우 다섯 명에 불과했다.

임영옥과 모용연, 그리고 군유현과 그의 수족인 진남쌍패(鎭南雙覇)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모용연은 가족과도 같았던 창룡무사들이 모두 쓰러진 것이 너무도 아쉽고 원통했으나, 임영옥의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일행 중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바로 임영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습격자들이 노리는 목표는 바로 임영옥이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창룡무사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광경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임영옥의 심정이 어떠할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들이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있을 때 군유현이 다가왔다. 군유현의 준수한 얼굴에는 별다른 피로의 빛이 보이지 않았으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임영옥은 그의 얼굴 표정을 확인하고는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가요?”

군유현은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진남쌍패에게 정찰을 시켰는데, 이리쯤 앞에 수상한 인물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하오.”

“우리를 쫓던 무리들인가요?”

“그걸 확인할 수가 없었소.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데다 너무 가까이 접근했다가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까 봐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다고 하오.”

“그렇다면 우리를 쫓던 무리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그들일 가능성도 있소.”

“우리가 신거를 버린 후로는 우리들 자신도 어디로 이동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한나절을 움직였는데, 그들이 설마 이렇게 멀리까지 천라지망을 펼쳤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군유현은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눈을 반짝였다.

“우리 앞에 있는 자들에게 가보자는 말이오?”

“우리는 너무 지쳤어요. 무엇보다 잠시라도 제대로 휴식을 취해서 기운을 차려야 해요. 그들이 우리를 쫓던 무리들이 아니라면 잠시 신세를 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만약에 그들이 우리를 쫓던 무리들이라면?”

“그들이 우리 앞에 포진해 있다면 그들에게 종적을 발각당하는 건 시간문제예요. 어차피 쫓길 바에는 그들에게 한 번쯤은 호된 맛을 보여주고 싶군요.”

군유현은 피식 웃었다.

“그들이 우리를 쫓던 무리들이 아니라면 잠시 신세를 지고, 우리를 쫓던 무리라면 우리의 종적을 알아차리기 전에 선제 공격을 하자는 말이오? 모처럼 마음에 드는 계획인 것 같소.”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모용연이 다부진 음성으로 말했다.

“언니 말대로 해요. 더 이상 피해 다니는 것도 자존심 상해서 못 견디겠어요.”

군유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다행히 쌍패에게 들으니 그들의 수가 우리보다 그리 많지 않다고 하니 최악의 경우에라도 충분히 격퇴시킬 수 있을 거요.”

군유현은 자신들에게서 조금 떨어져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두 명의 장한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이 먼저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장한은 모두 체구가 건장하고 눈빛이 형형하여 비범한 모습들이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양쪽 태양혈이 불룩 튀어나와 있고 행동거지가 절도가 있어 내외공을 겸비한 고수들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바로 진남쌍패로, 우측의 기골이 장대하고 수염이 자욱한 사람이 철패(鐵覇) 하후태(夏侯泰)였고, 좌측의 키가 훌쩍 크고 날렵한 체구의 인물이 비패(飛覇) 장손욱(張孫旭)이었다. 그들은 십 년이 넘게 군유현과 함께 활동한 자들로, 특히 절강성 일대에서 대단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고수들이었다.

진남쌍패가 앞서고 그 뒤를 군유현과 두 여자가 따라갔다. 과연 얼마쯤 가니 아직 어둑한 숲의 공터 한쪽에 커다란 휘장이 쳐져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휘장의 뒤쪽에는 이들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사두마차가 매어져 있었는데, 그 화려함이 보는 이의 눈을 휘둥그렇게 할 만했다. 휘장은 세 방향이 막혀 있고 오직 한쪽 방향만 트여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방향은 임영옥 일행이 오는 쪽이어서 멀리서도 휘장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군유현이 그 광경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겠군. 이렇게 한눈에 보이니 몰래 접근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인데… 이게 과연 우연인지….”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휘장 안을 주시했다.
휘장 안은 바닥에 두터운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작은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한 명의 젊은 남자가 술상 앞에 앉아 미모의 여인의 시중을 받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실로 느긋하면서도 여유로워 보였다. 뿐만 아니라 휘장 한쪽에는 각기 다른 악기를 든 네 명의 악인(樂人)들이 연주를 하고 있어 그야말로 풍류의 한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아직 동도 제대로 트지 않은 이른 새벽에 악인들의 연주를 들으며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은 왠지 낯설어 보이면서도 묘한 풍취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악인들 또한 술시중을 드는 여인 못지않은 아리따운 미녀들이었다. 한 명의 남자와 다섯 명의 여자, 그 기묘한 배합에 군유현은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하나 다음 순간, 무엇을 보았는지 군유현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휘장에 다가갈수록 선명하게 드러난 젊은 남자의 얼굴을 비로소 자세히 본 것이다.

군유현은 평생 자신의 용모에 부족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자신이 절세의 미남자라거나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다른 누구에게 뒤지거나 열등감을 느낄 얼굴도 아니라고 확신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모용봉에 비교해도 어느 정도의 자신이 있었다.

천하제일 미남자의 얼굴을 보고 싶은가?
누구라도 보는 순간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는 완벽한 얼굴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여기 이 남자의 얼굴을 보면 된다. 강호제일의 풍류남아인 강호삼정랑에 속해 있는 군유현으로 하여금 보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하는 절세의 옥안(玉顔)의 주인이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젊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말을 잃은 사람은 군유현뿐이 아니었다.
휘장으로 가까이 다가가던 다른 사람들 또한 젊은 남자를 보고는 눈을 크게 뜨고 넋이 나가버렸다.
그것은 자신의 오빠인 모용봉 외에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하찮게 생각하는 모용연도 마찬가지였다.
보는 순간 정신이 나갈 정도로 충격을 받은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한차례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시야가 넓어지면서 비로소 흔들렸던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정말 무서운 마력(魔力)의 소유자로구나.’

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힐끔 고개를 돌려 임영옥을 바라보았다. 임영옥의 얼굴은 처음과 전혀 변화가 없어 모용연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임영옥이 의아한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웃는 거니?”

“언니는 저런 미남자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니, 나도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는걸.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

모용연은 웃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엄청난 미남자지요?”

“그래. 정말 잘생겼구나.”

그녀는 임영옥의 얼굴을 빤히 주시하며 계속 물었다.

“언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 사람보다도 말인가요?”

임영옥은 그제서야 모용연의 눈가에 짓궂은 빛이 담겨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사형은 그다지 미남자라고 할 수 없지. 솔직히 예전에도 사형보다 잘생긴 사람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는걸. 너도 만나보았지 않니?”

“그래요. 별로 잘생긴 사람은 아니더군요. 그런데 언니는 그 사람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진산월의 이야기가 나오자 임영옥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와 씁쓸한 빛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런 이야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구나.”

모용연은 임영옥의 무거워진 음성을 듣자 자신이 괜한 걸 물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그런 질문을 던진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그 점이 너무도 궁금했던 것이다.
그녀는 진산월을 보기 전에 사실 엄청난 기대를 했었다. 임영옥 같은 여인을 삼 년씩이나 기다리게 만든 미지의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설레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나 직접 만나본 진산월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 뛰어난 용모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헌앙한 기상을 풍기는 기남자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두뇌가 비상하거나 언변이 뛰어난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앙상할 정도로 비쩍 마른 체구에 키만 삐쭉하니 컸고, 한쪽 뺨에는 칼자국까지 선명해서 차갑고 냉혹해 보였다. 말도 거의 없고, 행동은 무뚝뚝했으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사람을 임영옥이 왜 그토록 못 잊어 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서 화가 치밀어 오를 지경이었다.
그래서 언제고 여건이 되면 임영옥을 붙잡고 대체 왜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모용연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그 질문을 하필이면 지금 이런 상황에서 던진 것일까?
그것은 그녀의 뇌리에 문득 진산월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절세의 미남자를 만난 여운이 전신을 감싸고 있는데 그녀는 왜 갑자기 난데없이 진산월을 떠올렸던 것일까?

보기만 해도 넋이 나가고 숨이 가빠질 정도로 준수한 미남자를 보면서 왜 한쪽 뺨에 칼자국이 나 있는 차갑고 냉혹한 진산월의 얼굴이 생각나는 것인가?

그녀의 의문은 길지 않았다. 때마침 그들은 휘장이 쳐진 숲의 공터로 막 도착했던 것이다.
미녀들에게 에워싸여 술을 마시던 미남자가 공터로 들어오는 일행들을 발견했는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제법 떨어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모용연은 미남자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해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남자의 눈과 스치듯 잠깐 마주친 순간, 전신이 짜릿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매력적인 얼굴만큼이나 강렬하면서도 매혹적인 눈빛이었다. 미남자는 여전히 술잔을 든 채로 일행들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우측에 앉은 여인에게 무어라고 소곤거렸다. 그러자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휘장 밖으로 걸어나왔다.
여인은 늘씬한 체구에 좀처럼 보기 힘든 미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하늘거리는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오더니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는 것이었다.

“저희 공자님께서 여러분들을 초대하시고자 합니다. 잠시 오셔서 자리를 함께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신들이 오히려 신세지는 것을 부탁해야 할 판인데 미남자가 먼저 초대를 해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군유현은 임영옥을 힐끔 바라보고는 그녀가 아무런 거부의 빛을 보이지 않자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일이오. 귀 공자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겠다고 전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중인들은 미녀의 안내를 받고 휘장 안으로 들어갔다. 휘장 안의 크기는 삼 장 남짓했는데, 그들이 들어가도 충분한 공간이 남아 있었다. 여인이 미남자에게 다가가 나직하게 소곤거리자 미남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포권을 했다.

“어서 오시오. 초면에 불쑥 초대를 해서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승낙해주시니 고맙기 이를 데 없소.”

미남자의 음성은 그의 외모만큼이나 낭랑하면서도 좋은 울림을 담고 있었다.
군유현 또한 그에게 마주 포권을 해보이며 담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야말로 초대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소. 그렇지 않아도 밤새 길을 걸었더니 피곤하여 쉴 곳을 찾고 있던 참이었소.”

“그렇다면 정말 잘 오셨소. 비록 임시로 만든 거처이지만 잠시 이슬을 피해 몸을 쉬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을 거요. 어서 이리 앉으시오.”

미남자가 정중히 자리를 권하자 군유현과 일행들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는 각기 바닥에 앉기 시작했다.
의자는 없었으나 제법 두꺼운 양탄자가 깔린 바닥은 땅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냉기를 거의 완벽하게 막아주었다.
게다가 단순히 천 조각으로만 알았던 휘장은 상당히 두터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안에 있자니 쌀쌀한 새벽의 찬 공기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늑했다.
일행이 모두 자리에 앉자 미남자는 술병을 들어 보였다.

“새벽 공기가 제법 차갑소. 이 술은 비록 이름난 명주(名酒)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마실 만하니 한 잔 들어가면 몸을 데우는 데 한결 도움이 될 거요.”

이어 그는 자신이 먼저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르더니 한 모금에 들이키고는 그 잔을 군유현에게 내밀었다.
적어도 술에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미남자의 행동에 군유현은 사양하지 않고 기꺼이 잔을 받았다.

“잘 마시겠소.”

군유현은 단숨에 술을 마시고는 이내 감탄성을 발했다.

“정말 좋은 술이로군. 이 술의 이름이 무언지 알 수 있겠소?”

“장호춘(張戶春)이라 하오.”

“장호춘이라면 낙양 동문 밖에 있는 장씨 집성촌(集姓村)에서만 빚을 수 있다는 소문난 명주가 아니오?”

미남자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장호춘을 아는 것을 보니 형장도 풍류를 즐기는 재사(才士)이겠구려. 이게 바로 낙양장가촌의 바로 그 장호춘이오. 얼마 전에 마침 낙양 부근을 지날 일이 있어 간 김에 몇 병 구해올 수 있었소.”

그때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모용연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렇게 좋은 술이라면 나도 한 잔 받을 수 있을까요?”

미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모용연의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직접 마주보니 그가 얼마나 대단한 미남자인지를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미남자의 맑고 투명한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건 담대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그녀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나 그녀는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으면서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미남자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멋진 미소였다.

“소저 같은 미녀와의 대작(對酌)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오.”

미남자가 술을 따르자 그녀는 술잔을 들고는 잠시 향취를 음미하더니 천천히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유난히 붉고 도톰한 입술을 살짝 열어 조심스럽게 술을 마시는 그녀의 모습은 남자의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미태(媚態)가 흐르고 있었다.
옥수(玉水)와도 같은 맑은 액체가 입술을 지나 목 안으로 사라지자 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첫맛은 부드럽고 뒷맛은 달콤하니 이 술은 여인들에게는 독약과도 같은 것이로군요.”

미남자는 그녀의 품평에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그녀는 미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영롱한 음성을 내뱉었다.

“그 부드러움과 달콤함에 취해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잊고 정신없이 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당신처럼’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미남자는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이더니 이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빙긋 웃었다.

“하하…… 옳은 말이오. 확실히 이 장호춘은 달콤한 맛에 비해 여인들이 마시기에는 조금 독한 편이지. 하지만 그래서 더 마시고 싶은 게 아니겠소?”

모용연의 입가에 한 줄기 씁쓸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단 말이지요.”

“바로 그렇소. 그게 바로 내가 이 장호춘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요.”

그는 다시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라 천천히 들이마셨다.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세상의 어떤 여인이라도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수려하고 아름다웠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란 장호춘이 아니라 바로 그를 가리키는 말 같았다.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하고 남자를 발가락 사이의 때보다도 하찮게 여기는 모용연도 이때만큼은 두 뺨에 엷은 홍조를 띠며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술을 모두 들이마신 미남자의 시선이 이번에는 말없이 앉아 있는 임영옥에게로 향했다.

“소저께서도 한 잔 하시겠소?”

이런 미남자가 권하는 술을 사양하는 여자란 결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임영옥은 의외로 고개를 내젓는 것이었다.

“미안합니다. 지금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사양해야겠군요.”

미남자는 그녀에게는 더 이상 권하지 않고 군유현의 옆에 있는 진남쌍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 분은 의향이 있으신지?”

진남쌍패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묵묵히 앉아 있었고, 군유현이 그들 대신 입을 열었다.

“그 귀한 술을 이리저리 나누어주어도 괜찮소?”

미남자는 빙긋 웃어 보였다.

“원래 귀한 술일수록 남과 함께 마셔야 더 맛이 있는 법이오. 사실 조금 전에 혼자 마신 술은 그다지 맛있지 못했소. 그런데 귀하들이 오고 나서부터 무척 술맛이 달라지는구려.”

군유현이 미남자의 옆에 그림처럼 앉아 있는 미녀를 바라보았다.

“저분이 있지 않소?”

“그녀는 나와 술을 같이 마시는 술친구가 아니라 그저 술을 따르고 안주를 집어주는 존재일 뿐이오. 화초 같은 장식품이라고 할 수 있지.”

당사자를 앞에 두고 하는 말로는 가혹한 감이 있긴 했으나 군유현은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이란 원래 마음이 맞는 동료와 마셔야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그러한 술친구와 술시중을 드는 여인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풍류를 즐기는 사람일수록 그러한 구분이 명확했다.

군유현은 강호 제일의 풍류남아라는 강호삼정랑에 속해 있을 정도로 풍류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으니 미남자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군유현은 진남쌍패를 돌아보았다.

“어떤가? 한 잔씩들 하겠는가?”

철패 하후태는 그러겠다고 한 반면, 비패 장손욱은 정중하게 사양을 했다. 하후태는 호쾌한 몸짓으로 미남자가 따라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미남자를 향해 포권을 했다.

“잘 마셨소이다.”

“한 잔 더 하시겠소?”

“한 잔이면 몸을 데우는 데 충분하오.”

하후태는 조금 전에 미남자가 했던 말을 넌지시 빗대어 대답했으나 미남자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절제를 아시는 분이군.”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다시 군유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형장은 어떻소? 술이 아직 남아 있는데 적어도 석 잔은 마셔야 하지 않겠소?”

군유현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나도 술이라면 사양해 본 적이 별로 없지만, 오늘은 이만해야 할 듯싶소.”

자신을 습격했던 무리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데 한가로이 술을 마시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생각을 하자 군유현은 갑자기 초조한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쉴 만큼 쉰 것 같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소. 오늘 마신 술과 귀하가 베풀어 준 호의는 언제고 인연이 닿는다면 꼭 갚도록 하겠소.”

“허….. 아직 아침 해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벌써 가려는 게요? 조금만 기다렸다가 간단한 요기라도 하고 가는 게 낫지 않겠소?”

미남자의 제안에 군유현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렸으나 더 지체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오. 아쉽지만 이쯤에서 우리는 가야 할 것 같소.”

“조금 있다가 떠나는 게 더 나을 텐데…..”

“왜 그렇게 생각하오?”

“혹시 아오? 이곳에서 조금 더 기다리면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나게 될지 말이오.”

미남자의 말에 군유현은 눈을 번뜩였다.

“반가운 사람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요?”

미남자의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글쎄…… 당신들이 누구를 봐야 반가워하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군유현은 낯빛을 굳히며 날카로운 눈으로 미남자를 쳐다봤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소?”

“아직 통성명도 나누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소?”

그러고 보니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무르면서 술까지 같이 마셨으면서도 군유현은 아직 미남자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나는 군유현이라 하오.”

군유현이 순순히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미남자는 짐짓 눈을 치켜떴다.

“오! 이제 보니 강호삼정랑 중의 한 분이신 절정수사이셨구려. 어쩐지 기상이 남다르다 싶었소. 내 이름은 임조몽(林朝夢)이라 하오.”

군유현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미안하오. 내가 과문(寡聞)하여 형장이 어느 분인지 알지 못하겠구려.”

“나는 그저 술과 여자를 벗 삼아 강호를 떠돌아다니는 무명소졸일 뿐이니 군 대협이 모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오. 괘념치 마시오.”

“그런데 조금 전의 말은 무슨 뜻이오?”

“어떤 말을 말씀하시는 거요?”

“이곳에 있으면 우리에게 반가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 않소?”

“아! 그건 말한 그대로요. 이곳에서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이고, 마침 내게 좋은 술이 있어 함께 나누어 마신 것도 운이 좋았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군 대협 일행에게는 내가 선연(仙緣)이나 마찬가지이니, 나와 함께 있다 보면 더욱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소?”

그의 말은 다소 억지에 가까웠으나 그렇다고 무조건 부인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군유현은 그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그의 준수한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했으나 그는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군유현은 그의 말대로 이곳에 좀 더 머물러 있어야 할지 아니면 당장 떠나야 할지 망설여졌으나 이내 마음을 결정했다.

한데 그가 막 무어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때맞춰 임조몽의 밝고 낭랑한 웃음소리가 그의 귓전에 들려왔다.

“하하….. 마침 기다리던 손님들이 온 모양이오. 아무래도 일진(日辰)은 무척 좋은 것 같소. 아침부터 좀처럼 보기 힘든 미녀들을 연거푸 만나게 되다니 말이오.”

군유현은 황급히 마차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 해를 받으며 공터로 들어오는 한 무리의 인마가 있었다.

말을 탄 이남삼녀(二男三女)였는데, 두 명의 남자는 체구가 건장한 중년들이었고, 세 명의 여자는 눈이 번쩍 뜨이는 미모의 여인들이었다.

여인들의 얼굴을 확인한 군유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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