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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950화


군림천하 (950)

제387장 위적요청

낙양의 아침은 다소 소란스러웠다.

전흠은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온갖 잡다한 소리에 참지 못하고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길.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대충 옷을 차려입은 전흠이 막 방문을 열고 나가니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정원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진산월임을 본 전흠은 깜짝 놀라 황급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아니, 장문 사형께서 벌써 나와 계셨습니까?”

진산월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했을 텐데, 더 자지 않고 벌써 일어났느냐?”

“충분히 잤습니다. 그런데…….”

전흠은 진산월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진산월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고, 특별히 이상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전흠은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며칠 동안 계속 진산월의 표정이 어두워서 은근히 걱정되었던 것이다.

“아침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아침은 됐고, 오시쯤에 나가서 점심을 먹도록 하자.”

“예. 특별히 가시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마침 길 건너편에 있는 주루가 제법 화려해 보이더구나. 그곳으로 가자.”

전흠이 바로 알은체를 했다.

겁니다.” “만화루 말씀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음식도 좋았고 종업원도 친절해서 괜찮더군요. 장문 사형도 마음에 드실

“그래, 마음에 들어야겠지.”

진산월의 마지막 말은 혼잣말처럼 나직해서 전흠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그는 진산월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얼른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만화루는 크고 화려했다.

삼 층으로 이루어진 주루의 외벽에는 정교한 조각들이 가득 수놓아져 있었고, 기둥은 질 좋은 적송으로 만들어져 호화로워 보였다.

때는 오시가 가까운지라 드넓은 만화루도 벌써부터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막 진산월을 안내해 만화루로 들어선 전흠은 주위를 둘러보고 쉽게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자 낭패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어제 왔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일층을 거쳐 이 층에 올라와도 빈자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당혹스러워하던 전흠은 마침 지나가는 점원에게 빈자리를 부탁했다. 점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시간에는 두 분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드리기 힘듭니다. 괜찮으시다면 합석을 하시지요.”

예의 바른 점원의 말에 전흠은 진산월을 돌아보았고, 진산월이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점원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해 주게. 이왕 합석할 거면 창가 쪽 자리가 좋겠네.”

“알겠습니다.”

점원은 장내를 잠시 둘러보고는 이내 그들을 창가로 안내했다.

창가에 접한 커다란 팔선탁에 세 명의 선객들이 앉아 있었다.

점원은 그들에게 합석해도 괜찮은지 의향을 묻고는 그들이 승낙하자 진산월과 전흠을 그 자리로 안내했다. 손님을 대하는 점원의 태도만 보아도 만화루가 얼마나 점원들의 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주문을 받은 점원이 물러나자 그제야 전흠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포권을 했다.

“합석을 허락해 주어 고맙소이다.”

선객은 체구가 건장한 금포 중년인과 그의 자녀로 보이는 십 대 중반의 소년과 소녀였다.

금포 중년인이 점잖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원래 이 시간의 만화루는 합석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가 힘든 곳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수염을 단정하게 기르고 점잖게 생긴 외모만큼이나 음성도 온화해서 전흠은 그의 첫인상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합석할 때 좋은 선객을 만나는 것도 운이라고 봤을 때, 오늘의 운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히 금포 중년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도 명문 정파의 제자답게 예의를 잃지 않은 정중한 것이었다.

진산월은 겉으로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으나, 그런 전흠의 모습에 내심 흡족함을 느꼈다.

처음 중원에 올 때만 해도 집에서 쫓겨난 살쾡이처럼 매사에 날카롭고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던 전흠이 적지 않은 경험을 한 덕분인지 이제는 제법 노련한 강호인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처음 종남파를 떠날 때와 비교해 보면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진산월과 동행하게 되면서 변화가 더욱 두드러졌다. 아무래도 장문인인 진산월과 함께 다니다 보니 사소한 여러 가지 일들을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 했기에 행동거지가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금포 중년인과 소년은 별다른 말 없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소년의 누이인 듯한 소녀는 음식을 먹으면서 가끔씩 진산월을 힐끔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소녀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으나, 동생으로 보이는 소년은 알아차렸는지 소녀를 향해 짓궂은 표정으로 빙글거리고 있었다. 소녀가 사나운 눈으로 소년을 쏘아보았지만, 소년은 오히려 힐끔거리던 소녀를 과장된 동작으로 흉내 내기까지 했다.

때마침 식사를 마치고 젓가락을 내려놓던 금포 중년인이 그 모습을 봤는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누이를 놀리는 거냐?”

소년은 찔끔하여 자세를 똑바로 했고, 소녀 또한 새침한 얼굴로 소년을 외면했다.

“식사는 다 했느냐?”

금포 중년인이 금시라도 일어날 듯하자 소년이 도리질하며 황급히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아뇨, 아직 남았어요.”

너무 급하게 먹는 바람에 음식 일부가 탁자 위에 떨어지자 소녀가 질색을 했다.

“더러워.”

“뭐가 더럽다고 그래?”

소년이 떨어진 음식을 집어 입속으로 쑤셔 넣는 걸 본 소녀는 참지 못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

“더럽게 무슨 짓이야?”

“내 입에 있던 걸 내가 먹는데 무슨 상관이람?”

소년과 소녀가 티격태격하자 금포 중년인이 준엄한 얼굴로 그들을 꾸짖었다.

“식사를 하다 말고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이 탁자에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분들도 계시는데, 대체 이게 무슨 낯부끄러운 짓이란 말이냐?”

소년과 소녀는 찔끔해서 황급히 진산월과 전흠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전흠은 그들이 귀여워서 피식 웃었고, 대신 진산월이 담담한 얼굴로 그들을 달랬다.

“괜찮다. 우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 마음 편히 있도록 해라.”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차분하고 부드러운 음성에 소년과 소녀는 모두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특히 소녀는 그의 무심한 듯 가라앉은 두 눈과 왼쪽 뺨에 나 있는 칼자국을 번갈아 훔쳐보고 있었다.

금포 중년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향해 사과했다.

“허허, 우리 애들이 너무 정신 사납게 해서 미안하오. 평소에는 얌전한 애들인데 모처럼의 나들이여서인지 조금 들떠 있는 것 같소.’

“한창 세상이 즐거울 나이로군요.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상관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산월의 차분한 반응에 금포 중년인의 얼굴에 떠 있는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고맙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렇게 한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통성명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소? 나는 이곳 낙양 태생인 심일원(沈)이란 사람이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내 아들 심과沈果)와 딸 심향(沈香)이라 하오.”

금포 중년인이 선뜻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진산월도 가볍게 대꾸했다.

“나는 진산(山)이라 하고, 이쪽은 내 사제입니다.”

진산월이 뒷글자를 뺀 가명을 말하자, 듣고 있던 전흠이 흠칫 놀라더니 약간은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풍(典)입니다.”

다급한 마음에 얼떨결에 내뱉은 이름이 사질인 손풍의 것임을 뒤늦게 깨달은 전흠은 살짝 얼굴을 구겼다.

‘하필이면 그 망나니의 이름이라니…………….’

금포 중년인, 심일원은 알 리 없는 일이라 온화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진 공자와 전 공자이셨구려. 말투로 보아 두 분은 낙양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낙양은 초행(初行)이시오?”

“예전에 몇 번 온 적이 있습니다.”

“그렇소? 낙양의 인상은 어떠셨소?”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때마다 다른 모습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더군요.”

진산월의 대답에 심일원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자신의 고향을 칭찬하는 말에 기뻐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심일원의 자녀들인 심과와 심향도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은근히 미소 짓는 것을 보니 진산월의 칭찬이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옳은 말이오. 내가 낙양 태생이라서가 아니라 낙양은 정말 계절마다 다른 특징이 있는 곳이라서 어느 때에 와도 천하의 절경을 볼 수 있소. 봄에는 낙양성의 모란에 취하고, 여름에는 용문의 석굴에서 더위를 식히며, 가을에는 노군산(老君山)에서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을 보고, 겨울에는 백마사(白馬)의 눈 내리는 설경을 감상하다 보면 세월이 흘러가는 것도 잊게 된다오.”

심일원의 열정적인 말에 진산월은 모처럼 입가에 엷은 미소를 떠올렸다.

“낙양을 진정으로 사랑하시는군요.’

“하하. 나뿐 아니라 낙양의 토박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들이오.”

심일원이 계면쩍게 웃을 때, 마침 점원이 진산월 쪽 음식을 가지고 왔다.

진산월과 전흠의 앞으로 몇 가지 요리가 놓이는 것을 보고 있던 심일원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식사 잘하시오. 우리는 이만 가 보겠소.”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에 인연이 닿는다면 또 봅시다.”

심일원은 미적거리는 심과와 심향을 밀다시피 이끌어 자리를 벗어났다.

전흠은 티격태격하는 두 남매를 양손으로 붙잡고 이 층의 계단을 내려가는 심일원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싱겁게 웃었다.

“정말 화목한 가족이로군요. 두 남매도 귀엽고 말입니다.”

진산월이 담담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래 보이더냐?”

진산월의 말이 조금 이상했는지 전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산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예. 장문 사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네가 그렇게 봤다면 맞는 것이겠지.”

진산월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흠은 자신이 놓친 것이 있나 떠올려 보았으나 특별한 것을 기억해 낼 수 없었다.

‘그냥 평범한 아버지와 사이좋은 남매 같았는데…………. 아무래도 장문 사형의 심기가 아직도 원래대로 돌아오지는 않은 듯하구나.’

전흠은 그들 가족에 대해서 곧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어차피 스치듯 잠깐 지나간 사이일 뿐이었다. 설사 이 주루를 다시 방문한다고 해도 그들을 또 만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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