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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127화


시에프리너는 고개를 들더니 밀밭에 부는 바람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작다고 할 순 없지만 거대한 몸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소리였어요. 그 소리를 들으며 왕지네는 눈물을 주루룩 흘렸습니다. 그녀는 귀를 막은 채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었어요.

주저앉아 있던 왕비는 문득 시에프리너가 보복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황급히 그림자 지우개를 들어올렸어요. 그때 옆에서 날아온 발 이 그림자 지우개를 걷어찼습니다. 각등은 바닥을 죽 미끄러졌어요. 왕비가 돌아보자 어두운 얼굴의 프로타이스가 보였습니다.

프로타이스는 그대로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손아귀가 왕비의 목을 움켜쥐었지요. 순식간에 왕비의 머리가 뜨거워지며 그 입으로 혀가 튀어나왔어요.

정면에서 목이 졸리면 두 손으로 저항하면 될 것 같죠? 불가능합니다. 순식간에 힘이 빠지거든요. 정신과 육체 양쪽으로 어지간히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손을 써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살인에 이용되는 것이고요. 왕비는 죽음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때 왕의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비켜!”

프로타이스가 으르렁거리며 왕비를 집어던졌습니다. 왕비는 어두컴컴한 시야 속에서 어렵게 왕을 발견했습니다. 왕이 장검을 휘두르며 프로타이스 를 물러나게 했어요. 왕은 프로타이스를 추적할까 하다가 생각을 바꾼 듯 왕비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왕비는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어요. ‘어느 쪽이지?’

“왕비! 정신차리고 내 손을 잡으시오!”

왕은 억지로 왕비의 손을 붙잡아 일으켰습니다. 왕비는 허우적거리며 일어났지요. 프로타이스는 그 모습을 보며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습니다. 마 법을 준비하는 자세였지요.

하지만 프로타이스는 곧 분노하여 발을 꽝 내굴렀습니다. 마법이 맺히지가 않았어요.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왕은 프로타이스의 실망하는 모습을 보며 안도했어요. 그는 그대로 퍼시발에 올라 빠져나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말 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은 다른 것을 발견했어요.

“왕자?”

유모차는 아직도 왕지네 곁에 있었습니다. 왕은 왕비를 놓고는 다시 장검을 두 손으로 붙잡았습니다. 왕비가 그를 만류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이미 왕이 달려간 후였어요.

시에프리너가 호곡을 멈추고 거세게 몸을 진동시켰습니다.

추락하지 않는 드래곤의 거대한 몸이 일어났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의 몸에 쌓여 있던 먼지와 흙, 모래 등이 폭풍처럼 일어나 레어 안을 휘감았습니다. 숨이 막힌다거나 시야가 흐려진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터무니없이 크고 어처구니없이 강력한 것이 어이없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마구 움직인다는 점이었지요.

프로타이스는 예언자와 왕지네를 붙잡더니 대단한 힘으로 두 사람을 질질 끌듯하며 벽으로 물러났습니다. 왕비 또한 급히 바닥에 엎드렸어요. 하지 만 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대로 유모차를 향해 달려갔어요. 하지만 움직이던 시에프리너의 기다란 꼬리가 유모차 근처의 땅을 때렸어요. 고 의는 아니었을 겁니다. 시에프리너는 그녀 근처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충격은 유모차를 튕겨 올렸습니다. 날아오른 유 모차 안에서 왕자가 솟구쳐 나왔지요.

그 앞까지 도달했던 왕은 급히 두 팔을 뻗었습니다. 그의 재빠른 행동 덕분에 왕자는 마치 빨려 들어가듯 왕의 품에 안겼습니다. 왕은 안도하며 미소 를 지었습니다. 무리한 동작 때문에 중심을 잃은 몸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도 못한 것 같았어요.

왕은 바닥에 쾅 소리를 내며 쓰러졌습니다.

등과 뒤통수가 꽤 아팠지만 왕은 왕자를 구했다는 안도감 때문에 웃음을 터뜨렸어요. 하지만 왕의 입에서 나온 건 웃음이 아니라 피거품이었어요. 왕은 깨닫지 못했어요. 갑자기 졸음이 찾아왔거든요.

왕은 졸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시에프리너의 알은 깨졌습니다. 왕비와 왕자도 안전했고요. 왕은 자신이 백부이자 조카라는 것을 기억했지만 그 또한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했습니 다. 이런 곳에서 잠드는 것이 기이한 짓이라는 것을 인식했지만 그 또한 받아들였습니다. 너무나도 졸렸거든요.

왕은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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