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38화
비공식적인 회담은 왕자의 갑작스러운 울음으로 끝났고 예언자는 궁성의 모처로 도로 끌려갔습니다. 감옥은 아니었죠. 이야기 외엔 할 일이 별로 없 는 죄수들이란 수다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 되는 집에는 보통 있게 마련이지만 정확한 명칭은 없는 방에 갇혔습니다. 어쨌든 건축학 용어에는 그 방을 가리키는 말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창고방이라고 부르지만,
예언자는 부서지거나 낡아서 안 쓰는 가구들과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자들, 그리고 폐품 수준엔 도달했지만 골동품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 직 더 정진해야 할 잡동사니들 가운데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 물건들이 예언자의 심사를 어지럽힐 일은 없었어요. 이젠 호흡처럼 쉽게 발휘되는 천 리안이 궁성 저편의 왕자에게 고정되어 있었기에 주위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할 일 없는 눈에선 하릴없이 눈물이 흘러내려 옷깃과 소맷자락을 적시 고 있었습니다.
‘나는 보지 않았어.’
예언자는 몽롱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전쟁의 결과를 보지 않았고 시에프리너의 비밀을 보지 않았고 내 아들을 보지 않았어.’
뭔가가 파닥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예언자는 한참 후에야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러고도 한참 후에야 천리안을 멈췄습니다. 예언자는 뭐가 뭔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등롱을 보았습니다. 그것 또한 주위의 잡동사니와 마찬가지로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요. 그런 데 하얀 나방 한 마리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그 등롱에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불도 켜지 않은 등롱에 왜 나방이 날아드는지 의아해하던 예언자는 나방의 날갯짓 소리가 말처럼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음과 자음이 결합 된 정확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결코 아니었어요.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파닥거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그 소리가 이렇게 들린다고 느꼈어 요.
이루릴이에요. 지금 궁성 바깥에 있습니다. 아들은 만났나요?
…… 태어나지 않았어요. 제작되었어요.”
뭐라 할 말이 없군요. 유감이에요.
“제조되었어요, 조립되었어요, 생산되었어요……. 내 아들이!”
예언자는 비명을 지르며 손목에 찬 수갑으로 자신의 이마를 후려쳤습니다. 두 번만에 이마가 찢어지며 얼굴과 두 손이 빨간 피로 물들었어요. 예언 자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입술이 꿈틀거렸습니다.
“바이서스의 왕자랍니다. 왕국의 후계자랍니다. 데리고 도망쳤다간 온 나라가 뒤집어지겠군요. 왕자가 사실은 제 아들이라고 말했다간 미친 놈 소 리나 들을 테고요. 손 쓸 방법이 없어요. 설계부터 완벽하군요. 그녀는 밑그림을 대충 그리진 않는 모양입니다.”
당신을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어요.
“그런 건 없어요. 저는 예언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지 않으면 그 여자는 제 아들을 학대할 겁니다. 제 아들은 엄마의 사랑을 얻지 못해 우는 아이, 엄마를 무서워하고 증오하는 아이가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미쳐버릴 거예요. 제길. 왕지네가 그랬지요. 아주 극악한 녀석의 미래를 보는 건 어 떠냐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괜찮은 생각이네요. 훌륭한 개새끼들이 있죠.”
예언자의 눈이 흉흉하게 불타올랐습니다.
“전쟁에 이길지 질지 미리 말해야 했다고? 그게 사람 꼴을 하고 할 소리야? 짓밟고 빼앗고 죽이는 짓을 하는 데 중요한 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뿐 이야? 개 같은 바이서스 새끼들. 너희들이 나를 그렇게 대했는데 내가 이런 꼴까지 당하면서 왜 너희들을 챙겨줘야 해? 야, 이 후레자식들아! 너희 왕 비가 너희들의 미래를 겁탈하라고 강요하는 거다. 너희들에겐 사치스러울 만큼 극적인 운명이다. 이 짐승들아!”
예언자는 육두문자를 한껏 토해내고는 숨이 막혀서 콜록거렸어요. 날개를 멈춘 채 가만히 등롱에 붙어 있던 나방이 다시 움직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건 당신의 신조가 아니에요.
예언자는 헐떡거리며 나방을 보았습니다. 나방의 날개가 파르르 떨렸습니다.
당신이 정말 예언은 나쁜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을 왕비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해요. 시도해요.
“가장 열심히 들어주었던 왕지네에게도 설명하지 못했어요. 아집으로 똘똘 뭉친 그 괴물에게 어떻게 설명하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나를 설득해요. 왕을 설득해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를 설득해요. 이 세계를 설득해요. 유피넬과 헬카네스를 설득해요. 그리고 그들 모두와 함께 다시 왕비를 설득해요. 그들 중 누군가가 당신보다 나은 언어를 찾아낼 테니까.
“이상론입니다.”
현실론이에요. 기억해요. 입은 앞쪽으로 열리지만 귀는 모든 곳으로 열려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