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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122화


남해오신룡을 앞서 보낸 후 일다경, 약 15분 정도 후 우리도 출발했다. 본래의 이동 속도대로 30분 정도 이동한 후 나는 다시 모두를 멈추게 했다.

두 번째 척후 조로부터 남해오신룡이 촌락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얼마간을 야후 장로와 농담을 나누기도 하고, 혈월에게 천인군도 얘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두어 시간 정도 기다렸나? 지루해진 내가 무심코

“시체놀이나 하며 놀까?”

중얼거렸더니 옆에 있던 야후 장로가 제자들에게 무덤에서 시체를 파오라고 시키려 해서 간신히 말렸다.

알고 보니 야후 장로는 ‘금강시군황(金剛屍君皇) 나걸손’이라는, 강시 제작과 조정이 특기인 늙은 마인과 친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인간과 어울릴 때는 여자 강시가 술시중을 든다고 한다니… 에효~. 어찌되었건 내가 말 꺼낸 거라 한동안은 얌전히 야후 장로의 친구 자랑을 들어줘야 했다.

“…처음 그 여강시를 목격한 제자 놈들의 표정을 곡주님도 한 번 보셨어야 했는데, 껄껄껄~! 사실 지금까지 강시를 실제로 만들어낸 자는 드물었지요. 정파 놈들은 물론이고 우리 사마의 인사들도 놀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만약 이 친구가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는 전설의 금강강시(金剛疆屍)를 완성하기라도 하면… 후후후-! 나걸손 이 친구는 항상 자신이 불로장생할 것이라 큰 소리를 치는데, 평생 시체를 주무르며 지내서 저승사자도 자신이 시체인지 살아있는 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거라는 겁니다. 허허헛~!”

흠…! 철시사군황은 그 명호의 거창함에 비해 강호 인명록 같은 공인 책자에는 이름이 없었다. 강호비사나 기인열전 같은 잡지 급에서나 가끔 등장하는 사람이라, 처음엔 그냥 시체애호증을 가진 변태 노인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야후 장로의 말을 듣고 있으니 얘기가 꽤 구체적인 걸 보니 전부 뻥인 것만은 아닌 듯했다.

[ 살아있는 시체, 강시 또는 좀비의 조제 및 통제는 이론상 50% 이상 가능성이 있습니다. 단, 이는 영혼에 관한 검증되지 않은 다수의 가설을 근거로 한 것이며 주인님의 영혼 교체 체험은 개념 성립에 필요한 모순을 줄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

몽몽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너 같은 경우도 있는데 뭐가 안 되겠냐” 정도? 좀 썰렁했지만, 하여간 몽몽도 강시 제작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동의한 셈이었다.

오호~ 그럼 나중에 야후 장로를 통해 그 노인을 불러 강시들을 만들어 내라고 하는 것도 재미있겠군. 홍콩 영화나 일부 무협지처럼 아예 대량 생산하도록 시켜서 강시군단을 만들어버리는 거다. 보통 강시보다 훨씬 막강한 전설의 금강강시까지 완성된다면 강시특공대를 편성하고…

음, 그러고 보니 ‘인간 잡는 강시해병대’도 나름대로 괜찮겠군. 그럼 특전강시대는 어떨까? 강시들에게 검은 베레모를 씌운다…

보아라- 장한 모습 강시 베레모~

무쇠 같은 우리와 누가 맞서랴~

하늘로 뛰어 솟아 정파를 친다~

검은 베레 가는 곳에 살육이 있다~

비화곡~ 금수강산~ 길이 지킨다

  • 후렴

안되면- 되게 하라~ 특, 전, 강, 시 용사들- 아~ 아 검은 베레- 무적의 강시들~!

오…? 특전사 부대가인 ‘검은 베레모’를 그대로 강시가(疆屍歌)로 써도 되겠는걸? 흐흐~ 좋아, 좋아! 대한민국 군바리들처럼 삽질을 잘 하지는 못하겠지만, 특수부대는 쌈만 잘하면 되는 거지 뭐.

그래… 강시특공대는 물론이고 강시해병대, 특전강시대 모두 만들어서 정파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거다.

각 파의 근거지에 떼거지로 진군하는 보병강시 러쉬! 그에 질려 떨고 있는 각파의 고수들 머리 위로 투하되는 특전강시대 용사들! 바닷가나 강가에 위치한 문파에는 해병강시대가 상륙작전을 벌이고… 순식간에 강호를 정복~! 음-뿌왓, 핫, 핫-하하하~!

“하하~ 앗-! 아우우으으~으으…”

“고, 곡주님!”

소교…였군. 언제 가까이 왔지?

“으으… 괜찮아, 으……”

“아… 아직 상처가 완쾌되지 않았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빌어먹을…! 간만에 무한한 망상에 빠진 것도 모자라, 실제로 정신없이 웃다가 상처가 쑤셔서 신음 소리로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소교는 붕대를 풀고 내 어깨의 상처를 살피고 싶어했지만, 왠지 쪽팔려서 그만두게 했다.

아무래도 야후 장로 얘기 듣는 중에 내 의식이 삼천포로 빠졌던 것 같은데, 다행히 야후 장로는 대화가 끊긴 걸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커흠! 흠! 그래… 보고가 들어왔니?”

“예, 목표 촌락에 의식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으로 보아 남해오신룡이 곡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데 성공한 듯합니다.”

흠, 좋아. 다섯 용들… 특히 종소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정파인들에게 현재 남해오신룡은 같은 편이며 떠오르는 신진 스타들이다.

더구나 종소 같은 아이가 자신들을 약물로 중독시켜 버리는 사태는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혹시 예상 밖의 고수가 있어서 눈을 속이기가 어려우면, 우리가 도망치기 쉽게 마구간의 말들을 잠재우라고 했는데 사람들까지 몽땅 잠재웠다니, 다행히 전부 만만한 자들이었나 보다.

“그 아이들은?”

“정파인들과 어울리다가 지금은 함께 의식을 잃은 것으로 위장하고 있다 합니다.”

그것도 예정대로군. 애초에 이 일에 남해오신룡을 쓰는 걸 망설였던 건 종소가 못 미더워서라기보다는 그 녀석들이 원판의 비밀무기였다는 걸 강호에 알리는 걸 원치 않아서였다.

녀석들을 도와준 원판의 과거 선행(과연?)은 나도 고마울 지경이지만, 그게 올가미가 되어 앞날이 창창한 애들이 일찌감치 조폭으로 이름을 올리는 걸 보기는 싫었다. 나중에 모두 깨어났을 때 그 아이들이 의심받을 수도 있겠지만, 함께 기절했다가 깨어난 체하며 딱 잡아떼면 결국 증거가 없는데 어쩌겠는가.

“자아~ 그럼 가볼 꺼나?”

내 명령과 함께 다시 출발한 우리 일행은 룰루랄라 이동을 시작했고, 얼마 후 문제의 촌락에 도착했다.

마차 서너 대가 동시에 지날 수 있는 넓이의 길 양쪽으로 낡은 목재 가옥이 주욱 늘어선 평범한 촌락이었다. 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마치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거나 전쟁이라도 나서 주민이 전멸해버린 유령마을 같은 분위기였다.

촌락 어귀에는 두 마리의 개들이 혀를 빼물고 누워 있었고, 가옥 입구 계단이나 길가 땅바닥에도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창문이나 약간 열려진 문틈으로 보이는 실내도 마치 화학전이 펼쳐진 듯 조용하고 섬뜩한 전장의 분위기가 풍겨오고 있었다.

음… 저렇게 만들라고 시킨 게 바로 나긴 하지만 종소 녀석 정말 대단하다. 아무리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온 마을을 동시에 마취시켜버리다니… 어쩌면 다섯 명 중에 가장 비화곡스러운 녀석은 그 천진해 보이는 꼬마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끼-이-익~!

음… 별안간 낡은 문짝이 움직일 때 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리니 더 분위기가 산다. 저 열려진 문 뒤에서 정체불명의 적이 스윽- 등장하면 아무리 환한 대낮이라도 기분이…

…어랏? 뭐, 뭐야? 정말 누가 나타나잖아?

으- 어떻게 된 거야. 생존자… 아니, 하여간 정신을 잃지 않은 자가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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