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94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양측 보디가드들이 재빠른 반응을 보여왔다.
“대인!”
“아가씨!”
사영과 류혼이 동시에 외치며 다가왔지만, 각자의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대인! 괜찮으십니까? 누가 감히……!”
류혼은 이명환의 상태를 살피며 매우 살벌한 표정으로 사방을, 결국엔 날 무섭게 노려보았지만 사영은 비교적 여유 있는 태도로 내게 물었다.
“무슨 독입니까?”
“칠절지독(七絶之毒)이라고 알아요?”
이번엔 사영도 놀랐는지 당장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칠절지독! 그렇다면… 그 자가 나타났다는 말입니까?”
“아마도 그렇겠지요. 칠절지독은 독수사갈(毒手蛇蝎)의 독문수법이니 말이에요. 그 작자… 잡을 수 있겠어요?”
“음, 일단 다녀오겠습니다.”
사영은 마치 뭐 사오는 심부름을 받은 태도로 천천히 객점의 주방을 향해 걸어갔고 나는 다시 이명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명환은 아직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몰라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무, 무슨… 정말 이 음식들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요. 명칭 그대로 총 일곱 가지의 다른 독들이 골고루 들어 있지요.”
“그, 그런! …하지만 전 지금 몸에 아무런 이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조금 있으면 느껴질 거예요. 뭐… 우선 몸에 시커먼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할 거고, 반각 정도 더 지나면 열이 오르며 전신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질 거예요. 전해지기로는 하루 정도 미칠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는다고 해요.”
내 태연한 설명에 류혼이 발끈하여 검을 뽑아 들었다.
“괘씸한! 그 정도까지 알면서 대인께서 독을 취하도록 방치했단 말인가?”
“방치하다뇨? 전 친절하게(?) 골고루 섭취하도록 유도했는걸요. 본래… 이 칠절지독은 순서를 지켜서 먹으면 독성이 발동을 안 해요. 그래서 독성이 발동하는 조합으로 드시도록 했지요.”
“뭐, 뭐요?”
류혼은 웃으며 설명하는 내 태도가 어이가 없었는지 잠시 말도 못하고 있다가 이윽고 맹렬한 살기를 뿜어 내기 시작한다.
“류혼! 경거망동하지 말고 검을 넣어라. 아가씨께 너무 무례하구나.”
“대, 대인.”
“알면서도 내게 독을 먹게 한 것은 아가씨께도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그 것을 들어보겠다.”
호오- 자신이 독을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치고 상당히 침착한 걸? 아니면, 아직 실감을 못하는 걸까?
“각각의 독도 무서운데 순서를 지켜서 먹으면 독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중화되는 이런 독을 왜 만들었겠어요? 칠절지독은… 주로 함께 식사하는 사람을 해치기 위해 쓰여졌다고 해요. 독을 쓰는 자는 자신만이 아는 순서로 음식을 먹고 무사하기 위해서예요.”
“…그렇다면, 아가씨께선 절 그 흉수로 의심하신 것이로군요.”
“바로 그래요. 일곱 가지 독 중에서 여섯 가지를 먹으면 그 독을 제조한 독수사갈 본인도 해독을 못한다고 하는데, 공자께서는 그 여섯 가지 독을 드셨으니, 이제 전 의심을 풀었답니다.”
드디어 침착했던 이명환도 벌레 씹어 삼킨 표정이 되어 말했다.
“지금… 독을 제조한 본인도 해독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나는 배시시 웃으며 자신 있게 대답해 주었고 이명환의 표정 변화를 느긋하게 감상했다. ‘침착해야 하는 데… 여자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되는데… 우쒸-! 돋됐다.’ 정도의 표정… 우흐흐~ 역시 순진한 사람 놀려 먹는 건 재밌다니까! 근데… 장난치다가 칼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류혼이 날 거의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군. 어이- 흑주, 너 근처에 있는 거 맞지?
“헛-! 대인!”
류혼이 놀란 것은 내 예고대로 이명환의 얼굴과 손 등 드러난 피부 위로 검은 반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의심을 풀기 위해 이런 짓을? 이런 미친……!”
류혼이 다시 검을 뽑아들었고 이번엔 이명환도 말리지 않았다.
하긴 말릴 기분이 아니겠지, 흠… 그럼 이 정도 선에서 장난은 접기로 할까?
“공자… 슬슬 독성이 발동하려는 것 같은데 이걸 드시지 않겠어요?”
나는 음식 접시 하나를 이명환에게 내밀었고 이명환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 접시의 음식을 노려보았다.
“이건……”
“칠절지독 중 마지막 일곱 번째 독이 들었어요.”
“뭐, 뭐요? 나보고 또 독을 먹으란 말이요?”
기왕 먹은 김에 화끈하게 먹어버려요…라고 했다가는 정말 칼맞을 것 같아서 이번엔 제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일곱 번째 독은 따로 놓고 보면 역시 치명적인 맹독이지만… 앞선 여섯 가지 독을 섭취한 상태에서는 오히려 당분간 독의 발작을 막아줘요. 일단 시간을 벌어 놓아야 해독을 할 수가 있지요.”
“방금 독을 제조한 자도 해독할 수 없다고 했는데, 아가씨께서는 가능하단 말입니까?”
“아직 실제로 해 본 일은 없지만, 방법은 알고 있지요. 가까운 사람 중에 독에 정통한 사람이 있어서요.”
실은 사람이 아니라 초울트라슈퍼지능형 미래 로봇 몽몽. 원판이 남긴 수많은 독극물 정보가 입력되어 있으며 독극물에 대한 화학적 분석까지 가능한 이 놈은 이미 해독 방법을 내게 알려 준 상태이다. 조금… 내키지 않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지만 내 눈앞에서 앞길 창창한 젊은 친구가 밥숟가락 놓는 꼴을 볼 수는 없으니 할 수 없지 뭐.
“왜… 안 드시죠?”
“그, 그 것이……”
식욕이 있어서 생긴 것이 아닌 침을 꿀꺽 삼키며 여전히 망설이는 이명환. 하긴… 내가 아무리 치료를 위해서라고 말해 줬지만 또 독을 먹으라니 무지하게 찝찝하겠지. 그럼 뭐… 자극을 좀 주어 볼까? 난 서서히 흉측한 반점이 번지고 있는 이명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무서우세요?”
여자에게 이런 말 듣고도 응, 무서워.라고 하는 남자는 드문 법이다. 이명환도 그 드문 타입은 아닌 듯 비로소 결심한 표정으로 내가 건네 준 음식 접시에 손을 가져갔다. 그때였다. 류혼의 검이 내 목에 겨누어 진 것은.
“대인, 전 아무래도 이 아가씨를 믿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청명환(靑命丸)을 드시고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청, 명, 환?”
나는 류혼이 말한 약 이름을 강조한 후 몽몽의 자료 화면을 읽어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청명환이라면 실혼회귀환(失魂回歸丸)이라고도 불리는 영약… 하지만 칠절지독에는 소용이 없어요. 아니, 오히려 독성의 발동을 더 촉진시킬 수도 있어요.”
“대인, 보십시오. 청명환이 독성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잖습니까.”
류혼은 인상을 긁으며 검끝을 조금 더 내밀어 왔고 이명환도 다시 고민에 빠진 표정이 된다. 나는 불쑥, 불쾌한 기분이 들어 버렸다.
“그럼 댁들 맘대로 해요. 난 상관하지 않을 테니.”
“흥-! 대인께 독을 먹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만약 대인께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면 널 가만두지 않겠다.”
이젠 반말…? 이 것이 점점 열 받게 하네? 기껏 도와주려고 했더니만.
“웃기지 마요. 왜 나 때문에 독을 먹었다는 거죠?”
“이런 뻔뻔한! 그건 조금 전 너 스스로 인정한 일이 아니가.”
“뻔뻔한 것은 댁들이에요. 독은 내가 아니라 바로 이공자를 노린 거예요. 내가 먹이지 않았다면 독수를 안 당했을 것 같아요?”
“그, 그건… 흉수가 반드시 대인을 노린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보면 몰라요? 날 노린 자라면 내가 독에 얼마나 능숙한지도 알고 있을 텐데 쓸데없이 독을 풀 것 같아요?”
“……”
할 말을 잃은 류혼을 노려보며 나는 냉냉하게 말을 이었다.
“칠절지독을 쓰는 자는 비인사기(非人四奇)라 불리는 강호에서 가장 비열하고 더러운 인종 네 명 중 한 명인 독수사갈. 강호 물정도 모르는 댁들이 그자를 상대로 얼마나 잘 대처하는지 한 번 보겠어요.”
비인사기… 인간이길 포기했다고 할 정도의 악행을 일삼는 네 명을 말하는 건데, 하는 짓들이 하도 비열하고 비인도적이라 비화곡에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말하자면 최악의 인간 말종들이다. 물론 그런 평가를 받고 있으면서도 몇 십 년을 굳건히 강호상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 봐도 상당한 무공과 두뇌를 지니고 있는 자들임을 알 수 있다.
“류, 류혼… 으흑~!”
“대, 대인!”
흠, 그 사이 반각 정도가 더 지난 모양이다.
이명환은 갑자기 안색이 붉어지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류혼은 그를 부축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자~알해봐요.”
난 코웃음을 치며 일어섰고 류혼은 고통스러워하는 이명환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쏜살같이 내게 몸을 날려왔다.
“어딜 가는 거냐! 대인을 해독……”
내게 손을 뻗쳐오던 류혼은 순간 놀라며 팔을 회수하며 물러섰다.
듬직한 보디가드 우리 흑주가 등장하며 한 칼 날렸기 때문이었다. 한 발 물러섰던 류혼이 자세를 가다듬으며 다시 나와 흑주에게 덤벼들려 했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까 주방 쪽으로 사라졌던 사영이 반대편인 객점 입구로 들어오면서 한 말이었다.
“됐어요. 이젠 우리하고 상관없는 일이니까.”
“아아- 그래요?”
사영은 상황을 대충 알겠다는 듯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더니만 류혼의 옆을 스쳐 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류혼은 고수다운 안목으로 흑주와 사영을 혼자서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함부로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굳어져 있었다.
사영은 힐끔 바닥에 쓰러져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이명환을 보고는 류혼에게 말했다.
“충고 한마디 하자면, 자네 손으로 공자의 목숨을 끊어주는 것이 더 인간적인 걸세. 칠절지독에 의한 고통은 지옥불에 타오르는 것 같다고도 하지.”
나 못지않게 남의 아픈 데 찌르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영의 말에 류혼이 발끈하여 외쳤다.
“닥치시오! 당신들은 이분이 어떤 분인 줄이나 아시오? 이분은 당금……”
“그, 그만둬!”
이명환이었다. 그는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억지로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내, 내가… 이런 곳에서… 이런… 알려지지 않는 편이… 으… 차라리 한낱… 야인…으로써 죽는 것이… 으흑……!”
“그렇지만, 대인!”
“류, 류혼…! 내, 내게 그 음식… 독이 든……”
좀 전에 내가 먹으라고 했던 그 걸 말하는 모양이다. 류혼은 입술을 깨물며 나와 이명환을 번갈아 보다가는 결국 검을 넣고는 이명환에게 칠절지독 중 일곱 번째 독이 든 음식을 이명환에게 먹였다.
“이, 이걸로 아가씨의 뜻에 따랐으니 부디 대인을 해독해 주시길 바랍니다.”
류혼이 이제야 정중하게 포권하며 요청해 왔으나 나는 짐짓 망설이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칠절지독끼리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에 더 류혼의 애를 태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흑주가 있어서 검에 찔릴 염려는 없었지만, 조금 전 류혼이 반말 지껄이며 댁댁 거린 건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무 속이 좁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