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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극악서생 외전(外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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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때 그들은……?


      1. 진유준 본인의 경우.

극악기원후(極惡起元後) 元年. 7月. 15日.

“야! 이~ 개~XX.. XXZ!!!”

어, 어라~?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나는 내가 소리쳐 놓고도 좀 당황해서 공연한 헛기침을 콜록거렸다. 잠깐 나에게 모여들었던 모두의 시선들이 사사삭~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요즘 들어 내 신경이 좀 날카로운 상태인 걸 아는 건지 아무래도 평소보다도 반응이 빠른 것 같다.

그나저나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방금 대체 왜 그렇게 열이 받아 욕지거리를 내뱉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조금 짜증이 나긴 했지만 갑자기 평소 입밖에 내 본 적도 없는 이상한 말을 욕이라고 내뱉으며… 어…? 이거 뭐야? 그러고 보니 나 방금 내 옆 탁자에 놓여져 있던 재떨이까지 집어 던졌나…? 나,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곡주님… 시상(施賞)은 어쩌시겠습니까?”

옆에서 대교가 낮은 음성으로 물어왔지만 나는 아직 스스로 정리가 안되어 조금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응? 어… 시,상, 해야지… 뭐. 판정 났다…며?”

내 말을 대교가 총관에게 전하자 총관이 나 때문에 잠시 썰렁해진 대회 분위기를 추스리며 계속 진행시키기 시작했다. 이미 누구도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있지만 엄한 짓으로 잠시 주변을 얼려 버린 펭귄마왕으로써의 쪽팔린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제기… 한 동안 K-2 만드느라 뺑이 쳐서 머리도 식힐 겸 구경온 이번 ‘무공대회’. 처음엔 참관 안 한다고 했었지만 오전에 총알 만들다 몇 개 실수해서 상한 기분을 달래려 뒤늦게 왔기 때문에 다른 경기는 다 놓치고 조금 전 끝난 마지막 경기만을 직접 볼 수가 있었다. 근데… 기껏 기분전환 하러 와서 대체 어디서부터 내가 이성을 잃기 시작한 거지?

여기 비화곡에서는 가끔… 그러니까 4년이나 5년 정도에 한 번씩 좀 특이한 무공경연대회가 열리는데, 그게 바로 오늘 열린 오림비(五臨飛)라는 명칭의 대회이다. 본래 비화곡에는 몇 개의 무제한 배틀 대회가 있었는데 원체 살벌한 인종들이 모여있는 곳인지라 경기 중의 불상사(한쪽의 처절한 사망)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정파 상대로도 아니고 우리끼리 이게 뭔 뻘 짓이냐는 여론과 그건 그래,라는 전대 비화곡주들의 동의로 결국엔 거의 다 폐쇄되고 남은 게 오늘 대회 하나라는 것이다.

오림비 대회는 당주급 이상의 고수들은 출전금지인… 굳이 말하자면 아마추어 대회인 셈이다. 그 전까지 대회들의 폐단을 없애려고 독(毒) 사용을 금지시킨다거나 꽤 많은 제약을 걸어 놓았고 그건 마치 20세기의 태권도 대회가 급소가격을 금지시킨 것과 같아서 사상자는 거의 없어졌지만 대신 ‘재미’도 함께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인기를 끄는 종목은 내가 본 경신술(輕身術) 경기인 것 같았다. 각자 경공을 펼쳐 조라 빠르게, 혹은 열라 높게 뛰기만 하면 되니 아예 서로 죽일 일도 없고 그러면서도 승부를 겨루는 재미를 느낄 수가 있으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경신술 경기도 종류가 많아서 벽 타고 오르는 벽호공(壁虎功), 그와 비슷하지만 자세가 반대인 도마공(倒摩功) 등 자잘한 잔재미가 있는 종목으로 나뉘어 진행되었기에 나도 처음엔 암 생각 없이 재밌게 관람할 수가 있었다. 헌데… 문제는 마지막의 1000장(千丈, 약 2.4KM) 빨리 주파하기 경기에서 발생했다.

오림비 대화라는 명칭에 맞추기라도 한 듯 출전 선수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대교의 설명에 의하면 그중 유력한 우승후보는 외당(外堂)의 대표 ‘뇌각(雷脚) 김성동’, 오래 전부터 그의 강력한 라이벌이라는 마극파천대(魔極破天隊)의 대표 ‘비응수(飛鷹首) 이지진’, 그리고 나이는 아직 어리나 최근 급속도로 실력이 늘었다는 내당(內堂)의 스타이며 대표 ‘연기자(沿奇者) 미우노’… 이렇게 세 명이다. 다른 두 명도 꽤 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지명도가 좀 떨어지는 것 같았다.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경기장에서 신호와 함께 일제히 출발한 다섯 경공 고수들… 실력차가 그리 큰 것이 아니어서 상당히 치열한 다툼이었다. 난 본래 육상 경기는 별로 안 봤지만 코너를 돌아 달릴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주어졌다. 중반이 넘어 갈 때쯤인가에 드디어 승부의 향방이 보이는 것 같았다. 뇌각 김성동이 갑자기 눈부신 속도로 다른 이들을 따돌리며 선두로 나선 것이다. 경공 만큼은 상관인 고시리 당주도 능가한다는 기재답게 그는 남은 거리도 거의 혼자 독주하다시피 앞서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결승점을 앞둔 종반 레이스… 연기자 미우노가 가까스로 뇌각 김성동을 따라붙었다.

짜식~ 어린놈이 제법이네?

라고 내가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별안간 미우노는 달리면서 괴이한 표정과 함께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는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뭐야, 저것도 경공 자세의 일종인가…?

그런 생각에 의아해했지만 경기는 그대로 끝났고 마지막까지 선두를 빼앗기지 않은 뇌각 김성동이 고시리 당주와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었다. 이어 뇌각 김성동은 외당의 깃발인 대극기(大剋旗)를 들고 흔들며 나를 비롯한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뇌각 김성동은 갑자기 허탈한 표정으로 들고있던 대극기마저 놓친 채 멍하니 움직이질 못했다.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시리 당주와 심판진(이번 시합 참가를 하지 않은 부서의 당주급 간부들.)을 보고 있었는데, 고시리 당주는 심판진 앞에서 뭐라고 항의를 하는 모양이었고 관중석도 외당과 내당의 야유와 맞고함 소리로 난리가 아니었다.

뭔가 판정시비가 났다…? 뭐? 뇌각이 탈락하고 연기자가 승리…? 미우노가 김성동의 뒤를 간신히 따라 붙었을 때 보인 이상한 행동이 뭔가 의미가 있었나?

이거 뭐야. 몽몽! 녹화 재생~!

아마도 그렇게 속으로

“몽몽!”

을 찾은 직후인 것 같다. 나는 몽몽이 녹화한 화면을 재생하기 전까지는 계속 뇌각 김성동과 연기자 미우노를 번갈아 보고 있었는데 어느 한 순간, 내 시선에는 미우노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표정으로 혀를 날름거리며 쪼개는 모습이 들어왔고, 나는 순간적으로 빡이 돌았던 것 같다.

후~ 내가 왜 그랬지? 왜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재떨이를 집어던질 정도로 흥분해 버렸을까? 물론… 미우노 녀석은 지금 다시 봐도 확실히 재수 없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만… 그건 그냥 느껴지는 인상이고 경기와는 별개다.

그리고 나로서는 녹화된 화면을 아무리 봐도 진상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앉은 VIP석은 경기장과 좀 멀어서 몽몽도 화면 녹화가 고작이고 각각의 내공 흐름… 그러니까 연기자 미우노가 주장하는 뇌각 김성동의 반칙, 자기와 몸이 스치는 순간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내공으로 상대의 속에 타격을 주는 수법.)을 썼다는 주장을 확인할 만한 근거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가까이에서 지켜본 초고수 심판진들이 알아서 잘 판단했겠거니…라는 것이 내 입장이다. 근데…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은 분명히 그런데… 난 왜 그렇게 순간적으로 열 받고 미우노가 때려 죽이고 싶도록 미웠을까…?

그리고 그때 한 욕… 그건 또 뭐지?

“야! 이~ 개~ 오노 같은 새끼야~!!”

우노도 아니고 오노…? 그리고 오노면 오노지 오노 같은 새끼라니…? 그건 내가 전부터 ‘오노’란 이름의 더러운 놈을 알고 있어야 성립되는 욕 아닌가? …이상하네… 난 그런 이름 모르는데…?

근데 왜…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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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총관 지천공의 경우.
    극악기원후(極惡起元後) 元年. 7月. 15日.

내당의 우당주와 마극파천대의 단대주 두 사람, 내 그렇게 대회 열지 말자는데도 기어이 우기고 다른 당주들까지 끌어들이더니만… 결국 큰 일을 저지르고 만 것 같다.

곡주님은 옛날부터 다른 건 몰라도 특별한 이유 없이 간부급끼리 다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신다. 그래서 수하들의 경기로나마 최근 두 사람의 눈에 거슬리는 외당의 고당주의 콧대를 꺾고 싶어 한 것도 이해는 한다.

그러나… 뇌각 김성동은 앞으로 적어도 10년간 그의 앞에서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자가 나타나기 힘든 경공의 천재! 비응수나 연기자도 뛰어난 기재이긴 하나 아직은 어림이 없다.

게다가 외당에는 ‘전광소자(電光少子) 안현소’라는 놀라운 후기지수(後起之秀)가 있지 않은가. 만약 뇌각 김성동이 때마침 곡에 돌아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과연 연기자 미우노와 비응수 이지진이 전광소자 안현소를 확실하게 앞설 수 있었을까?

그 물음에는 대다수의 비화곡 간부들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 적어도 경공만 놓고 보면 전광소자가 비화곡 후기지수 중에서는 단연 발군이다. 그럼에도 승부를 거는 두 사람을 보고 뭔가 속셈이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외당이라는 부서는 본래 곡 외의 일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 그 규모도 크고 기재들도 많지만 임무의 성격상 대다수 요원들이 곡 내에는 없고 고시리 당주와 친분이 있는 간부들은 대부분 대회에 관심이 없는 여성이다.

심판진의 편협된 구성… 그리고 결정적으로 연기자 미우노가 북두살성 마오천 장로의 기명제자라는 사실…! 그것이 우당주와 단대주가 믿고 있던 바였을 것이다.

헌데… 오지 않겠다고 하셨던 곡주님이 예고 없이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계획을 포기했어야 했다.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 감히 곡주님 앞에서 그런 어리석은 짓을 강행하고, 게다가 나까지 끌어들이려 하다니… 다시 생각해 봐도 괘씸하군.

나보고도 뇌각 김성동의 비겁한 행위를 공인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극도의 경공을 펼쳐 앞서가던 자가 갑자기 내공을 낭비하며 뒷사람을 공격했다는 터무니없는 상황을 누가 믿겠는가 말이다.

문제의 일천 장 경주가 끝난 직후 곡주님이 분노를 표출하셨을 때부터 이미 우당주와 단대주는 간담이 서늘하여 전전긍긍하는 눈치였다. 현재, 곡주께서는 이번 대회의 각 부문 승리자에게 수여될 금패(金牌)를 하사하시는 자리에 미우노와 함께 김성동을 함께 부르신 상태이고 우선 미우노에게 물으신다.

“에… 미우노… 너 혹시 우노가 아니라 오노, 아니니? 그리고 전에 따로 나 만난 일이 있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이름은 날 때부터 틀림없이 ‘미우노’입니다. 곡주님을 이렇게 가까이 뵙는 영광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래…? 거참… 하여간, 음… 젠장… 내가 왜 이러지?”

매우 복잡한 표정으로 괴로워하시는 곡주님을 보며 나를 비롯한 간부들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심취해 계신 코리아교의 교리와 살인 욕구의 충돌… 우리는 그동안 저런 모습을 많이 목격했었다.

그동안은 끝내 이성을 찾고 자제하셨기 때문에 다행이었는데 저 미우노 놈이 기름을 부었다.

“곡주님! 헌데 저 김성동은 어째서 함께 부르셨는지요. 그는 이 신성한 대회에서 비열한 짓을 했습니다.”

아무리 마오천 장로를 등에 업고 있다고 해도 저런 미친……!

“야, 난 말야… 그게… 그게 말이야……”

오오~ 곡주님의 얼굴에 떠오른 쓴웃음과 허허로운 미소의 교차… 위험하다.

“에이- 썅! 더 못 참겠네!”

갑자기 벌떡 일어선 곡주님의 손에 의해 금패가 놓여있던 탁자가 뒤집어지고, 이어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까지 걷어차 버리신다. 우당주와 단대주는 극단적인 각오까지 했는지 두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비로소 미우노가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를 깨닫고 공포에 떨기 시작했고

“사부님…”

을 중얼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마오천 장로는 헛기침과 함께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모습… 분을 이기지 못하고 기물을 부수고 짐승처럼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는 곡주님 앞에 그 누가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아… 대교? 대교가 곡주님의 손을 붙들고 진정을 시킨다…? 오… 과거 곡주님에 의해 반 강제로 제자로 삼아야 했던 저 아이가 진정 보물이었구나.

“아… 저기… 여러분들, 이거 미안하게 되었네. 내가 잠시 미쳤었나봐. 갑자기 왜 이런지 모르겠어. 정말 미안해. 특히, 미우노 너… 너한테도 미안… 음… 그러니까 안심해. 너한테 화낸 거 아니야. 정말이야. 후우~”

대교에 의해 겨우 진정한 곡주님은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그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계신다.

“나, 갈게. 좀 쉬어야겠어. 뒷일은… 비연대 대장에게 묻도록 해. 부탁인데 오해하지마, 나 정말 미우노에게 화낸 거 아니야.”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씁쓸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자세로 천천히 자리를 뜨는 곡주님…

예전 암호표로 해석하면 미우노를 부른 이후 벌써 살인 지시 5번, 고문 지시 10번, 일가족 몰살 3번, 상관들까지 줄줄이 죽이라는 지시 4번이었다.

설마 그걸 전부 실행하라는 건 아닐 테고… 마지막 말씀대로 비연대 대장, 내 큰 제자와 상의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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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연대 대장 대교의 경우.
    극악기원후(極惡起元後) 元年. 7月. 15日.

후우~ 이번엔 저도 무척 놀랐답니다.

곡주께서 그 정도로 이성을 잃은 모습은 처음이었거든요. 물론 저도 연기자 미우노의 비열한 행위가 미웠지만, 자칫 일이 커질까 봐 곡주님께 아뢰진 않았거든요.

그리고 사실 내가중수법을 썼는지는 상대에게 내상을 입힐 정도가 아니라면 나중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지요.

결국 그저 상황 증거만 따질 수밖에 없는데, 저 무서운 마오천 장로께서 버티고 계셔서 그런지 피해자인 외당의 고시리 당주님이나 다른 사람들도 제대로 항의를 못 하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답니다.

헌데… 곡주님은 역시 한 눈에 모든 걸 파악하셨나 봅니다.

곡주님의 분노는 자신의 앞에서 잔꾀를 부린 자들 때문인지, 아니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제대로 항의도 못 하고 웅성댈 뿐인 외당 사람들의 태도 때문인지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곡주님이 처소로 돌아가시면서도 계속

“내가 왜 이러지? 나 저놈 모르는 데…?”

를 중얼거리시는 걸로 보아 당분간은 말도 꺼내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빡 도셨으면(소교에게 배웠답니다. 물론 소교는 곡주님께…) 저렇게 진정을 못 하시다니……

아, 좀 전에 곡주님이 남긴 명령 때문에 사부… 아니, 총관님이 제게 다가오시는 군요.

내외당의 두 당주님과 마극파천대의 대주님도 서둘러 오시고… 음, 마오천 장로님은 당신 앞에 엎드려있는 미우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계시고…

아, 일단 저 분 먼저 말리고 시작해야겠네요.

음… 곡주님이 평소 맑은 정신이실 때 강조하신 살인금지는 지켜야 하니까, 미우노는 지옥전(地獄殿)에 잠시 보냈다가 멀리 유배시키는 정도가 좋을 것 같고,

다른 관계자들은… 아,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은 제가 함부로 하기 어려운 신분일 테니 총관님의 의견을 주로 반영해야겠네요.

…헌데, 어찌된 일일까요. 곡주님의 기분이 저에게도 옮겨진 것일까요?

왜 자꾸만 연기자 미우노와 이번 일 관계자들이 얄밉게만 보이는지 모르겠네요.

미우노…

어머, 이러면 안되는데… 자꾸 영구 지옥전 행을 선고하고 싶어지네요.

마치 제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존재가 시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

  1. 비연대 부대장 소교의 경우.
    극악기원후(極惡起元後) 元年. 7月. 16日.

아아~ 이게 무슨 일이람?

“미령이 너! 당장 그만두지 못해?”

“어, 언니……?”

저는 제 동생의 행동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채, 일단 눈앞의 사태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조금 전 제게 달려왔던 비연대의 제 수하가 알려준 대로 미령이에게 곤욕을 치르고 있는 자들은 우리 비연대 소속이 아니었고, 외당의… 그것도 허리띠 색으로 보아 두 명 다 상급 무사들이었습니다.

“모두 그만 일어서요.”

“안돼! 움직이면 죽을 줄 알아~!”

흠칫 놀라 다시 엎드려뻗쳐 자세를 바로 하는 외당 무사들보다 제가 더 놀라 또 입을 다물지 못했답니다.

세상에, 미령이가 요즘 버릇이 없어졌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앞뒤 가리지 못하는 망나니가 되어있을 줄이야!

“비연대 수석무사 미령! 당장 부대장의 명을 받들라!”

“어, 언… 예, 옛! 수석무사 미령, 명을 받습니다.”

제 엄한 태도에 그제야 한 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갖춘 미령이를 내려다보며 저는 잠깐 한숨을 몰아내며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당혹감과 함께 분노를 느끼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미령이가 요즘 기가 살았다고는 해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다른 부서 사람들을 괴롭힐 정도로 생각이 없는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령! 네게 묻겠다. 저 두 사람이 비화지천(秘花之天)께 불경죄를 범했느냐?”

제 질문에 미령이보다 먼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 것은 외당의 무사들이었습니다. 비화의 하늘이란 당연히 곡주님을 뜻하지요.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흰 다만, 다만… 억-!”

놀랄 일의 연속입니다. 동시에 입을 열어 뭔가 스스로를 변호하려던 두 사람의 머리를 그 뒤에 서있던 소령이가 검집으로 딱!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렸던 것입니다.

소령이도 곧 미령이 옆에서 자세를 취했지만, 그 애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비연대 수석무사 소령…! 아, 죄송… 저도 모르게 무심코 그만……”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미령이도 미령이지만 소령이까지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흐흠…! 좋아. 일단, 미령 먼저 대답해. 저 두 사람이 불경죄를 범했느냐?”

“예! 그것도 아주 악질적인 대죄를 지었습니다.”

곡주님께 불경한 대가가 어떤 것이라는 걸 아는 외당 무사들이 온몸을 부들거리며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을 상세히 말해보라!”

미령이는 대답하기 전에 고개를 돌려 외당 무사들을 또 무섭게 노려본 다음에야 입을 열었습니다.

헌데… 미령이가 늘어놓은 사연이란 현재의 상황에는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어제 있었던 오림비 대회의 얘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부대장님은 어제 열린 오림비 대회에서 벌어진 비열한 작태를 직접 목도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만……”

저는 요즘 ‘원앙검’이란 검법을 발견하여 연구하느라 어제의 오림비 대회를 저희 자매들 중 유일하게 참관하지 못했었습니다.

나중에 대교 언니에게 들어 사연은 대충 알고 있기에 지금 미령이가 흥분하여 그 일을 얘기하는 걸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저들이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건지……

“…그리하여 다행히 현명하신 곡주님께서 연기자 고시리를 단죄하셨습니다. 헌데, 제가 조금 전 이곳을 지나다가 저 두 외당 무사와 내당 무사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어떤 얘기를 들은 줄 아십니까?”

“…계속 말해 보라.”

“어제의 일이 모든 비화곡 시민들의 공분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부대장님도 아실 겁니다. 헌데, 저 외당과 내당의 자들은… 정작 당사자들인 저들은 어제 억울한 일을 당한 뇌각 김성동님의 험담을 늘어놓고 있지 뭡니까.”

“뇌각 김성동님의 험담을? 저들… 외당의 무사들까지?”

“예, 어제 김성동님은 어이없는 판결과 누명에 울분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 보는 저까지 가슴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헌데 저 웃기는 작자들은 그분이 분풀이로 외당의 대극기를 부러트렸다며 흉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김성동님과 연기자 미우노라는 파렴치한을 같은 부류로 취급하지 뭡니까!”

뭬~야? 저런 가래침으로 마빡을 뚫… 어머머~ 언젠가 곡주님이 가르쳐 주신 그 욕설은 너무 끔찍하여 그동안 다시 떠올리기도 꺼려왔는데 제가 무심코……

“물론 김성동님이 그 순간 외당의 상징인 대극기에 손상을 입힌 건 사실이나, 그런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믿기 어려우며, 또한 일부러 그랬겠습니까. 울분을 누르느라 손에 힘이 들어갔을 때 김성동님의 내공이라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후우~ 얘기를 듣고 보니 미령이가 흥분한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군요.

하지만 저까지 감정에 휘말리면 이 자리가 수습이 안 될 테니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그랬었군. 헌데, 그렇다면 내당 무사들은 어쩌고 왜 외당 무사들만 치죄를 당하고 있었지?”

“그들은… 비록 똑같이 괘씸하다고 하나, 곡주님이 즐겨 쓰시는 표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신들의 상관이며 존경하는 연기자 미우노를 옹호하는 자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허나… 저 외당의 쓸개빠진 것들은 김성동님과 같은 외당 식구이면서도 함부로 입을 놀렸으니 그 죄가 어찌 한 두 마디 질책으로 끝낼 일이겠습니까.”

말로는 당할 사람이 없는 우리 미령이… 저도 갈수록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음… 그건 그렇다 쳐도, 직속상관 모독죄와 곡주님께 불경한 것은 그 죄질이 다른 바, 비화지천에 대한 불경죄를 적용할 근거를 말해보라.”

“부대장님도 아시다시피 어제 오림비 대회사건으로 곡주님은 드물게 이성을 잃으실 만큼 노하셨습니다. 큰 언… 아니, 대장님이 나서서 간신히 진정하셨다고는 하나 현재 대장님과 총관님, 각 부서 어른들까지 모두 나서 사태의 수습을 강구중인 현재… 자칫 곡주님의 심기를 다시 자극할지도 모를 아둔한 언동을 일삼았으니, 이는 곡주님의 심화를 돋우는 불경죄이며 나아가 그 분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비화곡 전체의 안녕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봅니다.”

조금 억지가 섞인 논리라고는 생각하지만… 어쩐지 반박하기도 어려운 주장이로군요. …그래도 수습은 해야겠지요. 저도 곡주님을 지키는 비연대의 부대장으로써…

“미령, 그대의 의견은 잘 들었다. 허나, 본 부대장의 판단으로는 이 일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그대는! …진정 외당 사람들이 모두 저 들과 함께 매장되기를 원하는 가?”

“아, 그… 그건……”

“불경죄는 십중팔구 너무나 많은 피를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그것 또한 곡주님의 뜻에 반한다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을 것이고… 이 일은 이 정도로 마무리 짓도록 하자.”

“…부대장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좋아, 그럼… 거기 두 사람은 이제 그만 일어서세요.”

저희들의 대화를 들으며 어찌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두 사람 모두 소금 호수에 빠졌다가 간신히 기어올라 온 몰골로 떨고 있네요. 더구나 그전에 미령이에게 뺨이라도 맞았는지 얼굴에 멍이 들었고 한 명은 코에 약간의 혈흔이 있네요. 조금 가여운 마음도 들지만 저도 역시 괘씸한 마음이 더 큰 걸 어쩔 수가 없네요.

“두 사람의 소속과 이름은?”

“예, 옛! 외당의 본단 주재 1급 감찰관 ‘죽선’입니다.”

“동 소속과 계급의 ‘일보’입니다.”

감찰관(監察官)…? 세상에, 저도 새삼 화가 나려 하네요. 다른 자들의 이런 행위를 살피고 선도해야할 감찰관들이 오히려 자신들과 친한 내당 사람들과 어울려 헛소리를 일삼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네요.

“음… 죽선, 일보 두 사람… 더 이상 비화지천에 대한 불경죄를 적용하지는 않겠어요. 그런 이상 부서도 다른 내가 더 뭐라 추궁하고싶지는 않지만… 한 가지만 묻겠어요. 죽선, 일보 두 사람은… 어제의 사건에 대해 정말로 뇌각 김성동님이 잘 못했다고 생각하나요?”

“그,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극기를 상하게 한 건 아무래도……”

“…외당의 상징인 대극기를 아끼는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또 묻지요. 죽선, 일보 두 사람은 정작 그 외당의 대표로써 많은 사람들에게는 대극기와 같은 외당의 상징이었던 뇌각 김성동님… 그분 자체를 짓밟았던 이들에게 제대로 항의하고 저항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 그건… 저흰 그저 일개 감찰관인지라……”

“미우노님의 뒤에는 마오천 장로님이 계시는 걸 누구나 아는 터 어찌 감히……”

“알겠습니다.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군요. 돌아가서 차후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근신하세요. 고당주님께는 차후 정식으로 통보하겠어요.”

죽선, 일보 두 사람이 목숨을 건진 것을 감사하며 허둥지둥 돌아간 후에도 저는 씁쓸한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답니다. 곡주님을 수행하기 위해 나섰던 강호행에서 무수한 도움을 받았던 외당 사람들에 대한 호감이 걱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외당에 인재가 얼마나 많은지 보다도 저런 부류의 사람들이 위에 많이 있는 한 외당의 미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못할테니 말입니다. 음… 헌데 옆에서 비로소 얄궂은 미소를 띠고 있는 미령이는 그렇다치고 소령이까지 왜 그랬을까요? 저 아이야말로 대극기같은 한 부서의 상징이 손상된 자체만 따질 고지식한 아이 이거늘……

“아, 그건……”

제가 언니로서 다시 묻자 소령이는 자기도 대답하기 난처하다는 듯 딴청을 피우다가 결국 입을 엽니다.

“원칙은 물론 당연하게 지켜야 하지만… 정말로 당연한 건… 미령이가 말 한대로 팔은 안으로 굽는다, 아니야? 이상하고 기분 나쁘잖아, 팔이 밖으로 굽은 사람은……”

소령이 다운 대답에 저와 미령이의 씁쓸한 웃음소리가 비화곡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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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화곡 아홉 장로 중 중견인 야후 장로의 경우.

극악기원후(極惡起元後) 원년, 7월 17일.

허허~! 우리 젊은 곡주가 저리 제정신이 아닌 건 대체 몇 년 만인지…

하긴, 어제 일은 나도 그냥 봐주기가 어려웠지. 미우노 그 쥐새끼 같은 놈, 그렇게 지기 싫었으면 차라리 뒤에서 일장을 날려 버리던가 시비를 걸어서 치고받던가 할 것이지, 어디 그런 치졸한 짓을 하는가 말이다.

마오천 장로… 그 음흉한 늙은이의 제자가 오죽하겠는가마는, 이번엔 임자를 잘못 만났지. 나야 이런 정도 일로 마늙은이와 생사결까지 가기는 싫어서 참았지만, 우리 젊은 곡주가 참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과거 ‘사갈서생(蛇蝎書生)’이라는 지저분한 놈을 곡에서 내쳤던 것처럼, 곡주가 가장 끔찍이 싫어하는 건 자기 앞에서 어설픈 잔꾀를 부리는 놈인 것을 마 늙은이는 잊은 모양이지?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 공연히 여기 대청각에 나와 본 건데… 오호라~ 오랜만에 낯짝을 보는 저 자는 바로 외당의 숨은 권력자 ‘대체회장(大體回掌) 김우용’이 아닌가! 흠… 외당의 고시리 당주가 내세울 수 있는 자는 결국 저 자밖에 없었겠지.

“껄껄걸~! 이거 소장로님을 이런 곳에서 뵙게 되는군요.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과연 오랜만이외다. 나야 먹고 노니 한가해서 온 거지만, 노제는 하필 좋지 않은 일로 곡을 찾게 되어 유감이외다.”

“하하~ 뭐, 별일 있겠습니까. 아랫것들끼리 토닥인 것이 어쩌다 곡주님의 심기를 어지럽혔으니 그분께 사죄할 일이 걱정일 뿐입니다.”

“허허허~”

허허… 이럴 줄은 짐작했지만 과연 그렇군. 어디 이 인간이 저 대교란 아이와 대책을 협의 중인 간부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기로 할까? 흐음… 역시 내당 측의 변호 세력들이 처음엔 조금 당황하는군. 외당 측 인사들은 속도 모르고 기뻐하고 있고…

“이번에 오림비 대회를 주최하느라 다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 대체회장 김우용이 외당을 대표해 여러분께 새삼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김우용의 인사에 당황하는 자들이 많구먼, 이제 시작이거늘…

“에… 내가 듣기로 약간의 불상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 오림비 대회가 무엇입니까. 현재 비화곡에서 뛰어난 후기지수들을 선보이고 각 부서의 친목도 다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의 훌륭한 대회가 아닙니까. 이번에 발생한 미미한 말썽을 하루속히 잊고 성공적으로 치러진 대회의 대미를 다 같이 장식합시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내 잘난 사위 지총관과 그 큰 제자 대교의 표정이 정말 재밌구먼, 껄껄껄~! …응? 아, 이런… 나도 곡주를 닮아가나, 생각만 한 줄 알았는데 겉으로도 웃어버렸구먼. 크흠… 잠시 더 뒤로 물러나는 척하다가… 흠, 고맙게도 내 존재를 바로 잊어 주는군. 그럼 계속 지켜보기로 할까?

“아니, 태상(太常)께서 어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전… 제가 태상(太常)을 모셔온 건 이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고당주! 많은 간부들 앞에서 어찌 이런 망발인가. 사소한 일에 매이는 것보다 대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어찌 모르는가!”

“대, 대의…란 대체 무얼 말씀하시는 겁니까. 태상께서는 설마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꼬리를 감추고 오히려 감사하는 것이 대의라고 하시는 겁니까?”

“허허~ 이 사람 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먼. 쯧~! 내 이래서 너무 젊은 당주는 곤란하다고 했거늘~!”

“세, 세상에… 태상께서 설마 이러실 줄은……”

쯧쯧…! 외당의 고시리 당주, 자네 현명한 줄 알았더니 영 어리석군.

저 김우용이 어떤 인물인고 하니… 외당과 밀접한 관계인 태권각(太拳閣)의 전대 각주로서 현재는 외당의 후원자격인 태상의 위치에 있지만 본래는 과거 젊은 시절에 마오천 장로에게 패해 굴복한 후 오히려 지금은 마오천 장로의 동생 되기를 자처해 의형제를 맺고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고 있는 자가 아닌가. 음… 마오천 장로와 대체회장의 밀약은 나를 비롯한 몇몇만이 알고 있으니 고당주를 탓할 수만은 없을지 모르겠군.

“이 혈랑대주 정천우, 가만 있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이번에 우리 혈랑대의 대표가 받은 불이익에 대해서 단대주와 우당주께 좀 따질 것이 있소이다.”

“‘비룡전(飛龍殿)의 부랑수’도 할 말 있소! 벽호공 경기 때 우리 대표가 내게 고하기를……”

오호~ 다른 부서 간부들은 그래도 대체로 자기 주장을 하는구먼. 저들은 이곳 본단에서도 힘께나 쓴다는 자들이라는 특징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정작 가장 큰 피해자인 외당의 처지가 더 안돼 보이는군 그래. 태상의 위치에 있는 대체회장 김우용의 저런 발언이 있었으니 고당주들이 더 이상 어떻게 나설 수가 있을꼬… 쯧쯧쯧~!

“여, 여러분~!”

음? 이 겁먹은 목소리는 사위의 둘째 제자 소교?

“곡주께서… 납시어 계십니다. 이미……”

납시겠다는 게 아니고 이미 계시다…? 어헛~! 내가 너무 구경하는 재미에 빠졌는가? 하긴 나뿐이 아닌가? 곡주 전용입구에 곡주가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다른 자들도 모두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군. 헌데… 이, 이런, 이런-! 곡주가 자기 호위무사의 칼을 뺏어 들고 있잖은가!

“외당 태상 대체회장 김우용이 곡주께 인사 올립니… 헉~!”

“야이 개 새꺄~! 죽엇~!”

맙소사! 무공도 모르는 곡주가 휘두르는 칼에 김우용 같은 초고수가 당할 리가 없건만, 김우용은 어찌나 놀랐는지 뒤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단칼에 쓰고 있던 관이 벗겨지며 머리카락이 일부 날아갔고… 김우용의 넋 빠진 얼굴이 볼만하긴 한데…

“헉~ 헉~ 어, 미, 미안… 내가 그만 또… 헉~ 헉~”

“고, 곡주님… 지, 진정하시…”

“으아~ 쓰파~! 역시 못 참겠어~!”

어이쿠~! 이 야황살수 소진광이도 이 자리는 더 이상 곤란하겠다. 이런 구경은 불구경보다 위험하느니… 자칫 불똥이 튀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겠다.

허허~ 이 소진광이가 좋은 구경을 두고 그 자리를 뜨다니… 하지만 곡주의 광기가 웬간해야지 원.

“으아아~ 누가 나 좀 말려 줘~ 씨바 죽여 버리겠어~! 아니, 말려 달라니까? 아니 죽일 거~ 으아 제기~!”

대청각 밖까지 여전히 들려오는 저 처절한 외침이라니… 다소 심하다 싶긴 하지만 뭐, 내일도 아니고… 안됐구려, 태체회장. 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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