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17-3화 : 신비인(神秘人)? 진유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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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17-3화 : 신비인(神秘人)? 진유준.(3)


3-2. 신비인(神秘人)? 진유준.(3)

그동안 원판에 대해 알게 모르게 품고 있었던 일종의 ‘열등감’ 때문에 나는 상당히 오버해서 혼자 감격에 겨워 한 다음에야 겨우 진정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인간성 측면에서야 내가 쬐금 사악한 면모를 갖춘다고 해도 어차피 원판보다야 양호할 테니 그 쪽은 우월감을 가져도 좋으려나…? 뭐… 하여간 재활 기간 동안 계속 대천마를 어떻게 따돌리나 고민한 보람이 있었던 셈이다. 자- 이제 슬슬 돌아가서… 응?

“진대가~! 진대가~! 어디 계십니까!”

뭐야? 그 새 뭔 일 생겼나?

“아, 여기 계셨습니까?”

내가 후미진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대교가 반대편 통로에서 서둘러 달려왔다.

“조금 전부터 출구 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대교가 와룡전으로 들어올 때 뒤를 따라와서는 출구 쪽에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다던 병력들이 드디어 참지 못하게 된 모양이다. 하긴, 대교가 와룡전에 들어온 지도 벌써 열흘이 다 되어 가니 이 안에서 대체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뭐… 그래봐야 지들이 원판 스페샬 진법(陣法)을 뚫고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대교와 함께 원판 표 진법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지점에 도착하자 대교가 설명했다.

“…제가 끝내 스스로 나오지 않으면, 돌아가신 곡주님 성지를 더럽히는 한 있더라도 강제 진입하겠다 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원판의 진법들에는 공간을 왜곡하는 효과도 있어서, 통로의 길이는 불과 수십 미터인데도 바깥에서는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 안쪽에서도 바깥이 그리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소리 같은 경우도 서로 거의 다 차단되어서 내 귀에는 바깥에서 떠들어대는 소리가 모기가 앵앵거리는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깊은 내공으로 청력이 발달한 대교는 그 내용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대교, 너 아직 저들에게 대답 안 했지?”

“예. 그 전에 지시를 받고자…….”

훗~! 생명을 무릅쓰고! 군기 잡아 놓은 보람이 있군.

“좋아! 대교 넌 잠시 여기서 기다려. 내가 나갔다 오겠다.”

“저… 진대가께서는 아직 무공이 회복되지 않았으니 제가 동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 넌 이미 여기서 죽은 거야. 후후~! 죽은 자가 모습을 드러내면 곤란하지.”

내가 웃으며 말하자, 대교도 곧 내 뜻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깝지만, 네 머리카락 조금만 잘라 줄래? 그리고… 내가 나갔다 오는 동안 넌 중요한 일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하명하십시오!”

대교는 내 ‘중요한 일’이라는 말에 정색을 하고 포권했다. 그러나…….

“짐 날라!”

“예?”

“내 처소에 있는 짐들 중에서 마천구(魔天球)가 든 상자 하나는 이 앞으로 가져다 놓고, 나머지는 모두 비상 통로의 입구로 가져다 놔.”

“아, 옛.”

“대교. 너도 전에 본 마천구는 물론이고, 다른 것들도 매우 강력하고 위험한 물건들이야. 운반에 극히 주의하도록 해.”

“존명!”

중요한 일이라는 게 고작 짐 나르는 거냐고 다소 허무한 기색이던 대교가 내 말에 다시 바짝 긴장하여 명령을 받들고는 총총히 멀어져 갔다. 나는 K-2를 어깨에 매고 바깥쪽으로 몇 걸음을 떼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음… 군기 잡아서 명령에 잘 따르게 한 거라던가, 지금은 엄밀히 말해 전시(戰時)이므로 작전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여군이자 유일한 부하 병력인 대교에게 작업시킨 것이 그리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좀… 음… 이러다가 대교 눈밖에 나면… 아니 벌써 났을까…? 으… 안돼! 정신 차리자, 진유준!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임마! 전시에 지휘관이 엄한데 정신 팔면 모두 전멸이야, 전멸!

뭐, 전멸이라고 해봐야 현재는 나와 대교 달랑 두 명이긴 하지만… 하여간 나는 다시 정신차리자는 마인드 콘트롤을 열심히 해 가며 열네 개의 진을 통과해 나갔다.

“…앞으로 한 시진! 한 시진! 명심하시오, 비연대장 -!”

마지막 진쯤 오니까 낯익은 음성이 확실하게 들려오는군.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나간다!”

나는 그렇게 외치며 천천히 진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진에서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던 중년의 장한이 한 단계 더 안색을 굳히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 당신은……?”

뭐~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일단 시작은 점잖게 해 볼까?

“오… 아니, 처음 뵙겠소. 내가 바로 하사(下士) 진유준이요.”

“여, 역시… 당신이 진곡주님과 형제의 연을 맺었다는 그…….”

흠… 마극파천대(魔極破天隊) 대주(隊主). 뇌제(雷帝) 단목상. 마극파천대라는 가공할 전투력의 부대를 이끄는 무시무시한 남자가 내게 저런 기죽은 표정이라…? 흐흐… 극악이었을 때 잔뜩 해 놓은 뻥튀기의 효과로군. 물론 삐긋하면 X되는 거지만, 이 인간하고는 길게 접할 일도 없으니 지금 정체가 뽀록 날 일은 없겠지, 뭐.

“본인은… 마극파천대를 맡고 있는 단목상이라 하오. 진대협의 말씀은 늘 접했으나, 오늘에야 직접 뵈니 영광이외다.”

흠… 극악이로 1년 넘게 낯을 익힌 인물의 ‘하오체’ 인사를 들으니 웬지 기분이 묘하군. 뭐, 계급 강등(?) 되었으니 당연한 거지만서도…….

“곡주님의 불행한 소식은 이미 접하셨을 터…! 진대협의 비통한 심정은 우리 비화곡 전체에 드리운…….”

“됐소!”

뻔한 형식적 인사말을 퉁명스럽게 끊은 나는 단목상의 뒤쪽, 와룡전 주변을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는 마극파천대 병력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쳇…! 일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저 단목상과 마극파천대라면 꽤 충성스러운 존재들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랬던 자들과 이젠 ‘적’이 되어 재회를 했다고 생각하니 꽤나 기분 더럽군.

“진대협…! 본인이 무어 실례라도……?”

슬며시 탐색의 눈빛을 번득이기 시작한 단목상을 나는 잠시 말없이 마주 노려보았다. 하긴… 소위 ‘오림비 사건’ 때 내당(內堂) 당주(堂主) 우기내와 함께 뇌각(雷脚) 김성동이라는 경공 천재를 물 먹일 때부터 이 인간이 좀 짜증나기는 했었다. 여기서 비화곡 내의 파벌 계보(?)를 다시 짚어 보면… 단목상, 이 인간과 우기내가 싸고 돌던 ‘연기자(沿奇者) 미우노’란 싸가지 없는 놈은 아홉 장로들 중 북두살성(北斗殺星) 마오천 장로의 제자이다. 그리고 그 마오천 장로는 대천마 파(大天魔派)의 이 인자 격인 인물인 것이다. 본래 그 쪽 파벌이니 새삼 배신이랄 것도 없으려나…? 그래도 역시 무지 불쾌할 수밖에 없는 내가 계속 말도 없이 차갑게 노려보고만 있자니까 단목상은 슬며시 시선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허, 험~! 흠…! 진대협. 어째서 진대협을 깨우러 간 비연대의 수장은 나오지를 않고 있는지… 물어도 되겠소……?”

“그녀는 이미 죽었소.”

“예? 그, 그게 정말이오?”

경악하는 단목상의 발 밑으로 나는 대교의 머리카락으로 묶인 서찰을 던졌다.

“모시는 곡주이기 이전에… 사랑하는 남자의 뒤를 따르겠다는 여자를 난 들 어찌 말리겠나.”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나에 비해 단목상은 지하고 별 관계도 없는 대교의 죽음에 지나치게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훗-! 역시 대천마에게 대교를 꼭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고 온 모양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던져 준 발 밑의 서찰을 주우려 몸을 숙였던 단목상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이미 화섭자의 불을 생사금마도결 비급에 붙이고 있었다. 후훗~! 애초에 가장 바싹 잘 마른 종이를 골라 쓴 거라 그런지 슬쩍 불이 옮겨 붙자 순식간에 활활 잘도 타오른다. 에구, 여차하면 홀랑 다 타겠다. 얼른 단목상과 나의 중간쯤에 던져 버리고오~!

“내 아우 진하운이, 쓸모 없는 무공 구결 조금 적어 놓은 거라더군. 뭐 라더라…? 생·사·금·마·도·결?”

“헉~!”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목상은 외마디 비명 같은 신음성과 함께 허겁지겁 불타는 비급에 달려들었다. 그가 평소의 카리스마고 나발이고 다 잊은 채 서둘러 불을 끄느라 오도 방정을 떠는 동안 나는 슬쩍 몇 걸음을 물러섰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곡주님의 비급을… 비급을……”

한 4분의 1 정도나 남았을까 싶은 비급을 손에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단목상은 어느 순간, 번뜩 자신을 되찾는 것 같았다. 다른 마극파천대들은 이미 스탠바이 상태에서 짱의 명령을 기다리는 분위기…….

그러나 단목상이 순식간에 치솟는 살기 그래프와 함께 움직임을 시작하려는 순간,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단목상의 발 밑 땅바닥이 폭발했다. 자신이 뭘 어쩐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이어 내가 손에 들고 있는 K-2, 즉 독각포에 시선이 미친 단목상은 그대로 굳어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물론… 다른 마극파천대들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버벅댔던 모습이 사라지니까 과연 손꼽히는 조폭 행동 대원들과 그 대빵다운 분위기가 나오는 것 같았지만… 흥~! 그래봤자, 조폭은 무장 군바리에게 안 되지, 암.

“진… 대협…! 대체 무슨 짓이오. 곡주님이 남기신 비급을 불태우지를 않나… 곡주님의 신병기로 본인을 위협하질… 않나! 아무리 돌아가신 곡주님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라고는 하나, 작금의 모든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소이다.”

“…단대주. 그대나 또 누구든 날 용납하거나 말거나… 난 상관하지 않소. 난 이대로 다시 돌아가 그대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그게 무슨 뜻이오. 당신은, 당신은… 곡주님의 죽음을 모른 채 하겠단 말이오?”

이쒸… 웬만하면 적당히 끝내고 가려 했더니만…….

“단대주… 닥쳐 줄래?”

나는 나도 모르게 극악일 때처럼 비틀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 주인도 지키지 못한 개들이 아무에게나 짖어 대지마! 아니, 지킬… 마음이나 제대로 있었을까…? 난 말야, 너희들 모두… 아무도 안 믿어. 내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올지, 아니면 이대로 영원히 사라져 버릴지… 나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하지만… 너희들은 앞으로 다시는 날 만나지 않게 되길 비는 것이 좋을 거야.”

“무, 무슨…….”

“닥치고, 내 말 잘 들어!”

나는 단목상은 물론이고 이 자리의 모든 마극파천대 병력을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 내 뒤를 쫓는 자들은… 확실하게, 죽는다! 나… 분명히 경고했다!”

나는 대천마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망연자실한 단목상을 뒤로 한 채 다시 와룡전 안으로 돌아와 버렸다.

으으~ 제기! 본래는 기왕 하는 거, 명색이 신비인답게 뭔가 분위기 있는 말빨로 분위기를 주도하다가 말끔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었다. 근데, 저 단목상이란 인간이 계속 지가 아직도 극악일 때의 나에게 충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바람에 그만 빡 돌아서… 끄응… 어째 신비인이 아니라 신발인… 내지는 깽판인의 모습만 보이고 온 것 같다. 에이, 뭐… 할 수 없지. 그래도 대충 대천마에게 전달될 메시지는 성립이 된 것 같고… 난 내가 마극파천대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한 말이나 현실화해야겠다.

나는 대교가 내 명령대로 먼저 가져다 놓은 수류탄 박스를 열었다. 그리고 수류탄과 어제 미리 넣어 둔 부비트랩 장비를 꺼냈다. 부비트랩 장비라고 해봐야 이번에 쓰는 건, 우리 시대의 피아노 선을 대신한 천잠사(天蠶絲)와 그게 여러 각도로 방향 전환하면서도 저항 없이 이어질 수 있게 하는데 필요한 핀 몇 개뿐이겠지만… 난 그걸 이용해서 진이 끝나는 지점에 수류탄을 여섯 개나 설치했다.

우리 시대에서야 보통 적이 직접 피아노 선을 건드려야 작동이 되는 식이지만, 내가 몽몽의 도움을 받아 가며 설치한 건 진을 이룬 한 곳이 무너지면 작동되는 구조였다.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 여섯 개의 수류탄이 작열하면… 으… 끔찍하군. 치이… 몽몽의 계산에 의하면 최소 이 정도 화력은 있어야 이 쓸데없이 튼튼한 출구를 막을 수가 있다니 어쩔 수 없지만… 마극파천대, 아니 마극파천대를 포함한 모든 대천마의 부하 여러분들… 나 진유준, 분명히 경고했어. 웬만하면 오지 말라구… 제발……!

나는 그 전에 원판의 진법이 영원히 깨지지 않길 빌며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대교와 함께 이 와룡전을 탈출하는 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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