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19-1화 : 급청객(急請客) OR 불청객(不請客).(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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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19-1화 : 급청객(急請客) OR 불청객(不請客).(1)


3-4. 급청객(急請客) OR 불청객(不請客).(1)

여러모로 고맙고 인상 좋았던 천우신…! 웬지 아쉬웠던 헤어짐이 있고 불과 하루 만에 뜬금 없이 다시 나타난 그는, 어쩐지 전과 달리 긴장으로 굳어진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말을 꺼낸 그의 입에서는 곧 정말로 중요한 정보가 흘러나왔다.
어제 우리와 헤어진 후 그는 이곳으로부터 하루 정도의 거리(기준이 좀 모호했다.)에 있는 가령산이란 곳을 지나다 우연히 스쳐 지나갔던 대규모 병력의 행색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발걸음(말 걸음?)을 돌렸다 고 한다. 아주 오래 전에 목격했던 비화곡의 폭풍당(暴風堂)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밤새 지름길로 말을 달려 되돌아오다 보니 그 폭풍당 병력들이 오늘 동틀 무렵에는 우리도 어제 거쳐왔던 상암촌 부근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나?

“…그러니까… 분명히 폭풍당…이었다, 이겁니까?”

“그렇습니다. 게다가… 제가 숨어서 잠시 지켜보고 있자니까, 곧 어디선가 몇 명의 사내들이 그들을 찾아 왔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마치 시체처럼 창백한 안색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상의(上衣)의 가슴에 백골 문양이 새겨져 있더이다.”

“백골단……!”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대교가 짧게 신음했다. 백골단(白骨團)이라면… 기습을 특기로 하는 테러 전문 부대라고 할까…? 비화곡에서도 그리 자주 동원하지는 않지만 엄청 신출귀몰하고 잔인한 킬러 조직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부대 성립 초기부터 대천마의 입김이 듬뿍 들어간 부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저는 그 후 곧 자리를 빠져 나왔기에 그 외에 또 다른 자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여러 분들을 찾고 있었던 시간이라면 그 자들 모두 이 고룡포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흠… 그보다, 실례지만 천공자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우리의 족적을 찾을 수 있었던 겁니까?”

“아, 그건 말입니다.”

‘요 녀석의 덕입니다.’라고 말하며 천우신은 자신의 상의를 살짝 들추어 보였고, 그러자 그의 품안에서 작고 귀여운 ‘족제비’ 한 마리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음… 어제까지 함께 여행을 하며 천우신이 저 놈에게 먹이 주는 걸 몇 번 본 일은 있지만 단순히 애완 동물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아~ 설마 그 것이 귀종모(鬼毛)…였던 것입니까?”

대교가 새삼 신기한 짐승을 발견한 듯 감탄하며 묻자 천우신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핫~! 귀종모는 전설에 나오는 귀물인데 어찌 제 손에 있겠습니까. 다만 이 놈은 국경에서 근무하시는 친척 어른께서 화약 밀반출을 단속하기 위해 특별히 훈련을 시킨 놈인데… 제가 호기심에 졸라서 하나 얻었던 것이지요.”

[ 식육목(食肉目) 족제비 과의 흰 족제비(least weasel)입니다. 일반적으로 영장류와 박쥐류, 고래류를 제외한 포유류는 후각동물(osmatic animals, 嗅覺動物)이나, 해당 동물의 정확한 후각 사용 가능 범위는 단순 스캔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 시대에서 귀종모라 불리는 동물은 만리 밖의 냄새도 추적 가능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단지 전설일 뿐 지구상에 실존하는 동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

몽몽표 백과 사전의 정보 중에서, 무식한 난 오히려 앞부분… 족제비가 무슨 과인지 하는 건 몰랐었지만 귀종모라면 확실히 전에 비화곡에서 심심풀이로 본 책에 나와 있었다. 뭐… 저게 그 귀종모의 후예인지 어쩐지 몰라도… 여하간 저 놈을 이용해서 내 화약 무기들의 냄새를 쫓아왔다는 얘기다. 음… 웬지 좀 불쾌한 기분이…….

“천공자께서는 이미 저희들을 많이 도와주셨는데, 계속 이렇게 자기 일처럼 신경을 써 주시니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비로소 대교가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천신우는 처음의 긴장도는 어따 팔아먹었는지 연신 싱글거리기 바빴다. 이 인간… 갔을 땐 섭섭하더니 막상 또 보니까 뭔가… 좀 꼽군.

“…적의 추적은 이미 예상했던 바…! 천공자의 정보로 확신이 섰으니 저희들의 작전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일단 나도 그렇게 인사를 하고 대교에게 잠깐 따로 얘기하자는 눈치를 보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알려 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 근데 이 인간이 왜 자꾸 끼어 드는 거야, 응?… 라고 할 수는 없어 나는 다시 천우신의 얘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제기…..

얼마 후.
나는 그제야 대교 자매들과 천응, 그리고 혈랑대 백인장 네 명과 작전 회의를 할 수 있었다. 우선 발언권을 요청한 건 대교였다.

“천공자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미 비화곡 병력들이 이 고룡포를 포위하고 있어야 마땅할 텐데… 후방에 보낸 감시자들에게서는 그런 보고가 없으니 어찌 된 걸까요? 암습 전문인 백골단은 어떨지 몰라도 폭풍당이 우리 혈랑대의 이목을 속이고 그 많은 병력이 침투해 올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대교의 말에 혈랑대 백인장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세웠고, 이어 천응은 자신의 매들을 더 멀리 보내 보겠다고 나섰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내가 고개를 젖자 모두의 시선이 일시에 내게 집중되었다. 음… 이제 시작인가? 자아~ 힘내자, 진유준.

“천응은 지금까지처럼 사갈의 잔당들 감시에나 집중해. 어차피… 폭풍당은 바로 고룡포로 오지는 않을 거야. 앞으로 비화곡 내외에 왜인들을 비화곡주 살해의 범인으로 지목하려면 낙룡파에서 직접 사건을 목격한 너희들이 그들을 추적해 복수하는… 그런 상황이 알려지는 것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테니까 말야. 물론 싸움이 끝난 직후에 남아 있는 우리를 습격하는 것이 훨씬 쉽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역시 왜인들과 함께 동귀어진 한 것으로 처리하고 싶은 걸 거야. 우리가 직접 곡주의 복수를 하고 싶어 비화곡에 자신들의 행적을 알리지도 않고 적을 추적한 것으로 처리할지, 아니면 책임 추궁을 면하기 위한 몸부림 정도로 치부할지… 그건 모르겠지만, 여하간 ‘범인과 목격자의 동귀어진’…! 그 것으로 ‘비화곡 내부의 반역자’가 언급될 여지도 없이 모든 것이 정리가 되는 거야.”

흠… 다행히 다들 긍정하는 표정들이로군.

“진대가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제야 모든 것이 확실해지는군요. 우리가 왜인들을 추적하기 쉽게 누군가가 지금까지 왜인들의 발목을 잡아 놓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 아, 그렇다면 백골단이 바로 그 일을 위해 우리보다도 먼저 이 고룡포에 암약해 있었겠군요.”

“그렇겠지. 그건… 백골단이 현재 비화곡 내에서 가장 뚜렷한 반역 단체라는 얘기이기도 하고… 이번 싸움의 사후 목격자 역할 밖에는 못할 폭풍당 같은 경우는 최소한 대천마 파는 아니라는 반증이 되겠지. 게다가…….”

나는 폭풍당 당주 상관마를 떠올리며 다소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말았다.

“상관마 당주… 그 사람과 부하들이라면 상황에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알아채지 못할 거야.”

“그…렇군요. 상관마 당주님은 그 뛰어난 무용에 비해 지나치게 담백한 성품이니…….”

단순 무식이라는 말을 애써 미화하느라 그런지 대교도 꽤나 어색한 표정이었다. 음… 근데 이 와중에 혈랑대들은 왜 저렇게 인상을 긁기 시작하는 거지……?

“진대가와 대교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너무 원통합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의 행보가 모두 그 찢어 죽일 놈들의 농간에 유도되고 있었다는 건데… 그렇다면 당장 그 것들을 먼저…….”

윽… 이봐, 이봐 오진우 백인장. 무서워…! 그렇다고 그런 표정으로 입술에서 피를 주르르 흘릴 것까지는… 윽…! 그 옆의 다른 백인장들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폼이 이대로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

“여러분, 진정하세요. 이 정도로 상황 파악을 해 놓으셨는데, 어찌 대책이 없으시겠습니까.”

에효~ 대교야 고맙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상황 파악도 백 프로 정확한 건 아닐지 모르지만… 에구, 더 뜸들이다간 맞아 죽겠다.

“크흠~! 음… 그래. 지금 우리가 발끈해서 백골단을 먼저 친다면 적은 아마 거꾸로 우릴 적과 결탁한 반역자로 몰 거야. 혈랑대 전체라면 몰라도 지금 병력으로는 어차피 백골단과 싸워도 승산이 없을 테고… 뭐, 그러니까. 일단은 적의 뜻대로 움직여 주자고, ‘표면적으로’는 말이야.”

절대로… 원판 급으로 보아 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무심코 씨이익~! 웃고 있었다.

“적의 음모는 얼핏 꽤 치밀하게 구성된 것 같지만… 실은 약점도 많지. 우선 추적대로 상관마 당주의 폭풍당을 선택한 것부터 그래. 우리의 반격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나는 모두에게 차근차근 내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 참이 지나 내 설명이 끝났을 때, 모든 이들은 비로소 숨김없는 감탄의 표정으로 날 흐뭇하게 했는데… 근데, 제기… 어째 정작 대교만 표정이 좀 떨떠름해 보였다.

“…진대가께서 세운 작전은 실로 절묘한 반격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허나… 저는 어쩐지 걱정이 앞섭니다.”

모두 내 작전 지시대로 움직이러 출동한 다음에야 대교는 그렇게 딴지를 걸어왔다.

“대교, 넌 무엇보다… 이번 일에 저 천공자가 너무 많이 개입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내 말에 대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가장은 곡주님의 마지막 안배… 설마 그 곳까지 대천마의 손길이 미쳤다고 생각할 수는… 하, 하지만 만의 하나…….”

“실은, 나도 천우신 공자를 믿고 있는 건 아니야.”

“…그렇다면, 대체 이번 일은…….”

훗~!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걱정에 가득한…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혼란을 내가 없애 달라고 호소하는 저 아련한 눈빛… 으오오~ 이게 얼마 만이냐, 그래.

“…진대가?”

“응? 아, 미안… 하하…! 내가 잠깐… 핫, 미안!”

에구, 엄한데서 점수 깎일 뻔했다.

“음, 그래… 저 천공자의 행동들은 긍정적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크게 의심할 만한 구석이 없겠지만… 그래도 웬지 부자연스러운 건 사실이야. 우선…….”

아무리 문무 겸비의 엘리트 공직자 가문인 천가장의 후계자라고는 해도, 몸에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무공 수위가 너무 높은데다… 명색이 그런 가문의 후계자라는 녀석이 지금까지 우리 일에 참견할 때의 언행을 보면 이 계통의 생리에 대해 상당히 빠삭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폭풍당은 그렇다 치고, 백골단의 이목을 속이고 그들을 정탐할 정도의 능력도 그렇고… 우릴 찾으려고 할 때, ‘마침’ 화약을 탐지하는 능력의 족제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그렇고… 음… 사실 애초에 처음 보는 우리에게 이 정도까지 도움을 베풀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상당히 오버이기도 하고…….

“그리고 실은…….”

내 말을 얌전히 듣고 있던 대교가 슬며시 입을 열었는데, 어째 약간 볼이 상기된 느낌이 들었다.

“…천공자가 소녀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음… 그거야, 나도 처음부터 그걸 의심하고 있었고 지금도 약간은 그런데… 훗~! 괜찮아 대교야. 공주는 공주병 걸려도 되는 거야. 그런 얘기하는데 얼굴을 붉힐 것까지는…….

“허나, 지금까지 소녀가 보기에 그런 건 아닌 듯 합니다.”

응……?

“천공자의 관심 어린 눈빛… 그건 분명히… 분명히, 진대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허걱~! 얘 지금 뭔 소릴 하는 거냐.

“외람되지만… 사내들의 관심이 어느 방향인지 알아보는 예민함은 여자들이 더 발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게 무슨 도깨비 쌈 치기, 아니 콩 까먹는, 아니, 아니… 그 뭐냐… 으~ 대교 이 녀석, 갑자기 이상한 소리로 날 패닉 상태로 만들다니…….

“아… 물론, 천공자의 관심이 꼭 남녀의 애정과 같은… 그런 종류로 보이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으… 너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거냐?

“그렇지만, 소녀도 알 수가 없네요. 어째서 천공자가 얼마 전 생전 처음 만난 진대가께 그리 깊은 관심을 가지는…….”

대교… 너 설마, 우리 아름다운 곡주님이라면 몰라도 어째서 당신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아니겠지…? 으으~ 뭐가 어찌 되었든, 대교…! 이 가발 엽녀(가끔 발상이 엽기녀) 같으니라구! 여기서 대체 왜 그런 구도가 나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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