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1화 : 극악(極惡) 마병기(魔兵器) 출현
- 극악(極惡) 마병기(魔兵器) 출현. (1)
0사로! 엎드려 쏴~! 탄알일발 장전! 준비된 사수로부터…는 필요 없겠군.
어쨌건, 확실한 어깨 견착, 적절한 호흡조정, 조준선 정렬……
꽝! …꽝! …꽝!
이런 제기… 한 방 쏠 때마다 조준선이 흐트러져서 간격이 꽤 길었다. 뭐, 아직 연발 사격할 일은 없지만 조준선이 이렇게 쉽게 흐트러진다는 자체가 좀 불쾌하다. 역시 어깨 견착이 잘 안 되는 것 같은… 아참!
0사로 사격 끝! 탄창 제거! 조준간 안전!
흠… 습관대로 하긴 했는데 다음부터는 대충 유두리 있게 순서를 줄여야겠다. 특히 이제는 사격 후 즉시 탄창 제거하는 버릇은 좀 곤란하다. 실전에서는 꼭 탄창을 다 비워야 사격이 끝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대교야, 가서 표적지 좀 가져다줄래?”
“…예?”
“훗~! 저거 좀 가져다 달라고.”
“아, 옛, 실시!”
큰 소리가 나니 조심하라고 미리 말해 주었는데도 꽤 놀랐나 보다. 멍한 얼굴로 버벅대던 대교가 허둥대며 표적지를 가지러 가는 모습이 무지 귀엽게 느껴졌다. 사실 애가 갈수록 품위만 늘고 예전의 소녀다운 귀염성을 보기 힘들어서 좀 섭섭했었다. 하긴, 이 시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사람들도 실제 총소리를 가까운 곳에서 처음 들어보면 기겁을 하기 마련이다.
소설 같은 데서 처음에 누가 총소리를 탕! 혹은 빵! 이런 귀여운 의성어로 묘사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탕! 빵! 이런 건 그저 애교 수준이랄까? 그나마 꽝!이란 표현 정도가 좀 가깝지 않을까 싶지만 그것도 역시 약하다. 직접 쏘는 사람은 자기가 뭔 소리 들었는지 인식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강렬한 폭음인데 말이다. 만화로 그린다면 글자 하나에 엄청난 강조의 효과를 넣어야 할 테고… 아, 최소 100미터 이상 떨어져서 들으면 땅! 땅! 하는 정도로 들리니까 차라리 따콩!이라는 재밌는 표현이 더 실제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곡주님. 여기……”
대교는 표적지를 내밀면서도 내 총을 흘끔거리며 애써 가까이 가지 않으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에구 귀여운… 응? 으~ 근데 이게 뭐냐! 탄착군(彈着群, 두 발 이상의 탄착점이 가까이 모여있는 것.)은 고사하고 한 발은 엄청난 좌하탄, 한 발은… 또 한 발은… 으아, 나 두 발이나 어따 팔아먹은 거지? 아아- 쪽팔려라. 30M 영점 사격에서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왕년의 저격수 진유준, 전투력 측정했다 하면 사격으로 포상 휴가 타먹던 특등 사수 진유준은 지난겨울에 얼어 죽었단 말인가?
“…대교야. 나 한 대 좀 쳐줄래?”
“예, 예? 무… 무슨 말씀을? 소녀가 어찌 감히……”
“아니, 됐다. 젠장, 이거 다시 붙여라.”
생전 처음 듣는 K-2 소총의 굉음에 어지간히 질렸는지 대교는 초기에 함께 지낼 때처럼 내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저 인간 이상해…라는 의미의 불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 첫 사격일 뿐입니다. 우선 우로 2클릭, 상 3클릭 조종해 주십시오. ]
안다, 알아 몽몽. 아무리 영점 사격이라도 표적지도 못 맞춘 건 처음이라 순간적으로 자존심이 상했던 거지만 저 사제이며 수제인 K-2 녀석의 첫 데뷔 무대이니 이해해야지. 자, 그럼 한 번 더~
꽝! 꽝! …꽝!
후우~ 어깨에 전해지는 반동의 느낌으로 보아 처음보다는 견착이 좀 제대로 된 것 같긴 한데 어디 보자… 음, 한 발 돌아왔다.
[ 표적지 좌측에 미세한 흠집과 화약 흔적이 있습니다. ]
응? 그럼 어쨌든 마지막 한 발도 맞긴 맞은 건가? 으… 그래봤자 다른 두 발과 차이가 너무 심하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어떻게 쏴도 탄착군이 형성되어 줘야 제대로 영점 조정을 하고 실 거리 사격으로 들어가던지 말던지 하지. 쳇! 자존심 상하지만 아무래도 한 번 더 영점사격을… 아니, 그 전에 PRI를 좀 더 하는 게 나으려나? 피 같은 탄환을 낭비할 수는 없잖은가. 내가 그걸 어떻게 만든 건데!
현재 군 생활 중이거나 이미 제대한 이라면 PRI라는 말만 들어도 쓴웃음이 지어지는 사람들 꽤 될 거다. 본래 뜻은 둘째치고, PRI는 피가 나고 알이 배기며 이가 갈린다는 의미로 더 확실하게 몸에 새겨져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의 이 몸은 그렇게 할 체력도 없고 나도 전 과정을 뺑이치며 할 마음은 없다.
“대교야. 내가 가져오라던 거 챙겨왔지? 바둑알 말야.”
“예, 여기 있습니다.”
대교는 허리춤에서 꺼낸 몇 개의 바둑알을 내밀면서도 내가 그걸 가지고 대체 뭔 짓을 하려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거, 나 혼자 못 써. 네가 좀 도와줘야 해.”
가까이 있는 것도 꺼림칙한데 아예 내가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옆에 다가앉아서 바둑알을 총열에 얹어 놓으라고 하니 상당히 긴장하는 눈치였다. 엄지와 검지로 바둑알을 집은 대교의 가냘픈 손이 가늘게 떨면서 엄청 천천히, 조심조심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드디어 대교가 바둑알을 총열 위에 놓는 순간 나는 결국 풀썩 웃고 말았다. 재주도 좋은 우리 대교. 방금 그녀는 둥근 총열 위에 바둑알을 세로로 세워 놓았던 것이다.
“어머! 제, 제가 무슨 실수라도?”
내가 웃은 것보다는 그 순간 들썩인 총열의 움직임에 화들짝 놀란 대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냐, 아냐……”
아니라고 하면서도 계속 쿡쿡대고 웃자 대교는 조금 샐쭉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였다. 하하! 오늘 정말 오랜만에 대교의 다양한 표정을 보는구만.
“미안해. 난 그냥 네가 재주가 너무 좋은 게 신통해서 그래.”
“이제 보니 곡주님은 소녀를 놀리고 계셨군요.”
“아니라니까, 참… 쿡,큭.”
“치이- 너무 하세요. 이런 무서운 걸 처음 봤는데 제가 어찌 침착할 수 있겠어요?”
“후후~ 이건 그래, 무섭긴 무서운 거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난 너무 놀렸나 싶어서 표정을 좀 정리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것도 결국 그냥 화포의 일종일 뿐이라고 했잖아. 내가 다루고 있을 때는 너에게 위험하게 하지 않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물론… 주의 사항은 꼭 지켜야겠지만 말야.”
대교는 내가 말해 주었던 주의 사항을 잠시 되새겨 보는 것 같더니 뭔가 결심한 듯 손을 들어 천천히 총열을 향해 내밀었다. 조금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결국 대교는 살짝 총열에 손가락을 대본 다음 이어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웃…! 으… 오랜만에 이상한 열기가 슬며시 아랫도리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뭔 생각을 하는지 살포시 미소까지 머금는 대교의 희고 가는 손가락과 검고 긴 총열이 선명하게 대비되며…
‘에구, 뭐야? 너 뭐야, 임마?’
“후훗~! 역시 지금은 괜찮네요. 곡주께서 이걸 사용하신 후 곧바로 이 부분을 만지면 뜨거우니 위험하다고 하셨었지요?”
“으응… 그, 그래.”
“이런 크기의 화포가 굉천포 같은 소리를 내며 암기를 수천 보나 날려보낸다니 소녀는 도무지……”
“아, 뭐. 그거야… 하여간, 그보다 좀 쉬었다 하자. 아니, 점심을 먹고 하지 뭐.”
나는 급히 총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했고, 대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시락 박스 쪽으로 걸어갔다.
사격장으로 오는 길을 지키는 자들은 있어도, 안쪽에는 대교만 있게 했기 때문에 그녀가 혼자서 점심 준비를 하게 된 모습을 보며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제에-기랄. 원판극악형 변태증후군이 재발했나 보다. 그동안 대교에게는 완전히 음흉한 마음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하게도 총열 쓰다듬는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맛이 가다니… 에잇, 진유준! 정신차렷! 이 따위 정신으론 총이 거꾸로 나가겠다.’
간만에 부활 발작한 원판의 XX 때문에 혼자서 조금 민망했지만 얼른 수습하며, 나는 애써 내 총(K-2를 가리키는 은어 아님)을 이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것으로 생각을 돌렸다.
‘일단 여기 사람들도 아무리 사전지식 없이 사격 장면을 목격한다 해도 총에다 대고 무슨 천둥신이니 어쩌고 하면서 절을 해대는 따위의 반응은 없을 것 같았다. 공룡시대 원시인 수준도 아니고, 이미 화약을 이용한 병기가 사용되는 시대이므로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교처럼 처음엔 좀 놀랄지 몰라도 금방 이 것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낯설고 위험해 보이지만 결코 손댈 수 없는 존재가 아닌, 사람이 다루는 ‘물건’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아무도 이걸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편이 좋으니 그 인식을 조금 조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모로 연구 중인데 아직은 확실한 작전이 세워지지 못한 상태이다.
‘그냥 ‘무시무시한 무기’라는 것만 가지고는 원천적으로 접근을 막을 수는 없고 오히려 탐내는 자만 더 줄을 설 위험이 있다. 전설적인 보검이 세상에 나오면 강호인들이 미쳐 날뛰며 탐내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전설적인 보검에 대한 강호인들의 인식을 생각하면 방향이 정해져 있긴 하다.’
“대교야, 너도 한 번 저거 쏴 보고 싶지 않니?”
만두 하나를 입에 넣으려던 참이던 대교에게 그렇게 물어 보았다.
“그건… 알겠습니다. 곡주님께서 지도해 주신다면 한 번 해보겠습니다.”
“아니, 해보라는 게 아니라… 미안하지만 저건 주인을 가리는 신병이거든. 나 외에 누구든 함부로 다루려고 하면 위험하다는 말을 하려는 거야.”
“아, 신병이기는 주인을 가린다고 하더니 역시 그렇군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납득하는 표정의 대교.
‘…그래, 바로 이거다. 물건을 신으로 착각하지는 않아도 신(혹은 귀신)이 씌인다는 개념은 있고, 특히 강호인들은 신병이기라고 분류되는 품목에 대한 믿음이 상당하다. 그러니 저 K-2와 다른 것들까지 모두 신병이기, 아니 죽음을 부르는 공포의 마병기로 소문을 퍼트릴 계획인 것이다.’
근데 문제는 어떻게 그런 소문을 믿게 하느냐는 점이다.
대교나 그 밑의 자매들이야 내가 그냥 그렇다고 말만 하면 모두 그렇게 믿고 따를 무한충성소녀군단이지만, 다른 자들, 특히 어떤 식으로든 만날지 모를 비화곡 이외의 인간들에게까지 확실히 인식시키려면 뭔가 추가적인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 없을 때 저걸 만지다가 화끈하게 한 번 망가지는 꼴을 많은 사람들에게 목격시키는 방법 말이다.
‘근데… 어떻게? 저 것들이 몽몽이 아닌 이상, K-2가 ‘접근하면 발포한다’고 지껄이거나 수류탄이 나 건드리면 재미없다고 하면서 지 손으로 안전핀 뽑아 댈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음… 전략은 대충 잡혔는데 전술에서 좀 막히는군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