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6-2화 : 극악군발(極惡 ) 진유준과 금모신원(金毛神
猿) 금동이.(2)
4-2. 극악군발(極惡) 진유준과 금모신원(金毛神猿) 금동이.(2)
금동이도 처음부터 자기 눈앞에서 고약한 살기를 뿜어 대고 있던 인간들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던지, 전투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크아아아~ 포효했다. 원숭이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는 녀석이 기세만은 킹콩 급이었으니 당근, 비적들은 어이없다는 듯 김빠진 소리와 함께 비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 중 두목으로 보이는 놈이 웃음 끝에 살기 띤 표정으로 뿌드득 이를 갈았다.
“…저 미친놈들이 우릴 바보 취급하는 구나! 모두 죽……”
두목의 명령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 순간 자신의 눈앞이 황금빛으로 물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쫙~!하는 소리와 함께 두목의 고개가 옆으로 패액 도는 광경이었다. 금동이에게 선빵을 맞은 두목이 스르르 주저앉는, 그리 길지 않은 틈에 이미 금동이는 다른 비적들 사이를 날으며 연속으로 공포의 따귀를 갈겨대기 시작했다. 어리버리 비적들이 어? 어? 하는 사이… 그러니까 잘해야 10초 전후 한 시간에 휘릭! 사삭-! 쫙! 짝! 짝! 쫘~악! 하는 효과음과 함께 상당수의 비적들이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고 있었다. 비적들은 뒤늦게 각자의 무기를 맹렬하게 휘두르기 시작했지만 그게 금동이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금동이가 맘먹고 움직일 때의 순간 스피드는 우리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이니 말이다.
천우신이 피식 웃으며 날 돌아보았다.
“피하는 건 그렇다 치고, 저 타격 법… 자네가 가르쳤지?”
“으음… 본래는 턱 끝을 비스듬히 쳐서 기절시키는 걸 가르치려 했던 건데……”
“뭐, 저 정도 만해도 충분할 거로 보이네.”
그건 그랬다. 내가 쬐금 한가할 때마다 금동이에게 무술 비슷한 걸 훈련시켰던 이유는 사람들을 해치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게 하는 거였으니 기술적으로 의식을 잃게 하나 무식하게 졸도시키나 그게 그거 기는 하다. 어쨌건,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작은 괴물의 위력에 놀란 비적들은 일제히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론 이제와 도주하는 것도 그리 용이할 리는 없었다. 도망을 치려고 몸을 돌린 비적들 앞으로 뭔가 이상하고도 강력한 물체가 회전하며 폭풍처럼 지나갔으며, 그 직후 앞에 있던 커다란 나무들이 허리를 꺽고 쿠쿵 쓰러지며 길을 막았던 것이다. 도망치려다가 시끕하여(놀라서?) 멈춰선 비적들은 자신들 목보다 훨씬 굵은 그 나무들을 일거에 휩쓸어버린 무언가… 부메랑처럼 맹렬히 회전하는 병기가 허공을 날아서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오는 것을 목격하고 동작 그만 상태가 되어 버렸다.
“도망치면. 주~우거!”
내 친절한 멘트에 질린 비적들의 대다수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이로써 퇴로까지 막힌 비적들은 금동이에 의해 차례차례 정리되었고, 잘해야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는 이미 금동이의 첫 데뷔 전투가 끝나있었다.
“뭐, 뭐 이런… 이런 괴물이……”
가장 먼저 당해서 쓰러져있던 비적 두목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혈도를 잡아 다시 주저앉혔다.
그로부터 서너 시간이 더 지난 후… 오가촌이라는 조용한 마을에 진귀한 구경거리 하나가 탄생했다. 감독 : 극악군발 진유준 조감독 : 천우신. 주연 : 금모신원 금동이. 조연 : 오가촌과 여타 지역 사이에서 악명 높던 비적들 일동. 대충 위와 같은 구성의 공연 명은… ‘터프가이들의 스트립워킹 쇼. 쌍방울 브라더스’ 제목이 좀 유치한가…? 여하간 처음에는 마을 주민들이 비적들을 알아보고 모두 숨어버리는 바람에 조금 시시해 질 뻔도 했었다. 그러나 그 무서운 비적들이 홀랑 벗겨진 채 줄줄이 묶여 마차에 끌려오고 있는 모습이 아무래도 신기했는지 하나 둘씩 다시 구경꾼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누군가가 비적들의 가슴팍에 쓰여진 글을 큰 소리로 읽어댔다.
“우리는 비열한 비적입니다. 오늘 원숭이에게 매맞고 잡혔습니다아-?”
웅성대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금동이에게 향하자 금동이 녀석은 반갑게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여유까지 보였다. 막상 많은 주목을 받자 조금 벌쭘한 기분이 된 나와 달리 녀석은 아무래도 무대 체질인 것 같다. 뭐… 결과적으로 흥행(?)은 대박이었다. 근데… 예나 지금이나 손으로 얼굴 가리는 척하면서 손가락 사이로 볼 거 다 보는 저 여자들은 뭐야……?
얼마 후, 우리는 별일 없었다는 듯 마을을 떠나 본래의 여정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하~ 저 정도로 망신을 당했으니 나중에라도 이 지역에서는 결코 비적질을 못하겠군 그래.”
마을 사람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바친(?) 먹거리를 우물거리고 있는 금동이는 그렇다 치고, 천우신은 어째 나보다 더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나야 뭐 재미보다도…….
“아참, 유준 자네 아까 그 비적들 소굴에서 뭔가 챙기는 것 같던데?”
“그냥 여비로 쓸 현금 조금 가져왔을 뿐이야.”
“후후… 이 친구, 진주를 미리 현금으로 바꾸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군.”
그렇다. 어린 시절 뽑기 사먹으러 가다가 내 두 배쯤 되는 양아치들에게 몇 백원 삥 뜯겼던 경험을 절천지 한으로 간직하고 있던 나는 언젠가 한 번은 삥 뜯으러 온 놈들을 내가 되려 삥 뜯고 보너스로 개망신도 왕창 시키고 싶었었다. 한 번 당한 일은 좀처럼 잊지 않는 내 상큼한 성품에 엄한 시대의 비적들이 희생된 셈이었지만, 솔직히… 내게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한 일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비화곡 대빵도 아닌 관계로 이 험한 강호를 싸돌아다니며 자급자족해야만 한다. 진주가 꽤 많다고 해서 며칠동안 과소비를 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연옥도의 기념품이기도 하니 앞으로는 가급적 쓰지 않고 비상금 화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며칠 후 대교들과 합류하더라도 걔들이나 진하연에게 용돈 달라 고 하기는 뭐한 노릇이겠고, 안 그래도 무료 봉사 중인 천우신에게 손벌리는 건 더욱 안될 말이고… 그런 이유로 나와 금동이의 이런 아르바이트는 가끔, 그러나 계속될 예정이다.
그건 그렇고… 조금 전의 마을에서 나는 그 마을 촌장을 통해 잠시 잊고 있던 이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었다. 본래는 해적 킬러로 이름을 날리던 녀석들이 요즘 들어 활동 영역을 넓혀서 산적들(비적이란 용어는 보통 육해 공용으로 쓰임.)까지 토벌하러 다니며 더 명성을 떨치게 되었는지, 촌장은 처음 우리를 그 녀석들… ‘독수리 오 남매’의 멤버가 아닌가 생각했었던 모양이었다.
“우신,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생각났네.”
“뭐든 말씀하시게나, 공짜 고객.”
“크흠, 흠… 거 뭐 그런 걸 강조하고 그래. 하여간… 남해오신룡(南海五神龍)의 소재를 좀 알았으면 하네.”
천우신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녀석들을 다시 떠올리며 조금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원판이 꽤 오래 전부터 키워온 비밀병기 독수리 오 남매…! 정식 명칭 남해오신룡은 분명 대천마의 세력에 비해 여실히 딸리는 우리 측에 상당한 전력이 될 수 있는 병력이었다. 뭐… 대천마와의 일전이 시작되어 원판 살해의 범인이 대천마라는 것이 밝혀지면 내가 뭘 어쩔 것도 없이 남해오신룡 스스로 날아올 가능성이 99.9%는 될 것이다. 헤어진 후 벌써 2년 정도가 흘렀으니 왕땅인 ‘협룡(俠龍) 정권’과 투땅인 ‘미룡(美龍) 일지’… 그리고 넘버 쓰리와 넷째인 ‘교룡(蛟龍) 대오’, ‘철룡(鐵龍) 사성’ 모두가 이제는 보이스카웃도 아니다. 문제는… 항상 그 네 명의 언니 오빠들과 세트로 움직이는 막내 ‘독각소아룡(毒角小兒龍) 종소’, 그 녀석이었 다. 나는 새삼 그 작고 수줍음 많은 아이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 어린것까지 전쟁에 끼어들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디 맡겨 놓을 사람 없을까나?”
“갑자기 무슨 소린가, 친구.”
“아니… 혹시 어린 소녀 한 명 정도 맡아 줄 사람이 없을까 해서 말이야. 중원에서 아무리 대규모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안심하고 맡게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나 장소를 추천해 주면 좋겠네.”
내 말에 천우신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열심히 생각해보더니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당장에 떠오른 인물은 두 명일세. 두 명 다 천하제일에 가까운 인물들이고 그들의 배경도 그에 못지 않아. 다만… 두 명 다 지금 당장은 누군가를 보호해 줄 형편이 못될 것 같군.”
“그게… 추천이야?”
“아니 내 말은… 음… 두 명 다 확실히 지금은 곤란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역시 그 두 사람이 가장 적임자라는 말이야.”
“…대체 어떤 사람들인데 그래?”
“말할 수 없네.”
“…현재 천이단의 고객이란 말이지? 그래도 말을 꺼냈다는 건, 곧 의뢰를 해결할 예정이라는 거고… 알겠어. 나중에 다시 듣기로 하지.”
내 넘겨짚기에 천우신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틀린 부분도 있지만… 대충은 맞아. 그런데… 자네가 보호하고 싶은 소녀가 혹시 독각소아룡이 아닌가?”
쳇, 역시 눈치 하나는 빨라 좋군.
“…맞아. 아무리 우리 전력이 모자란다 해도 그런 어린애까지 싸우게 하고 싶진 않아서 그래.”
“훗-! 천하의 남해오신룡 중의 일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아가씨를 단지 어린애로만 여기다니… 아무튼 알겠네. 설혹 이 번 일이 잘못되어도 꼭 다른 적임자를 알아봐 주겠네.”
천우신의 장담에 나는 짐 한 가지를 내려놓은 기분이 들 수 있었다. 근데… 종소의 유모인지 유부(?)인지 후보 두 사람은 대체 누굴까…? 천우신의 말투로 보아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인 것 같고 아무래도 정파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천하제일에 가까운 능력과 배경…? 설마 계집아이인 종소를 소림사에 맡기자는 얘긴 아닐 테고…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문파는 점창파(點蒼派)… 근데 거길 천하 제일로 꼽긴 그렇고, 특정 장소에 모여 있진 않지만 소림사에도 비견될 정도의 문파는 개방( 幇)…? 헉, 설마 종소를 앵벌이 시키자는 건 아니겠지? 으음- 제기, 또 엄한 상상을 하고 말았다. 진유준, 이 걱정을 사서 하는 걱정돌이 같으니……
대교 생각하다가… 암 생각없이 경치 구경하다가… 대천마 상대할 작전 생각해보다가… 암 생각없이 경치 구경하다가… 대교 생각하다가… 암 생각없이 밥 먹다가… 작전 점검해 보다가… 금동이하고 놀다가… 뭐, 그렇게 그럭저럭 며칠 분의 시간이 흘러갔을 때, 우리는 마침내 목적지인 신야성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이제 곧 대교와 재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치 여름 감기라도 걸린 듯 은근한 열기와 함께 붕-뜬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여태 잘 타고 온 마차의 속도가 달팽이 기어가는 것처럼 갑갑할 정도였다. 천우신도 소령이에 대한 그리움은 마찬가지여서 오늘따라 평소보다 말채찍을 자주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신야성의 입구가 떠억하니 눈앞에 나타나자 그는 갑자기 마차를 멈추었다. 잠시 들뜬 기분을 억누르는 한편 전열을 가다듬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둘은 사실 그녀들과의 재회를 암 생각없이 기뻐하기만은 어려운… 비운의 짝사랑 군단(?)이다. 오는 동안 천우신은 숨겨왔던 소령이와의 사연을 고백했었는데, 알고 보니 녀석 또한 나와 거의 비슷한 처지였다. 내 입장에서는 천우신의 과거 사연이야 새발의 피 수준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여간 우리는 둘 다 거의 새로 작업 들어가야 하는 처지였고 거기다가 ‘원판’이라는 초강력 공동의 적을 둔 동지이기도 했다. 그런 데… 생각해보니 천우신 같은 경우는 엄청 좋은 기회가 이미 주어져 있었다. 소령이는 현재 자신의 시험을 통과하는 자에게 자신을 맡기겠다고 나선 상태… 그러니 이때 실력으로 차지하면 된다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던 것이다.
“나도 최대한 협조할 테니, 힘내게 친구.”
“…고맙네. 일이 어찌되든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네.”
천우신은 내 우정에 어느 정도 감격해 주고 있었지만, 사실 나도 순수한 우정만으로 이번 결전(?)을 생각해낸 것은 아니었다. 대교에게 원판과는 다른 나라는 놈을… 기왕이면 ‘원판을 위한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포부를 안고 천천히 풍운의 (?) 신야성, 아니 그 안의 교아루를 향해 마차를 몰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