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7-1화 : 교아 자매 쟁탈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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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27-1화 : 교아 자매 쟁탈전.(1)


4-3. 교아 자매 쟁탈전.(1)

우리가 도착한 신야성은 삼국지에서 유비가 야망을 펼치기 시작하는 장소로 유명한 그 신야성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했다. 뭐, 역사적으로는 짝퉁인지 몰라도 이 신야성도 인접 성들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여 상업이 꽤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내가 들렀던 어떤 마을이나 도시보다도 사람이 많고 활기에 찬 성이었다. 당근 볼거리도 많고 먹거리, 즐길 거리 등도 산더미 같은 동네였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런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기에 일찌감치 적당한 객잔을 찾아 여장을 풀었다.

교아루로 가기 전에 굳이 엄한 장소에 숙소를 정한 건 복장이나 인피면구(人皮面具) 상태를 좀 점검해보고 또 내 정글도를 짱 박아 놀 장소도 필요해서였다. 그다음 손목에 있던 몽몽을 옷 안쪽의 겨드랑이 가까이 올려붙여 보이지 않게 하면 더 이상 자매들이 날 알아볼 요소는 없을 것 같았다.

[ 주인님. 냄새나요. 목욕 좀 하세요. ]

“이쒸-! 내가 뭔 냄새가 난다고 그래? 아니 그보다 넌 냄새도 못 맡는 놈이 왜 시비냐, 시비가.”

[ 기분 상 그렇다는 거죠, 뭐. 연옥도에서는 그래도 자주 씻으시더니 최근엔 거의…… ]

으~ 이 요정몽 녀석. 최근 얼마간은 별로 상대를 안 해 줬더니 뜬금없이 시비를 걸어오는 군.

“왜 그러나, 유준. 자네 인피면구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아냐. 그냥… 혼잣말을 했을 뿐이네. 별 문제 없으니 조금 있다가 출발하세.”

내가 적당히 대꾸하자 천우신은 알겠다고 하고는 다시 자기 찻잔을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훗! 방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네 잔씩이나 마시는 걸 보니 어지간히 긴장으로 목이 타는 모양이다.

[ 신체의 긴장도로 보아, 지금의 천우신은 생전 처음 소개팅에 나가게 된 사춘기 소년, 혹은 99번 입사 시험에 떨어진 후 100번째 면접을 앞에 둔 취업 재수생 정도의 심리 상태인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흠, 그에 비해 주인님은 꽤 여유 있는 편이네요? ]

“너어~ 음……”

무심결에 또 입을 열었지만, 사실 지금의 난 몽몽에게도 전음을 보낼 수 있다.

< 너, 자꾸 까불면 내 바지 속에다 장착하는 수가 있어. >

[ 으아~ 주인님, 변태! 저질! ]

젠장. 뭔 놈의 인공지능이 원숭이인 금동이보다도 다루기 어려워져 가는지 모르겠다.

< 흠. 여하간… 지금은 좀 얌전히 있어. 오늘은 네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많을 테니, 너도 심심하지는 않을 거야. >

[ 웅~ 알겠어요. 그리고… 역시 주인님은 올백이 더 잘 어울려요. ]

< 으이구, 알겠다 알겠어. >

난 부활한 이후 원 없이 길러서(실은 이발하기가 여의치 않아서.) 완전 장발족이 된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끈으로 묶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가세 친구.”

신야성이 교통의 요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동북쪽에 흐르는 경하(庚河)라는 강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경하를 낀 목 좋은 평지에 자리한… 척 보기에도 매우 운치 있으면서도 아름답게 꾸며진 건물이 바로 이 지역 최고의 기루라는 교아루였다. 규모도 비화곡 본단의 내 숙소였던 창천각(創天閣)과 혈랑대(血狼隊)의 막사를 합친 것 같은 정도니까 상당히 큰 셈이었다. 입구로 들어서면서부터 아는 거 많은 천우신이 간간이 감탄하면서 목재는 어느 지방의 뭘 썼고 장식은 무슨 풍이니 뭐니 하는 걸 보면 인테리어도 상당한 수준인 모양이었다. 막눈을 가진 나야 뭐… 좋군, 고급스러워 보이고 비싼 거 같군. 정도의 느낌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1층 로비(?)에서 잠시 주변을 돌아보고 있자 곧 안내를 자처하는 사내가 나타났다. 자신을 이곳 외청(外淸)을 맡고 있는 ‘서학원’이라고 소개한 사내에게 우리는 대뜸 방문 목적을 말했다.

“아, 우리 아가씨들께 도전하시려는 분들이었군요?”

서 지배인(?)은 일순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이내 본래의 부드러운 표정으로 돌아와 1층 로비 옆의 통로로 우리를 안내했다. 얼마간 걸어서 통로를 지나자 곧 테이블 수만도 수십 개가 넘는 공간… 간단히 말해서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공간이 등장했다. 아직 해지려면 멀었다 싶은 시간인데도 실내는 거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간들이 우글거렸고, 한쪽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여러 명의 예쁘장한 소녀들이 악기를 연주하여 은근한 풍악을 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상류층 사교 클럽틱 한 분위기의 실내를 가로질러 무대 쪽으로 향했고 서 지배인은 그제야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두 분은 물론 금종(金鐘)을 울릴 수 있는 자격에 대해 아시겠지요?”

“그야, 물론!”

나와 천우신은 동시에 대답하고는 곧바로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당근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우리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약간 소란해지기 시작한 가운데 무대 위에 있던 소녀들이 일시에 좌우로 물러나자 그들에게 가려져 일부가 보이지 않던 금종, 예의 ‘골든 벨’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이단의 기본 정보대로 ‘교아루 간판스타 교아 자매 소유권 획득 대회 출전 자격 조건(길기도 하다)’은… 두 가지였다.

I. 최소한 이 넓은 실내에 가득한 모든 테이블의 계산을 치를 수 있을 정도의 돈이나 보물을 내놓기.
II. 교아 자매들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멋진 재주를 선보이기.

이 두 조건 중의 하나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뭐… 우리는 미리 ‘돈’ 쪽을 하기로 결정해 놓았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각자 준비해 온 진주 주머니를 꺼내 그 것을 골든 벨 앞의 바구니에다가 전부 쏟아 부었다. 우리의 진주 폭격(?)에 실내는 갑자기 조용~해져 버렸고, 서 지배인은 상당히 긴장된 표정으로 우리가 쏟아 놓은 진주 더미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 이렇게 큰… 아름다운… 진주들은 처음 보는군요.”

지배인이 떨리는 음성으로 진품이자 명품이라는 판정을 내리자 실내는 일시에 오오~하는 감탄성으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뭐, 별거 아니오. (전부 주운 건데 뭐.)”

“…두 분다 금종을 울리실 자격이 충분합니다. 두 분의 존성대명을 아가씨들께 알리겠습니다.”

“본인은 서울공자(西蔚公子) ‘한국군’이오. (서울에서 온 군바리요.)”

“본인은 경기공자(京畿公子) ‘천신조’라고 하오.” (서울 군바리 친구요.)

우리가 역시 미리 준비해 두었던 가명과 가명호를 대자 서 지배인은 곧바로 무대 옆으로 빠져나갔다. 그 후 우리는 ‘뭐 이런 걸 가지고 놀라고들 그래…’라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골든 벨을 울렸다. 뚜루룽~! 땅~! 땡! 땅! 땡! (뭔 골든 벨 소리가 이래?)

그동안 교아 자매들을 어찌 해보겠다고 헛돈, 헛보물을 퍼부은 자들이야 무수히 많았지만 우리처럼 막 나가는 놈들은 드물었던지, 우리가 무대에서 내려와 빈자리에 앉는 동안에도 우릴 향한 수근거림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저 질린 듯한 시선들 속에 경쟁자가 섞여 있을 경우 화끈한 선재 포격으로 (솔직히 돈지랄) 기선 제압을 해 둔 셈이었다.

우리가 금종을 울린 후 약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제야 아까의 서 지배인이 다시 무대에 등장해 오늘 드디어 교아 자매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선언을 했다.

“…최근 금종을 울린 분들이 많아서 예상보다 빨리 ‘대회’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오늘까지 한 공자와 천 공자 두 분이 추가되어 총 열다섯 분이 금종을 울렸으며……”

열다섯 명이라… 생각보다는 많군.

“…대회는 총 4단계로 이루어지며 어느 단계에서든 남아있는 분들이 없을 경우, 그 시점에서 대회는 종료됩니다. 이번에 아가씨들께서 선택한 1단계의 종목은 지난달과 같은……”

서 지배인의 설명은 얼마 동안 더 이어졌는데, 사실 우린 이미 천이단을 통해 대부분의 종목과 진행 방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1단계부터 미리 알고 있어도 필승의 대책이 없다는 점이었다. 뭐… 나야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천우신이 조금 걱정이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아가씨들께서는……”

근데, 뭐이리 사설이 길어…? 구경꾼들은 오히려 먼저 다 나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

“어이-! 이제 그만하시지!”

지배인의 말을 끊은 것은 우리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큼직한 장한이었는데, 눈빛이 형형한 것이 상당한 무공을 지닌 고수인 것 같았다.

“설명은 그 정도로 하고, 빨리 대회나 시작하시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오늘을 기다려 온 줄 아는 거요?”

장한은 다시 큰 소리로 외쳤고 다른 이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아… 재촉공(再蜀公) ‘독자’님이시로군요. 알겠습니다. 설명은 모두 끝났으니 모두 정원으로 나가시지요.”

흠… 덕분에 진행이 좀 빨라지려는 모양이다.

…오판이었다.

정원으로 나간 선수들은 안에서 지배인을 닥달했던 건 바로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다들 멍하니 서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교아루 오픈 당시 며칠 정도만 모습을 드러냈을 뿐, 이후로는 참으로 귀하신 몸이 되어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는 우리 미령 양께서 정원 한가운데에 떠억 하니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으음… 헤어져 있던 시간 동안 뭔가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으… 하여간 반갑다, 미령아. 이 구여운 것! 대체 이게 얼마 만이냐 그래.

“아가씨, 어서 제 위치로 가시지요.”

서 지배인이 입을 열었지만, 미령이는 들은 체도 않고 성큼성큼 이편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전에는 좀처럼 입지 않던… 망토처럼 긴 자락의 홍의(紅衣) 차림이어서 마치 붉은 깃발이 막대에서 떨어져 나와 이쪽으로 날려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들이 늘어 선 앞의 불과 몇 미터까지 팔랑이며 다가온 미령이는 어느 순간 두 손은 뒷짐을 진 채 불쑥 고개와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렇게 더욱 낮아진 높이에서 미령이는 스윽 스윽 고개를 돌리며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 자그맣고 당돌한 아가씨의 행동에 당황하여 얼굴을 붉힌 것은 오히려 사내들 쪽이었다. 물론, 나와 천우신 빼고.

불과 10여 초에 불과한 시간 동안 단지 조금 독특해 보이는 탐색전만으로 사내들을 압도한(?) 미령이는 또 불쑥 몸을 세우더니 종종걸음으로 물러나 버렸다. 그러자 비로소 사내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아- 고 것 참……”

제기… 갑자기 무지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저 빌어먹을 놈들이 우리 막둥이를 저렇게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고 있다니… 흥-! 꿈도 꾸지 마라 이 놈들아!

“아하핫-! 이제 시작해요, 우리!”

내 기분은 아랑곳없이 미령이는 경쾌하게 웃으며 외쳤고, 그에 따라 서 지배인을 비롯한 교아루의 점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대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지시에 의해 참가자들은 일단 모두 미령의 뒤쪽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모여서야 했다. 다들 극도로 긴장하여 미령의 뒷머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미령이가 크고 낭낭한 음성으로 외쳤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다!라는 끝말과 거의 동시에 미령이는 패액 뒤를 돌아보았다. 당근, 참가자 전원 ‘얼음’ 상태. 아니… 전원은 아니었다. 예상대로 성질 급한 재촉공 독자라는 사내가 경공을 발휘하여 앞으로 뛰쳐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미령이가 돌아보는 순간에 완전히 멈추지 못하고 약간 비틀거리는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그리하여, 총 열다섯 명 중 일찌감치 한 명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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