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66-1화 : 오늘의 컨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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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66-1화 : 오늘의 컨셉(1)


7-8. 오늘의 컨셉(1)

나는 잡고 있던 대교의 손을 놓고 마녀 여옥 앞에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불쑥 먼저 나선 것은 천음마군이었다. 조금 맥이 빠지기는 했지만, 사실 ‘오늘의 컨셉’을 지시해 놓은 건 나였다. 나야말로 마녀를 눈앞에 두자 조금 흥분해 버렸던 모양이다.

“여전히 시건방진 여자로군. 하지만 감히 천주 앞에서까지 헛소리를 하면 내가 그 혀를 잘라 돼지 먹이로 던져 버리겠어.”

천음마군의 막말에 마녀 여옥은 대뜸 눈매를 가늘게 하며 천음마군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향주련주…! 당신이야말로 너무 대담해졌군요. 감히 남의 집 마당에서 짖어대는 건가요?”

“흥~! 내가 본래 이런 스타일이라는 건, 뒷골목의 개도 알아.”

서로 ‘너는 짖어대는 개’, ‘그럼 너는 뒷골목의 개보다 못한 여자’라는 욕을 주고받은 셈이었다. 마녀 여옥은 더욱 무서운 눈으로 천음마군을 노려보았지만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아랫것이 아닌 보스와 직접 얘기하겠다는 태도로 천음마군을 무시하고 내게 시선을 돌렸다.

“내 딸 수혜와 함께 만났던 것이 이제 겨우 며칠 전일뿐인데… 그런데도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군요, 진대인.”

삽시간에 사교적인 미소로 무장한 얼굴이 되는군.

“지하무림의 새로운 지배자가 탄생했다는 소문을 듣고도 설마 했어요. 그런데 그게 또 당신… 목숨을 걸고 우리 수혜를 구해주었던 영웅… 진대인일 줄은 몰랐지요. 호홋~ 우리 수혜가 알면 너무나 놀라서… 그 여린 것이 어떤 표정이 될지… 호호홋~”

내가 그 동안 자신을 함부로 치지 못했던 이유를 잘도 찍어 강조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당장의 내 관심사는…

태도와 말투로 보아, 나의 신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건 기본. 게다가 오늘의 이 거창한 ‘세계 단위의 삼합회 모임’… 이런 건 아무리 권모술수와 인맥으로 유명한 마녀라도 좀처럼 만들지 못한 자리라고 했다. 결국 ‘가는 날이 장날’같은 게 아니었다는 얘기… 즉, 내가 홍콩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준비한 거야.

나는 마녀 여옥이 이렇게 짧은 기간에 거물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건 ‘다른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까지 내릴 수가 있었다.

“흠, 음…”

나는 아무 대꾸나 반응도 없는데 지 혼자 웃고 있던 마녀 여옥은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이번에는 나와 대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일백마군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은 자룡대주와 은사마군처럼 낯선 인물들은 그냥 스쳐갔지만, 다른 마군들은 그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흐으음~ 지하무림의 부활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그 멤버 중에 우리 삼합회의 거물들이 이리도 많다는 점이네요. 저 애송이 향주련주는 그렇다 쳐도, 각각 모두 다른 조직의 거물들에… 설마 흑회(黑會)의 회주, 은림(隱林)의 림주 두 분까지…”

점점 기억을 더듬어 일백마군들의 표면적인 신분을 확인하면서 마녀 여옥도 태연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가장 뒤에 서있던 한 노인을 발견하면 순간, 짧게 헉 소리를 냈다.

“맙소사…! 청방(靑幇) 백문(白門)의 문주님까지?”

마녀 여옥이 경악하여 자신도 모르게 ‘님’자를 붙일 만도 한 것이, 청방이란 삼합회 그 자체와도 헷갈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거대한 조직이다. 그리고 그 곳은 흑, 백, 청, 홍의 네 개 문파가 공동으로 다스린다. 즉, 내 뒤의 저 온화해 보이는 대머리 노인이 청방의 4분의 1을 지배하는 자라는 뜻이다.

사실… 난 마군황 등극 이후로 하도 바쁘게 쌈질만 하고 다니느라 모든 지하무림의 대표들을 모아놓고 정식으로 인사를 받는 등극식이랄까, 하여간 그런 행사도 아직 못 했다. 지하무림의 석실에서 모두에게 인사를 받았다고는 해도 그건 임시였고, 그들의 현재 직업(?)을 모두 파악하고 있지도 못했던 거다. 그런데 막상 삼합회 관련자들만을 집합시켜 놓고 보니 저 백문주 같은 거물까지 있어서 나도 솔직히 좀 놀랬다.

“이, 이런…! 지하무림이 설마 이 정도까지…”

“생각보다 많이 놀라는 구려.”

백문주가 대표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건 그 동안 지하무림이 얼마나 우습게 여겨져 왔는지에 대한 반증. 허허허~ 하지만 보다시피 지하무림은 천하의 어느 곳에나 있었다오.”

마녀 여옥의 동요도 매우 컸지만, 그건 마녀 뒤에 모여선 순수(?) 삼합회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하나 둘 파티장에서 나오기 시작했던 그들은 이제 모두가 나와서 마녀와 함께 우리 측 인물들의 정체를 확인했던 것이다.

“놀랍…군요, 확실히! 하지만… 그 동안 그렇게 철저하게 숨어 지내 왔으면서, 오늘은 너무도 간단하게 정체를 드러내는군요.”

역시 그리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듯, 마녀 여옥은 빠르게 표정과 태도를 수습해가고 있었다.

“당신들이 진실한 신분을 드러냄으로써 벌어질 일은 생각해 보지 않았나요? 우선 오늘 여기 모이신 분들…”

마녀 여옥은 슬쩍 뒤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분들부터도 과연 ‘배신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마녀 여옥의 말에 의해 순수 삼합회 무리의 분위기가 동요와 혼란에서 경계와 적개심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내가 대동한 인물들의 조직을 모두 합치고 마녀 여옥 뒤의 인물들 조직을 종합해 보면 규모상 우리 쪽이 약간 밀린다. 게다가 이 자리에 없는 조직들까지 전부 배신자 응징에 나선다면 우리 측 삼합회의 패배가 뻔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허허허허~”

백문주가 먼저 여유 있는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다른 우리 측 인물들도 모두가 느긋하면서도 당당한 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 우리 측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마녀측 인물들의 시선이 차츰 나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시선에는 ‘이들이 이렇게 당당한 원인이 바로 당신인가?’라는 질문이 담겨있었다.

이제야… 내 차례로군.

나는 그 동안 계속 대교의 손을 살짝 잡고 있었는데, 대교는 몰려드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살짝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더욱 손에 힘을 가하며 전음을 보냈다.

“대교…! 긴장을 풀고 나의 기에 순응해.”

“예…? 아!”

대교는 자신의 체내에 밀려드는 기에 당황하여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기억 밑바닥에 마중제일녀로서의 기억이 새겨져 있어서일까…? 아주 짧은 순간에 나의 기에 적응하고 있었다. 나는 현천기공으로 대교의 신체에 보낸 기의 흐름까지 조정하여 호신의 기를 운용해 주면서 사방으로 전음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들으시오!”

말투는 나름대로 정중하게…

“나는 지하무림의 제 2대이자 3대 마군황인 진유준이오.”

그러나 전음 자체에는 정글도로 적을 칠 때 이상의 내력을 담았다.

< 내가 온 것은 마녀 여옥과의 개인적인 일일 뿐, 당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 >

요즘 조폭들은 무공이 강하지 못해도 보스가 될 수 있는 것 인지, 마녀 여옥부터 시작해서 상당수의 삼합회 멤버들이 벌 써 머리를 감싸 안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 그러니… 돌아가시오! >

조금 더 내력을 높이자, 약한 자부터 차례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름대로 버티고 있는 자들도 대부분 간신히 진기를 끌어올려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 만약 더 이상… >

“자, 잠깐!”

아직은 내 수하들처럼 멀쩡해 보이는 자들 중의 한 명이 마 녀 여옥을 제키고 앞으로 나섰다.

“본인은… 대만 죽련(竹聯)의 사람이오. 귀하의 뜻은 너무 나 잘 알았소. 우리는 본시 귀하와 대적할 뜻이 없…”

“다, 닥치… 닥쳐요!”

역시나 독종 마녀 여옥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당신… 당신이 우릴, 우릴 대표할 수는 없…”

“흥~! 여막주, 당신 역시 우리의 대표가 아니잖소! 그 동안 당신이 나름대로 거물 대접을 받은 건 여기 모인 여러 친구 들 덕이야. 그런데 그 친구들을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희생시킬 생각이오?”

“우… 웃기지마! 사내 주제에… 윽!”

마녀 여옥은 가슴을 움켜쥐고 기혈이 들끓는 고통을 참아내 더니 겨우 겨우 다시 말을 이었다.

“다, 단지… 겁을… 먹었을 뿐, 이면서…”

입가에 약간의 선혈을 흘리며 독하게 노려보는 마녀의 모습은 지극히 섬뜩했다. 그러나 대만 죽련에서 왔다는 중년의 사내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무모한 건 용기가 아니지. 더구나 지하무림인들이 자신의 다른 신분으로서의 본분이나, 조직을 배신했다는 얘기는 들 어 본 적이 없어. 여막주, 당신보다도 신용이 있다는 거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단지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마녀 여옥 이 믿던 순수 삼합회 집단은 그녀로부터 등을 돌린 것이다. 자신이 애써 추진했던 대책이 나의 몇 마디 전음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자, 마녀는 더욱 독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후,회…하게… 될, 거야.”

징그럽게 일그러져 정말 마녀 같은 얼굴이 된 여옥이 따로 명령을 내릴 것도 없었다. 그 사이 나를 중심으로 먼 거리에 있던 지점에서부터 제정신을 차린 마녀의 수하들이 일제 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건물 위나 마당의 나무 위를 가릴 것 없이 그늘이란 그늘마다 숨어있던 자들이 거의 동시에 철컥, 총의 노리쇠를 당겼다.

“모두… 죽여 버렷!”

마녀의 고함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땅바닥을 뒹굴… 필요는 당연히 없었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땅바닥에 엎드렸던 마녀측 인간들은 모두가 ‘어째서 총성 한 발 들리지 않는가’하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마녀의 수하들이 소리도 없이 쓰러져 있는 자리 뒤마다 온통 짙은 잿빛의 자객복(?)과 복면을 쓰고 있던 이들이 유령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

< …대교. 저들이 바로 천년 전에는 천인군도(賤人群島)라 고 불리던 곳에서 키워진 살수 은사도객들이야. 아무리 총 같은 현대 병기로 무장한 자들도 저렇게 은밀히 제압할 수 있으며… >

대교에게 설명을 해주는 사이, 천음마군이 껄껄대고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는 은사도객 중 한 명을 가리키며 외쳤다.

“봤나, 마녀! 우리 일백마군 중의 한 명인 은사마군이야. 일찍이 명부화라 불리는 최고의 살수로…”

천음마군이 은사마군을 소개하던 말이 문득, 흐려지고 있었다. 그가 가리킨 복면의 인물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며 가장 가까운 곳의 어둠 속에서 나온 은사마군이 마악 복면을 벗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그게, 그녀의 가슴은 남자와 구분이…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닥쳐욧,”

차갑게 쏘아붙여 천음마군의 입을 막은 은사마군은 소리도 없는 경공을 펼쳐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달려왔다. 그 녀는 한 쪽 무릎을 꿇고 포권하며 보고했다.

“속하, 은사마군. 천주의 명을 받자와, 현 건물 옥상과 주변에 매복 중이던 적의 섬멸을 완료했습니다.”

절도 있게 보고를 마친 은사마군은 즉시 나와 대교의 뒤로 돌아가 자룡대주 옆에 섰다. 이어 은사도객들도 유령처럼 소리 없는 경공으로 우리 일행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호위대 형을 펼쳤다.

쯧, 뜬금없이 분위기를 깬 천음마군 때문에 좀 그랬는데, 은사마군과 도객들 덕분에 조금 살아나는 것도 같군.

“이 건물 옥상과 주변…이라고? 흥! 내가 겨우 이 정도 준비밖에 안 해 놨을 줄 아는 가?”

내력은 거의 없는 주제에 회복은 빠른 편이군, 벌써 말이 제대로 나오다니 말이야. 하지만…

“마녀, 당신이 추가로 준비해 놓은 것들이 어디쯤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니…”

내 대신 앞으로 나선 자룡대주가 그렇게 물으며 한 손을 번 쩍 들었다. 그 직후, 저택 밖의 사방에서 일제히 슉 ! 슈슉 -! 그리 크지도 않은 발사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터의 밤하늘처럼 어둠 속을 꿰뚫고 날 아 오른 수십, 아니 백 발이 넘는 로켓탄의 불꽃 꼬리가 모두의 머리 위를 수놓았다.

꽝! 콰쾅! 쿠앙! 꽝! 콰쾅! 쿠앙! 꽝! 콰쾅! 쿠앙! 꽝

콰쾅! 쿠앙! 꽝! 콰쾅! 쿠앙!…

바로 옆 사람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폭음이 계속해서 이어지며 저택 구석구석 빈틈없이 지옥불의 축복을 내리고 있었다. 대교가 다급하게 내 팔을 잡고 흔들어서 돌아보니 그녀의 입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 안돼요! 소교! 소교는

< 걱정하지 마, 소교는 이미 이 곳에 없어. >

없어요? 여기 어디에도? 정말이죠?

< 훗~! 그래. 여옥은 삼합회 인간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으면 항상 일부로 소교를 외출시켰다고 해. 자신의 치부가 소교에게 드러나는 것을 꺼렸던 거야. 물론, 오늘 역시 파티가 시작되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보냈다는 것도 확인해 두었지. >

지, 진작 말해 줬어야죠.

“…못된 사람!”

< 미안, 미안해! 오늘 작전 지시하다보니까 그랬어. 용서해 다오. >

“용서…하고 말 것도 없어요. 전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 …그냥 보고 있어. 끝까지. >

어느 순간부터 대교의 음성이 들렸던 건, 당연히 폭격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폭격은 이미 끝났지만 마녀 여옥은 물론이고 다른 삼합회들도 아직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마당 사이를 자동차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너무나 거대하고 화려했던 저택이 잠깐 사이에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허허벌판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 파티가 열리고 있었던 건물과 그 앞에 있는 우리들을 포함한 약간의 공간뿐이었다. 사실 나도 이 정도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아마도 지난 번 납치 사건 때문에 자룡대주도 마녀를 꽤나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 …대교야. 이런 초토화 폭격에서도 우리에게는 파편 하나 제대로 날아오지 않았지? 그 정도의 정밀 폭격을 해낸 건 전황마군과 그의 수하들 작품이야. 무기라면 다루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그 하나의 수준이 달인의 경지에 이른 전황마군, 그리고 그가 이끄는 용병부대를 전장에서는 ‘전마(戰魔)부대’라고 한다더군. >

내가 계속 수하들에 대해 설명해 주자, 대교는 문득 고개를 들어 조금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 대교는 결국 뭐라 묻지 않았지만, 내 행동에 스스로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았다.

“이건 또 무슨…”

죽련의 간부라던 남자가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그건 저택, 아니 허허벌판 너머의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다른 저택들에서도 계속해서 총성과 폭음이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건 말이죠.”

나의 비서이자 참모 겸 대변인(?) 자룡대주가 대신 대답해 주기 시작했다.

“저 마녀는 죄지은 것이 많아 조심성이 많은 모양이더군요. 이 저택 주변의 다른 집들까지 사들여서 부하들을 상주시키고 있었으니 말예요. 그래서… 지금 마저 ‘정리’ 중입니다.”

“아… 예… 그런…”

자룡대주의 친절한 설명과 미소를 받은 죽련의 사내는 어색하게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른 동료 삼합회 거물들을 돌아보며 모두 완벽하게 의견일치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같더니 내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보다 한 발 먼저 자룡대주가 내 앞에 섰다.

“천주! 제5작전 보고를 하겠습니다.”

자룡대주는 첨단세대답게 무선 통신이 가능한 PDA의 액정화면을 손에 들고 보고를 시작했다.

“먼저 구룡지역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구룡의 살막지부 8개소 …”

가장 많은 지역부터 시작하여 자잘하게 있는 살막파의 모든 지부를 공격하고 있는 팀들의 현황이 보고되었고, 그 결과는 …

“…체크된 구역 중 구룡의 3개소, 기타 지역 1개만 남기고 모두 정리가 완료되었습니다. 곧… 아, 지금 막 전 지역 정리 완료가 보고되었습니다. 허나 이 4개소 정리는 천주께서 하명하신 ‘3분’이라는 조건을 완수하지 못하였으므로 해당 팀에는 적절한 징계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또한 잠재적인 협력 조직들의 움직임도 계속 체크 중…”

< 지하무림인들은… 이렇게 단 시간에도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항상 준비된 이들이었어. 고맙게도 … 이 내가 마군황으로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야. >

다시 대교에게 말하는 사이 자룡대주의 ‘살막파 최종정리보고’가 끝났다. 보고를 마친 자룡대주는 즉시 내 앞에서 물러났지만 그 후에도 죽련의 사내는 잠시 더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러다가 겨우 입을 떼어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저희들은 귀하의 일과는 관계가 없으니 이만 …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 그러라고 했잖소, 아까. >

아차, 무심코 전음에 내력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처음 수준은 아니지만… 음, 암튼 기왕 실수한 김에…

“아, 이거 실례했소. 전음 쓸 때는 ‘늘’ 무심코…”

다시 한 번 강력 음공(音功)에 가까운 전음에 타격을 받았던 자들에게 사과 겸 정중하게 포권하여 인사를 해 주었다. 나의 인사에 허둥지둥 답례하는 순수 삼합회 인간들에게는 이제 한 시라도 빨리 내 곁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고 있을 때였다.

“깔깔깔깔깔~!”

굳이 고개를 돌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녀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였다. 그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계속해서 미친 듯이 깔깔대고 웃어댔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마녀가 진짜 미쳐 버린 것으로 생각했는지, 개 중에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 모두는 총총히 저택의 마당…이었던 곳을 가로질러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마녀가 혐오스런 광소를 멈춘 것은 그 후였다.

“쥐새끼만도 못한…! 저런 것들이 삼합회를 이끄는 간부를 자처하고 있었다니… 그러니 내가 웃지 않을 수가 있겠어?”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는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라. 유유상종이라는 말 알아? 당신은 결국 당신 수준인 자들밖에 모으지 못했던 거야.”

나의 독설에 마녀의 안색이 다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피식 웃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유일하게 남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 집 하나는 남겨 두다니… 그건 내 딸 수혜를 생각해서였겠죠? 2층에 수혜의 방이 있는 집이니…”

“…틀렸어. 난 그 아이가 지금 여기에 없다는 걸 알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남겨 둔 거 아닐까?”

“끈질기군. 난 다만 당신과 달리 일반인… 그러니까, 오늘 파티의 요리사나 시중을 드는 이들… 그런 사람들을 해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훗- 호,호호호호~ 당신이야말로 끈질기네. 억지로 부인하는 걸 보니… 어쩌면 내 딸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겠는걸?”

…쯧. 재수없는 여자와 쓸데없는 말싸움을 하려니까 짜증이 나는 군. 내 쪽에서 먼저…

내 쪽에서 먼저 ‘헛소리 그만하고, 히든카드나 꺼내 보시지.’라고 할 참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집 쪽에서 끼익- 현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마녀 여옥이 회심의 미소를 떠올리는 가운데, 낯익은 올백 머리의 남자와 그보다 10살쯤은 더 많아 보이는 중년 얼굴의 대머리 형제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기억하겠죠? 얼마 전 당신과 호각의 싸움을 벌인 적도 있는 야황(夜皇)과 마편동(魔鞭童) 형제를.”

…기억하고 말고.

“하지만 이들로는 지금의 당신에게 역부족이라 오늘은 좀더 많은 그림자 도수(刀手)들을 불러 왔지요.”

마녀의 말처럼 야황과 마편동 형제의 뒤로도 계속해서 새로 운 얼굴의 사내들이 집안에서 몰려나오고 있었다. 결국 마 녀 뒤에 늘어서게 된 인원은 총… 31명. 과연… 마녀가 여 유를 부려도 좋을 정도로 넉넉한 숫자의 CR(Confidential Raiders)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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