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71-1화 : 과거에 대한 올바른 자세.(1)
8-3. 과거에 대한 올바른 자세.(1)
“어린애처럼 굴지 좀 말아요.”
은사마군이었다.
그녀는 적이 사라져 버린 후에도 계속 혼자 툴툴대는 천음마군에게 주의를 준 것이었다.
“등신 같은 애송이들!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이라니! 평생 길거리에서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
“당신처럼 무식한 사람 손에 맞아죽는 것보단 나을지 모르죠.”
“내, 내가 뭐가 무식해. 내 수하들은 다 대학 나왔어.”
“수하들만, 이겠죠.”
천음마군과 은사마군이 티격태격 나누는 대화의 내용처럼, 우리는 조금 전 사영회의 건물 앞에서의 대치 상황에서도 결국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잡고 기고만장이던 녀석들이었지만, 역시 진짜 살인의 프로들과 맞닥트리게 되니 현실을 깨달았던 모양이었다.
“보, 본래 회주께서… 막으라고… 하신 적은 없는… 데……”
먼저 리더인 놈이 그런 소리를 하며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급기야 먼저 튀어 버렸었다.
그 다음에는 안 그래도 겁을 먹고 있던 나머지 녀석들까지 일제히 흩어져 달아나 버렸으니…
그 앞에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던 천음마군이 허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 나야 물론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역시 다소 섭섭하기도 했다.
내가 결국 이 세계에 물들어서 그런 게 아니다.
난 본래 옛날부터 이상하게 ‘죽여봐, 죽여봐’ 그러는 놈들은 꼭 죽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곤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결국 대교와 함께 건물 안으로 첫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입구를 통과하자 제일 먼저 보인 건 여느 건물과 다름없는 분위기의 작은 경비실이었다.
그곳의 창문 안쪽에서 짧은 백발의 노인이 창문을 조금 열고 태연하게 물었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이 곳의 보스를 만나러!”
일부러 조금 살벌한 기운을 풍기며 물었다.
그러나 인상 좋은 백발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께서는 4층 사무실에 계실 겁니다. 확인해드릴까요?”
그러면서 전화 수화기를 드는 그에게 대교가 나섰다.
“오 할아버지! 저예요. 제가 왔어요.”
“아~ 가혜 아가씨 아닙니까!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려.”
대뜸 밝아진 얼굴로 백발 노인, 오씨 할아버지는 경비실 문을 열고 바깥까지 나왔다.
“허허허- 아가씨의 활약은 저나 여기 사람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가끔은 들러 주시지 그랬습니까.”
그렇게 대교를 반기는 오씨 할아버지의 어느 구석에도 위험요소는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이제 보니 수혜 아가씨까지? 허허~ 오늘 송가의 점괘가 좋게 나와도 믿지 않았더니……”
대교에 이어 소교까지 그의 앞으로 나서서 반가움을 나누고 있었다.
“이 분이 오삼숙의 아버지세요.”
흐음- 어쩐지 조금 낯익다 싶더니, 그 사람의 아버지였군, 그래.
“조금 전에는 실례했습니다.”
내가 태도를 정중하게 바꾸어 포권하며 인사하자 그 역시 답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오늘 아가씨들이 귀한 손님까지 모시고 온 것 같구려.”
지금까지와는 달리 건물 안에서부터는 손님 대접을 하겠다는 뜻인가?
이 노인은 바깥 상황을 전혀 모르는… 웃! 아닌…가?
나는 사람 좋게 웃고 있는 오씨 노인에게서 아주 미세한 살기 같은 것이 스쳐 가는 것을 느끼고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에는 노인이 말하는 4층 사무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게 되었는데, 그 동안에도 나는 계속 목 언저리가 서늘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여전히 구체적인 살기 같은 건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간다.>
내가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말하자, 자룡대주가 평소와 달리 토를 달았다.
<천주. 오늘은 두 분 아가씨까지 보호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상관없어, 자룡대주. 이 둘은 사영회주의 혈육이잖아. 노려지는 건 나 하나라구.>
<아……>
<혹시라도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임의대로 잔류병력을 지휘하도록 해.>
<…복명.>
난 그렇게 마지막 코스는 수하들마저 두고 가는 것을 택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곳에 또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경비실의 오씨 노인부터가 마음에 걸렸다.
“대교. 오삼숙의 아버지라는 분은 왜 저런 곳에 있는 거지?”
“실은 그분이 아버지의 사부님이세요.”
사영의 사부…? 어쩐지……
“은퇴하신 후에도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네 명의 제자를 더 키우셨는데, 그 후에는 정말 편히 지내셔도 될 텐데 굳이 ‘문지기’를 자처하고 고집하신대요.”
조직의 원로이자 회주와 핵심인물들의(아마도) 사부, 그리고 아직은 최강일지도 모를 인물이 문지기라…
간만의 정통(?) 무협지틱한 인물이었군.
[현재 탑승 중인 엘리베이터에는 아무런 추가적 장치가 없습니다. 특이점이라면, 여타 평균적인 건축물의 시설보다 견고하게 제작되었다는 점뿐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스캔된 건물의 모든 구조물에도 해당됩니다.]
적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어떤 식으로 쳐들어오든 인적자원(?)만으로 상대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띵~!
익숙한 엘리베이터의 도착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있었다.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정면으로 길게 난 복도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있을 법한 엘리베이터 양쪽은 물론이고 복도 어디에도 몸을 숨길 구석이 없군.
복도 끝에 매복을 세우는 것만으로 아주 효과적으로 방어를 할 수 있겠어.
역시 이렇게 평범함 속에서 치밀하게……
“저어……”
응?
“잠시만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무심히 걸음을 옮기려던 나의 팔을 대교가 살짝 잡아 멈추게 했다. 왜 그러나 했더니 대교는 먼저 멈춰 서있었던 모양인 소교를 돌아보고 있었다.
아… 내가 너무 주변 상황에만 신경을 썼나…? 대교와 소교가 계속 어떤 기분으로 이곳까지 온 것인지를 잊고 있었어. 나는 뒤늦게 두 소녀에게 위로든 격려든 뭐든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두렵니?”
대교가 물었고, 소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대교는 그렇게 말하며 애써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그럼 우린 또 예전과 같이… 바로 어제까지처럼 살게 될 거야. 난… 그게 싫어.”
“…나도 그게 싫어, 언니.”
처음으로 입을 연 소교가 손을 내밀었고, 대교는 그 손을 잡았다. 나는 비로소 조금 어색한, 그러나 웬지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앞장서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뒤에서 따라나서는 두 소녀가 대견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복도에는 매복이 없군. 아니, 그뿐이 아니로군. 이건…
그저 보통의(?) 기업 회장실 분위기였다. 복도 끝에서 안내판에 따라 오른쪽 복도로 접어드니까 10여 미터 앞에 회장실 명패가 붙은 문이 있고, 문 옆의 데스크에 미모의 20대(로 보이는) 여자가 한 명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친절한 미소를 피어 올렸다.
“어서 오세요, 가혜 아가씨, 수혜 아가씨. 그리고…”
“그 외 1명이오.”
내 말에 그녀는 입을 가리며 소리 없이 웃고는 정중하게 문을 열어 주었다. 양쪽으로 서서히 열리는 문 너머로 마치 홍콩 영화 속의 주인공급 인물이 등장하듯 단아하고 품위 있게 앉아있는 미중년의 남자…
는, 간데 없고! 뭐…야, 저 양반.
“회장님! 또 그러고 계셨어요? 오늘은 아가씨들이 오신다는 걸 알면서!”
비서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회장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사실 특별한 구석이 없었다. 다만, 방의 주인이 자신의 책상이 아닌 그 뒤의 창가에 공중부양(?)을 하며 누워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는 창가의 허공에 누운 채 팔자 좋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공중부양이 아니라, 양쪽 벽에 고정된… 저 보일 듯 말 듯 가는 줄 위에 누워 있는 거로군. 저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묘기이기는 하지만… 묘기나 마나! 대체 왜 그러고 있는 건데? 나는 다소 어이없어 하며 대교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정작 대교는 물론이고 소교도 놀라기는커녕 가볍게 웃고만 있었다. 오히려 예전에 보던 모습 그대로라 안심이 된다는… 그런 표정이랄까?
그러고 보니, 나도 웬지 저 양반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군. 그때는 아마도…
“왔느냐, 대교. 소교.”
음. 똑같다, 똑같아. 저 미모(?)에 비해 걸쭉한 목소리며 말투까지.
“…또, 그런데서 약주를 드시는 거예요? 항상 어머니에게 혼났으면서…”
“맞아요. 한 번은 너무 취해서 떨어지셨잖아요.”
대교와 소교는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정글도를 등 뒤의 칼집에 넣었다.
“…괜찮다. 독한 술이 아니다.”
핫~! 이 대사까지 똑같다.
“후후~ 그리고 네 어미가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아니냐.”
이건 좀 다르군.
“그래서… 좋으세요?”
“…좋을 리가 있나. 잔소리하면서도 술잔을 채워주는 사람이 없는데.”
사영이 그렇게 말하며 쓸쓸히 웃자, 대교는 책상 위의 술병(뭔지 몰라도 벌써 향기가 좋다.)을 집어 들어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는 그대로 원샷해 버렸고, 이어 소교가 다시 그 잔을 채웠다.
“하하핫~ 정말 오랜만의 흐뭇한 밤이로군! 먼저 간 아내 대신 나의 두 딸들이 내 잔을 채워주는 구나.”
두 딸…? 설마 전생을 기억하는 건 아닐 테고… 소교도 계속 그냥 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가? 자신과 딸을 해치려 드는 마녀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그 잔… 저도 한 번 채워 드리고 싶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소교에게서 술병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사영의 얼굴은 일순 돌변하여 나를 차갑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쯧…! 이런 부분에서 과거와 차이가 나기 시작하는군.
“인사로서, 말입니다. 아,버,님!”
“누가 네놈 아버님이야.”
“한국 드라마 많이 보셨나 보군요.”
“…보긴 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지?”
“아뇨. 그냥… 음. 하여간 이제 그만 내려오시죠.”
“흥! 내가 왜 네놈 말을 들어야 하지? 지하무림의 마군황이시라 이건가?”
“아뇨. 그냥 같이 한잔하고 싶어서요. 옛날처럼.”
“옛날…처럼?”
“뭐… 하여간 내려오기 싫으시면 제가 가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 위의 또 하나의 잔까지 들고 살짝 몸을 날렸다. 사영은 스윽 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교묘하게 중심을 잡으며 자세를 바꾸어 앉았고 그 반동으로 줄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 역시 ‘중심 잡기’에는 일가견이 있는 몸. 발끝으로 줄을 밟으며 움직임을 감 잡은 후에 곧바로 사영과 비슷한 자세로 줄에 걸터앉았다.
사실 이렇게 가느다란 줄 위는 처음이지만… 본래 무술의 기본 중의 기본은 ‘중심 잡기’다. 연옥도의 바다에 작은 나무 조각하나 띄워놓고 서 있는 훈련 같은 것도 지겹게 했었고, 이런 줄타기 역시… 응?
금동이였다. 줄곧 소교의 품에서 떨어질 줄 모르던 금동이가 웬일인지 그녀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녀석은 줄 위가 마땅치 않을 것 같으니까 훌쩍 창가로 뛰더니 커튼 걸이 막대 위에 교묘하게 걸터앉았다.
결과적으로 우리와 거의 비슷한 높이의 자리였고, 녀석의 손에도 술잔이 들려 있었다. 사영은 어이없다는 듯 헛-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잔을 전부 엉뚱한 놈들이 차지하다니……”
“저흰 괜찮아요, 아버지.”
대교는 그렇게 말하고 웃으며 소교와 함께 소파에 앉자, 사영은 다시 새삼 나와 금동이를 번갈아 가며 보기 시작했다. 내가 나섰을 때부터 인상을 긁고 있었던 그였지만 웬일인지 조금씩 풀린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군.”
“뭐가 말입니까?”
“일단 따라봐.”
사영은 대뜸 잔을 내밀었고, 난 당연히 술을 따랐다. 사영은 이어서 내게 술병을 받아 들더니 나와 금동이의 잔에까지 술을 부어 주었다. 그리고는… 셋이서 동시에 원샷!
“크- 역시 이상해……”
“크- 그러니까, 뭐가 말입니까?”
“크- 끽끽~!”
사영은 똑 같이 따라하는 금동이를 흘끔 보고는 다시 잔을 내밀며 말했다.
“자네는 물론이고, 이 원숭이… 원숭이하고 대작하는 것까지 낯설지가 않으니 말야.”
아마, 내가 떠난 후의 천년 전에도 금동이하고 어지간히 퍼마셨나 보군.
“훗~!”
결국 사영은 웃으며 대교를 돌아보았다.
“사위 감이 온다기에 깐깐한 예비 장인 흉내를 내보려 했더니, 더 이상 안되겠군.”
술 퍼마신 사영보다도 대교의 얼굴이 더 붉어지고 있었다.
“좋아. 일단 마시면서 생각해 보자구. 자네가 과연 쓸만한 청년인지 말야.”
“저야 좋죠.”
“자, 잠깐만요. 그 사람은 지금 술 마시면 안돼요. 부상을 당했단 말예요.”
대교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그러나 사영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벌써부터 챙기려 드는 군. 자네, 다쳤나?”
“아, 예. 조금요. 총알 몇 방, 칼에 몇 번… 그리고 늑대가 물고 할퀴고… 뭐, 그 정도죠.”
“…늑대는 좀 특이하군. 하여간 사내가 그 정도로 술을 못 마셔야 쓰나.”
“그럼요. 술로 소독해야죠.”
우리의 대화를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대교는 결국 다시 털썩 자리에 앉고 말았다. 우리는 그렇게 대교의 허락(?)하에 얼마간을 계속 주거니 받거니, 권커니 자커니 술잔을 기울였다.
차츰… 그 옛날 사영의 집 마루에서 이렇게 마시던… 그 때의 기분이 나기 시작하는 군. 사영도 처음에만 잠깐… 그의 말대로 ‘깐깐한 예비 장인 흉내’를 냈을 뿐… 이제는 예전의 모습과 분위기로 돌아오는 것 같고… 음… 근데… 다시 보니 얼굴은… 예전의 그 얼굴이 아니군.
예전에 내가 사영을 장국영과 비유했던 건, 이 사람이 그만큼 동안이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는 아주 조금밖에 닮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짜로 장국영과 많이 닮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마치 내가 지금의 이 모습을 알고 있어서 그 때도 그렇게 연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여하간 이대로… 이대로 계속 밤새 마시고만 있어도 좋겠는데… 사영도… 금동이도… 더 할 나위 없는 술친구… 이런 기분이라면 밤새… 음… 안되지. 안돼…! 정신 차리자, 진유준. 너는 지금 이러려고 온 것이 아니잖은가! 일단 현천기공, 아니 주화장창(酒和長蒼)으로 술기운을 좀 몰아내면서……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 곳까지 오는 동안의 일… 말인가?”
“…그 것도 그거지만, 시간 순서대로 하죠. 먼저… ‘탁한’이란 자를 아십니까?”
“탁…한?”
사영은 불콰해진 얼굴로 소교를 돌아보았다.
“감히 우리 소교를 괴롭혔던 놈을 말하는 군. 그리고… 한 때나마 내가 중히 쓰려했던… 그런 놈.”
사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참, 운도 좋은 놈이지. 그 놈이 ‘용석천’의 간세라는 걸 내게 들켰을 때… 그 때는 마침 대교가 자리에 있어서 살아나더니… 이번에는 소교의 간청으로 살아났으니 말야.”
응…? 소교가 사영에게 따로 연락해서 그에게 살수를 보내지 말라고 했단 말인가?
나는 소교에게 의아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소교는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그저… 사람들을 더 죽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과연… 소교다운 생각이로군. 경찰 조사에서도 인질범들 모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서 매스컴마다 ‘역시 스톡홀롬 신드롬’이라고 떠들게 만들었다더니……
어쨌든, 그 인질극때 가졌던 의문의 대부분은 풀린 셈이었다. 탁한이 왜 그렇게까지 사영회를 신경쓰고 소교에게까지 함부로 대하지 못했는지, 소교는 또 왜 탁한이 대교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는지… 그런 소소한(?) 의문들 말이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점이 남았고, 사실 그게 오늘의 핵심이다.
“이런 거… 제가 묻기는 좀 그렇지만, 소교의 어머니는 마녀 여옥…! 그리고 여옥이 계속 대교를 해치려 들고 있었다는 거… 알고 있었죠?”
나는 말하며 흘끔 대교와 소교의 눈치를 살폈지만, 사영은 그런 기색 없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마녀를 그냥 놔둔 건… 소교때문이었습니까? 대교와 함께 친딸처럼 생각하는……”
“아니. 소교 때문에 마녀를 살려 둔 건 맞아. 하지 만……”
사영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소교… 소교는 진짜 내 친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