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8-2화 : 진유준, 녹슬다!(2)
“…이게 대체 뭐야?”
“응? 뭐냐니?”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줄을 서서 들어와서는 이런….”
하은이는 혼잡한 와중에 누군가가(남자?) 툭 치고 지나간 자신의 팔을 매만지고 있었다. 통증이 있어서 그런다기보다, 보이지 않는 더러운 게 묻어 기분 나빠하는 듯한 태도였다. 이 녀석은 공주님답게 이런 혼잡한 상황 자체가 불만인 모양이다. 뭐 먹을 때는 나름대로 서민스러웠으면서….
“야, 넌 젊은 애가 이런 데 한 번도 안 와봤냐?”
“그게 아니라! 오빤 따로 초대받은 거 아니었어?”
“어? 그게….”
에구-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의 전개상 녀석은 그런 걸 생각했겠구나. 물론 나도 처음엔 그냥 와서 ‘특별 손님’ 행세를 할까도 했었지만… 아직 친하지도 않은 대교 일행에게 대뜸 그러는 것도 좀….
“나 참~! 이제 보니 오빠, 그냥 팬일 뿐이었던 거야?”
“아냐, 임마! 걔도 나 알아!”
“근데 이게 뭐야.”
“그, 그건… 야! 친한 사람일수록 표를 더 팔아줘야 하는 거야! 그 왜… 책 출판을 예를 들자면 말야. 책 낸 작가한테 메일 보내서 연재한 파일 보내달라거나…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사람들이 말야, 뒤에서 지원해줘야 작가들도 다음 작품을 쓸 여력이 생기는 건데 오히려 등을 치는… 하여간 가수들 노래나 공연도 마찬가지….”
내가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고 있자, 하은이 녀석은 들어올 때 내가 줬던 표의 반쪽을 들어 보였다. 거기엔 뚜렷하게 ‘일반 초대’ ‘비매품’ 같은 글자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게… 급하게 구하느라 웃돈 주고 산 건데… 니 표는 특히 따따블….”
그렇다고 그렇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것까지야….
“알겠어, 알겠다구!”
뭘 알았다는 건지 몰라도 녀석은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팔짱을 끼고는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난 좀 머쓱해지긴 했지만, 조용히 본래의 목적대로 주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현재의 자리는 미리 몽몽이 계산하고 내가 감수한(?) 자리로, 중요 포인트를 감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였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와보니 생각보다 번잡해서 숨은 보디가드 역할에도 문제가 많을 것 같았다.
음… 그래도 저 무대 앞의 바람잡이, 일명 풍운아의 선동(?)으로 차츰 질서가 잡혀가는 느낌인걸? 무슨 응원 연습하듯 박수와 환호성을 연습시키고… 음, 안 따라 하는 건 나와 하은이뿐인가?
<…몽몽. 그 백발 남자… 대교가 오삼숙이라 부르던 사람은 지금 어딨냐?>
[현재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까 입구 쪽에 있는 것 같았는데… 음, 보이면 얘기해라.>
[알겠습니다. 그보다, 수상한 자들을 발견했습니다.]
<수상한 자들…?>
몽몽이 검색해낸 자들은 우리 쪽 좌석으로부터 열 줄은 더 떨어진 후방에 위치한 두 명의 남자였다. 주변의 다른 젊은이들과 달리 양복 차림인데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대신 화려한 색상의 셔츠 깃을 세우고… 거기에 굵직한 금목걸이와 금시계… 전형적인(?) 양아치 차림이랄까?
<생긴 것도 둘 다 야비한 인상인 것이 ‘나 수상해’를 외치고 있는 것 같군. 하지만, 몽몽.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다. 두 남자는 조금 전 중국어로 대교님에 대해 말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알고 있는 듯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래…?>
몽몽이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까 시민 공원에서 당한 일 때문에 지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날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으로 평가했던 그 초중딩(?)들은 싸움이 끝나자 나에게 다가와 ‘사인’을 요청했었다. 이 녀석들도 결국 사람을 알아보는구나 싶어 ‘사인을 해줄 수는 없지만, 고맙다’라고 했었다. 그런데… 녀석들이 남긴 말은 마지막 남긴 말은 ‘힘내세요’였다.
<…어쨌든 확인은 해봐야겠군.>
[아, 지금 막 ‘여옥’이란 이름을 언급하며 ‘누님’이라 칭했습니다.]
뭣이여? 그 삼합회의 여자 간부? 대교를 노린다는 여자 사갈서생 분위기의 그 여자를 누님이라 불렀다고?
나는 하은이에게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시간이 되었는데 왜 주인공이 아직 나오지 않느냐는 불만의 소리를 흘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수상한 놈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백발 남자, 대교님의 측근을 발견했습니다.]
몽몽의 보고대로 놈들 근처의 입구에 오삼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입구에 서 있던 수하에게 뭔가 보고받더니 곧바로 놈들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할 정도로만 발걸음 속도를 줄였다.
―안녕하십니까, 오삼숙.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몽몽이 중계하기 시작했다.
먼저 인사한 것은 두 명 중 조금 덜 야비해 보이지만, 두 눈에 독기가 번들거리는 놈이었다.
―난 네놈의 아저씨가 아니다.
―하하하∼ 이러지 마세요. 나도 가혜 동생을 보고 싶어서 온 것뿐이라고요.
―가혜 아가씨도 네 동생이 아니야.
―하핫-! 이거 참. 옛 식구에게 너무하는 거….
“나와라.”
그사이 마지막 말은 그냥 들릴 정도로 나도 가까이 도착했다. 오삼숙은 강압적인 눈빛 압박으로 놈들을 다그쳐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고 있었다. 껄렁대는 태도이면서도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난 놈들을 보니, 한 놈은 작았지만 예의 독기 품은 눈 쪽은 오삼숙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였다. 그 두 놈과 함께 출구 쪽으로 몸을 돌리던 오삼숙은 그제야 날 발견하고는 흠칫 걸음을 멈췄다.
“…네놈들 동료냐?”
“누가 말요? 여옥 누님은 우리밖에 안 보냈는데….”
여옥의 양아치 두 놈과 오삼숙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나는 히죽- 웃어 보였다.
“얘기했잖소, 오삼숙. 난 저런 자들이 대교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상황… 인정 못한다고.”
오삼숙은 새삼 가만히 날 응시하고 있더니만 결국 말없이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갑자기 콘서트 홀 안의 커다란 조명들이 꺼지기 시작했다. 그 어둠에 녹아들 듯 장내의 소음과 어수선함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무대 쪽으로 돌려보니 거기… 대교가 있었다. 객석보다 더 어두운 무대 위로 한줄기 조명만이 중앙에 원형의 공간을 만들고 그 빛 속의 의자에 앉아 있는 대교는… ‘아이돌’이라 불리는 소녀답지 않게 기타 하나만을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홀 밖 복도… 그중 인적 없는 한구석에서 오삼숙은 두 명의 양아치 중 독기 쪽의 멱살을 잡고 벽에 밀어붙였다.
“신해식!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지?”
“후후… 난 그저….”
이름이 ‘신해식’…? 하여간 놈은 멱살을 잡힌 어색한 자세에서도 어느 틈에 한 손을 양복 호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통상 그 손이 다시 나오면서 총이나 다른 어떤 무기가 뽑혀 나올 법한 상황이었지만, 오삼숙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면 가혜에게 이걸 전해줄까 해서….”
신해식이란 놈이 꺼낸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내 쪽 각도에서는 어떤 사진인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오삼숙에게는 그게 총보다 더한 충격을 전해준 것 같았다. 오삼숙은 그전까지의 냉정함을 잃고 힘겹게 분노를 억누르는 듯, 떨리는 손을 풀어 놈의 멱살을 놓더니 놈의 손에서 거칠게 사진을 뺏어들었다.
“너, 이제는 이런 추잡한 협박까지….”
“아, 아아∼ 그렇지! 그곳은 가혜뿐 아니라 삼숙께도 특별한 장소였죠?”
과장해서 이제 알았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지만, 얼굴은 전혀 그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뭐… 어쨌든, 오늘은 이 정도가 제 임무였습니다. 1년 전… 그때 삼숙 덕분에 물먹은 이후로 여옥 누님도 절 별로 신용하지 않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곧 달라질 겁니다.”
“무슨 짓을 하려는 생각인지 몰라도… 그곳의 풀 한 포기, 애들 털끝 하나라도 다치게 된다면….”
“응? 무슨 짓이오? 내가 달리 무슨 말을 했나요?”
야비, 느물거림… 그런 유의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 놈이다. 놈이 내 쪽으로 따로 서 있는 다른 양아치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이- 내가 언제 예향원(譽香院)을 폭파시킨다거나 그런 소리 한 적 있나?”
“그런 말 한 적 없죠. 그러니까 혹시라도 예향원에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우리 형님 탓을 하면 안 됩니다.”
오삼숙은 저희들끼리 그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키득대는 녀석들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만약… 나라는 목격자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서 두 녀석을 없애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신해식이란 놈은 그런 오삼숙의 증오심을 즐기기라도 하듯 여유있게 몇 마디를 덧붙였다.
“훗-! 그런 비극이 있기 전에… 빨리 돌아와요. 누님 곁으로….”
놈의 말에 오삼숙의 안색이 한층 더 험하게 일그러진다. 돌아오라고…? 그렇다면 오삼숙은 여옥이란 여자의 옛 부하…? 혹은… 으음…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상당히 떨떠름하다. 오삼숙은 머리만 백발일 뿐 30대 중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청년이든 중년이든 부를 때 앞에 ‘미’자를 붙여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이다. 그에 비해 여옥 쪽은 마흔두 살의 유한마담(?) 필이 나는 여자… 간단히 말해, 오삼숙 쪽이 백배는 아깝다.
뭐… 이건 오삼숙이 우리 쪽이라서 편들어주자는 게 아니고, 내가 싫어하는 외모지상주의…도 거의 안 들어간, 단지 그만큼 여옥이란 여자가 내게는 ‘재수 없는’ 스타일로 보인다는 얘기다. 암튼 처음과 달리 암담하기까지 한 표정이 된 오삼숙은 신해식과 똘마니 양아치가 자리를 떠나려 하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기, 이제 그쪽 볼일은 다 끝났소?”
내가 불쑥 묻자, 비로소 오삼숙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씨이익- 지어 보인 다음 신해식이란 놈에게 말했다.
“그럼 내 차례 같은데… 나하고 얘기 좀 하자.”
핫-! 하고 놈이 웃었다.
“오삼숙! 이 녀석은 또 뭐요? 가혜의 새로운 경호원?”
“…3일 전에 처음 본 자다. 난 오히려 네놈들처럼 여옥이 보낸 것으로 생각했다.”
“흐음- 누님이 설마 나 말고…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놈은 삐딱한 눈으로 날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느 쪽도 아니라면… 뭐지? 왜 날 가로막은 거냐.”
담담하게 묻는 것 같았지만, 그사이 놈의 오른손이 아주 약간 어색하게 내려뜨려졌다. 칼잡이…? 그리고 똘마니 같은 경우는 두터운 목이 긴장되는 기색으로 보아 돌진형 파이터쯤으로 짐작된다.
“난… 주가혜의 팬클럽 회원이야.”
“팬클럽 회원…? 하하하핫∼! 이거 걸작이군!”
“얘길 들어보니… 넌 아무래도 그녀에게 뭔가 해로운 일을 벌이려는 놈 같은데 말야.”
“큭큭큭-! 팬클럽 회원 양반. 내가 가혜에게 해로운 인물이라면… 그럼 뭘 어쩌려고?”
“다시는 그런 생각조차 못하도록 해주지.”
“훗! 어디 한번 해보시지. 팬클럽 회원….”
놈의 말끝이 흐려지며 오른 손목 쪽에서 뭔가 반짝 빛을 발한다 싶은 순간, 별다른 예비 동작도 없이 오른손이 휘둘러졌다. 홍콩의 뒷골목을 주름잡을 만한 실력은 되는 것 같았지만… 이 몸은 그 뒷골목 연합의(1000년 전 지하 무림) 보스 출신! 나는 슬쩍 고개를 트는 것만으로 간단히 놈의 칼날을 피했고, 나름대로 자신 있던 선방이 허방이 된 데 당황한 놈이 다급하게 휘두른 제2, 제3의 칼질까지 가볍게 흘려버리며 접근, 손날을 세워 옆구리의 급소를 찍어주었다.
그렇게 칼잡이 신해식을 간단히 제압하는 사이 똘마니 쪽이 낮은 자세를 취하더니 저돌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디 어떻게 나오는가 보자는 생각에 보법을 멈춰봤더니만 역시나 왼손으로 내 허리를 끌어안고 그와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내 허벅지를 잡아챈다. 체구에 비해 엄청난 힘과 재빠른 기술이었다. 특공대와 무림에 가기 전의 나였더라면 간단히 뒤로 넘겨져 복도 바닥을 뒤통수로 헤딩해버렸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두 다리를 약간 뒤로 해서 버티는 정도로도 근접 격투기 선수급(아마도) 태클을 막아내는 완력이 있으며, 이렇게 환히 내려다보이는 상대의 뒷목 혈도를 꾸욱 눌러줄 수 있는 기술도 있다.
각각 주저앉고 엎어진 채 꿈틀대는 두 녀석과,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게서 오삼숙이 천천히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옆구리를 쥔 채 간신히 숨을 몰아쉬던 신해식이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 오삼숙…! 이놈은… 역시 당신 부하였군.”
“…얼굴은 본 적이 있다고 했잖아. 하지만 난 아가씨의 팬들과 일일이 친해질 만큼 한가하지 않아.”
“거짓말 마요.”
“마음대로 생각해라. 난 바빠. 아가씨의 ‘팬들 간의 다툼’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지.”
오삼숙이 그런 말을 남기고 사라진 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 난 말야. 사실 너희들을 제압해서 내 실력을 보여준 후, 가혜 양 경호원으로 써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했거든? 근데… 상황을 보니 보스께서는 너희들을 때린 나와 아는 사이가 아니길 바라는 것 같고… 아무래도… 내가 가혜 양 경호원이 되는 길은 멀어진 것 같지? 너희들 때문에… 말이야. 안 그래?”
놈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것 같았고, 나는 다시 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아아- 그러니, 이해해라. 내가 화풀이하는 거.”
말을 마치자마자 놈의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일단은 얼마 전의 대일본제국 어쩌고 하던 놈을 팰 때보다 두 배, 아니 세 배쯤 정성 들여 패줄 생각이었다. 적당히 해서는 안 될… 응?
“…좋아. 때리든지 칼로 장난을 치든지 멋대로 해봐라.”
이런…! 눈빛으로 보아 허세로 하는 말이 아니다. 대일본제국 어쩌고 하던 놈과 비교할 차원이 아닌… 진짜 독종이라는 느낌이 팍팍 오는군.
“우, 우리는 삼합회의….”
“닥쳐!”
엎어져 있던 똘마니가 자신들의 배경을 밝히려 하자 말을 막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독기 하나로 이 험한 세상 살아왔다는 자부심에 차 있는 타입…!
“…무섭군. 너무 무서워서 때리거나 칼질을 할 수가 없겠어.”
한숨을 내쉬며 놈을 내려놓았다. 놈도 눈치가 있는지 내가 눈곱만큼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 오히려 이제야 조금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예의 그 눈의 독기는 여전해서 설건드리면 두고두고 ‘후환’을 가져올 자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걸 쓰기에는… 음… 게다가 이렇게 희미하게나마 대교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곳에서 너무 험한 짓 하는 것도 좀… 응…? 웃! 생각…나고 말았다! 그걸 써야 할 이유가! 젠장…! 갑자기 진짜 빡 돌기 시작한다.
“일단… 잠깐 기다려봐.”
나는 먼저 마혈을 잡혀 엎어져 있는 똘마니를 해혈해주고는 즉시 다른 혈도를 몇 군데 잡았다. 가상현실에서 몇 번 연습을 해본 적은 있지만 아직 단 한 번도 실제 사람에게 써본 적이 없는… 그 유명한 고문법, 분근착골(分筋搾骨)의 초기 단계였다. 그러나 그 정도로도 똘마니는 불과 10여 초 만에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어버린다.
“음… 분근착골 1단계 테스트 끝.”
“부, 분근착골…? 넌 대체 누구냐? 어떻게 그런 걸 쓸 수 있는 거냐!”
놀라는 걸 보니 현 시대에도 있나 보다. 요즘 버전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내 분근착골 수법은 비화곡의 지옥전(地獄殿) 전주, 천하 마인들이 첫 손가락을 꼽아준다는 고문의 스페셜리스트에게 전수받은 오리지널 버전이다.
“난 가혜 양 팬클럽 회원이랬잖아. 어쨌건… 자- 이제 니 차례다.”
“잠깐! 당신… 정말 가혜의 팬…? 하지만 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난 그냥 팬이 아니라 아주∼ 광팬이야. 그래서… 방금 너희들 때문에 망친 게 또 하나 생각나버렸어. 난 사실 실제 공연을 보는 건 처음이거든? 근데 그게… 하아∼.”
그전의 경호원 얘기는 반쯤 거짓이었지만… 이번의 한숨은 진심이었다.
“썅∼! 너희들 때문에 오프닝을 제대로 못 봤잖아! 오프닝!”
“자, 잠깐.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릴….”
“고작…? 나한텐 고작이 아니란 말이닷!”
나는 피 맺힌(?) 절규와 함께 놈의 몸에 분근착골 1단계를 실시했다. 외상은 전혀 없으면서도 말 그대로 근육이 가닥가닥 끊기고 뼈를 쥐어짜고 으스러뜨리는 것과 같은 고통을 안겨준다는 분근착골… 음, 놈은 그래도 형님이라고 똘마니보다 두 배는 긴 시간을 버티고서야 거품을 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의식은 잃지 않고….
“이건 일단 칭찬을 해줘야겠군. 그럼… 바로 3단계로 간다.”
“3…단계? 어, 어째서…?”
“이러는 동안 또 공연을 못 봤잖아.”
“그, 그런 계산법이 어디….”
놈의 눈동자에 비로소 공포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