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42화 : 부러운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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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42화 : 부러운 광복절.


2. 부러운 광복절.

“빅 존. 저 위로 가자.”

내가 가리킨 방향은 부근에서 가장 높은 건물 위의 물탱크였다. 빅 존은 당연히 가뿐하게 그 위로 뛰어 올랐고, 난 예상대로 주변 반경 1KM정도까 지의 시야를 확보 할 수 있었다.

“몽몽. 소냐와 베이비 존을 불러. 그리고………….”

이 쪽에서는 소냐만 있으면 될 것 같고, 추가 병력은… 음, 하여간 일단.

“천음마군하고는 직접 통화해야겠다.”

내가 비 감염자들을 구하러 다니는 사이에 은사마군과 천음마군 팀의 재편성이 끝난 건 물론이고, 천음마군 팀은 나와 같은 작전을 수행 중일 터였 다.

[알겠습니다. 헌데, 이미 천음마군을 비롯하여 몇몇 CR들은 현재 장소(방향으-삭제)로 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건… 아, 그래. 그 녀석들과 싸우던 MB좀비들도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거로군.

“누구야? 바쁜데 누가 전화질을…”

“나야, 나.”

“윽! 천주? 죄송합니다!”

이 인간, 설마 알면서 모른 척한 건 아니겠지?

“용서해 주십시오! 짜증나게 약삭빠른 변종 좀비놈들을 쫓던 중이어서 그만……….”

“됐어! 쫓지 않아도 돼.”

“예?”

“다른 애들에게도 천음마군이 전달해. 지금 천음마군이 쫓던 놈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놈들은 그냥 놔두라고 말야.”

“어, 그렇다면……”

“전부 나한테 오는 녀석들일 거야.”

“…아, 네.”

대답에 힘이 없는 걸 보니, 자기 사냥감을 빼앗긴 기분이 드는 모양이군. 하여간 이 인간은……………

“암튼, 다 올 것은 없고, 천음마군이 대충 몇 명 추려서 함께 이쪽으로 와.”

“옷? 그럼?”

“곧 놈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들여서 한꺼번에 쓸어버릴 생각이야. 하지만 이 섬의 MB좀비들 모두 걸려든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까, 모두 하던 일 을 계속하면서 정예 병력만 이쪽으로…….”

“음핫! 알겠습니다!”

훗. 아무래도 내 말의 일부분만(한꺼번에 쓸어버릴, 정예 병력) 골라서 알아들은 것 같지만 그건 뭐, 상관없지.

나는 새삼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래쪽의 거리에는 여전히 대로며 소로를 가릴 것 없이 비척대고 걷는 좀비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 나 현재의 나와 비슷한 높이의 건물들 위의 옥상 풍경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차가운 삭풍만이 오가는 죽음의 도시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건 일반인들이 봤을 때 얘기고, 쬐금(?) 예민한 이 몸에게는 하나, 둘, 셋…! 그 정도 숫자의 수상한 그림자들이 얼핏 보였지. 그뿐 아 니라, 저렇게 몸을 숨기고 좀비답지 않게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접근하고 있는 중인 녀석들의 숫자가 슬금슬금 늘어나고 있어.

“몽몽. 아직・・・이냐? 아직 수상한 놈 없냐?”

[죄송합니다, 주인님. 가칭 ‘보스 용의자’의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여 판단이 어렵습니다.]

“죄송할 거 없어. 놈도 보통은 아닌 것 같으니까, 뭐………….”

내가 처음 MB좀비들의 수상한 낌새를 느낀 건 주석궁을 치러 가던 도중이었었다. 그때 우리 일행은 BB형제와 함께 엄청난 장거리를 점프하는 형 태로 이동하는 중이었었다. 그런데도 우린 MB좀비들의 ‘정확한 기습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도 연속으로 두 번이나!

한 번은 우연일 수도 있었겠지만, 두 번 연속이었다는 걸 우연으로 넘길 수는 없었어. 아무리 MB좀비, 아니 웬만큼 똑똑한 인간이라도 보이지 않 는 곳에서 갑자기 날아오는 우리를 미리 대비하여 기습할 수는 없지. 그게 가능했다는 건… 우리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관찰하며 판단할 수 있는 놈…! 우리가 어디로 갈지 알면서… 그 곳의 좀비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놈…! 즉, ‘보스’가 있다는 의미지.

나는 그런 결론을 내리기는 했었지만, 계속되는 더 중요한 일 때문에 ‘MB좀비들의 보스’ 문제는 뒤로 미루어 두었었다. 그러다가 다시 주석궁을 떠나서 움직이다보니 이런 일이 시작된 것이다.

“……”

나는 잠시 내려트리고 있던 정글도를 어깨에 올리며 슬쩍 주변의 건물들을 보았다. 아니, 굳이 신경써서 살펴 볼 것도 없었다. MB좀비들도 지들 딴에는 암중에 몰래 슬금슬금 모여든 형국이지만, 이젠 아주 월드컵 경기장의 관중들처럼 득시글거리는 상황이었다.

“이만해도 한꺼번에 청소하기 좋은 상황이긴 한데…………….”

[주인님!]

음?

[MB좀비들 간의 부정형 신호 체계 분석이 끝났습니다.]

훗! 역시 우리 몽몽 선생!

[최상위 신호 발산 개체는……….]

오호~ 저기 저, 건물・・・ 무지 큰 신문 광고 간판 밑에 혼자 서 있는 남자! 백발 머리에 나이 지긋하신.. 저 좀비 영감(?)이 바로 MB좀비들의 보 스라 이거지?

[지원병력, 천음마군 팀의 도착 예정 시간은 약 11분 32초로 예상・・・ 아, 주인님! 보스 좀비의 뇌파 발산 패턴이………….]

신호 분석을 기다릴 것도 없이, 상황은 아주 뻔했다. 갑자기 주변의 모든 MB좀비들이 숨어있던 장소로부터 몸을 일으키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크와악~!”

끔직한 좀비들의 포효가 사방을 메우기 시작했지만, 나는 피식 웃었다.

“빅 존! 목표는 저기 저거!”

내가 좀비 보스를 가리킨 직후, 빅 존은 로켓처럼 자리를 박차고 뛰었다. 빅 존은 날 태우고 MB좀비들의 개떼 러시 위를 단숨에 통과하며 좀비 보 스를 향해 날았다.

“까꿍~!”

나는 장난스럽게 외쳤지만 좀비 보스는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정확하게 찍어서 날아 들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쒸이익-!

예의 심도에 가까운 나의 칼질이 보스 좀비의 뒤쪽 공간을 그었다. 거대한 광고판 뒤에 숨어있던 보스 좀비의 보디가드 격인 좀비들을 베어 버리며 착지!

쿠웅~!

빅 존의 육중한 착지 소리가 보스 좀비에게는 더더욱 천둥소리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빅 존의 어깨에서 내려 성큼성큼 다가가자 놈은 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놈은 몇 걸음 물러서기도 전에 대형 간판의 철골 지지대에 등이 걸려 멈추고 말았다.

“크윽! 크~!”

기본 소리는 다른 좀비들과 비슷한 것 같지만, 뭐랄까 좀더 표정이 풍부해 보인 달까?

“말을 알아듣는지 어쩌는지, 첫 번째 테스트!”

나는 놈의 목에 정글도를 들이밀며 말했다.

“전부 멈추게 해. 두 번째로 죽기 싫으면.”

“큭?!”

…흠. 한발 늦게나마 열심히 달려오던 좀비들이 일제히 동작 그만 상태가 되는군.

“넌 내 말을 알아듣고, 놈들은 네 명령을 듣는군. 좋아.”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자, 놈은 크윽하고 굴욕적인 표정이 되었다. 그야말로 다양한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는 좀비인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막상 잡고 보니 좀 그러네? 당신, 어느 정도까지 제 정신인거야?”

“크… 쿳, 으… 나, 나안… 아직… 아, 아니… 지그… 음……이 더… 조…은… 상태…….”

“됐어.”

“큿?”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된다는 걸 알았으니 더 지껄이지 마. 그 목소리 듣기 싫으니까.”

사실, 보스 좀비의 목에 칼을 겨누고 협박을 한 것이 통하는 순간에 모든 상황이 확정된 셈이었다.

“어쨌든, 약속하지.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넌 죽이지 않겠어. 맘 같아서는 남김없이 없애버리고 싶지만. 까짓, 한 마리 정도는 봐줄 수도 있지. 알겠어?”

이런 놈일수록 지 생각만 하기 마련이니 협박이 먹힐 가능이 높… 쯧. 참 빨리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인간성 더러운 놈들의 보스라도 그렇지, 어느 정도 망설이고 생각하는 시간은 있을 줄 알았더니 말야.

“뭐, 나도 거저 먹을 생각은 없고… 모두에게 명령해. ‘절대로 도망치지 말고 싸우라고 말야.”

“크∙∙∙ 으… 저… 정마알⋯ 나안⋯ 살려… 줄……”

“아, 거, 사람 말 되게 못 믿네. 난 네놈들과 달리 거짓말을 못한단 말야.”

다시 한 번 다짐을 받고서야 보스 좀비는 다른 MB좀비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다.

“천주!”

멀찍이서 달려오며 날 부른 사람은 당연히 천음마군이었다. 이미 ‘싸우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의 MB좀비들이 용감하게(?) 천음마군 쪽으로 몰려 가기 시작했다.

“어익후~! 감사!”

못 말리는 천음마군의 인사와 함께 그의 견신(神, 정육점 칼)이 춤추기 시작했다. MB좀비들은 일반 좀비 몇 배의 괴력과 그에 걸맞는 스피드까 지 갖춘 놈들인데도 천음마군에게는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후후. 본래도 상당한 고수였는데, 날 만난 이후 정말 놀랍도록 빠르게 나날이 강해지고 있군. 난 천음마군 일파의 무공이 천년 동안 전승되며 일부 실전 되었다고 해서 그거 몇 가지 알려주었을 뿐이지만, 나름 사부로서의 보람이 느껴지는 걸?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복원된 무공도 무공이지만, 현재 천음마군의 어린 나이를 생각하면 그는 지금 한창 성장기인 것이다. 그나저나. 몇 명은 데려오라고 했는데, 결국 그냥 천음마군 혼자 온 건가…? 이거, 나도 구경만 하고 있기는 좀 그렇군.

“소냐.”

내가 부르자마자, 보스 좀비 바로 옆에서 스윽- 모습을 드러내는 소냐와 베이비 존.

“컥? 커, 어…….?”

놀란 보스 좀비가 어쩔 줄 몰라 하거나 말거나.

“소냐. 넌 여기서 이 작자를 감시하고 있어. 가자, 빅 존!”

나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빅 존을 타고 MB좀비들 무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상대가 어떤 놈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시아아악~!

정글도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거칠 것이 없었다.


대충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앗! 천주?!”

천음마군이 억울해(?)하는 소리를 지른 건, 내가 그의 앞에 서 있던 MB좀비 두 마리를 단칼에 해치워버렸기 때문이었다.

“아, 미안.”

“에이~ 참! 이쪽 애들은 제가 다 맡으라고 하시고선, 왜 또 가로채시는 겁니까?”

“어, 그게, 내 쪽은 먼저 끝났거든? 게다가 남은 이놈들은 특히 칼질 할 맛이 나는 놈들이라……….”

그동안 몽몽은 계속 MB좀비들의 신상 정보를 찾아서 알려주었었다. 방금의 좀비 두 마리는 살아 있을 때 수많은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놈 과 상습적으로 음식에 독극물 수준의 이물질을 넣어서 팔던 놈이었다.

“아, 거!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제가 양보했잖습니까! 특히 아까 그 뭐냐, 부모가 돈 안 준다고 살해했다는 놈! 그거 제가 얼마나 밟아버리고 싶었다 고요!”

“아니, 뭐…….”

“그리고 또, 어린애를 납치해서 죽인 놈하고…. 멀쩡한 사람 죽여서 장기 밀매했다는 놈..! 으아~ 제가 그런 놈들 발라버리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 데!”

“아니, 그니까, 나도 그런 거 좋아해서…………….”

“아, 됐어요, 됐어! 그냥 앞으로도 천주께서 다 하세요!”

“저기, 지금 너무 흥분한 거 같은데?”

“제가 뭘 말입니까!”

“지금・・・ 개기는 거?”

“…아?”

문득 뭔가(?) 깨닫는 천음마군.

“아, 저, 그게 이, 이렇게… 기분 좋게 몸을 푸는 건… 간만이라 어, 제가 그만……….”

“아놔, 이거 잘하면 천주도 치겠네.”

사삭 소리가 들린 것처럼 빠르게 정색을 하는 천음마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천주.”

넙죽 엎드려 사죄하는 폼이 지극히 공손하긴 한데… 으음. 이 인간, 이거 언제 날잡아서 다시 확실하게 군기를 잡을 수 있으려나…? …내 참. 나는 결국 풀썩 웃고 말았다.

“됐네, 이 사람아. 괜히 쇼하지 마. 그보다……….”

나는 천음마군이 내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일어나는 걸 이해해주기로 했다.

“이제 슬슬~ 우리도 구경하러 가야지?”

“예? 무슨…….”

“훗. 천음마군의 동족, 케빈 장군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아.”

“아!”

우리가 MB좀비들을 청소하는 사이에 대운하의 물이 빠지고 케빈 장군의 전차부대는 그 운하를 통해 국회까지 논스톱으로 진군한 것이다. “어이~ 베이비 존! 그놈을 이리로… 아, 그냥 던지던가!”

내가 외치자, 녀석은 정말로 우왁스럽게 보스 좀비의 뒷덜미를 움켜쥐더니 상당한 거리의 이쪽 건물까지 휘익- 던져버린다. 이쪽에선 당연히 빅 존이 가볍게 캐치!

훗. 보스 좀비의 표정이 아주 가관이로군. 살아 있을 때나 지금이나 나름 권력자인데 이런 취급을 받게 되니 어떤 기분일지는 내 알 바 아니지.


잠시 후.

빅 존은 한 쪽 어깨에 날 태우고 한 손에는 보스 좀비를 짐짝처럼 들고도 전혀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았기에, 우린 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 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회로부터 약간 떨어져 있고 전황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이의 건물 위였다.

오.. 다행히 아직 시작하기 전인가?

일견 우리나라의 국회와 비슷한 면적의 부지에 건물 디자인까지 유사해 보였다. 다만 우리나라 국회의 건물들은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다른 용 도의 건물들이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데 반해, 이곳은 의사당 좌우로 다른 건물들이 거의 붙어있다시피 했다.

건물들, 아니 하나의 건물이나 마찬가지인 곳을 두터운 바리게이트와 무수한 병력이 그야말로 물샐틈없이 둘러싸고 있군. 방어선과 의사당 사이 의 공간에 상당한 화력의 장비들이 대기 중이고・・・ 건물 위 곳곳에 대공 포화 장비들까지 설치되어 있어.

당연히 대전차용으로 보이는 병기들도 잔뜩 갖추고 있어서일까? 방어 부대의 분위기는 지극히 당당하고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그에 비하면 국회 의사당 앞의 넓은 공터에 도착해 있는 케빈 장군 측 전차 12대와 잘해야 100여 명뿐인 보병들이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이런, 이런 생각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 것 같은데? 누구 때문에 말이야.”

슬며시 뒤에 대고 말하자, 조금 늦게 도착한 천음마군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저.. 말씀이십니까?”

“저 전차부대의 전력을 약화시킨 게 누구겠어?”

천음마군은 그제야 새삼 상황을 확인하더니 뻔뻔스럽게(?) 웃었다.

“그거야 뭐… 훗.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천주. 그래도 저 영감과 수하들은 어떻게든 해 낼 겁니다.”

“호오~ 이거 꽤 대단한 신뢰감인 걸? 아까 당사자들에겐 꽤나 악평을 하더니 말야.”

“후후 사실 저희들과 싸울 때는 다들 의욕도 없고, 그래서 인지 반응이 너무 어설퍼서 실망했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놀랄 만치 잘 훈련된 부대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자들에게 그 정도로 조직적인 움직임을 주입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야… 나도 어느 정도 그런 걸 감 잡았기에 케빈 장군을 믿어 보기로 한 거였다. 하지만 천음마군은 직접 싸워 본 만큼 더 확실하게 느꼈었던 모양 이군.

그나저나 케빈 장군의 전차부대가 도착한지도 좀 된 것 같은데, 왜 양측 다 저렇게 마주보고 눈싸움(?)만 하고 있는 거지? “…존. 존 모스…..!”

케빈 장군이다. 적진 바로 앞인데도 전차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말을 거는군.

“역시 자네인가?”

“……그렇습니다, 장군님.”

대답을 한, 저 장년의 남자는 방어 부대의 지휘관인 듯싶지…………?

“한 때 장군님의 부관이었던 제가, 오늘 이렇게 장군님과 적이 되어 마주서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과연 그런 사이라서 잠시 뜸을 들이고 있었던 거군.

“케빈 장군님. 옛정을 생각해서 충고 드립니다. 지금이라도 공격을 포기하고 투항하십시오. 일시적인 감정에 의한 과오는 용서받을 수 있을 겁니 다. 지금의 이 사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적으로 끝이 나게 될 겁니다. 공연히 어리석은 짓을 하다가는 과거의 명예마저 잃고…………….”

“확실히 알겠군! 그랬었어!”

“…지금 뭐라고 하신 겁니까?”

“이 사태가 곧 끝날 거라고…? 그건 좀비가 된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지?”

어? 듣고 보니, 그러네? 이 영감님, 역시 날카로운 걸?

“…그렇습니다. 오늘밤이 가기 전에 좀비 바이러스는 자연적으로 소멸 될 것입니다. 장군은 지금 그걸 알고도 이런 행동을………….”

“멍청한 놈! 바이러스만 소멸된다고 누가 그러던가! 좀비들, 아니! 우리 판타지아의 국민들까지 죽는단 말이닷! 당장 사령관에게 물어봐라! 왜 백 신을 만들 수 있으면서 거기에 숨어만 있느냐고! 대체 왜 우리 국민들을 팽개쳐 버리는 거냐고!”

“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당신, 사령관님 말씀대로 정말 미쳤군!”

양측의 언성과 감정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을 때, 먼저 움직인 건 방어 부대 쪽이었다. 대전차 로켓포들이 철컥철컥- 발사 직전의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응? 누가 명령을… 아, 사령관님?”

옛 부하가 뒤를 돌아보는 사이, 케빈 장군은 재빨리 전차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꿍~! 쿵~! 꾸릉~!

일제히 불을 뿜은 대전차 로켓포의 포탄들이 벼락처럼 공간을 갈랐다. 그러나 그건 허무하게 빈 공간만을 가르고 날아갔을 뿐이었다.

크콰콰콰콱-

거친 캐터필러 소리와 함께 물러선 전차들이 한 발 빨랐던 것이다.

꿍~! 쿵~! 꾸릉~!꿍! 쿵! 쾅~!

계속 되는 로켓포의 폭우에도 전차에 제대로 적중되는 포탄이 없었다. 일부 맞은 전차도 있었지만 상단 장갑을 스친 정도여서 거의 타격을 입지 않 았을 것 같았다.

놀라운 회피 타이밍과 위치 선정…! 케빈 장군은 국회 앞마당의 지형. 특히 국회 방향에서의 포격이 어려운 굴곡의 지점을 꿰뚫고 있는 건가?

“뭐 하는 거냐! 곡사 화기는 뭐하고 있는………….”

사령관의 고함소리가 문득 멈추어졌다. 전차 부대의 모든 포신이 단 한 지점, 즉 자신과 가까운 대전차 병기 진형에 겨누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꽈릉!!!!!!!!!!!!

12대 전차의 포신이 마치 거대한 하나의 포처럼 동시에 불을 뿜었다.

오오~ 멋진데? 한 지점을 아주 깨끗하게 날려 버렸어. 마치 케이크의 한 쪽을 숟가락으로 푹 퍼낸 것처럼.

실제로는 전체 진형의 아주 일부만이 깨진 것일 뿐이며 병력과 병기의 손실 정도는 미미한 정도였다. 그러나 이 한방(?)의 위력이 방어 부대 전체 에 가져온 공포감은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누구 하나 섣불리 반격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잘 들어라, 이 반란군 놈들아!”

케빈 장군이 이번에는 전차 안에서 방송용 마이크로 외치는군.

“이번이 마지막 경고였다! 너희들이 끝내 국민들을 저버리고, 썩어빠진 놈들의 개로 죽겠다면 그렇게 해주마!”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다시 모든 전차의 포신이 거짓말처럼 정확하게 한 지점을 향해 모아진다. 12명의 사람이 하기도 어려운 짓을 12대의 전차가 하고 있는 것이다.

“으~ 다들 뭐 하는 거냐! 적은 몇 대 되지도 않는단 말야!”

저 재수 없는 사령관. 방금 안 죽었었나?

“이 병신들아! 빨리 반격을 하란 말…….”

꽈릉!!!!!!!!!!!!

…으음. 일부 지점과 함께 드디어 사령관 사망. 아니, 소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광경이었어.

크륵~ 쿠르르르~

전차 부대가 교묘하게 짱 박혀있던 장소를 떠나 진격을 시작했다.

키이잉! 키잉!

포신이 다시 일제히 움직이자, 겨누어지는 방향의 병력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고 있었다. 반격이 가능한 병기가 바로 자신들 옆에 있음에도 그저 미 친 듯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꽈릉!!!!!!!!!!!!

다시 작렬한 12발 합체(?) 포격으로 의사당 앞의 바리케이트가 완전히 뚫려 길이 나고 있었다.

“으으~ 막앗! 달아나지 마! 이러고도 너희들이 판타지아의 군인이냐!”

총 사령관 다음의 지휘관인 존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수습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부대 전체로 번져버린 혼란을 막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게다가…………

“존 장군님! 우리가 왜 케빈 장군에게 죽어야 합니까! 우리가 왜 반란군이 된 겁니까!”

중간 간부쯤으로 보이는 자의 항변이 그들 모두의 혼란스런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 닥쳣! 적의 말에 귀기울이지 마라!”

존 장군은 나름 모범 군발의 태도를 보이며 직접 개인용 대전차 무기를 집어들었다. 가장 가까이 진격해 온 전차는 아직 대처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지휘관이 직접 한 대의 전차라도 잡으면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도 있는데…………

쿠쿵~!

응?

우리가 서 있는 건물의 뒤쪽에서 들려온 폭음에 이어 씌우웅- 뭔가가 허공을 가르고 날았다. 그리고 그 뭔가, 아니 전차의 포탄에 의해 존 장군이 허무하게 나뒹굴었다.

한 대의 전차가 후방에서 대기 중인 건 몽몽의 보고로 알고 있었지만… 이 먼 거리에서 저렇게 정확한 지원 사격을 하다니, 대단한 실력이네? “브라이트!”

응? 브라이트라면………

“흐흐~ 제가 손 좀 봐줬더니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요.”

천음마군은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브라이트 소령의 전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음마군에게 구타당한 몸으로 용케 전투에 참여했고, 천음마군 이 여기 있는 걸 봤다면 여기부터 쏘고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지만, 암튼 그가 이제 완전히 케빈 장군 편에 선 건 확실한 듯싶었다.

“그리고 보십시오, 천주! 저 영감, 진짜 해내잖습니까!”

훗. 자기가 장담한대로 되어서 기고만장한 표정이로군. “어, 물론 저렇게 손쉽게 할 줄은 저도 몰랐지만…….”

사실 나도 뜻밖이었다. 이 섬의 군발이들 모두에게 케빈 장군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가능한 일인 것 같긴 하지만, 어찌 생각하면 평소에 그런 이미 지 관리에 철저했던 것도 전략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어쨌건, 이제 전차 부대는 거침없이 의사당 건물을 포위하는군. 전차로 건물 안까지 들어 갈 순 없을 테니 포격으로 타격을 입힌 다음에 보 병들을 투입하는 아, 아닌가?

꽈릉!!!

세 대의 전차가 도시 포격으로 의사당 입구를 날려보내더니, 이어서 아예 의사당 안으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뜸 전차로 들어간 것은 물론이 고, 보병들은 아예 올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건물 안은 회선이 차단되어 있어서 몽몽도 중계방송을 해줄 수가 없지? 귀찮지만 직접 가서 구경을… 아, 그 전에…………

“전차로 건물 안까지 진격이라. 저건 또 무슨 전법인 걸까, 윈드?”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조금 전, 괴력 소녀 ‘비비안’의 품에 안겨서 건물 위로 올라왔던 윈드가 대답했다.

“특별한 명칭은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마음껏 난동 부리기’ 정도일까요?”

윈드의 해설(?)이 끝나기도 전에 건물 벽의 한 쪽이 안으로부터 폭발했고, 연이어 포성과 총격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진짜 전차로 건물 안을 휘 젓고 있는 것이다.

“저 건물을 지을 때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겠다고 통로며 거의 대부분의 공간을 아주 넓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케빈 장군님이 처음 의사당 안을 돌아보고 나서 한 말씀이… ‘전차를 끌고 들어와서 놀기에 좋겠군.’이었다고 하죠. 누구도 그 말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었겠지만요.”

과연 이 나라의 지도자를 자처하던 것들은 위엄 좋아하다 제 무덤을 판 꼴이로군. 근데 가만있자…? 이 정도면 그자들이 항복을 선언할 만도 한데 어째 공격이 끝날 기미가 없는 것 같네…………?

“장군님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 바깥의 수비대는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 봐줬지만, 저 안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들뿐이니까요.” 하긴, 저 안의 놈들은 프리온 소고기를 알고 먹지 않아서 좀비가 되지 않았을 뿐, 결국 MB좀비와 똑같은 족속들이지.

“어쨌든, 전 또 따돌림 당했네요. 케빈 장군님도 참, 운하를 통과하자마자 저만 내려놓고 가시다니………….”

윈드가 말끝을 흐리며 섭섭해하는 표정을 떠올렸을 때, 녀석의 뒤로 무서운(?) 그림자가 다가섰다.

꽁~

“으~ 또 왜 때리는 거예욧!”

윈드가 꿀밤을 맞은 머리를 쥐고 항의하자, 천음마군은 짓궂은 표정으로 히죽거렸다.

“그 영감이 애써 널 생각해 줬는데 투덜대면 곤란하지. 인마, 네가 가려던 곳을 다시 잘 봐!”

천음마군은 새삼 손을 들어서 의사당 건물, 여전히 포성과 총격음이 들려오는 곳을 가리키더니, 조금씩 웃음기를 지우며 말을 이었다.

“너・・・ 실제로 사람 죽는 거 얼마나 봤냐? 게임이나 영화 같은 거 말고, 진짜 살상의 현장 말이야..! 지금 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응?”

“그, 그야…….”

윈드가 조금 찔끔하자, 천음마군은 더욱 정색을 하며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너, 사람이 총에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디가 어떻게 부서지고 찢겨지는지… 사람의 뼈가 부서질 때 어떤 소리가 나고, 어떤 눈빛으로 죽 어가는지…………….”

윈드는 ‘자길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지만, 천음마군이 쏟아내기 시작한 얘기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해 서 그런지 너무나 생생하고 실감나는 묘사가 뒷받침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음. 저 인간, 의외로 이야기꾼 소질이 있었네? 성대모사로 효과음 내는 것도 제법이고 말야.

“…그렇게 목이 뚫린 인간이 꾸룩~ 꾸룩~ 피거품을 토해 낼 때의 소리는 마치………….”

“그, 그만! 그만 해요!”

“그런 건 약과야. 인간의 XX가 X형태로 XX된 걸 맨손으로 만질 때의 감촉은……”

“그만 하라니까욧! 뭐예요, 그게!”

결국 윈드는 귀를 막고 달아나며 듣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천음마군은 경공으로 바짝 쫓아가며 귀에 대고 계속 끔찍한 상황 묘사와 효과음을 들려 주고 있었다.

인성교육이라기보다는 그냥 놀리는 것 같긴 한데. 뭐, 악당 지망생(?) 꼬마에게는 저런 것도 나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유준 형님! 좀 말려주세요!”

결국 나에게까지 도움을 청해 오는 걸 슬쩍 모른 척 해주었다.

“어디 보자… 바깥 상황도 거의 정리되어 가는 분위기네…………?”

사실, 천음마군과 윈드의 사이좋은(?) 모습보다도 국회 건물 주변의 상황이 더 흥미롭기도 했다. 수천 명의 병력이 고작 백여 명의 적(?)에게 항복 을 해버리는 상황도 이채로웠지만… 케빈 부대의 보병들에게 상황 설명을 듣고는 곧바로 한 편이 되어버리는 과정은 더욱 보기 드문 광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주위를 감싸고 있던 운하의 물 때문에 접근을 못하던 좀비들이… 혼란스런 와중에 다리를 건너서 밀려들고 있으니 일단 합심하여 막을 수밖 에 없기도 하겠지. 흐음. 어쨌든 다들 좀비의 머리를 파괴하지 않고 진압하려 애쓰는 걸 보니까 제대로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군. 이제 백신만 준비되

[주인님! 은사마군의 연락입니다.]

타이밍 좋구만.

몽드폰을 들자 은사마군의 심상치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천주…! 저어… 하명하신 대로 연구원들을 모두 확보했습니다만…………”

역시 은사마군. 케빈 장군의 난동(?) 속에서도 임무를 잘 수행했다면서 분위기가 왜 이래?

“그런데 뭔가 잘못 된 것 같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그게・・・ 천주께서 확보한 연구실 소속의 연구원들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은 백신을 만들 능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엥? 이건 또 뭔 개풀 뜯어먹는 소리?

“아무래도 대부분 고위직의 자녀나 그밖의 인연으로 자리에 오른… 명색뿐인 자들인 것 같습니다.”

옘병!

“연구소장과 부소장. 두 사람만 해당 능력이 있다고 하나, 그들도 좀비 사태 초기에 당한 부상 때문에 협조가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이… 일단 전부 끌고 나왓!”

“복명!”

빌어먹을! 속으로 썩은 나라라고 하지만 설마 그런 곳까지 개판일 줄은..

“…몽몽.”

[죄송합니다, 주인님. 저희가 확인하기 전에 손상된 서버가 많아서 연구원들의 학위 및 연구 실적 데이터의 완벽한 검증까지는…………….]

“지난 일은 됐고! 그보다, 대신할 만한 인력을 빨리 찾아보라구!”

[…가칭, 프리온 백신 확보 예비 시스템 가동합니다. 우선 대치 가능성이 높은 인재의 명단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으잉? 이건 이거대로 놀랍네? 아무리 척척박사 몽몽 선생이라도 그렇지…………

“벌써? 지금 한 1초나 걸렸냐?”

[기존 연구원들의 데이터를 모두 검증할 수는 없었으나, 그들의 자질을 의심하는 일부 비 공인 언론 데이터가 몇 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만약을 위해 예비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어이구야, 이런 심각하게 꼼꼼한 우리 몽몽이!

[대치 가능 인력들은 대부분 아직 좀비화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그 중 두 명은 주인님께서도 아는 인물들입니다.]

“어? 누군데?”

[그들은・・・・・・]

오호~ 그랬단 말이지? 근데, 한 사람은 그래도 좀 이해가 되지만 또 한 사람은 정말 뜻밖일세…? 음, 암튼!

“천음마군!”

“…응? 아, 예! 천주!”

쯧. 저 인간, 아직도 윈드를 괴롭히고 있었군.

“이제 그만하고, 사람들을 좀 찾아서 데려와야겠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하명하십시오!”

“아, 첫 번째 인물은 윈드가 직접 가는 편이 나으려나?”

“예?”

천음마군의 집요한 정신공격(?) 때문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윈드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백신 제조에 필요한 숨은 인재. 공중 보건의, 미나 H 샌더스…! 그래, 니 누나!”


얼마 후.

나는 은사마군팀, 그리고 허울뿐인 연구원들과 함께 주석궁으로 복귀했다. 아무리 형편없는 놈들이라도 조수 역할은 할 수 있겠거니 하고 데려온 것이다. 저것들을 대신할 사람들이 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안심할 때는 아니었다. 이제부터 자그마치 16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위한 백 신을 만들고 그걸 접종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아니, 그건 총 인구 숫자고. 우선 1만 명 정도로 추정하던 ‘게릴라들이 실제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니까 15만 명 정도로군. 게다가 감염되 지 않은 사람들 수도 꽤 많고……..

[주인님.]

음? 왔나?

연구소로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미나’였다. 그녀는 동생 윈드와 함께 비비안에게 안겨서 주석궁까지 날아(?)온 상황 자체에 약간 얼이 빠진 것 같 았다.

“아하하… 이거 대체 무슨 일이……….”

“응? 윈드에게 얘기 못 들었소?”

“아… 오면서 얘기는 들었지만, 갑자기 그런 일을 해야 한다니까 좀 당황스러워서..”

“알고 보니 판타지아 국립대학 최고의 천재로 유명했었다면서, 뭘 그러슈.”

“…흣. 한때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기는 했었죠. 하지만…….”

미나가 연구소 안으로 고개를 돌리자 허울뿐인 낙하산 연구원들이 일제히 시선을 피한다. 미나는 그 중 특히 연구소장을 주목하며 쓴웃음을 지었 다.

“어떤 교수님께서 찝적대는 걸 조금 강하게 거절했더니… 그때부터 내리막길 인생이 되더군요. 대학과 학계 전반에 걸쳐 힘이 있는 분이다보니 어 디 항의할 곳도 없었고 실력자의 눈 밖에 났다는 게 알려지자마자… 동료나 후배, 선배 가릴 것 없이 돌아서서 저를 헐뜯기만 했고 말이죠.”

알만하군. 보통 실력도 없는 것들이 곧잘 하는 짓이 바로 진짜 실력자를 씹어 매장시키는 거지. 그래야 자신들이 억지로라도 들어갈 자리가 생길 테니 말야.

“음. 하지만 뭐, 보건소나 항구 검역소 생활도 나쁘진 않았어요. 덕분에 누구보다 빨리…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노예…도 만날 수 있었고 말이죠.” 으음. 이 아가씨, 왜 뜬금없이 이 몸을 검역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실실 쪼개고 그래?

“크흠. 음… 어쨌든, 오늘은 당신에게 이 연구소를 맡길 생각이니까. 저 인간들, 알아서 쓰던지 말던지 하쇼.”

“…후후.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요.”

미나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돌아보자 허울뿐인 연구원들 누구도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 다음 사람도 왔군.”

복도 끝에서 베이비 존에게 들려서 오고 있는 남자는……………

“어멋? 맥스 씨? 당신도?”

미나가 놀랄 만도 한 것이, 나도 처음엔 믿기 어려웠었어. 생물학 계열은 고사하고,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경비업체 직원이 이 분야의 실력자라니 말야.

“사실 바깥세상의 우리나라에도 당신처럼 전공과 관계없는 일을 하게 되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댁은 어찌 되었던 거요?”

내가 묻자, 모범청년 맥스는 쓴웃음부터 지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죠. 공부 잘했으면 뭐합니까. 전공 분야에서 취직 못하면 아무 일이라도 해야지 먹고살죠.”

“자, 잠깐만요!”

미나가 뭔가 생각해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맥스? 혹시 코블 대학 출신의 세균맨 맥스?”

“아… 네, 미나 씨. 옛날 별명을 오랜만에 듣네요.”

세균맨…? 별명이 좀 거시기 하긴 하지만, 어쨌든 세균학으로 유명했던 모양이군.

“맙소사!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된 거죠? 네?”

“하핫~ 너무 그러지 마세요. 경비업체 일도 나름 재밌어요. 나쁜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면 인간 백신이 된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사람 좋게 웃으며 대꾸하던 맥스의 시선이 무심결에 연구소 안으로 향했다가 문득 멈추어 졌다. 성격 좋은 그의 얼굴에도 어두운 표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매크라우드… 교수님? 오랜만이네요?”

연구소의 부소장이로군. 아마 맥스는 부소장 때문에… 어랏?

철컥!

맥스는 대뜸 권총을 뽑아 들어 부소장을 겨누었다. 이 모범청년의 돌발 행동에 놀란 건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당연히 부소장은 더욱 혼비백산하여 피하려다 쿠당탕 바닥에 나뒹굴었다.

“맥스… 씨?”

미나가 진정시키려는 듯 다가서자 맥스는 먼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권총을 내렸다. 매크라우드 부소장은 원래 부상을 당한 몸이라 그런지 계속 일어서지 못하고 끙끙댔지만, 누구도 그를 부축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걱정 말아요, 미나 씨. 장난이에요, 장난. 한 때는 정말 저 인간을 쏴 죽여 버리고 싶었었지만 지금은 다 잊었어요. 사실, 누구 이름으로 발표가 되었든. 제 이론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그만인 거죠, 뭐.”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매크라우드 교수의 최대 업적으로 알려진 논문이 사실은 당신 것이라는 얘기를요. 당신은 그때까지 연구한 성과를 모두 빼앗기고 좌절해서 폐인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매크라우드 교수에 의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는 소문까지 있었는데. 아, 그런데 대학 신 문에서 봤던 사진과는 전혀 틀리네요?”

“아, 네. 그때는 항상 연구실에만 있다보니…………….”

“후후~ 산타클로스 같은 수염도 없고 머리도 단정한. 지금이 훨씬 멋있어요.”

“예? 에, 아, 그.. 미나 양도 10차 미생물 포럼에서 봤을 때보다 더 예뻐진 것 같………….”

“어멋? 그때 절 봤었다고요? 그럼 오늘 왜 아는 체를 안 했죠?”

“그야…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닌 것 같고 해서………….”

“후후~ 이제 보니 우린 오래 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네요?”

으으음. 이건 또 웬 뜬금없는 분위기?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얘기지만… 훗.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감 잡은 윈드가 심통이 난 표정으로 나서는 군.

“뭐 하는 겁니까, 두 사람! 빨리 연구소 장비 파악하고 준비해야죠! 서둘러욧!”

“어.”

“으응.”

윈드의 재촉을 받은 두 사람이 주춤거리며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아예 딴 길로 샛던 맥스는 특히 더 낯설어하는 것 같았지만, 전자 현미경인 듯 한 장비를 비롯해서 익숙한 물건들을 보며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타의에 의해 떠났던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나는 모 양이었다.

다른 숨은 인재들도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으려나…? 뭐, 어쨌든… 천음마군과 CR들이 부지런히 찾아 데려오고 있는 중이니까, 백신 제작에는 별 문제 없을 것 같군. 그 다음엔 예정대로… 케빈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와 우리 애들, 감염되지 않는 사람들까지 힘을 합쳐서 접종을 시작하고… 특 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새벽 1시에서 2시쯤에는 모든 사태가 종결 될 수 있겠고… 그렇다면 내일 아침에는 이 섬의 모든 국민들이 진정 눈 부신 아침을… 우리나라로 치자면 광복절쯤 되는… 으음… 그게, 그러니까…………

“부럽군.”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다.

“예?”

윈드가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사실 이렇게 난장판이 된 섬을 부러워한다는 건 말도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기왕 망가진 거, 망가지게 만든 원흉들을 이렇게 깨끗하게 처리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은 진심으로 부러웠다. 내가 아는 어떤 나라'(?)는 나라를 팔아먹고 동족의 피땀을 빨아먹은 개새들을 끝내 다 정리하지 못해서… 지금은 그 후손들이 더 떵떵거리고 사는 그런 나라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 그 어떤 나라의 묵은 쓰레기들도 곧・・・ 하나하나… 정리가 될지도 모르지. 정의의 사도도, 애국지사도 아니며 자기 일에만 바쁜 어떤 놈팽이가… 이젠 웬만한 일로는 재미가 없어져서 말야. 심심할 땐 그런 쓰레기 청소나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지도 모르거든. 어디까지나… 심심풀이 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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