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60화 : 지하무림의 미래와 현재.
10. 지하무림의 미래와 현재.
CR아이들의 새로운 인생을 기원하는 마음과 그 이후에도 녀석들과 함께 할 천음마군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서…………!
나로서는 그렇게 은근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며 시작한 천음마군과의 술자리였다. 그러나 불과 이십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우리는 각자의 술병과 술잔을 머리 위에 들어 올리고 거꾸로 흔들 수밖에 없었다.
“쳇~ 역시 내 준비가 너무 부족했군.”
“후후~ 저도 아쉽긴 하지만.. 천주께선 오늘 이미 최고의 명령을 내리신 듯하더군요.”
“후후~ 다른 사람들에겐 몰라도 천음마군에게는 그런 명령이긴 했겠군. 그렇다면……….
난 동짜몽(도라에몽의 우리나라 번역 +개명 이름)의 주머니 못지않은(?) 건빵 주머니에서 호출기를 꺼냈다. 구중천내에서만 쓰이는 이 호출기는 나와 대교, 그리고 우리 직속의 몇몇 어사조에게만 지급되었다고 했었다.
“예, 천주!”
호출기에서 씩씩한(?) 은사마군의 음성이 들려오자 내 앞의 천음마군이 기대에 찬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 은사마군. 현재 분위기는?”
“하명하신대로 시작하긴 했습니다. 이미 다들 흥이 올라…………….”
그래. 난 아까 길을 헤맬… 아니 그냥 자유 시찰을 하던 도중에 자룡대주의 연락을 받고 ‘시작종 따로 울릴 필요 있나? 그냥 대충 시작해.’라는 명령 을 내렸었지.
“하온데, 천주와 천모께서는………..?
“어, 나도 천음마군과 가볍게 시작했어. 대교도 좀 이따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신경쓰지 말고.. 아, 그보다, 은사마군. 이런 날은 은사마군과 천음 마군도 더 편한 게 좋겠지? 그러니까 천음마군의 금제도 일시 해제! 오케이?”
“우오오~ 감사합니다, 천주!”
내 앞의 천음마군이 먼저 기쁨의 탄성을 질렀지만, 나는 은사마군의 반응이 더 궁금해서 새삼 호출기에 더 귀를 기울여보았다.
“알겠습니다, 천주.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반응이 좀 밋밋하군. 첨부터 ‘일시 해제’라고 구체적으로 말할게 실수였나?
“실은 저 역시 오늘은 천음마군보다 신경 써야 할 남자가 있었습니다, 천주.”
으잉? 나 지금 잘못들은 거 아니겠지?
이번엔 천음마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지만, 천음마군은 벌써 일어나서 음왓하핫! 소리를 내며 몸을 돌리고 있었다.
“이, 이봐, 천음마군. 방금 은사마군 얘기 못 들었…….”
“예? 그녀가 설마 천주의 명에 불복하기라도 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흐흐흐~ 그럼 죄송하지만, 저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어, 그, 그러든가.”
천음마군은 여전히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몸을 돌렸고, 빠르게 멀어져 버리고 있었다. 그동안 내 명령에 의해서 은사마군에게 해피한 쌈박질 라 이프와 술병까지 관리 받아야 했던 천음마군입장에서는 당장 은사마군을 찾아가 약 올리며 술 퍼마시고 싶은 마음인 건 당연했다.
하지만… 설마… 오늘 천음마군이 은사마군 때문에 아직 누군지 모를 ‘은사마군의 다른 남자’에게 칼부림을 하는 그런 광경을 보게 되는 건 아니 겠지…………..?
난 심히 불안해져서 호출기를 들고 자룡대주에게 연락해서 천음마군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려야하나 망설였지만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그만두 고 말았다.
…훗. 내가 또 주변의 온갖 일 다 참견하고 다니는 아줌마군황 모드가 될 뻔했군. 솔직히 대교와 수다 떨 소스로 정보수집(?)하는 건 포기하기 힘들 어도 참견은 이제 과감하게 자제하자구, 진유준.
“…요몽. 대교는? 아직도 반성 중?”
「어~ 조금 전에 확인해 보려했는데, 아무래도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는 거 같았어요.」
에? 대교가 그 정도로 심각하게 자아비판을 하고 있다고? 사실 오늘 우리 커플에게 주어진 반성과제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긴 하지만. 음. 안되겠
군.
잠시 후.
난 요몽의 안내를 받아 지하 8층의 우리 거처까지 다이렉트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요몽이 ‘바로 여기예 요’라고 하는 문앞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까 본 구양대주의 거처 문과 조금(?) 다른 분위기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단, 서울 우리 집 현관의 두 배 정도 크기…? 딱 봐도 구조는 좌우로 열리는 금속문 같은데 실제 재질은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대리석 같은 느 낌..? 흐으음.. 아까 오전에 몽몽의 갑작스런 귀환 보고를 받느라고 찾았었던, 그리고 초돌과 미령이 문제로 고민을 하기도 했던… ‘호텔방 수준의 우리 거처’라고 생각했었던 곳은 알고 보니 각층마다 몇 개씩 있는 휴게실일 뿐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지금 이 진짜 우리 처소는……
내 머리 속으로 아까 내가 군복무한 특공대 연병장 두 개를 합쳐놓은 듯한 크기의 내 전용 ‘연무실’이 먼저 떠올랐다. 아까의 자유시찰로 얼핏이라 도 확인했던 여러 시설물들과 그 모든 것들을 품고 있는 이 거대 구중천의 스케일이 반영된 나와 대교의 거처라는 장소에 대한 공포심(?)이 날 새삼 쓴웃음 짓게 했다.
「주인님. 이번에는 실내를 먼저 스포해 드릴까요?」
“훗. 짜식, 다 와서 무슨………….”
나는 결국 한걸음을 더 떼어서 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금속인지 대리석인지 모를 문이 자동으로 스르르 거의 소리도 없이 좌우로 열려지며 갑자기 훤히 탁 트인 실내가 자태를 드러냈다.
흠~ 내가 너무 앞서 걱정했던 건가? 이 정도면 오전의 소위 ‘호텔급 방보다 약간 더 클 뿐인 나름 조촐하고 검소한… 훗! 나두 참. 생전 이정도 방 에는 묵기는커녕 구경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던 놈이 이젠 아주 VIP물 제대로 들었네.
나는 쓴웃음을 짓는 한편 어느 정도 안도하며 실내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극히 짧았다.
뭐냐, 이 불길한(?) 기분은…? 으~ 젠장. 겉만 번지르르했지 침대나 여타 취침 분위기 쏙 빠진 이 분위기는…………….
「우히~ 더는 못 참겠다! 이제부턴 제가 본격적으로 안내해 드릴게요오. 여긴 우선 주인님 커플께 접견을 요청한 사람들이 대기하는 접견실!」
역시나 이 가본적도 없는 초특급 호텔방이 접견실인지 면회실인지 같은 거라면 본방(?)은 대체… 으~ 젠장맞을. 당장 자룡대주에게 ‘나 방 뺄 래.’라고 해야겠다. 난 자다 일어나서 화장실 갈 때 구보로 몇 십분 뛰어야하는 방 같은 건 싫………….
「홍홍~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아주세요용. 우선 저희들의 선물로부터 인사를 받으시고요오!」
선물? 몽몽남매들의…? 그리고 뭐, 인사?
우웅~하는 뭔가 모르게 익숙 내지는 친숙한 기계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본 나는 그만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 사람만큼 큼직한 후추통(?)은……………
“주인님~ 처음~ 뵙겠습니다~”
우이쒸. 저 걸죽한(?) 기계음은 정말 그………….
“달렉?”
“그렇습니다~ 저는 개과천선한~ 달렉! 달렉, 입니다~”
“나아참. 야, 요몽!”
난 어이없어 하면서도 결국 웃음기를 담아서 요몽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넵. 주인님. 우히~ 마음에 들어 하실 줄 알았어요오.」
“얌마. 이건 마음에 들고 어쩌구를 떠나서… 암튼, 누구 아이디어냐?”
「그야 물론, 이 달렉 1호는 저와 패티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아이디어 선물입죠. 주인님은 예전에, 대교님은 최근에 그 영국 드라마에 빠져 계 시잖아요.」
훗. 그렇긴 하지. 난 사실 군대가기 전에 시즌 몇 개 보고 요즘엔 바빠서 못 봤지만, 대교는 요즘 틈만 나면 그 ‘닥터 후(닥터 누구셈?)’을 보는 거 같 았어. 뭐, 대교는 드라마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시간 여행’에 관한 공부 겸해서 보는 거 같기도 했지만… 암튼.
“방금 달렉 1호라고 했냐? 그럼 설마 이 달렉도 영드에서처럼 떼거지로 만들어 둔거냐?”
「아니, 그건 아니요. 일단 1호만 주인님 처소 관리 당번으로 만들어지게 했어요. 뭐,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단기간에 더 만들 수도 있지 만요.」
“그건… 됐다.”
내가 영드 닥터 후에서 달렉 캐릭터를 선호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후추통 개떼러시까지 현실에서 재현하는 건 좀………….
“그보다 요몽. 그럼 혹시 저건… 그거?”
내가 턱짓한 곳은 내가 들어온 출입문과 반대편의 벽과 그 한가운데쯤에 걸려있는 커튼이었다. 폭이 4, 5미터 정도 되는 말 그대로 커튼처럼 보였 지만 아무래도 그 뒤의 뭔가를 감추기위한 포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렉~ 달렉~’
예상대로 달렉 집사(?)가 스르르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이며 커튼 쪽으로 향해서 나도 걸음을 떼어 천천히 따라가 보았다. 자룡대주에 게 ‘방 빼’라는 말을 하려고 꺼내들었던 호출기는 이미 건빵주머니 속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달렉~ 달렉~”
달렉 집사의 몸체에서 지이잉 기계 팔 같은 것이 나오더니 커튼 한 자락을 잡고 당겼다.
「짜잔~주인님과 대교님만의 ‘타티스’~ 개봉박두!」
과연… 드라마 속 공중전화박스 디자인 그대로 재현된 거 같군.
“훗~ 요몽. 설마 이거 열고 들어가면 이 안에 현실을 무시한 공간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헤헤~ 전 솔직히 그렇게 만들자고 했는데 몽몽 오빠가 반대를 해서… 뭐어 그래도 이제부턴 원작보다 더 나을걸요? 적어도 주인님과 대교님께 는 말예요.」
뭐? 설마 이 녀석들………….
예의 타티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던 나는 잠시 짧게 호흡과 모든 동작까지 멈출 수밖에 없었다. 타티스 문 안쪽의 공간은 내가 처음에 우려 했던 ‘침대나 화장실가려면 구보 몇 십분’ 규모는 아닌 거 같았다.
하, 지, 만… 이, 이 방, 아니 이 장소는………….
「우히~ 주인님과 대교님의 최초 밀회장소오~ 네에 비화곡의 성지, 되겠습니다아!」
“핫! 핫! 핫~”
나도 모르게 의미부여 난감의 웃음이 나왔다. 너무나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솟구쳐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진짜 비화곡의 옛터도 복원 중이니까 여긴 별장 정도로 생각하시… 음. 아무래도 전 이쯤에서 눈치 빠르게 잠시 빠져 드리겠사와요~」
요몽이 포릉 사라지고 난 허공을 통과해서 천천히 돌계단을 밟아 내려기 시작한 내 시선이 먼저 향한 곳은 진짜 비화곡 성지와 똑같이 재현된 중 앙 연못이었다. 그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나의 소녀는 당연히 대교였다. 그녀는 그때처럼 차가운 물속에 전신을 담그고 앉아 있었다.
“춥겠다.”
내가 입을 열자, 대교는 눈을 뜨고 천 년 전처럼 고운 미소를 피어올렸다.
파앗~!
솟구친 그녀의 신형을 따라 흩날리는 물방울들이 야광주 불빛을 반사하며 보석의 안개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달렉~ 달렉~”
윽! 갑자기 분위기가………….
마주 다가서며 천 년 전의 감정을 음미하던 우리는 동시에 풋~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차차~ 죄송! 달렉 집사를 일시 중지시키는 걸 깜박⋯ 에효~ 분위기 메롱 시켜서 죄송해요!」
“훗. 괜찮아, 임마. 그보다………….”
달렉 집사는 두 개의 막대기 같은 기계 팔에 각각 대교의 옷가지와 수건 등을 챙겨오는 중이었다. 나는 그쪽으로부터 등을 돌려주며 말을 이었다.
“요몽. 이번엔 진짜 왕창 칭찬해 주고 싶다.”
「와우~진짜요? 정말요?」
“그래, 돈 있음 빵 사먹・・・ 아니, 미안. 구석기유머 할 뻔했네.”
「헤헤~ 말씀하신 김에 진짜 그거 해주심 안 될까요?」
“응? 뭘?”
「빵이요, 빵. 아니, 메뉴는 저희들이 알아서 고를 거니까, 주인님께선 미각 시스템 확장팩만 허락해주심 되요.」
…흠. 그러고 보니 난 언젠가 녀석들에게 ‘미각 인식’ 프로그램을 허락해 준 적이 있었고 그때부터 녀석들은 소위 맛난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고 했었지? 그런데 이번엔 그 확장팩?
「실은용. 몽몽 오빠가 식신마군 정도로 뛰어난 쉐프가 만드는 요리를 제대로 즐기려면 기본 미각 시스템만으로는 안 된다고 확장팩을 만들었거든 요? 근데 울 몽몽 오빠 디게 쪼잔한 거 아시잖아요. 뭐랬더라? ‘입만 고급’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딱 한번만 그걸 쓰게 해줬지 뭐예요? 계 속 패티랑 함께 졸라도………………」
“아, 알았다, 알았어. 나도 몽몽과 너희들 간에 일을 참견하긴 좀 그렇지만… 까짓 거 너희들도 이번 지하무림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치자.” 「오예~! 주인님, 캄쏴! 몽몽 옵빠아~!」
수다를 겨우 멈추고 몽몽에게 날아간(?) 요몽을 보고 있자니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대교. 수수께끼가 전부 풀린 거 같다.”
내가 몸을 돌려 자기 쪽을 향하자, 아쉽게도…가 아니라, 하여간 그 사이 젖은 옷을 갈아입은 대교가 고개를 갸웃했다.
“난 계속 요몽이 이번처럼 큰 비밀을 어떻게 오래 감춰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었거든? 근데 이제 보니………….”
난 대교에게 조금 전 요몽 녀석과 나눈 얘기를 들려주었고, 대교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몽몽이 요몽에게 식신마군 요리급의 맛을 경험하게 해주고, 그걸 다시 맛보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걸고 비밀유지를 유도했다면 요몽의 입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겠네요.”
“그렇지? 물론 오늘 내가 소위 ‘식신의 낙원’을 겪어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추리지만 말이야.”
“그래요. 저도 식신의 요리는 정말이지… 음. 꼭 배우고 싶어요. 그래야 오라버니께도 항시…….”
“와우~ 그렇게 되면 ‘대교 마님의 낙원’이 되는 셈이군.”
대교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마주 웃었지만, 곧 천천히 그리고 새삼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아깐 혼자보기 싫어서 자세히 돌아보진 않았지만 지금다시 보려해도… 후후~”
대교는 문득 소리 내어 웃으며 이 장소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녀석에게 시선을 보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라버니와 저의 성지를 재현해준 분들에게는 죄송하게도… 당장은 자꾸 이쪽에……….”
“달렉~ 달렉~”
“하하~ 나도 그래. 아이디어의 참신함으로는 몽몽 녀석들의 판정승이었던 셈이야.”
“달렉~ 주안상, 마련합니다. 달렉~”
응? 뭐?
우리가 다소 어이없어하면서 보는 사이에 우우웅- 소리와 함께 달렉 집사가 향한 곳은 비화곡 성지에서 내가 야전침대 겸 식탁으로 썼던 돌평판을 재현한 곳이었다.
…거참. 기계 팔이라고는 해도 막대기에 집게발 같은 거 달린 형태인데… 근데도 몸체에서 술병이며 술잔, 안주접시까지 안정적으로 꺼내놓네? “어머~ 정말 대단해요.”
“그러게?”
우리는 돌평판 앞의 바위 디자인 소파에 앉아보았고 디자인만 그렇지 실제로는 매우 폭신하고 안락한 소파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세세한 모든 배려에 새삼 감사하며 술잔을 들었다.
“음~ 너무나도 고맙고 사랑스러운 몽몽 남매들과 지하무림 모두를, 수하로 둔 왕잘난 나를 위해서 건배!”
대교가 쿡 웃으며 잔을 부딪혀왔고, 당연히 원샷~
아아~ 쓰바스럽게(?) 기분 좋네. 농담으로 어떻게든 무마하지 않으면 진짜 쪽팔리게 눈물 찍 할 거 같잖아, 이거.
난 본래 여기 오면 대교가 꽤 오랜 시간 동안 대체 어떤 반성을 했는지 묻고 싶었었지만, 이제 그런 건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졌다.
“아참. 유준 오라버니.”
대교는 뭔가 생각이 난 듯 내게서 막 받은 술잔을 그냥 내려놓았다.
“전 오늘의 깜짝 선물 얘기를 듣고 모두의 뜻에 동의하긴 했지만.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도 오늘 계속 많이 놀랐는데 음. 사실 오늘 제가 가장 놀랐었던 건 따로 있었어요.”
응? 아직도 또 놀랄 일이 있다고? 지금 대교의 시선이 향한 곳은… 비화곡 성지로 치면 ‘비밀 서고’? 여기 우리 두 사람의 성지에도 비밀서고 같 은・・・ 아니, 아니 그런 게 있어도 별로 놀랄 건 아니지 않나?
“달렉. 그 아이들 좀 나오게 해주겠어?”
“달렉~ 그, 아, 이… 분석 불능. 새로운 명령어, 입력 요망. 달렉∼”
흠. 달렉 집사의 인공지능은 아직 초보적 수준인 모양이군. 근데 그보다… 대교가 지금 말한 ‘그 아이들’이란 대체 뭘까………?
대교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큰, 고양이들 말이야, 달렉.”
에? 뭐시라고라?
“달렉~ 유효 명령어 확인. 달렉~”
달렉 집사의 후추통 상단쯤에서 푸른빛이 반짝인다 싶더니만, 멀찍한 거리의 비밀 서고(?) 문이 지이잉- 열리기 시작했다. “꺄아옹?!”
이, 이 낯익은 괭이 소리는…? 설마 진짜 그 녀석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서자, 비밀서고 아니 비밀 우리(?) 안에서 거대한 호랑이 같은 그림자가 어슬렁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세이버 원, 투, 쓰리?”
내가 반갑게 외치자, 녀석들도 날 알아보고 기쁘게 달려오고 있었다.
“하핫핫~ 나 이거 차암! 야! 야! 임마들아, 진정해, 진정!”
공룡섬에서 만났다가 아쉽게 이별을 했었던 세 마리 괴수를 가장한 고양이들은 연신 나를 핥고 부비부비를 하면서 반가움을 표하고 있었다. 비주 얼상 내가 잡아먹힐 걱정이 살짝 들었는지, 경계의 기색까지 보이던 대교가 결국 한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후훗훗 소리를 냈다.
“정말, 정말이지 이걸 귀엽다고, 하긴 해야할 거 같은데……………
나도 사실 난감하긴 했다. 녀석들이 반갑고 좋긴 했지만, 내 손바닥 두배 이상 큰 혓바닥으로 핥음을 당하는 피부가 너무 따가워서 호신강기를 써 야할 형편이었던 것이다.
「짜잔~ 요몽 사육사 등자안!」
한손에 작은 호리병 같은 걸 들고 나타난 요몽이 그걸 입에 대고 홀짝이며 다른 손을 들어서 허공에 몇 개의 공 영상을 만들어냈다. 꺄옹? 소리를 낸 세이버 한 마리가 그쪽으로 관심을 돌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세 마리 모두가 요몽이 만들어낸 공을 잡으려고 달려갔다.
저 녀석, 공룡섬을 떠난 후에도 계속 짬짬이 세이버들을 더 길들이고 있었던 건가? 하긴 그곳의 장비들을 이용하면 요몽이 세이버들에게 보이는 형태의 영상으로 현신(?)할 수도 있었겠어.
“아, 천주?”
내가 호출기를 써서 연락한건 자룡대주였다.
“후후 여긴, 아니 구중천 전체가…………”
말하면서 호출기를 많은 사람들 쪽으로 향했는지 왁자지껄 난리통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런데도 아직 오시지 않는 걸로 보아 천 년 전과 똑같이 재현된 두 분의 밀회장소가 마음에 드셨나봅니다.”
쳇.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연락한 건데 어째 분위기가……………
“하긴, 그곳은 완벽 방음을 자랑하니, 두 분이 어떤 얼레리 꼴레리를 하신다고해도…”
“우쒸! 우리가 뭔.. 하여간 갈게, 우리도!”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천주. 그곳은 장가계에서 꾸며드리려고 했었던 공인 ‘신방’입니다. 그러니 마음껏 천모와 얼레리 꼴레리~” 으윽! 지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다니…
“크흠. 흠. 대교, 아무래도 자룡대주가 벌써 거하게 한잔 했나봐.”
“그, 그러게요.”
흠. 흠. 대교도 다 들은 모양이군.
“큼. 흠. 그럼 우리 이제 어쩐…다?”
“예? 뭐, 뭘, 요?”
“…저기, 대교. 그렇다고 청명검을 뽑는 건 좀..
“어멋?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대교는 쓴웃음을 지으며 낮은 한숨을 내쉬더니 청명검을 다시 넣고 조금 다른 의미로 비죽이 웃었다.
“아직 반성의 시간이 부족했었나 봐요. 방심도 무섭지만 ‘과민’도 결코 좋지 않거늘, 그것도 하필 유준 오라버니 앞에서… 정말 죄송해요.”
– 요 맹랑한 아가씨 좀 보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는 오래도록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지금은 상당히 빨리도 감정수습을 해버리네? 오랜만에 가진 연못 속에서의 반성시간이 꽤 각별했나본데?
“좋아, 대교. 여기서 분위기 잡는 건 어차피 건전하게 파토 났고…(이거 오늘의 유행어?) 우리도 나가자!”
얼마 후.
우리는 세이버 두 마리를 각자 나눠 타고 파티장으로 향했다. 고양이과 괴수 특유의 야들야들 폭신 샤방한 탑승감을 즐기면서도 다른 사람들 반응 을 약간 걱정했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아, 천주! 천모! 오늘 파티 감사합니다!”
마주치는 수하들마다 우리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세이버들에게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눈치건 물론이고 간혹 보인다 해도 귀여운 옆집 고양이 만난 수준이랄까?
「후후~ 실은요, 처음엔 다들 꽤 놀라긴 했었어요. 하지만 그전부터 다들 주인님의 공룡섬 활약과 세이버 습득(?)까지 알고 있었던 데다……………」 알만하군. 세이버 녀석들도 워낙 사람들을 좋아해서 애교께나 부렸겠지.
자룡대주가 파티 장으로 선정한 장소는 지하 5층과 3층에 걸쳐서 3개 층 모두와 연결된 공동 공간. 그러니까 아까 나의 자유시찰을 정처 없게 만 들었던 근원지인 셈이었다. 세이버들은 내가 공룡섬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이곳으로 공수(?)되어왔고, 그동안 계속 구중천 여기저기를 요몽이나 어사조들을 따라서 다니며 길을 익혀왔다고 한다. 이 넓다 못해 광활한 구중천내에서만 운행되는(?) 괴수자가용인 셈이었다.
“천주! 천모! 납시었습니까!”
거대한 운동장으로 통하는 분위기의 입구에서 우리를 맞은 건 자룡대주였다. 그녀는 나와 호출기로 통화할 때의 방자한 모드는 씻은 듯 감추고 당 당한 포스와 각 잡힌 단정함을 동시에 뽐내며 웃고 있었다.
쳇. 내가 살짝 당했나? 오늘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말야.
자룡대주는 스윽-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물러나 길을 트며 두 손을 뻗어 안쪽을 가리켰다. 아까 자룡대주의 호출기 너머로 들려오던 소리들은 입구 부근에 몰려들어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들도 우리에게 포권과 함께 물러나며 길을 트고 있었다. 우린 분명 수백 명의 군중을 통과해 나간 거였지만, 곧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도 전체에 비해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라버니 여긴, 이건 대체..”
아무리 살짝 재각성한 대교라도 평정심을 놓칠 만큼 놀라운 광경이긴 했다.
“하핫! 아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네.”
나는 먼저 경험한자의 여유를 부리며 웃을 수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정말이지 몇 번을 본다 해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아까 내가 스쳐 지나면서 목격했던 모든 것들은 거의 다 조명이 꺼져있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모든 곳에 환하게 조명이 밝혀져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곳은! 신생 구중천! 아니! 우리 지하무림! 지하무림의 미래이자 현재!”
자룡대주의 외침처럼 이곳은 아무래도 구중천 본부이자 군사기지조차 넘어선… 지하무림 그 자체! 상징적인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지하무림 인들의 도시…! 핫~ 이 인간들 정말 이름 그대로 지하무림을 지하에 만들어 버렸네?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거리를 걷고 있는 세이버 등위에서 나는 얼마간 그저 허허~ 소리를 내며 웃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몇몇 지하무 림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술병을 부딪치거나 우리처럼 거닐며 건물들을 관광하고 있는 분위기였지만, 곧 여기에 많은 지하무림인들이 모여서 진 짜 도시를 이룰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가 있었다. 나는 현시대 지하무림 거리와 그 주민들의 즐거워하며 거니는 모습을 얼마간 더 지켜 보다가 대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음? 난 솔직히 제가 이런 곳의 안주인이 된다는 것이 새삼 부담스럽고 두렵기까지 해요.’ 같은 태도가 나올까봐 아주 쬐금은 걱정했는데… 그런 건 고사하고 벌써 차분함을 넘어 담담? 아니, 아니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인거 같은데?
…대교. 어때? 네가 이런 곳의 안주인이 된다는 사실이?
내가 대놓고 노골적으로 묻자, 대교는 조용한 미소부터 그리고 있었다.
치이익~!
응? 뭐야? 우리 대교마님 발언을 대체 어떤 스피커가 방해를………….
“아아~ 모두들 잘 들립니까아~”
자룡대주 목소리였다. 주변을 살펴도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사방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자아~ 많이들 기다리셨습니다! 일단 모두 가까운 곳의 모니터를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흠. 그러고 보니 우리 왼쪽, 도시 외곽 벽…이랄까? 하여간 거대한 벽면에 대형 모니터가 꽤 많이 설치되어 있었네? 이렇게 많은 모니터들이 동 시에 켜지는 것도 나름 장관에 가까운 모습인 걸?
「주인님! 주인님과 대교님은 그냥 이거 보세요.」
요몽이 한손을 들어 올리자 나와 대교만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펼쳐졌다.
요몽 녀석, 잠시 어디 갔나 했더니 뭔가 담긴 접시를 한손에 들고 나타나서 나름 먹방을 하는군.
화면 가득 자태를 드러내는 건 예상대로 자룡대주였다.
“다들 제 모습 잘 보이십니까?”
웃! 사방 곳곳의 스피커는 양방향이었나?
마치 바로 주위에서 수백 명이 동시에 자룡대주에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자룡대주는 자신도 모두를 보고 있는 것처럼 빙긋이 웃으 며 말을 이었다.
“오늘이 우리 지하무림에 어떤 날인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들 잘 알고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역사상 유래 없는 강대한 적과의 전쟁을 수행중입니다. 그런 현실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기에 계신 우리의 2대이자 3대 마군황께서는…….”
윽. 온다.
카메라는 스윽 자룡대주를 떠나더니 빠르게 나와 대교를 잡고 있었다.
“평소 지론이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를 몸소 실천하시어 오늘 이 자리 강행을 선포하시었습니다.”
윽. 아무래도 앞으로는 음주방송을 철저히 단속하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늦어서, 사방 어디선가 휘익~하는 휘파람소리나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 은은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화면은 어느 사이 좌 우로 양분되어 자룡대주와 우리를 동시에 비추고 있었다.
“천주. 천주께서는 ‘따로 시작종 울릴 필요 있나’라고 하셨지만, 사실 아까는 다들 시작종을 들을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음? 이건 또 무슨 얘기지?
“오늘 참석을 미리 결정하고 이 자리에 모인 분들도 물론 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 각지와 전 세계에 퍼져있는 우리 지하무림인들… 특히 이 번 대규모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중인 이들은 보안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참석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후후. 그렇지만 우리 지하무림인들 이 ‘다함께 허리띠 풀고 먹고 마시자’는 마군황의 명에 거역할 수는 없겠죠?”
“뭐야, 자룡대주. 설마 그 사이에 전부 여기로 집결했다는 건 아니겠지?”
화면속의 자룡대주가 날 보는 것 같아서 무심결에 물었더니, 내 목소리도 모니터와 사방에서 동시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음. 엄청난 다중 방송이라 정신이 좀 없네. 하여간 지금 자룡대주가 고개를 저었지?
“물리적으로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은 분명 불가능합니다. 활동 시간대조차 다르니까요. 하지만…….”
요몽의 가상 스크린은 물론이고 사방의 실제 모니터들도 일시에 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순간, 일제히 같은 화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처음에 화면을 채운 것은 천음마군이었다.
“천주. 속하 천음마군, 정식으로 파티참가를 신고합니다!”
술병을 든 채 포권하는 천음마군의 영상이 작아지며 모니터 한쪽의 작고 독립적인 창으로 바뀌는 것과 동시에 다른 영상이 크게 떠올랐다.
“천주! 자룡대 부대주, 페트라. 파티 참가를 신고합니다.”
페트라의 영상도 뒤로 작아지며 연이어 다른 낯익은 인물들이 하나씩 떠올라서 파티 참석을 신고하는 영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각자 어떤 장소와 시간대에 있다 해도, 우리 지하무림은 하나. 하나의 시간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자룡대주 말 대로였다. 어느 사이 세어볼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영상들이 모니터를 가득 메우고 있었으며, 그 영상 하나 하나가 저마다 얼 마나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단정한 양복차림으로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마군도 있었고, 환한 햇살속의 해변에서 수영복 을 입고 있는 마군도 있었으며, 심지어 잠옷차림으로 휴대폰 셀카 화면을 잡고 있는 대주도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는 저마다 술병이며 술잔 같은 걸 든 채 웃고 있었다.
“이것은, 이러한 하나의 시간이 가능한 것은 당대의 지하무림에는 마군황이라는 하나의 태양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이 자룡대주의 음성이 진지해져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는 여전히 세계 각지의 지하무림인들의 영상이 가득했지만, 그걸 배경으로 나와 대 교의 모습이 떠올라있었다.
으으음~ 이쯤에서 내 차례인 건가?
“천주.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주의 시작종을.”
또 으으으음~! ..쯧. 뭐랄까… 난 오늘 너무 많이 연속으로 놀라고 감동 먹고 하다 보니, 이제는 살짝 해탈(?)의 경지가 되어버렸다고 할까…? 이 렇게 공간을 초월하여 나 하나에게 집중된 군중의 시선 속에서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해야하는 입장자체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뭔가 할 말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젠장. 모르겠다.
“크흠! 흠! 자룡대주, 아니 다들 알고 있지? 내가 연설 같은 거 잘 못하는 거 말야. 그러니까, 당신이 뭐든 대신 멋진 연설을 좀 해주면 안 될까? 난 거기에 ‘이하동문’이라고 할게.”
난 진심이었지만, 자룡대주는 고개를 숙이고 큭큭 소리와 함께 어깨까지 살짝 들썩이고 있었다. 그런 반응은 사방에서 전달되고 있는 지하무림인 모두가 비슷한 것 같았다.
“하아~ 내가 이제 와서 모두에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그런 얘기를 새삼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그래. 그런 나의 마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그렇게… 느껴져.
“어쩌다보니, 우리 지하무림에 이상한 전통이 생겨버렸지? 마군황 1대부터 3대에 걸쳐 매번 위험한 전쟁이 있어왔지. 아니, 이번에 내가 사실 가장 기록적으로 최악의 적… 최악의 재앙을 몰고 출몰했지. 인정해 인정 한다구. 하지만…….”
나는 등 뒤의 정글도 손잡이를 툭, 한번 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우리가 이긴다! 뭐, 당연한 거 아니겠어?”
언제부터인가 물속처럼 고용한 침묵 속에서 내 목소리만이 울리고 있었지만, 나는 모두가 웃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마도 조만간, 모두 여기에, 그땐 정말로 모두가 여기에 모여서 승전파티를 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때는…………”
난 슬쩍 대교의 눈치를 살핀 후 선언했다.
“내가 쏜다!”
훗. 요몽 녀석, 잘도 순발력 있게 ‘골든벨’을 띄워주네?
다른 모니터 속에까지 동시에 떠오른 골든 벨이 울리는 순간, 나는 재빨리 손을 들어 귀를 막았고 대교 역시 눈치 빠르게 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었 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모두가 동시에 지르는 환호성이었다. 말이 환호성이지, 내 예상대로 천 년 전 마군황에 오르던 순간에 들었던 고막과 전신을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 이었다.
흠. 자룡대주는 방송실이나, 여하간 안전지대(?)에 있는 건가? 어디선가 꺼내든 맥주 캔을 따서 다른 방송 스텝진(?)과 건배를 하고 마시기 시작하 는군. 어디보자… 다들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야 당연한 거고……….
“…대교.”
조심스럽게 부르며 돌아보았지만 대교는 그저 곱게 웃어 보일뿐이었다. 대신 요몽 녀석이 입에 꼬치 막대기를 문채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으로 나섰다.
「에~ 그게 말입죠. 현재까지 파악된 지하무림 전체 머릿수에 일인당 평균 술과 안주를 곱하고… 식신마군을 비롯한 특급 요식업계 인력의 출방 용역비……………」
“야!”
「흠. ‘내가 쏜다’고 하시고선 식신마군 같은 고급 인력을 공짜로 부려먹으시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그……….”
「흠. 저 요몽, 이래봬도 나름 살림꾼이랍니다. 주류는 천음마군과 밀약을 맺어서 어떻게든 원가에 가깝게 조달하고 각종 식자재 시가 반영을 대비 하여 물가조작을 사전에 치밀하게……………」
“요몽. 그냥 내가 털어야 할 은행이나 몇 군데 알아봐줘.”
「오호~ 주인님다우신 자금 조달법! 그렇다면 저는 지금부터 기분도 낼 겸·
요몽 녀석은 스카프 같은 걸 꺼내서 눈 아래의 얼굴을 가리더니 ‘은행털이 하듯 몽몽 오빠의 요리를 털러갑니다’라며 사라졌다.
“…대교. 요몽과 말장난한건 그랬다 쳐도, 내가 좀… 대책 없긴 했지?”
내가 멋쩍게 묻자 대교는 짐짓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룡대주, 그녀는 철저하게 계산을 할지도 모르지요.”
에고. 정말 그럴지도…………….
“후후~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전 이래봬도 소녀가장 출신이잖아요? 벌써 확보한 재물도 제법 되고요.”
대교는 두 손을 불끈(?) 쥐어 보이며 자신감을 표했고 난 반사적으로 탄성을 질렀다.
“오~ 맞다. 지난번에 신들의 유희 놈들 치면서 큰 성이나 전투기 같은 것들도 챙겼다고 했지? 그럼 그걸 팔아서 모두의 술과 안주를…….”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풋웃- 웃음을 터뜨렸다. 대교도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세이버 등에서 내려와 손을 잡았다. “세이버 원, 투. 니들도 그냥 놀아.”
내가 말과 함께 손짓까지 해보이자 녀석들도 곧 좋아라 신이 난 기색으로 사람들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괴수 고양이들의 습격을(?) 제일 먼저 받 은 것은 당연하게도 먹거리가 잔득 쌓여있는 곳이었다. 아까 봤던 식신 후보자 한명이 즐겁게 웃으며 녀석들에게 고깃덩어리를 던져 주기 시작했 다.
“흠. 우린… 저쪽 어때, 대교?”
난 대교의 동의를 구한 후 우리 뒤쪽에서 아까부터 맛난 냄새를 풍기던 곳으로 향했다. 주로 이 외벽을 중심으로 마치 가판대처럼 요리상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서 먹거리 위주의 축제장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천주! 천모! 저희 5층 주방을 선택해 주신 것입니까?”
또 다른 식신 후보자가 반색을 하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술과 요리를 잠깐 즐긴 다음에 다시 천천히 걸음을 떼어 어딘가 로 걷기 시작했다. 딱히 목적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굳이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핫! 천주!! 처소는 마음에 드셨는지요!”
불쑥 포권과 함께 다가오는 중년의 건장한 사내가 있었다.
“…구축마군(構築魔君)! 당신이 우리 처소, 아니 이 구중천 전부를 만들었다며?”
“어이쿠!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전 그저 여기저기 참견을 하고 다녔을 뿐이지요.”
겸손과 달리, 비화곡 옛터의 복원은 물론이고 이 구중천과 지하무림 건설에 핵심적인 현장 책임자가 바로 이 구축마군이라고 했다. “와핫핫~! 천모!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 미스터 퍼니! 아, 여기서는 유희마군(遊戱魔君)이라고 불러야겠죠? 정말 반가워요.”
연예계 종사자라서 주가혜였던 시기의 대교와 친숙한 건 물론이고 나 역시 상당히 반가운 얼굴이었다.
“천주! 장가계에서 천모를 보쌈하실 때 제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었는지 아십니까?”
“핫핫. 미안, 미안. 하지만! 그 후로 아예 ‘라이브 무대 공주납치 이벤트’를 만들어서 인기를 얻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본업에 충실한 프로답다고 할까? 하긴 지하무림인들이야 다들 아, 저 남자는?
“천의마군(賤醫魔君)! 이제 좀 괜찮아?”
내가 먼저 아는 체를 한 사람은 그랜드캐년 전투에서 함께 했던 천의마군이었다.
“후후. 환자보다 의사가 더 오래 병상에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전투중에 지가 먼저 중상을 입어 졸도해 버렸었지만, 틈틈이(?) 깨어나서 다른 중상자들을 치료해주고 다시 졸도하길 반복했었던 약골(?)의사 천 의마군. 그와 술잔을 나누는 중이었던, 너무나 낯익은 뒷모습의 여자가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며 웃었다.
“에? 은사마군?”
“예, 천주, 천의마군과 잠시 그때의 전투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발그레한 얼굴과 전에 없이 온화한 미소…! 설, 마. 은사마군이 오늘 천음마군보다 더 신경 쓰인다는 소위 ‘다른 남자’가 천의마군……?
나는 살짝 긴장(?)하여 두 사람을 살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천주! 저도 왔습니다!”
“오. 흑해마군(黑海魔君)!”
‘바다의 천음마군’이라고 불린다는(본인은 거부한다지만), 흑해마군이었다. 난 천지파멸식을겨우 수습하고 바다에 추락했을 때 이 해적왕과 그 배 흑해 1호의 신세를 졌었다.
“천주! 저도 아는 체 좀 해주십시오.”
흑해마군과 조금 다른 방향에서 등장한 남자는…
“차기 청천마군(靑天魔君)! 자네는 이틀 연속으로 땡땡이쳐도 되는 거야?”
바로 어제 소교의 생일파티에도 참석했었던 전경하였다.
“설사 진급이 늦어지는 한이 있어도 이런 자리를 놓칠 수는 없지요. 더구나 이 친구와도 꽤나 오랜만이구요.”
…응? 흑해마군?
“뭐야. 경찰 특공대와 해적이 친구라고? 그래도 되는 거야?”
내가 뭐라거나 말거나 두 남자는 주먹을 들어서 정권부위로 툭, 마주 대면서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관할권 침범하지 않기!”
훗. 땅과 바다로 활동무대가 달라서 상관없다는 건가? 으음. 근데 흑해마군의 공식 닮은꼴이자 친구인 천음마군은 지금 어딨는 거지?
천음마군을 떠올림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은사마군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천의마군은 자기 제자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에구. 이노무 아줌마군황 모드 버리기 힘드네. 그래. …어, 근데 잠깐?
내가 다시 천의마군 쪽을 돌아본 것은 그쪽에 천의마군의 제자가 아닌 다른 낯익은 인물이 섞여있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저・・・ 자식! 뇌옥마군(牢獄魔君).”
내가 중얼거리자, 내 손을 잡고 있는 대교의 손이 흠칫 굳어졌다. 슬쩍 돌아보니 대교의 입 꼬리가 보일 듯 말 듯 움직이며 소위 마중 제일녀 모드 에 스위치가 올라가는 기색이 느껴졌다.
“…에든버러 인질 사건’의 주역인 사람이군요.”
“훗. 맞아. 우리 소교를 힘들게 하고 나도 맨땅에 헤딩. 몽몽까지 잃을 뻔 했던… 그때 그 사건의 당당한 주역인 놈이지.”
난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뇌옥마군 역시 눈치 빠르게 이편으로 몸을 돌렸다.
아니, 지금 우리가 다가서는 것을 알았다기보다는… 전경하와 함께 왔지만 같이 인사를 하진 못하고 슬쩍 빠져서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건가? 그 날 이후 제 딴에는 날 다시 볼 면목이 없어서 말이지….뭐. 사실 나도 얼마간은 이 자식을 일백마군에서 자르고 성질대로 확 그냥~ 뭐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긴 하지만…………….
“후후~ 청천마군이 힘 좀 써줬나? 아니면 자력 탈옥? 아, 그래, 뇌옥마군의 짧은 탈옥을 ‘마실’이라고 한다지?”
가까이 다가선 내가 묻자 녀석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소위 ‘죽여주십시오.’ 분위기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마실, 입니다, 천주.”
흠. 역시 제법인걸? 뇌옥, 아니 요즘은 그냥 감옥인가? 하여간 거기서 벌써 자리를 잡은 모양이군.
“이렇게 가끔 마실도 나올 수 있고… 그렇다고는 해도 뇌옥은 뇌옥, 바깥 세상과 같지는 못하겠지?”
‘마군황에게 칼질, 총질 다 하던 놈이 그 배짱은 다 어따 팔아먹고 이렇게 주눅이 들었냐’고 놀리고 싶은 생각도 있긴 했지만, 오늘은 누구에게라도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손에 들고 있던 술잔에 술을 채워서 녀석에게 내밀었다.
“나온 김에 실컷 먹고나 가.”
조심스럽게 술잔을 받아드는 뇌옥마군의 두 손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은 그 잔을 입에 가져가지 못하고 몸을 굳히고 있었다. 내 옆의 대교도 자신의 잔을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처, 천모?”
나야 그 사건 이후로도 녀석에게 특별한 징계를 내리지 않았기에 이미 용서한다는 뜻을 표한바있는 셈이고 오늘은 그걸 공식적으로 확인한 정도였 다. 하지만 사건의 피해자였던 소교의 친언니 대교까지 자신을 용서해 줄지는 몰랐던 모양이었다. 나도 사실 조금 놀랐지만, 대교는 어느 사이 마중 제일녀 모드의 분노를 지우고 자애로운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우리 소교도 당신을 용서한다고 했으니 이건 그 아이가 주는 것으로 생각하세요.”
“아…! 그, 그 아가씨께선 지, 진정…….”
나와 소교가 주는 용서의 잔을 양 손에 든 채 뇌옥마군 녀석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양손, 아니 전신을 떨고 있었다.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 한 나와 대교의 등 뒤에서 녀석이 털썩 무릎을 꿇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우린 굳이 다시 돌아보지 않고 천천히 녀석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훗~ 저 녀석, 감격 먹고 저러다가 피 같은 술을 흘리지나 않았나 모르겠네.
-쿡. 오라버니도 차암.
내 싱거운 전음에 대교가 웃으며 다시 손을 잡아왔다.
-어? 저기 반포마군(反哺魔君)도 오셨네요?
-그러게?
내가 마녀 여옥과 소교를 초대했던 고급 음식점과 그곳을 포함한 건물 전체의 주인장이라는 반포마군. 나야 그때나 나중에나 잠깐 인사만 나눈 정 도였지만, 소교는 그날 이후 단골 고객 명단에 오를 정도로 자주 찾는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건 주가혜였던 시기의 대교도 그랬기에 반가운 모양이 었다. 하지만 조금 먼 거리에서 다른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서 우린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황마군(戰湟魔君)과 전마부대원들은 여전하군, 그래.
전황마군과 그의 전마부대원들은 저마다 내 정글도 못지않게 큰 대검으로 자신들 앞에 놓여진 통돼지 바비큐를 직접 썰어먹으며 왁자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중에서 고문의 스페셜리스트 ‘아처 왕’이 따로 어딘가로 간다싶더니 천의마군을 자신들 쪽으로 초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들도 천의마군과 그랜드캐니언 전투의 전우였군. 은사마군은 그렇다 치고 페트라는 오늘 아예 못 와서 저 친구들이 섭섭… 아, 아 닌가?
전황마군 팀의 바로 앞 대형 모니터 한켠에는 페트라가 접속한 영상도 있었는데, 페트라의 영상만 다른 영상들보다 크게 떠있고 전황마군 팀들과 모니터 속의 페트라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모니터에는 선택하여 활성화된 영상창과 개별 화상 채팅이 가능한 기능이 있는 것 같았다.
-저렇게 직접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오늘 파티의 기획자는 역시………….
대교가 전음과 함께 돌아보는 곳에는 자룡대주가 있었다. 자룡대주는 오늘도 평소 즐겨 입는 보랏빛 정장 차림이었지만 지금은 겉 상의를 벗고 블 라우스의 목 밑 단추 두 개 정도를 푼 상태였다. 거기에 양팔 소매를 몇 번 접어 올린 것만으로도 묘하게 활동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 었다.
…흠. 평소의 빈틈없는 모습도 괜찮지만, 한 손에 맥주 캔을 들고 그쪽 스피커에만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에 맞춰 고개며 상체를 가볍게 흔드는… 그러면서도 눈은 자기 앞의 모니터 속의 여러 장소들을 살피면서 체크하는 훗~ 저렇게 즐기면서 일하는 캐리어 우먼의 모습도 꽤 매력적인 걸? 나와 대교는 어쩌다보니 우리의 공동 제자가 되어버린 자룡대주를 나름 흐뭇한 기분으로 보다가 문득 다른 곳으로 방향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 다. 좀 아까 뇌옥마군 녀석에게 예의 ‘용서의 술잔’을 주었던 시점에서부터 우리에게 인사를 하며 술잔 나누길 청하는 이들이 주춤했었는데, 어느덧 다들 각자 파티를 즐기느라 우리에 대한 주목이 약해져 있었다.
・아니, 무엇보다 우리가 일부러 은신술을 쓰는 것 못지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 분위기속에 녹아들고 있다고… 그래야 하려나…?
-음… 좋다.
-음・・・ 저두요.
-음… 그냥, 그저, 뭐… 하여간, 좋다.
-뭐… 저두요.
싱거운 전음 끝에 우린 다시 마주 보고 웃었다. 우리가 이 지하무림의 정점에 선 커플이라는 사실과 그에 따른 어떤 인식도 지금의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이런 곳, 이런 사람들과 함께 같은 시간 속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냥 좋을 뿐이었다. -…음. 근데 말야, 대교.
내가 문득 걸음을 멈추며 살짝 정색을 하자 대교도 멈춰서며 웃음을 지울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우리, 조금 긴장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난 조금 고개를 들어 막연하게 위쪽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는 자세로 말을 이었다.
-우리의 현재 행복만땅 분위기로 봤을 때 그노무 타임씨가 심통을 부릴 타이밍이 아닌가 해서 말야.
-아이 참! 오라버니께선 또 천지신명의 수장일지도 모를 분께 무례한 말씀을 하시면 어떡해요?
-훗. 그동안 당한 게 많다보니… 아, 미안, 미안. 안 그럴게. 나도 이젠 그 양반을 그렇게까지…………. -어멋?
대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서 나까지 진짜 긴장하며 그녀의 시선을 따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내가 타임씨에게 무례한(?) 언사를 한다는 거 자체가 불안해서 무심코 가까운 벽의 모니터를 봤던 모양이었고, 모니터 화면 속에는 때마침 나도 더 바싹 다가 설 수밖에 없는 영상이 있었다. 꽤 많은 영상 창 중에서 몇 개는 구중천 내부 복도 같은 곳도 비추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의 카메라가 잡고 있는 건 은사마군이었다.
뭐야! 은사마군과 함께 있는 저 남자는… 아니, 저 남자가 누구건 간에 지금 중요한 건 둘이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윽! 하필 저런 순간에 천음 마군이 나타나다니!
은사마군과 어떤 남자는 아직 천음마군이 근처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고, 천음마군은 두 남녀를 향해 다가가면서 등 뒤의 견신, 예의 정육점 칼을 뽑고 있었다.
아이고 이를 어째!
나와 대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뻗어 해당 영상 창을 터치해서 활성화시켰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어딘지도 모를 장소의 천음마군에게 뭐 라 말을 하기도전에 요몽이 나타나며 다급하게 외쳤다.
「주인님! 대교님! 큰일 났어요! 지금 미령님께 변괴가!」
뭐, 뭐야?
당황한 우리가 공공보법을 발동하여 미령이가 있는 곳으로 튀어가려는 순간, 이번에는 내 건빵주머니 속의 호출기가 울렸다. 설마하고 다급하게 호출기를 꺼내 켜자마자 닥터 제이의 심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유준군? 빨리 이쪽으로 와 줄 수 없겠나?”
미치겠네! CR애들 쪽에도 뭔가 사고가 났다는 건가?
난 어느 쪽으로 먼저 달려가야 하는가를 다급하게 가늠해보는 와중에도 저 아득한 어딘가를 향해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이 빌어먹을 타임씨! 술은 우리가 먹는데 꼬장은 왜 당신이 부리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