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65화 : 검은 하늘의 기운으로 불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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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65화 : 검은 하늘의 기운으로 불길을 걷다.


5. 검은 하늘의 기운으로 불길을 걷다.

청명은…, 정글이와 달라.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 정글이처럼 ‘념 에너지의 진화체’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뭔가 다르다는 것도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이 다.

내면적으로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단 외견상의 분위기만으로도 정글이와는 너무나 달라.

이 작고 신비로운 소녀의 기본적인 옷차림은 마치 하얀 나비 혹은 하얀 새가 날개를 앞으로 접어 여민 것처럼 넓은 자락이 두 손과 발까지 덮어 가 린 형태의 백의였다. 그런데 그 백의로 가려지지 않은 목덜미와 얼굴의 피부는 그보다 더 눈부시게 새하였다.

거기에 저 허리 아래까지 흐르는 긴 생머리 또한 반투명의 백발……! 무엇보다 놀라운 건, 오염되지 않은 설원처럼 모든 것이 새하얀 소녀가 만지 면 만져질 듯 사실적이라는 건데…………….

「주인님!」

응?

「괜찮으십니까? 코드명 청명의 각성 패턴 관찰 시간이 주인님의 평균적인 비일상 현상 관찰 시간을 초과하고 있습니다. 주변인들, 특히 대교님께

-아, 알았다, 알았어, 몽몽. 정신 챙기마.

난 몇 가닥 놓쳤던 정신줄을 다시 모아 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나와 딱 눈이 마주친 대교가 흠칫 긴장하고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얼음꽃”

굳이 청명의 첫인상을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해준 것은 대교와 청명, 둘 다 그 얘기를 듣고 싶어 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이에요. 당신께서 예쁘게 봐주셔서.”

대교는 안심하고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정작 당사자, 아니 당사검(?) 청명의 반응은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그을세.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대교가 실수를 한 거 같아.”

“예? 무슨…….”

“청명검은 그 주인과 함께 자타공인 울트라짱 쎈 최강이잖아. 근데 얘를 왜 이렇게 이쁘게 만들어 버린 거야? 이건 완전 미인계 전문인 거 같네!” 나름 회심의(?) 반전 말장난 겸 칭찬이었고, 대교는 내 기대대로 곱게 눈을 흘기는 모습으로 웃었다. 하지만 청명에게서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봉두난발 산만한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절반정도를 덮고 있는 정글이와 달리, 이 청명은 반투명의 백발 아래의 정교한 이목구비가 아주 잘 보여. 하 지만 그럼에도 심하게 시크한 저 무표정과 다소곳이 내려뜬 두 눈을 긴 속눈썹이 가려서 눈빛도 읽기 어렵고…………….

「주인님!」

몽몽이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여서 주위를 환기시켰고, 나는 그제야 내가 놓치고 아직 다시 잡지 못한 정신줄이 한 가닥(?)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 달았다.

“어? 아, 미, 미~안! 하, 핫! 미안해, 두 사람!”

나는 다과상 너머에서 말없이 나의 ‘정신가출 상태를 지켜보던 인호, 소희 남매에게 사과해야했다. 손님들을 앉혀놓고 주인들이 딴 짓에 열중했 던 셈이라 상당히 미안하고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두 사람도 우리 청명에게 흥미를 느끼는 기색이란 점이었다.

“저는 영안이 어두운 편이라 그런지, 말씀하신 모습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허나, 제게도 그 ‘검의 정령’이 얼마나 순수하고 정갈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지는 느껴지고 있습니다.”

나의 외모 칭찬에 이어 유인호에게는 심성 칭찬을 받은 셈이었다. 심혈을 기울인 념으로 청명을 탄생시켜 엄마모드인 대교가 은근히 기뻐하는 건 당연했고, 나 역시 살짝 마음이 풀리고 있었다.

난 솔직히, 이 작고 하얀 소녀 청명에 대한 경계심이랄지, 왠지 방심하면 안 될 거 같은 기분을 털어내기 어려워. 하지만 저 안정적인 스타일의 무심 OR 불심 청년 유인호가 청명의 본질을 ‘순수함’으로 느꼈다니까, 나도 조금은 더 안심하고 청명을 대해도 되려나? “소희양. 소희양에게는 이 청명이 어떻게 보이지?”

유소희는 오빠 유인호보다 청명에 더 큰 관심이 있어보였지만 웬일인지 나서지 않고 있어서 내가 먼저 물어 본 것이었다. “우음~ 저는 보통 오빠보다는 잘 보는 편이기는 한데,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유소희는 겸연쩍게 웃으며 뜸을 들인 끝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얼음꽃’이라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이미지 표현력이 정말 좋으신 거 같아요.”

“… 살다 살다 내가 표현력 좋다는 말은 또 첨 들어보네.”

내 항변(?)에 다들 웃었지만, 나만은 쓴웃음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거의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뭐・・・ ‘똑같은 걸 보고 왜 그런 이상한 연상을 하냐’ 라던가 ‘여기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같은 소리는 종종 들었지만 말이다. 아,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유소희가 나와 비슷한 표현만 떠올린다는 건 저 아이도 어지간히 나와 같은 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려나…………? 으음~ 근 데 그보다, 지금 중요한 체크사항은 유인호, 소희 남매까지 청명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겠어.

좋아. 정글아! 너도 좀 나와 봐!”

나는 정글이를 부르며 정글도 본체를 청명 쪽으로 들어 보였다. 전투상황이 아니라서 정글이가 호출에 응할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정글이는 순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잘 나와 줘서 손님들 앞에서 민망하지 않게 된 건 좋은데 분위기가 좀………….

청명은 여전히 고요히 찬 기운과 함께 묵묵히 서있었고 그런 무표정 시크 소녀 앞에 나타난 정글이도 그냥 멀뚱히 서 있을 뿐, 청명에 대한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 아직 청명이 부끄러워서 그런가 봐요.

딸내미 데리고 맞선 나온 엄마모드의 대교가 어색한 전음을 보내왔지만 나는 그저 싱거운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청명이 부끄러워한다고? 저 머리카락 한 올 까닥하지 않는 고고한 자태 어디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건지, 대교도 참.

나도 이 녀석들의 첫인사를 이렇게 애매하게 시키고 싶지는 않았어. 이 녀석들은 주인인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공인 짝지, 인간식 으로 말하자면, ‘정혼한 사이니까 말이지.

혹시나 해서 ‘정혼한 사이’라는 걸 강조해서 말해봤지만, 여전히 한쪽은 고요하고 한쪽은 멀뚱했다. 그리고 사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기도 했 다.

대교. 대교의 눈에 정글이는 어떻지? 여전히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건가?

-아, 예. 기운은 느껴지지만 어떤 모습인지 형체가 보이지는 않네요.

대답하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대교가 문득 유인호, 소희 남매에게 시선을 옮겼다.

“두 사람. 자꾸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지만, 내 정글이도 좀 봐주겠어?”

• 흠.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난처해하는 기색인 거 보니까, 아무래도…………….

“죄송하지만, 이번에는 저도 잘 보이지 않아요.”

“그렇군. 소희양도 정글이가 잘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예. 그 두 칼이 같은 경우라고 하신 거 같은데…….”

“… 맞아. 그리고 자아를 가질 정도로 각성한건 정글이가 먼저지. 그럼에도 청명이 오히려 더 인간의 영혼에 가깝게 각성한 거보면…, 훗. 이쪽 세 계에서도 여자들의 정신적 성장이 더 빠른 모양이네.”

나는 그렇게 멋대로 결론을 내리며 정글이에게도 한소리 해주었다.

“정글이 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너의 짝지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말야.”

정글이는 내가 뭐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다가 청명에게도 새삼 시선을 주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뿐, 대체 날 왜 부른 거냐는 듯 날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스윽 본체로 들어가 버렸다.

응? 청명도 따라가듯 사라락~ 들어가 버리네? 아, 가만? 혹시 청명은 나에게 인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글이를 보기 위해서 나왔었던 거 아닐 까? 만약에 그런 거라면 정글이의 무덤덤 모드에 상처받았을지도 모르겠군. 으음. 근데 나 지금 마음이 너무 왔다 갔다 하는 거 같네. 예상과 기대 를 넘어서 빠르고 뜬금없이 등장한 청명을 내심 의심하고 경계하는 마음이었다가, 문득 ‘얘도 결국 무조건 극악 패밀리’ 라는 인식과 함께 믿고 아끼 는 마음이 생기기도하고………….

내가 이쯤에서 마음의 교통정리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자니까, 유소희가 입을 열었다.

“후후. 한쪽이 잘 보이지는 않아도, 그래도 왠지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응? 지금 뭐랬지, 소희양?’

“두 분의 검과 도,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 같다고요. 두 분처럼 말이죠.”

-훗. 역시 내가 공연히 삐딱선을 탔던 거 같군. 다시 생각해보니, 나와 대교에게 있어 정글이와 청명은 너무나 특별한 존재야. 내게 있어 정글이 는 더 설명할 것도 없겠고, 대교의 분신이랄 수 있는 청명도 나로서는 냉정하게 분석을 하기 어려운 존재지. 그런 걸 억지로 하려고 들었으니 자꾸 겉돌고 헤맸지. 이럴 땐 그냥 내 나름의 ‘정공법’으로 가자. 먼저…………….

“우리 정글이와 청명을 좋게 봐줘서 고마워.”

그래. 내가 ‘스카우트하고 싶은 인재들이라고 판단한 유인호, 유소희 남매가 청명을 ‘위험하지 않은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만으로도 청명은 경계 대상이 아니다.

“대교. 청명은 어때? 처음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느라 힘들지는 않았데?”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많이 긴장했었나 봐요. 잠시 쉬어야겠다고 하네요.”

대교가 저렇게 사랑스러워하는 음성으로 말하는 아이니까 더더욱 믿음 만땅. 이상으로 논리적(?) 검증 끝! 청명아, 괜히 삐딱하게 봐서 미안!

「… 주인님. 코드명 청명에 대해 알아두셔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어, 야아. 나 방금 정리했는데.. 근데 뭔데?

「코드명 청명의 각성 패턴 분석 결과, 유소희님이 소유한 코드명 묵정의 영체 파장과 근접할 정도로 발전된 진화 형태로 분석되었습니다. 이는 코 드명 청명이 인간에 가까운 지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대교님께서 통제를 최소화한 상황에서의 호전적인 에 너지 방사 패턴은……………」

-에이~ 난 또 무슨 얘기라고! 청명이 똑똑하고 쌈 잘하는 캐릭터라는 건 나도 진즉에 눈치깠어. 그래서 무슨 사고 칠 스타일 아닌가, 조심스럽게 이모저모 가늠해 보려고 했던 건데, 근데 막상 좀 하다보니까 귀찮기도 하고…, 하여간 그냥 믿고 신경 끌란다.

「…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제 요몽과 임무 교대를 하겠습니다.」

-어? 너 설마 삐쳐서 간다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본래 코드명 청명에 관한 사항까지만 체크하고 교대할 예정이었습니다. 요몽도 이미 대기 중이었……………」

「맞아요! 전 벌써 대기 중이었는데 몽몽 오빠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구요!」

-요몽…? 너 그건 또 뭔 비주얼이냐?

요몽은 어이없게도 손으로 끌고 다닐 수 있는 링거병 거치대(?) 같은 걸 끌고 나타났으며, 거기에 걸려있는 링거와 한쪽 팔이 가는 관으로 연결되 어 있었다.

「아, 이거요? 매정한 몽몽 오빠 덕분에 요정이 병석에 다 누워도 보고…, 기념으로 분위기 좀 내봤죠, 뭐.」

몽몽은 낮게 한숨을 내쉬다 고개를 젓고는 내게 꾸벅 인사하고 사라졌다.

「쳇! 반응이 약하네. 아예 휠체어타고 나타날걸 그랬나?」

-얌마. 네가 재판 앞둔 정치인이나 재벌 회장이냐?

「아참. 휠체어 퍼포먼스는 한국에서 너무 흔해졌죠? 그럼 전 아예 산소호흡기 같은 거까지 딸린 침대에 누운 채

-됐거든? 복귀했으면 얼른…, 음. 당장은 별로 할일이 없겠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주인님. 저는 이번에 몽몽 오빠로부터 아주 중대차한 임무를 부여받고 복귀한 몸입니다요.」

-중대차한 임무? 너한테? 패티가 아니고?

「뭔가 심하게 기분 나쁜 말씀이지만, 솔직히 저 혼자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패티도 공동 작업 할 겁니다.」

요몽은 먼저 어설픈 환자모드용 장비들을 사라지게 하더니, 그 대신 두툼한 머리띠를 질끈 동여맸다.

뭐냐. 그것도 결국 환자 코스프레 아니냐?

「아뇨. 이건 일명 입시생, 고시생 모드의 상징이에요. 전 오늘부터 열심히 ‘념에 의한 소통’에 도전해 볼 거거든요.」

너희들이 정글이나 청명과 대화를 한번 해보겠다고?

「새로운 캐릭터, 코드명 청명이 우선 타깃이에요, 주인님. ‘코드명 청명 쪽이 념체 파장 분석 및 언어 시스템 추출이 용이할 것’이라고 몽몽 오빠 가 훈수 두고 갔거든요.」

-그건…, 몽몽 판단이 맞을 거다. 정글이는 나도 아직 대화가 잘 안되고 앞으로도 기약이 없을 정도야. 청명은 엄청 과묵 소녀인거 같아서 또 문제 지만, 그래도 대교와는 대화를 하는 거 같으니. 음, 근데 너 유난히 불타오르는 거 같다?

「호홋! 역시 눈치대마왕 다우시네요. 실은, 제가 이번 프로젝트를 잘 끝내기만하면… 그러면 몽몽 오빠가 뭔가 엄청난 선물을 줄 거 같거든요. 몽 몽 오빠는 가끔 얄미울 때도 있긴 해도 결코 허튼 말을 하지는 않으니까. 흐흐~」

으음. 몽몽이 대체 무슨 엄청난 선물을 약속했길래, 명색이 요정인 녀석이 저렇게 요괴 같은(?) 표정으로 웃음을 흘리는 걸까?

요몽은 벌써부터 대교의 청명검 쪽으로 날아가서 이리저리 살피다가 톡톡 두드려보기도 하는 등 나름의 탐색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 습이 대교에게는 중계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몽몽 선생조차 어려워서 뒤로 미루고 있던 과제를 어째서 요몽에게 맡겼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이제 그렇다 치고, …흠. 대체 이 자리는 언제 끝나는 걸까?

내가 청명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정리하고 몽몽 남매와 잠시 노닥거리는(?) 사이에 대교에 의한 티타임과 수다타임이 다시 부활해 있었다. 대교와 유소희는 둘 다 결코 만만치 않게 비상식, 비현실이 판치는 세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한 점이 많은 건 당연했다.

그리고 나 역시 두 아가씨의 얘기를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그리 심심치 않기는 한데, 끝날 기약이 없는(?) 시간을 보내는 건 좀… 오! 마침 유소 희에게 전화가 오는 거 같군.

「주인님. 지금 유소희님에게 온 전화는 마신일씨가 건 거예요. 통화를 중계… J

-하지마.

다른 이도 아니고 마신일이라면 무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남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서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마비서 아저씨? …맞아요. …아, 재단이 아니구요. 여기 몽환무 지나고 나서………….”

도청할 것도 없이 처음엔 나와 만난 얘기가 먼저 오가는 거 같았다. 하지만 곧 마신일이 다른 얘기를 꺼냈는지, 놀란 유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정말이요? 진짜 그런 일이.. 맙소사! 그럼 언니는… 아! 역시!”

유소희는 뭔가 안타까워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아까 대교와 심각한 분위기로 맞짱 일보직전까지 갔을 때보다도 긴장하고 난감 해 하는 거 같기도 했다.

“… 아, 알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해볼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마비서 아저씨.”

어째 사건 의뢰 접수, 내키지 않지만 출동을 하긴 하겠음. 정도의 분위기로군.

잠시 후.

유인호, 유소희 남매는 여기서 유턴하여 바깥으로 나간다며 차로 향했고 우리가 오히려 배웅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실은, 저희는 곧 재단으로 돌아올 거예요.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니까, 지금 인사드려야겠네요. 다음엔 서울에서 다시 만나요, 우리.”

유소희는 그런 인사와 자신들의 전화번호까지 남기고서야 차에 올랐고, 나는 손을 흔들어 ‘빠이빠이’를 하며 두 사람을 보냈다.

“알다시피 난 웬만하면 재단과 얽히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말이야, 근데 저 두 사람은 예외가 될 거 같군.”

“그러게요. 저도 소희양에게 제 동생들을 소개해주고 싶어졌어요.”

나와 대교는 그렇게 유인호, 유소희 남매와의 재회를 공식화(?)하면서 다시 출발했다.

「현재의 한적한 도로 상황과 주인님 평균 운전 속도로 보아, 도착 예정시간은 12분 정도 후! 대교님. 그 사이에 코드명 청명에 대한 보고를 들으시 겠사와요?」

당근 고개를 끄덕이는 대교. 그녀는 아까 티타임에 집중하고 있어서 청명에 관한보고는 나만 들었기 때문이었다.

흠. 예상대로 대교는 청명의 각성 정도가 ‘인간출신 요괴 묵정의 수준’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거 같았다.

“하아~ 역시 그랬었군요. 전 청명이 벌써 그만큼이나 각성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소희양의 묵정처럼 강대한 요병기와 싸우는 것이 청명을 완전히 깨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오판했었지요.”

“… 아주 오판은 아닐 거야. 나도 비슷한 판단을 했기 때문에 싸움을 허락하고 오히려 부추기기까지 했던 거지. 다만 우리의 오판은 청명의 각성 정 도가 아니라……….”

난 이쯤에서 청명이 들을 수 없는 전음 대화로 바꿀까 망설였지만 결국 그냥 말을 이었다.

“청명공주께서 우리생각보다 상당히 호전적인, 보기보다 다혈질이라는 사실! 훗. 누가 천 년 전 마중제일녀의 분신 아니랄까봐.”

내말에 얼굴을 붉힌 대교가 살짝 뒤를 돌아보자, 뒷좌석에 놓여 진 청명검 위로 떠올랐던 청명의 기운이 다시 사락~ 숨는 것이 느껴졌다.

훗~ 아무리 시크한 외모와 분위기로 위장(?)했어도 결국 수줍은 소녀의 본성은 숨길 수 없나보군. 저런 패턴이 나름 더 귀엽기도…, 음. 근데 옆에 같이 있는 정글도의 정글이, 저 녀석은 이성(?)에 대한 관심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호기심도 없나? 자신의 영역에 자신과 같은 동족 중에서도 최강 의 울트라캡숑(에고 유치해라), 하여간 미소녀가 나타났는데도 저 무신경함은 대체………

「아! 주인님! 저거, 저것도 결계 장치인거 같아요!」

요몽이 알려준 건 다른 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과속 방지턱’이었다.

난 속도를 대폭 줄이며 과속 방지턱을 무난히 지나갔으며 별다른 이상 징후도 느낄 수 없었다.

「어? 분명 뭔가 인위적인 에너지 왜곡 현상이 감지되었었는데, 우웅~ 모르겠어요. 좀 더 분석을 해봐야……………」

“됐어, 요몽. 해도 천천히 해. 여기가 무슨 비화곡 성지 가는 길이냐? 일일이 긴장하지 말라구.”

약간만(?) 수상한 과속 방지턱은 삼거리라고 해야 할 갈림길 직전에 설치된 거였고, 직진이 아닌 우회전을 해야 재단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흐으음. 우회전하자마자 바로 무지 넓은 진입로가 되는군. 이건 마치…, 큰 대학교의 캠퍼스입구 같기도 하고 군부대 정문 같기도 하고…..

난 정문 앞에 대충 차를 세우고 일단 내려야했다. 정문에는 군부대처럼 육중한 바리케이트가 설치된 건 아니었지만, 진입구 중간에 설치된 1미터 정도 높이의 기둥과 양쪽 구조물 사이에 가느다란 금속 사슬이 걸려있어서 차량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차가 밀어붙이면 저 가느다란 사슬이 버틸 수 있을 거 같지 않고, 사람은 그냥 사슬을 위로 들어 올리고 지나가면 될 거 같은 분위기지만… 저 붉게 칠해진 사슬은 어째 그렇게 만만한 방어선이 아닌 거 같지? 게다가 지금 왼쪽의 경비실에서 나오고 있는 중년의 경비원도 평범한 인물은 아닌 느 낌이 팍팍 오는구먼.

“혹시 진유준씨 일행이십니까?”

“아, 예. 맞습니다.”

“마 비서님께서 사전 연락을 주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범상치 않은 경비원 남자는 범상하고 사람 좋게 웃으며 뭔가를 내밀었는데, 그건 목에 거는 출입증 같은 거였다.

“아, 그리고……”

경비원은 내 어깨의 라프와 차 뒷좌석의 정글도와 청명검까지 재빨리 살피는 기색이더니, 다시 빙긋이 웃었다.

“마 비서님 말씀처럼 대단한 손님이 오셨군요. 원칙적으로는 모두…, 특히 그런 이계의 생명체 유입은 조금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 했습니다. 하지 만, 이미 저희 재단의 봉인을 쓰고 계시니 그냥 통과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과연… 정문을 지키고 관리하는 이답게 우리 측 아그들의 정체를 빠르게 간파한 모양이군. 사용자가 확실한 무기들보다 라프를 더 주목하는 안목 도 그렇고, 하여간 이노무 재단은…………….

“아, 그런데…….”

붉은 금속 사슬의 한쪽 고리를 풀어서 길을 터주던 경비원이 문득 물었다.

“마 비서님은 출장 중이시고, 오늘은 공휴일이라 정상 근무하는 부서가 별로 없을 텐데, 무슨 용건으로 오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마신일이 내 용무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진 않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나도 굳이 지부장 방문을 알릴 필요는 없으려나?

“아, 그냥 누굴 좀 만나려고 온 겁니다. 오늘 근무는 둘째 치고, 하여간 있다고 들어서………….”

“그러셨군요. …외부손님 주차장은 건물 왼쪽으로 가시면 되고, 사원 기숙사는 주차장에 안내문이 있을 겁니다.”

난 심하게 범상치 않으면서 친절한 경비원에게 웃어 보이며 차에 오르다가 문득 물었다.

“근데 오늘이 무슨 공휴일입니까? 달력에 빨간 날 아닌데?”

“아, 그건…, 저희 재단은 업무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이 놀 때 더 바쁩니다. 그래서 대체 공휴일이 많은데, 오늘로 대체된 공휴일은, ‘근로자의 날’입니다.”

“…아, 예에.”

근로자의 날에는 쉰다…? 별거 아닌 사실임에도 왠지 비현실 중의 비현실이었던 재단의 존재가 갑자기 엄청 현실적으로 와 닿는 기분이랄까…? 거참.

잠시 후.

나는 친절한 경비원씨가 알려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재단 건물을 올려 다 보게 되었다. 요몽은 건물 전체가 강력한 결계로 보호되고 있다고 알려 왔지만, 그냥 보기에는 가끔 가본 신축 관공소 이상의 느낌은 없었다.

「제가 받은 메시지에는 1층 안내소에 얘기하면 안내자가 나올 거라고…..」

요몽의 안내대로 건물 입구를 찾아 걷는 동안에 보이는 건물 주변 모습도 그야말로 평범한 회사 건물 주차장 분위기였을 뿐이었다. 주차장이 끝나 는 지점쯤에 디귿자 형태로 놓여진 벤치와 재떨이 몇 개로 이루어진 ‘야외 흡연실’이 있었고, 거기에 젊은 아가씨 혼자 담배를 빼어 물고 있는 것이 그나마(?) 특이한 정경이었다.

어린 아그도 아니고 다 큰 성인 처자가 담배를 피든 말든 내 알바 아니지만, 흠. 지금 저 아가씨, 라이터도 없이 불을 붙인 거 같은……………

「주인님. 자룡대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시면 결계 때문에 통화가 힘들 거 같아요.」

-어, 그래?

난 즉각 걸음을 멈추고 몽드폰을 들었다. 사실 나와 대교가 빠져나온 후의 구중천 분위기가 궁금해서 내가 먼저 전화해볼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었 다.

“…천주?”

“어, 그래. 나야. 거기 분위기… 음. 좋은 거 같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렬한 비트의 음악으로 보아 상당 수준의 광란 파티 분이기인 거 같았다.

“천주! 천주께선 언제 복귀하십니까!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위 나이트장 분위기의 음악소리를 압도할 정도로 고함을 지르다니. 이 아가씨, 진짜 취했군.

-안되겠다, 요몽. 전화 끊고 메시지를 남기자.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거 같다.

「그러게요? 저쪽 상황을 확인안하고 연결시켜서 죄송해요.」

-대교. 이거 어째 우리가 빠지니까 더 분위기 업되는 모양이야. 자룡대주는 솔직히 약 올리려고 전화한 거 같고 말이지.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녀라면 당신께서 자리에 안 계신 것을 원망하는 마음이 더 클지도………….

대교의 전음이 애매하게 멈추고 있었다. 나 역시 얼굴의 웃음기를 거두고 대교가 긴장하여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담배 피던 아가씨……………? 왜 갑자기 살기를 발산하며 우리를 아니,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지? 이제 보니 상당한 미모의 세련된 도시미녀 스타일…인 건 그렇다 치고, 대체 왜 나를…, 음? 아예 일어서며 이쪽으로 오기 시작하는데…, 대체 왜?

“당신, 누구야?”

얼씨구. 다짜고짜 반말?

“당신들, 재단사람 아니지? 어디서 왔어?”

나, 난감하군. 마군황이나 비화곡주 시절 이전의, 그러니까 평범한 보통사람 시절에조차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리……

어이없고 화도 났지만 상대가 여자다보니, 아무래도 난감함이 앞섰다. 그런 나를 대신하여 대교가 스윽- 한걸음을 나섰다.

“무례한 분이네요. 우리에게 뭔가 물으려면 자신부터 신분을 밝혀야하지 않을까요?”

“… 흥! 꼴에 이런 추종자는 데리고 다니는군. 하긴 너 같은 쓰레기들도 그런 재주하나는…………….”

파츳!

말릴 틈도 없이 대교의 섬광분소지가 쏘아졌다. 하지만 그 직후 들려온 것은 푹~ 하는 맥 빠진 소리였다.

마치 화살이 질척한 진흙벽에 박히는 듯한… 쯧. 저 이상한 막장아가씨가 지처럼 이상한 존재를 불러냈군.

막장아가씨의 옆에 기묘한 유령 여자가 나타난 건 대교가 냉기를 발산하며 나섰을 때 부터였다. 그러나 그 유령같은 여자가 이렇게 빠르게 막장아 가씨 앞으로 이동하여 섬광분소지를 몸빵으로 막아낼 줄은 몰랐었다.

“후후. 인사들 해. 우리 엄마야.”

막장아가씨가 지 엄마라고 소개한 유령인지 뭔지는 섬광분소지를 얼굴부위로 막아낸 참이었다. 그래서 막대기로 쿡 찍은 진흙인형 같던 얼굴이 꿈 틀대며 차츰 수복되고 있었다.

저건 인간의 영혼이라기보다 ‘헬게이트’ 녀석의 사념체 비슷한 느낌인데, 근데 지 엄마라고?

“그리고 울 아빠는… 바로 당신들 뒤!”

키득거리며 장난치는 목소리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 등 뒤로 느껴지기 시작한 불길하고 강력한 기운은 분명⋯, 땅! 땅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즉각 정글도를 휘둘러 뒤쪽 지면을 향해 삼시전결을 날렸고, 그와 동시에 우리 앞의 엄마 유령이 악귀 같은 형상으로 엄습하고 있었다. 번득!

대교의 일검이 엄마 유령을 갈랐으나 우리는 다급하게 공공보법을 펼쳐서 엄마 유령의 공격을 피해야했다.

이런 제기…! 대교의 일검을 맞고도 멈칫하는 기색도 없이 계속 달려들다니… 저거 대체 뭐야? 아니, 저걸 엄마라고 부르면서 자살 특공대식으로 공격을 시키는 저 정신 나간 막장아가씨 정체는 대체……………

일단 이십여 미터정도 거리를 두게 된 상태였고 막장 아가씨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 앞에는 우릴 공격하려다가 반격을 당해서 널브러 진 엄마 유령과 아빠(?) 유령이 꿈틀대면서 회복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헬게이트 녀석의 사념체 괴물들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녀석의 사념체들은 새로 만들어지면 졌지, 있는 게 부상을 회복하는 식은 아니었던 거 같은 데…, 으음. 어떤 능력인지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이런 경우에는 본체인 저 막장 아가씨를 베어 버리는 것이 정답일 듯…, 으으음. 근데 지금 왜 이런 상황이……………

“이봐요, 아가씨! 싸우더라도 이유는 알고 싸웁시다. 대체 왜 이러는 거요?”

내가 뒤늦게 외쳐봤지만 막장 아가씨는 싸늘한 냉소를 흘릴 뿐이었다.

“흥. 너희들은 말해줘도 모를걸? 난 그냥 너희들이 싫어! 전부 다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아 놔. 뭐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에? 근데 저 유령 부부인지 뭔지, 막장 딸내미가 흥분하니까 같이 흥분해 버린 건가? 왜 갑자기 몸에서 불길 이 나오고 난리………

내가 아는 발화능력자 자니는 몸 주위로 불꽃을 일으키는 형태였다. 하지만 저 유령부부는 지금 몸 자체를 태우기라도 하듯, 내부로부터 불길이 삐 져나오는 것 같았다.

-요몽. 마신일, 그 인간에게 전화 걸어. 빨리!

「실은 벌써 그러고 있었는데, 부재중 응답만…

젠장. 이 인간, 이거 어째… 아, 가만?

최근의 인상적인 기억 때문에 마신일과 세트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이봐요! 당신 이름이 혹시…….”

“주혜원씨!”

그래. 그 이름 맞는 거 같은데, 지금 누가 저 아가씨 이름을 외친거지?

“무슨 짓이에요! 멈춰욧!”

연이어 외치며 주차장 바깥으로부터 달려오고 있는 사람은 또 한명의 낯선 여자였다.

다른 재단 사원이 우릴 돕기 위해 출동한⋯건 좋은데, 쟨 또 뭐니? 이번엔 투명한 물 같은⋯, 투명한…, 용?

“오지 마!”

막장 아가씨가 빼액- 소리를 질렀고, 투명한 용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휘감고 달려오던 여자가 주춤하는 것 같았다.

저 막장 아가씨 이름이 ‘혜원’이 맞고, 마신일의 증언(?)도 맞다면, 저 막장 아가씨 주혜원은 재단 최강의 발화능력자! 하지만 저 투명용을 감고 있는 아가씨도 결코 주혜원에게 겁먹지 않는 기색인건 물론이고… 지금 일단 우리와 주혜원 사이에 멈춰서긴 했지만, 무섭게 주혜원을 노려보 고 있어. 짜증스럽게 오지 말라 외쳤던 주혜원이 오히려 시선을 회피하는 눈치이고……………

“주혜원씨! 당신은 지금 당신이 어떤 처지인지를 잊었나요? 당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또 재단의 손님들에게 아?”

말하다가 뒤늦게 우리의 존재를 상기한 여자가 다소 당황한 태도와 함께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려 꾸벅 인사부터 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재단 ‘감찰부’의 ‘윤태영’ 대리입니다! 애써 재단을 찾아주셨는데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건, 이 일은…….”

감찰부 소속 사원이라고..? 흠. 손님 응대와 거리가 먼 부서라 그런지 썰렁한 일을 당한 손님에게 어떻게 사과하고 해명해야할지 몰라 버벅대는 거 같군.

“아니, 뭐. 딱히 다친 곳도 없고….. 우린 그냥 이대로 상황이 잘 끝나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그렇게 너그럽게(?) 말하며 웃어주자, 윤태영이라는 감찰부 여자께서는 다행이라는 듯 어느 정도 안도하는 표정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도 잠시였다.

뭐야. 이 감찰부 아가씨는 왜 갑자기 날 노려보기 시작하는.. 응? 라프? 이제야 라프를 인식한 여자의 태도가 급변하는 그런 것도 문제겠지

“크르르르~”

이번엔 내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 어깨위의 라프가 갑자기 적대적인 목울림 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 야! 넌 왜 그래?”

내가 손을 뻗자 라프는 그 손을 피하듯 뛰어올라 내 앞의 바닥으로 내려섰다. 난 라프가 진짜 늑대처럼 목울림 소리를 내며 털까지 곤두세우는 걸 처음 보았기 때문에 녀석을 어떻게 진정시켜야할지 감이오지 않았다.

-요몽! 아공간 열어!!

난 라프를 아공간에 돌려보낼 생각이었지만 이미 감찰부 여자 쪽은 장난이 아닌 분위기 였다.

저 여자의 몸을 감고 있는 용의 형체가 점점 더 커지며 엄청난 기운이…, 윽! 뭐냐. 왜 갑자기 저 여자의 위쪽으로 시커먼 먹구름이…, 웃! 구름 속 에서 마른번개가 친다! 이런 제기, 저거 진짜 용인거야? 기상현상까지 일으키는?

「주인님 아무래도 저게 ‘신수(神獸)’라는 건가 봐요! 마계에서 온 라프와는 앙숙, 천적, 그런 관계예요!」

요몽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라프의 작은 입이 쩌억 벌어지고 있었다.

“얌마! 안 돼!”

난 다급하게 몸을 날려 라프를 잡아채면서 녀석의 입을 하늘 쪽으로 올렸다.

캬우우우우~!

지금까지 중 가장 강력한 초대형 초음파가 하늘을 폭격한 셈이랄까? 저 높은 곳은 어떨지 몰라도 가까이에 형성되어있던 먹구름은 확실하게 날려 버린 거 같지? 아, 아니, 초음파 대포(?) 위력 감상할 때가 아니지!

난 아직도 사납게 으르렁 거리고 있는 라프를 서둘러 몽몽의 아공간으로 넣어야했다. 아공간 입구가 사라지며 라프의 기운이 차단되자 감찰부 여 자 쪽 신수인지 뭔지의 적대적인 기운도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잽싸게 라프를 수납하셔서 다행이에요. 이쪽 세계 전설에 의하면, 태고의 어떤 신이 신수를 만들어서 마계의 생명체들을 멸하게 했었데요. 그러 니까, 저 여자의 신수와 마계의 왕자 라프는 태생부터 앙숙인 관계라는… 그런 얘기입죠.」

요몽 녀석, 그런 정보를 참 일찍도 말해주네, 그려.

“윤태영! 당신은 이제 좀 빠져!”

쯧. 그래. 지금은 저 막장 아가씨 주혜원이 가장 큰 문제지. 라프와 신수의 궁합(?) 문제는 원인을 알게 되어 그럭저럭 수습이 된 것도 같지만, 저 주혜원이 대체 왜 나에게 이러는지는 알 수가 없으니………….

“당신도 당신이 가장 끔찍하게 싫어하는 마물을 부리는 자를 보호하고 싶지는 않겠지?”

주혜원이 외치는 소리에 감찰부 아가씨 윤태영이 흔들리고 있는 거 같았다. 느껴지는 스타일로보아 주혜원과는 정반대에 가까울 정도로 원칙과 예 의를 중시할 거 같은데도 저러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라프와 같은 마계 출신들에 유감이 많지 싶었다.

아니. 본인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저 신수인지 하는 반투명의 용에게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 같은 재단의 남장군도 남이 장군이 현신 하면 그 장군신의 성격 비슷하게 된다고 했던 거 같으니…………….

“흥! 역시 꽉 막힌 여자였군! 이젠 비키던지, 당신도 함께 덤비든지 맘대로 해!”

감찰부 아가씨의 애매한 태도를 참지 못한 주혜원이 결국 폭발하는 것 같았다. 주혜원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고 그와 함 께 유령 부부의 화염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머, 멈춰요! 역시 당신의 행동은 용납될 수 없어요!”

감찰부 아가씨가 결심을 굳혔는지 그렇게 외치더니 주혜원을 막아서기 위한 위치로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간 진정하고 있던 기색의 신수도 다시 라프에게 반응할 때처럼 강하게 일렁이며 무서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저 아가씨의 신수도 장난 아닌 건 분명하겠지만, 지난번 통화에서 마신일이 그러니까, 이렇게 말했었지?

‘주혜원. 그녀가 폭주하면 저도 못 말립니다. 자칫 저도 죽을까봐.’

여기서 키포인트는 ‘폭주하면…’이야. 현재 주혜원의 화력도 심각한 수준인데, 만약 설 건드려서 소위 ‘폭주’를 한다면… 응? 저건?

감찰부 아가씨가 천천히 왼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팔이 수평을 이루자 카랑카랑하게 외쳤다.

“왼쪽의 신은 사악함을 먹는다!”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신수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었다. 언뜻 전체적으로 작아지며 다시 내부로 스며드는 것처럼 보이는가 싶더니 스르르~ 왼쪽 팔을 타고 흘렀다.

그냥 위치이동..? 아니, 그건 아니고…, 신수의 기질 자체가 뭔가 변하는 느낌? 오…! 점점 더 커지며 용의 형상, 특히 머리가 더 뚜렷하게 구체화 되고 있어. 증폭되는 기운도 그렇고, 역시 저 감찰부 아가씨도 만만치 않군. 하지만 이럴수록 주혜원이 자극받아서 폭주할 가능성이 더 커지…거나 말거나! 에이 모르겠다! 구경하면 역시 쌈구경. 그냥 고맙게 관람이나 하자!

“음~ 엄마는 대기. 오늘도 공격수는 아빠. 후후~ 아빠 홧팅!”

감찰부 아가씨의 소위 있어 보이는 멘트와 달리 주혜원의 말투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스러웠다. 막장 이미지 때문에 정신연령을 의심하는 생각이 앞 서 들었지만, 이번엔 아무래도 소위 있어 보이는 대사를 한 상대측을 비꼬기 위해서 일부러 더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근데 공격수로 나서는 아빠 유령의 구부정한 저 자세는 정말로 럭비선수의 공격 스타트 자세 같은 느낌이…, 오! 진짜?

파앗! 폭발적인 스타트로 튀어나간 아빠 유령이 감찰부 아가씨를 엄습했다.

“큭!”

기습적인 태클에 걸린 감찰부 아가씨가 신음성과 함께 정신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격렬하게 밀어붙이던 아빠 유령이 멈춘 건 주차장 한쪽 끝에서였다.

“아하핫! 당신 정말 감찰부의 샛별이라는 윤태영 맞아? 그게 뭐야?”

주혜원이 자신의 아빠 유령 앞에 힘없이 쓰러져있는 감찰부 아가씨를 향해 손가락을 세우고 웃었다.

하지만, 육탄 공격에 의한 충격과 이글거리는 불길의 화력도, 저 신수가 다 막아냈어. 그냥 막았다기보다는 물처럼 출렁이는 움직임과 함께 공 격을 흡수해버리는 느낌……………? 흠. 과연, 감찰부 아가씨가 쓰러져 누운 자세 그대로 새액~ 쪼개는군.

“실망입니다, 주혜원씨.”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감찰부 아가씨의 왼팔이 다시 들어 올려 지며 수평을 이루더니, 그 팔의 소매 안쪽에서 뭔가 더 물처럼 주르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무중력 상태의 물처럼 흐트러지며 각각이 몽글몽글 떠올라 신수를 중심으로 하는 허공에 가득해졌다.

“난 궁금했습니다. 재단의 모든 간부들이 가장 위험한 여자’라고 부르는 당신의 힘이 말입니다.”

슈욱! 슉! 슉! 슉!

허공에서 반짝이던 물방울들이(?) 탄환처럼 쏘아져 아빠 유령에게 틀어박히고 있었다. 근거리에서 산탄총을 맞은 짐승처럼 뒤로 튕겨진 아빠 유령 이 비틀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다가 결국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공격이 적중된 부분마다 치이익~ 소리가 나면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너무 시시했습니다., 주혜원씨. 나의 신수가 먹어치울 의욕도 안 생길 만큼.”

노골적인 비웃음을 담은 표독스런 음성…!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조금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모습과 말투로군. 이 감찰부 아가씨, 혹시 상대의 힘 을 느껴보고 싶었다기보다, 그냥 한 대맞고 빡 돌고 싶었던 거 아닐까?

“주혜원씨.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습니다. 당신이 사악함, 위험한 힘을 보여주십시오.”

감찰부 아가씨는 매섭고 날카로운 음성으로 여전히 뭔가 있어 보이는 대사로 도발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주혜원은 철부지 막장 아가씨답지 않게 곧바로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신수의 수탄에 공격받고 한쪽 무릎까지 꿇었던 자신의 아빠 유령을 보고 있었고, 그 얼굴에는 이미 장난기와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아빠가 아파하네? 역시 저쪽도 ‘신의 아이’여서인가?”

낮게 중얼거린 주혜원이 문득 다시 웃으며 시선을 감찰부 아가씨 쪽으로 옮겼다.

“내… 사악함? 정말 보고 싶어?”

뭔가 비틀린 웃음기가 떠오른 주혜원으로 부터 스멀스멀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소위 ‘사악함’이 맞을 것 같은 기운 이 분명했다.

“하긴, 나도 궁금해졌어. ‘신수의 여자’, 윤태영. 당신이 ‘신의 아이인지 아닌지!”

주혜원의 예의 ‘사악한 기운’은 빠르게 짙어지며 물리적인 바람기 같은 것이 꽤 먼 거리의 우리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보다 가까운 이 십 여 미터 정도거리의 감찰부 아가씨, 윤태영이 입술을 깨물며 잠시 내려트렸던 왼손을 다시 수평으로 들어 올렸다.

주혜원의 거센 기의 발산 때문에 물결치듯 일렁이던 신수가 곧바로 안정되며 더욱 커지고 있는데, 근데 유독 머리가 커지면서 기형적인 느낌 이…, 암튼, 이쯤에서 나도 대비를 해야겠어!

난 손에 들고 있던 정글도를 어깨에 메며 옆에서 청명검을 반쯤 빼고 있는 대교를 돌아보았다.

-대교. 넌 왜?

-아, 싸움을 말리실거면 저도 거들어야 할 거 같아서………………

-아니. 난 혹시 누가 싸움을 방해하면 그쪽을 치려는 거야. 오! 시작인가?

캬아아~

내가 눈을 돌린 사이에 사람도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크기가 된 신수가 크게 입을 벌려 포효하고 있었다. 마치 아마존의 괴물뱀 아나콘 다가 사냥감 앞에서 입을 벌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주혜원은 태연하게 웃고 있었으며 그런 그녀의 바로 앞 허공에 화악~! 불길이 일었 다.

화염구…? ‘크레이지 파이어 자니’의 화염구…, 와는 달라. 우선 만들어지는 과정부터가, 자니는 저런 ‘불꽃 응축체’를 만들 때, 열에너지를 끌어 모아 응축시키는 과정을 애써 진행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주혜원은 그냥 순간적으로 눈을 부릅뜨는 것만으로 단숨에 저런 걸⋯, 아니, 그보다, 화 염 덩어리의 성질 자체가 뭔가 틀린 듯한…………….

“조금 뜨거운데, 먹을 수 있을까?”

주혜원의 비웃음과 함께 그녀의 화염덩어리가 맹렬하게 쏘아졌다.

콰아악!

날아드는 화염 덩어리를 물어버린 신수가 순간적으로 힘에 밀리며 신수와 연결된 감찰부 윤태영까지 뒤로 휘청했다.

그래도…, 버텼어. 여기까지 빠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 표정이지만, 하여간 버텼고, 주인의 의지에 부응하듯 신수의 입도 더욱 커지 며 으직, 우적…, 천천히 화염덩어리를 삼키고, 결국 꾸울꺽! 으~ 왠지 보는 내가 뭔가 어렵게 삼키는 기분이 드네.

“제법이네? 어디 위장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도 좀 볼까?”

이죽대는 주혜원 앞에는 이미 조금 전보다 두 세배는 더 큰 크기의 화염덩어리가 있었다. 그걸 대비하는 듯 신수도 꿈틀대며 더욱 커지고 있었고 방금 삼킨 화염은 순식간에 소화(?) 시켜버린 것처럼 목뒤의 몸체 두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도 윤태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더 이상의 맛없는 먹이는 사양합니다.”

“훗. 맛이 없다고? 너무 뜨거워서 입을 댄 건 아니고?”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신의 힘은 생각보다 사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혜원의 이글거리는 기세가 일순 멈칫하는 것 같았다. 윤태영의 신수는 급격히 작아지며 왼팔을 타고 역행하여 처음 등장 할 때의 모습이 되고 있 었다.

“그러나, 당신이 위험한 여자, 아니 위험한 사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오늘 재단을 찾은 손님들께 위해를 가한 사실도 틀림없 이 제가 확인한 사항입니다. 따라서……, 영업 1부 4과 소속 주혜원 사원! 당신의 특별 관리관으로서 적절한 징계를 집행하겠습니다.”

이 아가씨, 우째 초기 모드 몽몽틱한 성격인거 같구먼. 으음. 근데 파워게임에서 밀린 건 확실한데도 지가 징계를 하네 마네 한다는 건, 아직 다 른 히든카드가 남아있다는, 아, 혹시?

윤태영은 싸움을 시작할 때와 달리 주혜원에 대한 적개심이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고집스럽게 마음을 다잡는 기색으로 오 른팔을 수평으로 들어올렸다.

“오른쪽의 신은, 사악함을 벌한다.”

촤르르르-

왼쪽 팔로 신수를 쓸 때보다 훨씬 빠르게 신수의 물결이 오른 팔로 흐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신, 확연하게 짙은 황색 빛의 용은 겉모습까지 왼쪽보 다 사납고 난폭한 느낌의 형상이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신수 위의 하늘에 갑자기 피어오르는 먹구름…! 라프에게 자극받아서 얼결에(?) 형성 될 때에 비해 두텁고 짙은 먹구름이 뭉클 뭉클 커지며 우릉! 꾸릉! 묵직하고 섬뜩한 소리가 퍼져 나왔다.

“치이~ 뭐야? 내게 내리는 징계가 벼락…, 천벌이라는 거야?”

주혜원은 어이없어하면서 한편으로는 쓴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난처한 표정까지 떠올리며 고개를 들어 먹구름을 살펴보았다. 새로운 신수가 불러내는 먹구름은 어느 사이 넓은 주차장의 절반 넘게 뒤덮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나와 대교가 서 있는 곳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 이었다

「주인님! 대교님! 언능 피하세요! 구름 전체에 전기 에너지가 만땅이에욧!」

에구! 요주의 인물 일순위의 막장 주혜원도 아니고, 나름 정상적인 아가씨가 왜 갑자기 오버야? 이거 이거, 어쩐다.

나는 재빨리 시선과 머리를 굴리며 대피 장소를 검색해야했다. 나 혼자라면 몰라도 대교까지 있는데 쌈 구경에 목숨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쭈뼛?! 윽!

번쩍! 꽈릉! 번쩍! 꽈릉!

시, 시껍했다. 대교는, 괜찮군.

나는 순간적으로 나 자신이 피뢰침이 되려고 치켜들던 정글도를 어색하게 내리면서 주혜원 쪽을 돌아보았다. 두 개의 벼락 모두 주혜원을 직격하 지 않았는지, 그녀는 멀쩡한 몸으로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주혜원은 자존심 때문에 먹구름을 피해 달아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감찰부 아가씨의 표적은 처음부터 주혜원이 아니었군. 그녀의 표적은………….

“…주혜원씨. 당신은 상부로부터 ‘근신 명령’을 받았을 때, 만약 또다시 재단의 원칙을 어기게 되면…, ‘수호령 사용 금지 처분을 받는다’라는 추가 징계 안내도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겁니까?”

윤태영의 설명과 가벼운 질책이 주혜원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뒤에 서있었던 유령 부부가 힘없이 쓰러져있는 것을 확인했다.

“엄마? 아빠?”

낮고 떨리는 음성이었다. 저 이상한 유령 부부는 나와 대교의 공격과 신수의 수탄(彈) 공격을 받고 큰 손상을 입었어도 빠르게 회복하여 주혜원 의 곁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하지만 소위 ‘사악함을 벌하는 신’의 벼락에는 저 둘도 완전히 쓰러트리는 힘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 주혜원씨. 당신의 수호령들은 이제………….”

“닥!쳣!”

“주혜원씨! 진정하고 내말을 듣……”

“닥치고 꺼져버렷!”

카악-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른 주혜원에게서 엄청난 열기가 폭사했다.

“헛!”

윤태영의 짧은 비명과 전신이 엄청난 화염에 먹혀버렸고, 그녀를 삼킨 화염 줄기는 계속해서 뻗어나갔다. 화염 방사기 앞의 작은 인형처럼 날려간 윤태영은 그대로 아스팔트 도로위로 내팽개쳐지기 직전에 누군가에게 간신히 구조되고 있었다.

바로 나! 내가 공중에서 받았………….

“으랴! 차,찻!”

괴이한 기합성과 함께 몸을 회전시키면서 겨우 날아가는 힘을 상쇄하고서야 그럭저럭 안전하게 착지할 수가 있었다.

이것도 다 울 이쁜 대교가 중간에서 화염방사를 차단해줘서 가능했던 거지만……, 하여간, 결국 정의사도놀이를 하고 말았군. 다만 난 임자 있는 정 의의 사도니까, 얼른 팔을 풀고 바닥에 눕힌 다음, 입으로 하는 인공호흡 같은 건 절대 금지이고, 어디 민망한 부위의 혈도 잡기도 회피하면서, 그러 니까 최소한의 응급처치를 할 어떤 방법을, 생각할 필요는 없겠네.

살짝 의식을 잃었던 윤태영은 자기가 알아서 눈을 뜨고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주, 주혜원은?”

직무에 충실한 사원답게 주혜원 쪽 상황부터 확인하려 애를 쓰려 했고, 허둥지둥 주변을 돌아보기도 한다.

“무, 물이, 물이 어딘가…………….”

흠. 그러고 보니 이 여자를 휘감아 돌고 있던 신수의 형체가 거의 보이지 않는군. 그건 보이는 이미지대로 ‘수룡’이었던 건가?

“아무 물이나 되는 겁니까?

“아뇨. 가급적 불순물이 적어야 신수가 최소한의 힘을… 아?”

윤태영은 아주 불연 듯 뭔가를 깨닫고 입을 다무는 거 같았다.

훗. 이 아가씨가 정신줄을 놓치긴 했었군. 자기 신수에 대한 사항…. 즉 ‘기업 비밀’을 막 흘리고 말야.

“건물 안에 정수기 있을 텐데 좀 떠다드릴까?”

윤태영은 얼굴을 붉히며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아닙니다! 도움은 감사합니다. 하, 하지만 제가 어떻게든, 제가 잠시 방심을………..?

“진정하세요. 당신도, 그 우아한 신수도 지금은 좀 쉬어야 할 거 같아요.”

대교였다. 대교가 상냥한 음성과 함께 다가와서 나는 그녀와 교대하듯 윤태영으로부터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내 입가에 머금어지는 것은 쓴웃음이 었고, 마음속에 가득한 것은 귀차니즘 이었다.

얼결에 나서기는 했는데, 저 감찰부 아가씨가 설 건드려서 터진 폭탄(?) 처리할 생각하니까, 아아~ 싫다, 싫어!

나는 호신강기를 최대한 끌어 올리며 주차장 안의 주혜원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주혜원은 넓은 주차장의 한가운데쯤에 힘없이 주저앉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앞의 바닥에 누워있는 부부 유령과 그녀의 비주얼은 사고를 당한 부부의 시신 옆에 그들의 딸내미가 망연자실 슬퍼하고 있는 광경 그 자체였다.

차라리 진짜 그런 상황이었다면 언능 달려가서 응급처치해주고 119도 불러주고 그럴 텐데…, 근데 지금은 어디 가까이 갈수나 있어야 뭘 해주던지 말던지, 젠장. 이건 마치………….

소령이가 사막에 날려 보냈던 핵폭탄 폭발 장면, 내가 천 년 전 무인도에서 터트렸던 네이팜탄 폭발 장면 등이 떠올랐다. 주혜원으로부터 시작된 어마 무시한 화염은 그런 초강력 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돌리는 듯한 광경 같았다.

원형으로 서서히 번져 나오는 화염의 속도는 기껏해야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아장아장 다가오는 정도..? 하지만 멈추지 않고 착실하게 퍼져 나오면서 이미 주차장을 거의 다 채우고 있는, 빌어먹을! 재단 건물이고 사람들이고 그건 여기 인간들이 알아서 할 문제니까 내 알바 아냐! 하지 만 내 차…! 이 주차장에는 내 차 ‘키트 1.5호’가 있어. 내 첫 번째 마이카이며 지하무림인들이 상당한 정성과 엄청난 ‘돈’을 들여서 DIY해준 내 차! 내 차를 지켜야해!

난 각오를 다지며 정글도를 어깨에 걸쳤다. 그러나 주차장 안으로 진입하기도 전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쒸! 벌써부터 뜨겁고 숨이 탁탁 막히네. 자니의 화려한 불꽃과 달리 이건 더 작게 이글거리면서 더 미칠 듯한 열기가, 그, 그래도 호신강기를 수중에서처럼 운용하면서 공공보법을 극성까지 쓰면 어찌어찌 돌파하여 주혜원까지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근데 그다음엔, 그다음엔 어떻게 설득이 나 진정시킬 방법이, 아 놔 진짜! 여긴 내 구역도 아닌데 왜 내가………………

부우우~ 끼이이익~!

뒤쪽에서 들려오는 다소 낯익은 차 소리가 반가웠다.

이제야 재단 인간들이 출동한 건가? 감찰부 아가씨 말고는 다들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이제야… 응? 가만? 엔진음과 급정거소리가 낯, 익, 다? “맙소사! 주혜 언니가 왜, 또!”

유소희 목소리? 쟤네들이 하필 이런 타이밍에…, 아, 아니지? 이건 보호대상 추가가 아니야! 저 남매도 원래 여기 사원이니까, 어? 어랏? 반가움을 표현하려고 돌아선 나를, 유인호는 빠르게 지나쳐갔다.

“이봐! 자네 혼자서는 힘들……….”

안 들리는 상태로군.

유인호는 화염의 장벽 앞에서 일단 멈추기는 했으나, 곧 성큼성큼 주저없이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지하 심층수처럼 깊은 내공을 가진 청 년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지, 벌써 전신에서 치이익~ 소리가 나고 있었다.

-유인호!

나는 전음으로 그를 부르며 그의 등에 손바닥을 댔다. 정글도에 축적된 기운이 그에게 전해지자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느껴졌 다.

– 역시, 현천기공을 알고 있군. 아니, 불무도의 심법도 혹시……….

-그렇습니다. 저도 어렴풋이 당신께서도 현천기공을 가진 분임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훗. 그랬군. 그랬었어. 그래서 우리가 처음부터 서로 뭔가 통한다고 느꼈던 거야.

현천기공이라는 공통의 심법이 가교가 되어 우리 두 사람의 내공은 빠르게 하나가 되고 증폭되어 화염의 벽을 좌우로 가르기 시작했다. 현천기공 으로 불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현천(天), 태초의 검은 하늘은 본래 불의기운까지 품고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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