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72화 : Soldier of Hell.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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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72화 : Soldier of Hell. (2)


1. Soldier of Hell. (2)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시다고? 그럼 자신의 고통과 죽음은 어떨까?”

난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지 않고 그대로 내려뜨려든 채, 자칭 천사 앞에 섰다. 점점 더 커다랗게 떠지는 그녀의 눈은 내 정글도로 향해 있었고, 내 정글도가 서서히 머리 위로 치켜들어지는 것을 따라가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자비를 베풀게 될 거 같군. 내 정글도는 빨라서 반쪽이 나는 시간도 짧지. 고통도 그만큼 적을 거야”

“아, 안 돼! 누, 누나. 진,유,준씨. 제발, 그만, 용서……………”

헬게이트였다. 녀석이 마지막 안간힘으로 무언가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지도 않았다.

“아아, 그래.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하지. 어디 뭐든 해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널 봐주려고 노력하는 건 네가 어려서야. 하지만 난 기억하지. 너도 천우신 사건 때 이 여자를 도왔었지? 그러니까 널 죽일 명분을 만들어주면 고맙지’

나는 내가 떠올린 생각에 나 스스로 전율했다. 하지만 그래도 또 내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 그려지고 있었다.

제, 젠장. 손이 떨린다. 격전중이라면 몰라도 이런 식으로는 처음이라 썅! 난 그래도 할 거야. 난 이 여자를 용서할 수 없어! 간다!

“우오오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괴성과 함께 나는 정글도를 내리쳤다. 정확하게 환영의 천사 머리위에서 아래까지 절반으로

쩍!

기분 나쁜 갈라짐 소리가 위쪽으로부터 아래까지 거침없이 이어지며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하자 비명은 옆쪽의 헬게이트 소년 쪽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녀석은 곧바로 의식을 잃는 것 같았다.

하아아아- 결국 해냈다. 나, 진유준. 내 한계를 넘어, 격전중이 아닐 때도 해버렸어.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했다. 그런 내 앞으로 대교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 팔을 잡아왔다.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대교는 환영의 천사쪽을 바라보며 당연한 결과라는 듯한 표정으로 만족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축하드려요. 의형수검의 경지를 이루신 것을요.”

나도 다시 환영의 천사 쪽으로 돌아보았다. 나의 정글도는 분명히 환영의 천사를 반쪽 낼 수밖에 없는 괘적으로 그어졌다. 하지만 반쪽이 나서 좌우로 쓰러져 있는 것은 그녀 뒤의 나무였을 뿐이었다.

환영의 천사, 저 여자는 헬게이트처럼 의식도 잃지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있군. 그냥 계속 와들와들 떨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으음. 근데 어째 그 정도만이 아닌 것 같기도 하네.

조금 더 자세히 보니까, 눈물과 침도 좀 흘리고 있고, 전신을 흔한 말로 사시나무 떨 듯 하고 있는 폼이 구목 녀석처럼 하얀 방에 가야하는 거 아닌가 싶어,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하네.

난 좀 민망해져서 환영의 천사를 슬쩍 외면하며 아예 돌아섰다.

―몽몽. CR아그들 불러서 좀 챙겨줘. 우린 아무래도 좀 그러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아, 그리고 저 역시 주인님의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땡쓰, 몽몽」

잠시 후.

나와 대교는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ᅳ후후. 오라버니. 이번에는 저도 정말 놀랐어요. 전 그녀의 환영에 속지 않고 칠 생각만 했었는데, 오라버니께선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그녀에게 죽음의 환영을 보여준 셈이네요! 게다가 최근의 그 짧은 정신수련만으로 그 방면의 최고 능력자를 압도하시다니…………!

대교는 진심으로 감동 비슷하게 하면서 ‘역시 울 애인이 짱’ 모드에 들어가 있는 거 같았지만, 난 사실 민망했다. 내가 이중, 삼중, 아니 몇 중인지도 모를 다중 인격 놀이를 하고 논 것은 어린 시절부터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마음을 읽는 환영의 천사가 오히려 속을 수밖에 없었지. 그녀를 가차 없이 베어버릴 정도로 빡돌아서 그걸 실행에 옮기려는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으니까 말이야. 다만 그 마음은 ‘본능’이 위주였고, 마지막 순간에 브레이크를 걸어 줄 ‘이성’이 짱박힌 채 따로 대기 중이었어.

나의 다중인격 놀이는 상당히 뿌리가 깊지만, 예전에는 진짜 다중인격이라 하기엔 좀 애매했었다. 그것이 상당 수준으로 발전해 버린 건

무림시절에 너무나 힘든 결정을 많이 해야 할 상황에서였다. 그래서 이번 싸움에 대비해서 훈련할 때도 비교적 쉽게 이미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환영의 천사에게 제대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할 순간까지 진행된 상황에서는 이미 정글도를 멈추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의형수검을 생각해서 연습을 했었는데, 이게 또 한정된 조건에서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주인님! 원판씨 연락이예용!」

쌈이 끝나니까 다시 요몽이 교대해서 나오는군.

“유준 형님. 우선 의형수검의 경지에 좀 더 가까워지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역시, 이 녀석은 나의 의형수검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걸 잘도 눈치까고 있군.

“훗. 니 말대로 아직 완성은 아니다만, 어땠냐? 뽀대 좀 났어?”

“그런식으로 나오시니 감동이 좀 식는 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다들 감탄하여 많은 박수가 나왔다는 점은 알려드릴 수 있겠군요.”

쫘식. 지 아파트에서, 내가 지 머리 자르는 순간에 처음 성공했을 때는 상당히 뻑간 모드더니, 이젠 쿨한 척 하는군.

“그런데 한 가지, 유준 형님께선 처음부터 이런 식의 전개를 계획해 두신 것입니까?”

이건 녀석 답지 않게 애매한 형식의 질문이다. 녀석 자신보다는 관객인 사도들을 위한 해설을 원한다고 봐야할 거 같아.

“라프까지 동원해서 오버한 건 계획에 없었어.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건, 가급적 속전속결로 할 생각이었지. 정신능력자와 싸우면서 시간 끌어봐야 잡념만 더 생겨서 갈수록 불리해 졌을 테고, 그래서 속전속결이 기본방침이었는데, 저 녀석이 섣부른 도발로 라프까지 쓸 명분을 만들어 준

셈이랄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환영의 천사 쪽을 돌아보았다. 산책 비슷하게 하면서 걷다보니 상당히 멀어졌지만, 우리 뒤로 4, 50미터정도 떨어진 거리의 환영의 천사와 헬게이트 모습이 얼추 보이기는 했다.

“그리고, 마무리 전개는 계획대로였어. 내가 한 연기 하잖냐. 눈에 뵈는 게 없는 나의 광분모드 때문에, 환영의 천사도 더 깊은 마음까지 읽을 정신이 없었던 거지.”

“화력전은 그렇다 치고, 정신능력자와 정신력 싸움으로 승리한 셈이로군요. 과연 초현상계의 새로운 마왕다우신………….”

“몽몽, 전화 끊어.”

짜식이, 내가 가장 찜찜해 하는 부분을 건드리고 그러네.

「우에~ 주인님도 참! 원판씨는 주인님 칭찬하는 건데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ᅳ됐네, 이 요몽아.

원판과의 통화청취가 아쉬워 불만을 드러내는 요몽을 무시하며, 난 다시 환영의 천사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환헬콤비의 상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거리였지만 몽몽이나 요몽에게 묻지 않고 일단 천천히 걷기만 했다. 그 둘을 보살펴 주기 위해 모여든 CR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서있는 것으로 보아, 크게 걱정할 상태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상한 사람이군요’

음, 과연 괜찮은 것 같군.

ᅳ흠. 뭐가? 내가 지금 너와 헬게이트를 걱정하고 있는 거?

‘그래요. 당신이 죽이려, 아니 이미 죽여 놓고 말이죠’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벌써 기가 살아난 듯한 기색의 텔레파시로군. 하긴, 명색이 정신능력자인데 과거의 구목처럼 정신력이 약하지는 않겠지. ᅳ글쎄? 너를 죽이려던, 혹은 죽인 마음과 지금 너희들을 걱정하는 마음. 둘 다 진심이지. 그럼 안되는 거냐? 다중인격도 있는 판국에 ‘다중감정’ 쯤이야, 뭐.

내가 쫌 억지 주장을 펴는 거 같긴 하지만, 뭐 어쩌겠어. 흔한 말로 내 마음 나도 몰라~ 이니 말이야.

‘그 정도는 알아요, 무슨 말인지. 저야말로 항상 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왔으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더 모르겠는 점도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복잡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마음을 통제하여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을 수가 있는 거죠?”

소위 마음의 대화를 하며 걷다보니, 어느 사이 우리는 환헬콤비의 앞까지 돌아와 있었다. 환영의 천사는 땅바닥에 앉아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헬게이트를 안고 있었다. 나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환영의 천사에게 입을 열어 말했다.

“내가 먼저 물을게. 너, 이번에 정말 나한테 죽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었지?”

환영의 천사는 잠시 침묵했으나, 결국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을 위해서든 뭘 위해서든, 그리고 무조건 반드시 죽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하여간 넌 그런 마음이었어. 게다가 내가 느끼기에 넌 오늘의 싸움에서뿐 아니라, 평소 항상 그래왔던 거 같고 말이야.”

환영의 천사는 조금 더 길게 침묵했으나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말이나 텔레파시가 아닌 방식으로 의사표현 하는 것이 왠지 묘한 기분이 들게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의 다중인격인지 뭔지들도 네 말을 안 듣지. 아, 아니. 너의 경우까지 내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고, 하여간 난 그래. 나와 내

안의 여러 마음들은 말이야, 다른 때는 각자 따로 논다 싶을 정도로 어지럽지.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즐겁게 살기위해서는 협조하고 내 명령을 듣지. 모두가 대장인 내가・・・ 그게, 그러니까, 음~ 모르겠다. 대답해주려고 정리해서 정의하려고 드니까 왠지 어색하고 좀 그러네. 그냥 네가 알아서

해석해라. 넌 명색이 마음 전문가 아니냐.”

난 조금 머쓱해져서 어색하게 말을 맺었고, 환영의 천사는 보일 듯 말 듯 웃음 비슷한 것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충분히 알겠어요. 알아도 저로서는 따라할 수 없는 마인드컨트롤 방식인거 같지만요.”

으으음. 왠지 내가 ‘개과천선해서 착하고 밝게 살아라’ 같은 말을 한 거 같은 기분이드네. 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왜 그런 기분이드나

모르겠네. 에이~ 안되겠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이나 조금 해주자.

나는 대교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 후, 환영의 천사 앞에 앉았다.

“야. 니들 말이야. 능력들이 원체 편리성이 좋아서 너무 게을러진 거 아니냐?”

사람의 마음을 읽는 환영의 천사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듯 살짝 의아한 기색을 띠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계속 ‘싸움질

강의’를 시작했다.

“너의 특기라는 지옥의 환영인지 뭔지도 그렇고, 그런 건 전부 그냥 남 괴롭히기잖아. 하지만 너도 헬게이트와 잘 연계하면 얼마든지 실전 전투에 나설 수 있어. 특히 탈진, 그거 아주 유용하잖아. 우리 커플처럼 탈진에 빨리 익숙해지는 타입의 적을 만난다 해도 상대가 탈진에 어느 정도 반응하는지를 잘 체크해서 헬게이트를 투입할 때의 타이밍과………….”

난 헬게이트의 사념체를 이용한 효율적 전투법과 여러 가지 경우에 환영의 천사가 어떻게 서포트 하면 헬게이트의 전투력이 극대화 될지에 대해서,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얘기를 계속 들려주었다. 어느 사이에 CR아그들은 슬그머니 물러나 어디론가 가버리는 것 같았고, 요몽도 사라져 있었다. 우쒸! 이 몸의 ‘실전 쌈박질 테크닉 강의’가 이렇게 인기 없다니!

“아, 암튼. 이렇게 너희들 콤비의 전투방식은 효율적으로 더 강하고 다양해질 수 있어. 알겠어? 그러니 다음에 또 싸우게 되면 좀 제대로 붙어 보자고.”

환영의 천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전 이제 헬게이트, 아니 ‘아담’과 함께 사라질 거예요. 블랙이나 내가 모시던 사도님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이대로 은퇴 및 잠적? 우쒸! 진작 말하지. 괜히 입 아프게 떠들었잖아.

“아니. 고마웠어요. 혹시라도 추적자를 만나게 되면 유용할 거 같아요’

이대로 블랙을 포함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겠다는 것도, 내게 감사하다는 것도 진심인 것 같았다. 한번 제대로 죽어보더니 뭔가 큰 심경의 변화가 생겼지 싶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을 게요’

-그러든가.

‘당신은 나를 싫어하고 심지어 증오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렇게 다정하게’

―야,야! 누가 들음 오해하겠다. 난 그냥 암생각 없이 보는데 왜 그렇게 표현하냐?

‘하지만 지금의 당신에게 느껴지는 눈빛과 마음은 분명히 그래요’

―와와! 얘 왜이래. 이건 대답이고 머고, 갈려면 그냥 언능가. 뻘소리 하지 말고.

나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환영의 천사는 정말이지 처음으로 보는 ‘고운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예. 이제부터 신경쓰지 마세요. 아담이 깨어나면 언제고 알아서 사라질 게요’

-그 녀석 본명이 아담? 그럼 넌 이브냐?

‘가장 흔히 듣는 농담이지만, 아니에요. 저의 이름은 ’아라크네‘예요’

아라크네? 그거 무슨 거미 관련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금방 생각이 안 나네?

‘그냥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 스스로 붙인 이름이에요. 의미는 없어요’

-그, 그래? 어쨌든, 나도 이제 하나만 묻자

나는 아까 내가 환영의 천사를 죽이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 환영의 천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능력 ‘탈진’을 사용하긴 했었다. 다만 자신을 죽이려는 내가 아닌, 무모하게 나서려던 헬게이트에게 말이다.

-너희들 친남매냐?

나의 마지막 궁금증에 환영의 천사, 아니 아라크네는 씁쓸한 표정으로 헬게이트 아담을 내려다보았다.

‘아담은 그렇게 알고 있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몇 가지 다른 인격 상태에서 타인과 저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는 짓을 반복했더니, 지금의 저로서는 확실한 기억이 없네요’

-너도 참 피곤하게 살아왔구나. 텔레파시 능력자들은 타인의 추악한 마음을 너무 많이 들여다봐서 인간불신으로 타인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어려운건 물론이고, 여러 가지로 장난 아니게 힘든 생활을 한다는 얘기도 듣긴 했다만, 아, 그래, 너희들 이 자리를 빠져나가면, 거기 한번 가봐라. 세계정화재단

‘세계정화재단 언제인가 그곳 사람들과 싸운 적도 있었는데, 그들에게 보호 요청을 하라는 건가요?”

-아니. 신변보호요청이든 뭐든 그런 건 니가 알아서 하는 거고, 나는 단지 거기서 누굴 좀 만나보라는 거야. 네가 싸웠다는 건 한국 지부 사람들은 아니었지?

“예. 미국 지부였고 꽤 심각해질 뻔 했는데, 서로의 소속을 알고 겨우 진정되었지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내가 말하는 사람은 한국지부에 있어 ‘최윤희 과장’이라고, 너와 같은 텔레파시스트면서 능력치도 너 못지않을 걸? 하여간 그 여자는 너와 정반대라고 하면 그렇지만, 암튼 주변사람들과 상당히 잘 어울려 살고 있더라. 같은 계열의 선배와 대화 좀 해보라는 거야, 나는.

‘후, 알겠어요. 충고 고마워요’

환영의 천사 아라크네는 이제 더욱 정상적인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난 내가 아라크네의 여러 인격 중에서 썰렁한 것들만 죽여서 지금 나름 괜찮은 아라크네가 된 것인지, 아니면 모든 인격이 싸그리 죽고 지금이 디폴트 상태인건지 같은 것도 궁금했지만, 그건 묻지 않기로 했다.

―잘 가라. 아, 그리고 오늘 싸움. 그렇게 재미없지 만은 않았어.

나는 아라크네와 아담으로부터 몸을 돌려 대교와 함께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고, 그런 우리 뒤에서 아라크네의 마지막 텔레파시가 전해졌다. ‘진유준님. 오늘 날 죽여주어서 고마웠어요. 대교님. 그 동네 떡볶이는 지난번 가셨던 곳보다 좌측으로 다음번 골목에 있는 집이 더 맛있어요’ 얼마 후.

나와 대교는 아라크네와 아담이 보이지 않는 위치의 섬 안쪽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히잉~ 주인님. 죄송해요.」

-응? 뭐가 말이냐, 요몽.

코드명 환영의 천사 혹은 아라크네. 지금 확인해보니, 그녀의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지난번에 제가 알려드린 떡볶이 집은 원조 집의 짝퉁이었어요.」 ᅳ흣~ 지금 그거 확인했냐?

「예. 지난번에 가셨던 집이 위치는 맞는데, 알고 보니 건물주가 원조집을 내쫓고 지가 오픈한 거라네요. 상호도 비슷하게 해서요. 아라크네 말대로 다음번 골목에 있는 집이 원조가 이사가 거래요. 확인이 늦어서 죄송해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훗. 아무래도 아라크네는 지난번에 대교에게 당한 후, ‘대체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기에, 그거 제때 못 먹었다고 날 죽이려고

들었을까?’라는 생각으로 한번 맛을 봤다가 완전 떡볶이 마니아가 된 모양이군.

-대교. 들었지? 다음에는 진짜 원조집을 찾아가보자.

ᅳ후후, 그래요. 서양 아가씨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원조의 맛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화끈하게 칼부림한 나는 그렇다 치고, 구경만한 대교도 생각보다 빨리 아라크네에 대한 원한을 풀어 버린 거 같군. 나보다 대교가 더 대인배인 셈인가?

「그런데 주인님, 주인님의 의형수검 말인데요.」

응? 요몽이 웬일로 무공에 관심을 보이지?

「전과 달리 원하실 때 쓸 수 있으면 완성된 거 아닌가요? 왜 원판씨는 아직 완성이 안 된 것처럼 말했던 거죠?」

-그녀석이 그래도 무공에는 안목, 아니 그냥 눈치빨이 좀 있잖냐. 상황을 보고 눈치를 챈거고 솔직히 그놈 말이 맞기는 해. 난 아직 이번과 같이 한정된 조건, 뭔가 ‘하고 싶다’와 ‘하면 안 돼’의 상반된 의식이 명확하게 충돌되는 상황에서만 쓸 수가 있는 거야. 원래 의형수검은 모든 상황에서 마음을 따라 검로가 생겨야 하는 건데 말이지.

「우웅~ 아직은 기본기만 되고 응용기가 안된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ᅳ약간 다른 거 같긴 하다만, 일단 그렇게 이해해도 무방할 거 같다. 근데 니가 웬일로 무공에 관심을 보이냐? ‘숙녀가 칼 쓸 일이 뭐가 있겠냐’라고 몽몽에게 그러지 않았었냐?

「후후- 주인님 서포트에 좀 더 만전을 기하려면 그쪽 데이터도 보강해야할 거 같아서요. 그런데 솔직히 아직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아요. 특히

의형수검은 상당부분 물리적인 에너지 흐름 법칙에 어긋나 있어서리.」

훗. 요몽이 정말 전투보조까지 할 날이 올지 어떨지는 몰라도 일단 성실한 자세는 칭찬받아야할 거 같군.

ᅳ요몽. 너 요즘… 어?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고, 번득! 무언가가 내 눈앞을 꿰뚫었다. 

「주인님!」

요몽의 때늦은 외침과 함께 내 등줄기로도 서늘한 한기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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