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74화 : 고요의 념력자(念力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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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74화 : 고요의 념력자(念力者). (1)


2. 고요의 념력자(念力者). (1)

무생물적인 아름다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라면 하기 어렵겠지만, 하여간 그런 표현이 떠올랐다. 그렇게 기묘하면서도 여하간 아름다운 계열에 속하는 것 같은 두 존재, 부식의 인어와 처키는 꽤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탐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서로가 서로를 감상..? 음, 부식의 인어 쪽이 먼저 입을 여는 기색이다.

“진유준씨느은~”

아우. 저 늘어지는 귀신 목소리.

“오지 않느은~ 건가요오~……”

젠장. 잊고 있었다. 저 녀석이 저런 여자 귀신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처키 녀석 저런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냥 히죽 웃어버리네? “그보다, 그 마스크 벗어도 되요. 난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몸이라 병에 걸리지도 않고 썩지도 않아요.”

“플라스티익~”

부식의 인어도 뜻밖이었는지 새삼 처키를 다시 살피는 것 같았다.

“지금은 이렇게 화장을 해도 보통 인간처럼 보이죠? 하지만 우리 왕대장이 고쳐주기 전까지는 거의 인형에 가까웠죠. 물론 지금도 플라스틱인 건 마찬가지에요. 전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요.”

하아 그래. 그건 몽몽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저 아이 말대로 원래 그렇게, 인간세포와 플라스틱의 합체라는 어처구니없는 조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말이다. 닥터 제이 말로는 별의별 실험 다하는 와중에 어떤 정신 나간 연구진에서 추진했다가 처키 하나 성공하긴 했는데, 당장의 실효성 측면에서는 ‘다른 실험체에 비해 딱히 장점은 없다’는 결론이 나와서 연구가 중단되었다나?

“그러엄~”

예의 귀신 목소리와 함께 부식의 인어는 고개를 숙이고 항균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생각보단 두툼하여 마스크라기보다 콤팩트한 방독면 수준이었던 걸 벗고 고개를 들자, 이쪽의 요몽 녀석이 흥분하여 외쳤다.

「빙고! 내 이럴 줄 알았어! 간만에 원판씨 사촌 등장!」

원판 사촌? 최상위 꽃돌이라는 의미겠지만, 나는 어째 긍정하기가 어려웠다.

“역시 예쁜 누나였네요.”

현장의 처키는 요몽처럼 단순하면서도 정반대의 평을 내린 셈이었다.

“…고마워요.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었는데, 좋네요.”

부식의 인어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던 건 마스크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이제 녀석의 목소리는 늘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상당히 고운 미성에 속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진유준씨는 왜 오지 않지요?”

“왕대장은 오지 않아요. 지금부터 누나와 싸울 사람은 바로 저예요.”

처키는 그렇게 말하며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든 반투명의 단검을 들어 보였다. 재료를 알고 있는 나도 그걸 실감하기 어려울정도로 정교하고 강해보이는 칼이었다.

“슬프군요. 진유준씨에게 거부당한 것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과 싸워야 하는 것도.”

부식의 인어는 정말 금방 눈물이라도 한 방울 떨굴 듯한 분위기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나는 부식의 인어라 불리는 저 애잔한 전사에게 직접 찾아가 말하고 싶었다.

시방, 싸우자는겨, 말자는겨? 처키가 도착한 게 언젠데 계속 조낸 분위기만 잡고 싸울 생각을 안 하고. 오?! 결국 처키가 먼저 움직였어! 처음 착지했을 때의 웅크리고 도사린 자세에서 크게 변화가 없던 처키가 한순간에 몸을 날려 부식의 인어 옆을 스치듯 날았던 것이다. 부식의 인어를 정면으로 엄습했던 처키는 그의 등 뒤로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 착지했고, 부식의 인어는 여전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처키는 씨익 웃으며 부식의 인어쪽을 돌아보았고, 부식의 인어 얼굴에 난 가느다란 상처에서 조금씩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미안. 여자 얼굴은 소중한데, 내가 아직 새로운 몸에 익숙지가 않아서 그만.”

처키의 사과에 부식의 인어는 다정한 미소로 화답하였다.

“괜찮아요. 금방 나으니까.”

젠장. 이게 암살단 멤버야? 보살님이야?

나는 조금 난감해지려고 했지만, 다시 보니 부식의 인어가 짓고 있는 다정한 미소는 서서히 다른 표정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부식의 인어는 양손을 계속 코트 주머니 속에 넣고 있었는데, 그걸 동시에 빼며 말했다.

“나는 미리 사과할게요. 이제부터 많이 아플 거예요.”

나름의 공격 예고를 한 부식의 인어가 조용히 뛰어 올랐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날카로움을 선보였던 처키와 달리 부식의 인어는 우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크게 곡선을 그리며 처키를 향해 날아들었다.

꽝!

나도 예상 못했던 굉음이 터져 나왔다. 부식의 인어가 일견 가볍게 뻗는 것 같았던 손바닥이 바위에 찍히며 터져 나온 소리였다. 처키는 한발 앞서 몸을 피했지만, 부식의 인어 손도장(?)이 찍힌 바위를 보며 새삼 긴장하는 것 같았다.

권법?

저 정도 위력은 그냥 생체강화 전사들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단순한 동작을 본거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위에 깊숙한 손자국을 낸 부식의 인어는 몸을 일으키며 두 손을 합장하듯 모았다.

사삭-!

처키가 나도 잡기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키는 부식의 인어 주위를 어지럽게 이리저리 뛰며 기회를 노리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불시에 신형을 날려 들어갔다.

스팟! 팡!

처키의 날카로운 공격과 부식의 인어의 부드러운(?) 반격이 교차했다. 부식의 인어는 처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약간 기울였던 몸을 바로 세우며 변함없는 합장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 착지하는 처키의 자세는 불안정했다.

칼을 쥔 팔 쪽의 등과 어깨 사이에 한방 먹었어. 일반적으로는 비교적 무난한 부위라 다행이지만, 처키 녀석은 지금 간신히 칼을 놓치지 않고 있는 기색이군. 쯧, 이거 나도 좀 당황스럽네?

-대교. 난 아직 잘 모르겠는데, 넌 저 녀석이 쓰는 권법이 뭔지 알겠어?

-아, 아뇨. 저도 아직은 어느 파의 무공인지 알아보기 어렵네요.

대교도 나와 같은 입장이고, 몽몽도 조용하군. 좀 더 지켜봐야 하려나?

칼부림 전문 커플인 우리는 다소 난감했지만, 직접 싸우고 있는 중인 처키는 결코 기가 죽지 않는 모습이었다. 부식의 인어는 여유롭게 처키의 공격을 막고 반격까지 적중시켜 놓고도 추가 공격은 고사하고 제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묵묵히 서있을 뿐이었다. 처키는 그런 상대를 노려보며 한방 먹은 팔을 빙글빙글 돌려 점검하는 것 같더니, 다시 스윽- 움직임을 시작했다.

팟!

작고 짧은 소리와 함께 처키의 몸이 사라지다시피 한쪽으로 뛰었다.

팟!! 팟!파!

부식의 인어가 서 있는 바위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바위들 위로 거의 동시에 처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와우! 처키. 저 녀석, 정말 빠르네? 일반인들이 보면 이형환위(以形換位)로 착각할 정도이고, 부식의 인어가 아무리 권법 고수라도 쉽게 움직임을 읽을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정작 공격을 하려면 결국 근접할 수밖에 없어. 그 타이밍을 처키는 과연… 어, 가만? 처키의 칼 길이가 달라졌어? 탓!

처키의 스텝소리가 미묘하게 변했다 싶은 순간, 처키의 그림자가 화살처럼 부식의 인어에게 쏘아졌다. 그리고 녀석의 손에 들린 칼이 번득- 빛을 발했다.

스팟!

부식의 인어 허리께로 하얀 검광이 그어졌고, 인어의 한 손바닥은 처키의 신형에 달라붙어 있었다.

팡!

낮지만 경쾌한 소리와 함께 처키의 몸이 살짝 꺾이며 옆으로 튕겨졌다.

발경(? 부식의 인어, 저 인간! 저 찰나의 순간에 발경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고수였어?

난 나도 모르게 결가부좌를 풀었고, 화면 속의 처키는 아까보다도 더 불안정한 착지를 했다. 부식의 인어는 이번에도 제자리에서 몸을 바로하며 합장 자세를 유지할 뿐, 추가 공격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당장 정글도를 잡고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러야했다.

제엔장! 하필 내가 뒤로 빠졌을 때 무공 고수가 등장하다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부식의 인어도 처키의 칼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고, 허리께의 코트가 어색하게 펄럭였다. 그러나 그뿐, 코트 안쪽의 신체에는 상처가 없는 것 같았다.

그 반면, 처키는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자신의 칼을 지팡이처럼 짚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 녀석, 아직도 전혀 기가 죽은 느낌이 없어. 그래서 내가 출동하지 못한 거고 말이지.

“뭐죠, 방금 그건? 난 총탄을 맞아도 끄떡없는데, 지금은 몸 안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지면서 힘이 빠져나갔어요.”

처키가 묻자, 부식의 인어는 합장 자세를 풀고 두 손을 내려트리며 씁쓸한 표정을 떠올렸다.

“정확한 설명은 저도 어려워요. 저에게 이 기법을 알려 준 사람은 ‘무공의 오의’, ‘우주 만물의 섭리’ 같은 걸 알려주려고 했지만, 저는 이해하지

못했죠. 전 그냥, 조금 독특한 싸움 기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뭐야. 제대로 무공을 배우고 수련한 것이 아니었나? 그런대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발경을… 아, 가만? 혹시 내가 아는 무공 심법이 아니고, 초인들을 위한 초인의 무술 그런 건 가능하려나? 이론적인 걸 지금 바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처키가 킥-! 소리를 내며 웃었다. 처키는 CR들 중에서도 ‘내구력과 회복력 짱이라는 녀석답게 벌써 내상을 자체 치유해 버렸는지, 기운차게 몸을 일으켰다.

“좋아요, 인어 누나. 나도 그냥 독특한 기술정도로만 알게요.”

처키 녀석, 나름 쿨한 건 물론이고, 말하는 게 어째 좀 뭐랄까… 지능자체가 높아진 느낌이군.

“그런데, 그거 알아요? 수없이 많은 플라스틱 중에는 방탄 유리대신 쓰일 정도로 강한 플라스틱도 있다는 거.”

처키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몸을 낮추고, 한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거기에 내 스피드를 더하면.”

피윳! 깡!

처키의 작은 손이 꽂힌 바위의 모서리가 정에 맞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두툼한 조각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초인 식의 무술’ 패턴 중 하나를 처키가 직접 선보인 셈이었다.

처키 녀석, ‘나도 맘먹으면 맨손으로도 이 정도는 한다’를 시위해 보이더니,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는군. 상대와의 기본 기량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음에도 맞짱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다니, 이걸 사내답다고 칭찬해 줘야할지, 천음마군에게 잘못 물들었다고 한탄해야할지 모르겠네. 스윽- 몸을 일으킨 처키는 양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멜빵을 살짝 들었다가 튕겨 보이더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처키가 칼을 놓아서 그런지 부식의 인어는 다시 합장 자세를 취하지 않고 두 팔을 내려트린 채 가만히 처키를 바라보았다.

처키의 발걸음, 아니 전신이 좌우로 조금씩 흐느적대는 듯한 느낌이 든다싶더니, 부식의 인어 가까이 도달했을 쯤에는 좀 더 노골적으로 크게 리듬을 타는 움직임을… 음. 저거 어째 우리나라의 태껸의 춤사위 같은 리듬이 연상되는데? 처키 녀석, 설마

얼쑤~

어쩐지 그런 추임새를 들은 듯한 기분이드는 순간, 처키의 상체가 뒤로 젖혀지며 녀석의 발끝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날카롭게 인어의 옆얼굴을 향해 날았다.

팍!

부식의 인어가 한손을 들어 발차기 공격을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처키의 다른 발은 이미 인어의 가슴정도까지 차올려졌다.

하지만 인어의 다른 손도 벌써 두 번째 발차기 공세와 자신의 턱 사이에… 어?

콰악!

처키의 두 번째 발차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인어의 손바닥 방어를 그대로 밀어붙여 인어의 손과 턱을 함께 타격해 버린다.

와우! 순간적으로 인어의 몸이 약간 공중에 떠버릴 정도로 강력한 발차기라니!

살짝 젖혀졌던 고개를 바로하며 주춤 물러나는 부식의 인어 얼굴에 당혹한 표정이 떠올랐다. 인어의 두 손이 다시 모아져 합장 자세를 취하려는 것 같았지만, 처키의 연속기가 더 빨랐다.

슈슈슉! 팍! 팍!퍽!

순식간에 이어진 발차기 공격 중 두 번은 막아냈으나, 한 방이 인어의 가슴, 아니 명치께에 적중되었다.

“윽!”

신음성과 함께 인어의 몸은 더욱 멀찍이 물러나며 휘청거렸다. 그제야 휘릭- 몸을 회전시켜 자세를 바로 한 처키가 하핫!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연습했던 대로야! 정말 기분 최고야!”

연습했던 대로라고? 물구나무 선 자세로 전신의 탄력을 이용하여 강력한 발차기를 연속적으로 펼치는, 저 정도 수준의 무술을 실전에서는 처음 써봤다는 거군. 그렇다는 건………….

‘후후~ 저의 기대대로 처키가 꽤 잘해주고 있군요.’

응? 이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의 텔레파시는… 혹시?

‘레인. 너냐?”

‘그렇습니다. 도착을 늦게 알려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늦게 도착해서 죄송한 게 아니라, 도착을 늦게 알리는 거라고?

‘뭐야. 너,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거냐?’

‘당신께서 두 번째 섬에서 침묵의 유령을 상대하기 시작하실 무렵이었습니다.’

이것 봐라? 이 녀석까지 각성 완료되어 캡슐에서 나왔다는 몽몽의 보고 시점에서, 이 녀석이 여기 도착한 시간을 따져보면, 웬만한 헬기보다도 빠르게 날아왔다는 얘기잖아? 지금 쓰고 있는 텔레파시 능력도 그렇고, 역시나 이 녀석도 블랙 못지않은 초강력 울트라 멀티 능력자로 거듭난 모양인 건, 사실 기대 및 예상했던 대로고!

‘짜식이, 그럼 얼른 합류 보고할 것이지, 왜 숨어서 텔레파시질이냐? 각성으로, 없던 텔레파시 능력까지 생기니까 일단 써먹어 보는 거냐?’

‘후후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어… 혹시, 블랙 녀석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블랙이 어딘가에 숨어서 등 뒤의 칼이 된다고 했다니, 전 그의 등 뒤를 노릴까 해서요.’

흐으음. 그랬었군. 나쁘지 않은 작전인거 같긴 한데, 사전협의 없이 이러니까, 기분이 좀 거시기하군. 내가 레인 이 녀석에 대한 태도를 너무 애매하게 했나?

제가 합류한 상황에서의 작전까지 수립해 놓으셨을 텐데, 미리 알려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뭐. 당장 큰 상관은 없어. 하지만・・・ 아, 잠깐. 저쪽 싸움, 마저 보고 얘기하자.’

내가 레인과의 대화를 중단한 것은 당연히 처키쪽의 상황 때문이었다.

부식의 인어가 제대로 한방 먹은 건 틀림없지만, 그 정도로 치명상을 입었을 리가 없다. 처키 녀석도 그 정도는 알 텐데도 굳이 기다려주다가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하는군. 두 녀석 다 전투 스타일이나 지나치게 신사적인 면까지, 기존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관전 포인트 잡기가 어렵네. 물론, 저 둘이 계속 저렇게 정겨운(?) 대련 분위기로 끝까지 가서 좋은 승부였습니다. 어쩌구 하면서 악수하고 마무리하면야 좋은 결말이 되겠지만, ‘암살 전문’으로 키워진 녀석들이 과연.. 음? 근데 처키 녀석, 이번엔 아예 무방비 상태로 뭐하려는 거지?

처키는 아까와 같은 리듬감도 없이 평상시 걸음으로 부식의 인어에게 다가가고 있었으며 겨우 1, 2미터정도 거리까지 근접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부식의 인어 역시 예의 합장 자세를 취하고 있긴 해도, 별다른 적개심이나 경계의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분위기로 처키를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부식의 인어가 쓰는 권법은 어째 태극권 냄새가 나는 듯 싶고, 처키는 우리 태껸 비슷한 움직임이었지? 하지만 처키의 지금 분위기는 또 다른 뭔가일 것 같은데 과연……………

처키의 몸이 살짝 도약하고 있었다. 부식의 인어와 키 높이를 맞추려는 것처럼 30센티 정도만 떠오른 상태에서 처키의 두 손, 날을 세운 손끝이 순간적으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피윳! 픽! 핏!

세 번? 혹은 그 이상? 나도 헤아릴 수 없는 공격이 부식의 인어 급소로 퍼부어졌고, 그 놀라운 스피드의 공격을 인어는 거의 움직이지도 않은 채 회피하거나 막아냈다. 발끝으로만 조금 도약했던 처키의 몸이 다시 한발만으로 착지할 때까지의 1초 남짓의 순간에 이루어진 공방이었다. 거기에 발차기 연속기가 중단, 아니 하단? 아, 아냐!

꽝!

처키의 발이 찍히며 강렬한 타격음이 터진 건 부식의 인어가 딛고 있던 바위였다.

“큭!”

인어의 입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숨김없는 신음성이 터져 나오며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미처 빼내지 못한 발등, 혹은 발가락이 바위와 처키의 발뒤꿈치 사이에 끼어 짓눌려졌기 때문이다.

“미안!”

그 와중에도 짧게 사과의 말을 하는 처키가 인어의 발끝을 찍고 있는 발을 축으로 패액- 회전하고 있었다. 잔뜩 당겨진 활처럼 처키의 발이 회전력을 더해서 인어의 가슴을 향해 쏘아지는 순간, 인어의 두 손도 그 발을 향해 모아졌다.

콱직! 펑!

섬뜩한 타격음이 겹치며 두 녀석의 몸이 양쪽으로 동시에 힘없이 쓰러졌다.

동귀어진(同歸於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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