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나 혼자 만렙 뉴비 434화


434화. 각자가 휴가를 보내는 방법 (1)

“용사님. 여왕 폐하… 아니, 참치 초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연어 초밥이 헛기침을 하며 다가왔다.

바로 뒤에는 한껏 꾸민 아름다운 여왕의 모습이 보였다.

‘친위대들까지 전부 온 건가.’

광어 초밥과 한치 초밥 그리고 성게 초밥까지.

‘회전 초밥’이라고 이름 붙인 인어들이 총집합한 셈이다.

여왕과의 혼인이라….

보통의 경우엔 복에 넘친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글쎄, 그건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고.

진혁은 지금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싸아아….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옆에선 엘리스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반면, 참치 초밥을 포함한 인어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자업자득이라는 거다 네놈은.”

천유성이 고소하다는 듯 쏘아붙이며 인어족이 만든 술을 머금었다.

“형, 파이팅!”

“오빠, 혹시 살아남으면 이것 좀 먹어봐. 맛있어.”

이태민과 유연화는 남의 일처럼 방관하며 시시덕댔다.

케이시와 주드로야 어딜 가서 누굴 죽이고 있는지 코빼기조차 보이지도 않았고.

“주군, 명예롭게 자결하실 거라면, 속하가 돕겠습니다.”

믿었던 월영까지도…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다.

빌어먹을.

하여간,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

“후후. 너무 걱정 마세요. 이래 봬도 신부 교육은 어려서부터 확실하게 받아왔답니다. 저희가 비록 종족은 다르지만, 대의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갑자기 뭔 놈의 희생 타령이야?

결혼은 사랑하는 놈하고나 해라 제발 좀.

하지만, 그런 말을 해봤자 들을 것 같진 않다.

‘엘리스한테 죽냐. 인어들한테 죽냐… 그걸 선택해야 하는 건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려면 뾰족한 묘수가 필요할 텐데….

바로 그때.

진혁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잠깐, 잠깐만요. 우선 이것부터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우웅!

눈부신 빛과 함께 아공간 인벤토리가 개방됐다.

그곳엔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틀란티스의 창’이 있었다.

“아아… 그랬죠. 너무 기쁜 나머지 저희들의 성물을 돌려받는 걸 깜빡했었네요.”

“예. 이것을 먼저 드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용사님은 속도 깊으시군요. 정말, 훌륭한 남편감이세요.”

참치 초밥이 감격에 가득한 눈으로 아틀란티스의 창을 받았다.

[인어족이 자신들의 성물을 회수합니다.]

[복사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고유 능력 ‘해류(海流)의 의지’를 복사합니다.]

[해류(海流)의 의지]

입수 난이도: 종족 한정 능력

내용: 바다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을뿐더러, 능력을 숙달할 경우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수속성 몬스터들에 대한 공격력과 방어력이 50%만큼 상승합니다.

좋아.

드디어 이걸 손에 넣었다.

이곳에서 해야 할 마지막 일까지 전부 클리어한 것이다.

다음은….

[고유 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

1초 남짓한 찰나에, 진혁이 마력을 창에 쏟아부었다.

누구도 눈치채기 힘들 만큼 빠르고 폭발적인 기운이 창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틀란티스의 창 내구도 : 103 / 135,000]

이미 결계를 부수느라 한계까지 떨어진 내구도.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것을 파괴함으로써 생긴 반동은… 심지어 성유물이라 할지라도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콰득!

[성유물이 부서졌습니다.]

인어족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버렸다.

“꺄아아아악!”

참치 초밥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이, 이럴 수가….”

“어째서 인어족의 성물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강진혁 용사님?”

걷잡을 수 없는 동요가 연회장 내부에 퍼져나갔다.

“그게… 사실 조금 전 전투에서 워낙 치열하게 싸운 터라, 창이 버티질 못한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용사의 가호를 받는 이상, 절대 파괴되어선 안 될 텐데….”

“맞습니다. 만약, 제가 진정한 용사라면 말이죠.”

진혁이 재빨리 연회장 한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사실, 저는 그분을 따르는 시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위대한 검의 용사. ‘천유성’ 님을 말입니다.”

“……푸웁!?”

느긋하게 술과 과일을 먹던 천유성이 입에 든 걸 밖으로 뿜었다.

콜록! 콜록!

어찌나 놀랐는지 사래까지 들리고 말았다.

“창을 잃어버린 저에겐 더 이상 용사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애초에 저분의 그림자 노릇을 한 저에게 여왕님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겠죠.”

“가, 강진혁, 너 이 자식…! 지금 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대업을 달성하고도 그걸 알리지 않는 겸손함. 그리고 크라켄을 물리친 무력까지! 후대의 용사가 필요하다면 바로 저 분의 아이가 있어야 합니다!”

“죽여버리겠다!”

천유성이 검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타겟이 바뀌어버린 인어들이 천유성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오오오! 진정한 용사님이 그쪽 분이셨군요!”

“어쩐지 더 잘생기셨더라니.”

“저희 여왕 폐하와 후손을…!”

“빌어먹을. 기억하겠다. 이건 꼭 기억하겠단 말이다!”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천유성을 보며, 진혁이 동화 속 마지막 장면을 중얼거렸다.

“용사는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 *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이름 그대로 천국을 본 떠 만들었다고 알려진 시련의 탑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다.

따사로운 햇살과 에메랄드 빛 바다, 백금을 뿌려놓은 것만 같은 백사장은 한 번 가본 사람이라면 평생 잊지 못하는 낙원이었다.

그리고 현재.

이곳에서는 진혁을 포함한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큰 사건이 일단락됐으니, 다함께 느긋하게 쉬면서 다음 층계 공략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다.

“와아아…. 진짜 예쁘네요.”

테레사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언제나 두꺼운 갑주와 방패로 무장한 채 전장을 누비던 일상.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모처럼 그 모든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꺄하하! 이렇게 맑은 물은 오랜만이야!”

“캬오! 모래사장도 따뜻하다. 불이 없어도 이렇게 기분 좋다니.”

“히히히!”

정령수들도 옹기종기 모여 각자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모오오기이이!”

“후후. 내가 말이야.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인간들의 추앙을 받으며 살아왔어. 사신수의 청룡하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니까? 고고하고 아름다운 전설 속의 용. 그게 바로 이 몸이다 이 말씀이야.”

“달그락. 어이, 청 씨. 헛소리 그만하고 구름이나 잘 만드십쇼. 마스터가 땡볕에 피부라도 타게 했다간 도마뱀 구이로 만들어버린다고 한 거 못 들었어?”

한쪽에서는 나머지 소환수들이 자리를 잡았다.

꽤나 많은 인원들이 모인 덕에 섬이 북적북적거렸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군.”

천유성이 야자수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한 손에는 트로피칼 음료수가. 다른 한 손에는 두꺼운 의학 서적이 들려 있었다.

“너는 여기까지 와서 공부냐?”

“매주 보는 쪽지 테스트 같은 건 시련의 탑을 등반한다는 명목으로 대체 가능했지만, 학기말 시험까지 면제되는 건 아니다.”

“F만은 안 받겠다는 뜻인가? 이야. 어떻게든 유급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네.”

“유급?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천유성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난 한 번도 수석을 놓쳐 본 적이 없다만.”

“아니, 하루 종일 검만 붙잡고 있으면서 수석이라고?”

“당연한 이야기다. 언젠가 탑이 정복된다면 그 이후에는 지금 하던 공부를 이어나가야 할 테니까.”

머리가 비상하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건 인간인지 기계인지 의심이 갈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쿨쿨 자는 걸 본 적이 있긴 했던가 싶기도 하다.

“그래 뭐, 의사 친구를 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나중에 공짜로 치료받을 수도 있고.”

“누구 마음대로 네놈을 치료해준다는 거냐?”

“에이. 그래도 같이 동고동락한 사이인데, 돈을 받으려고?”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비 의사라고 해도 그렇지. 그건 좀 아니다.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좋은 경치 가리지 말고 저쪽으로 가서 놀아라.”

천유성이 선글라스를 끼며 진혁을 차단해버렸다.

바로 그때.

“짐이….”

다른 한쪽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엘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잔뜩 힘을 준 것 같은 검은색 원피스.

베이지색 넓은 챙의 모자에는 핑크 다이아몬드로 만든 나비 모양의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문제는 화사한 옷과는 달리 표정은 완전히 딴판이라는 점이다.

“짐이… 원하는 여행은 이게 아니었단 말이다!”

파르르.

두 손이 가늘게 떨렸다.

서운함이 가득 배어 있는 눈망울.

둘만의 시간을 위해 그토록 고군분투했건만.

결과는 바글바글한 인파들이 가득 모인 섬이었다.

“이따가 밤에 따로 시간 내줄 테니 제발 섬을 날려버리려고 좀 하지 마. 거기 블러드 로드로 만든 꼬챙이들도 그대로 집어넣고.”

진혁이 재빨리 엘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

“진짜? 진짜로? 아니, 큼! 그,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냐! 나도 해가 떴을 땐 다 같이 어울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느니라.”

“그래그래.”

이제야 화가 좀 풀린 모양이다. 이 고집쟁이 여왕님께서도.

* * *

몇 시간이나 이어진 평화로운 휴가.

그 고요함을 깬 건 녹색 빛을 내뿜는 게이트였다.

“흐음.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일렁이는 표면 너머, 멋들어진 중절모를 쓴 노인이 나타났다.

중급 관리자 중 하나인 ‘릭 헤네시’다.

“릭 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안부 인사도 드릴 겸, 또 탑의 소식도 알려드릴 겸 해서 왔습니다. 아시겠지만, 진혁 님께서 최근에 워낙 일을 많이 벌려놓지 않았습니까?”

크라켄이 마계로 넘어간 지 3일.

44층을 양분하는 거대 세력답게 마계는 크라켄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수천이 넘는 마족이 죽었고. 작위를 가진 고위 마족 역시 수십 명이나 목숨을 잃어야 했다.

단순히 사망자만 이 정도였으니, 부상당한 이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각 마왕들의 영지를 비롯해 중요 거점들까지 초토화가 되어버린 상태.

마계가 이를 갈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특히, 마왕 중 하나인 군타페르의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만. 그렇게 웃고 계신 걸 보니 역시 의도하신 거겠군요.”

“크흠! 웃다니요. 악마들의 희생에 애도를 표했을 뿐입니다.”

“아무튼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일에는 관리자들이 여럿 사망한 터라, 저희 관리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알루티.

‘그 재수 없는 햄스터가 죽은 건가.’

진혁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긴, 크라켄을 무리하게 깨우기 위해서 누군가 마력 덩어리를 먹이로 준 거겠지.

‘여럿’이라는 단서가 붙은 걸 보면, 알루티 외에도 그를 따르는 다수의 하급 관리자들이 학살당한 게 틀림없다.

대충 이럴 짓을 꾸민 대상이 누군지 짐작이 갔다.

하스팅이 이곳에 왔던 것이다.

하지만, 관리자들 입장에서는 하스팅이 알루티를 죽였을 거라 상상하지 못할 터.

‘결국… 유력한 용의자가 29층에서 멋대로 날뛴 내가 된다는 거겠지.’

확실히, 조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긴 하다.

관리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건 지금 상황에서 꽤나 골치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조언 고맙습니다. 릭 씨에게는 언제나 신세를 지네요.”

관리자들 중에서 가장 호감이 가고 유용한 존재.

역시, 릭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별 말씀을…. 그보다 한창 재밌게 놀고 계신데 괜히 제가 무거운 이야기만 한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릭이 우산이 꽂힌 칵테일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의미에서 휴가에 흥을 돋울 게임을 좀 제안할까 하는데… 어떻게, 관심이 좀 있으십니까?”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