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565화
565화. 떠오르는 별, 몰락하는 세력 (2)
“마, 말도 안 돼….”
아레스가 전신을 덜덜 떨었다.
감히 인간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격.
상대를 찍어누르는 힘은 한 순간이나마 제우스를 뛰어넘었다.
조금 전에 봤던 광경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괴물이 튀어나왔어.’
25년이라 불리는 놈도 괴물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이능을 가진.
50층에 거주하는 그놈들과 같은 결을 느꼈었다.
그러나.
괴물은 또 다른 괴물에게 잡아먹혀 버렸다.
완벽하게 상하관계가 잡힌 포식자.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 강진혁이란 자를 잡을 수 있는 존재는 알지 못했다.
우우웅!
아레스가 상처 부위를 치료했다.
정말로 최소한으로.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만큼만.
[아레스가 고유 능력 ‘명예로운 패주’를 발동합니다!]
“……됐다!”
전쟁의 신의 주특기는 전투가 아닌 도망.
트로이 전쟁 때부터 몸을 피하는 것 하나엔 특화되어 있었다.
자존심만 버린다면 얼마든지 이 자리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붉은 선들이 시련의 탑이 있는 곳까지 길게 이어졌다.
[명예로운 패주가 발동되는 동안 상대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면역 상태가 됩니다.]
실제로 목숨이 달린 여러 전투에서 이 능력을 이용해 몇 번이고 목숨을 건졌다.
여기까진 모든 계획이 완벽했다.
딱 한 가지.
진혁이 이 능력의 존재와. 아레스가 자존심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성격이란 걸 알고 있다는 점만 빼면.
푸욱!
능력이 발동되기 바로 직전, 서리 혼령의 창이 아레스의 뒷다리에 파고들었다.
[‘서리혼령의 분노’ – 절대 영도가 발동됩니다!]
쩌저저적…!
“으아아아악!”
엄청난 냉기가 몰아쳤다.
다리에 구멍이 생긴 아레스가 비명을 질렀다.
하필이면 능력이 완전하게 발동되기 직전을 노릴 줄이야.
스스로에 대한 안일함에 욕설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이미 창을 움켜쥔 진혁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으니까.
‘역시, 효과가 끝내주긴 하네.’
진혁이 창 자루를 만지작거렸다.
마치 오랫동안 사용했던 애병기처럼 창의 무게와 감촉이 자연스레 손에 맞았다.
무엇보다 아레스의 신체를 한 방에 꿰뚫는 공격력은 발뭉보다도 더욱 마음에 들었다.
‘하긴, 이건 공격력이 45만에 육박하니까.’
정확히는 449,800.
32만에 이르는 발뭉보다도 13만 가까이 높은 수치다.
방어에 극한까지 특화된 신격이 아니라면 감히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진혁의 시선이 아레스에게 옮겨갔다.
“으으으….”
이미 전의를 상실한 아레스를 죽이는 건 손쉬운 일이다.
대관식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절박한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진혁은 창에 힘을 주는 대신 그대로 뽑았다.
푸슈슉!
다리에서 핏줄기가 솟구치다 금세 얼어붙었다.
잠시 생긴 공백.
아레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진혁과 창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순식간에 고유 능력을 완성시켰다.
“크하하!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이제 날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우우웅!
아레스의 모습이 붉은 선을 따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하여간, 도망 하나는 천유성 뺨치는 놈이다.
덩치는 산만해 가지고 물 찬 제비처럼 날라다니네.
“그대로 보내도 되는 것이냐? 분명, 적의 큰 전력을 담당하는 놈일 텐데.”
엘리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진혁의 성격상 순순히 보내줬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뭐, 워낙에 집에 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그 정도로 간절하면 보내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이쪽으로서도 아레스가 무사히 올림포스까지 갔으면 좋겠다.
근사한 선물을 품고 있는 아주 소중한 주신 택배였으니까.
때마침.
[‘잔류월광’이 해제되었습니다.]
분신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느긋하게 구경이나 하면 되겠네.”
진혁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
공유되는 의식 속.
34층의 존재들과 격전을 벌이고 있던 진혁이 쾌재를 불렀다.
탑 밖에 있던 분신이 자신의 역할 그 이상을 잘 수행해 주었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콰콰콰쾅!
“빌어먹을. 힘들어 죽겠는데, 뭘 그리 웃고 있는 거냐?”
천유성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서로 다른 색의 광선검을 휘두르는 우주 전사들을 셋이나 상대하려니 온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위이잉!
촤촤촤촤…콰아앙!
전후좌우.
자로 잰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전사들은 욕이 나올 정도로 까다로웠다.
특히 ‘후읍후읍’거리며 산소마스크를 달고 있는 검은 대가리는 한 단계 격이 달랐다.
[고유 능력 ‘검의 노래’가 발동됩니다!]
[고유 능력 ‘죽음의 별’이 발동됩니다!]
머리 위에 나타난 거대한 행성형 요새.
그 지원을 받고 있는 가면은 난적이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무림의 정상급 고수 혹은 제국의 그랜드 소드마스터 이상이다.
위이잉!
투쾅!
레이저와 각종 폭탄들이 지면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우리에게 손!”
“부러진 검은….”
게다가 그 외에도 수많은 차원의 영웅과 주인공들이 날뛰는 탓에 숨을 고를 여유마저 없었다.
검술의 달인.
바람이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카카카캉!
천유성이 사력을 다해 검격을 튕겨냈다.
폭탄을 베고 레이저의 궤도를 틀며 바람을 맞받아쳤다.
“큭!”
“하나같이 만만치 않아요!”
[테레사가 LV30 ‘성호’를 발동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부신 금색 십자가.
[안드리아가 고유 능력 ‘여우불 놀이’를 발동합니다!]
구미호의 붉은 불덩이들이 적의 전진을 막았다.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
다들 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합을 맞춰왔기에, 이 정도로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진혁이 혼자 히죽대고 있으니 당연히 곱게 보이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곧 벌어질 일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걸.
“10초… 9초.”
“젠장. 카운트다운 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다!”
천유성이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진혁은 하늘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숫자를 세어나갔다.
“3초 2초.”
그리고 1초.
“땡!”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허공에서 근육질의 신격이 나타났다.
“크하하하! 무사히 도착…했…어? 여, 여기는 아버지가 있는 곳이 아니라….”
쾌재를 부르짖던 아레스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단 한 번도 목적지를 착각한 적 없던 고유 능력.
그런데 그 완벽함이 처음으로 어긋났다.
하필이면 가장 위험한 지금 말이다.
생각할 수 있는 변수는 한 가지.
욱씬!
다리에 난 상처 부위에선 여전히 얼음 가루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같은 찰나, 밑에서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진혁의 모습이 보였다.
“네놈…! 무슨 장난질을 친 것이냐!”
“네가 잘나서 도망친 게 아니라, 내가 일부러 도망치게 해준 거야.”
절대 영도의 저주는 창이 뽑혔다 해서 사라진 게 아니다.
오히려 시간 차이를 두고 완벽하게 개화할 시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지.
[서리혼령의 저주 ‘잃어버린 시대’가 발동됩니다!]
쩌저저적!
아레스의 몸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얼음 줄기가 전장을 휩쓸었다.
“크오오오?”
“그오오!”
가장 먼저 앞에 있던 대형급 거주자들이 가장 먼저 휘말렸다.
타이탄들과 육탄전을 치르느라 반응이 느렸던 게 가장 큰 실수였다.
얼음 가루가 닿는 순간, 거대한 몸체가 통째로 얼어붙었다.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터무니없는 광역 빙결이다.
“이, 이건…?”
“뭐야?”
한 박자 늦게 나머지 거주자들이 기함했다.
지금 퍼져나가는 얼음 가루들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모두 피해!”
체구가 작은 대신 기동성과 도주기가 갖춰져 있을 터.
각자 재빠르게 몸을 날려 능력의 발동 범위에서 벗어나려 했다.
“에헤이. 한참 재밌는데 어딜 가려고.”
물론, 그걸 가만히 지켜볼 진혁이 아니었다.
25년을 잡으면서 대폭 상승한 마력 양.
이제는 고유 성창을 여러 개 연속해서 발동할 수 있을뿐더러, 고유 능력이라면 5~7개 이상도 한꺼번에 사용이 가능한 상태다.
[고유 능력 ‘어스 퀘이크’가 발동됩니다!]
쿠르르릉!
지면이 심하게 흔들리자, 달리던 거주자들이 균형을 잃고 휘청이거나 넘어졌다.
“으아아악!”
“끄아아악!”
타이밍을 놓친 대가는 혹독했다.
전신이 얼음기둥에 갇힌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그럼에도 비행능력을 갖춘 놈들은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다.
또 다른 능력이 발동되기 전까진 말이다.
[고유 능력 ‘굴종의 손아귀’가 발동됩니다!]
기다란 손이 날아가는 놈들을 낚아 채 얼음 가루 속으로 던져버렸다.
“꺄아아악!”
동화 속에 나오던 날개 달린 요정이 그대로 얼음 인형이 되었다.
윈터 왕국에 나오던 공주님 역시 노래와 함께 얼음 조각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화르륵!
‘카스카 디아슬라브’와 ‘멸천만독’을 섞어 독과 화염의 벽이 주위를 완벽하게 감쌌다.
이걸로 탈출로 따윈 없다.
전부다 얼어붙어버리기 전까진, 지옥 같은 술래잡기가 계속될 뿐이다.
“안 돼.”
“제발, 그만해!”
“우리가 졌다. 항복한다. 항복이라고!”
“이미 늦었어. 다음부터는 편을 잘 고르렴.”
현실이 되어버린 이상 다음 따윈 없겠지만.
진혁이 거주자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34층 거주자들의 전멸.
그리고 서리혼령의 저주를 받은 아레스 역시 얼음 기둥이 되어버렸다.
“죽이는 게 아니라 봉인에 가까운 거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진 않네.”
적의 회심의 카드를 박살냈으니 이제 승기는 거의 굳혔다.
***
전장에서 떨어진 반대편.
‘에덴’의 본거지가 있는 지역은 소수의 지천사들을 제외하곤 텅텅 비어 있었다.
다들 올림포스와 북유럽의 전쟁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본대는 마계에 몰래 진입해버린 것이다.
맹렬하기로 유명한 우리엘의 친위대들이 창과 검을 잡은 채 명령을 기다렸다.
침묵을 지키던 우리엘이 처음으로 입을 뗐다.
“진입로는 어떻지?”
마왕의 영지로 들어가기 위한 최선의 루트.
이제 곧 그게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아직은 별 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베리엘 쪽에서 먼저 움직여 틈을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지나치게 조용하군요.”
“정말 이게 맞을까요? 차라리 올림포스와 천세 쪽과 동맹을 유지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함께 있던 천사들이 한 마디씩 의견을 내밀었다.
탐드엘, 게릿엘, 리브엘.
전원이 마왕들과의 대전경험이 있는 정예 중에 정예였다.
“걱정 마라. 이게 맞는 길이니까.”
진혁이 약속했던 대로 마왕의 영토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올림포스와 천세의 뒤통수를 치더라도 훨씬 더 남는 거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리엘의 진형에 예상치 못한 이변이 일어났다.
“우, 우리엘 님!”
다급한 비명이 이어졌다.
“지금 당장…! 지금 당장 이쪽으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고를 한 천사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