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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15화


815화. 승리를 위한 조건들 (3)

시련의 탑 25층.

혼령들과 유령들이 즐비한 도시 한가운데 새하얀 털을 가진 구미호가 나타났다.

“흠. 이런 불길한 곳을 굳이 와야 하는 건가?”

서리칼날 부족의 카라칼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족장.” 집단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이곳이 제일이라는 말을 듣긴 했다만, 영혼 계열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몸이 차갑다. 얼음 호수보다 따뜻한데 오히려 더 춥게 느껴진다.”

“저주받은 것들이 즐비해 있어.”

서리칼날 부족의 트롤들도 저마다의 무기를 만지작거리며 굳어 있었다.

“걱정 마세요. 진혁 님이 알려주신 곳이니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게다가 저희 역시 그에 걸맞은 강자분들을 데리고 왔으니까요.”

안드리아의 말에, 바로 옆에 있던 여러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병력 전이라면 자신 있긴 하다.”

“나도 마찬가지야.”

“후후후, 원혼들이야 제 흑마법으로 간단하게 먼지로 만들어드리죠.”

펜다리엘과 무혼 그리고 베이로둠까지.

‘엔터렌스 투더 발할라’로 불러온 보스몬스터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새롭게 불러낸 몇몇 보스들 역시 눈에 띄었다.

“죽었다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난 것도 믿기지 않는데.”

“빌어먹을. 그게 다 이곳에서 이용당하기 위함이었다니. 차라리 무덤 속에 곱게 누워 있을 걸 그랬어.”

천마신교에서 싸웠던 ‘야차’

그리고,

고대종 중 하나인 ‘크라켄’의 인간형 버전이었다.

한때는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은 장본인들이었으나, 지금은 계약 하에 철저하게 복속된 노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정 불만이시면, 제가 진혁 님께 말씀드릴까요?”

“아, 아니, 그건 아니야. 진짜. 사실, 모처럼 싸울 수 있게 돼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인간에게는 어떤 말도 하지 말아다오. 안드리아. 그대가 시키는 대로 따를 테니.”

흠칫하고.

야차와 크라켄이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직까지도 뇌리에는 진혁에게 처절하게 당했던 악몽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었다.

농락당하고 모멸당하며, 자신의 무력감에 환멸까지 느꼈던 과거가 말이다.

바로 그때.

쿠쿠쿠쿠쿠쿠!

저 멀리서 녹색 흙먼지가 일어났다.

“제 왕국에 새로운・・・ 분들이 아주 잔뜩 나타났네요. 모처럼 새로운 백성들을 맞이할 수 있겠어요.”

휘황찬란한 녹색 드레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를 가진 소녀가 우아하게 예를 표했다.

그 뒤로는 엄청난 수의 유령병사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얼핏 봐도 육안으로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

게다가. 하나하나가 상당한 실력을 가진 정예병들이었다.

모두 이 유적을 공략하러 왔다가 죽어버린 각 층계의 등반자들이었다.

[유적의 보스몬스터 ‘유령공주 아리안느’가 현현합니다!]

저릿저릿!

강하다.

하지만. 병력의 ‘질’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수많은 세월 강자들로만 채워넣은 아리안느의 군세는 평범한 군대와는 전혀 다른 강군이었다.

‘해야 해.’

안드리아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정신병동에서 한낱 제물이 되어 사라질 뻔한 운명. 그 지옥에서 구해준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살아남고 강해져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안드리아의 작은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리고 아리안느가 보유하고 있는 ‘혼령의 반지’는 ‘여우구슬’의 능력치를 5배 이상으로 올려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1,000년의 혼령 구슬’이 놀이를 시작합니다.]

몽환적인 마력.

이것은 전설 속 언령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주술이다.

“무얼 하든 무엇을 먹든. 상관하지 않을게. 그러니.”

반투명한 여우들이 안드리아의 곁에 모였다.

9개의 넘실거리는 꼬리를 중심으로.

[유적에 있는 영물들이 구미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살아있다면… 나와 함께 놀아주렴.”

화르륵!

모든 것을 홀리는 여우불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편.

핵심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군단’급 전력 역시 마지막 무장을 완성하기 위해 한 자리에 결집했다. “모기모기모기!”

고구마의 쩌렁쩌렁한 호령 아래 거대한 드래곤 군단이 움직였다.

[미궁 ‘폭풍의 전당’에 입장합니다!]

쿠르르르… 우르릉!

검게 드리운 먹구름 사이로 붉은 번개가 떨어졌다.

“로드시여. 저기. 저거 같습니다.”

블랙 드래곤 ‘팬드래건’이 번개가 몰아치는 곳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마찬가지로 진혁의 능력으로 다시 한 번의 생명을 얻게 된 팬드래건은 충실하게 명령을 따르고 있는 중이었다.

화르륵!

몰아치는 강풍 속에서 타오르는 화롯불.

저기까지 접근해야만, 이 미궁의 성유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문제는.

콰콰콰콰콰콰

소용돌이와 돌풍이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다는 것.

“모기!”

“동양의 용들이 먼저 가보라는 말씀입니까?”

“모기모기.”

“그럼요. 그럼요. 구불구불하게 생긴 동양의 용들이 아무래도 번개 맞을 확률이 더 적겠죠. 역시 우리 로드께서는 영민하고 똑똑하십니다. 하하하하하.” 

말랑흑두루미가 간신배처럼 아부를 떨었다.

그러면서 옆을 향해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들었지? 냉큼 이동하라고 하신다.”

“나・・・ 나는 고귀한 진족의 왕 무진….”

“모기이이!”

까앙!

“크어어억!”

무진룡의 두개골에 강한 충격이 강타했다.

“어허! 대장께서 조용히 하고 명령에 따르라고 하신 걸 못 들었느냐!”

“말랑흑두루… 아니, 청룡! 네놈이 지금 감히 내 머리를 친 것이냐! 네놈도 한 때 우리 동쪽의 고귀한 기를 머금었던 주제에…”

“야이. 눈치 챙기고 목소리 죽이라고. 고귀함이고 나발이고 간에 대장이 화나면 우리 다 지렁이 되는 거야.”

“읍읍읍…. 놔, 놔라!”

말랑흑두루미가 무진룡의 입을 양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지체 없이 고구마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모기이이.”

고구마의 눈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언제나 진혁의 품 안에서 장난을 치며 지내왔지만, 이번에는 해야만 하는 일의 무게감이 달랐다.

실패 없이.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게 생긴 것이다.

성유물 ‘영원의 불꽃’.

다시 말해. 아무리 극한의 상황에서라도 찬란한 불길을 계속해서 타오르게 하는 힘을 지녔으며, 일정 시간 모든 페널티를 제거하는 효과를 가졌다.

‘에테리온’으로서의 현현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소리다.

같은 시각.

시련의 탑 41층에서도 또 다른 핵심 멤버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유적 ‘은사의 제국’의 마지막 장소, ‘옥좌의 방’에 입장하셨습니다!]

끼기긱.

끼긱.

불쾌한 마찰음이 연신 울려퍼졌다.

철통같은 제국의 외곽 성벽을 뚫고, 내성 안의 정예 병력을 돌파한 뒤, 왕궁의 근위대까지 쓰러뜨렸다.

고작 50도 안 되는 인원으로 말이다.

“호문쿨루스라・・・ 바깥 세상에는 꽤 재미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나보구나.”

옥좌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체구의 노인이 클클거리며 혀를 찼다.

유적의 보스 몬스터 ‘아율’

‘은사의 인형사’이며 최초의 등반자 중 하나다.

패배를 모르는 절대자는 과거 50층에까지 그 힘을 과시하려 했으나, 처절하게 패배한 뒤 이곳에 몸을 숨겼다. 더욱더 강력하고 거대한 병력을 모은 뒤,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

난데없이 자신의 제국에 쳐들어온 침입자들로 인해서.

데구르르르.

잘린 인형의 목이 그대로 아율의 발까지 굴러갔다.

“나도 동류와 싸우는 건 처음이야. 응.”

프레이가 양손에 든 단창을 고쳐 쥐었다.

그녀의 주위로는 ‘불멸의 인형사’로 불러낸 인형들이 서 있었다.

“하아. 나는 진짜 구석에 숨어서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야 대체.”

고대종 중 하나인 베헤모스.

노예생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썼지만, 최후의 싸움에서 마저 도망칠 순 없었다.

그 결과 프레이와 함께 최전선에 배치되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투덜대는 것과는 달리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콰드득!

레고에서 머리를 뽑듯.

인형의 척수까지 한 방에 뽑아내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감을 자아냈다.

아포칼립스를 주관하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승산은 5대 5 정도야 응.”

지난 며칠 간 여기까지 오느라 상당히 고생하긴 했지만… 이제 슬슬 끝이 보인다.

아율이 가지고 있는 ‘은사(銀)’만 있다면 지금 거느리고 있는 인형들의 숫자를 몇 배로 늘릴 수 있을 터.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강화시킬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율이 가지고 있는 성유물은 인형으로서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특성이 있었다.

프레이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가져보고 싶다.

모든 이들이 당연히 가지고 영위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분노하는 것도. 누군가로 인해 슬퍼하는 것도. 누군가를 위해 기뻐하는 것도.

그리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는 것도.

그것이 프레이가 가진 유일한 소망이었다.

아율이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었다.

“흐음. 지금까지 상대했던 병사들로만 그런 계산을 한 거라면 글쎄…..”

[고유성창 ‘로드 오브 마리오네트’가 발동됩니다!]

쿠쿠쿠쿠쿠!

은빛 물결과 함께 하늘에서 새하얀 실들이 내려왔다.

좌우로 도열해 있던 인형들의 관절에 닿자, 이변이 일어났다.

번쩍.

두 눈에 붉은빛이 맴돌면서 하나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건 크게 오판하고 있는 것이다. 애송이 호문쿨루스여.”

아율이 손을 높게 들었다.

“위대하신 폐하의 심기를 거스른 자들.’

“저희의 손으로.”

“모조리 처리하겠나이다.”

일명 ‘제국의 창’. 지금 여기에 있는 인형들이 바로 태고의 존재들을 상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걸작이다.

오롯이 강자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결전병기들이었다.

***

‘블랙 캐슬’

아타락시아의 본거지가 있는 곳엔 새롭게 선별된 가주들이 모였다.

일전에 있었던 대숙청의 결과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함이다.

물론, 예전처럼 완벽하진 않다.

유구한 세월 쌓아올린 가주들의 자리를 대체하기엔, 새로운 진조들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 그 결과 엘리스를 제외한 6가주 중 3명만을 새로 뽑았고. 나머지 2자리는 공석으로 남겨뒀다. 

“은거 중인 귀족 가문과 계속 접촉을 시도하긴 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는 쪽이 많습니다.” 

오필리아가 조용히 보고를 올렸다.

“아무래도 짐이 계약자와 함께 하는 걸 좋게 보지 않아서겠지.”

“……”

“괜찮느니라. 그 부분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시간은 많다.

앞으로 더욱더 시간을 두고 계약자의 가치를 보여준다면.

결국엔 모든 이들이 진혁이라는 존재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다 됐습니다.”

“그래. 벌써 그리 됐구나.”

엘리스가 가주들이 모여 있는 회랑으로 이동하려 했다.

‘혈계 의식’을 통해 뱀파이어들의 여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다.

그러다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오필리아를 바라봤다.

데카서스의 일원으로 처음 만났을 땐 완벽하게 적대 관계에 있었지만.

진혁과 엘리스와 함께하면서 어느새 어엿한 아타락시아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적에게 가혹하지만.

따르는 자에겐 그에 맞는 걸 베풀어야 하는 법.

우우웅!

엘리스의 손끝에 루비색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핏방울이 맺혔다.

“오필리아 데카서스.”

“……!?”

엘리스의 근엄한 표정과 부름에 오필리아가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본능적으로 엘리스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그대에게 짐의 피를 하사하니.”

과거는 묻지 않겠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묻지 않겠다.

“앞으로는 데카서스의 이름 대신….”

함께 가겠다.

1,000년이 지나고. 그보다 더한 시간이 지나더라도.

“오필리아 드 아타락시아의 일원으로 짐의 곁을 지켜다오.”

직계혈족.

가주의 피로서 이어진 맹약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의미와 무게를 지닌다.

“엘리스… 님.” 

모든 것이 멸망으로 치닫는 상황이 오더라도 서로의 등을 지켜주겠노라. 그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필리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더 이상 도망자나 배신자로서가 아닌. 곁에서 있을 수 있는 가족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훗. 당연히 그래야지.”

엘리스가 당당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서 오필리아가 보좌했다.

“아타락시아의 가주께서 입장하십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과 함께 회랑에 있는 뱀파이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진조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의 혈계 의식이 시작됩니다.]

[위대한 가문의 뱀파이어들이 하나의 여왕 아래 결집합니다.]

2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기 위한 첫걸음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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