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37화
837화, 운명을 건 선택 (2)
-우리가 갈 곳은 ‘양들의 요람’이라는 곳입니다.
다음 방향성을 제시한 진혁은 슈브니구라스와의 전투 이후 2일간 모든 전력을 하나로 모았다.
핵심 거점인 ‘양들의 요람’은 50층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나머지 거점들과도 전부 이어지는 심장부.
거길 손에 넣는다면 아자토스의 궁전까지 이어지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루트를 확보할 수 있다.
승부수를 던지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곳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그 주위에 있는 위성 거점인 ‘울부짖는 회색 군도’, ‘잃어버린 폭풍의 성채’, ‘고대신들의 무덤’ 역시 상당한 전략적 가치가 있었다.
“흐음.”
“호오.”
오룬과 헤파이토스가 연신 턱을 쓰다듬었다.
그 둘의 앞엔 너덜너덜해진 샤일록이 있었다.
얼마나 모진 시간을 견뎠는지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러내렸고, 온 몸에는 수많은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쿡쿡.
“달그락. 죽은 것 같은데?”
“에이 아니야. 우리가 조절 진짜 잘해놨어.”
“맞아맞아. 죽을랑말랑 하면서도 숨이 붙어 있는 게 주인의 특기거든.”
“그치, 그래야 평생 부려 먹을 테니까.”
“훗! 누구한테 배웠는데, 우리가.”
정령수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이 꽤나 마음에 드는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해댔다.
마치, 작은 꼬마 악마들을 보는 것처럼.
웃음소리에 귀기(鬼氣)마저 섞여 있었다.
근처에 있는 베리엘이 하트 표시를 보낼 정도로 말이다.
“이제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 거야.”
“아마 팬티를 벗어달라고 해도 벗어줄걸?”
“창고 위치나 주인이 요구했던 것도 다 적어놨어!”
확실히 든든하긴 하네.
그동안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다들 고생했어. 맛있는 간식 준비해놨으니까 그거 먹으면서 좀 쉬고 있어.”
진혁이 공로를 치하하며 얻은 정보들을 확인했다.
‘확실히 알짜배기들만 쏙쏙 뽑아놨네. 이놈이 살아 있어야 계속 유지되는 것도 있으니 숨통은 붙여놔 줄까.’
이제 샤일록이란 거대 상단과 그의 자원들까지 얻게 되었으니, 연합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어떻습니까? 가능할 것 같아요?”
질문을 건넨 대상은 오룬과 헤파이토스였다.
아일랜드 글럼퍼에게서 얻은 주술탄의 재료들.
거기에 기존에 모아뒀던 것들을 통해 태고의 존재들의 몸을 꿰뚫을 탄환을 만들어야만 했다.
당연히 장인의 정교한 솜씨가 요구되었고, 극한의 기술과 장비도 갖춰놔야 한다.
“쉽진 않겠지만, 저 상단의 보물들을 동원한다면 아예 불가능하진 않아 보이네. 특히나 그 굵고 웅장한 망치를 보니 모처럼 장인정신이 불타오르더군.”
크흠! 보니까 샤일록이라는 자에게 아주 근사한 바(Bar)가 있다던데, 거기 명주를 좀 마시면 내 능률이 10배는 더 오를 것 같구먼.” 장인 한 명과 알코올 중독자 한 명이라.
성공 확률은 잘 쳐줘 봐야 반 정도일 것 같다.
그래도 최고의 대장장이 둘이 맡아준다니 어느 정도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점 쪽 루트를 확보하는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내일 아침에는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아침까지면 꽤나 빠듯하겠군요. 저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몇 번 슈브니구라스를 알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려면 2개의 험지를 뚫고 가야 합니다.”
그래, 알고 있다.
당장 출발해도 모자를 판국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모두 그 2개의 험지를 뚫기 위한 준비 때문이었지.
하스팅의 말에 이어 페시스가 한 마디 덧붙였다.
“게다가 문제가 하나가 더 있는데, 적들의 대규모 병력이 요람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역시나 이미 정보가 샌 건가.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얻은 게 완전히 없는 건 아니다.
‘이걸로 확신이 섰어.’
어떻게 적들의 의도를 역으로 찔러야 할지 감이 잡혔다.
“만약, 놈들이 전부 다 달라붙는다면 쉽지않은 싸움이 되겠구나.”
“그러게요. 슈브니구라스의 병사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어요.”
엘리스와 테레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태고의 힘.
그 무지막지함을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요그소토스나 노스이디크, 니알라토텝, 크삭스클루트, 더 네임리스 미스트 같은 최상위 신격들이 다수 존재한다고 했다.
그들 중에서 셋만 모인다고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최상위 놈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요람이 중요한 곳이긴 하지만, 놈들의 성격상 아자토스나 자신들에게 직접 관련된 게 아니라면 관망할 테니까요.”
“적어도 최상위 놈들이 달려들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겠구나.”
엘리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좋아하기엔 이르다.
그 밑에 있는 중, 상위 신격들은 그야말로 벌떼처럼 모여들 게 틀림없었으니까.
신중하게 작전을 짜지 않는다면 거점 하나를 공략하다 보유한 병력 대부분을 잃게 될지도 몰랐다.
“우선, 다들 각자의 병력을 움직일 준비를 해주세요. 세부 지시에 관해서는 최대한 빨리 수정한 뒤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아침에서야 움직일 계획이었지만, 그것도 늦다.
6시간 뒤 새벽.
최소한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 즉시 이동해야만 한다.
***
해가 떨어지고 완전히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겼다.
취르릇.
치이익!
탑의 대부분 생태계가 그러하듯, 50층 역시 밤이 되면 거주하는 몬스터와 식물들의 흉폭성이 훨씬 더 증가한다.
당연히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층계 연합이 머무르고 있는 곳 역시 경비를 배로 늘려야만 했다.
“으으…아아악!”
“이, 이쪽 뚫렸어! 뭐냐, 저건 대체!”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
기괴한 형태의 식물과 곤충들이 외곽에 있는 병사들을 습격했다.
콰득!
우두둑!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입.
상대적으로 강자들이 없는 곳을 노린 포식 행위에 병사들의 공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워낙에 잔혹하게 죽거나 정신을 잃고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이들이 속출했던 탓이다.
콰아아앙!
암황이 달려드는 머리 셋 달린 지네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무림 세력이 있는 곳 역시 자잘한 사냥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쿠쿠쿠쿠쿠!
“쳇.”
흑천마황공을 끌어올린 암황이 거칠게 혀를 찼다.
전원이 절정급 이상으로 구성된 정예들이었지만, 50층에 들어오고 나서는 사상자가 셀 수 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경계를 맡긴 일류급 무사들이야 방금 전의 습격에서조차 살아남기 힘들었고,
“최소한 10인 1조로 움직이도록 하고 외곽 초소들엔 절정급 한 명 이상씩을 추가로 붙여라. 주공이 될 고수들에게도 일일이 찾아가 신병이기를 전달해야 한다.”
“이미 조치를 취해줬습니다. 하지만, 딱 한 명. 추혼사영께서 막사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서쪽으로 가셨다는 것까진 확인했지만, 그 이후엔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흐음? 영단(丹)이라도 복용하려는 게 아닌가?”
“그렇다기엔 호법을 서줄 자도 따로 데리고 가지 않은 듯싶습니다.”
“그건 좀 이상한 일이로군. 이런 위험한 곳에서 홀로 움직이다니.”
암황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것도 잠시 새로운 소식이 이어졌다.
“마족들과 북유럽 전사들 사이에서도 작은 소요가 일어난 모양입니다. 서로 담당하기로 한 경계구역에 구멍이 생겨서 전사 여럿이 상했다고 하더군요.”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긴장이 이리 풀려서야…. 우리 쪽이라도 경거망동하지 않게 단단히 주의를 주거라.”
“존명.”
슈슉!
포권을 취한 월영이 그 즉시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
한편,
모두가 정신없이 50층에서의 밤을 지새우는 동안, 진혁은 달빛이 비치는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크르르..”
“취췻!”
마찬가지로 묵직한 마력이 흐르는 곳엔 여러 영물과 요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지름이 2m가 넘는 회백색 지렁이와 수십 개의 칼날을 가진 벌레가 입맛을 다셨다.
각각 9성과 10성급에 해당하는 놈들이었다.
침을 뚝뚝 흘리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게 아주 맛있는 야식이라도 발견한 분위기다.
하기야 매일 단단하고 냄새나는 놈들을 잡아먹다가 야들야들한 살을 가진 인간이 왔으니 얼마나 먹음직스러워 보이겠는가?
‘그냥 죽이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글쎄.’
손에 익숙해질 겸 이걸 써볼까. 진혁이 ‘목자의 지팡이’를 꺼냈다.
순간.
쿠웅!
당장이라도 달려들려던 놈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덜덜덜!
공포에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권위’
단순히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놈들은 완전히 압도할 수 있는 효과였다.
‘보통 9~10성급 놈들은 [경직]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야 하는데.’
얻은 지 얼마 안 되다보니 이 정도가 한계인 듯싶었다.
그래도 상태 이상을 부여한 거면 훌륭하지.
암, 훌륭하고말고.
다음은….
진혁이 목자의 지팡이 옆에 음산한 빛이 나는 등불을 걸었다.
그러자.
스윽.
어느새 거대한 나무의 나뭇가지 위엔 다수의 검은 산양들이 서 있었다.
“중요한 걸 해야 하니까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처리해.”
“메에에….”
이 주위에 있는 가장 강력한 놈들이나 네임드 가디언들조차도.
슈브니구라스의 직속 병사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퍼퍼퍼퍽!
콰직!
10초도 안 되는 사이에 풀벌레 소리마저 전부 사라졌다.
‘확실히 사기적이긴 해.’
진혁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움직이는 검은 산양들을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갑옷 꿀벌들 역시 훌륭한 군대로서 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지만, 검은 산양들을 확보한 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다시 한 번 허상결계에서 도박을 했던 게 옳은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흠. 그러고 보니 출발하기 전에 재료 아이템도 정하긴 해야지.
고유무장이야 당연히 최상의 선택지인 목자의 지팡이를 골랐다지만, 재료 선정은 어느 걸 할지 쉽게 정하지 못했다. 워낙에 종류가 다양한 데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했기 때문.
‘일단, 선택 자체는 전부 다 가능하긴 하네.’
사안봉인검을 한계까지 뽑아뒀기에, 받을 수 있는 보상의 한계치가 없어졌다.
덕분에 몇 시간이 지나도록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되었지.
[어둑서니의 심령부적’]
[‘부서진 성단의 파편’]
[‘영생목(永生)의 진액’]
일단 최종 후보군은 이 셋이다.
보통 50층을 100번을 공략하더라도 한 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희소하고 귀중한 재료 아이템들.
이 중에 하나만 고르라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요람 공략・・・ 그리고 남은 시간’
태고의 신격들과 ‘봉인의 왕관’을 대체할 것까지.
고려해야 할 게 너무나 많다.
‘게임에서 50층을 클리어 했던 방식으로 하는 게 정석이긴 한데… 하아 모르겠네.’
가장 확률이 높으면서 안정적인 루트.
수도 없이 시도해본 결과 탑의 정상을 보는 건 단 한 가지 길밖에 없다.
하지만 왜일까?
진혁은 본능적으로 그 길을 가는 게 꺼려졌다. 지금까지 탑을 올라오면서 익숙하고 자신감 넘치던 기분이 드는 것이 아닌 불길하고 찜찜한 감각이 뇌수에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처음 ‘새영언환’을 만났을 때 그랬었지.
50층이 예전에 알던 곳과는 다를 거라고,
실제로 짧은 시간 이곳에 와서 여러 차례 짙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같은데 같지 않다.
무언가에 의해 근본적인 기류가 달라진 게 느껴졌다.
검증된 경험이냐?
진혁이 허공에 떠 있는 아이템 하나에 손을 뻗었다.
아니면….
고인물로서 사선을 넘어온 직감이냐?
이번엔 다른 하나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선택을 완료했습니다!]
상태창과 함께 진혁의 손에 ‘영생목의 진액’이 떨어졌다.
젤리 형태의 노란색 덩어리를 보자니 여러 감정이 동시에 몰아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벅.
발소리와 함께 언덕 아래에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하군. 마무리를 좀 하느라 조금 늦었다.”
이 늦은 시각에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유.
바로 고대의 결계사. 벨토르를 만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