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40화
840화, 최악의 배신 (2)
콰아아앙!
후방에서의 기습.
폭발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연합의 일축을 담당하던 ‘북유럽의 세력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진혁의 목덜미를 스치고 간 궁니르가 동굴의 입구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자욱한 먼지가 뿜어졌다.
마력을 제대로 실은 일격이었기에 상당히 큰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후두둑.
당연히 지하로 가는 통로가 완전히 매몰되었다.
“함께 묻어버리려고 했건만, 역시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군..
주신 오딘.
여러 전쟁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던 동료가 등을 돌렸다.
차갑게 식은 눈과 살기 가득한 얼굴에선 따뜻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요람으로 가는 ‘적토의 해협’은 이곳과는 수백 킬로가 떨어진 곳인데… 빨리도 왔군요.’
진혁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물었다.
사실, 묻지 않아도 답은 알고 있었다.
오딘의 옆에 떠 있는 또 다른 신격.
‘헤임달’.
‘문’을 열어서 이쪽으로 넘어온 것이다.
당연히 원거리 이동이 가능하게끔 글라가 놈이 허락해줬겠지.
“흐음.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로군. 우리가 길을 달리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오딘이 궁니르를 회수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배신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일전에 태고의 존재들이 ‘응징자의 신벌’을 발동하여 탑의 각계 각층을 침공했을 당시, 다들 사력을 다해 자신들의 영역을 보호하기 바빴다. 딱 하나.
북유럽을 제외하곤.
‘위그드라실이 각성’하여 여유가 생겼다고? 그래서 다른 올림포스나 이집트를 도울 여력이 생겼다고?’
그럴 리가.
위그드라실이 각성한 건 사실이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태고의 신격들로부터 완전히 거점 방어를 할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공격을 받지 않았던 거야.’
그저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런 변명을 하고 다른 층계를 도와 빚을 지워두려고 한 것일 뿐.
위그드라실이 각성한 것도 태고의 존재들로부터 배신을 대가로 받은 보상일 확률이 높았다.
“감히・・・ 계약자나 다른 모든 이들이 그대들을 그토록 믿어줬거늘, 우리 등에 비수를 꽂았단 말이냐 오딘!”
“가브리엘 님이나 에덴 역시 당신들을 믿었어요! 고향을 잃고 괴로워하던 모습도, 다시 되찾아서 행복해하던 모습도 똑똑히 기억하는데, 대체 어째서….”
엘리스와 테레사 역시 오딘의 배신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함쳤다.
“…..”
“…..”
다만, 베리엘과 아누비스의 얼굴에선 큰 동요가 없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함께하고 배신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탑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위그드라실은 죽어가고 있었다.”
북유럽의 상징이자 모든 전사들의 근원.
얼핏 보면 생명력이 넘치게 다시 자라나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뿌리가 썩어갑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생명의 나무의 심장으로 파고듭니다.]
시간이 없다.
세력이 전사들이 백성들이 죽어간다.
그래.
이 모든 걸 해결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왜 저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도움을 구하지 않았던 거죠?”
“그대는 우리보다 전체를 위한 길을 선택했을 테니까. 하나의 세력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하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최악의 수를 두지 않더라도.”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내 백성과 전사들을 구할 수 있는 동아줄을 놓칠 순 없었네.”
대의를 위한 길이 반드시 자신을 위한 길이란 법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그 대의를 저버리고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게 있는 법이다.
그게 한 세력을 이끄는 지도자의 책무였다.
“은혜를 잊은 건 아니네. 원망도 비난도 모두 달게 받겠어.”
배신자라고 비겁한 놈이라고 욕해도 좋다.
이미 오명의 업을 지고 발할라에 가지 못할 거라는 각오는 끝내뒀으니.
“변명은 그게 끝입니까?”
진혁이 손끝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화르륵!
불꽃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구체들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그래. 이 이상 구질구질하게 말을 덧붙이진 않겠다. 오거라. 나의 전사들이여.”
쿠르릉! 쿠릉!
번개와 함께 북유럽의 주신인 토르가 떨어졌다.
콰아아앙!
푸른 스파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와우우우우!”
펜리르와.
“부르셨습니까.”
“준비는 전부 끝내줬습니다.”
로키 그리고 발리를 비롯한 완전무장의 주신급들.
한쪽에서는 발키리 부대들이 몰려왔다.
서리거인들과 각종 신수와 환수들 역시 쇼거스 군단의 오른쪽 측면을 빼곡하게 메웠다.
얼핏 봐도 만 단위의 숫자.
전쟁이 시작된 후 전력을 온전시켜줬던 게 전부 다 쏟아져 나온 느낌이다.
“바글바글하게도 왔구나. 모조리 찢어죽여주지.”
엘리스의 눈에 붉은 빛이 서렸다.
특히나 배신자에 대해 민감한 터라, 분노는 이성마저 잠식해버린 상태였다.
“잠깐만요. 이대로 우리끼리 싸우게 된다면 시간을 너무 끌리게 돼요.”
테레사의 말에, 아누비스와 베리엘이 한 마디씩 덧붙였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갈 수도 없다. 숫자가 너무 많아. 뒤를 잡히게 될 거다.”
“하? 숫자만 바글바글하면 뭐해? 어차피 몇몇만 상대하면 나머지는 오합지졸들이다.”
더 많은 세력이 가담했다면 몰라도, 북유럽 하나만이라면 어떻게든 대응이 가능한 영역이다.
그리 생각했는데.
“전원 그걸 삼켜라.”
오딘의 명령과 함께 또 다시 판도가 기묘하게 변했다.
[거대 세력 ‘북유럽’이 ‘폭혈의 정수’를 복용합니다!]
[앞으로 30분간 공격력과 공격속도, 체력과 방어력이 50%만큼 증가합니다!]
[특수 스탯 ‘태고의 감응력’이 +35만큼 증가합니다!]
[이후 30분간 모든 능력치가 50%만큼 감소합니다!]
[수명이 각각 100년씩 차감됩니다.]
생을 대가로 한 등가교환.
스펙업 자체도 성가셨지만, 태고의 신격으로부터 직접 마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감응력’ 스탯이 생겨난 게 가장 위협적이었다. 꿀꺽.
와득!
실제로 정수를 깨물자마자 북유럽 측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180도 달라졌다.
건조함과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성유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것도 상황을 까다롭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럼에도 전력상으로는 여전히 아군이 우세였으나,
시간이 낭비된다는 점에서 상처뿐인 승리가 될 것이다.
“히히. 네, 네놈들의 거점인 모, 모멸의 사원도 공격받고 있지. 자, 자아, 이래도 계속해서 요람으로 갈 거, 것이냐? 포, 포기하는 게 좋을 텐데?”
글라가의 비웃음이 이어졌다.
사원까지 공격한 건가.
거긴 나름대로 방비를 해두긴 했으나, 이 외에도 또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
‘설마’
진혁이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떠올렸다.
만에 하나 놈들이 릭과 수리부엉이에까지 손을 댄 거라면… 그건 정말로 최악이다.
‘원래 연락을 해오기로 한 시점보다 벌써 2일이나 흘렀으니까.’
수리부엉이는 엘더갓들과의 거래를 위해 떠났고
릭 헤네시는 ‘시련의 탑’을 구성하는 ‘근간 시스템’을 재가동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것으로 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소식이 없었다.
・・・・・・ 예상 밖의 변수들이 연이어 나타난다는 건 계획을 전폭적으로 수정해야 할 일.
당연히 여기서는 강행보다는 후퇴하여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병력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진혁은 속행을 결정했다.
***
쿠쿠쿠쿠쿠!
몰려오는 검은 구름.
수많은 태고의 신격과 그의 군대들이 빠르게 요람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들 역시도 슈브니구라스의 거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을 충족해야만 했다.
최상위 신격이 거주하는 곳에 무단으로 침입하려면 제아무리 태고의 존재들이라도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보낸 칼날은 어떻게 됐지?”
“제대로 찔러넣었다. 모멸의 사원 쪽도 계곡 쪽도 원하는 그림 그대로 흘러가고 있어.”
“훌륭하군. 그래서 놈은 병력을 돌렸나?”
“그게…. 계속해서 강행 돌파하는 분위기다. 병력을 쪼개서 계속 요람 쪽으로 뚫고 가는 모양이야. 모멸의 사원 쪽에도 지원군을 보낼 기미는 없다고 하더군.”
아우터 갓 중에 하나인 님발로스의 말에 나머지 신격들이 깜짝 놀라 외쳤다.
“뭐라고?”
“진심인가 그놈은?”
당황스러운 반응이 이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양들의 요람이라는 거점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 핵심 거점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방이 받쳐줬을 때에나 빛을 발하는 일.
전부를 갈아넣으면서 얻어야 할 정도로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곳은 아니었다.
제 아무리 요람을 손에 넣는다고 한들 모멸의 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뒤 자체가 없었으니까.
“이해가 안 되는군.’
“저런 식으로 움직인다면 고립되어 각개격파를 당할 텐데.”
“뭔가 다른 수라도 있는 건가? 병력을 대규모로 이동시킬 만한?”
태고의 신격들 사이에 동요가 커졌다.
바로 그때.
“킥!”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넌….”
님발로스의 시선이 남자에게 향했다.
정확히는 과거의 천유성에게.
“뭐가 그리 웃긴 거지?”
“이 상황이 재밌기라도 한 것이냐?”
“아니, 아니. 이 상황이 나만 짜릿한 거야? 다들 생각이라는 걸 좀 해봐. 대체 어째서 저 손톱만큼도 손해를 안 보려는 놈이 저리 무리를 하는지?”
“선문답은 그만하고 뭔가 알고 있다면 대답이나 해라. 지금 말 따먹기나 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 심사가 편치 않으니까.”
“워워. 진정하라고. 누가 보면 내가 적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과거의 천유성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툭.
그것은 고대의 문헌이었다.
적혀있는 것은 50층 공략 조건.
그 중에서도 특히 하나가 눈에 띄었다.
‘최대 거점 달성’.
-아자토스의 궁전을 일시적으로라도 뛰어넘는 최대 거점을 만들어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탑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슈브니구라스가 머물던 ‘양들의 요람’은 최대 거점으로 진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거점 중 하나였다.
“설마.”
“이런・・・게 있다고?”
대부분의 태고의 존재들마저도 그 사실을 몰랐다.
하기야 50층에 침입할 수 있는 등반자들조차도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했기에 크게 신경 쓰고 있지도 않았지만,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진혁이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승부수를 던지려는 게 이해가 된다.
동시에 승산 자체가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도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태고의 신격들 전체를 상대로 싸운다면 백전백패일 테지만, 재료들을 모아 거점을 강화시키는 것 정도라면 확률이 0은 아닐 테니까.
“틀림없다. 저 문헌에는 ‘매장된 기억’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마력과 동일한 냄새가 배어 있으니까.”
최고 신격 중 하나인 노스이디크가 과거 천유성의 말을 보장했다.
그렇다는 건,
양들의 요람만 방어하면 이 전쟁에서 상대의 마지막 희망을 박살 내 버릴 수 있다는 소리다.
“쥬른과 이알다골스. 아니, 모멸의 사원으로 갔던 병력 전체를 불러들여라.”
“나머지 신격과 외곽을 지키는 병력들도 모두 요람이 있는 곳을 향해 집결한다.
현재 상대 연합 측에서 진군하고 있는 곳엔 요람 일대에 위성급 거점 3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공허룡 ‘에테리온’이 이끄는 드래곤 군단과 호문쿨루스 프레이가 이끄는 불사의 인형들이 가장 거대한 ‘울부짖는 회색 군도’를
천사들과 무림 그리고 제국의 병력이 노리는 비교적 작은 거점인 ‘잃어버린 폭풍의 성채’를
마지막으로 ‘갑옷 꿀벌’과 ‘정령계 병력’ 그리고 제천대성과 우마왕을 위시한 십이지들이 ‘고대신들의 무덤’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각기 다른 쓸모와 활용도가 있기에 놈들이 무슨 의중으로 어디를 핵심으로 삼는지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골고루 방어하며 어느 쪽이 주공인지를 가늠하려고 했었지.
하지만.
최후의 전장이 정해졌다.
상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전력을 분산시킬 필요도 없을 터.
“어설프게 수싸움을 하며 난전을 펼치려고 한 게 너희의 패인이다.”
모든 의념이 한 곳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