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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44화


844화. 엘더갓들의 세계 ‘드림랜드’ (2)

릭은 그 외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에 대해 빠짐없이 말했다.

과거의 천유성에 관한 것과. 어째서 양들의 요람을 공략하는 게 불가능한지에 대해서.

“……”

약간의 적막이 흘렀다.

최악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 진혁이 천천히 릭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만약, 천유성의 과거 데이터가 자신의 모든 걸 습득했다고 가정하면 놈은 골치 아픈 것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날 잘 알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다음에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예측하는 것도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고인물에겐 고인물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슈브니구라스의 최대거점 공략이 간파당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가정하면 어느 정도 앞뒤가 맞았다.

‘오피스텔⋯⋯에 있는 결계에 이상은 없던데, 그것도 다시 복원시켜뒀다고 봐야겠지.’

하여간, 얼마나 스토커 기질이 하늘에까지 이르렀으면 저런 미친 짓거리를 할 수 있는 걸까.

제정신이 아닌 거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릭이 걱정스레 물었다.

제아무리 수많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창조주였지만, 이번만큼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시련의 탑을 오르면서 마주한 난관 중 가장 까다로운 건 분명할 터.

그래도.

이번 정보들을 통해 ‘과거의 천유성’에 대해서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어쩌면 놈이 가진 모순과 약점까지도.

“안 괜찮아도 괜찮아지게 해야죠.”

늘 그렇듯.

고인물은 언제나 길을 찾아낼 것이다.

“후후. 언제나 제가 알던 강진혁 님이어서 다행입니다. 그럼, 저는 다시 원래 임무를 완수하러 돌아가 보도록 하죠. 그것 역시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뿐 아니라 아자토스에 대한 공략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완벽하게 밑 준비를 끝냈어도 불안한 게 그 끝판왕이었으니까.

슈윽.

릭이 그대로 사라졌다.

그렇게 잠시 떨어졌던 일행과 다시 합류했을 땐, 이미 엘더갓들이 머무는 거주지 최심부에 도착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히레테 님.”

가장 앞에서 걷던 서리혼령이 생긋 웃었다.

오래전 50층에 와서 만난 적 있던 신격과 재회한 것이다.

“서리혼령. 그래. 필멸자들의 시간대로라면 제법 오랜만에 다시 보는구나.”

위대한 신격 중 하나인 제히레테가 입을 열었다.

그 주위에는 이름 모를 엘더갓들 역시 몇몇 함께하고 있었다.

너무나 수려하고 아름다운 인간형의 외모.

주위는 황금빛 불꽃들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확실히 이렇게 보니 아우터 갓들이랑 비교되긴 한다.

이들에겐 적어도 본능적인 거부감까지는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겠지.

50층에 있는 절대자들에게 있어 다른 종족들은 그저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미물에 불과했으니.

세상 모든 관대함과 자애로움은 다 품고 있는 척 하지만, 당장 1초 뒤에 뒤통수를 맞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겠습니다. 현재 저희는 적의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를 공략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 알고 있다. 우리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곳이지.”

제히레테의 눈에 상당히 흥미롭다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슈브니구라스의 거점인 ‘양들의 요람’은 엘더갓들 역시도 꼭 손에 넣고 싶어하던 대거점이었기 때문.

그런데 자신들의 숙원 중 하나를 저층부의 거주자들이 공략 중일 줄이야.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저희나 상대나 이번 싸움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수많은 태고의 신격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죠. 반면, 저희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훨씬 더 제한적입니다.”

“우리보고 가세해 달라는 건가?”

“아우터 갓들에게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 싶어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이야말로 놈들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정도 조건이 갖춰지는 일은 과거 수만 년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수만 년 후에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초조하게 제히레테의 입이 떨어지길 주시했다.

“슈브니구라스를 봉인할 수 있는 건 며칠이나 되지?”

“앞으로 20일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진혁이 서리혼령을 대신해 답했다.

“소문이 진짜였나.”

“굉장하군. 태고의 모태를 봉인한다는 게 가능하다니.”

“20일이라….”

엘더갓들 사이에서 웅성임이 더욱 커졌다.

그 괴물을 20일이나 묶어뒀다는 것에 대한 경탄과.

20일 뒤에는 다시 그 절대자가 전장에 개입한다는 악몽이 뒤섞인 결과다.

“허면 묻겠다. 그대들은 정말로 20일 안에 양들의 요람을 공략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구체적인 작전은 있는 것이고? 슈브니구라스를 봉인한 건 분명 대단한 성과이나, 놈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그 거점은 침략자들에게 있어 지옥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승산은 있습니다. 그리고 위대하신 존재들께서 도와주신다면 확률은 더욱 올라가겠죠.”

“100%는 아니라는 거군.”

“전쟁에 ‘절대’라는 게 없다는 건 제히레테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우문이었군. 허나, 이해해주게. 우리로서도 그 거점으로 향한다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야.”

여기서 사린다고?

진혁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 건가.

있었다. 이미 이쪽에서 아우터갓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판 자체를 상당히 흔들었고, 덕분에 엘더갓들은 비교적 손쉽게 자신들의 과거 영역을 되찾고

로우리스크 로우리턴.

전부는 아닐 테지만, 야금야금 중, 소형 거점들을 되찾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겠다는 뜻이리라.

“노덴스 님을 뵐 수는 없는 겁니까? 직접 말씀드리고 상황을 명확하게 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분께 이미 전권을 위임받았네. 내 결정이 곧 그분의 결정이라는 뜻일세. 그리고….”

제히레테가 진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군. 자네들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으니 우리끼리 회의를 한 번 더 해보겠네.”

빌어먹을. 

・・・・・・ 실패다.

시간이 이런 식으로 소모되는 것만으로도 양들의 요람은 더욱더 난공불락이 되어갈 테니까.

1차 담판을 끝낸 진혁과 일행들이 마련된 숙소로 이동했다.

엘더갓들의 회의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죠?”

“일단, 설득을 좀 더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뱀파이어들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였다.

서리혼령 역시 같은 뜻이었고.

‘문제는… 설득하는 방법인데.’

칼 같이 거절하지 않고 이쪽을 안달 나게 한다는 건 분명 바라는 게 있다는 뜻. 아직 엘더갓들의 지원을 완전히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바로 그때.

똑똑.

일행이 머무는 숙소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덜컹!

동시에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엘더갓의 사도인 장보경이었다.

“헤헤. 잘…들 지냈어?”

“너….”

진혁의 표정이 왈칵 구겨졌다.

이런 일을 제대로 처리하라고 기껏 살려줬더니. 감히, 일을 이리 애매하게 만들어?

‘염혼의 낙인’을 발동하려 하자 장보경이 황급히 손을 휘저었다.

“자, 잠깐! 잠깐만! 내가 미쳤다고 아무 선물도 없이 여기로 왔겠어? 제안, 제안을 가져왔으니까 제발 그 무시무시한 살기 좀 어떻게 해봐 좀!” “말해. 듣고 나서 결정할 테니.”

“그게… 사실 엘더갓들 측에서도 이번 공략 자체에 흥미는 있어. 단지 조건, 아니,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바로 병력을 파견할 거야.”

“부탁이라고? 무슨 부탁?”

“너도 잘 알고 있는 애야. 최근 몇 달간 2인 1조로 우리 쪽 신격들과 신수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여대는 괴물들이 있거든.”

엘더갓들을 연습 상대로 여기며 사냥하는 두 명의 검귀.

현재와 과거를 살아가는 한 쌍의 스토커들 이야기다.

“놈들을 처리하러 가주는 게 조건이야. 정확히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주력급 인물이 3명 이상 레이드에 포함되어 있기만 하면 돼.”

죽이면 좋고.

아니어도 엘더갓들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건 부탁이 아니다. 무엇보다 천유성에 대해서는 이쪽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 상대하는 것도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라는 계산이 깔려있는 거겠지.

계약서의 가장 밑에 적혀있는 별표 3개짜리 조건이지.

그리고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천유성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그 바보놈을 어둠 속에서 끌어내야만 한다.

“상위 신격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고 전해.”

“그, 그건 걱정 마! 제히레테 님께서 직접 직속 군단을 이끌고 움직일 거니까. 너희 쪽에서는 누가 원정대로 갈 건지만 말해줘.” 

이미 누구를 보내야 할지는 정해두었다.

“…?”

“…?”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케이시와 주드로,

“하핫 드디어 약속을 지킬 차례라고.”

또한, 이번에도 자기를 빼면 다 엎어버릴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아델이었다.

미친놈에겐 미친놈이 약이라고.

광기에는 광기로 대응하는 게 정답이다.

킬킬대며 웃고 있는 세 명의 살인귀를 보고 있자니, 등골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게 느껴졌다.

***

같은 시각.

양들의 요람에서는 진입로 확보를 위한 전투가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죽여버리겠다!”

슈드뮤엘의 포효가 외곽 성채를 따라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쿠쿠쿠쿠쿠쿠!

유형화된 태고의 투기가 범람하자 전신을 짓누르는 공포가 퍼져나갔다.

“끄으읍”

“커억. 쿨럭!”

마력이나 내공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자는 결코 버텨낼 수 없다.

눈과 코에서 흐르는 핏물이 바닥을 가득 적셨다.

절정 중기를 넘어선 이들이나 완숙한 경지의 소드마스터들도 그 위압감에 짓눌려 검을 제대로 쥐지 못했다.

압도적이다.

감히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투쾅!

‘천마군림보’를 펼치며 앞으로 질주한 천마의 일수가 작렬했다.

슈드뮤엘의 머리 중 하나가 그대로 터졌다.

산산히 박살 난 육편은 이내 원래대로 재생되었지만, 슈드뮤엘의 표정엔 처음으로 ‘고통’이라는 감정이 생겨나 있는 상태였다.

“이놈은 본좌가 상대하겠다. 다들 물러서지 말고 거점을 확보해라!”

천마가 내공을 끌어올리며 퍼져나가는 태고의 기운을 차단했다.

심해와 같은 목소리가 연합의 구성원들에게 파고들었다.

마치, 거대한 고목처럼.

든든하게 앞에서 버텨주는 절대자의 존재에 공포심이 조금씩 걷혀갔다.

바로 그때.

“다른 쪽 공략은 고전 중이라고 합니다!”

“입구 자체에 돌입한 곳은 전무,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보고와 동시에 저 멀리서 생생한 전투음이 전해졌다.

콰콰콰콰콰!

투콰아앙!

북쪽과 동쪽에 위치한 외성의 진입로.

“밀어붙여라!”

“으아아악!”

“마, 말도 안 돼. 이런 놈들을 대체 무슨 수로 이기란 말이야.”

고함과 비명 그리고 전투와 나팔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천사들이 지상으로 추락하고.

마족과 이집트의 전사들 역시 속수무책으로 갈려나간다.

몇 안 되는 올림포스도 소수의 타이탄들을 이끌며 분전 중이었으나, 천혜의 요새와 같은 외벽을 돌파하는 데 실패했다. 더욱더 서쪽에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진 순간이다.

“비키지 않는다면, 뚫고 가겠다.”

천마의 눈에 투기가 깃들었다.

“재밌구나. 인간.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거라.”

슈드뮤엘이 이에 맞서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당장은 어림없겠네.’

진혁이 전체적인 전황을 냉정하게 살폈다.

‘잔류월광’으로 만든 분신으로부터 전해진 엘더갓의 합류조건이 추가되면서 히든카드 하나를 더 확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상황은 굉장히 어렵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희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바보 성녀의 말에 공감이다. 소모전은 우리에게 불리하기만 하다.”

테레사와 엘리스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뭐,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긴 하지.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다.

“그나저나, 어째서 고구마와 용족들을 부르지 않은 겁니까?”

하스팅이 당연한 의문을 던졌다.

연막작전의 의미가 없어진 시점에서 핵심 전력 중 하나인 공허룡과 프레이를 낭비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호오. 그래도 과거 상급 관리자였다고 가장 눈치가 있긴 하네.

진혁의 입꼬리가 살며시 위로 올라갔다.

“거기가 주공(攻)이거든.”

다른 위성 거점은 사실 반드시 손에 넣을 필요는 없는 눈속임이었고,

이번 전쟁의 핵심은 바로 ‘울부짖는 회색 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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