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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45화


845화. 영원의 불꽃

원래 이 요람은 여러 개의 ‘단계’와 ‘봉인’을 해제하면서 접근해야지만 제대로 된 공략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폭적인 계획 수정으로 인해 페시스의 길찾기와 진혁의 편법으로 지름길을 뚫은 상태. 당연히 공략 난이도는 훨씬 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태고의 존재들이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기를 쓰고 서쪽으로 모이는군.”

“하기야 나머지는 도저히 뚫을 엄두가 나지 않을 테니까.”

“이 초반에 천마를 잡을 수 있다면 그건 엄청난 전과다.”

서쪽 능선의 입구는 일부러 열어준 것.

나머지 입구에 비해 느슨하게 병력을 배치해 둔 탓에 적들의 공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건 함정이다.

서쪽 능선의 입구는 진입하기는 꽤나 수월한 편이었지만, 내성까지 가는 길이 복잡한 탓에 오히려 장기전에서는 최악이었기 때문. 일종의 계륵.

서쪽을 완벽하게 확보한다면 뒤늦게 자신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겸사겸사 천마라는 거물을 처리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고.

“물론,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그걸 모를 수밖에 없겠지만.”

“뭐, 이 짧은 시간에 그 입구를 찾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야겠지. 이래서 정보라는 게 중요한 법이다.”

“곧 ‘육식계 씨앗’도 이곳에서 완전히 개화한다. 그러면 더 이상 변수 따윈 없어.”

승리를 확신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체스판에는 이미 훌륭한 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정도 강력한 패를 쥐고서 진다는 게 상상이 안 갈 정도로.

그러니.

나머지는 얼마나 일방적으로 건방진 필멸자들을 찍어누를지만 선택하면 되리라.

저항할 수 없는 공포에 마주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절망적인 일이다.

여러 병력들이 진입로를 공격하는 동안, 연합의 본진이 있는 곳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적습! 놈들이 직접 이곳으로 옵니다!”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바로 뒤에서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림자가 먼저 들이닥쳤고, 뒤이어 그 그림자를 뿜어낸 존재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 사흐, 브래이하.”

“카르마그 디 아메르마산.”

태고의 언어를 읊는 죽음의 천사들.

마치, 개벽의 계시록처럼 등 뒤에는 검은색 반원의 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고유능력 ‘경계의 마도’가 발동됩니다!]

엘리스와의 차이점이라면 전신이 칠흑처럼 검게 물들어 있었고, 신장 역시 각각 5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는 점이었다. 검게 물든 낫을 든 이들의 이름은 ‘초승달 사제’.

무려 25성급에 해당하는 생태계 최상위종으로 ‘심연 포식자’와 동급인 유일한 개체였다.

심연포식자가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병기라면….

・・・・・・ 이 녀석들은 공중에서 가장 강력한 마도사들이란 소리다.

아자토스의 궁전, 그 창공을 지키는 수호병들.

하나하나가 태고의 반신급에 해당하는 전력인데, 그게 무려 100마리나 투입되다니.

‘아직 초반인데 벌써 이 녀석들을 내보낸다는 건가.’

진혁이 적들이 몰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양들의 요람과는 정반대의 방향.

그 하늘이 세로로 길게 갈라져 있었다.

[스킬 ‘마도의 시대’가 열립니다!]

[?서클의 마법이 펼쳐집니다!]

공간이동에 대한 대비로 수많은 결계와 방벽을 겹겹이 쳐줬다.

그런데도 뚫렸다는 건.

단순한 공간이동 따위가 아니라는 뜻.

‘차원 이동의 금술을 쓴 건가.’

아무리 넓은 범위에 펼쳐뒀다곤 하나, 황도십이궁마저 돌파할 수 있는 마법이다.

“으아악.”

“으으으…”

‘경계의 마도’가 발동되자, 가장 먼저 말려든 건 마법 계열의 능력을 다루는 거주자들이었다.

“이, 이봐. 미쳤어?”

“혼련주! 정신 차리시오!”

제국의 마법사와 무림의 술사들이 아군을 향해 살기를 드러냈다.

“암흑의 시대가 도래하리니.”

“따르겠나이다. 따르겠나이다. 그저 따르겠나이다. 히히히히.”

이집트의 사제와 에덴의 신성천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놈들 입장에서 이건 어디까지나 가볍게 던지는 질문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질문 하나하나가 이쪽으로서는 뼈를 다 박살내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겠지.

“쳇! 바보 성녀! 공중전이 제대로 가능한 건 우리뿐이다!”

“예!”

‘개벽의 계시록’과 ‘세라핌’이 발동되면서 희고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혈계능력과 신성력이 극대화됨에 따라, 두 사람이 소속되어 있던 세력이 상태 이상에서 풀려났다.

“저 녀석들이 계속 설치게 해선 안 된다!”

“혈족들은 엘리스 님을 보필하라!”

에덴의 천사들과 다수의 뱀파이어들이 초승달 사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콰콰쾅!

퍼퍼퍼퍼퍼펑!

형형색색의 폭발이 흐드러지며, 연합의 본진에서 또 한 번의 격전이 일어났다.

“외성 입구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젠 뒤쪽에 난 적의 기습까지 신경 써야겠군요.”

하스팅이 심각한 표정으로 지도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했다.

단순히 초승달 사제들이 배후를 급습했다는 것뿐 아니라.

저 통로를 통해 앞으로 언제든지 더한 신격들이 쳐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였다. 

‘구마야….’

진혁이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거점을 바라봤다.

계획한 한 방을 먹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구마가 임무를 완수해 줘야 한다.

***

울부짖는 회색 군도.

유일하게 다른 전장을 공유하고 있는 두 세력이 맞부딪쳤다.

뚫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이미 태고의 존재들의 명령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카이나문에게 뒤는 없었다.

남은 거라곤 오직 이 군도 하나뿐.

그렇기에 모든 걸 쏟아붓더라도 반드시 슈브니구라스와의 맹약을 지킬 생각이었다.

“무슨 놈의 저항이….”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는구나.”

드래곤들이 치를 떨며 마력을 재배열했다.

[10서클 용언마법 ‘헬 파이어 스톰’이 발동됩니다!]

[10서클 용언마법 ‘아이스 에이지’가 발동됩니다!] [10서클 용언마법 ‘타임슬립’이 발동됩니다!]

화르륵..

쩌저저적!

얼음과 불.

번개와 바람이 한 자리에 모여든다.

마력의 고리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불필요했기에 마법과 마법이 몰아치는 간격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또 다시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수백 마리의 비익룡들의 몸이 걸레짝으로 변해 바다 아래로 추락했다.

풍덩! 풍더엉!

물보라가 일어나 구름까지 닿았다.

간신히 군도로 이어지는 길을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길이 열린 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키에에에!”

“케에에!”

쓰러뜨린 것보다 더 많은 비익룡들이 날아왔다.

게 중에는 평범한 놈들보다 3배는 더 큰 놈들도 섞여 있었다.

입 안에서 서서히 맺히는 흑보라빛 구체.

틀림없다.

‘브레스’다.

그것도 기존의 원소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 태고의 마력을 기본으로 한 종류다.

“지독…하군.”

“이래서야 아무리 우리라도 버텨낼 수가 없어.”

나이가 비교적 어린 드래곤들은 탈진에 가까운 상태. 천 년 이상을 살아온 고룡들 역시 힘에 부치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이름’을 가진 고대룡들이 적절하게 나서주지 않았다면 상황은 진즉에 끝났을 거다.

십이지의 진족들에서도 무진룡과 말랑흑두루미 정도만이 간신히 진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로드시여.”

“찾았습니다. 좌표 23, 115, 44. 저기가 날파리들이 쏟아지는 곳입니다.”

진혼룡 ‘아무납트’와 군신룡 ‘하이브’가 마력의 근원지를 가리켰다.

단순 소모전은 의미가 없다.

저 끝도 없이 나오는 비익룡의 둥지를 파괴해야지만 이 지옥의 굴레가 끝날 것이다.

고구마의 샛노란 눈동자가 빛났다.

용들의 말대로 여기서는 계속 대치를 하는 것보다 강력한 한 방을 내보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해안 쪽에서 잠입하는 프레이마저 휘말릴 위험이 있다.

애초에 처음 작전은 적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1:1에서 최강의 위력을 발휘하는 프레이가 보스를 처리하는 것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치지직!

고구마의 앞에 프레이가 나타났다.

“미끼…야. 여기는… 카이나문은 보스 방에 없어.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어. 응.”

“모기?”

“시간이 없어. 시간을 질질 끌면서 뇌우를 꺼낼 생각이야. 그 녀석. 응.”

이 회색 군도에 ‘울부짖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

그것은 섬 전체에 끝없는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는 재난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늘에 적군과 아군이 뒤섞여 있는 동안은 그 카드를 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어긋났다.

카이나문은 자신들 역시 큰 피해를 입을 각오를 끝냈고, 프레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파츠츠.

파치칙!

그 말대로 섬 주위에서 아주 희미한 스파크들이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아직은 너무나 미약해서 완전히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식별이 안 됐지만, 머지 않아 온 시야를 완전히 잠식해버릴 번개의 폭우가 만들어질 것이다.

“괜찮아.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무사할 확률은 29.25%야. 응.”

“모, 모기….”

“머뭇거리지 말고. 망설이지도 마.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거야. 이러는 와중에도 나를 그리고 너를 믿고 있는 소중한 이들이 죽어가고 있어.”

프레이의 말에, 고구마의 눈빛이 더욱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래.

자신의 주인과 그 동료들은 이곳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에서 더 강한 적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약한 소리나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

“모기!”

고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고대룡들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빛줄기가 모여들었다.

[‘드래곤 하트’로부터 가장 순수한 용혈이 공급됩니다!]

인간으로 치면 진원진기를 끌어다 쓰는 격.

[다중 연성마법 ‘무한의 브레스’가 발동됩니다!]

섬 자체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대마법.

고대룡들이 마력을 모아 하나의 대거점용 결전마법을 완성시켰다.

수많은 마법진들이 하늘을 가득 수놓았다.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광경.

비익룡들의 둥지뿐만 아니라, 섬 전체를 불지옥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화력이 갖춰진 것이다. 우우우우웅!

마법진과 마법진들이 이어지며,

서로 다른 이명을 지닌 고대룡들의 성명절기들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용언 ‘하늘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이어진 것은 천벌이었다.

가장 먼저 주위에 떠 있던 구름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키에에…?”

“케에!”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비익룡들의 몸이 불길에 집어삼켜졌다.

파사삭!

뼈도 남기지 못한 채 가루가 되어버리는 몸뚱이.

쿠쿠쿠쿠쿠쿠쿠쿠!

흰색 섬광이 그대로 낙하했다.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브레스가 작렬하자 군도의 지면이 불지옥으로 변했다.

화르륵!

나무가 타들어가고 땅이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화염의 열기로 인해 불이 붙을 정도였으니까.

당연히 비익룡들이 무한정 튀어나오던 둥지 역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무진룡과 말랑흑두루미가 기상개변을 통해 불씨를 최대한 넓게 퍼뜨렸던 것도 피해를 극대화하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허억. 허억. 허억.”

“서, 성공입니다.”

“그래. 아무리 질긴 놈들이라도 이것마저 견딜 순 없겠지.”

모든 마력을 쥐어짜낸 고대룡들이 격한 호흡을 내뱉었다.

생명이 위험하기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드래곤 하트를 쥐어짰다.

당분간은 1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무렵, 이변이 일어났다.

쿠쿠쿠쿠!

군도가 떠오른다.

정확히는 군도의 일부분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회색군도의 심장 ‘부유성’이 운항을 시작합니다!]

축구장 열 개 정도의 크기.

그 위에는 카이나문이 날개를 활짝 편 채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화력이었다. 덕분에 이 부유성이 가동할 마력을 충분히 공급받았어. 뭐, 내 아이들 역시 대부분 다 죽었지만, 승리하려면 버릴 건 버려야겠지.”

100m가 훌쩍 넘는 거대한 비익룡의 모습이다.

파치칙! 

파츠츠!

수십 미터의 뇌우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모기이이….”

고구마가 으르렁거리며 포효했다.

방금 전에 브레스로 상당한 힘을 소모했지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전투를 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었다.

“쓸데없는 저항은 하지 말아라. 이미 끝난 싸움이니까.”

“모기?”

“네가 아무리 여기서 기를 써봐야 이미 네놈들의 본진은 쑥대밭이 되어버렸단 소리다.”

카이나문이 고구마의 앞에 작은 번개를 소환했다.

그 안에는 ‘양들의 요람’의 현 모습이 담겨 있었다.

콰콰콰콰콰콰

엄청난 태고의 군세의 역공에 휘말려 무너지는 진형.

수많은 신격과 세력들이 덧없이 마지막 생명을 불태웠다. 그중에는 진혁의 모습도 있었다.

사력을 다해 전선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충격적인가 보군.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라. 곧 네놈들의 주인 곁으로 보내줄 테니.”

울부짖는 회색 군도의 부유성이 가동했다.

넘쳐흐르는 마력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다.

첫 번째 뇌우가 몰아치면 감히 이곳에 침입한 드래곤들이 모조리 도마뱀구이가 되어버릴 터. 이걸로 승리는 확정되었다.

그러나, 카이나문이 하는 승리 선언이나 협박 혹은 그 어떤 것도 고구마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고구마의 눈에는 오롯이 죽어가는 동료들과.

피를 흘리고 있는 진혁의 모습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으니까.

콰득.

이빨로 인해 무언가 깨졌다.

“흐음. 이제 와서 마정석 따위를 섭취해 마력을 조금 회복할 생각이라면… 허억?”

조소하던 카이나문의 입에서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성유물 ‘영원의 불꽃’이 발동됩니다!]

수많은 병력과

천혜의 요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극한까지 활용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경험과 탁월한 전략까지.

카이나문이 슈브니구라스의 신임을 받으면서 이곳을 지켜온 건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쿠쿠쿠쿠쿠쿠!

[공허룡 ‘에테리온’이 현현합니다!]

그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재앙이다.

군도를 뒤흔드는 마력의 파도.

에테리온의 본체가 태양을 가리자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겨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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