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86화
886화. 백설 여자고등학교 (2)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블랙 캐슬에 나타났던 천둥의 군주.
당연히 이곳 백설 여자 고등학교에도 북유럽의 주신이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것까지 갖고 올 줄은 몰랐지만.’
진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부유하는 흑안’.
차원 브레이커와 마찬가지로 아자토스의 가장 성가신 고유 무장 중 하나다.
다행히 이번에도 원류가 아닌 열화판이긴 했지만, 그로스의 능력을 가볍게 상쇄시킨 걸 보면….
‘완성도가 꽤나 높다고 봐야겠지.’
절대 우습게 봐서는 안 되는 수준이다.
파츠츠.
어느새 해골의 주위에 각종 괴담들이 꿀렁이며 차오르기 시작했다.
몇 안 되는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배신의 대가치곤 꽤나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고 생각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게 이런 거냐?”
“목숨만 달랑 붙여놓고 짐승 취급당할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주의라서 말이지. 다른 건 다 떠나서 따분한 건 정말로 못 참겠더라고. 진혁의 이죽임에 로키가 어깨를 으쓱했다.
‘쉽게 가는 법이 없네.’
탑의 정상을 정복하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배신자들에 대해서도 느슨하게 대처했던 게 사실이었다.
작은 동정심이 오히려 큰 화를 불러온 셈이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계약자. 설마, 니알라토텝이 이런 식으로 움직일 거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이야. 우리 엘리스가 위로도 다 해주는 거야?”
“엣헴. 이미 지나간 일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법 아니겠느냐.”
“그것도 그러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이제는 함께하는 동반자라고. 이런 상황에서 큰 힘이 되어주었다.
문제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는 건데……
토르와 싸웠을 때 느꼈듯. 로키 역시 태고의 힘을 주입받은 거라면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 과학실에서 싸운다면 불리함이 가중되겠지.
“전장을 바꾼다.”
진혁이 결정을 내렸다.
탓!
콰앙!
곧바로 두 사람이 과학실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내달렸다.
“하하하! 천하의 강진혁과 아타락시아의 가주가 도망치는 꼴을 볼 수 있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로키는 이 상황이 꽤나 즐겁다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쫓아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이 괴담 고등학교 안에 있는 이상. 독 안에 든 쥐새끼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어디로 갈 셈이냐?”
“다들 급식실로 모이라고 해줘.”
거기서 괴담식을 제조해 먹어야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엘리스가 흩어져 있는 멤버들에게 박쥐를 날렸다.
***
멤버들이 모두 모인 것은 그로부터 5분 남짓 후였다.
“진혁 씨. 어떻게 된 거예요?”
테레사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순조롭게 괴담들을 처리해 나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비상소집령이 떨어졌으니 이해가 안 될 수밖에.
“방해꾼이 나타났는데 좀 성가신 걸 가지고 왔습니다.”
“북유럽 신화가 개입한 건가요?”
“예. 로키입니다.”
이미 나머지 멤버들도 블랙 캐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략적으로 전해 들었다.
감옥에서 빠져나온 북유럽의 주신들과 니알라토텝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해서.
“헌데, 주군. 여기선 어떤 걸 하시려는 겁니까?”
여장을 한 월영이 급식실 내부를 살폈다.
각종 식재료와 요리기구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내부.
하지만, 입에 댈 만한 것들은 없어 보였다.
괴담의 영향력으로 인해 음식들 역시 기존과는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
“케에에!”
“7|0|0|!”
“건들면, 문다! 확 문다!”
“몸 속에 들어가서 위장에 구멍을 내주마.”
이빨이 달린 감자나. 용암으로 변한 스튜. 비명을 지르는 돈가스와 독액을 만드는 비빔면 등.
모든 것들이 오염되어 있었다.
“으으으. 짐은 사양하겠느니라.”
“먹으면 죽을 확률 99.59%야. 응.”
“요즘 정신병동에서도 이런 걸 주진 않아요.”
이해는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백설 여자 고등학교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박을 할 수 있는 방법이거든.
‘로키는 분명 네임드 몬스터를 흡수하고 있을 테지.’
[부유하는 흑안]의 능력 중 하나.
거점에 존재하는 네임드급 몬스터를 통째로 포식해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가뜩이나 변화무쌍하고 변칙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주신이 물리 이론까지 습득한다면… 상상만 해도 벌써부터 골치가 지끈거린다.
[스킬 ‘이세계 식당’이 발동됩니다!]
진혁이 빠르게 괴식들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옳지 착하다. 착해.”
“차, 착해져 버렷….”
테레사가 신성력을 쏟아 부었고.
“쪼옥!”
“끄르르….
엘리스는 고기에 송곳니를 박아서 안에 든 독을 빼냈다.
서걱!
“케엑! 워, 원통하다.”
푸욱!
“내 탐스러운 노른자에 구멍이!”
월영과 프레이는 그나마 쓸 만한 재료와 아예 못 쓰는 재료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맡았다.
이 둘이 채찍을 담당하는 역할이라면….
“여우랑 같이 놀아볼래?”
“놀자놀자!”
안드리아는 당근을 통한 회유책을 담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불명의 고기와 야채들로 가득 찬 특제 카레가 완성되었다.
한 입이라도 먹었다간 중증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도 포기할 비쥬얼이다.
“몸에 좋은 거야. 한 입만. 딱 한입씩만 해.”
“으으읍! 못 먹는다! 차, 차라리 짐을 죽이거라.”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 투사로 빙의했지만, 진혁은 가차 없이 카레를 입속에 집어넣었다.
위장이 자결할 정도로 끔찍한 맛이다.
[30분간 영혼력이 30%만큼 상승합니다!]
[괴담의 허점을 찌르고 역이용할 수 있는 확률이 42%만큼 증가합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악령이나 귀신들을 상대할 때 저항력이 30% 늘어나는 버프.
거기에 상대의 능력을 역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추가되었다.
‘그나저나 왜 추격을 안 하는 거지?”
이미 해골을 흡수하고도 남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로키가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다른 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바로 그때.
띠링! 띠링!
눈앞에 상태창이 점멸했다.
[특수 아이템 ‘최후 돌격 명령’이 발동됩니다!]
[각 세력에 소속된 인원이 동일하게 소환됩니다!]
우우웅!
눈부신 빛과 함께 2명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렇다는 건.
‘로키 쪽에서도 2명의 지원군을 부른 건가.’
이걸 사용하기 위해서 시간을 끈 거라면 어느 정도 말이 됐다.
곧이어 아군 쪽의 2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여기는… 어디죠?”
“저까지 온 걸 보면 ・・・ 판이 더 커진 모양이로군요.”
‘피에타’와 ‘수리부엉이’였다.
둘 다 뜻밖에 인물이다.
가능하면 천유성이나 서리혼령같이 전투에 도움이 되는 쪽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거야 랜덤인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지.
피에타의 신성력은 테레사와 궁합이 잘 맞을 테고, 수리부엉이 역시 공중전에 특화되어 있으니 나쁘진 않다.
콰콰콰쾅!
급식실 문이 통째로 박살났다.
“적이에요!”
안드리아가 즉시 여우불을 퍼부었다.
퍼퍼펑!
어지럽게 날뛰는 불꽃들.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여기 숨어 있었군요.”
끔찍한 외형을 한 로키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어느 과학자들의 해골만 흡수한 게 아니다.
등에는 튀어나온 뼈다귀들과 8개가 넘는 팔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전부 다른 괴담에게서 뜯어낸 듯 형태가 제각각이었다.
그그극.
지팡이 대신 기다란 검을 질질 끌고 있었다.
마치, 여러 인체의 조각들을 모아다가 몸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것만 같았다.
물론.
화룡점정은 로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흑안이었다.
검은 화염으로 뒤덮인 눈이 모든 것을 꿰뚫어 봤다.
“예전에는 꽤 미남이었는데, 이제는 마주 앉아서 밥도 먹기 힘들 것 같네.”
“후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 역시 당신의 동료들의 사지를 뜯어 저와 똑같이 만들어줄 테니까요.”
19금 호러 무비에 나올 법한 대사를 거침없이 늘어놓는다.
굳이 좁은 곳에서 부유하는 흑안과 싸워줄 이유는 없을 터.
괴담식도 다 먹은 이상 운동장으로 이동해 싸우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아, 저는 여기가 무척 마음에 드는군요. 번거롭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답니다.”
쿠웅! 쿠웅! 쿠웅!
쇼거스와 반쯤 융합된 북유럽 전사들이 복도를 빼곡하게 메웠다.
“키에에!”
“케에에!”
괴담에 서식하는 각종 악령과 귀신들도 창밖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쓰읍.
어쩔 수 없네.
“그럼 한판 붙어보자고.”
진혁의 몸이 변했다.
‘페이즈2’와 ‘요수화.
아수라와 비슷한 형태로 탈바꿈한 뒤, 즉시 로키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카아앙!
단검이 기다란 대검에 가로막혔다.
“빠르군요.”
로키가 키득거렸다.
동시에 여러 개의 팔에 기이한 마력이 맺혔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쇼팽의 저주받은 곡’, 마지막은 ‘분신사바’인가.
콰콰콰콰콰!
진혁이 서 있던 곳이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지하까지 이어지는 회오리 모양의 구멍이 생겼다.
탓.
간발의 차이로 피한 진혁이 혀를 찼다.
아슬아슬했다.
만약 휘말렸다만 조금 아프다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스가 고유성창 ‘개벽의 계시록’을 발동합니다!]
“짐도 있느니라!”
엘리스가 무수히 많은 꼬챙이들을 소환했다.
퍼퍼퍼퍽!
하나하나가 살점을 갈가리 찢어버리는 위력.
쇼거스와 융합된 바이킹 전사들의 사지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졌다.
“밖으로 가는 활로를 열겠어요.”
“나도 도울게. 언니!”
“음. 저도 이쪽으로 가야겠죠?
테레사와 안드리아 그리고 피에타가 창가 쪽에 있는 악령들을 맡았다.
“삐이익!”
테레사가 즉시 경비에게 얻은 아이템을 사용했다.
[호루라기(AA): 1회에 한해서 AA급 이하의 악귀와 귀신들의 능력을 봉인할 수 있습니다.(제한 시간 10초)]
“히이익!”
“시, 신벌이다. 금제의 종소리가 울려 퍼질지어다.”
악령들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그 틈을 이용해 손전등을 비췄다.
[손전등(A)] : 빛에 닿는 존재의 피부를 불태웁니다. (물리방어력과 마법방어력 무시, 현재 건전지 충전율은 85%입니다.)
치이이익!
몸이 그대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창가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던 악령들이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로 도망쳤다.
“키에에, 바, 발할라의 전사들이여!”
“찢어라! 삼켜라! 위, 위그드라실을 파괴한 더러운 족속들을 한 놈도 남・・・ 겨선 안 된다.’
북유럽의 전사들이 테레사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프레이가 ‘불멸의 인형사’를 발동합니다!]
“이 앞으론 못 와. 응.”
프레이의 주위로 수십의 인형들이 나타났다.
소수로 다수와 싸운 경험은 수도 없다.
완전 무장을 갖춘 인형들은 이미 새로운 인형놀이를 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투콰아앙! 카가각!
날붙이와 날붙이가 뒤엉켰다.
거기에는 대화도, 설득도. 서로에 대한 이해도 필요없다.
이미 꼬일 대로 꼬인 악연,
푸는 방법은 그 매듭을 통째로 베어버리는 것뿐이다.
한쪽이 남을 때까지.
서로의 피를 갈구하면서.
그렇게 전투가 한창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말했죠. 당신도 저와 같은 꼴로 만들어주겠다고.”
로키의 섬뜩한 말과 함께.
[부유하는 흑안의 권능이 발현됩니다!]
모든 게 멈췄다.